스님의하루

  • 수행과 실천
  • 스님의하루

2015.8.30 (오전) 시드니 정토불교대학 수계식 및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에서 각각 정토불교대학을 수료한 28명에게 수계식 및 졸업식 법문을 해준 후 오후에는 호주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열린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10시 10분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8시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아침 8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의자에 앉아 밤을 꼬박 지새웠습니다.nbspnbsp▲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드니 시내 전경nbspnbsp공항 도착 후 입국 수속을 밟고 나오는데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았던 데다가 최근 호주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으로 보안 검색이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선 채로 원교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이미그레이션 통과를 기다리며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있는 스님nbsp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공항을 빠져나오니 시드니 정토법당 정은지 총무님과 운전 봉사를 하러 나오신 불교대학생 구본상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두 분은 “비행기는 일찍 도착했는데 계속 스님이 공항 밖으로 나오지 않으셔서 무척 걱정했다” 며 스님을 뵙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시드니정토회 정은지 총무님과 구본상님nbspnbsp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의 시작 시간이 10시 30분인데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을 했는지 시드니 정토법당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스님은 차 안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다행히 행사장에는 10분 전에 도착해 스님은 세수라도 잠깐 하고 행사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시간이 없어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오후에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진행되기 때문에 수계식과 졸업식은 강연장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갈색 가사를 입고 나란히 앉아서 스님을 기다리던 졸업생들은 스님이 행사장에 나타나자 열렬히 환호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총무님의 말에 따르면 호주 지역 교민들은 스님이 일년에 한번씩 오실 때마다 잔치집 같은 분위기가 된다고 합니다. nbspnbsp▲ 강연장 무대에서 조촐하게 진행된 수계식nbsp먼저 정은지 총무님의 시드니 정토회 불교대학에 대한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시드니 정토회 불교대학은 2010년 2월에 시드니 정토열린법회에서 처음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 총 졸업생은 52명입니다. 오늘 졸업생들은 시드니 불교대학 5기, 6기, 7기로 14명이 졸업하고, 멜버른 불교대학 1기는 7명이 졸업하며, 브리즈번 불교대학 1기는 6명이 졸업하고, 한국에 백일출가 기간 동안 불교대학 과정을 마친 1명을 포함하여 총 28명입니다. 그 중 오늘 수계식에 참여해서 수계를 받은 사람은 25명입니다.nbspnbsp25명은 두 줄로 나란히 앉아서 가사를 수하고 삼귀의, 반야심경으로 시작하여 인례자가 따로 없어 스님이 직접 인례자가 되어 수계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수계 법문을 통해 ‘수계를 받는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오늘 오계 수계를 받게 되는 불교대학 졸업생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본인이 스스로 불자가 되겠다고 발원을 한 사람에 한해서 오계 수계를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불명 하나만 지어주세요’ 라고 부탁합니다. 그럴 때 불명은 불명이 아니고 별명입니다. 별도로 부를 수 있는 좋은 이름 하나 지어달라는 그런 얘기이죠. 그러나 불명이란 것은 부처의 이름입니다. 원래는 내가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을 해서 부처를 이루어야 그 때 아무개 부처라고 하는 불명을 받게 되는데,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기만 해도 미리 ‘너는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 그럴 때 너의 부처 이름은 이러이러하리라’ 라고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기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을 예언하고 미리 불명을 받는 것을 ‘수기’라고 합니다. 불명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불명은 그냥 좋은 이름인 별명이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러면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부처가 되는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해야 되고, 부처가 되는 길에 장애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멈춰야 합니다. 부처의 길에 도움이 되는 일을 불교에서는 ‘선’ 이라고 말하고, 부처의 길에 방해가 되는 일을 불교에서는 ‘악’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악과는 기준이 다릅니다. 그런데서 계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기 때문에 그 길로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즉 선을 닦겠습니다는 이야기이고, 그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멈추겠습니다, 즉 악을 멈추겠습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지악수선’이라고 말합니다. 악은 멈추고 선은 마땅히 행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계율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수계를 받는다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은 부처가 되는 길에 장애가 되니 이런 행동들을 오늘부터는 멈추겠습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부처가 되는 길에 도움이 되니 마땅히 행하겠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을 해야 삼귀의와 오계 수계를 하고 불명을 받는 것이지 그런 목표 설정이 아직 안 되어 있고 ‘나는 죽어서 천당에 가고 싶다’, ‘다음 생에 태어나서는 부자가 되고 싶다’ 이런 목표 설정을 한 상태라면 수계와 불명을 줄 수가 없습니다. nbspnbsp붓다는 진실 만을 말합니다. 윤리 도덕적인 간섭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진실 만을 말합니다. 그럼 선택은 누가 해야 될까요? 내가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모든 종교는 어떤 능력자가 주인이고 나는 거기에 의지해서 사는 노예입니다. 그래서 신앙 고백을 ‘나는 종이로소이다’ 이렇게 하?아요.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인생의 주인은 너다’ 하는 것입니다. 너가 선택하고 너가 그 과보를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선택을 잘못합니다. 왜냐하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할 때 진실에 근접해서 선택을 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세상의 종교에는 신이 있고, 신을 대행하는 사제가 있고, 신에게 부탁을 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갖춰진 것이 종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고, 그러니 사제도 필요없고, 신자도 필요없어지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다 필요없어지는 겁니다. 이 관점이 잡히지 않으면 불교 신자는 될 수 있지만 원래 붓다의 가르침에는 근접할 수 없습니다. 원래 불교에는 딱 하나의 단어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수행자’입니다. 붓다는 신이 아니고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입니다. 바른 길로 안내해주는 스승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에 대한 신앙 고백을 할 때 ‘삼계의 대도사요, 사생의 자부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스승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nbspnbsp그러면 우리는 누구이냐? 바로 그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내가 해탈과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시간이 흐르면서 붓다는 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스님들은 사제가 되었고, 재가 수행자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붓다가 일으킨 인생 혁명과는 관계 없이 그냥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 한 종교로 전락을 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불교입니다.nbspnbsp정토회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종교 중에 불교, 불교 중에서도 대승불교, 대승불교 중에서도 선불교, 선불교 중에서도 어떤 종파,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붓다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자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옛길이예요. 어긋난 길에서 다시 본래의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길이 나에게도 좋다고 여겨지면 한번 시도해 보고, 그냥 나는 신자되는 것이 좋다면 세상의 불교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 붓다의 길을 선택했다면 나의 무지를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과 속박이 없는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 오계 수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수계를 받아야 합니다. 복을 받는 수단으로 계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nbsp이런 가르침은 붓다로부터 대를 이어서 내려왔습니다. 근본 가르침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흐트러짐이 없이 내려왔습니다. 그 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에게로,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아난다 존자에게로, 아난다 존자에게서 상나화수 존자에게로, 그래서 제28대 보리 달마 조사에게 이르렀고, 다시 6대를 내려가서 육조 혜능 조사에게 이르렀고, 그것이 더 내려가서 제56대 석옥 청공 조사로부터 제57대 고려말 태고 보우 조사에게 이르렀고, 그 법이 계승해서 내려와서 서산대사를 거치고 환성 지안조사에 이르렀고, 지안 조사가 순교함으로 해서 그 후신으로 다시 오신 분이 용성 진종조사이고, 용성 진종조사의 법이 동헌 완규조사를 거쳐서 불심 도문대사를 거쳐서 여기 지광 법륜에 이르렀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이 정법의 분상에서는 세상이 어떻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바른 법에 귀의해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정법을 계승하여 주변에 전파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법을 후대로 이어서 저 미륵 부처님의 세계에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이런 근본 입장을 가지고 그 첫발로 우선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오계입니다.”nbsp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의 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되자 수계 대중은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수계는 복을 받는 수단이 아니라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발심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불교대학 졸업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친 후 졸업생들은 무릎을 꿇고 호궤합장 자세를 취한 후 오랜 세월 동안 지은 허물을 참회하고 스님으로부터 연비를 받는 의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 스님으로부터 연비를 받고 있는 수계 대중nbsp스님이 연비하는 동안 수계 대중들은 참회 진언을 계속 외웠습니다.nbspnbsp연비와 참회를 통해 마음이 한결 청정해진 수계대중은 삼귀의와 오계 수계를 약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nbsp거룩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nbsp거룩하신 대중들께 귀의합니다.”nbspnbsp스님이 한 구절씩 말하자 수계대중도 함께 따라하며 잘 지킬 것을 다짐하며 반배를 했습니다.nbspnbsp“첫째, 산 목숨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겠습니다. nbsp둘째, 훔치거나 뺏지 않겠습니다.nbsp셋째,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않겠습니다.nbsp넷째,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지 않겠습니다.nbsp다섯째, 술에 취해 주정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그러자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nbspnbsp“오늘 그대들은 부처님 앞에서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계를 지킬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 기쁜 마음을 부처님 앞에 나아가 한 사람씩 헌화함으로써 그대들의 뜻을 다시 한 번 다짐하도록 하십시오.”nbsp대중들은 한명씩 나와 부처님 전에 헌화 하였습니다.nbspnbsp수계의식과 헌화를 마치고 수행자로 거듭난 대중들을 위해 스님은 정성을 기울여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이곳 호주 시드니에서 그동안 불교대학을 이수한 28명의 졸업생 중 25명이 모여서 ‘나도 부처님처럼 살겠다’, ‘나도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되겠다’,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겠다’,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겠다’ 이런 큰 원을 세우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잘 받아지니기 위해서 이렇게 오늘 수계 법회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계 대중을 위해 발원을 해주고 있는 스님nbsp지금까지 삶을 돌아볼 때 저희들도 부지런히 살아왔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가정 생활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도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저희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왜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까’ 하면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왜 이런 나라, 이런 사회에 태어났을까?’ 하면서 세상과 사회를 원망하기도 하고, ‘왜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 하면서 남편이나 아내를 원망하기도 하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저런 자식을 낳았을까’ 하면서 자식을 원망하기도 하며, 괴로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nbspnbsp그러나 이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 진지하게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이 모든 괴로움이 다 나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미움과 원망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아직 내 인생의 새길이 열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음을,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고 또 결과가 돌아오는 인연과보가 분명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하는 너무나 간단한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아직 부족하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미 내가 어리석어서 지은 인연의 과보가 있다면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인연을 짓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쾌락을 가져오더라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면 멈출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싫어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수행의 공덕이 된다면 기꺼이 행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의 감정과 기호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이 바른 길이라면 기꺼이 행하며 그것이 바르지 않다면 기꺼이 멈추겠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들이 부처님 앞에서 삼귀의 오계를 받으며 이렇게 발원하고 결심하지만 이틀 삼일이 지나면 이 마음이 해이해져서 또 욕망에 끄달리고 성질에 끄달려서 오늘 이 발원을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다. 그럴 때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본래 서원 잊지 마시고 저희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늘 저희들을 격려하고 이끌어주시고, 잘못이 있으면 경책하여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nbspnbspnbsp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희에게 이런 바른 길을 일러주셔서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제자됨이 부끄럽지 않는 그런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작게나마 남에게 베푸는 것을 즐기겠습니다. 남에게 이해 받으려 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내가 남을 이해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사랑 받기 보단는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의지하기 보다는 의지처가 되어주겠습니다. 사치하게 사는 것보다는 검소하게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만하고 거만하게 사는 것보다는 겸손하게 살겠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가 발원한 이 공덕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이 공덕이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고 병든 이에게는 양약이 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터가 되는 등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 이고득락하여지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스님의 간절한 발원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계 대중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이어서 불명과 수계증을 수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수계를 받은 모은 이들에게 한명 한명씩 불명을 지어주고 그 의미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표자 한명에게만 스님이 직접 불명의 의미를 해석해 주는데 오늘은 모두에게 불명의 의미를 해석해 주니 모두들 너무나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으로부터 직접 수계증과 불명을 받고 있는 졸업생nbsp정은지 총무님의 영접사를 끝으로 수계식을 마친 후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후 곧바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거행되었습니다.nbspnbsp졸업식 기념 법문이 있기에 앞서 지난 1년 동안 부처님의 바른 법을 가르쳐주신 스님에게 정토불교대학생을 대신하여 최고령 졸업생인 거사님 한 분이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졸업생 일동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다함께 부르면서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졸업식 기념 법문을 통해 스님은 법문을 자기 경험화 해야 하는 것과 그 방법으로 수행, 보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문제 제기를 해요. 학과 수업만 하면 되지 마음나누기, 봉사활동 등 다른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해야 되느냐고요. 정토불교대학의 설립 취지는 수행자의 모임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이치를 바르게 아는 데에 50,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데에 50를 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 교육을 주로 학습 위주로만 받아왔기 때문에 교과 과정만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정토불교대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머지 50는 학습 받은 것을 자기화 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고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나는 어떤가?’ 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지루하더라’, ‘나는 재미가 없더라’ 하고 느낀 것도 수행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했는가 살피는 것이 마음나누기입니다. 마음나누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어떠했는지를 말하면 됩니다. 이 나누기 과정을 통해서 법문을 자기화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깨달음의장을 통해서 ‘깨달음이란 것이 어떻게 우리의 고뇌를 해결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자기 체험을 해야 합니다. 복을 빌어서 내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깨달아서 내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체험해야 합니다. 나의 무지를 깨치니 이렇게 고뇌가 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경험해봐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치는 알지만 경계에 부딪히면 잘 안 됩니다. ‘화를 안 내야지’ 하지만 경계에 부딪혀 보면 화가 확 나버리잖아요. 그러니 매일 매일 점검을 하면서 연습을 해야 해요. 이것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정진을 하는 천일결사 정진입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늘 남에게 도움을 얻는 쪽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만 하루에 1000원이라도 남을 위해 베푸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우리는 남이 나에게 뭔가 해주기를 바래요. 내가 남을 위해서 서비스를 할 생각을 잘 안 해요. 우리는 자신의 작은 재능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그 대가를 돈으로 계산해서 받으려고 하거나 감사 인사라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요. 재능을 파는 데에 너무 익숙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내 자식을 키우듯이 이 세상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나의 재능을 값으로 계산하지 않고 쓰는 것을 봉사라고 해요.nbspnbsp이렇게 정토회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이웃에 도움이 되는 보시와 봉사, 이 세가지가 활동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런 과정을 마쳐야 졸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졸업을 하게 된다는 것은 수행자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nbsp원래는 오계를 받게 되면 수행자가 됩니다. 그러나 현재 불교계에서 오계가 너무 남발되고 있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승가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발심행자 신청서를 제출해서 정회원이 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정회원과 일반회원의 차이는 정회원부터는 수행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합니다. 정회원이 아닌 사람은 그냥 신자로서 정토회에 다닐 수 있게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불교대학을 졸업했으니까 경전반을 다니는 중에 발심행자 신청서를 제출해서 정회원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nbsp수계식과 졸업식을 합쳐서 무려 4시간이 넘도록 법문을 해주신 스님에게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사홍 서원을 끝으로 오후 2시 30분이 다 되어 수계식과 졸업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한국에서는 2500명이 동시에 수계를 받는데 오늘은 25명이 수계를 받음에도 한국 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습니다. 스님은 인원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한명 한명에게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수계 대중들은 환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수행자로 새로 태어난 날이니까요.nbspnbspnbsp올해도nbsp시드니에서는 불교대학 21명 경전반 8명이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고, 멜버른에서는 불교대학 7명, 경전반 6명이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어서 내년에도 40여명이 넘는 대중들이 졸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nbsp나날이 발전하는 호주 시드니정토회의 모습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졸업식을 마친 후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4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시드니 즉문즉설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31. 37,002 읽음 댓글 34개

2015.8.29 필리핀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의 이전 개원 기념으로 현지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공동체 대중들 보다 일찍 기도를 마친 스님은 새벽 예불을 마친 후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아침 8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비행하여 필리핀 현지 시간으로 11시 1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도 서울에서 들고 온 각종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고 점검하며 계속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비행기 안nbsp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이동하는 중에는 회장님이 최근 남북 간 긴장 국면에 대해 걱정을 내비쳤고 스님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어떻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nbspnbsp이 대표님 댁에 도착하자 대표님 부부는 정성껏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준 점심 식사를 감사히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마닐라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마닐라 정토법당이 위치한 nbspMAKATI CITYnbsp마닐라 정토법당은 지난 7월 19일에 개원하여 아직 개원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즉문즉설 강연은 외부의 공공 장소를 빌려서 진행해 왔으나 이번에는 새롭게 개원한 기념으로 법당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7월19일 개원한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nbsp강연 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마닐라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공양간, 접견실, 사무실, 소강당 필리핀JTS 사무실 등 법당 구석 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특히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은 민다나오에서의 JTS 구호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또 필리핀은 자연 재난이 빈번한 지역이여서 긴급 구호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법당의 한쪽 편은 JTS 강당과 사무실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앞으로 이곳 마닐라 교민들을 중심으로 JTS의 구호 사업이 더욱더 활성화 되겠구나 싶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곳 필리핀 한인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오신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과 최근 필리핀 한인 사회의 모습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 4시가 되어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 JTS 사무실에서 마닐라 한인 사회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nbspnbsp준비된 의자에는 대중들 모두가 빈자리 없이 가득찼고 자리가 부족해지자 법당 왼쪽 방에서는 TV로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나왔습니다. 먼저 개원을 한 것에 대해 축하 말씀을 한 후 우리들의 행복이 지속가능해지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애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특별한 주제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자기가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누구에게 간섭 받을 것도 없고 간섭할 것도 없어요. 다만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내 마음대로 살 자유는 있는데 그렇다고 남을 해칠 자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해치게 되면 반드시 과보가 따르게 됩니다. 과보가 따른다는 것은 그 자유가 지속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될 때만 그 이익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은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복을 주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 원칙만 지킨다면 본인 마음껏 살아도 좋고, 가능하면 남에게도 간섭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살고, 또 남의 인생에 간섭을 너무 많이 해요. 그래서 동물보다도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모든 고뇌의 원인이 됩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의 이런 고뇌를 이야기해 보세요.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고뇌를 이야기하면 그 원인을 함께 찾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어떤 원인으로 이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이렇게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자, 누구든지 손들고 이야기해 보세요.”nbsp누구든지 손을 들고 이야기해 보라는 말씀에 여기 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밤마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고민인 여성분, 감정을 억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여자친구가 계속 신경이 쓰여서 고민인 고등학생, 강박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묻는 여학생, 죽기 전에 통일 한국을 한번 보고 죽을 수 있겠는지,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는지 묻는 할아버지, 결혼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내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주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정성껏 답변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아이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고 남편은 강아지를 싫어해서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 합니다. 자녀 교육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어떤 원칙과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남편은 강아지를 무척 싫어하는데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다 보니까 남편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키우고 나니까 집안에 개 냄새가 나서 남편은 본인이 허락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면서 강아지를 키워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고요. 남편 입장에서는 ‘아빠가 중요하니? 강아지가 중요하니?’ 하면서 본인이 허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빨리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저 보고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설득해서 강아지를 못 키우도록 했어야 한다’고 질책합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야 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nbspnbsp“우선 질문자에게 먼저 물어볼게요. 강아지가 중요해요? 남편이 중요해요?” nbsp“물론 남편이 중요하죠. 그러나 저에게는 남편도 중요하고 아이들도 중요합니다. 저희 아이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예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강아지에 대해서 책도 보고 공부도 많이 하거든요. 가능하면 아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들도 많은 노력 끝에 아빠를 설득했는데 아빠가 다시 변덕을 부리고 있어서 저도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nbspnbsp“만약에 남편이 뱀을 너무 좋아해서 비단뱀 한 마리를 침실에 가져다 놓고 생활한다면 질문자는 어떨 것 같아요? 아무리 자기가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뱀을 볼 때 마다 계속 문제 제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반대를 하다가 남편이 너무나 원하니까 허락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뱀을 볼 때 마다 ‘안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매일 뱀을 보게 되면 어떨까요?”nbspnbsp“싫겠죠.”nbsp“그러니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나는 강아지를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남편은 내가 뱀을 보는 것 이상으로 강아지가 싫은 거예요. 내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강아지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아이가 자기가 좋으니까 아빠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원하니까 그래서 허락까지 해주었는데도 ‘강아지가 중요하냐? 내가 중요하냐?’ 고 다시 문제 제기를 할 정도라는 것은 질문자가 뱀을 싫어하는 정도로 남편도 개에게 도저히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 겁니다. 아내가 볼 때는 ‘그게 뭐가 문제냐?’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 냄새며 그 털이며 남편은 너무 너무 견디기 힘든 겁니다.nbspnbsp숫제 뱀은 오히려 강아지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강아지는 발에 흙 묻혀서 돌아다니고 털 떨어뜨리고 냄새도 나잖아요. 그러나 뱀 가죽은 만져보면 자기 살결 보다도 더 부드럽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뱀이 훨씬 더 방에서 키우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것을 아무리 설명한다고 해서 상대가 납득이 됩니까? 안 되겠지요. 물론 설득이 되어서 처음에는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뱀을 보기만 해도 까무라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자기가 개를 좋아한다고 개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동물을 애호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LA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집에 냄새가 많이 난다고 이웃집에서 항의를 해서 경찰이 들어가봤더니 고양이 300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애완용 동물을 길에 버리는 것을 엄청나게 비인간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반면에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어린 아이가 태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왜 사람이 죽는 것은 외면하느냐?’ 라고 물으면 ‘부처님은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왜 사람과 동물을 차별하느냐?’ 고 되묻습니다. 그렇게 자기 취향이 옳다고 방어를 하는 것이죠.nbspnbsp남편이 개를 싫어하는 것은 어릴 때 받은 어떤 상처가 그 원인일 수 있어요. 어릴 때 개한테 물렸다든지 개가 짓는 것에 크게 놀랐다든지 뭔가 상처가 되는 경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개가 집 안에 있는 것이 너무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다면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예요? 우선 남편 아니겠어요? 그런 남편이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하잖아요.nbspnbspnbsp남편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고, 아이는 자기의 기호를 갖고 지금 말하는 거잖아요. 아이의 기호 문제는 엄마가 조정해 주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집을 이사를 가서 개가 아이들 방에만 있게 하고 그 외에는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해주든지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하지요.nbspnbsp질문자는 자신이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남편은 아이들이 예쁘지 않아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까요? 본인은 싫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니까 허락은 한 겁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아이들과 얘기를 해서 ‘우리는 좋지만 아빠는 너무 힘들어하니까 우리가 조정하자’ 이렇게 얘기해야지 ‘아빠가 좀 참으면 되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한다. 권위주의적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에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예요.nbspnbsp반대로 남편이 개를 좋아하고 아이가 개를 너무 무서워하고 죽도록 싫어한다면 이 때는 아이가 못 견뎌 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 아니고 싫어하는 것을 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 명이 한 집에 사는데 네 명은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한 명은 개고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면 네 명이 양보해야 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의 기준에 더 맞춰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런 원칙이 딱 안 잡혀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nbspnbspnbsp아이가 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수의사 하는 것과 개를 좋아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렇게 개를 좋아하면 수의사가 되면 배를 가르고 해부도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nbspnbsp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도 괴로움인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보다 싫어하는 것과 같이 사는 것이 더 큰 고통이예요. 좋아하는 개와 같이 살지 못하는 아이의 고통과 싫어하는 개와 한 집에 살아야 하는 남편의 고통 둘 중에 남편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질문자가 이해하셔야 해요. 남편에게 참으라고 하면 남편은 참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남편이 행복하지가 않아요. 집에 들어오면 냄새가 나서 남편이 자꾸 짜증을 내면 집안 분위기가 안 좋죠. 제가 보기에는 아내가 조정을 해주는 것이 좋겠어요.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nbsp“사실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쯤 되면 개를 치워서 안 보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나 냄새가 좀 나니까 개가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죠.”nbspnbsp“질문자가 아이들의 가정 교육을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아빠를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아빠와 아이가 상출될 때는 항항 엄마가 남편의 뜻을 존중해줘야 아이들이 아빠를 미워하지 않게 돼요. 엄마가 아이들 편을 들어주면 아이들이 자기가 옳고 아빠는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견해 차이가 있을 때 아이의 견해에 편을 들어주면 엄마가 틀렸다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엄마 편을 들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꾸 자녀를 우선시 하는데 자녀를 우선시 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 교육에 실패하게 됩니다.nbspnbsp아이들이 아빠와 정서적인 유대감이 약한 이유는 아빠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엄마가 아빠와 갈등이 있기 때문에 엄마로 인해서 아이들은 대부분 아빠를 정서적으로 싫어하게 됩니다. 엄마와 아빠가 싸워서 엄마가 울고 있으면 당연히 누가 미워집니까? 아빠가 미워지겠죠. 둘 중에 누가 잘했는지 아이는 모르잖아요. 무조건 아빠가 나쁜 사람처럼 인식이 되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질문자의 그런 태도가 벌써 아이들에게는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아이를 자기 편 만들어서 뭐할 건 데요? 이혼할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nbspnbspnbsp그래서 남편이 많이 싫어하면 자기가 딱 나서서 아이를 설득하고 정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도 ‘아빠가 싫어하니까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아빠와 아이의 사이가 더 나빠집니다.nbsp뱀을 방 안에 두고 남편이 올 때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면 또 내어놓고 하면서 ‘눈에 안 보이잖아’ 한다고 견뎌집니까? 안 되지요. 제일 좋은 방법은 단독 주택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개집을 따로 만들어주든지 아이의 방을 움막처럼 따로 지어주어서 개와 같이 지내게 해주는 겁니다.nbspnbsp자녀 교육을 할 때는 질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에 응접실과 방 하나만 있는 좁은 집에 살아야 한다면 누가 방에 자야 될까요? 부부가 방에서 자고 아이를 응접실에서 재워야 아이가 나중에 커서 효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를 방에 재우고 부부가 응접실에서 자면 아이들은 다 불효자가 돼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자녀를 사랑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녀를 버리고 있다는 걸 잘 모르지요? 쥐가 배가 고파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 속에 쥐약이 들어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은 아이를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결과는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이치에 맞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지금 질문자가 말하는 태도를 보면 100 아이 편이 되어 있고, 남편에게는 ‘자기가 허락을 해놓고 그것도 못 참느냐’ 이런 마음이 질문 속에 다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허락했을까 싶거든요. 허락을 해놓고 책임을 못 진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허락을 해준 겁니다. 그러나 허락은 했지만 살아보니까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이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한테는 화를 못 내고 마누라한테 ‘네가 대신 좀 나서서 해결해주라’ 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좀 해결해줘야지요.”nbsp“엄청 큰 고민이였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끔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강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아이가 슬퍼서 눈물을 글썽글썽 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게 순조롭게 할 수 있을까요?” nbspnbsp“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부차적인 거예요. 아이의 상태와 현실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정리를 해나가면 됩니다. 아이가 운다고 또 난리를 피우면 안 돼요. 부모와 헤어져도 살고 자식과 사별하고도 사는데 강아지와 헤어졌다고 죽을 지경이 되겠어요? 그러나 아이들의 심리는 어른이 보는 것과 달라요. 부모의 정은 위에서 내려오는 정이지만 강아지에 대한 정은 아래로 주는 정이거든요. 아이들에게는 강아지가 자기 자식 같은 존재인 겁니다. 그 불쌍한 것을 버렸다고 하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까 대화가 필요합니다. 초등학생이라면 조금 더 아이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고, 중학생 정도가 되면 대화를 할 수 있겠죠.nbspnbspnbsp핵심은 질문자가 지금 원칙 없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현실에 맞게 정하면 됩니다. 단기간에 정리하기 어렵다면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서 ‘시간을 주시면 제가 그 사이에 조정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 아이에게도 ‘너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너 같지가 않다. 아빠는 어릴 때 받은 강아지에 대한 상처가 있기 때문에 같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 하신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 조금 조정을 하자. 대신 가끔 강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해줄게’ 이렇게 지혜롭게 방안을 마련하면 됩니다. 이 때 원칙이 먼저 딱 서야지 그렇지 않고 중간에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면 아이로 하여금 ‘아빠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는 나쁜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nbsp“명쾌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nbsp근심이 가득하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질문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듯 바로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청중들도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과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해야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한 번 더 답변을 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아이를 왕으로 모시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자식한테 종노릇을 해야 됩니다. 자식을 낳으면 스무살 때까지는 키워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러나 스무살이 넘으면 정을 딱 끊어줘야 합니다. 자연의 법칙에 맞게 키워야 돼요. 그래야 아이는 자립을 하고 여러분들은 자녀의 무거운 짐을 덜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끈끈하게 엮이면 여러분들은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고, 자식은 죽을 때까지 자립도 못 하고 부모의 간섭을 받아야 됩니다.”nbspnbsp스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자녁 교육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땐 자주 그런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욕심과 집착이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입니다.nbspnbsp오늘 마닐라 강연에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이 높은 40대 50대의 교민 분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스님의 답변이 무척 좋았나 봅니다. 2시간 30분 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지만 중간에 자리를 비우는 사람 없이 끝까지 집중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강연이 끝나자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준 스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 한금화 보살님이 앞으로 나와서 새롭게 개원한 법당을 찾아와 준 대중들에게 감사 인사와 더불어 몇가지 공지사항과 오늘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 준 봉사자들의 노고와 보시물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마닐라 정토법당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와 일요일 오전 10시에 정기 수행법회가 열리고 있는데, 오늘 강연을 들은 대중들 모두 일상적으로도 이곳 법당에서 스님 법문을 자주 듣고 마음 공부를 함께 해나가자고 제안해 주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 한금화님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 책을 쉽게 구하기 힘든 해외여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스님 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직접 책에 사인을 해주면서 교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고,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 주면서 “힘내세요” 라며 교민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듣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 세부에서 온 정토불교대학 학생들nbsp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온 교민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곳곳에서 수고한 봉사자들과 정토회 회원들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수고많았다” 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해외에서 살다보면 한국에서 살 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은데 이곳 마닐라 정토법당이 그런 어려움들을 해결해나가는 소중한 역할들을 해나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 속에서 밝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한 필리핀정토회 회원들nbsp이어서 “마닐라 법당에 청년정토회가 생겼다”고 하면서 청년들끼리 함께 모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법당에서 수행 법회를 함께 들으면서 민다나오 JTS 사업장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긴급구호 활동도 해보는 경험들을 쌓아나간다면 아주 멋진 필리핀 청년정토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 마닐라정토법당의 청년정토회 멤버들nbsp마지막으로 필리핀정토회 회원들과 한번 더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 스님은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마닐라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밤새 시드니로 향해 날아갈 비행기nbsp밤 10시 10분에 마닐라를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8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내일 아침 8시 45분에 시드니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 시드니에서는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이 있고, 오후에는 호주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nbsp nbspnbsp

2015.08.30. 47,594 읽음 댓글 34개

2015.8.28 발우공양 후 평화재단 각종 미팅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대중들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에 정성껏 임해줄 것을 당부한 후 평화재단에서 연이에 미팅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공동체 대중들보다 30분 일찍 일어난 스님은 가장 먼저 법당에 내려와 기도와 정진을 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신 후 어제부터 시작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와 관련해서 짧은 당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평화’와 이제는 대립과 갈등의 분단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통일’을 발원하는 1000일 기도가 어제 오후 4시에 시작이 되어서 2018년 5월 22일 오후 4시까지 계속 됩니다.nbspnbsp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업무를 하더라도 늘 기도하는 자세와 원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밥을 짓든 청소를 하든 무엇을 하든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겠다는 뜻으로 우리를 대표해서 한 사람이 기도를 하고 그 목탁 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 기도를 한 타임씩 맡아서 정성스럽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일상 업무를 할 때 똑같은 나날이지만 1000일 동안은 더 마음을 기울여서 맡은 바 소임을 잘 해나가길 바랍니다.nbsp특히 9월2일부터는 통일의병과 청년포럼에서 주최한 통일 강연이 매일 계속 됩니다. 하반기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강연이 계속 되니까 대중 여러분들도 자기 맡은 바 소임을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이 말씀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2층에서는 목탁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1000일 기도로 인해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도 정진의 기운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사무실에서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다가도 저 멀리서 목탁소리가 들려오니까 ‘아, 맞다. 우리는 지금 정진하고 있는 중이지’ 하며 금방 정신이 차려졌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은 서울 NGO 실습을 와 있는데 백일출가 수련생들에게는 “해외 일정 마치고 9월1213일에 문경 수련원으로 들어가니까 그 때 뵙겠습니다”고 인사를 한 후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nbspnbspnbsp이후에는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하루 종일 연이어 미팅을 가졌습니다. 저녁에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면서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강연 일정들을 점검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필리핀 마닐라로 이동해 교민들을 위해 법회를 하고, 심야 비행기를 타고 모레는 호주 시드니로 가서 정토불교대학 졸업식과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다시 마닐라를 거쳐서 9월1일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비행기 일정을 이렇게 무리하게 잡은 이유는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필리핀 에어라인으로 왕복을 끊어야 비행기 요금이 100만원 이상 저렴하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nbspnbsp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 ※nbsp2015년 9월, 법륜 스님의 강연이nbsp전국 방방곡곡 여러분을 찾아갑니다.nbsp9월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콘서트와nbsp통일의 주제로 함께 이야기하는 통일 강연이nbsp계속됩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세요.nbsp nbsp nbsp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해서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오세요.nbsp

2015.08.29. 19,293 읽음 댓글 30개

2015.8.27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및 1000일 기도 입재식

▲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1일째.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후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입재 법문과 그 첫 번째 기도를 하였습니다.nbsp새벽 4시30분, 스님은 공동체 대중들 보다 30분 일찍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하는 날이여서 그런지 한배 한배 더욱 정성을 기울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2박3일 동안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과 발해 유적지 답사를 다녀온 것에 대해 간략히 공유한 후 NGO 실습을 위해 서울 정토회관에 머물고 있는 백일출가 수련생들을 위해 짧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문경에 있다가 서울에 오면 자신이 도회지에 살던 본래 업식이 또 일어납니다. 지나가다가 고기 굽는 냄새만 맡아도 코가 벌렁벌렁 한다든지, 술집 앞을 지나가면 마음이 들뜬다든지 할 겁니다. 그런 자신을 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밖을 보지 말고 그런 자신을 봐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까르마가 경계에 반응하고 있는 것을 자기가 늘 알아차리고 있어야지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까르마가 경계에 이렇게 반응을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면 거기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억압하거나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 관점을 딱 가지고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백일출가 수련생들은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게 된 것만 해도 무척 기뻤는데 소중한 법문까지 들려주시니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던 스님은 8시 50분에 정토회관을 나와 이비인후과에 들러 진료를 받은 후 기자회견이 열리는 프레스센터로 향했습니다.nbspnbsp오전 10시 30분부터 프레스센터 19층에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먼저 사회를 맡은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은 “얼마전 DMZ 대인지뢰 폭발 사고 이후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북한에서는 전군 비상령을 내리는 등 남북대치 상태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며 “다행히 8.24일 남북합의로 사태가 진정되었지만 한반도의 분단이 끝나지 않는 이상, 국민들은 또 다시 이런 전쟁의 위기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후 오늘 종교인 선언을 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nbspnbsp▲ 기자회견nbsp사회를 맡은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nbsp이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심부름꾼을 대표해서 강변교회 원로 목사님인 김명혁 목사님이 인사말을 통해 “우리 종교인들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제물이 되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목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며 “3.1운동을 이끌었던 선조들처럼 종교인들이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말했습니다.nbspnbsp▲ 인사말을 하고 있는nbsp강변교회 김명혁 목사님nbsp다음은 미래 30년 후에도 한국이 여전히 통일되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본 후nbspnbsp계속해서 각 종단을 대표한 종교인들의 발언을 들었습니다.nbspnbsp천도교 박남수 교령님,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도법 스님, 서울대교구 원로사제 안충석 신부님은 각각 오늘 종교인 선언에 임하는 마음에 대해 말했고,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대중들은 한 분 한 분의 발표가 있을 때마다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낭독이 있었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성공회 6개 종단 890명의 종교인이 뜻을 함께 하는 서명을 해주었습니다. 선언문 낭독은 여덟 분이 함께 했습니다. 기독교통일포럼의 유관지 대표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지홍스님, 서울대교구 쑥고개 성당 주임 김홍진 신부님, 원불교 마포교당의 남효정 교무님, 동학민족통일회의 고시형 사무총장님, 기독교학술원 원장님인 김영한 목사님, 서울대교구 해방촌 주임 이영우 신부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회장 퇴휴 스님이 차례대로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nbspnbsp▲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낭독nbsp선언문은 종교인들의 요구가 결코 파격적인 ‘새 길’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김대중 대통령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대통령의 10.4 남북공동선언 등 지난 정부들의 대담한 결단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밝힌 후 박근혜 정부도 평화 통일의 길을 향해 한걸음 더 선도적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남북통일정책 정상화의 방법으로 3가지를 요구했습니다.nbspnbsp첫째, 남북 간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합니다.nbsp둘째, 남북통일정책에 대한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nbsp셋째, 남북 간 민간교류를 허용하고 확대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다음의 3가지를 선언했습니다.nbspnbsp박근혜 정부의 남북 평화 통일을 위한 대담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nbsp국민 여러분께 통일을 위한 전면적 관심과 행동을 호소합니다.nbsp우리 종교인들 또한 통일의 구국대열에 적극 함께 하겠습니다.nbspnbspnbspnbsp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다시 한번 기자회견장은 큰 박수갈채와 함께 후끈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이 열기를 이어받아 오늘 종교인들의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한반도 지도가 바닥에 펼쳐지고 그 사이를 가로막은 철조망을 6개 종단을 대표한 종교인들이 나와 가위로 싹둑 싹둑 잘랐습니다. 종교인들의 단결된 힘으로 철조망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행사장에 있던 대중들도 “통일, 통일, 통일”을 외치며 마음을 모아 종이 비행기를 한반도 지도 위를 향해 날렸습니다.nbspnbsp▲ 분단의 장벽인 철조망을 허물고 있는 종교인들nbsp철조망이 무너진 평화로운 한반도 위에서 종교인들은 다함께 손을 잡고 ‘터’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자유와 평화는 우리 모두의 손으로 ♬ 역사의 숨소리 그날은 오리라 그날이 오면은 모두 기뻐하리라 ♬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나가자”nbspnbsp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였습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날, 정말로 남한과 북한 주민들은 이렇게 손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nbspnbspnbsp퍼포먼스를 하며 흥분된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마지막으로 기자들로부터 질의응답을 받았습니다.nbspnbsp기독교계는 지금까지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계속 가져왔는데 앞으로 5대 종단과는 어떤 연대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화해와 형제애는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가치이지만 많은 국민들이 무관심한데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젊은 세대나 청소년 세대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젊은층에 대한 종교인들의 역할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이 이어졌고 종교인들은 이후 계획에 대해 성의껏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 끝날 때까지 법륜 스님이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앉아 있자 기자들은 “법륜 스님이 한 말씀 해주시죠” 라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1000일을 계획으로 기도부터 먼저 시작하려고 한다며 짧게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이니까요. 1000일을 계획으로 절에서 교회에서 성당에서 교당에서 기도를 먼저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힘을 합해 북한 인도적 지원도 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행동도 해나가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을 대신한 정부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격려도 하고 견인도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한 단체만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같이 가야 합니다. 국민들 속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고 종교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합의되는 만큼, 가장 낮은 단계의 합의점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을 해나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nbsp합의되는 만큼 실천해 나갈 것이라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을 모두 마친 후 참석한 종교인들은 다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종교인들이 “평화 통일 피어라” 하고 외치며 손바닥을 활짝 펴자 기자들도 앞다투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nbspnbspnbsp기자회견이 끝난 후 종교인 선언을 주도한 대표들은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스님이 ‘기도’를 강조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각자 자신의 종단에서 하는 기도의 의미와 계획에 대해 담소를 주고 받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오늘부터 시작하는 1000일 기도에 사용될 발원문 원고를 교정하는 등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내일 전국 정토법당에 상영할 백중 회향 법문을 1시간 동안 촬영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3시 20분부터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입재식에 참석해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입재 법문에서 스님은 기도를 하는 이유를 강조하면서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자고 호소했습니다.nbspnbsp“오늘부터 정토회는 2015년 8월 27일 오후 4시부터 2018년 5월 22일 오후 4시까지 1000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시작합니다.nbspnbsp▲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입재식nbsp저희 정토회는 1999년에 이렇게 1000일 동안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남북 관계가 안 좋은 상태에서 기도가 시작되었는데 기도 중에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남으로 해서 기도하던 많은 사람들이 마치 기도를 해서 이루어진 것 같이 무척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우리들의 원은 두 가지 였어요.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였고, 하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이 광범위하게 이뤄져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1997년에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그 때의 작은 정토회로 그 어마어마한 일을 이루어 내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북한 동포들의 아사 상태를 종결짓고 더 나아가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이룩하자고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지극한 마음을 내면 하늘도 감동을 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극하게 정성을 기울이면 하늘을 감동한다는 말은 바로 사람들이 감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정말로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를 하면 온 국민이 감동을 하게 됩니다. 국민이 감동을 하게 되면 통일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런데서 기도를 하는 이유는 첫째, 내 자신의 마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마음을 내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 마음이 해이해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내가 오늘 낸 마음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nbspnbsp둘째, 우리의 마음을 함께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국민들은 그만두고서라도 이렇게 오늘 적극적으로 마음을 낸 정토회 회원들마저도 한달 두달이 지나면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가 일이 됩니다. ‘다음 차례는 누구냐?’ 따지고 이렇게 되면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아무도 감동하지 않습니다. 정성을 다해 불가능한 것을 행할 때 사람들이 감동하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nbsp지금의 정부나 통일부는 마땅히 통일을 위해 일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마저도 지금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포기하고 있는데 바로 이럴 때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모두들 이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럴 때 지극한 정성을 쏟게 되면 천지 신명이 감응을 해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사실 진짜 적은 강력한 힘을 가진 밖에 있는 그 어떤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입니다. 그 첫째가 두려움이고, 그 둘째는 ‘이렇게 해서 과연 될까’ 하는 회의와 의심입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과 회의와 의심을 이겨내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만들어내야 합니다.nbspnbsp남이 보면 기적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그만한 노력과 그만한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해진 겁니다. 지금의 남북 관계는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에 놓여 있고,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관계도 살얼음판을 걸을 정도로 팽팽하게 긴장이 되어 있고, 한국 안의 정치적 상황도 희망을 가질만한 요소가 적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자포자기한 상태입니다.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마저도 어렵다고 말하는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한다는 ‘평화’와 과거의 원한을 뛰어넘어 민족이 하나됨으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가져오는 ‘통일’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고자 합니다.nbspnbsp우리가 오늘 기도를 시작함으로 해서 첫째, 내가 확신을 가져야 하고, 둘째, 우리 정토회 회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져야 하고, 셋째, 그 힘으로 주위의 종교인들도 감동을 해서 동참하도록 해야 하고, 그 힘으로 온 국민이 통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 힘으로 정부를 격려도 하지만 비판도 하고 압박도 해서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부가 들어서도록, 그래서 사실 상의 통일이 되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이 심각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자는 것입니다.nbspnbsp이런 목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니까 여러분들께서 정성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를 귀찮은 일거리로만 받아들이거나 서로 책임 떠넘기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이 기도에서 빠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끼이면 기도의 영험이 없어져서 안 돼요. nbspnbspnbsp기도를 서로 하려고 해야 해요. 기도 한 시간 배정 받는 것을 내 인생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모아야지 목탁 치다가 졸아서 목탁 떨어뜨리고, 자기 순번이 돌아올까봐 겁을 내고, 이런 식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가 부담이 되는 사람은 모두 빠지고, 정말로 이 몸을 바쳐서라도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정성으로 기도를 해야 주위로 감동의 물결이 점점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런 기도를 하고자 하니까 일심으로 정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은 다 좋은 마음인데 시간이 흐르면 기도가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누가 기도하자고 그랬어? 바빠 죽겠는데 잠도 못 자고...’ 이렇게 마음을 내면 안 됩니다. 오히려 기도가 모든 것에 우선해서 배치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조건 하에 나머지 일이 이뤄져야지 기도를 못하는 조건에서는 나머지 일을 안 한다’ 이런 정도로 발심을 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면 천지신명이 감응을 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내가 죽더라도 나라만 독립이 된다면...’, ‘정토회가 괴멸되더라도 나라만 통일이 된다면...’, 이런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nbspnbspnbsp그러면 반드시 인연 과보로 인해 정토회에 복이 돌아옵니다. 일시적인 재앙과 장애는 생길지 몰라도 그 과보는 더 큰 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확신을 갖고 함께 기도를 합시다.”nbsp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마저도 위협 받는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보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대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1000일 기도 발원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발원문을 한 줄 한 줄씩 읽어내려가자 대중들도 합장을 한 채 정성을 기울여 마음을 모았습니다.nbspnbsp“분단 70년.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때마다 전쟁의 위협에 가슴 졸이며 살아왔던 날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일시적 멈춤인 정전 상태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살상무기가 집중 배치된 한반도에 살고 있습니다.nbspnbspnbsp한쪽에서는 식량이 없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비만으로 고민인,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었는데 정치범으로 감금되어 인권이 유린당하고, 한쪽에서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말했다고 종북으로 내몰려 비난 받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분단의 땅. 광복이 분단으로, 독립이 종속으로 이어진 분단 70년의 세월은 어느새 이렇게 사는 게 더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nbspnbsp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산업화에 성공해서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민주화에 성공해서 민주사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꽃다운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자살하는 비율은 세계 최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노인들의 우울증은 세계 최고, 국민들 대다수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우리는 세계 최고의 배달 문명을 이룩한 민족입니다. 환인 하느님께서 한나라를 세우시고, 환웅 천왕님께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건국 이념으로 이 땅에 배달 나라를 세우시고, 단군왕검의 조선, 해모수의 부여, 고주몽의 고구려로 이어져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온 1만여 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 선조들이 대대로 살았던 삶의 터전이 반도가 아닌 광활한 대륙이었음을.nbsp잠시 헤어진 시간은 70년이지만 우리 핏줄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온 신시 개천 6천 년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웠던 웅대한 그 기상을 민족의 평화와 통일로 되살리고자 합니다.nbsp이제 이 자리에서 일심으로 간절히 발원하오니, 한 번 절할 때 억겁으로 쌓여온 나의 어리석음이 깨우쳐지기를. 두 번 절할 때 전쟁과 분단으로 방방곡곡에 맺힌 원혼이 풀어지기를. 세 번 절할 때 배달문명의 기상이 다시 한번 민족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를.nbspnbsp그리하여 분단으로 인해 남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소외된 이웃들이 따뜻한 위로와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청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통일코리아로 거듭나게 하소서. 잃어버린 천년의 꿈을 되살려 다가오는 새로운 문명의 씨앗을 잉태하게 하소서. 민족통일의 길이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고 인류문명의 위대한 전환으로 이어지게 하소서.nbspnbsp부처님. 관세음보살님. 1000일을 하루처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쉬지 않고 머리 숙여 발원합니다. 언제나 우주만물의 은혜로 살아감을 감사히 여기며 뭇 생명을 돌보는 마음을 내고, 상대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화합하는 길에 함께하는 정토행자가 되게 하소서. 선조들의 민족혼을 등불로 삼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길을 밝혀 한 걸음 한 걸음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관세음보살님. 부디 이 길에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지켜봐 주시고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2015년 8월 27일.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정토행자는 천일기도를 시작하며 발원합니다.”nbsp발원문 낭독 후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드디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1000일 기도의 첫 번째 기도자는 법륜 스님이였습니다. 스님은 직접 목탁을 잡고 기도를 하면서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nbspnbsp“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nbspnbspnbspnbsp▲nbsp1000일 기도를 시작하며nbspnbsp이어서 유수 스님이 기도를 이어갔고, 오후 5시부터는 1층 법당에서 하던 기도를 2층 ‘정진실’로 옮겨서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2층 정진실에서의 첫 번째 기도자는 자재 법사님이였습니다.nbspnbsp“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nbspnbspnbspnbsp1초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1000일 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2018년 5월 22일 오후 4시까지 1000일 동안 이 목탁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련해지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염불 소리를 들으며 이 정성과 이 간절함이 온 국민을 감동시켜서 통일코리아의 희망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1000일 기도를 이렇게 출발시킨 후 2층 정진실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점검하고 집무실로 올라가 늦은밤까지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새벽 1시, 2시, 3시가 되도록 정토회관의 목탁 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정토회관을 찾는 대중들의 발길도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은 평화재단을 찾는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8. 38,966 읽음 댓글 46개

2015.8.26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연해주 일대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발해 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습니다. nbspnbsp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숙소에서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108배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업무를 보다가 아침 7시에 1층 로비로 내려와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 일행과 아침식사를 같이 했습니다.nbspnbsp식사를 하면서 이번 연해주 일대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답사에 대해 간단히 평가를 했는데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은 신한촌 기념탑 성역화 사업을 스님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스님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해야할 일이니 김홍신 작가님께서 기념비문을 쓰시고, 이창주 교수님이 기본 설계를 하셔서 추진하고, 스님은 추진 위원회를 구성해서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숙소 앞에서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이 교수님 일행이 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nbspnbsp▲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 일행과 함께nbsp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 없어서 오전에는 걸어서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과 인근의 부두를 산책해 볼 계획이였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바람에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에 머물며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12시에 숙소를 나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이동하면서는 연해주 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와 관련해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작가님이 스님에게 “신한촌 참변이 한국 사람들에게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자 스님은 “나도 이번에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곳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그러니까... 러시아 적군과 한인 독립군이 1920년 3월에 러시아 백군과 일본군을 공격해서 승리를 했죠. 거기에 화가 나서 일본군이 신한촌 참변을 일으켰고, 그 영향으로 한인 독립군이 자유시로 물러나게 되죠. 즉 신한촌 참변이 있은 후 여기 있던 한인 독립군들도 북쪽의 자유시 쪽으로 갔고, 또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후 북간도의 독립군들도 일본군의 대대적 토벌에 쫓겨서 먼저 밀산으로 집결해서 12개의 독립군 조직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창립한 후 러시아 국경을 넘어 자유시로 갔습니다. 그래서 동북 지역에 있던 모든 독립군 세력이 자유시에 모인 겁니다. 즉 연해주에 있던 독립운동 세력과 북간도에 있던 독립운동 세력들이 전부 자유시에 모이게 되어서 그 부대의 규모가 3500여명이나 된 것이죠. 그래서 통합 사령부의 군권을 누가 쥘 것인가를 갖고 러시아 내 독립군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겁니다.nbspnbsp즉 당시 러시아 극동 정부의 허락을 받은 세력인 상해파와 볼셰비키 정부의 코민테른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세력인 이르쿠츠크파가 서로 군권 다툼을 하다가 1921년 6월 적군의 지원을 받은 이르쿠츠크파가 상해파를 무장해제 시키려다 저항하는 상해파를 포위 공격해서 천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통해 쌓아놓은 엄청난 독립군의 영향력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것이 자유시 참변입니다.nbspnbsp이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군이 독립의 가장 큰 적이였지만 강제 이주도 그렇고 자유시 참변도 그렇고 소비에트의 공산당 또한 우리의 독립운동 세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겁니다. 왜냐하면 러시아 쪽에서는 노동자 혁명이 중요했지 약소 민족의 해방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쉽게 말하면 독립군은 민족 해방을 중요시했고, 볼셰비키는 계급 혁명을 중요시 했으니까요. nbspnbsp이렇게 자유시 참변 때 독립운동 세력이 대부분 붕괴되었고, 이 사건 이후로 홍범도 장군 같은 위대한 군인도 러시아 적군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말년에 극장 경비원으로 일하다가 쓸쓸하게 죽게 됩니다. nbspnbsp통일이 되어야 이런 문제들이 모두 정리될 수 있어요. 러시아가 지금도 공산당 정부라면 진상규명이 어려울 것인데 러시아가 이제 공산당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이나 자유시 참변 같은 것들을 이제는 진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겁니다.”nbspnbsp고국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가슴이 아렸습니다.nbspnbsp스님은 말씀을 하시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아이고, 역사를 보면 참....”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에게 “그 많은 고려인들을 왜 고국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켰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nbspnbsp“당시 조선은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고려인들을 조선으로 추방하기 보다는 소비에트 전역에 분산 배치를 시킨 것 같아요. 고려인은 중앙아시아로 배치하고, 우크라이나 인들을 이곳 연해주로 배치하고요. 각 민족을 흩어 버린 것이죠. 당시 연해주 쪽에는 고려인이 많이 건너와서 굉장한 단결력을 보여주니까 민족주의를 우려한 것이죠.nbspnbsp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고 난 후 그 빈 자리에 우크라이나 인들을 배치했는데, 우크라이나 인들이 여기 와 보니까 집도 깨끗하고, 텃밭도 그대로 있고, 가구도 그대로 있었다고 해요. 24시간 안에 무조건 짐을 싸서 나가라고 했으니 텃밭에 감자가 그대로 다 심어져 있었고, 추수를 앞두고 추수도 못하고 그냥 강제 이주가 된 겁니다. 중앙아시아로 가다가 엄청나게 많이 굶어 죽었거든요. 소련 공산당이 그런 식으로 했기 때문에 결국 망한 겁니다. 인간성이 없잖아요. 오직 자본가 계급에 대한 증오심으로 혁명을 했기 때문에....”nbspnbsp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추수도 못하고 그냥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가 다시 가슴 속을 짓누르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선조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아픔을 모두 치유하고 그들의 희생을 가치있게 하는 길은 결국 통일 한국을 이루어서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nbspnbsp통한의 역사를 뒤로 하고 스님 일행은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도 김홍신 작가님과 역사 문제에 대해 긴 시간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시간 40분을 비행하여 오후 5시 무렵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 6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내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 실무 준비를 점검했습니다. 우선 기자회견 퍼포먼스에 사용될 철조망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기자들이 사진을 찍기에 모양이 적절한지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내일 기자회견에 사용될 철조망nbspnbsp그리고 내일 기자회견 퍼포먼스에서 철조망을 자르고 난 후 비둘기 모양의 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데 풍선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nbsp저녁 7시에는 법당에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nbsp이후에는 집무실에 머물면서 내일 오전 10시 30분에 있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과 오후 3시 20분부터 시작될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24시간 1000일 기도 입재식 관련 실무 준비 사항을 점검하면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7. 23,728 읽음 댓글 24개

2015.8.25 크라스키노 발해성 및 우수리스크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 발해의 성터가 남아 있으며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크라스키노 마을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지역에 위치한 발해 성터를 답사한 후 우수리스크로 이동해 고려인문화센터, 이상설 열사 유허비, 최재형 열사 생가 등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새벽 5시 정각, 아직 해가 뜨기 않은 컴컴한 새벽녘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연해주의 광활한 벌판과 산길을 향해 달렸습니다. 오늘의 첫 답사지는 ‘크라스키노’에 위치한 발해성 유적입니다. 어둑한 산길 속을 한참 동안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동해에서 붉은 태양이 뉘엿뉘엿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nbspnbspnbsp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빵 몇 조각을 산 후 달리는 차 안에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쉼 없이 달렸습니다. 출발한지 4시간 만에 ‘크라시키노’라고 불리우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먼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한 크라스킨 중위를 기념한 동상이 세워져 있는 높은 언덕 위에 올랐습니다. 이곳 ‘크라시키노’라는 지명은 이 크라스킨 중위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동상 앞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지형지세가 한 눈에 파악이 될 정도로 아주 전망이 좋았습니다. 탁 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마음도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 크라스킨 중위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언덕 위nbsp오늘 스님 일행을 안내해 주기로 한 현지 교민 박은유 선생님이 이곳 조망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기 보이는 고불고불한 길이 북한으로 가는 길입니다. 발해 성터는 저기 보이는 둥그스름한 곳입니다. 저기 철도 보이시죠? 이곳에서 다음역이 하산역이고 그 다음역이 두만강역입니다. 이쪽 지역 일대가 ‘연추’ 마을이라고 해서 상연추, 중연추, 하연추 마을이 있었고, 이 지역 전체가 우리 조선족들이 농사를 지었던 땅입니다. 어제 갔던 신한촌에 살았던 조선인들은 도시 빈민이였고, 여기 살았던 조선인들은 농민이였습니다. 이곳 연해주 안에 37만명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습니다. 그 중에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간 인구만 17만명이였습니다.nbspnbsp헬기를 타고 이쪽 지역을 내려다보면 우리 조선족들이 경작한 농경지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농사를 안 짓지만 논두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요. 니꼴라이 황제 때 이곳 주지사가 중앙 정부에 보고서를 쓰면서 뭐라고 했냐면 ‘이곳은 무조건 조선족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농사를 기가 차게 잘 짓는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만강을 넘어온 조선족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부여해 주기도 했다고 해요.nbspnbsp저기 큰 산을 넘으면 중국의 훈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40분만 더 가면 북한이 나옵니다. 저기 동해 바다는 겨울이 되면 꽝꽝 업니다.”nbsp스님은 박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나서 비옥하지만 황량하게 버려져 있는 땅들을 보며 “북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농사 짓고 살게 해주면 좋겠네”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김홍신 작가님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nbspnbsp이곳은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인 ‘지신허’와 함께 ‘연추’라고 불리우는 연해주 지역의 대표적인 한인 마을이 있었던 곳인데, 1900년도에 들어오면서 이곳은 최재형과 이범윤, 안중근 등이 동의회를 조직해 연해주 의병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국 독립의 꿈을 안고 원산 등에서 배를 타고 포스에트 항에 내린 뒤 말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달려가던 독립운동가들의 동선을 바람을 따라 그려보았습니다.nbspnbsp“오늘 저희가 답사할 곳은 저기 보이는 기차역 바로 뒤에 동그랗게 숲을 이룬 지역입니다. 옛날에는 염주성이라고 불린 곳입니다.”nbspnbsp“그래요? 그렇다면 이곳은 발해에서 일본으로 가는 출항지였을 겁니다. 훈춘이 발해의 동경이였으니까요. 발해 사람들도 이 성에서 머물다가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갔을 겁니다. 오늘 참 잘 왔어요. nbspnbsp저기 보이는 곳이 포시에트이네요. 나진, 훈춘, 포시에트가 작은 삼각이고, 더 큰 삼각은 연길, 청진, 블라디보스토크이거든요. 큰 배는 자루비누로 들어오나봐요. 이곳으로는 큰 배는 못 오고요. 접안 시설이 없는 것을 보니까 바다가 깊지 않나 봐요.”nbspnbsp저 바다 건너에는 포시에트 지역이 보였습니다. 크라스키노는 중국 훈춘 및 한반도 북부를 연결시켜 주던 군항 ‘포시에트’ 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건국 이후부터 일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신이 오고갔다고 합니다. 험한 바닷길을 통한 교류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발해의 사신단은 이곳에서 일본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발해 시대에는 동경용원부 관할에 있던 염주성이었지 않았을까 예상하며 산 아래 성터로 내려가 보았습니다.nbspnbspnbspnbsp기차길 앞에서 차에서 내린 후 장화를 신고 숲속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로 들어가는 숲길nbsp내일부터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서 10여명의 발굴 조사단은 마을로 철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 웅덩이와 질퍽한 진흙 길을 장화로 철벅 철벅 걸으며 20여분을 가자 발굴 조사단이 머무르고 있는 베이스 캠프가 나타났습니다.nbspnbspnbsp스님 일행이 도착하자 이곳 성터에서 35년 간 발굴 조사를 해온 겔만 교수님이 가장 먼저 나와서 스님께 악수를 건냈습니다.nbspnbsp▲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를 발굴하고 있는 겔만 교수님nbspnbsp겔만 교수님은 가장 먼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성터 안으로 들어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강물 수위가 높아져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대신 겔만 교수님은 성터에서 나온 유적들을 모두 책상 위에 펼쳐서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청동 낙타상’입니다. 쌍봉 낙타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발해인들이 서역과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유물들을 보여주었는데 청동을 재료로 소규모 조형물을 제작했던 발해 장인들의 조형 감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쌍봉 낙타 모양을 한 청동 낙타상nbspnbsp▲ 신라와의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토기. 한쪽이 편평한 모습이 특이했습니다. nbspnbsp▲ 제사에 쓰이는 동물을 잡기 위한 화살촉. 화살을 쏘아도 피가 나지 않도록 기절시키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nbspnbsp그리고 글자가 새겨진 유물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 글자가 새겨진 유물nbspnbsp그리고 겔만 교수님은 자신이 발굴할 때 찍었던 사진과 지도, 유물들을 노트북으로 보여주며 이곳 성터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설명을 듣던 중 스님도 깜짝 놀란 유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환웅의 배달 문명으로 추정되는 요하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 ‘옥환’이 이곳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옥환 유물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가슴이 뛰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nbspnbsp▲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에서도 발굴된 옥환.nbspnbsp이 외에도 겔만 교수님이 보여준 자료를 통해 절터, 우물, 지하창고, 온돌 주거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이 성은 기단을 돌로 정갈하게 쌓은 흔적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발해성이 토성인 것과는 달리 토석혼축성이거나 석성이 아니였나 싶을 정도였습니다.nbspnbspnbsp북 · 동 · 서 · 남쪽에 각기 1개의 성문이 있었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성문마다 옹성이 쌓은 모습이였습니다. 겔만 교수님은 지도로 그 옹성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었는데 고구려의 것과 너무 닮아 있어 놀라웠습니다. 다만 옹성이 안쪽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깥 쪽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이했습니다.nbspnbsp▲ 남쪽 문에 쌓은 옹성nbspnbsp겔만 교수님은 1시간 가까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게다가 초면임에도 정성을 다해 설명해주는 모습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정성껏 설명을 해준 겔만 교수님에게 선물을 건내며 합장을 하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강의 수위가 높아서 미처 건너가지 못한 성터를 먼 발치서 바라보기만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nbspnbsp▲ 강을 건너지 못해 먼 발치서 성터를 바라보고 있는 스님nbspnbsp크라스키노 발해 성터에서 나오는 길에 스님은 김홍신 작가님과 발해의 일본 출항지 역할을 했을 이곳 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일본이 왜 발해를 중요시했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발해와 교류가 왕성했던 나라 중에 하나가 일본이였어요. 원래 일본을 처음 개척한 것은 가야입니다. 그래서 가야 왜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한 기록이 있거든요. 가야가 망하자 그 교류를 백제가 대신했어요. 백제 뒤에는 고구려가 있었고요. 나중에 신라가 강대해지면서는 고구려가 백제와 동맹을 맺었거든요. 그래서 일본에는 백제 문화가 많이 전해졌고 고구려 문화도 일부 전해졌어요. 고구려가 망하고 이를 계승한 것이 발해잖아요. 일본은 자신들의 천왕의 연원이 한반도에서 왔기 때문에 발해가 그 원줄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발해를 중요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nbspnbsp스님의 이야기를 듣던 중 다음 유적지인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에 도착했습니다.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nbspnbsp단지동맹이란 안중근과 11명의 동지들이 1909년 3월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이라 쓰며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 일을 말합니다. 기념비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nbspnbsp▲ 안중근의 단지동맹 기념비nbsp처음에는 2001년 쭈까노보 마을 천변에 세워졌지만 상습 침수 문제 등 보존 관리의 어려움이 있어 2006년 한국 기업인 유비콤 1농장 경비실 앞에 이전했다가 2011년 한국 기업 유니베라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더 안전하고 방문이 용이한 장소인 현재 이곳에 새롭게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서 우수리스크를 거쳐 동만 철도를 타고 할얼빈으로 가서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오 히로부미를 기다렸을 것입니다.nbsp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은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하며 단지동맹의 뜻을 기렸습니다.nbspnbspnbsp기념비를 참배하고 돌아서는데 저 멀리 유니베라 농장에서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확인해 보니 이곳 농장의 법인장으로 와 있는 장민석님이였습니다. 스님은 반가운 얼굴로 법인장님에게 악수를 건내면서 다음에 다시 이곳에 답사를 올 때는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면서 이곳 지역 상황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유니베라 농장의 장민석 법인장님nbspnbsp법인장님과의 짧은 인사를 뒤로 하고 스님 일행은 단지동맹 기념비가 처음 세워졌다고 하는 곳과 두 번째 이전했다고 하는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nbspnbsp▲ 안중근의 단지동맹 기념비가 처음 세워졌었던 쭈까노보 마을 천변nbsp주까노보 마을 천변을 먼 발치서 보고 다시 돌아나오는 길에 두 갈래의 도로를 만났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북한 땅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면 중국으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왼쪽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북한 땅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북한으로 향해 있는 도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러시아 쪽을 향해 이동하면서 ‘아마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이곳 연해주 지역과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습니다.nbspnbsp▲ 왼쪽이 북한으로 가는 길, 오른쪽이 중국으로 가는 길nbsp다음은 우수리스크로 향했습니다. 우수리스크로 향하는 도중에 라즈돌노예 역에 잠깐 들렀습니다. 라즈돌노예 역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기 전에 집결했던 곳입니다. 1937년 9월 9일은 고려인 강제 이주가 최초로 실행된 날인데 당시 가장 많은 고려인들이 이 역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기차에 올랐다고 합니다. 당시 고려인들의 한과 두려움은 지워진 채 한적한 시골 역의 풍경만 남아 있었습니다.nbspnbsp▲ 라즈돌노예 역nbspnbsp오후 2시가 넘어 우수리스크 시내에 들어온 스님 일행은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러 국수 한그릇을 먹었습니다. 국수도 참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식당 주인인 고려인 아주머니의 웃는 얼굴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습니다.nbspnbsp▲ 고려인 4세인 식당 아주머니nbsp고려인 아주머니가 한국말을 꽤 잘하자 스님이 몇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고려인 아주머니는 성이 밀양 박씨라고 하고 할아버지도 이곳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려인 4세입니다. 1937년에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할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가게 되었고, 부모님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1998년이 되자 다시 할아버지의 고향인 이곳 우수리스크로 돌아와 식당을 차렸고, 고려인 남편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춥고 황량한 들판으로 강제 이주되어야 했던 고려인들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nbspnbsp다음은 우스리스크 시내에 위치한 고려인 문화 센터로 향했습니다. 센터 입구에는 “러시아 한인 이주 1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을 건립했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nbsp▲ 고려인문화센터nbsp센터 안에는 고려인 역사관이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당시 고려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영상물로 시청한 후 고려인들의 이주 역사가 소개된 전시물을 차례대로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nbsp연해주 이주부터 독립운동 과정,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그 이후 고려인의 재이주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 선생이 체포 직전 살았던 곳을 찾아 갔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신한촌 참변 때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게 됩니다. 11세 때 집을 나와 러시아인 선장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장사를 통해 돈을 모으기 시작해 지신허 지역 땅을 사들여 농장을 운영했고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으로 군납 사업을 하며 재산을 형성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고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최재형 선생은 1908년 이범윤, 이위종, 안중근과 함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해 총장으로 추대되었고, 의병 활동 자금으로 거금을 내놓았습니다. 1911년에는 홍범도, 이상설과 함께 권업회를 조직해 ‘권업신문’을 창간했고, 1914년에는 마침내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합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제와 제휴한 러시아의 탄압을 받아 대한광복군 정부는 결국 해체되고 말지요.nbspnbsp▲ 최재형 선생의 집nbsp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 거주지는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곳으로 이 집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고 합니다. 스님은 뒷발꿈치를 들고 담 넘어서 집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nbspnbspnbsp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위한 모든 자금도 최재형 선생이 마련한 것이라고 하는데 선생이 없었다면 안중근의 거사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인데 이제야 이곳에 찾아와 인사를 드리게 된 점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nbspnbsp다음은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로 향했습니다. 인가는 물론 논밭 하나 없는 허허 벌판에 묘지도 기념비도 아닌 유허비가 세워졌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nbspnbsp고종의 헤이그 특사 3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상설은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특사 파견에 앞서 북간도 용정에서 서전서숙을 열고 청년교육운동에 헌신했습니다. 1908년 러시아로 망명한 뒤에는 의병군을 창설하고 권업회 등 독립운동단체를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병마로 우수리스크에서 숨지기 전 그는 “독립된 조국이 아니면 고국에 시신도 가지 않겠다”며 “내 몸과 유물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유허비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이상설의 뜻을 기리는 유일한 표지인 것입니다.nbsp스님은 먼저 이상설 선생의 약력이 새겨진 유허비 앞에 묵념했습니다.nbspnbsp▲ 이상설 선생 유허비nbspnbsp묵념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이상설 선생은 만주와 연해주 지역 무장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nbspnbsp그러나 이역만리를 누비며 독립에 헌신한 지도자의 자취는 유허비 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하루 빨리 진정한 독립인 통일 한국의 꿈을 이루어서 이상설 선생의 넋이라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겠다는 간절한 발원을 해보았습니다.nbspnbsp답사 일정은 오늘 하루 뿐인데 벌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수리스크 지역에는 발해 성터가 두 곳이 있다고 하는데 한 곳은 시간이 안 되어 답사를 포기하고 나머지 한 곳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nbspnbsp우수리스크 지역은 중국에서 흘러오는 수이푼 강이 굽이지어 흐르고 있었는데, 이 수이푼 강을 자연 해자로 한 나지막한 언덕 위에 발해의 성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강이 절묘하게 반원을 그리며 언덕을 에워싸서 천연의 요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nbspnbsp▲ 수이푼 강을 자연 해자로 한 발해의 성터nbsp먼저 망루일 것으로 추정되는 산 언덕 부위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광할한 허허 벌판이 한 눈에 보이면서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산의 안 쪽 또한 광할한 평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언덕nbsp스님은 성의 주위 지형 지세를 살펴보더니 “아마 발해의 15부 중에 하나인 솔빈부 자리가 아닌가” 하며 추측을 했습니다. 성의 주위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 ‘수이푼’인데 이 ‘수이푼’이란 용어는 ‘솔빈’이란 발음이 변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흘러오는 이 강을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수이훤허’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발해 성터를 잘 연구하면 발해 솔빈부의 실체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망루에서 다시 안쪽으로 더 들어가보니 어느 고려인이 세웠다고 하는 포대화상 석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대화상 석상 앞에는 발해 시대의 기와들로 정갈하게 탑을 쌓은 것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기와를 손으로 집어 보더니 뒷면에 삼베를 덧댄 무늬를 확인한 후 “발해 시대 기와가 맛네요” 라며 이곳이 발해 성터였음을 재확인 하였습니다.nbspnbsp▲ 출토된 발해의 기와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탑nbsp그런데 정말로 이곳은 길가에도 발해의 기와가 묻혀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길에 묻힌 발해의 기와nbspnbsp그리고 더 깊이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숲 속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성벽을 쌓은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스님 일행이 지나가던 숲길이 성벽을 허물고 뚫은 길이여서 숲길 양 옆으로 성벽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nbspnbsp▲ 성벽이 지나가는 자리를 뚫고 낸 숲길. 길 양 옆에 보이는 것이 성벽.nbspnbsp처음에는 나무가 울창해서 이곳이 성터인가 싶었는데 스님은 이곳을 보자마자 “여기가 바로 성벽이네” 하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성벽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발해의 기와들이 쌓여 있는 발굴 터가 보였습니다. 불과 2030cm 정도만 발굴한 것 같은데 엄청난 발해 기와들이 출토된 것 같아 보였습니다.nbspnbspnbsp발굴 터에서 저 멀리 바라보니 수이푼 강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유적들이 있을 것 같았는데 수풀이 너무 무성해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다음에는 수풀이 없는 봄이나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고 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은 발해의 성터를 찾은 기쁨에 다시 성벽 위에 올라 서서 성벽 위를 거닐어 보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발해 연구의 대가이신 방학봉 교수님이 이곳에 오셨더라면 참 좋아하셨을텐데...” 하며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 발해의 성벽 위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는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nbsp우수리스크의 발해 성터를 둘러보는 것을 마지막 일정으로 모든 답사를 마치고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저녁 7시 무렵에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로 진입한 스님 일행은 다시 국제한민족재단의 이창주 교수님 일행과 만났습니다. 이번 답사는 이창주 교수님이 여러모로 신경을 써 준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스님은 이 교수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저녁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스님 일행을 안내해 준 박은유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사인한 인생 수업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 이창주 교수님 세 분은 이번에 답사한 연해주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발해 유적지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또 동북아 역사기행 속에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지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논의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 국제한민족재단의 이창주 교수님 일행이 먼저 공항으로 출발하고, 스님 일행은 오전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항구를 더 둘러본 후 오후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nbspnbsp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6. 26,074 읽음 댓글 26개

2015.8.24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독립운동 성지인 신한촌에 방문해 선열들의 흔적과 숨결이 남은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그 뜻을 기렸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서울 정토회관에서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공동체 대중들과 새벽 에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신 후 2박3일 동안 연해주 출장을 가게 되었다며 일정을 공유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연해주로 가서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을 방문하려고 해요. 우리 교민들이 19세기 말엽에 그 지역으로 이주한 후 나라를 잃어버리자 그곳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그 지역의 독립운동 유적지 보호 때문에 요청이 있어서 답사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간 김에 최근에 그 지역에서 발견된 발해 유적지가 있어서 그곳도 답사하고 오려고 김홍신 작가님도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공동체 대중들이 새벽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몇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었다며 전통 의식과 의례를 어떤 자세로 계승하고 간직해야 하는지 당부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새벽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우려되는 것이 있어요. 의식과 의례는 일종의 관습이고 문화인데 이렇게 해야 된다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전래되어 오던 관습에서 벗어나게 되면 남이 볼 때는 예의가 없어 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이비라는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문화는 존중해야 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전통은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토회는 의식을 일부 바꾸어서 전통 의식을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사이비 소리를 듣게 될 소지가 큽니다. 그래서 가르침은 참 좋은데 의식의 측면에서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nbspnbspnbsp요즘은 기존의 불교를 잘 모르고 정토회만 접한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정토회에서 행해지는 의식이 것이 곧 불교의 전통 문화인 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nbspnbsp그 중에 하나가 여름에 덥기 때문에 법복 상의를 벗고 절을 하는 부분입니다. 저고리를 벗고 있었다면 어른이 왔을 때 다시 저고리를 입고 인사를 해야 하잖아요. 그것처럼 기도할 때는 저고리를 입고 기도를 해야 하는데 기도할 때 다같이 저고리를 벗고 티셔츠 차림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체육 활동을 하기 전에 윗옷을 벗는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자세입니다. 기도란 것은 더워도 더위에 구애받지 않고 추워도 추운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것인데 더운 것은 이해가 되지만 기도를 하면서 윗옷을 벗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문제는 개선이 되면 좋겠습니다.nbspnbsp연구를 좀 해보세요. 기도를 할 때 너무 덥다면 여름 한철은 아예 여름용 법복을 마련하든지요.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옷을 입고 끝까지 계속 하든지요. 중간에 벗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래서 전통을 지키려면 그대로 지키고, 못 지킬 것 같으면 아예 안 하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을 속박으로 느끼지 마세요. 문화란 것이 원래 그래요. 수행자는 옷매무새를 소박하되 여법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니까 이 점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경직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문화를 잘 보존해서 밖에 사람들과 소통이 되도록 생활하는 것이 수행자다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nbspnbsp스님의 애정어린 조언에 많은 반성과 돌아봄이 있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스님의 조언을 명심하고 앞으로 전통 의식을 어떻게 계승해 나갈지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의논을 하기로 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정토회관을 나온 스님은 김홍신 작가님과 박지나 JTS 대표님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10분 비행기로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30분을 비행하여 러시아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30분 무렵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계속 보았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오늘은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비행기 항로가 이상했습니다. 보통 동해 영공을 통해 바로 가는데 오늘은 북한의 영공을 피해서 중국의 단둥 쪽으로 갔다가 다시 꺽어서 중국 영공을 통해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능 항로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예외적으로 이렇게 간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지금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nbsp▲ 남북 간 긴장 고조로 평소와 달라진 비행 항로nbsp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내리자 러시아의 상트페트르부르크 석좌 교수인 이창주 교수님과 국제한민족재단 간사님들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반겨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창주 교수님은 광복 70년과 한러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지난 8월8일부터 엊그제까지 13박 14일 동안 ‘시베리아 횡단 유라시아 대장정’을 마치고 스님 일행에게 연해주의 독립운동 성지 복원 사업을 안내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어제 먼저 와 있었습니다. 이창주 교수님은 공항에 내린 스님 일행을 곧바로 연해주에 위치한 ‘신한촌 기념탑’으로 데려갔습니다.nbspnbsp차로 이동하며 이창주 교수님은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에게 신한촌이 독립운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목청껏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신한촌은 상해임시정부의 모체인 국민회의가 수립된 독립운동사의 성지란 말입니다. 그리고 연해주 조선인 사회의 지도적 인물이였고 재정적 후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뒷받침해 준 최재형이 활동하던 곳입니다. 또 무엇보다 최초의 코리아타운입니다. 원래 처음 이주해 간 곳인 구한촌이 있었고, 신한촌으로 옮겨간 것이지요.”nbsp설명을 듣고 스님이 이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nbspnbsp“왜 여기는 ‘조선’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한’이라는 표현을 써서 신한촌이라고 한 걸까요? 그 당시에는 다 조선이라고 불렀을 것인데...”nbspnbsp“이상설 선생이 대한제국의 ‘한’에서 따와서 한촌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고요...”nbspnbsp“독립운동가들 중에 이곳을 안 거쳐 간 사람이 없잖아요?”nbsp“그렇죠. 안창호도 그렇고 이동휘도 그렇고... 역사 기록으로는 1863년에 한인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이주해 왔다고 하는데 이런 황무지에서 농사를 지어서 성공을 한 겁니다. 그리고 이곳은 시베리아 대륙 횡단 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입니다. 연길에서 버스를 타면 여기까지 5시간이 걸린다고 하고요.”nbsp이렇게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동해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곳 바다는 겨울이 되면 꽁꽁 언다고 합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톡 내항만은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극동 지역을 확보하고자 했는지 얼핏 짐작이 갔습니다.nbspnbspnbsp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 잠시 꽃집에 들러 카네이션 몇 송이를 산 후 신한촌 기념탑에 도착했습니다. 철창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길쭉한 기둥 모양을 한 세 개의 탑이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신한촌 기념탑먼저 기념탑 앞에서 이창주 교수님이 신한촌과 관련된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신한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창주 교수님nbspnbsp“여기가 바로 신한촌입니다. 당시 약 20만명의 조선인들이 살던 코리아타운이였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아파트 단지가 되어 있지만 바로 이곳이 상해임시정부의 모체가 된 국민회의 진영을 비롯한 모든 독립운동 세력들이 집결한 터전이였습니다. 원래 살고 있었던 구한촌이 있었는데 이쪽으로 옮겨 오면서 완전히 민족 세력화를 이루면서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이 일대에서 최재형의 재정적 지원 하에 안중근 같은 분들이 훈련을 하였고 많은 독립운동 세력들이 이곳에서 양성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1920년 4월에 일본의 대대적인 신한촌 습격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때부터 신한촌이 붕괴되고 뿔뿔히 흩어졌는데 그 때도 고려인들의 일부는 남아서 거주를 했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는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죠.nbspnbsp불행한 것은 1921년에 있었던 자유시 참변입니다. 러시아의 적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사살한 사건인데, 이 사건으로 독립군 960여명이 전사하고 1800여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어요. 독립운동 역사상 최대 비극이죠. 그 배경은 독립군 세력들 간의 헤게모니 싸움에 러시아의 백군과 적군이 가담합니다. 짜르 왕조를 유지하려고 했던 반혁명 세력이 백군이고 볼셰비키 혁명 세력이 적군인데 이 두 세력이 계속 싸웠죠. 그러다가 백군은 일본군의 지원을 받습니다. 일본군은 백군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이곳에 출병해 들어오면서 우리의 독립군들도 소탕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독립군들은 적군에 가담하게 됩니다. 독립군과 러시아 적군은 일본군과 러시아 백군을 많이 전사시켰는데 이를 계기로 일본군은 이곳 신한촌 일대를 습격하고 대토벌을 자행합니다. 이에 연해주의 독립군들도 북방으로 후퇴하면서 자유시에 집결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시에 집결한 독립군들을 러시아의 적군은 대대적으로 포위 사살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해주의 독립군 세력은 사실상 모두 궤멸됩니다. nbspnbsp이곳이 최고로 번성할 시기에는 해외와 국내의 모든 독립운동 세력들이 다 이곳에 집결했습니다. 여기서 전략을 수립하고 논의했습니다. 이곳 출신인 최재형은 나중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정 부장이 되요. 그 사람이 없었으면 독립운동은 어려웠어요. 러시아의 거부인 아버지에게 입양을 가서 아버지로부터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워서 엄청난 거부가 된 사람이거든요. 그 돈을 전부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한 겁니다.”nbsp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이창주 교수님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화려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뒤로 하고 초라하게 남아 있는 기념탑을 가르키며 말을 이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이 초라한 모습을 한번 보세요. 이곳이 과연 민족 독립운동의 성지이고 최초의 코리아타운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는 국회 외교통일위원 11명이 와서 참배하고 갔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그나마 해외한민족연구소라는 민간단체에서 이 기념탑을 세웠는데 가장 높은 것은 남한 동포를 상징하고 두 번째 높은 것은 북한 동포를 상징하고, 세 번째 높은 것은 해외 동포를 상징합니다. 이 기념탑 하나 덜렁 세워놓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nbspnbsp교수님은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쯧쯧’ 하며 혀를 찼습니다.nbspnbsp스님은 교수님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기념탑 앞에 서서 헌화를 한 후 묵념을 했습니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눈을 가만히 감고 있으니 먼 이국땅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호국 선열들의 열망과 함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선열들의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통일 한국을 꼭 이뤄내야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솟아났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함께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습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독립군이 되어 애국가를 불러 보았습니다.nbspnbsp“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nbsp이국 땅에서 애국가를 부르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이창주 교수님에게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사업 계획을 좀 얘기해 주세요” 라고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주위를 가르키며 자세한 사업계획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 nbspnbsp“이곳이 워낙 방치되고 있으니까 우선 이 둘레에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한 열사들의 동상을 세우려고요. 안중근 의사, 최재형 열사, 홍범도 장군, 도산 안창호 선생, 이동휘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상설, 이위종, 이준 등 많은 분들이 신한촌에서 활동했거든요. 또 앞에 이 길을 막아서 저 아래까지 땅을 구입해서 ‘발해 통일각’이라는 정각을 세우고요. 왜냐하면 이곳에는 발해의 흔적이 서려 있거든요.nbspnbspnbsp관리사무소도 지금 임시로 만들어서 쓰고 있는데 저기 서 계신 고려인 분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이곳에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우스리스크에 가면 고려인문화센터가 있는데 거기는 고려인들의 삶을 전시했다면 여기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전시해야 합니다. 당시 사진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것들을 전시하려고요. 또 신한촌의 초기 조선인 가옥도 이곳에 복원하면 좋겠어요.”nbspnbsp기념탑 한쪽 구석에는 관리사무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관리사무실은 고려인 한 분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또 월급을 받는 분이 아니고 방문객들이 조금씩 기부를 하고 가는 것이 수입이라고 합니다.nbspnbsp스님은 방명록에 사인을 한 후 이곳 독립운동 성지의 복원을 발원하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이곳을 지키는 고려인 분에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한 후 성금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 신한촌 기념탑을 지키고 있는 고려인nbsp참배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한국에서 아주머니들 그룹이 미니 버스를 타고 찾아와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그 뜻을 기리는 모습과 마주쳤습니다. 스님은 “민족의 성지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대한민국은 아줌마들이 나라의 기둥입니다” 라고 인사를 하자 너무나 기뻐하며 스님과 함께 기념탑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nbspnbsp그리고 고려인 분이 이 옆에 50미터 떨어진 곳에 땅을 확보해 박물관을 지어보고자 설계까지 했다며 사진과 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걸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했지만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작은 둔턱을 가리키며 이 일대에 옛날에 학교, 출판사, 신문사가 다 있었다며 여기에 건물을 짓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단 위치만 파악해 두고 발길을 돌렸습니다.nbspnbspnbsp신한촌 방문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스님은 “왜 스탈린이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켰어요?” 라고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이 답했습니다. nbspnbsp“고려인들 중에 일본인들의 첩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소수 민족들의 단결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강제 이주를 시킬 때도 한 번에 이주시키지 않고 소규모 단위로 분산을 시켜서 전체를 조금씩 다 떨어트렸다고 해요. 강제 이주를 시키기 전에는 이곳에 조선인 학교가 있었고 조선말로 된 신문이 발행되었고 사람들도 다 조선말을 썼어요.nbspnbspnbsp그런데 이주한 이후에는 조선말을 일체 못 쓰게 했습니다. 조선인 학교도 못 세우게 하고, 조선인 신문도 발간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또 조선인에 대해서는 공무원도 못 되게 하고 대학도 못 들어가게 하고 군인도 되지 못하게 했어요. 그 이유는 유일하게 융합이 잘 되는 민족이 조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전체가 완전히 단결이 되어 있었으니까 나중에 민족 부락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죠. 그래서 그 민족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더 끔찍한 건 1937년에 강제 이주시킬 때 조선인 지도자급들 1500여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점입니다. 지금까지도 어디로 추방했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주 조직적이고 철저하게 조선인에 대한 숙청 작업을 한 것이죠.”nbspnbsp교수님 얘기를 들으니 정말 가슴이 메이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조선인들은 조선에서 이곳으로 이주를 해 온 사람들이고, 나라가 독립이 되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갈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nbsp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있는데 교수님은 그 뿐 만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그 당시에는 조선인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경제 세력이며 민족 세력이었어요. 소련 정부로서는 위협이 되었던 것이죠. 고려인들은 지금까지 국적을 7번 바꾸었다고 해요. 대한제국 시절에 이쪽으로 왔어요. 그리고 나라가 망하자 일본 국적이 되었어요. 다시 일본이 패망하니까 무국적으로 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소련 국적이 되었어요. 그런데 소련이 망했잖아요. 다시 러시아 국적이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한국으로 많이 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다시 바꾸게 된 것입니다. 무려 7번이나 국적을 바꾼 것이죠. 얼마나 서러운 일입니까.”nbspnbsp고려인들의 가슴 아픈 역사는 정말 끝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 숙소로 올라가 짐을 풀었습니다.nbspnbsp다시 숙소에서 나와 걸어서 시내로 향했습니다. 숙소 앞에는 동해 바다가 넓직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바다가 꽁꽁 얼어서 차가 바다 위로 다닐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름 날씨여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nbspnbsp▲ 블라디보스톡에서 바라 본 동해nbsp바닷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원래 처음으로 조선인이 이주해 살았다고 하는 구한촌 지역에서 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고려인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부터 발해 유적지 답사를 가기로 해서 아침과 점심을 제대로 못 먹기 때문에 마트에서 시장을 보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마트에 들러 시장을 본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그리고 마트로 가는 길에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이 있었습니다. 이 기차역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한다고 해서 잠시 가까이 내려가 보았습니다. 기차역 플랫폼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 거리를 상징하는 ‘9288’이라는 숫자가 적힌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 역nbspnbsp기차역에 멀뚱히 서서 ‘남북이 통일 되면 아침에 부산역을 출발하여 점심 때 이곳 블라디보스톡 역을 통과하여 저녁에 모스크바 역에서 보드카 한 잔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통일의 그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5. 38,984 읽음 댓글 35개

2015.8.23 서원행자대회 2일째 및 행자대학원 7기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원행자대회를 마치며 회향 법문을 한 후 저녁에는 행자대학원 7기 수료생들을 위해 졸업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스님은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한 300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기도 후에는 어제에 이어서 행정처 상반기 사업보고 및 하반기 사업계획과 예산에 대한 발표, 전국 대의원 회의의 결정 사항에 대한 발표 등이 이어졌습니다. 서원행자들은 정토회의 사업 전반에 대해 자세히 보고 받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고, 건의사항이 있으면 마음껏 의견을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nbspnbsp▲ 서원행자대회nbsp보고회 이후에는 모둠별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둠별로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 ‘경전반 활성화 방안’, ‘수행법회 활성화 방안’, ‘정회원들의 봉사 일감 마련’, ‘청년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 ‘공동체 기획법회 열기 실천과제 달성 방안’ 등 각각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한 후 다시 한자리에 모여 토론 결과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모둠별 토론 및 발표 시간nbspnbsp▲ 점심 식사는 각자 집에서 싸온 밑반찬과 수련원에서 만들어 준 밥과 국으로 먹었습니다.nbspnbsp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쏟아졌고, 스님은 각각의 발표 내용을 경청하면서 들었던 스님의 지혜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불교대학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서는 어제에 이어서 더욱 핵심적인 방안들을 많이 이야기해 주셔서 앞으로 불교대학 운영 개선안을 마련하는데 큰 귀감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상임위원회에서는 한달 동안 연구 조사 작업을 펼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전국 대의원 회의에서 한 차례 토론이 이뤄지고, 또 그 결과를 토대로 서원행자들이 모둠별로 다시 아이디어를 모아내고, 다시 그 결과를 공유해서 스님께서 또 지혜를 보태어 주시니 그동안 무엇이 문제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과제도 아주 선명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의 지혜를 모아나가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진 3분 스피치 시간에는 다양한 건의 사항들을 마음껏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업무에 빠지다 보면 수행을 놓치기 쉬운데 그럴 때마다 서원행자들은 깨달음의장 돕는이를 꼭 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분, 소통 수단으로 카카오톡에 너무 의존하는 문화를 한번 살펴봐야 하지는 않는지 환기를 시켜주신 분, 통합 전산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는데 무작정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만 하지 말고 필요로 하는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달라고 호소하는 분, 가을 불교대학 입학 신청 마감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더욱 분발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대학을 듣게 하자는 분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3분 스피치 시간nbsp긴 시간 동안의 토론과 공유의 시간을 마치고 오후 4시부터 서원행자대회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회향 법문에서 스님은 먼저 8월 27일에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선언 기자회견이 있다고 알려주면서 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다함께 정성을 모아 보자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8월 27일에는 5대 종교의 지도자들 600여명이 서명을 해서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nbspnbsp대한민국 정부가 통일에 대해서 전향적인 정책을 취해라. 그것은 새삼스러운 길이 아니고 박정희 대통령이 7.4 공동성명에서 이미 길을 열었고,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 기본합의서에 이미 합의를 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에서 이미 표명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10.4 선언에서 이미 표명한 옛길이다, 새로운 길이 아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도 헌법 정신에 입각해 지난 역사에서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을 따라서 통일 정책을 전향적으로 추진해라.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도 이제 우리의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통일 밖에 없음을 각성하고 통일의 길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 종교인들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 살았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살 것이다, nbspnbspnbsp이렇게 성명서를 오전에 발표하고, 오후 4시에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9월6일에는 통일의병 발대식을 하게 되고 이어서 평화재단에서 주최한 전국 통일 강연이 진행되고, 청년포럼에서 진행하는 청춘콘서트도 시작합니다.nbspnbsp그래서 이 민족적 위기를 극복해 보고자 합니다. 늘 초조불안 속에서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주어진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종속 변수가 아닌 상수로서의 역할을 하는 그런 국가를 만들고 그런 국민이 되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1000일 동안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온 정성을 쏟아서 그 길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합니다. 저도 다른 종교인들, 사회 인사들과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활동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정성껏 기도하면서 뜻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어서 부처님은 사회적인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그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사회적인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에 대한 여러 사례가 있는 중에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부처님과 아난 존자와 제자들이 갔는데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는데 조금 있으니까 걸식을 해도 아무런 공양을 주지 않고 법문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왕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 마라. 법문도 들으러 가지 마라’ 이렇게 국민들에게 지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 존자가 상심을 해서 부처님께 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 다른 나라로 갑시다. 다른 나라에는 부처님을 환영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네가 말한 대로 다른 나라로 갔는데 그 사람들도 만약 환영을 하지 않으면 어떡할래?”nbsp“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nbsp“그런데 그 사람들도 만약 환영을 하지 않으면 어떡할래?”“그럼 또 다른 나라로 가죠. 뭐”nbspnbsp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습니다.nbspnbsp“네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쫓겨 다니니?”nbspnbspnbsp이 모습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그런 현실은 받아들이되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것은 그들의 사정이고, 나는 공양을 안 주면 안 먹고 살고, 법문을 들으러 오지 않으면 법문을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그 경계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이 바르다면 여러 가지 역풍이 불 수도 있고 비난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냥 묵묵히 갈 뿐입니다. 불교대학생이 많이 입학하면 많이 입학한 대로 좋고, 적게 입학하면 적게 입학한 대로 좋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데 그래서 국민들이 호응하면 좋지만 설사 비난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묵묵히 갈 뿐입니다.”nbspnbsp부처님이 걸어가셨던 그 당당한 위용이 오롯이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우리들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표본으로 부처님의 사례를 상기키셔 준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 전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친견하면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몇 일 전에 불심 도문 큰스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은 제가 하고 사람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큰스님께서 불보살과 천지 신명의 가피를 좀 모아주십사 부탁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이런 저런 우려점들을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그러셨어요.nbsp“바람이 불지 않기를 원하는구나...”nbspnbspnbsp‘바람은 마땅히 부는 거야. 우려한다는 것은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 바람이란 건 본래 부는 거야. 또 바람이 불어야 곡식도 익고 시원해지고 잘 되는 거야’ 이런 말씀이죠. 바람이란 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죠. 때로는 우리가 태풍에 휩쓸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만 또 태풍이 불어야 여러 환경적인 오염 물질들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 녹조니 적조니 난리인데 태풍이 한번 와야 해소가 됩니다. 한쪽에서는 태풍이 큰 재앙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태풍 만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요인이예요.nbspnbsp그렇기 때문에 큰스님께서 ‘바람이 안 불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그러셨어요. 이것은 ‘바람이란 부는 거야. 마땅히 부는 줄 알고 해야 한다. 그러니 역풍에 대해서 너무 우려하지 마라.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역풍은 늘 있기 마련이다. 큰 뜻을 세웠으면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뭘 그런 것 같고 걱정하느냐’ 하는 격려의 말씀이였고 또 지침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이렇게 서원행자들이 모여서 큰 발원을 했으니까 이 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는 평화와 통일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을 앞으로 3년을 내다보고 차근 차근 밟아 나가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에 혹시 상충되는 것이 있다면 나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우리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정토회의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원행자들이 딱 한 마음이 되어서 추진을 해나간다면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nbsp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는 스님의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은 이제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묵직한 무게감과 사명감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스님은 항상 우리들을 추종자가 아니라 주체자로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긴 시간 동안 애정을 갖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스님께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nbspnbspnbspnbsp이어서 사홍서원을 끝으로 서원행자대회를 모두 마친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을 마치고 대중들은 문경수련원에서 나눠주는 가래떡을 입에 물고 통일에 대한 큰 원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업무를 보다가 저녁 7시 30분부터는 대웅전으로 올라가 7기 행자대학원 졸업생들을 위해 졸업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현재 문경수련원에 상주하고 있는 모든 행자들이 함께 자리하고, 마침 서원행자대회에 참석한 법사단도 전원 참석해 어느 때보다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nbspnbsp▲ 졸업식이 열린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nbsp행자대학원 7기는 2012년 9월에 8명이 입재하였고, 1학년 과정에서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이라는 학기 목표에 맞춰 봉화수련원에서 생태 주택을 지었으며, 2학년 과정에서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서울에서 평화재단과 문화사업부, JTS, 에코붓다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회운동 경험을 쌓았으며, 3학년 과정에서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위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인도JTS에서 마을개발,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운영 파트에서 구호활동 경험을 쌓고 다시 문경수련원으로 돌아와 살림팀, 행자원, 불사팀에서 각각 근무하며 보살의 삶과 미래 문명에 대해 학습 했습니다.nbspnbsp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8명에서 3명으로 줄긴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끝까지 과정을 수료한 3명에게 대중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 행자대학원 7기 졸업생 민도연, 박연화, 정윤미 행자님nbsp이어서 3년 동안의 방대한 교육 과정을 원만히 마친 졸업생들을 위해 묘수 법사님의 축하 말씀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세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면서 우리도 한번 새롭게 마음을 내고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공부해 나갈 것을 발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보디사트바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정토 세상이 실현될 때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도반이 생기게 되어 감격스럽고 기쁩니다.”nbsp이어서 행자님들을 가까이에서 지도한 유수 스님의 인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었고, 매일 매일 법륜 스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계셔서 오늘의 졸업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년이라는 수많은 난관 끝에 오늘이기에 더욱 감동스럽고 기쁜 것 같습니다.”nbsp이어서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한 11기 행자대학원 후배님들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11기 행자님들은 대중가요인 ‘땡벌’을 개사해서 재미난 율동을 보여주어 대중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토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 업식을 넘어 정토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갈거야 ♬’ nbspnbsp이어서 졸업생 3명을 대표해 박연화 행자님이 지난 3년간 수행을 지도해준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문경 수련원에서 꺾은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행자님들의 정성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더욱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nbspnbspnbsp졸업생 3명과 더불어 함께 자리한 모든 행자님들이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께 법문을 청했고, 스님은 애정을 담아 소중한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오늘 졸업을 하는 7기 행자대학원 박연화, 정윤미, 민도연 행자님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많은 행자님들이 함께 자리해주셔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nbsp이제 여러분들은 행자대학원을 졸업하고 정토회의 일선 활동에 배치가 됩니다. 그것이 문경수련원이든 서울의 어느 파트이든 인도나 필리핀의 해외 활동이든 정토회에서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 필요에 맞게 요구에 수순해서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활동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질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정토회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이것이 먼저 방침이 서야 합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괴롭게 인생을 살 것인가, 행복하게 인생을 살 것인가.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이것이 첫 번째 과제로 주어지게 됩니다.nbspnbsp모든 사람들이 다 당연히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현실을 보면 그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괴롭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였을 거예요. 처음에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억울하고 분한 일이겠지만 누구도 괴롭게 살아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nbspnbspnbsp왜 그럴까요? 이것이 전도몽상입니다. 순간 순간 내가 선택한 것이 내 본래 의도와는 다른 선택이 된 것입니다. 건강한 몸을 원한다면 건강해지도록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에 이로운 음식을 선택하지 않고 몸에 해로운 음식을 선택합니다. 몸에 이로울 만큼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울 만큼 먹습니다. 몸에 이로울 때를 선택해서 먹지 않고 몸에 해로울 때를 선택해서 먹습니다. 먹고 싶다, 많이 먹고 싶다, 지금 먹고 싶다 하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서 결과는 그 정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나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의 책임입니다.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nbspnbsp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요? 만약 괴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면 성질대로 살아도 됩니다. 화내고 짜증내고 욕망을 쫓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고 주인으로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한다면 욕망을 쫓아서는 안 됩니다. 천하가 다 그렇게 살아도 나는 거기에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니까 그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 스님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는 행자대학원 7기 졸업생들nbsp어떤 선택을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수행자라고 할 때는 부처님께서 실제로 다 경험해 보시고 ‘이것은 아니다’ 하면서 ‘진정으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은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너무 먼 얘기여서 잘 안 믿어지면 가까이에 있는 선배들로부터 확인해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자기 경험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해보고 자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인생은 괴로운 인생입니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거나 나를 위해 남을 손해 끼치는 인생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이 지속가능하려면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인생이면서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생, 이것이 보살의 삶입니다.nbspnbsp이렇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먼저 정해지면, 그 다음에 정토회를 한번 살펴보는 겁니다. 그랬더니 ‘바로 정토회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이구나.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네’ 이렇게 해서 정토회를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좋은 곳이라고 정해놓고 거기에 내 인생을 옭아매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먼저 딱 잡히고 그런 삶을 어디에서 살까 살펴보니 ‘정토회가 합당하네’ 이렇게 해서 정토회에 들어와야 하는 겁니다. 내가 정토회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길을 여기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으니까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토회의 주인이 됩니다. 혼자서 하려면 힘든 일인데 이미 사람들이 모여서 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nbspnbspnbsp그렇지 않고 ‘내가 정토회를 위해서 헌신한다’ 고 생각하면 정토회에서 좀 살다가 인정을 안 해주고 고맙다고 안 해주면 섭섭해져서 마음이 틀어집니다. 그리고 막상 와서 있어보니까 ‘선배는 그렇게 안 사네. 말로는 해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안 사네’ 한다면 속았다고 생각하고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주인이 되면 ‘너는 왜 그렇게 안 사니?’ 하면서 내가 현실을 고쳐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오면 올수록 정토회는 나날이 발전하게 되는 겁니다. 선배들이 좀 부족해도 후배들이 자꾸 자꾸 좋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똥차들은 밀려나가고 자꾸 자꾸 좋아지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 딱 잡혀야 합니다.nbspnbsp이제 여러분들이 선택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못합니다. 내가 생각해봐도 이 길이 옳으면 내가 선택해서 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느날 보니까 스님이 엉뚱한 길을 가려고 한다면 나는 스님을 제껴버리고 나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스님한테 속았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하신 겁니다. 법륜 스님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륜 스님이 말하는 그 법의 방향이 옳다면 나는 그 길을 가는 겁니다. 가다가 스님이 안 가면 ‘당신은 빠지시오’ 하고 나는 그 길을 계속 가는 겁니다.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자꾸 미혹이 생기고, 속았다고 하는 사이비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면 왜 속았을까요? 자기 속에 욕망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런 미혹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nbspnbsp이런 입장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도 자꾸 껄떡거리는 것이 있고 미련이 남는다면,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고 다시 기어오르기도 하면서 자꾸 실험을 해봐야 합니다. 이것을 선에서는 ‘보림’이라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활동을 하면서 계속 수행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치를 더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치는 이것 한가지 밖에 없어요. 남은 것은 끊임없이 이 이치가 온전하게 나의 삶이 되도록 경험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면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해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해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을 마치고 세상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다 구해놓고 나를 완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 길에서 나도 완성하고 세상에도 득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가기 때문에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여러분들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nbsp이 방향성을 딱 잡은 것이 가장 큰 졸업 선물입니다. 이 방향 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속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을 하는 장소는 어느 곳이든 상관 없어요. 농사 짓는 일이 주어지면 농사 짓는 것으로 연습하고, 혼자 있으라고 하면 혼자 있으면서 외로움을 극복하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라고 하면 갈등 극복을 연습하고, 서울에서 술집들이 즐비한 곳에서 일하라고 하면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고, 이렇게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연습을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마음과 생각이 이것 하라고 하면 저것 하고 싶고, 일찍 일어나라고 하니까 늦게 일어나고 싶고, 이렇게 계속 부정적 반응이 일어나니까 피곤해지는 겁니다. 피곤하니까 애궂은 밥만 많이 먹게 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그래서 툭 놓아 버려야 합니다. 피곤해도 일어나고, 1시간만 자고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아, 몸이란 건 이런 성질도 있네’ 하면서 공부를 해가는 겁니다. 이렇게 경험을 해나가면 밥을 좀 못 먹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고, 하루 쯤 못 자도 불평이나 두려움은 없어지고, 1시간 밖에 못 자도 견딜 수 있고, 이렇게 몸이란 것은 적응을 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는 겁니다.”nbsp이제 방향성을 잡았으니 앞으로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한 졸업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화두로 삼아서 다시 출발하는 마음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졸업생 3명에게 그동안 수행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스님께 질문할 수 있는 즉문즉설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한 분은 대중생활을 하다보니 사람을 못 믿는 면이 있다는 것이 살펴졌다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분은 항상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면이 많은 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물었고, 한 분은 성격이 급하고 일이 뜻대로 안될 때 화가 많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시 참석한 행자님들 전체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 행자님은 뉴스를 보니까 지금 남한 정부는 북한이 붕괴되기를 기다리면서 흡수 통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스님은 어떻게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법회는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행자님들은 늦은 시간까지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다음은 스님으로부터 졸업장 수여가 있었습니다. 한명씩 앞으로 나와 졸업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지난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지 졸업생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한명 한명 호명되어 앞으로 나올 때마다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7기 졸업생들이 지난 3년 동안 수행 정진할 수 있도록 해준 대중들의 보살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올린 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을 마쳤습니다.nbspnbsp스님은 졸업생들과 행자님들 전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어서 졸업생들 한명 한명과도 개별적으로 기념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졸업식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 밤 12시가 다 되어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 스님은 아침 비행기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신한촌을 방문한 후 26일에 귀국할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4. 31,204 읽음 댓글 27개

2015.8.22 서원행자대회 1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치며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에 임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한 후 이어서 서원행자대회를 시작하며 ‘서원행자의 역할’에 대해 입재 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스님은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한 정토행자들과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 대강당에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nbsp기도 후에는 원고 교정 업무와 보고서들을 점검하고 살펴보다가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했습니다.nbspnbsp대의원 회의에서 스님은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대의원들의 발표 내용와 토론 내용을 경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각 사안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nbspnbsp▲ 전국 대의원 회의nbsp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의 만족도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교과 과정의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 스님께서 좋은 의견들을 많이 나누어 주셔서 더욱 풍성한 회의가 되었습니다.nbspnbsp“개인 사정으로 불교대학을 그만 둔 사람과 우리들의 관리 부족으로 불교대학을 그만 둔 사람이 있는데,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개인 사정이란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조금 더 친절하게 응대해 주면 개인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를 넘어가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개인 사정을 우리가 개선해 줄 수는 없지만 어려울 때 전화 한 통을 해준다든지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해 준다든지 해서 스스로 재도전을 할 수 있게 격려 같은 것이 있어 주면 좋겠습니다. 그만 둔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개인 사정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전화를 할 때도 이런 사정에 대한 격려나 위로를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개선할 소지가 있겠죠.nbspnbspnbsp그리고 정토회에서의 관리 부족으로 그만 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개선을 해도 또 다른 불만이 생길 수 있어서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각각의 3가 10개 모여서 30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비록 소수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 이유 하나로 그만두지는 않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불만이 쌓이면 중간에 그만둘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불만이 제기된 부분 부분들을 조금씩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연구되어야 할 것 같아요. nbspnbsp만약 좌식이 불편하다면 전체적으로는 개선할 수 없지만 좌식을 기본적으로 하되 허리가 아프다든지 나이가 많은 사람 한 두 명에게는 뒷좌석에 의자를 배치해주는 것을 특별히 양해를 해준다든지 하는 것을 논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강의 시간이 길다는 것에 대해서는 소수의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 해결에 집중을 할 것인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90분 강의를 45분 강의 후에는 5분 정도를 쉬고 환기를 시킨 다음 다시 나머지 45분 강의를 볼 수 있도록 영상 편집을 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교재 편집이 부족한 것은 그만두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지도를 넣는다든지 도표를 넣는다든지 오자를 개선한다든지 책 편집을 깔끔하게 해서 책처럼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죠.nbspnbsp학사 안내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세 번 네 번 강조를 해도 현장에서는 왜 제대로 안내를 해주지 않았냐고 항의하는 문제가 늘 생깁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조금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12라도 개선이 될 것입니다. 또 교과 과정이 매번 바뀔 때 마다 전체 교과에 대해 설명해 준 후 이번 교과에 대해 안내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불교대학은 지식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행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즉문즉설과는 달리 조금의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해서 이론 공부를 하지만 교과 과정은 전체 수업의 절반에 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직접 수행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안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체험 프로그램이 바로 봉사와 마음나누기, 수련입니다.nbspnbsp불교대학에 입학한 사람은 졸업하기 전까지는 일단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 지적 충족만 하든지 괴로움을 덜든지 간에 그 사람의 요구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적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대학생은 무조건 모금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모금이나 봉사활동이 불법을 체험해보는 수업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안내되지 못하니까 봉사활동이 부담으로 다가가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nbspnbsp불교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불교대학을 졸업하려면 이론적인 측면에서 수업의 70는 들어야 졸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70가 안 되어서 졸업을 못하게 되면 오계 수계는 받지 못하지만 다녔다는 수료증은 주는 것이 필요한지 검토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70 출석이 안 되어도 끝까지 다니도록 안내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적어도 수료는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리고 영상 강의로 인해 질의응답과 같은 피드백이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과제인데요. 질문을 받아서 매번 강의 때 마다 답변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검토를 해보니까 현재의 교과 과정도 내용이 많아서 시간을 줄여달라고 난리인데 또 10분 강의가 더 들어가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다른 날 하루를 더 배정해서 질의응답만 받아서 특강을 하면 어떤가 했는데 하루 더 나오는 건 또 힘들다고 해요. 질의응답을 하고 싶어하는 요구가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더 내는 것은 다들 부담스러워 하거든요. 결국 해결책은 교과 과정을 팍 줄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불평은 없어지지만 교과를 다 소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불교대학을 왜 하는가 싶거든요. 이미 불교 변천사 부분은 상당 부분 내용을 뺀 상태이고요.nbspnbspnbsp그래서 지금의 교과 과정을 1년 안에 모두 소화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실천적 불교사상과 불교 예절 부분만 빼서 6개월 짜리 예비 과정을 먼저 하고, 나머지 세 과목으로 조금 여유있게 1년 동안 본과정을 배치해서 예비 과정과 본과정을 나누면 어떤지 하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경전반까지 포함하면 3년을 다녀야 하는 문제가 또 생깁니다.nbspnbsp이렇게 대중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는 대강 파악을 했으니까 거기에 따라서 대중들을 대변하는 대의원회와 실무를 맡고 있는 행정처의 불대 담당자들, 교과의 원래 목적 달성을 주관하는 법사단 이 삼자가 모여서 개선책을 마련해 보면 좋겠습니다.”nbsp불교대학 운영 개선 방안에 대해 좋은 의견들이 많이 제안되었는데 마침 불교대학의 학장이신 스님께서 회의에 참석해서 더욱 깊이 있는 토론이 전개될 수 있었습니다. 대의원 회의에서는 불교대학 운영 개선안을 마련할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 지었습니다.nbspnbsp또 스님은 회의가 너무 지엽적인 것에 대한 토론으로 정체가 되고 있을 때마다 다음 안건으로 신속히 넘어갈 수 있도록 환기를 시켜주어서 자칫하면 예정된 시간에 마치지 못할 뻔 한 상황을 미연에 막아 주었습니다.nbspnbsp전국 대의원 회의는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모든 안건 토의를 마쳤습니다. 전국 대의원 회의의 의장인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은 간단한 인사 말씀을 통해 오늘 회의를 위해 수고한 모든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전국 대의원 회의 의장인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nbsp“이번 전국 대의원 회의는 문서의 오류나 단순 수정을 뛰어 넘어서 전체 사업 방향에 대한 토론 중심으로 나아간 것 같습니다. 활발하게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대의원 여러분들의 수준이 정말 많이 올라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마음이 되어서 회의를 잘 마친 것에 대해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그러면서 대표님은 미숙한 진행에 대해 거듭 양해 말씀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회의를 이끌어준 대표님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법상에 올라가 1박 2일 동안의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무리 하는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라고 격려한 후 정토회의 의결 방식으로 만장일치 방식의 삼의제를 채택한 이유와 그 방법, 중앙에서 지부와 지역으로 점점 분권화를 해나가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 정토회의 미래를 총괄 기획하는 역할의 필요성 등에 대해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전국 대의원 회의 회향 법문nbsp그 중에서 전국 대의원 회의가 끝나자마다 곧이어 서원행자대회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가 결의한 것은 서원행자들에게 모두 공유가 되어서 서원행자대회에서 크게 문제 제기가 없다면 이대로 통과하면 되지만 문제 제기 된 내용이 합당하다면 대의원 회의의 내용을 수정해서 그 부분까지 수용해서 최종적으로 대의원 회의에서 다시 결의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들은 명예 대의원이라는 점을 여러분들 스스로가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서원행자들 모두가 다 모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대표해서 먼저 우리가 모여서 회의를 하지만 회의 결과는 서원행자들과 공유를 해서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를 반드시 대의원 회의 뒤에 바로 이어서 하도록 한 것입니다.nbspnbspnbsp우리의 결정이 소수의 결정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비록 준비는 소수가 하더라도 공유의 폭은 가능하면 서원행자들까지 넓혀야 합니다. 정회원 전체까지 공유를 하면 좋지만 정회원은 그 수가 너무 많으니까 전체가 다 모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도록 해서 다시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원행자대회 이후에는 반드시 지역별로 정회원 보고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행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면 이제 서원행자대회도 전국적인 모임을 할 수가 없고 지부별로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그 규모에 따라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완성된 조직이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서원행자들을 명예 대의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에 대의원들 모두 공감을 표현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활동의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번 전국 대의원 회의에서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1000일 기도를 오는 8월 27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1000일 기도를 하는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옛날에는 절에서 큰 불사를 할 때 수행자는 참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때는 불교가 탄압을 받아서 보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직접 절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절을 지으려면 수행을 못 하게 되고, 수행을 하려면 절을 못 짓고 움막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체를 대신해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는 전부 목수처럼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수 일을 계속 하다 보면 나중에 스스로가 목수인 줄 착각하게 되고 3년이 지나면 그냥 목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목수가 아니고 수행자인데 잠시 목수 일을 할 뿐이다’ 하는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한 사람은 법당에서 계속 목탁을 치고 기도만 하도록 했습니다. 즉 ‘불사가 필요하니 목수 일을 하되 이것은 일이 아니라 수행이다’ 하는 자세를 유지시키는 것이 기도를 하는 첫 번째 목적입니다. 기도를 하면 부처님이 돌봐준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예요.nbspnbspnbsp그것처럼 앞으로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사회 활동들을 해나가려면 마치 운동가나 정치인이 된 것처럼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럴 때 수행자라는 본분을 잊어버리기 쉬워요. 일을 잘 하려고 하다 보니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욕심도 내게 됩니다. 그래서 법당에서는 늘 한 사람이 24시간 기도를 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는 수행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즉 수행자임을 놓쳐버리고 일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두 번째 목적은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잘 안 되면 물러서기가 쉬워서 우리의 원이 성취될 때까지 그 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을 염불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각하기 위함입니다.nbspnbsp세 번째 목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어서 사람의 힘을 넘어서는 일을 해나가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의미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nbspnbsp기도의 목적이 이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기도만 하는 것은 마치 절을 지으면서 아무도 절은 안 짓고 전부 다 법당에서 기도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체가 다 일꾼이 될 때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전체가 다 기도만 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을 따로 둘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이 중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를 할수록 현실에서의 실천을 더욱 많이 해내야 합니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nbspnbsp특히 사회적 활동을 하다보면 반드시 분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를 딱 하고 있으면 분란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고 있다’는 관점이 명확히 잡혀야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을 넘어설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전부 자신들의 이해 관계로 돌아가서 난장판이 되어 버립니다.nbspnbspnbsp1000일 기도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기적을 한번 만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기적을 만든 경험이 많았습니다. 17년 전에는 북한동포돕기 100만인 서명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 때 정토회는 현재의 한 지역 정토회 규모였습니다. 적은 인원이였지만 목욕탕으로 해수욕장으로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서명을 받아서 100만인 서명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런 기적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인도적 지원을 이끌어내서 북한의 대량 아사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도에 1000일 기도를 하면서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기적이 일어났었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딱 집중해서 마음을 모아 한다면 또 한번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기적이라는 것은 원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기적을 만들자는 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회의한 내용들이 앞으로 잘 실행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왜 1000일 기도를 해야 하는지 스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토회는 2015년 8월 27일부터 2018년 5월 22일까지 1000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를 이어나가기로 한 마음 한 뜻을 모았습니다. 1000일 기도를 하는 와중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대의원들과 행정처 임원들 간의 역할 분담과 화합에 대해 강조를 하면서 전국 대의원 회의의 회향 법문을 마무리 했습니다. nbspnbsp“대의원들은 앞서 나가서 일반 대중들을 이 운동으로 마음을 모아주는 선각자의 역할도 해야 하고, 또한 대중들의 애로를 수용해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애로를 수용하는 역할이 너무 지나치면 대중의 뜻을 핑계 삼아 계속 불평하는 사람이 되기 쉽고, 앞서 가는 사람이 되라고 하니까 대중의 뜻은 안 받아주고 늘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대의원은 서원행자로서 정토회의 비전을 향해 앞장 서는 선각자가 되어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못 따라오는 대중들을 늘 편안하게 감싸안고 수용해주며 대중들의 의사를 대변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반면 행정처는 일단 정토회의 사업 방향이 결정되면 부작용이 좀 생기더라도 밀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대중들의 눈치만 보면 행정처가 힘이 없어집니다. 대신 그 부작용은 대의원들이 감싸 주어야 하고요. 이렇게 역할 분담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셔서 정토회가 발전될 수 있게 마음을 잘 모아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대의원들과 행정처 임원들 간의 역할 분담을 강조한 대목을 명심하면서 큰 박수와 함께 회향 법문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사홍서원을 끝으로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무리 한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전국 대의원 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전국에서 서원행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는 서원행자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을 시작으로 서원행자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서원행자대회 입재식nbsp서원행자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께 법문을 청했고, 스님은 먼 길을 달려온 서원행자들을 위해 애정을 가득 담아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정토회의 가장 핵심 주체가 바로 서원행자임을 강조하면서 정토회의 설립 목표가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어제와 오늘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대의원들이 지난 상반기 동안 정토회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앞으로 남은 하반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주어진 과제들에 대해서 많은 의논을 했습니다. 300명이 모여서 다 회의를 하면 효율적이지 못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100여명이 모여서 먼저 초안을 만들었고, 오늘은 다같이 모여서 그 의논된 결과를 보고 받고 수정할 것이 있으면 수정하고, 수정할 것이 없으면 우리가 동의해 주고, 그 외에도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의견을 내어서 함께 다중의 의견을 모아가고자 이렇게 서원행자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의 가장 핵심 주체는 서원행자입니다. 이 땅에 정토 세상을 이루겠다고 원을 세우고 맹서한 사람이 바로 서원행자입니다. 이 서원행자들 중에서 대의원도 나오고 총무도 나오고 지부장도 나오고 국장도 나오는 것입니다. 서원행자는 정토회의 임원들입니다. 정토회는 스님과 신도가 따로 없고 ‘수행자’라고 하는 한 부류만 있습니다. 그 수행자들 중에 더욱 책임의식을 갖는 사람들의 순서로 결사행자, 서원행자, 발심행자가 있는 것입니다.nbspnbsp오늘 우리 서원행자들은 정토회의 설립 목표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 목표는 내 자신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괴롭지 않고 행복하며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구보리, 즉 성불의 길입니다. 우선 개인이 행복해야 정토라고 할 수 있지 개인이 불행한데 정토라고 할 수 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 나만 행복하면 정토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자연은 아름답고 사회는 평화로워서 자기가 미쳐서 괴로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우리가 사는 이 조건은 살만한 세상인 것을 우리는 정토라고 말합니다. 즉 자연 환경이 파괴되지 않고,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 경쟁 없이 서로 돕고, 그 속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세상을 정토라고 합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오늘 뉴스에 보도된 일촉즉발의 남북 간 군사적 충돌 위협을 언급하면서 정토회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무엇보다 다급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의 중요한 설립 목표 중에 하나가 바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이뤄내는 것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뉴스를 보셨습니까? 북한에서 오늘 5시까지 남한이 대북 비방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갈수록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유지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제가 누누이 이야기했죠.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정세가 패권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편 가르기 할 때 우리는 어느 한 쪽 편에 붙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쪽에 붙으면 저쪽이 보복하려고 하고, 저쪽에 붙으면 이쪽이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처지가 난감해지고 어느 쪽을 선택해도 편안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로부터 벗어나서 우리의 자율권을 높이고 평화를 가져오려면 결국 통일을 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두 세력이 짜 놓은 판에 끼여서 우리가 분할이 되고 그들이 충돌하는 지대가 우리 땅이 되어서는 안 되고, 통일을 해서 자주적으로 갈등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가 이 지역 분쟁의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인해서 동북아 지대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상황의 종속 변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상수가 되어야 합니다. 종속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전쟁이 막연한 위협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실한 자아를 되찾도록 해주는 새로운 불교 운동만 만일결사의 목표가 아니라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통일을 이뤄내는 것도 그 목표입니다. 통일 만이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nbsp nbspnbsp정토회를 발전시키는 것도 물론 큰 일입니다. 왜냐하면 정토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곧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의 큰 원동력이 되니까요. 그러나 앞으로의 3년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느냐, 전쟁의 위험 속에 늘 전전긍긍하는 속에 살 것인가, 70년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갈 것이냐, 과거의 원한을 청산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원한을 더 깊게 하면서 적대적으로 갈 것이냐, 그래서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전락할 것이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 정토행자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에서 밥 얻어 먹고 은혜 입은 공덕을 갚고자 이 겨레의 주어진 과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우리가 앞장 서자는 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1000일 기도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앞으로 3년 동안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헌신하고 은혜를 좀 갚고자 합니다. 우리 힘만 갖고는 안 되니까 불보살님의 가피와 천지 신명의 가피를 입고 조상의 은덕도 입어야 하기 때문에 한쪽으로는 정성껏 기도를 하고, 한쪽으로는 열심히 활동을 해보고자 합니다.”nbspnbsp스님은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는데, 최근 남북 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을 보니 스님의 말씀이 정말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왜 스님께서 1000일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지 그제서야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시대적 과제를 향해 최선을 다하되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바로 공덕이 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그렇게 최선을 다하되 이 일을 좀 즐겁게 해야 합니다. 온갖 인상을 찌푸리고 괴로워하면서 하지 말고요. 대중들이 불교대학을 안 나오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불교대학 담당자가 너무 인상을 쓰고 괴로워해서라고 해요. 너무 인상을 써서 겁이 나서 절에 나오기 어렵다는 겁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인상을 썼겠어요. 여러분들이 헌신적이라는 점은 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어 하면서 이 일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몸이 좀 힘들더라도 얼굴은 좀 펴고 기쁜 마음으로 하셨으면 해요. 우리가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보니까 온갖 인상을 찡그리면서 억지로 참으면서 합니다. 이렇게 참으면서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렇게 참으면 공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참으면 공덕이 하나도 없습니다. nbspnbspnbsp생글 생글 웃으면서 일하는 그것이 바로 큰 복이고 공덕입니다. 그러나 초보자들 중에는 온갖 인상을 쓰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서원행자 여러분들이 그 분들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힘들지요?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얼굴 활짝 펴고 같이 합시다’ 이렇게 격려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nbspnbsp서원행자 한 명은 발심행자 열 명을 격려하고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발심행자 한 명은 불교대학생 열 명을 또 격려하고 위로해 주어야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서로 인사도 나누고 얘기도 나누고 사업 보고도 받고 하면서 우리들의 이 원을 성취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나가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nbsp주위에 힘들어하는 도반들을 함께 챙겨가는 서원행자가 되어달라는 당부의 말씀에 모두 그렇게 하겠다는 뜻으로 뜨거운 박수 갈채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저녁 공양 시간을 가진 후 7시부터는 전국에서 어떤 서원행자들이 모였는지 각 지부별로 나와서 소개를 하고 장기자랑도 보여주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지부별로 대중 가요를 재미있게 개사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재미난 율동을 보여주어서 배꼽을 잡으며 계속 웃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지부별 소개 및 장기자랑 시간nbsp특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장기자랑 속에는 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통일을 주제로 재미있게 율동과 노래를 보여주었는데 가사가 주는 간절함과 대중들의 어설픈 몸짓이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했습니다.nbspnbspnbsp지부별 소개 시간과 장기자랑은 밤 9시가 다 되어 끝났습니다. 이어서 사회활동위원회 산하 각 단체들의 상반기 사업보고와 하반기 사업계획 발표가 있었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의 농사, 수련, 교육 활동, JTS의 해외 구호활동, 좋은벗들의 새터민 지원 사업, 에코붓다의 환경 운동, 평화재단의 통일 운동에 대해 자세히 보고를 받으면서 현재 어떤 사회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컨텐츠를 제작하는 부서들을 통합하여 컨텐츠사업국이 신설되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보고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사회활동위원회 사업 보고 및 발표 시간nbsp사회활동위원회의 보고와 발표를 모두 마치니 밤 10가 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의 발표로 모두들 피곤했는지 질의응답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내일 더욱더 활발한 토론을 기약하며 서원행자대회 1일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서원행자대회 2일째를 맞이하여 전국 대의원 회의의 의결사항에 대해 공유를 받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모둠별 토론 시간을 통해 정토회의 하반기 사업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토론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스님은 서원행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회향 법문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명쾌한 강의를 통해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와 불교에 대해 쉽고 체계적으로 배워보세요. 2015년 정토불교대학 가을 학기가 전국 114개 지역과 해외 33개 지역에서 동시 개강합니다.nbsp nbsp nbsp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는 분들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2015.08.23. 39,493 읽음 댓글 2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