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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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5 (오전) 성남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성남시청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고, 저녁에는 한양대 ERICA 캠퍼스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성남 즉문즉설 강연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nbsp아침 7시에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조찬 모임을 가진 후 9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성남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어젯밤에도 미국에서 귀국한 시차 적응 때문에 밤을 샌 스님은 차를 타자 마자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 성남시청nbsp성남시청에 도착하자 이재명 성남시장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시장님이 목 기브스를 하고 안대를 차고 나타나자 스님은 “신문에서 소식은 들었는데 많이 다쳤나 보네요” 라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시장님은 “동 체육대회를 방문했다가 승진 누락에 불만을 품은 시청 직원으로부터 피습 봉변을 당했다” 며 “몰골이 이래서 강연장까지 배웅을 못해줘서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nbspnbsp▲ 이재명 성남시장님nbsp스님과 시장님은 예산 절약을 통한 복지 혜택 확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청년 지원 정책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10시 30분이 다 되어 시장님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2015년 하반기 첫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열렸습니다. 일찍 서둘러 오신 분 중에는 책 판매 부스와 환경상품 부스, 또 JTS부스가 차려진 곳을 둘러보며 스님의 책을 미리 구매하시는 분, 환경상품을 구매하시 분들이 많았고 봉사자들은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0분 전에 좌석은 가득 메워졌고, 늦게 온 분들은 계단에 앉은 가운데 900여명의 환호와 박수 속에서 성남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 올라온 스님은 먼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며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지금 대부분 괴로운 이유는 매사에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물론 부정적 사고를 할 때도 있지만 여러분보다는 긍정적 사고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nbspnbspnbsp혼자 사는 걸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이가 63살인데도 아직 장가도 못 가보고...’ 이러면 부정적 사고예요. 그런데 중이 된 입장에서 보면 63살 될 때까지 장가를 안 간 것은 잘 한 거예요. 게다가 키울 자식이 있나, 바가지 긁는 마누라가 있나, 홀가분하죠. 결혼이나 자식 키우는 것 때문에 힘든 문제로 여러분과 상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혼자 더 잘 살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아이고, 나는 정말 잘 선택했다’ 하는 거예요. nbspnbsp그런데 개개인은 그렇게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하지만,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해요. 제가 한 사람한텐 만원을 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10만원 줬다고 해 봅시다. ‘왜 저한테는 적게 주고 저 사람한테는 많이 줍니까?’ 이렇게 항의를 할 때 제가 ‘공짜로 주는데 주는 대로 받을 것이지, 시끄럽다. 얼마를 주든 그건 내 마음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돼요. 인간의 심리가 이렇게 작용하니까 베푸는 사람은 아주 똑같이는 못 주더라도 가능한 한 격차를 줄여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것은 절대적 빈곤이에요. 내가 만원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10만원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 빈곤이에요. 북한은 지금 절대적 빈곤이에요. 우리는 상대적 빈곤입니다. 지금 상대적 빈곤 때문에 여러분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거예요. 이런 것은 제도적으로 개선해 주어야 합니다.”nbsp긍정적 사고를 통해서 제도가 변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이 두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스님이 “현재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이고 그것도 20대 사망원인의 50가 자살이며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7위”라고 하자 대중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사물의 전모를 살펴볼 줄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즉문즉설이 어떤 원리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어떤 사물의 앞만 보고 ‘이렇다’ 주장했는데 제가 ‘뒤는 어때요?’ 하고 뒤도 보도록 해주고, 왼쪽을 보고 ‘어떻다’ 했는데 ‘오른쪽은 어때요?’ 하고, 위만 보고 뭐라고 하는데 ‘아래는 어때요?’ 했어요. 그래서 앞만 보던 것을 뒤와 옆과 위와 아래까지 다 봤어요.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본 거예요.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해요.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nbspnbspnbsp남편에게 불만이 가득했던 분이 저와 대화를 하는 중에 남편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나한테 돈 안 준다’는 한 면만 보고 부정적으로 봤는데, 이것도 보고 저것도 다 살펴보니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지지요. 제가 괴로움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가 통찰력이 생기니까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했으니 이혼하지 마라’ 하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살든지 말든지 자기 문제지, 혼자 사는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요. nbspnbspnbsp제가 해결책을 주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혜의 눈을 떠야 합니다. 지혜의 눈을 뜨려면 한쪽만 보지 말고 다른 쪽도 같이 봐야 합니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고,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고,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보면 ‘아, 이게 별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알게 돼요. 이 괴로움은 나로부터 생긴 거예요. 나의 무지, 나의 편견으로부터 생긴 겁니다.“nbsp한 면만 보지 말고 다른 면도 볼 줄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고 보니 모든 즉문즉설이 이런 관점에서 설해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nbspnbsp또 스님은 우리가 그러려니 하는 것에 무지가 있다고 하며 탐구를 해서 문제의 원인을 잘 살펴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탐구를 좀 해야 해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하는 분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볼 때는 좀 이상하잖아요. 남편이 말을 안 듣는 것은 이해가 돼요. 남의 집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낳고 키우면서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했잖아요. 그런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면 누구 문제일까요? nbspnbspnbsp정말로 따져보면 누구한테도 덤터기 씌울 수 없어요. 그런데 애 보고 ‘저희 할아버지 닮았다, 삼촌 닮았다’ 이럽니다. 탐구를 하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얼마 전 워싱턴 DC에서 기자들, 특파원들 하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하고 미국 문제며 미국 국내 정치적인 문제 같은 걸 주로 묻고 이야기하는데, 기자 중 한 사람이 유튜브에서 즉문즉설 동영상을 봤나 봐요. ‘스님은 결혼도 안 해보고 애도 안 키워봤는데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냥 조금 아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꿰뚫어 아시던데.’ 하고 물었어요. ‘스님이 저걸 어떻게 알까?’ 이렇게 묻는 뜻은 두 가지입니다. ‘저게 몰래 해 본 거 아닌가?’ 아니면 ‘저거 완전히 뻥 아니냐?’ nbspnbsp자기가 해보고 자기가 탐구해봤다면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더 잘 알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탐구를 안 해요. 탐구를 안 하는 건 인생이 게으르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인생에 게을러요. 자기에게 관심이 없어요. 남한테는 관심이 그렇게나 많으면서 자기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왜 이런 마음이 일어나지?’ 관심을 갖고 탐구를 해봐야 해요. 탐구를 하면 ‘아, 이래서 이랬구나. 그래서 미움이 생겼구나.’ 이렇게 원인이 밝혀져요. 그걸 딱 시정하면 해소되잖아요. 원인을 알았지만 당장 해결이 안 된다 해도 조금 연습을 하면 해결이 되고요.nbspnbsp그래서 수행은 탐구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탐구예요. 과학자처럼 아주 깊이 탐구하면 딱 원인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했어요. 그게 인과입니다. 불교의 핵심사상이 인과설입니다.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생겨요. 돈을 빌렸으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해요. 그걸 알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기는 쉽습니다. 돈을 빌렸다가 갚자니 힘들었다면 ‘다음부터는 빌리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딱 결론이 나니까 인생길이 열리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처님, 돈 좀 빌리게 해주세요. 그리고 안 갚아도 되도록 해주세요.’ 이러잖아요. 이것은 인과설과 완전히 어긋나요.nbspnbsp자기는 온갖 못된 짓을 해놓고 뭐라고 기도해요? ‘하나님, 죄는 다 용서해주시고 하늘로 보내주세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시비를 가려서 벌 주세요.’ 자기 건 다 눈감아주길 바라고 남은 없는 죄도 만들어주길 바래요. 자기 심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지금 봐야 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조금만 탐구하면 인생은 어렵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다람쥐 보면 잘 살잖아요. 다람쥐가 괴롭다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다람쥐보다 못해요. 다람쥐가 힘들어 해도 사람은 괜찮아야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죠. 얼마나 사람이 잘 못 살면 다람쥐며 산짐승이며 하늘의 새를 보고 ‘너는 좋겠다’ 하고 부러워 합니까? 탐구를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nbsp수행은 탐구이며 조금만 탐구하면 인생이 어렵지 않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nbspnbsp스님은 이렇게 여는 이야기 속에서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어 주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풍성한 이야기가 끝나고 대중들의 큰 박수소리와 함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즉문즉설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관계로 8명의 질문자 중 2명의 질문만 받았습니다.nbsp아버지 때문에 분노, 화, 짜증이 나에게 생긴 것 같아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힘들다는 40대 여성분, 장성한 자녀 둘이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결혼 시킬 수 있게 스님에게 기도문을 얻고 싶다는 어르신, 이렇게 2명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으로 힘들어하는 40대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할 때는 어두운 표정이었던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저는 맞벌이 부부이고, 초등학생인 딸이 둘 있고,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무섭고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더 싫어졌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아버지 때문에 제 성격이 이렇게 분노와 화, 짜증이 많아져서 괴롭다고 여겨져서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힘들어요. 감사기도, 참회기도를 하려고 해도 화만 나고 ‘자식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으니까 마음에 상처가 되고요. 부모를 좋게 생각해야 제 자존감이 높아져서 괴롭지 않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스님께 말씀 듣고 싶습니다.”nbsp“아버지가 어떻게 하는데요?”nbsp“옛날에는 화내고 혼내고 욕하고 그랬죠.”nbsp“지금은요?”nbsp“지금은 서로 말을 안 하니까...”nbsp“그럼 따로 살면 되잖아요.”nbspnbsp“따로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 때문에 내 성격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굉장히 원망스러워요. 그 원망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더라고요.”nbsp“그러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nbsp“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요?”nbsp“술을 자꾸 마시니까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면 술을 안 마시면 되고, 담배를 피우니까 폐가 안 좋아진다고 하면 담배를 안 피우면 되듯이, 그 생각을 해서 자꾸 괴로우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그게 재미있으니까 자꾸 보는 거예요. 약간의 고통이 있어야 쾌감을 느끼는 매저키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를 틀어서 괴롭다면 그 영화를 안 틀면 돼요. 아버지가 지금 화내는 것도 아닌데 옛날에 야단맞았던 기억을 지금 혼자서 영화처럼 계속 틀고 있는 거예요. 기억을 한다는 건 영상을 트는 거예요. 그만 틀면 됩니다. 봐서 슬프다면 안 봐야죠. 그런데 또 틀어놓고 보면서 또 울고, 저한테 와서 ‘그것만 보면 슬픈데요’ 이러고 있어요. ‘그러면 보지 마라’ 하니까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이러니까 저도 ‘그럼 봐라’ 이러죠. nbspnbspnbsp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난다면 이 생각이 딱 들 때, 그러니까 영화가 틀어질 때 ‘아, 이러면 또 괴로워지겠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영화를 꺼야죠. 내가 켜려고 해서 켜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켜진다 해도 보는 즉시 꺼버리면 되죠.“nbsp“그러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nbsp“영상을 꺼버리는데 원망할 게 뭐 있어요? 그걸 볼 때 원망하는 게 나오지, 아버지 생각을 안 하는데 왜 원망이 일어요? 그걸 굳이 보니까 화가 나는 거죠. 생각한다는 것은 영화를 틀어서 본다는 거예요. 틀어서 보니까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는데, 그걸 아예 틀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틀고 싶어서 트는 게 아니라 저절로 틀어지는데 어떡해요?’ 그러는데 틀어지는 즉시 딱 끄라는 거예요. 트는 건 내 마음대로 못 해도 틀어지는 즉시 끄는 건 할 수 있잖아요. 고개 딱 흔들어버리고 밖에 나가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든지 108배 절을 하든지 해서 그걸 끊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절하면서도 그걸 또 틀어서 보겠죠, 뭐. nbspnbspnbsp죽고 죽이는 영화도 재미있다고 자꾸 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울면서도 또 보고 울면서도 또 보잖아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상을 돌려놓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아버지가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괴롭혔다면, 그 영상을 지금 계속 틀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예요. 그러니까 영상을 끄세요. 자동으로 틀어져서 딱 보일 때마다 ‘어’ 하고 고개를 확 돌려버려서 생각을 바꾸세요. 벌떡 일어나든지 다른 걸 보든지 해서 생각을 바꾸면 돼요. 어렵지 않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렇게 자동으로 틀어질 때 끄는 방법은 영화 테이프는 그대로 두는 거예요. 가능하면 테이프를 지워버리는 게 더 좋겠죠. 그러면 안 틀어질 거 아니에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우선 아버지를 이해하는 거예요. 나를 야단칠 때 아버지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nbsp“30대 중반이요.”nbsp“질문자는 지금 나이가 얼마예요?”nbsp“45살이요.”nbsp“그럼 질문자보다 10살이나 어린 남자잖아요. 35살의 인간이란 건 내가 어릴 때 보면 굉장한 어른 같지만 커서 보면 완성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예요. 질문자 어머니는 어때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고분고분하고 잘 했어요? 어머니가 고집이 좀 셌어요?”nbsp“어머니는 굉장히 인자하신 편이세요...”nbsp“인자한데 어떻게 아버지가 화를 내겠어요, 아이고 참. 여자가 착해도 말을 했을 때 상냥하게 ‘네, 여보.’ 하지 않고 입 꾹 다문 채 대답을 안 하면 답답해서 성질이 나요. 질문자도 애 키워보면 그렇잖아요. 야단쳤을 때 대들어도 화가 나지만, 엄마가 뭐라 하는데도 아무런 대꾸를 않고 방에 팩 들어가 버리면 더 성질나잖아요. 그런 것처럼 35살 때의 아버지는 아직 인격도 덜 성숙했고 뭔가 사업이 안 풀리거나 부부 갈등이 있거나 해서 자기 성질을 부린 것 뿐이지, 질문자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거기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이제 다 컸으니 이해가 될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아이고, 뉘 집 아들인지 몰라도 결혼해서 그 나이에 참 힘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에요. 어리다는 건 어리석다는 이야기거든요.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해서 상처 입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이젠 다 컸으니 ‘아버지도 그때 참 힘들었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을까’하고 이해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nbsp다음은 감사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건 고맙잖아요. 법륜 스님은 질문자에게 화는 안 냈지만 질문자를 키워주진 않았잖아요. nbspnbspnbsp아버지는 화를 벌컥벌컥 내긴 했어도 재워주고 먹여주고 키워줬잖아요. 옛날 며느리들도 그래요. 맏며느리는 부모를 모시고 살지만 나머지 며느리는 명절 때만 오잖아요. 명절 때만 와서 하루 있다 가니까 시어머니한테 잘 해줘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걸 몰라요. 그래서 둘째, 셋째 며느리는 착하게 여기고 맏며느리는 욕합니다. 사실은 일상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불평도 좀 하고 성질도 좀 내지만 그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배우자가 성질 버럭버럭 내고 좀 골치 아파도 이혼하고 보면 그만한 인간이 없어요. nbspnbsp어떤 사람이 돈 벌어주고, 어떤 사람이 밥해주겠어요? 세상 일이 뭐든지 다 내 마음대로는 될 수가 없어요. 그걸 고치려 들지 말고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100퍼센트는 안 되지만 그래도 돈 벌어주는 사람, 밥 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잖아. 내가 아파서 병원 가면 걱정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키워준 사람이 성질은 좀 버럭거릴지언정 그 사람밖에 없단 말이에요. 법륜 스님은 겉으론 좋아보여도 질문자가 자라는 데 털끝 하나 보태준 게 없는데, 왜 그걸 다 보태준 아버지는 미워하고 해준 것도 없는 법륜 스님은 좋아해요? nbspnbsp영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때의 아버지 나이를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그때 참 힘들었나 보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를 키워줘서 감사하다’ 하고 고맙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화 안 내고 잘 해줬다면 더 좋았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다 내 원하는 대로 만은 안 돼요. 내 원하는 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살아 계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돌아가시고 나면 뭘 어떻게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수가 없잖아요. 살아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해드릴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 부모님 계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세요. 돌아가시면 또 후회합니다. 사람 심리가 희한해요. 있을 때는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없으면 또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불효자가 많이 운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죽은 뒤에 울지 말고, 살아 있을 때 고맙게 여기세요. 최소한 미워는 하지 말아야죠. 저는 효도하란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런데 미워는 하지 마세요. 부모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지 나한테 손해 끼친 게 없으니까요. 야단친 건 ‘야단은 쳤지만 먹여줬다’고 생각해야 해요. 질문자는 야단치고 먹여주는 사람이 나아요? 야단은 안 쳐도 굶겨 죽이는 사람이 나아요? nbspnbspnbsp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절을 하면서 ‘아, 아버지도 힘들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하나이고 ‘그래도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다’ 하고 감사하는 것이 둘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아져요. 그리고 자꾸 생각나면 생각날 때마다 빨리빨리 전원을 끄세요. 리모콘을 하나 사 줄까요?” nbsp“네, 고맙습니다.”nbsp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던 아버지는 그 당시엔 35살의 불완전한 사람이지 않았느냐’, ‘야단은 쳐도 먹여주고 키워주지 않았느냐’ 는 말씀에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눈물이 맺힌 질문자에게 청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살아있다는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면서 “아, 오늘도 살았네” 라는 기도문을 주면서 2시간 동안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질문을 하지 못한 분들은 아쉬움이 남았겠지만 오늘은 스님의 여는 말씀 속에 많은 가르침이 설해졌기 때문에 강연장을 나가는 대중들 모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며 가벼운 발걸음이었습니다.nbspnbsp강연 직후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준비된 책이 모두 팔려서 책을 못 산 분들이 많았고, 책 판매를 담당한 봉사자들도 책을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것에 많이 미안해 했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책 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분당정토회 산하에 속한 4개 법당의 봉사자들과 함께 각 법당별로 기념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의 표정을 보니 봉사를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모든 일을 놓고 스님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바로 이 시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nbspnbsp▲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촬영nbsp오전에는 이렇게 분당정토회의 80여명의 봉사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성황리에 강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스님은 다시 이재명 성남시장님의 초대로 시청 구내 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은 후 시청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오후 2시부터는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오후 5시에는 저녁 강연이 열리는 안산시의 한양대 ERICA 캠퍼스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강연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2015.10.07. 42,482 읽음 댓글 41개

2015.10.4 새터민과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가하여 추석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 새터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대중들보다 30분 일찍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7시에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찾아온 손님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 후에는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양강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nbspnbsp아침 10시 무렵 양강초등학교에 스님이 도착하자 오랜만에 스님 얼굴을 뵌 많은 새터민들과 좋은벗들의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보이며 본무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늘 통일체육축전은 서울과 울산 두 군데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서울에서는 총 1200여명이 참석했고, 울산에서는 6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 양강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회원들nbsp먼저 사회를 맡은 ‘좋은벗들’의 회원이자 방송인인 김병조씨가 “윗동네, 아랫동네 여러분 그 동안 건강하게 무사히 잘 지내셨나요?” 하며 큰 목소리로 행사에 참여한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회원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해마다 이렇게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3년이 되었습니다. 윗동네에서 오신 분들은 낯선 남쪽 땅에 정착하느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고단함을 잊고 즐겁고 당당하게 즐기라고 사단법인 좋은벗들에서 해마다 추석 명절 즈음에 여는 행사가 바로 ‘통일체육축전’입니다. 올해로 벌써 13번째를 맞이하는 행사이다 보니 해가 갈수록 더욱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지난주에는 한가위 큰 명절이었습니다. 한가위는 한해의 추수로 풍성한 수확과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족 친지 이웃 분들과 함께 나누는 날인데요. 풍성한 남쪽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새터민들이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애닯은 마음을 속으로만 삭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체육축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새터민들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합동차례를 지냈습니다.nbspnbsp▲ 추석맞이 합동차례nbsp오늘 행사에는 지역 인사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 지역의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길정우님, 새정치연합 양천을 위원장 이용선님, 양천구청장 김수영님, 전 하나원 원장인 고경빈님,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 서울정토회 대표 마경숙님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먼저 제례를 올렸습니다.nbspnbsp내외빈들의 차례가 끝나고 나서는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이고 좋은벗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이길웅 선생님이 나와 축문을 낭독했습니다. 축문에 이어서 새터민들이 무대로 나와서 제례를 올렸습니다.nbspnbsp▲ 고향을 생각하며 큰 절을 올리는 새터민들nbsp새터민들은 술잔을 올리며 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목이 메어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큰 절을 올리며 고향에 계신 가족과 친척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또 기원했습니다.nbspnbsp▲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눈물을 훔치고 있는 새터민들nbsp이 모습을 지켜보는 좋은벗들 회원들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새터민들이 해마다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지 않아도 되도록 하루 빨리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세상이 오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어서 좋은벗들의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무대로 올라와 환영 인사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안녕하세요. 추석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자, 새터민들은 “네” 하고 환호하듯이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고향을 떠나 이주해서 살면 기가 죽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통일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것을 당부해 주었습니다.nbspnbsp“추석날 달이 밝으면 고향 생각이 나게 마련이에요. 그러니 고향 가서 차례를 지내는 게 제일 좋은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고향 가서 차례를 지내지 못해서 섭섭했을 것 같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다 자기 고향 가듯이 북쪽 분들도 추석 때나 설 때만이라도 휴전선이 열려서 5일씩만이라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nbspnbspnbsp통일되면 더 좋지만 통일되기 전까지만이라도, 평상시에도 열리면 더 좋지만 최소한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나 설에라도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문을 열고 서로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은 그런 일도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추석을 맞아서 고향을 생각하는 이런 통일체육축전을 열고 있어요.nbsp현재 한국에서 태어나서 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제 시대와 그 전까지 다 계산하면 한 700만 명 정도 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간 사람들만 해도 한 400만 명 정도 됩니다. 제가 미국에 가 보면 처음에 이민가서는 살기 바빠서 다른 생각을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이 그리워진대요. 그래서 늘 추석 전후로 ‘한국의 날’이라는 걸 마련해서 공원을 빌려가지고 이런 축제를 해요. 거기 가보면 송편 빚어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엿장수가 엿판도 들고 다니고, 지게도 만들어서 지고 다니고, 우리 노래도 부릅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했던 온갖 것들을 다시 되살려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행사예요. 제가 그걸 보면서 ‘북쪽에서 와서 남쪽에 사는 분들에게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nbspnbspnbsp고향을 떠나 이주해서 살다 보면 다소 기가 죽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죽지 말고 오늘만큼은 고향에서 즐기던 것을 이 자리에서 즐겨보자는 취지입니다. 북쪽 노래도 부르고, 거기서 추던 춤이 있다면 춤도 추고, 거기서 먹던 음식도 만들어 먹으면서 즐겨봅시다.nbspnbsp인간이 태어남에 의해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보니 여자인데 여자라고 차별받으면 안 되고, 태어나보니 북쪽에서 태어났는데 북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차별받아서도 안 되고, 태어나보니까 몸에 장애가 있을 뿐인데 이걸 이유로 차별받아서도 안 됩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태어나보니까 성적 취향이 소수자에 속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지으심인데 그걸 개인이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 걸 가지고 차별을 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피부색이나 고향이나 종교로 차별하지 말자고 하잖아요.nbsp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같은 민족인데도 단지 태어난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살면서 보이지 않게 많은 차별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것을 좀 뛰어넘어서 하나로 어울려보자 해서 이 축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만큼은 그런 모든 것들을 잊고 마음껏 기쁘고 즐겁게 놀아봅시다.nbsp그리고 앞으로 이걸 조금 더 발전시켜서 여러분들이 이날만큼은 남쪽을 흉내내기보다는 북쪽에서 가지고 온 좋은 것들을 함께 즐겨보면 좋겠습니다. 북쪽이라고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점도 많잖아요. 고향에서 먹던 음식도 각자 마련해 와서 나누어 먹고, 어릴 때 좋은 추억거리로 남은 것이 있으면 여기에서 시연하면서 우선 위로를 좀 받으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그리고 여기서 계속 살아도 좋지만, 교류가 되고 통일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서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남쪽의 생활은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기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nbsp스님의 반가운 인사와 격려 말씀에 새터민들도 기쁜 마음이 되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얼마나 새터민들의 아픔을 잘 헤아리고 있는지 애정이 듬뿍 담긴 말씀 속에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그 준비 기간으로 지금의 남쪽 생활을 받아들여 보라는 말씀은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터민들의 통일을 향한 이 열망이 스님이 지금 하고 있는 통일운동에도 보태어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nbspnbsp이어서 전 하나원 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통일 관련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고경빈 이사님이 나와 환영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외빈 중에서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님, 이용선 새민련 양천을 위원장님, 김수영 양천구청장님이 차례로 나와 새터민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합동 차례를 모두 마치고 즐거운 운동회와 점심식사, 분산놀이, 부스체험, 대동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새터민들은 맛난 음식도 먹고 그동안 못 보았던 고향 분들도 만나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 환영 인사를 하러 온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님과 김수영 양천구청장님과 이용선 새민련 양천을 위원장님nbsp스님은 참석한 내외빈들 한분 한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이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님에게는 이번에 통일체육축전 행사 장소를 구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는 봉사자들의 어려움을 전하면서 내년에는 이런 좋은 취지의 행사를 잘 도와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운동장 구석 구석을 한바퀴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봉사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 구석구석을 돌며 새터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스님nbsp새터민들은 스님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과일을 건네기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며 모두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을 보자 넙죽 바닥에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는데, 스님은 감사히 절을 받고 나서 “너무 그러면 광신도라는 소릴 들어요” 라며 농담을 던졌습니다.nbspnbsp▲ 스님을 보자마자 넙죽 큰절을 하는 분nbsp많은 분들이 스님과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 하였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 오랫동안 운동장에 머무를 수가 없어 양해를 구하고 스님은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새터민들이 고향 친구를 찾을 수 있게 ‘친구찾기’ 이벤트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nbsp스님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통일체육축전은 신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연이어 계속 이어졌습니다. 백두, 한라, 평화, 통일 4개 팀으로 나뉘어져 단체 게임도 신나게 하고, 운동장 곳곳에 나뉘어져 전통놀이를 즐겼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만두, 시루떡을 나눠주는 코너, 북한낱말퀴즈를 열어 상품을 주는 코너, 팔씨름을 겨뤄 이기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는 코너, 음향 측정기로 목소리 크기를 겨루는 게임, 제기 차기, 그림으로 심리 치료를 해주는 부스, 법률 상담을 해주는 변호사들, 의료 상담을 해주는 의사들, 제기 차기 등 민속놀이 코너, ‘이대로 통일해도 괜찮을까요?’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 코너 등 정말 다양한 게임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새터민들은 하루종일 웃으며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만두를 시식하는 코너nbsp▲ 북한말퀴즈 코너nbsp▲ 설문조사 코너nbsp▲ 각종 민속 놀이nbsp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노래자랑 대회였습니다. 남한 노래, 북한 노래가 연이어 불러지며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좋은벗들 회원들로부터 많은 상품들이 기부되어서 바자회에서 아주 값싸게 나눠지기도 하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터민들에게는 양손 가득이 선물 상자가 한 개씩 선물되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오늘 하루 새터민들은 풍성한 하루를 즐겼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 다시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 머물며 밀린 보고서와 서류들을 검토하고, 다음주에 출간되는 신간 ‘야단법석’ 책의 원고 교정 등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6시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9시까지 회의를 한 후 연이어 9시부터는 정토회 법사단과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내일은 2015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의 하반기 첫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열릴 예정입니다.nbsp

2015.10.05. 35,948 읽음 댓글 38개

2015.10.3 (오후) 평화재단 제1회 통일의병대회

nbsp오전에 칠백의총에서 ‘평화통일 기원제’를 모두 마치고 오후에는 통일의병대회를 하기 위해 대전 가오중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 가오중학교 체육관에서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개최하는 제1회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 대전 가오중학교 체육관nbspnbsp통일의병이 창립되고 2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중들에게 부여된 의병 번호가 700번을 넘었습니다.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이 나와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해 주었고, 이어서 영남본부, 호남본부, 충청본부, 수도권본부를 대표하는 본부장들이 나와 그간의 활동을 보고해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노력과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 본부의 활동 보고를 경청한 후 무대 위에 올라와 ‘통일 의병이 가야할 길’을 주제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통일 한국의 비전과 통일 한국으로 가기 위한 방법과 그 중심 역할을 해야 할 통일의병의 자세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 중 일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이제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의 가장 큰 틀이 통일이라는 뜻이지 통일만 하면 다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통일이라고 하는 큰 틀 안에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크게는 헌법이 바뀌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지방분권과 다당제를 토대로 하는 연방과 연정을 기반으로 하되, 그 속에 북한도 들어올 수 있도록 북한주민들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통일에 대비한 정치 시스템을 먼저 운용하고 북한도 그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이런 통일전략이 바로 ‘준비’예요.nbspnbspnbsp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정치 시스템이 다르더라도 북한 개발은 당장 시작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열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통일을 추구하는 강력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야 해요. 외세의 간섭을 받는 정부는 안 돼요. 통일 한국이 주변국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는 동시에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북한 지도층에게도 통일 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신분 보장을 해줘서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을 해야 해요. 북한은 통일할 능력이 안 됩니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지금 문제가 많긴 해도 조금만 개선하면 그래도 통일의 기초로 쓸 만하지만, 저쪽은 이미 폐차해야 될 수준이지 수리해서 쓸 수준이 아니에요. 그러니 승객을 옮겨 태워야 해요. 다치지 않도록 함께 가면서 서로의 신뢰를 기초로 해서 옮겨 태워야 합니다.nbspnbsp100년 전처럼 나라를 또 혼란에 빠뜨려서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후유증을 안고 온갖 불행 속에 살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먼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이걸 제대로 하면 스님은 정신 문제를 다루고 여러분들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 되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렇게 안 되고 있으니까 우리가 지역과 직업에 관계없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보자고 이렇게 모인 겁니다.nbspnbsp이렇게 모여서 무얼 할까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정부를 구성해내야 해요. 그 정부가 밖으로는 주변국과 외교를 잘 하고 안으로는 국민들을 잘 통합시키고, 북한을 대할 때는 위험을 잘 관리하면서 대화를 통해 설득해서 통일국가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정부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은 수모 받고 상처 입은 국민, 트라우마를 가진 국민이 아니라, 정말 자랑스럽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 안에 못 들어가도 행복도는 세계 1위라고 내세울 수 있는 자긍심 있는 국가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해요. 그럴려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인 거예요.nbspnbsp각자의 생각은 달라도 이 뜻만큼은 같다고 하여 모였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조헌 선생은 의병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했어요.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 한다고 해서 가난한 집에 가서 ‘양식 달라’, ‘곡괭이 달라’ 하면서 자꾸 민폐 끼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도 의병 활동 한다고 하면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면 안 돼요. 자발적으로 식량 주고 헌금하면 고맙게 받지만, 좋은 일 한다고 다니면서 협박해서 돈 뜯으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nbspnbspnbsp둘째, 서로가 공을 시기 질투해서 분열하면 안 됩니다. 서로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고, 이것도 벼슬이라고 지역 본부장 하겠다 뭐 하겠다 하면서 내분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관군이라는 게 다 내분 때문에 망하는 거예요. 의병은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대의를 빼버리면 내분이 일어날 확률이 제일 높죠. 그러나 우리의 대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지 사익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므로 여기 와서 사익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뭘 얻으려고 눈치 보고, 이걸 가지고 정치적 기반을 삼아서 한 자리 하려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는 꼭 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서로 견제해 나가야 해요.nbsp셋째, 내부에는 의견 차이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가 제일 우려하는 게 이거예요. 과거의 의병들도 그랬지만 의견 차이는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거 하자 하고 저 사람은 저거 하자 하고 모아놓기는 모아놓았는데, 이걸 끌고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이게 제일 폐해가 크고 그렇게 되면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딱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안하느니보다 못한 결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항상 민주적으로 의논해서 결정하되, 의병이라면 의논해서 결과가 났을 때 군말 없이 지지해야 돼요. 안 그러면 조용히 의병을 탈퇴하든지요. 그런데 그냥 조용히 탈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꼭 분란을 일으킵니다.nbspnbsp대한민국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 종교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친구지간에 술 마시며 이야기할 때도 이런 얘기는 하면 싸우게 되고 결론도 안 난다고 해요. 의병은 정말로 이 사색당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병 속에서도 양반 따지고 상놈 따지는 거 봤잖아요.nbspnbsp승병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전투 중에 실제로 이 조헌 선생과 700명의 의병만 죽은 게 아닙니다. 승병도 800여명이 싹 다 죽었어요. 그런데 왜 칠백의총이라고 할까요? 중은 사람이 아니니까 빼버리고 유생들만 넣어서 칠백의총을 만든 거예요. 같이 싸웠어도 양반만 골라서 의총을 만들고 상놈은 버렸습니다. 그럼 왜 불교는 이런 것을 안 따질까요? 중은 그런 거 안 따져요. 나라만 잘 되면 되지 죽은 뒤에 명예가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 하겠어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nbspnbsp그러니 우리는 정말 대의를 위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회의 때는 자유로이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결정이 되면 딱 승복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오합지졸이 안 되고 의기충천한 의병이 되지요. 안 그러면 진짜 적진 앞에서 오합지졸이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솔직히 말해서 80퍼센트는 분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다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주장이 강하니까요.nbspnbsp그러나 이걸 극복해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숫자 늘리고 뭐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노력하면 다 됩니다. 하지만 이 분열 문제는 성질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지는 않아요. 그러니 이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의병 모임 안에서 자리 다툼을 하거나 분열하는 일이 없도록 해서 내분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적으로 이걸 이용해서 물건을 팔려 들고 뭘 주장하려 하고 개인 이익을 취하려 드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임 안에서 돈 거래, 물건 거래를 일체 금지하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그런 정도의 원칙은 좀 지켜야 해요.nbspnbsp우리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랫사람 한 명은 전쟁터에서 이탈하거나 낙오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병사가 낙오하는 것은 전쟁에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백 명이 떨어져 나가도 괜찮아요. 항상 장군 한 명이 상대에게 넘어가 항복해서 그쪽에서 깃발 들고 쳐들어오는 게 문제죠. nbspnbspnbsp앞으로 백만 명의 의병을 모으는 일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건 순식간에도 모을 수 있어요. 문제는 여러분들이 바로 의병장이 될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적어도 이런 정도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조헌 선생은 오합지졸들을 모았는데도 ‘민폐 끼치면 안 된다’ 부터 시작해서 열 몇 가지 규칙을 딱 정했어요. 우리도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nbsp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에 통일의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한다는 대의를 위해 모였다는 것을 늘 자각할 수 있으면 의견 충돌도 극복할 수 있고, 오합지졸의 한계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씀이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통일의병들의 마음을 모으고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통일의병 뱃지를 다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의병 번호를 이미 받은 분들입니다. 의병 번호를 받는다는 것은 의병으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의병 뱃지를 다는 것은 바로 내가 통일의병임을 당당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그들도 통일의병이 되도록 통일의 필요성을 적극 알려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입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습니다. 먼저 스님과 조성식 대표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습니다.nbspnbsp▲ 조성식 대표에게 뱃지를 달아주고 있는 스님nbsp스님과 대표님은 서로에게 뱃지를 달아준 후 두 손을 번쩍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가슴에 달린 통일의병 뱃지nbsp나머지 통일의병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였습니다. 관군은 나라가 임명하지만 의병은 내 가슴의 양심이 임명하는 것이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뱃지를 다 달자 사회자가 “나는” 하고 외치니 의병들도 “통일의병이다” 라고 힘껏 외쳤습니다.nbspnbsp▲ 서로에게 뱃지를 달아주고 인사하는 통일의병들nbsp이어서 통일의병이 된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목소리, 마음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참석한 230여명의 통일의병들이 ‘내가 통일의병이 된 이유’와 ‘통일의병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2가지 주제로 20초 동안 발표하는 ‘20초 스피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 230여명이 모두 참여한 20초 스피치 시간nbsp모든 사람의 발표를 다 듣는데는 약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지만,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발표를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너무나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통일의병이 되었고, 각자가 통일의병이 되어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잘 조화를 이루면 정말 큰 힘을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230여명의 발표가 끝난 후 제일 마지막으로 스님도 무대 위로 올라와 20초 스피치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스님도 무대 위로 올라오자 통일의병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통일의병 0번으로써 20초 스피치를 하고 있는 스님nbsp“제가 통일의병이 된 것은 통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일이 자주적으로 되지 않으면 통일된 나라가 통일시켜준 나라의 종속국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 힘으로 통일을 하고자 해서 통일의병이 되었습니다. 의병으로서 통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nbspnbsp스님은 통일의병 번호 0번이면서 고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도 통일의병의 한 일원으로서 소개를 한 것이지요.nbspnbsp이어서 스님은 230여명의 발표 모습을 보면서 든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말씀 잘 들었고요, 정말 감동적입니다. 처음에는 20초씩 230명이 발표한다고 해서 좀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났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아주 감동적이어서 때로는 눈물까지 났습니다. 특히 장애를 갖고 계신 분이 북한의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 하는 게 기억에 남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은 아예 보살핌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농아만 그나마 보호받고 있고, 나머지 장애인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형편인데 장애인들을 특별히 생각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nbspnbsp스님은 이 대목에서 울먹이듯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그 속에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누구도 그들의 아우성에 응답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오늘 행사를 마치며 한번 더 통일의병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천년 동안의 한을 푸는 길은 바로 통일이며, 통일은 반드시 될 수 있다고 믿고 힘차게 활동해 나갈 것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지난 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이 많습니다. 몽골항쟁 때 얼마나 피해가 컸습니까? 삼별초의 항쟁도 실패했잖아요. 임진왜란 때도 얼마나 슬픈 역사가 많습니까? 동학혁명군 학살은 얼마나 슬픕니까? 의병들은 또 얼마나 고통을 겪었습니까?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많이 죽고 피해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 학도병, 강제 징용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분단된 이후에는 6.25 전쟁으로 쌍방 간에 얼마나 희생이 컸어요? 빨치산들은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고요?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사건, 이렇게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19도 그렇고, 광주항쟁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실패의 역사, 한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우리들 마음 속에는 늘 망설임이 있습니다. 옳기는 옳다고 생각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한번 불붙으면 또 걷잡을 수 없이 타오릅니다.nbspnbsp이제 우리 개개인 속에, 우리 민족 속에 있는 이 상처와 한을 우리 손으로 씻어내야 합니다. 이 한을 못 풀게 되면 오늘날 지구촌의 시민이 되기가 좀 어렵습니다. 우리는 민족주의를 말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세계 시민으로서는 아직은 조금 수준이 떨어져 보여요. 그래서 우리가 이 한을 좀 씻어내야 합니다. 소위 한풀이를 좀 해야 하는데 최고의 한풀이가 뭘까요?nbspnbsp우리 힘으로 통일을 해야 실패의 역사가 끝나고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어요. 그래야 일본 사람 만나고 중국 사람 만나도 미움이 안 생기고 주눅도 안 듭니다. 그렇게 해서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민족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배달나라의 후손으로서 당당함을 찾아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통일은 통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100년 후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때 우리가 중심이 되어 문명의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 후배들, 후손들에게 정말 희망의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더 이상 한탄만 하지 말고, 좌절만 하지 말고, 죽어서 좋은 데 가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과거 청산도 미래 개척도 우리 손으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면 천지신명의 보호도 받고, 조상신의 도움도 받고, 기독교 하나님의 도움도 다 받읍시다. 못 받을 이유가 없어요. 저는 원래 수행자이기 때문에 뭘 믿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제사도 지내고 뭐든지 다 해요.nbspnbsp종교가 다르다, 신분이 다르다 따지는 걸 훌쩍 넘어서서 목표지향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방금 보니까 재미있는 사람들 많잖아요. 어떤 사람도 다 필요합니다. 의병에 양반과 상놈을 따질 수 없고, 포수니 선비니 농사꾼이니 따질 수 없습니다. 의사가 오면 치료하는 데 쓰이고 포수가 오면 총 쏘는 데 쓰이고 농사꾼이 오면 음식 거두는 데 쓰여요. 어떤 사람도 필요없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아까 ‘또라이 같은 사람’ 어쩌고 하는데, 또라이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영악하고 똑똑해서 잔머리 굴리다가 안 되잖아요. 이 길은 남이 뭐라고 하든 꿋꿋이 가서 ‘저거 또라이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우리가 해나간다면 비록 출발은 작지만 그 끝은 장대할 것입니다. 다 이뤄놓고 보면 사람들이 ‘그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래요. 그러나 안 되면 다들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었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니 그 결과를 논하지 맙시다.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잖아요. 목표를 향해서 일단 발을 디뎠으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갈 뿐입니다. 화살이 이미 떠나버렸는데 맞을 건지 안 맞을 건지 논할 필요가 없지요. 결과는 그때 가보면 압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시는 분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리라’ 이렇게 맡겨야지, 잔머리 굴리면 신앙에 어긋납니다. nbspnbspnbsp딱 믿고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제 스승님이 미래 800년을 이어갈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미 수십 년 간 온갖 기도를 했고, 저도 통일을 위해서 2012년도에는 남한의 모든 시, 군, 구, 대학에 가서 300회 강연을 했습니다. 북한의 모든 시, 군, 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을 다니며 옥수수 100톤씩을 나눠줄 계획도 세웠지만 남북관계가 안 좋아서 그건 못 했어요. 대신 작년에는 전 세계 우리 교포가 있는 115곳을 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졌습니다. 제가 이 정도 정성을 쏟아야 하나님이 계신다면 감응하시지 않겠어요? 하늘만 쳐다보고 ‘해주세요’ 하면 해줄 것 같지 않잖아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가 뭔가 정성을 쏟아야 이루어질 테고, 감응할 신이 있다면 마땅히 감응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믿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시겠어요?”nbsp“예”nbsp“우리가 간절히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믿습니까?”nbsp“네, 믿습니다” nbsp“예, 그런 마음으로 해나갑시다.” nbspnbsp스님의 힘찬 물음에 통일의병들도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230여명이 함께 했는데 다음 통일의병대회에는 천명이 넘는 대중들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어서 이춘삼 의병이 나와 전퉁무예를 접목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통일을 향한 통일의병들의 열망을 표현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을 향한 열망을 표현한 전통무예nbsp마지막 순서로 ‘통일의병 선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먼저 통일의병 1번인 조성식 대표님이 앞으로 나와 선창을 하였습니다. 통일의병들도 큰 목소리로 함께 따라 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선서nbspnbsp“하나,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의 시대를 열어간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이 주도하고 북한이 선택하는 평화통일을 추진한다.nbsp하나, 우리는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이 보장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한다.nbsp하나, 우리는 화해8228협력8228상생의 세계관으로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어간다.nbspnbsp하나, 우리는 생명존중, 평화애호, 민주주의, 환경보호의 가치를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백의종군, 공공성, 자발성, 헌신성의 의병정신을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일코리아의 모델로 변화8228발전시킨다.nbsp하나, 우리는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통일운동을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적극 실천한다.”nbspnbsp의병 선서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신명나는 대동놀이가 한판 펼쳐졌습니다. 230여명이 두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 노래에 맞춰 큰 원을 그리며 걷다가 꾕과리, 장구, 북, 징 소리가 흥겨움을 더해주자 순식간에 행사장은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덩실 덩실 어깨춤을 추며 통일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nbspnbspnbsp▲ 대동놀이nbsp스님은 의병들이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대전을 출발하여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 9시가 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비롯해 여러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으며 업무를 보다가 오늘 하루를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양강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석해 축사를 한 후 참석한 새터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5.10.05. 32,707 읽음 댓글 29개

2015.10.3 (오전) 칠백의총 참배 및 평화통일 기원제

▲ 칠백의총 참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국에서 모인 통일의병들과 함께 의병 정신이 깃든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을 참배하고 평화통일 기원제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통일의병’에서 주관한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해 ‘의병이 가야할 길’에 대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지금으로부터 5913년 전 배달나라의 환웅 천왕이 새 나라를 건설한 신시 개천의 뜻깊은 날입니다. 그 의미를 되살려 스님은 통일의병들과 함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뜻을 담아 통일의병대회를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시고 아침 7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늘 행사가 열리는 충남 금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차 안에서 스님은 미국에서 귀국 후 시차 때문에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하며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오전 10시가 되자 칠백의총 입구에는 전국에서 모인 통일의병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경기도 파주와 고양에서, 강릉에서, 부산에서, 창원에서, 순천에서, 광주에서 모두들 새벽 일찍 출발해 총 23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드디어 통일의병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칠백의총 안으로 입장하는 통일의병들nbsp통일의병들은 먼저 1592년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700명의 임진 의병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 뜻을 마음 속에 새기기 위해 칠백의총을 참배했습니다. 제일 선두에는 조성식 통일의병 대표님과 스님이 앞장서고 뒤이어 각 지역 의병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우선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종용사’ 앞에 서서 조성식 대표님이 헌향을 한 후 나머지 의병들도 다함께 선열들의 뜻을 기리며 묵념을 올렸습니다.nbspnbsp▲ 칠백의병의 위패가 안치된 종용사nbsp묵념을 마친 통일의병들을 위해 스님은 ‘칠백의총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적을 막을 임무를 맡은 사람은 관군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월급과 무기를 받고 여러가지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국방을 맡아야 할 관군들이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왜군이 침입하자 순식간에 영남이 초토화 되고 결국은 수도가 함락되어서 왕이 백성을 버리고 혼자만 살려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바로 그 때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나라로부터 보호받기보다는 주로 착취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가렴주구를 당하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거예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지식이나 무기를 갖춘 것도 아니고,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겠노라 스스로 일어난 사람들을 ‘의병’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의병은 국가에 불만이 있어서 관군과 싸우는 반군이 아니라, 관군을 도와서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역사를 보면 관군이 제대로 못 싸웠어요. 제대로 못 싸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사기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병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의병을 무시하고, 협동 작전을 약속해놓고도 세가 불리하면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생자는 민간인들, 즉 의병들이었습니다.nbspnbsp여기 모셔진 조헌 선생을 비롯한 칠백여 분 뿐만 아니라 고경명 선생 휘하에 있었던 분들도 관군과 협동 작전을 펴다가 관군이 중간에 도망가 버려서 결국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권율 장군과 합동 작전을 하기로 했지만 결국은 왜군의 위세에 눌린 관군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무고한 희생을 당했습니다. 설령 의병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관군이야말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텐데 정작 관군은 세가 불리하다고 참가를 하지 않은 반면 의병은 끝까지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고 싸워서 전원이 순국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비록 전투에서는 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상이 참으로 높았습니다.nbspnbspnbsp그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에 비해 세가 어림도 없이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삽시간에 한국을 점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7년 전쟁으로까지 가면서도 조선 점령에 실패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왜군이 계산 못 한 건 딱 한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민간인이 의병이란 이름으로 일어나고, 산속에 있던 스님들마저도 계율을 어기고 승병을 일으킬 줄 일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결국 우리나라를 지킨 것은 백성들이었던 셈입니다. 군사적 훈련도 못 받았고, 무기도 변변찮아 낫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싸워야 했고, 식량 보급도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특히 지리를 잘 알다 보니 잘 훈련되고 좋은 무기를 갖고 있는 왜병마저도 이들의 엄청난 자발적 기상에 눌려서 결국은 침략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관군이 다 무너져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지킨 칠백의병들의 기개가 더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과연 우리는 이런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잘 되살려서 살고 있는지 반문하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의 군사협력 움직임에 대해 우려했습니다.nbspnbsp“우리는 이렇게 오늘 행사를 통해 의병정신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아서 더 이상 우리나라가 이런 불행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늘 기념식만 하고 과거만 기리지, 우리 스스로는 잘 행동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혼란을 겪고 간신히 나라를 유지했지만 300여 년이 지난 뒤 또다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칠백의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순의비가 일본에 의해 폭파당하는 수모를 겪었어요. 그래도 항일독립운동을 통해 독립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나라를 되찾았죠. 하지만 작년부터 한국과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협력을 맺고 앞으로 군사적인 동맹 관계로 발전하려는 움직임이, 우리가 상상도 못할 그런 일이 현실에서 또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nbspnbsp이런 움직임은 우리의 의병 정신과 역사의식에 맞지 않아요. 아무리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우리 힘으로 조국을 지키고 체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행여 부족하면 동맹국인 미국의 협력을 얻으면 되지, 굳이 여기에 일본을 다시 참여시켜서 일본의 도움을 얻겠다는 것은 아무리 북한에 대한 경고의 뜻이라고는 해도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민족 정신도 없고 혼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광복 70년이 채 안 되었는데 옛 역사를 잊어버리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이제 전후 체제를 벗어던지고 군비를 증강하면서 한반도에 언제든지 군사작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우리의 허락 없이는 한국에 못 온다’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nbspnbspnbsp이렇게 말해야죠. ‘우리의 강토는 우리가 지킨다. 우리 힘으로도 능히 지키고, 부족하다면 맹방인 미국의 도움을 얻어서 지키겠다. 민간교류나 협력은 좋지만 일본의 군사적 도움은 필요 없다. 어떤 이유로든 일본군은 한반도에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해야죠. 어느 나라든 다 영해 안에서 작전 하려면 당사국의 허락을 받는 게 당연하잖아요.nbspnbsp그런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사실 일본은 우리의 허락 없이도 우리 영해 안에서 군작전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시작전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미국이 허락하면 전쟁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에게 여러 가지 신세진 것이 있으니까 세계적인 견지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맹방으로서 미국의 이해에 협력하며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해야 되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마저도 미국의 이익이 우선되는 동맹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분단을 고착화시키겠다고 하면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최소한 한반도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익이 우선하는 한미동맹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이렇게 지금까지의 종속적 한미동맹에서 앞으로는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관계를 바꾸어가야 합니다. 패전국인 일본도 자주적으로 미일동맹을 바꾸고 있는데, 미국의 패전국도 아니고 일본의 피해자인 우리가 아직도 종속적 한미동맹 관계에 있다 보니 이런 비극이 다시 또 시작되려는 것입니다.nbspnbsp오늘 우리가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선조들이 희생하신 결과입니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도 죄스럽지만, 찾아뵙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 되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일본과도 군사적 협력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 동족을 상대로 일본과 군사협력을 한다는 것은 이 칠백의총 선조들의 뜻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뜻을 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원래 스님들은 출가하면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입니다. 스님들이 창과 활을 든다는 것은 사실 승려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겁니다. 그런데 왜 승병이 일어났을까요? 백성들을 살리려고 승려들이 지옥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군이라면 죽여도 된다는 계율은 없습니다. 일본군도 생명입니다. 생명을 죽이면 과보로 지옥을 가지만 ‘내가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해서 일어난 것이 승병입니다.nbspnbsp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나라를 지켜도 양반이 아니기 때문에 관직을 줘서는 안 된다고들 했어요. 사명대사 같은 경우는 워낙 공로가 크다 보니까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왕의 특사 자격을 주고 일본에 보내 희생자들의 유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왕의 특사니까 왕을 대신한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동래부사가 사명대사가 중이라는 이유로 마중을 안 나갔어요. 당시에 중은 천민이었거든요. 왕의 특사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처형감입니다.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나라의 법도를 지키려고 처형을 했어요. 그래서 그 자손들이 원한을 품었습니다. 사명대사가 정승의 직위를 받았는데 서산대사가 ‘나라를 지킬 때 그런 직책이 필요하지, 전쟁이 끝났는데 네가 왜 거기 있느냐’ 해서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절로 돌아왔어요. 그 후에 원한에 맺힌 그 자손들이 사명대사를 독살해버렸어요. 이렇듯 양반이라는 관념에만 젖어서 나라가 위급하면 도망가고, 나라를 살려놓으면 자기들끼리 다해먹으려 들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나라를 일본에게 또 빼앗기는 비극을 겪었습니다.nbspnbspnbsp이곳에서 장렬히 순국한 의병들의 넋을 오늘 기리면서 우리도 그 정신을 잊지 말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전쟁이 난 뒤에 나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게 최고의 승전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평화를 넘어서서 남북을 통일해야 합니다.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이웃나라에게도 얕보이지 않는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겠다고 오늘 이 순국 선열들 앞에서 굳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통해 칠백의총을 참배하는 의미를 다시 되새기니 더욱 경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라의 위기 앞에 분연히 일어났던 의병들과 불살생을 최고의 계율로 여기는 승려들도 의병에 참여한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통일의병 운동은 이런 선조들의 넋을 계승한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한일 군사협력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단호한 입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칠백의병이 묻혀 있는 묘지로 이동했습니다. 묘지 앞에서 조성식 대표님이 먼저 헌화를 하고, 이어서 모두가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단순히 그 뜻만 기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통일의병이 되어 그 뜻을 오늘날에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오늘의 참배가 더욱 뜻깊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 칠백의병이 묻힌 봉분 앞에서 헌화nbsp칠백의총을 나가는 길에는 기념관에 들러 칠백의병의 전투 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유물이 전시된 것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 기념관nbsp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중봉 조헌 선생의 일군순의비를 참배했습니다. 순의비에는 의병장 조헌 선생이 이끄는 칠백의사가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폭파된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광복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하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nbspnbsp▲ 조헌 선생의 일국순의비nbsp칠백의총을 나온 통일의병들은 ‘평화통일 기원제’를 지내기 위해 칠백의사순의탑으로 향했습니다. 순의탑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952년 조헌 의병과 영규 승병이 합군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으로 진격하다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이 순절한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탑입니다.nbspnbsp평화통일 기원제는 고구려 때부터 해왔던 천제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살려 진행되었습니다.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제주로서 각 지부를 대표한 의병들이 나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의 순서에 따라 술잔을 올리고 큰 절을 했습니다. 나머지 의병들은 뒤에 선 채로 큰절 대신 목례로 그 뜻을 기렸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을 대표해 탑 앞에서 큰 절을 올리는 조성식 대표nbsp위패에는 9000년 전 세계최고 문명을 창조했던 한나라 환인님, 6000년 전 요하문명을 창조한 배달나라의 환웅님, 4000년 전 조선의 단군왕검님, 부여의 왕 해모수님, 고구려의 동명성왕님, 이렇게 다섯분의 조상을 차례로 모신 후 마지막으로 칠백의병의 위패를 모셨습니다.nbspnbsp▲ 순의탑 앞에 모신 위패. 왼쪽에서부터 한인, 환웅, 단군, 해모수, 동명성왕, 칠백의병.nbsp조성식 대표님의 축문 낭독에 이어 충청본부 오수진 의병의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스님의 평화통일 발원문 낭독이 있었습니다.nbspnbsp▲ 충청, 전라, 영남, 수도권을 대표하여 순의탑을 참배하고 있는 통일의병 본부장들nbsp스님은 통일 한국을 이룩하여 우리 민족의 번영 뿐만 아니라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도 함께 극복하여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발원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서 가장 크신 환인 하느님, 이 땅에 처음 하늘의 뜻을 기리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배달나라를 창건하신 환웅 천왕님, 우리 민족의 조상신이며 신시를 새롭게 하신 단군왕검님, 부여의 해모수님, 고구려의 고주몽님, 백제의 온조님, 신라의 박혁거세님, 발해의 대조영님, 가야의 김수로님, 고려의 왕건님, 조선의 이성계님, 이렇게 우리 민족 우리나라를 면면히 이어오신 하늘의 천신과 조상님들께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발원하옵나이다.nbspnbspnbsp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하였습니다.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고자 일어난 다물 의병, 고구려의 기상을 회복하고자 한 고구려 부흥군, 백제 부흥군, 발해 부흥군, 고려 시대 민족의 기상을 지키고자 항몽 투쟁을 했던 항몽 의병군, 임진의병, 병자의병, 1차 의병, 2차 의병,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광복군, 고통 받는 민족을 구제하고자 했던 동학혁명군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늘 백성이 일어나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을 겪고 초토화되었던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산업역군, 사람답게 살고자 민주화를 이끌어낸 민주투사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저희들은 우리 시대의 시대적 사명이자 우리 민족의 비전인 통일을 위하여, 과거 역사의 혼을 계승한 통일의병이 되어 반드시 이 땅에 통일을 이루고자 이렇게 칠백의총 순국선열 앞에서 발원하고 맹세하옵니다.nbspnbspnbsp대륙의 변방으로 전락하여 약소국으로 살아온 지 1천여 년, 나라를 빼앗기고 두 동강이 난지 1백여 년입니다.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국가를 이룩하여 천 년의 한을 풀고 백 년의 한을 치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동아시아 시대에 주변국들과 힘을 합쳐 새로운 문명의 꽃이 되고자 합니다. 과거 인류 최고의 문명이었던 배달문명을, 조선의 옛 문명을 다시 한 번 일으키고자 합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번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에게 닥쳐온 환경 위기, 공동체 붕괴 위기, 자아 상실 위기라고 하는 현대문명의 위기 속에서 그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우고 그 중심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을 넘어, 온 인류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여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nbspnbsp그런 우리의 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천신과 조상신들은 우리를 보호하소서. 통일의병들 개개인을 모두 보호하소서. 이들의 뜻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통일의병들도 스님의 간절한 발원을 들으며 두손 모아 합장하며 그 뜻을 함께 새겼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충청본부의 김란 의병이 나와 왜군에 의해 장렬히 산화한 칠백의병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추었습니다. 애절한 진혼무를 보니 순국 선열들의 넋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nbspnbsp▲ 진혼무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른 후 조성식 대표님이 지방을 소지하는 것으로 기원제를 모두 마쳤습니다. 순의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통일 의병 의병’을 외치는 목소리에는 아주 늠름한 기상이 살아있었습니다.nbspnbspnbsp▲ 칠백의사 순의탑nbsp순의탑에서 내려와 넓은 잔디밭에 앉아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시원한 가을 하늘 아래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밥과 반찬은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 점심 식사 시간nbsp스님은 점심 식사 후 화장실 뒤편에 코스모스 길이 있다고 해서 잠시 산책을 했습니다. 막상 가보니 코스모스가 거의 다 지고 몇 송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씨를 가져가서 시골집에 뿌려두면 내년에 코스모스가 잘 자랄 것 같다” 며 씨를 주섬주섬 한 손 가득이 담았습니다. 넓직한 공터는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는데 스님은 “정토회도 이런 평지에 수련장이 하나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nbspnbsp▲ 코스모스 길nbsp▲ 시골집에 가져다 심으려고 모은 코스모스 씨앗nbsp이어서 오후에는 대전 가오중학교로 이동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개최하는 제1회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2015.10.04. 34,464 읽음 댓글 35개

2015.10.2 인천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김제동씨와 함께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춘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미국에서 귀국한 후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오늘부터 다시 본격적인 강연 일정이 nbsp시작되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nbsp공양을 마치고 나서 먼저 지난 2주일 동안의 미국 방문 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공유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대중공사 시간에는 대중들이 업무 때문에 규칙을 지키지 못한 nbsp것에 대해 참회하는 내용들을 경청한 후 바쁜 업무 속에서도 수행의 자세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여러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출장도 자주 가고, 아침에 조찬이 있어서 발우공양도 빠지고, 저녁 예불이며 법회며 심지어 포살까지 빠질 때도 있는 것 같네요. 문경에서처럼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생활할 때는 모든 것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돌아다니며 생활하다 보면 규칙이 흐트러지고 자연히 방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이란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여일하게 해야 합니다. 환경이 조용해서 마음을 조용히 갖고, 부딪힐 일이 없어서 분별심이 없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위 환경이 소란스러우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주위 환경이 조용하면 마음도 조용해져요. 특별히 수행하지 않아도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구조가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nbspnbsp주위 환경이 조용한데도 정신적으로 번뇌가 많다면 비정상이에요. 이렇게 보면 사람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주위가 조용한데도 정신이 산만하거나 몸이 아프면 환자에 속합니다. 주위 환경이 조용하면 마음도 조용하고 환경이 산란하면 마음도 산란하다면 보통 사람입니다, 주위 환경이 조용하든 산란하든 규칙적이든 불규칙적이든 구애됨이 없이 항상 고요한 마음과 자기의 원을 유지해 나가고, 번다한 환경 속에서도 정해진 목표를 향해 규칙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간다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여러분 대다수를 보면 이동하느라, 혹은 다른 곳에 여행 가느라 뭘 빼먹었다, 일회용을 썼다, 비닐에 든 음식을 먹었다, 때 아닐 때 먹었다 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나 다 환경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을 때 스스로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담배를 안 피운다면 내가 굳이 담배를 피울 일이 없지만,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권하면 나도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아지죠. 마약이나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담배 피우고 마약을 하더라도 나는 안 피우고 안 하고,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나는 마시지 않거나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도록 자기를 조절하고, 다른 사람이 과식하더라도 나는 과식을 하지 않을 때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직되게 하라는 게 아니라, 인연을 따라서 거기에 맞게끔 하되 방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도 매일매일 이동하며 사셨어요. 1년 중 3개월만 한 군데에 정착해서 살고 나머지는 원래 삶 자체가 유행이었습니다. 자는 곳도 매일 달라지고 먹는 것도 매일 얻어먹는 집이 달라지고 그렇게 매일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여일함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오히려 한 곳에 머물면 집착하고 안주하기가 쉽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경계가 바뀌면 마음도 경계에 따라 흔들려서 수행자의 본분을 잃어버립니다. 문경에 가서 고요한 환경 속에 놓이면 규칙적으로 수행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방심하지요. 특히 추석이나 설을 맞아 집에 가면 이 사람이 수행자인지 보통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집에 가서 명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속에서도 수행자의 본분을 조용히 지켜나갈 때 나중에 가족으로부터 더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표를 내지 않고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가서 노는 모양이 다른 식구와 똑같으니까 오히려 안쓰럽게 보여요. 퍼질러 자고 맛있는 거 탐내어 먹는 모습을 가족들이 보고 불쌍하게 여깁니다. 불쌍하게 여겨지면 동정을 받고 돈을 몇 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거지나 다름없는 것입니다.nbspnbspnbsp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하라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저절로 존경심이 나도록 생활해야 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로서의 본분과 품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특히 가을에는 여러 활동들을 진행하느라 이동이 많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늘 수행자의 본분을 잘 지켜나가도록 유의해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동이 많고 번다한 환경 속에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의 애정어린 말씀을 들으며 대중들은 주위 환경을 핑계 삼아 계율을 어기는 것을 합리화 해오지는 않았는지 깊이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환절기에 행여 감기 환자가 생길 것까지 세심히 챙겨 주었습니다.nbspnbspnbsp“건강에도 유의해야겠습니다. 환절기라서 덥다가 춥다가 하다 보니, 덥다고 이불 걷어차고 자다가 아침 되면 추워서 감기 걸리기 쉽습니다.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몸을 함부로 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일이나 정진에 장애되는 일이 없도록 자기 건강도 잘 챙겨 나가길 바랍니다.”nbsp아침 일찍부터 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듣고 나니 한결 정갈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 30분부터 하루 종일 연이어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후 2시에는 최근 새롭게 통합되어 서로 손발을 맞추어 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컨텐츠사업국과 평화재단, JTS의 실무자들과 함께 하반기 활동 계획에 대해 실무 점검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컨텐츠사업국, JTS,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회의nbsp조만간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내용을 담은 새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컨텐츠사업국에서는 어떤 것이 준비되고 있는지, 또 얼마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정진을 시작하면서 3년 동안 매주 한번씩 통일 강좌를 열기로 했는데 전체 기획을 어떤 방향으로 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 실무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스님의 조언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미국에 다녀온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쉼없이 미팅과 회의가 이어진 까닭에 조금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각 부서 사업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대중부 행정처와 하반기 사업에 대해 회의 시간을 더 가진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5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송도 국제도시에 위치한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장소가 인천시의 중심가에서 많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객석에 빈자리가 많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는데 다행히 7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 인천대학교 대강당nbsp청춘콘서트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에 이어 사회자가 법륜 스님을 소개하자 큰 함성과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추석 안부 인사를 건내며 말문을 연 후 지난 2주 동안 미국 방문 때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추석 잘 보냈습니까? 올해는 슈퍼 문이라고 특별히 달이 컸다던데, 저는 미국에 있느라 달도 못 보고 송편도 못 얻어먹고 어젯밤에야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교민들을 위해 명상수련을 지도하고 워싱턴 DC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여러 싱크탱크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국무성 관계자를 비롯한 대사 및 관리들과 만나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서 좋은 일 좀 같이 하자고 했어요.nbspnbspnbsp‘한미 동맹이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이익을 먼저 보장해야 합니다. 나머지 세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미국의 입장에 협력할 테니까 한반도 문제는 너무 미국의 입장에서만 추진하지 말아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이 생겨 장기적으로 미국에 손해가 생길 것입니다.’nbsp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후세인이나 카다피가 문제가 있긴 했지만 후세인과 카다피를 제거한 결과가 지금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단기적으로만 해결하려 들면 안 된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보고 대응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어요. 오늘날 유럽의 난민 사태도 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바아에 대한 공격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일은 미국이 저지르고 난민 사태는 유럽이 덮어 쓴 셈이잖아요.nbspnbspnbsp우리도 우리 문제를 좀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으로만 따지면 북한과 한 판 붙어서 혼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 전쟁이 나고 원자력발전소가 미사일 폭격을 당해 방사능 오염사태가 발생해서 피난 보따리 들고 다니게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중동 난민들도 제 땅에서 잘 살다가 전쟁이 나고 장기전이 된 탓에 난민이 되었잖아요. 내전은 장기전이 되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이렇듯 내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의 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는 길도 생각해야 해요. 장기적으로 평화가 정착되고 우리가 발전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긴 해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잘 사는 가운데서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야 합니다.”nbspnbsp미국에서 있었던 따끈따끈한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며 노력을 기울이는 스님의 노고가 고스런히 전해져서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평소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어려움에 대해 누구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분은 손을 드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총 4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한 남학생은 최근에 북한의 대남 도발이 있었는데 스님은 지금도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어떻게 평화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또 다른 남학생은 아빠가 북한에서 연탄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하다가 남북관계 때문에 갑자기 망한 적이 있는데 통일이 되는 쪽으로 교류협력이 잘 이루어지다가 갑자기 어긋나면 결국 북한 좋은 일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또 30대 아이 엄마는 딸아이가 손톱을 무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건망증이 심하고 덜렁대는 성격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특히 명상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준 부분이 많은 유익함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회생활에 어리버리해서 고민입니다. 건망증이 심하고 덜렁대는 통에 필요한 것들을 잘 빠뜨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잦습니다. 숫자에도 약해서 숫자 관련 작업은 검토를 여러 번 하느라 마감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저 때문에 동료들도 불편을 겪을 때가 많고요. 이런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고칠 수는 있을까요?”nbspnbsp“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런 걸 고치는 기술이 있으면 제가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요. 그건 병원에 가 봐야죠. nbspnbspnbsp화를 낸다거나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기억력이 부족한 걸 제가 어떻게 해주겠어요? 저도 못 고치고 있는데요. 하하하. 저는 누가 와서 인사하면 항상 ‘누구세요?’하고 물어봐요. 그리고 제 전화번호도 수첩에 안 적어놓으면 몰라요. 저랑 비슷하네요. 내 병도 못 고치는데 남의 병을 어떻게 고치겠어요? 그냥 그런 대로 사세요. 저도 잘 살잖아요.nbspnbspnbsp특별한 방법은 없고, 조금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알려드릴게요. 명상을 좀 하면 좋아요. 명상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명상이 아니라 나무토막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예요.nbspnbsp첫째, 마음이 편안해야 돼요. 마음이 불안해서 들뜨면 안 됩니다. 마음이 긴장되어도 안 돼요. ‘잘 해야지’ 하면 긴장하는 겁니다. 뭘 해야겠다는 의도가 들어가면 안 돼요. 아무 할 일 없이 편안하게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가지되, 들뜨거나 불안해하거나 긴장하지 않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nbsp둘째, 어느 한 군데에 딱 집중해야 해요. 가장 쉬운 게 호흡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들 눈을 감고 자기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시켜 보세요.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겠어요?”nbspnbsp스님의 안내에 따라 청중들도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장에는 순식간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 스님의 안내에 따라 명상을 해보는 청년들nbsp“알아차려지는 사람들은 손 들어봐요. 내가 숨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손 들어봐요. 이 사람들은 강시예요. 중국 귀신 강시 아시죠? nbspnbsp살아 있는 사람 치고 숨 안 쉬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평소에 자각을 못 해요. 조금만 딱 집중해보면 숨을 쉬고 있는 줄 알게 됩니다.nbspnbspnbsp셋째, 알아차림이 있어야 해요. 숨을 쉰다는 건 숨이 들어가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호흡 관찰 명상을 수식관이라고 부른다 해서 수를 헤아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안 돼요. 수식관은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숨이 나올 때 나오는 줄 아는 거예요. 숨이 가쁘면 가쁜 줄 알고, 숨이 고요하면 고요한 줄 아는 거예요. 숨을 빨리, 천천히, 혹은 깊이 쉬어야겠다며 어떤 의도를 하는 게 아니라 숨을 내버려 두는 겁니다. 숨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알아서 쉬어지잖아요. 바쁘게 뛰어다니거나 흥분하면 빨리 쉬어집니다. 빨리 쉬어졌다가, 천천히 쉬어졌다가, 규칙적이었다가, 불규칙적이었다가... 알아서 저절로 바뀌는데 그걸 ‘숨을 편안하게 쉬겠다, 고르게 쉬겠다’ 하며 의도하면 피곤합니다. 명상은 피곤하면 안 돼요.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코 끝에 마음을 딱 집중해보면 ‘숨 쉬고 있구나’ 알아집니다. 숨이 빨리 드나드는지, 천천히 드나드는지, 규칙적으로 드나드는지, 불규칙적으로 드나드는지는 상관 할 필요 없어요. 그 상태를 내가 알아차리는 겁니다. 알아차림이 있어야 해요.nbsp그런데 보통은 눈 감은 상태에서 편안하고 고요하면 3분 이내로 잠이 오죠. 잠이 올 때는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 상태가 돼요. 고요하면 금방 멍청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안 자려고 정신을 차려서 ‘호흡을 알아차려야지’ 하고 코끝에 딱 집중하면 애쓰는 게 됩니다. 긴장해버리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려 들면 긴장되어서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조건에 어긋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면 졸아서 멍청해져버립니다. 졸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을 해요. ‘어제 누가 뭐라고 했더라’, ‘커피 한 잔 마시면 좋겠다’, ‘내일 뭐 해야지’ 이렇게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생각으로 오락가락하느라 호흡을 놓쳐버립니다.nbspnbspnbsp편안하면 졸리거나 망상을 피워요. 그래서 정신을 차리면 긴장합니다. 이 둘을 다 뛰어넘어야 해요. 첫 번째,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두 번째, 마음을 코끝에 딱 집중해서, 세 번째, 들숨과 날숨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들숨을 들숨인 줄 알고 날숨을 날숨인 줄 알아야 해요. 길면 긴 줄 알고 짧으면 짧은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알아차리는 훈련을 명상이라고 하고, 이렇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명상법을 수식관이라고 합니다. 관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뜻이에요. 수식관은 가장 보편적인 명상법입니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과는 다릅니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은 의도적으로 숨을 길게 들이쉬어서 횡격막을 내리고 잠시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는 것으로 수련에 속합니다. 기를 한쪽에 모았다가 큰 힘을 내는 거예요. 그러나 수행은 수련이 아닙니다. 의도를 일으키면 안 돼요.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고요하고 편안한 가운데 코끝에 딱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뚜렷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뚜렷이 알아차림이 유지돼야 합니다. 아주 맑아야 해요. 번뇌가 막 일어나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호흡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질문자처럼 그렇게 멍청한 상태에 있으면 더 안 돼요. nbspnbspnbsp이렇게 계속 연습하면 집중력이 키워집니다. 옛날에 활 쏘는 사람들 보면 30미터 앞에 솔방울을 매달아놓고, 활을 바로 쏘지 않고 노려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보면서 솔방울이 북만큼 커져 보일 때까지 계속 집중하는 거예요. 드디어 솔방울이 커다랗게 보일 때 활을 딱 쏘면 조그만 솔방울에 화살이 딱 맞습니다. 그렇게 집중력을 키워주는 연습방법 중 제일 쉬운 게 자기 호흡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호흡은 항상 있어서 화장실 갈 때, 목욕할 때, 잘 때도 쉬지 않잖아요. 24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그래서 ‘목숨’이라고들 그래요. 살아 있는 한은 늘 호흡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딱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면 조금은 나아져요. 저도 원래 멍청했는데 조금 개선이 되었어요.” nbsp“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짧은 순간이었지만 스님의 안내에 따라 명상을 해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조금 더 높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상하게 명상의 원리와 방법을 설명해준 스님에게 질문자와 청중들은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연달아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통일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70분 동안의 즉문즉설이 끝나고 다음은 김제동씨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부모와 갈등없이 잘 지내려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통일 한국을 꼭 이룩해내야 한다는 점, 역사의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의병들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들려주며 70분 내내 청중들을 웃고 울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의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감명을 주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무조건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딱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게 있었어요. 바로 의병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비들이, 백정들이,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관리들은 다 도망가고 임금도 도망갔는데, 탄압받고 살던 사람들은 나라를 지켰습니다. 선조 임금은 도망갈 때도 가마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왜 백성을 두고 도망가십니까’ 했더니 ‘나는 죽더라도 천자의 나라에 가서 죽겠다’라고 했어요. 죽더라도 중국에 가서 죽겠다는 거예요. 그런 인간을 믿고, 그래도 내 나라라고,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 나라를 지켰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그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뒤 나라에서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평민 출신 의병장들은 공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지금 이 나라가 그 때의 조선과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르긴 다르죠. 앞에 ‘헬’자가 붙었어요. 그 때의 조선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이제는 헬조선입니다. 국호가 바뀌었어요. nbspnbsp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조선하고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 지금은 그래도 민주공화국 아니냐?’ 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nbsp의병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김제동씨는 국회의원이나 대사, 정치인 이런 사람들이 세월호에 타서 똑같은 사고를 당했다면 과연 국가의 대응이 똑같을지 반문했습니다. 잊혀져 가고 있던 세월호 이야기를 상기시켜주자 순간 강연장은 숙연함이 흘렀습니다. 70분 동안 진행된 김제동씨의 열정적인 강연에도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에 올라와 오늘의 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두 분에게 질문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강연장 밖을 나가면 또다시 막막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답변했습니다.nbspnbsp“나가면 어떡하겠느냐고들 하는데, 저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과정도 소중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20대인 여러분들, 지금 힘들지요? 학생은 공부하느라 힘들고 직장인은 직장 다니느라 힘들고 결혼 못한 사람은 결혼 못해서 힘들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30대, 40대, 50대를 지나 저처럼 나이가 들어서 20대를 보면 좋아 보여요. 밥 먹고 공부만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학생이 부러워요. 결혼한 사람들이 보면 처녀 총각이 부럽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가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에는 그때가 좋은 줄 모릅니다.nbspnbspnbsp작은 셋방을 얻은 신혼부부가 전세방을 얻으려고 열심히 돈을 아끼고, 전세 살던 사람이 10평짜리라도 자기 집을 마련하려고 아끼고 노력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좀 궁해 보여요. 그런데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 서로를 위하는 게 행복입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외식하자는데 ‘여보, 그 돈 나 줘’ 해서 절반의 돈으로 재료 사와서 집에서 요리해 먹고 나머지 절반은 저축하는 모습은 일견 궁색해보이지만, 그래도 지난 뒤에 보면 그때가 행복이에요.nbspnbspnbsp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이 참 행복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을 돌아보면 그게 다 내 인생에 경험을 축적해가는 과정이에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지, 인생이 따로 있고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nbspnbsp우리가 어떤 꿈이 있다면 그 꿈이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행복이 아니라 그 꿈을 향해서 우리가 노력해가는 이 삶의 과정, 넘어지고 자빠지는 그 삶의 과정이 다 행복이라는 거예요. 이걸 ‘유심정토’라고 합니다. 저 편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토는 ‘타방정토’라고 해요. 그 타방정토를 가기 위해서, 혹은 미래정토를 이루기 위해서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이 보람으로 충만한 것을 ‘유심정토’라 해요.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이 힘들지만 엄마에게 기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밖에 나가서도 이런 관점만 분명히 갖는다면 문제가 없어요.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만 가지 않고 항상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사는 청년들, 그런 기쁨을 갖는 청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nbsp과정이 곧 행복임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이 말씀이 감명 깊었는지 여러 사람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모두 이 구절을 언급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김제동씨도 스님의 이야기에 덧붙여 청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실 잘 안 될 때가 많지요. 잘 안 되는 것은 저희들끼리 여기서 털어놓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너도 안 괜찮고 나도 안 괜찮다. 그래서 괜찮은가 보다.’ nbspnbspnbsp스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여행갈 때를 보면 여행 다니는 순간도 좋지만 제일 좋을 때는 표 끊어놓고 예약하고 단톡방 들어가서 그날 기다리지 않게 일찍 오라고 서로 얘기하고, 여기저기 정보를 공유하며 여행을 준비하는 날들입니다. 막상 여행 가보면 고생길인데, 그렇게 준비하면서 기대하는 순간들이 여행의 반을 차지하잖아요. 그런 것이 우리의 유심정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기독교 말씀대로 하면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는 것, 성모님의 은총이 이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nbspnbspnbsp기쁨도 중요하지만 슬픔도 함께 나누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지금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다 행복의 씨앗이 되리라고 감히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마지막까지 웃음을 안겨주는 김제동씨에게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떠난 여행의 마지막은 노래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nbspnbspnbsp인디밴드 요술당나귀와 오늘 콘서트를 준비한 평화재단 청년포럼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함께 손을 맞잡고 ‘행복가’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는 후렴구 가사가 잔잔하게 울려퍼지자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두가 하나가 된 듯 다같이 양손을 좌우로 펄럭이며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양손을 함께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나와 행복으로 가는 꿀팁 2가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10월9일11일 2박3일 동안 예정된 ‘법륜스님 김제동과 함께하는 행복의 나라 청춘캠프’이고, 다른 하나는 11월1일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2015 청춘콘서트 피날레 무대 ‘행복의 나라 페스티발’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역으로 찾아가는 콘서트였는데, 두 행사는 전국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콘서트여서 더욱더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청년들은 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라고 인사하자 스님도 환한 웃음으로 “고마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그러면서도 스님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이 사인은 받아서 어디에 쓸려고 다들 그러노?” 라며 반문했는데, 청년들이 아무 대답을 안하자 “하긴 100년 동안 보관할 수 있으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며 다시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늘 콘서트를 위해 수고한 서포터즈 봉사자들이 모두 모여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놀러와” 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해 주었고, 김제동씨도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김제동씨에게 “그럼 10월 9일 청춘캠프 때 경주에서 봐요” 하며 인사를 건낸 후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미국에서 귀국한 시차를 극복해보고자 곧바로 잠자리에 들려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잠이 계속 오지 않아서 밤새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었습니다. 스님이 시차 적응을 마치려면 아마 몇 일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충북 금산에서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결집하는 통일의병대회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10월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10.03. 64,522 읽음 댓글 40개

2015.9.30~10.1 워싱턴DC에서 서울 도착

nbsp미국 및 워싱턴DC 일정 마지막 날인 오늘도 스님은 새벽 4시부터 혼자 법당에 내려와 명상을 했습니다. 5시부터는 법사님들, 정토회관 상주대중, 수련을 위해 어젯밤 뉴욕에서 내려온 임선희, 임금이님과 함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nbsp▲ 새벽 예불nbsp기도 후에는 잠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다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명상수련과 정토행자대회 장소였던 캠프장에서 주워온 도토리로 만든 묵이 쫀득쫀득하면서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남은 도토리도 잘 싸서 한국에 가져가려 했는데 어제부터 많이 내린 비 때문에 일부 도토리에 싹이 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모두들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래도 되도록 물기를 없애고 잘 포장해서 한국에 가져가 도토리묵을 쑤어 먹기로 했습니다.nbspnbsp짐을 모두 차에 싣고 출발할 준비를 마치자 스님은 지난 13일 간의 일정을 돌아보며 마음나누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명상수련, 정토행자대회, 워싱턴DC 일정까지 각자 소임을 하며 느꼈던 것들과 개인적으로 느꼈던 마음들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며 마음 나누기nbsp스님은 모두가 마음 나누기하는 것을 경청한 뒤 스님의 소감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앞으로 자원활동가 발굴은 뉴저지, 버지니아, 오렌지카운티 세 군데에서 할 만 한 것 같아요. 이 곳은 한국에서 말하는 가정 주부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해외는 사실 가정 주부라 할 만한 분들이 많이 없어요. 이 세 군데에서는 한국의 정토회처럼 상근 자원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 볼 만 합니다.nbspnbsp그리고 가끔은 총괄이 팀장이나 담당자, 실무자에게 직접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간 사람을 통해서 전달하다 보면 좀 복잡한 내용은 100 전달이 안 될 때가 많아요. 업무를 나눠서 하되 가끔은 실무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가끔 전체 회의를 해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해요. 전체 회의를 통해 각자 부분만 아는 게 아니라 전체를 알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nbspnbsp이번 워싱턴DC 일정은 디트라니 대사가 주선한 모임이 참 좋았습니다. 미국 보수층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고위 관료 출신의 보수주의자들이었는데 큰 거부감 없이 제 이야기가 받아들여졌어요. 충분히 대화하면 더 많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요. 미국인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편향적인 것 같아요.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힘있는 사람은 자기 식대로 하는 것을 법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고생 많이 했어요. 그래도 노는 것 보다 낫잖아요.”nbspnbspnbsp스님은 이번 미국 방문 일정을 준비하고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마치고 모두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부터 있을 나눔의 장 수련 준비를 위해 묘덕 법사님과 일부는 정토회관에 남고 스님은 덕생법사님, 무변심법사님, 최말순님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스님은 한국으로 보낼 급한 원고를 수정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기 위해서 항공사 카운터에 가니 미국 항공사인 델타항공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계 직원이 스님을 알아보고선 반갑게 인사를 하며 수속을 잘 마쳐 주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이동할려고 하니 항공사 카운터 직원이 스님과 사진을 한장 찍고 싶다고 하여 스님은 흔쾌히 사진 촬영에 응해 주었습니다.nbspnbsp▲ 델타항공사 한국계 직원과 함께nbsp스님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 처럼 디트로이트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게이트 앞에서 운전하고 온 민덕홍님, 그리고 한국으로 함께 가는 법사님, 최말순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격려한 후 게이트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이렇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애쓰는 스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17시간을 비행하여 하루가 지난 10월 1일 오후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도착nbsp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한 스님은 짐을 풀고 나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10월, 11월, 12월 강연 일정과 행사 일정을 점검하며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에 서울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했다가 아침부터는 평화재단에서 연달아 회의 및 미팅 일정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김제동씨와 함께 청춘콘서트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2015.10.03. 26,708 읽음 댓글 43개

2015.9.29 워싱턴DC 2일째

nbsp워싱턴DC 일정의 두 번째 날인 오늘, 스님은 새벽 4시에 법당으로 내려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5시부터는 법사님들, 최말순님, 그리고 미주 정토회관 상주대중들과 함께 예불을 한 뒤 내일부터 진행될 깨달음의 장 수련을 위해 LA로 출발하는 묘당 법사님과 인사를 하고 나서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조찬 모임이 있어 아침식사는 하지 않고 6시 40분에 회관을 출발했습니다. 출근 시간과 겹쳐 약속 시간인 8시가 다 되어서야 행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조찬 모임은 스님과 오랜 친분이 있는 디트라니 대사님의 초대로 INSA에서 열렸습니다. INSA는 민, 관, 학계의 정보 및 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비영리, 비정파적인 단체로 미국 내 보수적인 입장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5년 북한과의 9.19 합의를 이끌어 내었던 디트라니 대사님이 소장으로 있는 곳입니다.nbspnbsp▲ 디트라니 전 대사nbsp디트라니 대사님은 참가자들에게 스님을 소개했고 이 모임의 의장인 밥 조제프 대사님부터 서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개를 하였습니다. 오늘 미팅 참가자들은 INSA 소속 아시아 태평양 태스크포스 소속 구성원들로 전 국무부 차관을 포함하여 모두 국무부, 정보국, 국방부 출신의 전직 고위 정부 관료들이었습니다.nbsp▲ 스님에게 인사하는 밥 조제프 INSA 아시아·태평양 TF팀 의장nbsp아시아 태평양 태스크포스는 아태 지역의 정책과 전략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정책, 국방, 경제에 관해 포괄적인 백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북한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스님에게 인권, 인도적 지원, 정치 상황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세력균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청했습니다.nbsp먼저 스님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발제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밥 조제프 의장과 디트라니 전 대사nbsp“국무부나 의회에 가면 항상 현안만 얘기해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습니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마침 오늘 과거 미국 정부에서 장기적인 전략을 담당하셨고 앞으로도 기여하실 분들이라 오늘 저에게는 좋은 만남입니다. 우선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디트라니 대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0년 전 9.19 합의가 이뤄졌을 때 그 날이 한국의 추석날 아침이었습니다. 전 아직도 한반도 해결에 있어서는 그 방법 외에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 먼저 발표하고 뒤이어 어제의 다른 미팅들처럼 북한의 식량상황, 북한의 가뭄, 홍수피해, 전반적인 경제 상황 등을 간단히 얘기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 전원이 전직 고위관료들이라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금방 이해를 했고, 다양하고 예리한 질문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 한·미·일 관계에 대한 스님의 답변 중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반성 없이는 한일 관계는 군사적으로까지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생각해 볼 때 일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근대의 일본만 알기 때문에 일본을 높이 평가하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점이 서양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되잖아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근세에 와서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지 그 전에는 일본이 훨씬 후진 문화국이었어요. 400년 전에 일본이 침공한 적이 있었지만 그 때도 왕이 도망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백성들이 일어나서 왜군을 막았어요. 이런 정서를 미국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과 일본 관계를 군사적으로 더 가깝게 하라는 건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당분간 미국은 군사적인 면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따로 따로 동맹 관계를 맺어가는 게 더 좋습니다. 통일된 이후에는 일본과의 군사 협력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자기 민족을 상대로 해서 식민 지배를 한 일본과 군사적으로 손을 잡으라고 하는 것은 한국민의 정서 상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nbspnbsp그래서 일본의 군사력 확장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우 과거에 같은 피해자인 중국과 그 정서가 더 가깝습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할 때 많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혹은 국민당 아래에서 혹은 공산당 아래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중국 항일 전투부대 안에 한국인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미국이 지금 북핵 문제 해결에만 너무 포커스를 맞추어 대북 봉쇄 정책을 펴며 중국이 북한을 컨트롤하도록 하는 무시 전략 말고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장기적 전략에 포커스를 맞추어 한반도 통일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을, 그럴려면 북한과의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참석한 분들은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모두들 “오늘 좋은 시간을 가졌다”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시간 동안 워낙 심도있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훌쩍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디트라니 대사님도 이번 조찬 모임에 크게 만족해 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서 두 분은 대화를 더 이어갔습니다. 스님이 INSA 대표로써 이렇게 초청해준 디트라니 대사님과 INSA 부대표님,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테스크포스팀의 의장인 밥조셉 대사님에게 영문책 ‘깨달음’을 선물하니 모두들 무척 기뻐했습니다. 특히 부대표님은 작년에 이어서 이렇게 다시 방문해주어서 감사하다고 다시 한번 스님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대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와 다음 미팅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식당에 가서 요기를 했습니다. 아침에 차가 막히는 바람에 식사할 여유도 없었는 데다 스님은 발표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느라 준비된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해 함께한 일행들도 오랜만에 맛있게 빵과 샐러드를 먹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스님은 다음 미팅에 필요한 자료를 읽었습니다.nbspnbsp▲ 미팅에 필요한 자료들을 읽고 있는 스님nbsp다음 약속 장소는 미 하원 의원 사무실이 모여 있는 워싱턴DC 동남쪽의 레이번 빌딩이었습니다. 여유있게 도착했지만 건물로 들어가기 전 짐 검사와 신분증 검사를 받기 위한 줄이 건물 바깥까지 늘어서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늘 만나기로 한 찰스 랭글 의원님도 이전 회의가 조금 늦게 끝나서 서로 많이 기다리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nbsp찰스 랭글 민주당 의원님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의원님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서 한반도 관련 이슈에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미 하원 흑인 의원 모임의 창립 멤버이며 현재 23번째 임기 중인 원로급 의원으로서 저소득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소수 인종과 소수 민족의 권익을 옹호하는 법안을 많이 발의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한미 관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이며 최근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련한 의회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하였습니다. 2013년도에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권장하는 결의안을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이산가족상봉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결의안을 지지하였고, 최근에는 한반도에 전쟁 종식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세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던 분입니다.nbspnbsp▲ 롱워스 하원 빌딩nbsp먼저 레이번 빌딩의 의원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보좌관의 안내를 받아 롱워스 빌딩 안에 자리한 조세위원회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에는 의원님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서로 처음 만났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찰스 랭글 미국 민주당 의원nbsp의원님은 “지난 3일 동안 교황님께서 미국 및 국회를 방문하였는데 오늘 또 이렇게 스님을 만나게 되니 저는 아주 복이 많고 영적으로 풍부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스님의 방문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도 이렇게 의원님이 한반도의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해서 꾸준히 활동하고 결의안을 만들어서 환기를 시켜주는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이번에 준비 중인 한반도의 전쟁 종식 선언 발의안을 한국 국민들과 미국계 한국인들과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동국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에 대해 축하를 드렸더니 불교 학교에서 주는 박사 학위라서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북한 상황 및 한반도의 평화와 종전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북한주민들의 식량상황, 경제사정 등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의원님은 스님 같은 분을 만나서 본인이 아주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도 “의원님은 목사님, 신부님과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들 보다 더 영적인 말씀을 해주신다”고 하면서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은퇴할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이 땅에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보자”고 하면서 예정된 미팅 시간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을 늘려서 얘기를 이어나갔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스님은 랭글 의원님에게 영문 번역책 ‘깨달음’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깨달음 책을 선물받은 찰스 랭글 의원nbsp그리고 랭글 의원님과의 미팅을 주선한 한인 보좌관 김해나씨에게도 영문 번역책 ‘깨달음’을 선물하였습니다.nbspnbsp▲ 랭글 의원님과의 미팅을 주선한 김해나씨nbsp예정보다 미팅을 늦게 마쳐서 부랴부랴 다음 일정이 있는 국무부로 향했습니다. 국무부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주한 미 대사를 역임하고 다시 북한 관련 특사로 부임한 성김 대사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아태과에 도착하니 성김 대사가 입구로 마중을 나와서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성김 대사와의 미팅nbsp두 분은 이전에 북핵 문제에 대해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이번 대화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특히 스님은 오전에 INSA에서 디트라니 대사를 비롯해 원로 분들과 미팅을 가졌던 얘기를 나눠주면서 미국의 전략적인 입장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성김 대사도 스님이 오전에 많은 분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였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스님은 성김 대사님에게도 영문 번역책 ‘깨달음’을 선물하였습니다.nbspnbsp이어서 한국과로 자리를 옮겨서 한국과의 북한데스크 담당자 및 직원, 그리고 관련 부서 직원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늘 국무부를 찾아주시고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로 스님의 방문에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 스님은 다른 미팅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북한 식량사정, 북한 가뭄 및 홍수피해 등 북한의 상황 전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농업 개혁 등을 포함하여 북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번에 새로 부임한 마크 램버트 한국과장님이 급한 일로 다른 건물로 출타를 하여 스님을 못뵙게 되었는데, 마침 미팅을 마치고 나오니 램버트 과장님이 급히 들어오면서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미 국무부 마크 램버트 한국과장nbsp램버트 과장님은 “맨스필드 프랭크 자뉴찌 소장과 친구인데 스님을 만나라고 한 것을 전달받았는데 다른 업무가 미리 잡혀 있어서 미팅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면서 “다음 번에는 꼭 시간을 내어서 스님에게 한반도 문제 전체에 대해서 배우는 기회를 가지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워싱턴DC에서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어제부터 습도가 높고 무더웠는데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통역 봉사를 해 준 제이슨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고 다음에 만나자고 한 후 헤어졌습니다.nbsp저녁에는 워싱턴DC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와 번영 포럼에서 법륜 스님의 워싱턴DC 방문을 기념하여 통일 강연을 열고 싶다는 요청이 있어서 조촐한 통일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은 오후 7시부터 워싱턴DC 지역의 한국 교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100년을 여는 법륜 스님의 통일이야기’라는 주제로 ‘버지니아 성공회 성십자가 교회’에서 열렸습니다.nbspnbsp강연 전에 PNP포럼 대표인 윤흥로 박사님과 희망연대의 이재수님 부부, 김마리님 등과 같이 행사장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여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스님은 차량 뒷자리에 누워서 식당으로 가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고 교통사고도 많이 나서 함께 식사하기로 한 윤흥로 박사님은 바로 행사장으로 가고, 대신에 이재수 선생님 부부가 스님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함께 저녁을 먹고 바로 행사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대접한 이재수님 부부에게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행사장에 도착하니 워싱턴정토회 식구들이 비를 맞으면서 주차 안내 봉사를 하며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정말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PNP포럼의 대표인 윤흥로 박사님이 나와 법륜 스님을 초청한 이유를 소개해 주었고, 이어서 사무총장으로 있는 홍덕진 목사님이 법륜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로 걸어나왔습니다. nbspnbsp▲ 스님을 소개하는 윤흥로 박사님nbsp스님은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참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한 후 초청해준 PNP포럼 대표 윤흥로 박사님과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첫줄에 청소년 삼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자 자발적으로 왔는지, 엄마따라 왔는지 묻기도 하면서 정겹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삼형제에게 정겹게 인사를 건내는 스님nbsp총 9명이 마이크 앞에 나와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14살된 한 청소년은 조금 서투른 한국말로 “엄마가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매일 보고 있는 덕분에 아버지도 없는 가운데 우리를 잘 키워주고 있는 것 같다”며 “스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인사를 했는데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청소년nbsp특히 오늘은 통일 강연이라서 통일에 대한 질문들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한 남성 분은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데 과연 우리가 통일을 할 수 있는지, 정부가 통일에 소극적인데 민간이 노력한다고 과연 통일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한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탈북자들을 도우면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하는데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은지,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 한반도의 통일에 도움이 될지 물었습니다.nbspnbsp다른 분은 한국 사회는 분열이 되어 있는데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기 보다는 스위스처럼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좋지 않는지, 일본이 군사 대국화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남성 분은 앞으로 북한과 경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야 하는데 지금 북한의 경제 사정은 어떠한지, 남북 경협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지 물었고, 한 여성 분은 어떻게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통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한 어머니는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이 뛰었는데 아이들은 그저 그런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지 물었고, 연세가 있는 남성 분은 보수 언론이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물었고, 젊은 청년 한 명은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사는 것이 많이 힘든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미국 시민권자로서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오늘 강연에 오신 분들 중에는 비록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은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nbsp“미국 시민권자이니까 미국 정부에 영향을 줄 수 있겠죠. 만약 삼성 주식을 조금 갖고 있으면 삼성에 전화를 해서 ‘내가 주주인데 너희가 경영을 좀 똑바로 해라’ 얘기할 수 있듯이 내가 미국 시민권자라면 미국 정부나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상원이나 하원에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 ‘한반도가 통일될 수 있도록 너희가 역할을 좀 하라’고 건의를 할 수 있겠죠.nbspnbspnbsp‘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미국이 도와줘서 고마웠다. 그러나 한국이 이렇게 분단이 된 것은 미국의 책임도 동시에 있다. 한국 국민들은 간절히 통일을 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를 좀 해달라’nbspnbsp이런 건의를 계속 보내고, 선거할 때도 질문자는 의료보험을 얼마나 내는지 이런 것보다는 한반도 정책이 통일에 기여하는 쪽인지 아닌지를 보고 투표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다 통일 운동입니다. 이런 작은 티끌들을 모아야 변화가 옵니다. 미국에 있는 시민권자 100만명이 전부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한다면 엄청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끼리는 조금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방향으로는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잖아요.nbspnbsp적어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모두 동의를 한다면 미국이 휴전 당사국이니까 종전 선언을 하는 데에 앞장서라고 요구를 할 수 있겠죠. 통일은 우선 내버려 두고서라도 한반도에 적어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미국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nbspnbsp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저도 미국까지 와서 영어도 안 되는데 통역까지 대동해서 하루에 여섯 팀을 만나가면서 ‘왜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제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나누었어요.nbspnbsp‘미국이 중국을 압박해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첫째 성공하기도 어렵고, 둘째 성공을 해도 나중에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데 과연 이것이 잘하는 것이냐. 오히려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북한이 이런 점을 우려하니까 그 문제를 미국이 해결해주면 북미 관계가 개선될 것이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서 미국이 주도한 통일이 되면 통일된 한국이 미국 영향권에 있게 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볼 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미국에게 이롭지 않느냐.nbspnbsp만약 북한을 중국이 컨트롤하도록 해주면, 즉 북한이 버티다가 중국 쪽으로 넘어지게 되면,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게 되고, 북쪽은 중국이 관할하게 되니까 이것은 결과적으로는 제3의 카스라테프트 협약이 되지 않느냐. 필리핀은 미국이 가져가고, 한반도는 일본이 가져가는 제1카스라테프트 협약에 이어서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을 소련과 미국이 나눠갖는 제2카스라테프트 협약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북한 핵문제만 해결하면 북한을 중국이 가져가도 좋다는 제3의 협약을 또다시 하려고 하느냐. 그것이 미국에게 과연 이익이 되겠느냐.nbspnbsp미국이 전선을 휴전선에 두겠다고 하는데,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에게 의존하고 산 이유는 미국이 북한을 막아주니까 그런 것인데, 이제 북한을 중국이 컨트롤하면 우리가 미국에게 안보적으로 의지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느냐. 지금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류가 2배가 넘는데 여기에 안보까지 중국이 컨트롤해 준다고 하면 우리가 통일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협상을 해야 된다. 그래서 중국과 협상해서 통일을 하게 되면 결국 통일된 나라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나라가 될 것 아니냐. 왜냐하면 통일을 하려면 한국은 중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니까. 그러면 전선이 대한해협으로 가게 된다. 어떤 것이 너희들에게 이익인지 잘 좀 생각해 봐라.‘nbspnbsp이렇게 미국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너희는 왜 너희 이익만 생각하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이익을 위하며 사는데 그걸 나무라면 안 되죠. 자기 이익도 못 챙겨먹는 사람이 바보죠. 이렇게 미국의 보수 세력이 설득되어야 한반도 정책도 바뀌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에 사는 저도 이렇게 미국까지 와서 설득을 하는데 질문자는 미국 시민권자이니까 영어도 할 줄 알고 직접 설득할 수 있잖아요. 저는 통역을 늘 데리고 다녀야 하거든요.nbspnbspnbsp미국 시민권자로서 미국의 이익도 보장하고 한국의 이익도 보장해주는 방안을 찾아서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괜히 한국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관심 갖지 말고,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면 미국이 한반도 정책을 통일 쪽으로 바꾸도록 힘을 쏟아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nbsp질문자는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큰 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많은 분들이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제는 통일하지 않으면 미·중 사이에서 남한은 미국의 아래에서 북한은 중국의 아래에서 또 다시 지난 100년처럼 분단된 채로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한다면 새로운 동북아 질서에서 균형자 역할을 함으로 인해 동아시아 평화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갈등의 중심이 될 것인지, 동아시아 평화의 중심이 될 것인지 그 키는 통일에 달려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어떤 대통령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성장은 어렵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고 일본의 장기 불황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그 돌파구는 통일 밖에 없습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포용해서 그 양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면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한 사회가 갖고 있는 양극화 문제도 해소해야 합니다. 성장이 안 되는 상태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려면 많이 가진 사람들의 것을 뺏어야 하는데, 많이 가진 사람들은 내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부 갈등이 엄청나게 심해집니다. 그러나 성장을 해나가면서 분배 문제를 풀면 지금 가진 것을 내어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가질 것을 내어놓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항이 좀 적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분배 문제도 성장을 하는 과정 속에서 풀어나가야 분배가 용이합니다. 성장이 정체된 상태에서 분배 문제를 다루면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해집니다. 그래서 남한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일이 필요하고, 북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통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우리는 좋지만 주변국이 손해보는 통일은 이제는 국제 사회에서 용납이 안 됩니다. 우리의 통일이 일본에게도 유리하고, 미국에게도 유리하고, 중국에게도 유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즉 동독과 서독이 유럽 통합의 큰 틀 속에서 통일을 추구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지 주변국에 위협이 되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제 폐쇄적 민족주의는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정체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웃과 협력 관계로 가는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지 한미 동맹을 반미로 가져가면 통일은 실현 불가능합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까지 치뤘지만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그런 미국과도 손을 잡고 자주성을 지키려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한미 동맹을 반미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다만 우리가 어려운 시기일 때 맺은 한미 동맹은 종속적 한미 동맹이에요. 이제 우리가 어느 정도 커졌으면 자주적 한미 동맹으로 바꾸어야 ?니다. 즉 미국에 대해서 종속적 한미 동맹을 자주적 한미 동맹으로 바꿔나가는 것과 반미를 하는 것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한미 동맹은 견고하게 유지해야 하지만 이제 종속적인 관계를 자주적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자주적이냐 종석적이냐의 핵심은 적어도 한미 동맹에 있어서 한반도에서의 이해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중심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만 잡아버리면 그것은 한국의 이익과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을 미국에 관철시켜야 하고, 다른 세계 문제는 우리가 미국의 이익에 협력하는 새로운 한미 관계를 적립해 가야 합니다.nbspnbsp그럴려면 남한의 지도자가 자기 정체성과 자주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지도자는 그 점이 부족합니다. 반면 북한의 지도자는 배타적인 것이 문제죠. 그래서 이제는 융합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희망이 있습니다. 그 첫발이 통일코리아를 이룩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통일코리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는 중심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21세기 말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오게 되고, 그 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서 있는 꿈을 우리가 그려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서 한국 사람으로서 기죽고 살지 마세요. 5천년 역사 중에 대륙의 변방에 떨어진 것은 발해 멸망 이후에 딱 천년 밖에 안 됩니다. 지난 4천년 동안은 우리가 동아시아의 중심국가였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이 천년의 한을 푸는 것도 됩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부족한 자기 정체성을 갖게 해줄 것이며 외국 사람들을 대할 때도 심리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통일을 해야만 이런 열등의식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통일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nbsp21세기 말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서 있게 되는 꿈을 그려보자는 말씀에 청중들도 가슴이 뛰었는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오늘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있는 날은 스님도 그렇고 스님을 모시고 일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도 모두 힘이 듭니다. 도시를 옮겨가면서 강연을 할 경우에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거나 휴식을 할 수 있는데 워싱턴DC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미팅이 잡히다보니 오늘도 16시간 동안의 일정을 소화하였습니다. 오늘도 휴식 시간이 거의 없이 일정을 보냈기 때문에 강연을 시작하자 마자 스님의 목소리가 탁해지고 갈라졌습니다. 그래도 마이크를 잡자 스님은 다시 기운을 내어 무사히 2시간의 강연을 관중들과 호흡하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후 미주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운전 중에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차선도 보이지 않고 정말 위험하였습니다. 회관에 복귀한 후에는 내일 일정을 잠시 공유하고 바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nbsp

2015.10.02. 25,160 읽음 댓글 38개

2015.9.28 워싱턴DC 한반도 전문가 미팅 1일째

nbsp오늘부터 이틀 동안 스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워싱턴DC의 정계와 학계, 씽크탱크 등에서 일하는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과 교류하는 일정을 갖습니다.nbspnbsp숙소인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5시에 법사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 후에는 원고 교정을 보다가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20분에 바로 워싱턴DC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 및 기도nbsp오늘 첫 일정은 9시 30분에 맨스필드 재단 프랭크 쟈뉴찌 소장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출근 시간과 겹치다 보니 길이 많이 막혀 겨우 시간에 맞추어서 미팅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nbsp맨스필드 재단의 프랭크 쟈뉴찌 소장은 스님의 오랜 친구로서 미 국회의 상원에서 조 바이든 의원, 존 케리 의원 등을 보좌한 민주당의 선임 보좌관이자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전문가입니다. 한반도 평화 문제 및 북핵 문제, 북한의 인도적 지원, 북한 인권 문제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문제와 관련하여 스님과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 받고 스님에게 자문을 받아 온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 상관이었던 바이든 의원이 부통령이 되고 오바마 2기에 존케리 의원은 국무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국회에서 나와 맨스필드 재단의 소장이 되어서도 스님과 계속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로 미팅을 하고 있습니다. 1년 만에 만나는 두 분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nbspnbsp▲ 프랭크 쟈뉴찌 소장과의 만남nbspnbsp먼저 미국의 대선 분위기 등에 대해 문의를 하고, 현재 미국에서 민주당 쪽에서는 샌더스 의원, 공화당 쪽에서는 트럼프 후보 등이 왜 지지를 받고 있는지, 이런 양극화 현상이 왜 생기는지 등에 대해서 문의하였습니다. 1989년부터nbsp미국의nbsp일반 가정은 임금 상승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서 국가는 부자가 되었지만 그 부는 상위 12에게로 갔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일반 국민들이 불만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이 불만스러워하자 공화당과 민주당은 인식은 같이 하고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른 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공화당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하는 것을 얘기하고, 민주당은 공교육을 강화하고 의료 시설과 복지 분야를 개선하는 것 등 정부한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여서 서민들에게 혜택을 돌리자고 하는데, 원인은 같지만 해결책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르다고 했습니다.nbspnbsp이런 얘기들로 대화를 시작해서 미국의 현재 국내 정치상황, 경제상황, 스님이 뉴욕에 도착해서 한국 교민을 만났을 때 교민들이 실제 느끼는 체감 경기, 경제 불안감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다음으로 북한의 식량상황, 가뭄피해, 홍수피해, 경제상황, 식량가격변동 등 현재 북한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였습니다.nbspnbsp약 2시간 동안 프랭크 쟈뉴찌 소장과 동북아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 미국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미국의 전략에 대해서 스님은 다음과 같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지금 미국의 대북 정책은 북한 정부에 계속 압박을 가함으로서 정책을 바꾸거나 정권이 몰락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현 정부가 몰락할 때 어떤 정부가 들어설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북한에서는 친중 정권이 들어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여 경제도 개선되고 인권도 조금 개선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안보 우산과 경제 우산 아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살펴봐야 합니다.nbspnbspnbsp우선 첫째,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면 중국 해군이 동해에 진출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이것은 어쨌든 장기적으로 볼 때 아시아 전체의 안보 문제에 있어서 힘의 균형을 깨거나 갈등을 초래하게 됩니다. 중국은 동해로 진출하는 것이 오랜 꿈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나진 선봉에 부두를 하나 장기 임대하여 경제적으로는 길을 하나 뚫었습니다. 현재는 동북 지역에서 나온 석탄을 해로를 통해 상하이로 운반하는 것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로만 끝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진이 군사 기지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nbspnbsp둘째,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북한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면 한국은 더 일본과 미국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nbsp왜냐하면 첫째,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너무 긴밀히 협력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는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을 콘트롤해 준다면, 한국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점점 더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은 어쨌든 계속 통일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통일을 하기 위해 중국과 협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은 통일한국이 중국과 우호관계가 되는 그런 통일한국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한국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2030년 뒤를 본다면 이것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올바른 정책이 아닙니다.nbspnbsp저는 미국이 늘 단기적 이익 때문에 장기적 손실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은 물론 독재자입니다. 그러면 후세인을 제거한 지금의 이라크가 그 전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카다피도 독재자입니다. 그러나 카다피가 없는 현재의 리비아가 리비아 국민에게 또 미국에게 더 나은가요? 시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사드 정부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사드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nbspnbsp우리는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보고 대응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사실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에만 너무 집착하다 보면 전체 판을 어그러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무성 관리들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미국 정부에 제안하는 것은 미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핵을 포함하지만 핵을 넘어서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핵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핵개발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미국과 북한은 충분히 대화가 가능합니다. 일단은 미국이 북한의 체재를 붕괴시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의 집권층은 자기체제만 유지하도록 해주면 오히려 친미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을 컨트롤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면 통일된 한국이 중국 쪽보다는 비교적 미국 쪽에 근접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처지로 볼 때 일본처럼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미국에 근접한 나라로 만들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반도의 통일 정책은 한국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됩니다.nbspnbsp그리고 핵무기는 통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폐기해야 합니다. 현재 상태에서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게 되면 북한의 핵문제는 아직은 큰 위협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핵개발을 계속 방치하게 되면 핵물질의 양과 핵기술이 빠른 속도로 증대되어 위험도가 높아지게 됩니다.nbspnbsp현재의 북한 내 민족주의 세력이 계속 북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서 저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국, 미국, 한국의 삼자가 다 이렇게 북한을 압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넘어지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져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중국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8090퍼센트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중국에 좋은 일을 시켜주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는 중국이 북한의 제제에 동참해준다고 좋아합니다. 중국은 미국이 더 강하게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 정책은 중국이 더 큰 역할을 할 것을 요구하며 기다리고만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동아시아 전략을 어떻게 할 것인지, 특히 한반도 전략에 대해서 수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북한이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 버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핵문제의 위험이 점점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버티지 못하고 변화가 온다면 그것은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친중 정부 쪽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어느 쪽이 되든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국 쪽은 아마 북한 정부가 개방 쪽으로 정책을 바꾸든지 아니면 체제 변화를 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둘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도 북한이 워낙 강경한 세력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조금씩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에게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 편을 들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국 중심으로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듯한 태로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지금 굉장히 고무되어 있습니다. 중국 정부와 협의를 해서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굉장히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nbspnbsp그리고 사드 배치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드 배치가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고 하지만 누구나 다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결정이 되면 한국은 중국과 굉장히 어려운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첫째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 입니다. 둘째는 중국이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중국은 북한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원하는 그런 통일은 훨씬 더 힘들어지게 될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쉽게 사드 문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사드에 대한 경비를 한국 정부가 지불하고 콘트롤은 미국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여기에 동의하지만 한국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아직은 잘 버텨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압박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한국 안에는 좀 더 민족주의 세력이 강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미사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 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압박이 비공개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일반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압박을 조금 늦추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nbspnbsp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과 미국의 이해는 대부분 일치했지만 이런 문제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의 특수성을 이해하면서 접근해야지 모든 것을 미국의 이익에만 맞추어서 움직이게 되면 결국에는 한미 관계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nbspnbsp지금 한일 간의 군사협력도 한국 국민이 흔쾌히 내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국도 일본도 내 친구이니 너희들도 친구하면 좋겠다는 것인데 현재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한일은 과거에 원한이 있었던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에 미국은 각자 따로따로 관계를 맺으면서 다르게 접근해서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이후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통일된 한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분단된 한국은 분단된 상태에서 과거에 적이었던 일본과 손을 잡고 동족인 북한을 적대하는 것이 미국이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국 국민의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기가 어렵고, 또한 한국 국민들의 정서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일된 한국이 일본과 협력하여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미일 동맹 체제에 한국을 집어넣을려고 하는 것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성공하더라도 부작용이 많을 것 같습니다.nbspnbsp그래서 제 생각에는 결국 38선이 nbsp미국과 중국의 힘의 전선이 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니 압록강두만강이 전선이 되든지, 대한해협이 전선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북한을 포용하게 되면 압록강두만강이 전선이 될것이고, 북한을 중국 쪽으로 밀어주게 되면 전선은 대한해협이 될 것입니다. 38선을 전선으로 잡겠다는 것은 현실 가능성도 없고 한국민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nbspnbsp미국이 조금 더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동아시아 및 한반도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는 말씀이였습니다. 프랭크 쟈뉴찌 소장도 스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준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은 중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아주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압록강두만강 또는 대한해협 전선은 미국에 있어서 아주 강력한 주장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장시간 동안의 회담을 마치면서 다음 번에는 더 나은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취해보자고 하였습니다. 이어 스님은 영문으로 번역된 깨달음 책을 선물하고 다음 미팅을 기약하면서 인사를 한 후 다음 미팅 장소인 NCNK에 도착하였습니다.nbspnbsp전미북한위원회에서는 한반도 관련 연구자들과 함께 오찬을 겸한 라운드 테이블 미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행사 시간인 12시에 맞춰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고, 사무총장인 키쓰 루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키쓰 루스 총장은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리처드 루거 공화당 상원의원의 동아시아 정책 선임 보좌관을 지낸 아시아 전문가입니다.nbspnbsp지난해 7월에 NCNK의 사무총장이 된 키쓰 루스 님은 사무총장이 되고 나서 이렇게 스님을 모시고 NCNK에서 라운드 테이블 미팅을 가지게 되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였고 스님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 nbsp전미북한위원회nbsp키쓰 루스 사무총장nbsp키쓰 루스 님은 15여년 전에 앤드류 나찌오스 처장님의 소개로 USAID에서 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스님은 북한의 기아 상태 및 북한의 식량문제를 국제사회로 알리면서 USAID 및 미국 사회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지도록 하였고, USAID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분이라고 스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의회에 있을 때 의회, 서울, 베이징 등에서 스님을 만나왔고 오늘 여기에서도 스님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오늘 미팅에는 약 20여명 정도가 모였는데 국무부 뿐만 아니라 워싱턴DC에 있는 여러 싱크탱크 및 NGO등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nbspnbsp▲ nbsp국무부 및nbsp워싱턴DC에 있는 여러 싱크탱크 및 NGO 관계자들과의 미팅nbsp스님은 초대하여 준 키스 루쓰 사무총장님에게 감사드린다고 하면서, 북한의 농업식량 상황, 최근의 북한 홍수 피해상황, 가뭄에 의한 황해남북도의 식량사정의 어려움, 식량가격변동 등에 대해 발표한 뒤 인권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를 망라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 1시간 30분 동안의 미팅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nbspnbsp“대화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면서 욕설하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저는 이것은 독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에서 보면 북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황과 처지에 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1차적으로 어디까지 타협이 가능한가를 점검해야 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북한인권문제를 보면 첫째, 북한도 국제인권선언에 서명했으니 그것에 근거하여 북한의 법률에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제기하여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도 하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북한 법에도 인권이 보장되도록 되어있는데 실제로 북한이 법을 적용할 때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이때 너희들 법에 규정된 것을 제대로 지켜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도 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헌법이든, 형법이든 인쇄를 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것을 보게 된다면 법이 현실에서 실행이 안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관리에게 항의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검찰이나 경찰이나 범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폭력적입니다. 이 사람들을 교양시키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북한과 협의하여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에 보장된 인권을 지키도록 훈련시키는 프로그램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안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접근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지금까지의 북한인권운동는 북한인권이 열악하다는 것을 북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발전이 안 됩니다. 북한 안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와야 합니다. 안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북한 정부와 인권문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인권을 억압하는 중요한 이유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입니다. 국가이익, 국가안보라는 측면에서 인권침해를 부당하게 겪고 있으면서도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인권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에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소리친다고 개선이 되는 것은 nbsp아닙니다. 그러므로 북한인권이 개선되도록 먼저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nbspnbsp현실적으로 어떻게 인권을 개선할 것인지 스님은 하나하나 문제를 짚어가면서 말해 주었습니다. 참가한 모든 분들이 큰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이번 모임을 주최해 준 키쓰 루스 소장님과 프로그램 오피서 댄 워츠 님에게 영문 깨달음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오늘 이 모임에는 비교적 소장파들이 참석을 하였는데 스님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몇몇 분들은 스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곧이어 다음 미팅이 있어서 인사를 하고 바로 나왔습니다.nbsp다음 일정은 WFP의 워싱턴 소장으로 있는 존브라우쓰 소장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전 미팅 장소인 NCNK와 2블럭 정도 떨어져 있어서 워싱턴DC의 가을도 즐길 겸하여 걸어갔습니다. 아직 햇빛이 강렬해 날씨는 덥기까지 했지만 길가 곳곳에 국화가 피어있어 가을 정취가 흠뻑 났습니다.nbspnbspnbsp▲ nbsp워싱턴DC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스님nbsp존 브라우스 소장님은 USAID의 아시아 개발 책임자로서 오랫동안 대북지원 문제에 관여를 해오고 있는 분입니다. 소장님 역시 스님과 오랜 기간 미팅을 가져온 친구로서 스님을 뵙자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nbspUSAIDnbsp존 브라우스 소장님nbspnbsp두 분은 먼저 시리아, 예맨, 수단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특히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시리아 난민 문제에서 시작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 이야기 주제는 다른 지리적 공간들로 확장되며 시공간을 아우르는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북한의 최근 동향에 대해 브리핑을 하였고, 브라우스 소장님은 최근 북한 주민들의 경제활동이나 투자 등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들을 했습니다.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다 보니 안보, 인권, 핵문제가 아닌 실제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nbspnbsp많은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북한 주민들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라고 말하는데 왠지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기본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해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진 두 분의 전문가들이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에서는 연륜과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nbsp미팅을 마치며 영문으로 번역된 스님의 깨달음 책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상황이 좋아지면 평양에 같이 한 번 가자고 웃으며 제안했고, 소장님은 그러자고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오후 3시 15분에 미팅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차를 타고 다음 미팅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nbspnbsp▲ nbsp워싱턴DC의 길거리에 핀 국화nbsp다음은 존스 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교 한미연구소에서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동북아 담당 국장이었던 존 메릴 박사님과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존 메릴 박사는 1980년대 후반 레이건 행정부 때 국무부에 들어가 작년에 은퇴했고 스님과 오랫동안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의 비판자이며, 2·29 합의가 북한의 위성 발사로 깨진 뒤에도 미국 정부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국이 북한과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과 미팅을 한 분들은 모두 오랜 친구 관계인 분들이었습니다. 메릴 박사님도 스님을 만나자 반갑게 인사하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생활이 어떤지 스님이 묻자 워싱턴DC에 있는 몇 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두 분은 현재 미국의 대선 분위기, 한반도 정책, 대 중국 정책,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사드 배치 문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1시간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존 메릴 박사님이 사찰 음식에 관심을 보이자 스님은 10월에 한국에 오시면 사찰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문 깨달음 책과 일상에서 깨어있기 책을 선물하고 다음 미팅을 기약하면서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nbspnbsp▲ nbsp존 메릴 박사 nbsp오늘 통역 자원봉사를 한 제이슨을 직장으로 바래다 주고, 다음은 특파원들과의 모임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미국 방문 시 워싱턴DC 주재 특파원들과의 미팅을 지속적으로 갖고 그 동안의 미국과 한반도의 정치 및 사회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nbspnbsp먼저 스님은 추석 연휴 잘 보냈냐고 하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시진핑 주석과 프란시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과 내년 미국 대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1년 전 간담회에서 선물로 준 인생수업 책이 쉽고 편안하게 잘 읽혔다는 분도 있었고, 정치, 경제, 역사 등 다방면으로 지식과 지혜를 갖고 있는 스님의 통찰력에 놀라워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미국에 나와있는 특파원들을 격려해주면서 “일상에서 깨어있기”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nbspnbsp약 14시간 동안의 연속된 미팅 일정을 모두 마치고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으로 복귀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내일 아침 일찍 있는 조찬 모임을 위해 바로 휴식을 취했습니다.

2015.10.01. 27,158 읽음 댓글 40개

2015.9.27 뉴욕에서 워싱턴DC로 이동

nbsp오늘 스님은 오전 4시 30분에 기상하여 네 분의 법사님, 해외사무국 팀장들과 함께 뉴저지법당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하였습니다.nbspnbsp▲ 새벽예불nbsp기도를 마치고 나서 뉴저지법당 이정인 총무님은 “법륜 스님을 모시고 네 분의 법사님과 함께 기도를 하니 너무 감격스럽고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추석날 아침 덕담을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nbsp▲ 추석날 아침에 함께 먹는 떡국nbsp워싱턴DC로 출발하기 전, 스님은 해외지부 활동가들, 법사님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기존의 정토회 원칙들을 해외 사정에 맞게 수정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해외 정토행자대회 기간 동안 나왔던 제안과 문의사항들에 대해 다시 짚어보면서 해외지부 사무국 팀장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후 의견을 행정처에 건의할 것은 건의하고 지부 사무국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 해외지부 팀장들과의 마음 나누기nbsp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지난 9일여 간 명상수련,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해외 정토행자대회 일정을 마치며 드는 소감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의 열악한 조건에서도 전법에 열을 다하는 정토행자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느꼈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뿌듯함이 있었고 함께해 준 도반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행자대회를 통해 정토회의 미래와 세계 전법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 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스님은 소감을 다 듣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들었던 소감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해외에서 활동하는 여러분들이 안쓰러웠어요.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전법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nbspnbsp규정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는 모습이 정토회가 처음 시작할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원칙은 지키되 현실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제가 보면 요즘 정토회가 좀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어요. 위에서 짜 준대로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전달하는 과정에서 경직되기도 하고, 혹은 무질서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밑을 항상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수련 중에 수련생들이 “과제”를 “과자”라고 들었다는 것은 굉장한 법문거리에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과자”라고 들었다면 그게 진실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식당에서 과제를 줄 거다” 라고 말했는데 대중은 “식당”이라는 것만 듣고 당연히 과자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nbsp정토회 내에서 우리끼리 편하게 얘기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이 밖에서 보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갑자기 수정할 사항이 생기거나 안내를 할 때 상황을 설명해 가면서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어쩌면 우리 문화가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공식화 되는 과정에선 독선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nbspnbsp늘 대중들의 마음을 살펴가면서 원칙을 지키되 유연성을 가지고 경직되지 않도록 배려하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의 활동가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고 정토회 조직 문화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nbspnbsp해외지부 팀장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고 내년에 뵙겠다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짐을 챙겨 스님과 법사님 일행은 워싱턴DC로 출발했습니다. 해외지부 팀장들은 모두 독일, 미 서부, 미 중부, nbsp미 동부 등지로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날 수 없는 형편이라 이별이 더욱 아쉽고 애틋했습니다.nbspnbsp▲ 워싱턴DC로 떠나는 스님에게 인사하는 해외지부 팀장들nbsp뉴욕에서 워싱턴DC로 내려오는 길에 수련원으로 사용할 만한 자리를 둘러보기 위해 델라웨어 주에 들렀습니다.nbspnbsp▲ 뉴저지와 델라웨어주를 연결하는 델라웨어 메모리얼 브릿지nbsp한적한 곳에 넓은 대지가 있는 곳들이었는데 스님은 법당과 수련장, 요사채 등 어떻게 기존 건물과 땅을 활용할 수 있을지 구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워싱턴DC에서는 얼마나 걸리는지, 날씨는 어떤지, 수련원과 농사를 지을 농장을 겸할 경우에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nbsp오후 2시 경 메릴랜드 주 미주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워싱턴정토회 회원들이 일요 수행법회와 추석차례를 마치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 일행이 도착하니 모두들 기뻐하고 좋아하며 오랜만에 만난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워싱턴정토회 회원들nbsp스님은 법당에 들어가 제일 먼저 삼배를 했습니다. 스님의 삼배가 끝나자 워싱턴정토회 대중 일동도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고, 스님은 ‘그동안 잘 지냈는지’, ‘추석 차례는 잘 지냈는지’ 따뜻하게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함께 온 묘당법사님, 묘덕법사님, 덕생법사님, 무변심법사님을 대중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만 간단히 하고 약속이 있으니 법사님들과 얘기를 나누라고 법당을 나섰습니다. nbspnbsp▲ 함께 동행한 법사님들을 소개하고 있는 스님nbsp점심 식사 후에 워싱턴정토회 회원들은 묘당법사님과 함께 평소 의문을 갖고 있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대화하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천일결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였습니다.nbspnbsp▲ 묘당법사님과의 일문일답 시간nbsp스님은 한국에서 청년정토회에서 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연수를 와 있는 박은정 검사 부부 일행을 만나 오랜만에 여러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저녁 식사가 준비될 동안 스님은 원고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해외사무국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김지현 법우님과 자원활동을 하면서도 관련 분야에서 우수 연구자상을 수상한 민덕홍 거사님, 또 워싱턴정토회 총무소임을 하면서 번역팀장을 맡아서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이번에 영문 번역책 ‘깨달음’을 출간한 유주영님을 특별히 격려해 주었습니다. 근처 식당에 가서 몇가지 음식을 사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 음식을 먹고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라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스님의 고무신nbsp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내일부터 시작될 한반도 평화 문제 관련한 평화재단과 좋은벗들의 워싱턴DC 미팅 일정을 위해 스님은 일찍 숙소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2015.09.29. 28,484 읽음 댓글 3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