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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2 (오전)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BBA) 및 언론사 인터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 불교의 부흥을 위해 헌신한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신 150주년을 기념하여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수여하는 끄리빠사란 상을 수상하기 위해 벵갈 절에 머물면서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어제 오후6시3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스님은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 인도 현지 시간으로는 밤12시30분에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캘커타 공항에 도착하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역과 실무를 위해 인도JTS의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도 함께 공항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nbsp▲ 캘커타 공항에 마중을 나온 보디팔라 스님과 인도JTS 활동가들nbsp캘커타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안경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열기와 습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인도JTS 스텝들은 “스님이 오신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겁니다”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캘커타 공항에서 BBA로 가는 차안에서 스님은 보디팔라 스님과 올해 탄신 150주년을 맞는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용성 조사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행적이 비슷한 것 같다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nbspnbsp▲ 캘커타 공항에서nbspBBA로 가는 차안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님인 용성 조사님과 그 행적이 비슷합니다. 용성 조사님은 1864년에 태어나셨고, 한국에서 사라져간 불교를 새로 일으키셨고, 한문으로 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셨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오늘날 한국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분으로 추앙받는 분이에요. 용성 조사님이 새로운 불교 운동을 위해 만든 조직이 ‘대각회’인데 이것을 번역하면 담마팔라 스님이 만든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가 됩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용성 조사님에게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전했어요. 그래서 용성 조사님과 같은 시기에 같은 단체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담마팔라 스님만 알고 있었지 담마팔라 스님과 같이 활동한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nbspnbsp그러자 보디팔라 스님이 끄리빠사란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끄리빠사란 스님은 당시에는 인도 땅이였지만 지금은 방글라데시에 속해 있는 치타공에서 20살에 출가했습니다. 20살에 출가해서 21살에 캘커타로 와서 계속 캘커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1891년에 ‘마하 보디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는데, 끄리빠사란 스님은 1892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을 만들었습니다. 두 분은 많은 활동을 같이 하셨습니다.nbspnbsp담마팔라 스님과 끄리빠사란 스님의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담마팔라 스님은 학력이 높아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를 전했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기초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영어를 몰라서 이곳 캘커타에서만 불교를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다 팔리어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팔리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마을마다 현지 언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주셨고, 부처님의 말씀을 벵갈어로도 거의 다 번역했고, 캘커타 대학교에 팔리어학과를 개설하도록 하셨습니다.nbspnbspB.M 바루아라는 훌륭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 제자를 런던에 팔리어 연구를 위해 유학시켰고, 그는 1917년에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런던 대학에서 문학 박사를 수여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많이 존경하기는 하지만, 평생 캘커타에서 활동하셔서 캘커타에 많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 제자이고 끄리빠사란 스님은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nbsp“용성 조사님도 저의 3대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지금 같이 교류를 하고 있나봐요.”nbsp스님과 보디팔라 스님은 각자 자신의 스승들이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보디팔라 스님은 150주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법륜 스님을 선정한 이유도 그런 연유가 있음을 말했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을 끄리빠사란 상의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도 그렇습니다. 스님과 저희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여기 사람들이 스님을 몰라서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습니다.”nbsp곧 차는 BBA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BBA 건물을 보자 한마디 덧붙이셨습니다.nbspnbsp“제가 1991년에 인도에 처음 왔었는데, 그 때 이곳에 벵갈 절이 있다고 해서 한번 왔었습니다. 그 다음해부터 성지순례 올 때는 매번 여기서 잤습니다. 늘 이곳에서 자면서도 끄리빠사란 스님과 관련된 그런 뜻깊은 곳인 줄을 잘 몰랐네요.”nbspnbsp차에서 내려 숙소로 올라가자 인도JTS에서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 교장 선생님은 인도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직접 키워 얼마 전 수확한 망고 한 바구니를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nbspnbsp▲ 수자카아카데미 학생들이 키운 망고를 스님에게 전달하는 쁘리앙카 교장nbsp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한번 맛을 보고 자야지” 하며 망고를 한 입메 물었습니다. 단맛이 잘 배어 있어서 정말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nbsp숙소를 제공해준 보디팔라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스님은 오랜 비행으로 인한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하려고 하다가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5시가 되었기 때문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한 후 잠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nbspnbsp다시 날이 밝자 보디팔라 스님이 인도 신문을 갖고 와서 오늘 행사에 대한 기사를 보여 주었습니다. 기사에는 오늘 행사의 내용과 주요 내빈 참석자, 그리고 법륜 스님의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인도의 대표적인 신문인 ‘TIMES OF INDIA’에 실린 법륜 스님의 수상식 기사.nbsp7시30분에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먹고 나서는 보디팔라 스님과 함께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nbspnbsp▲ 인도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nbsp보디팔라 스님은 스님에게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 아시아 전체에 불교가 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 불교의 사회활동에 대한 생각, 전 세계의 불교가 인도 불교에 미친 영향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통역은 인도JTS 활동가 쁘리앙카님이 해주었습니다.nbspnbsp▲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린 벵갈 부디스트 어소시에이션nbsp먼저 BBA의 주지인 보디팔라 스님이 “오늘 행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웃으며 답했습니다.nbspnbsp“오늘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50년 전에는 인도에 불교가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였는데 벵갈 불교를 새로 일으켜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이 하신 일을 오늘 우리들이 더욱 계승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보디팔라 스님과의 문답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첫째, 서구 문명과 기독교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태에서 아시아는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 상태에 놓이면서 굉장히 위축이 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 문명이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정신 문명이 굉장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불교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인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다시 서구 문명에 버금가는 물질 문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질 문명이 한계에 이르러서 이제는 물질 문명만 갖고는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신 문명이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난 12세기 동안 위축되었던 불교의 활동이 이제 새롭게 일어날 때가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스승님들께서 하신 일들이 이제 꽃필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nbsp이어서 “스님께서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불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아시아의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불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붓다 담마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붓다 담마는 불교, 기독교, 무슬림 등 종교나 민족, 사상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불교 문화는 기독교 문화, 무슬림 문화 등과 다릅니다. 문화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것을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담마는 모든 것에 다 통하기 때문에 종교를 초월해야 합니다.nbspnbsp지금 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들은 아직도 물질적으로 가난한 편입니다. 아직도 병들었지만 치료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제때에 교육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들이든 무슬림이든, 그 나라가 인도이든 스리랑카이든 아프가니스탄이든 관계 없이 병든 사람은 치료해야 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훈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열반에 드신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큰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아난다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여, 걱정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느니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배부르게 하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어서 치료하고,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는 것, 이 네 가지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느니라.”nbsp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단순히 자선활동이 아니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 대상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종교인지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nbspnbsp둘째, 동남아시아는 대다수가 불교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그들을 도우면서 전통문화를 많이 파괴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나라의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즉 불교 국가는 불교의 전통 문화를 보전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와야 합니다.nbspnbsp셋째,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붓다 담마는 종교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나라 사람이든, 붓다 담마를 공부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경제 성장만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 없이 전 세계로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인도도 지금 경제가 많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붓다 담마가 인도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일어날 수 있도록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다음은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적용해서 많은 사회적 활동들을 하고 계신데, 출가한 많은 스님들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수행자는 먼저 자기가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까 자기가 먼저 그 가르침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괴로움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붓다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전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어린 아이들, 노약자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지원해야 합니다. 또 인종적으로 차별받거나 종교적으로 차별받거나 성별로 차별받거나 이렇게 차별하는 것은 철폐시켜야 합니다.nbspnbsp왜냐하면 부처님께서도 카스트를 부정하셨고, 비구니 제도를 만드셨고, 사키족과 꼴리족이 로히니 강에서 다툴 때 싸움을 말리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붓다가 직접 행동을 하신 겁니다. 우리는 붓다의 그 가르침과 삶을 닮아가야 합니다. 스님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절에 갇혀서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만 하거나 개인 기도 생활만 하는 것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붓다가 어떻게 사셨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에 기준을 두어야 합니다. 대승이냐 소승이냐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고, 붓다가 살아가신 그 모습대로 닮으려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마지막 네 번째 질문으로 “인도에서 불교가 파괴되고 나서 두 가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1891년에 담마팔라로 인해서 부흥되었고, 두 번째는 1956년에 암베드카르로 인해서 불교가 부흥되기 시작했고, 그리고 네루 수상께서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전세계의 불자들에게 ‘당신들이 모든 성지에 와서 쉬어도 된다’고 하면서 전 세계인들이 많은 성지에 절을 세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전 세계에서 불교가 인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세계의 불교가 인도의 불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인도에서 불교가 거의 사라진 시기에 외국인들이 불교를 가져와서 성지 가꾸기를 시작으로 인도 불교의 불씨를 새로 일으킨 것은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성지를 가꾼다는 것은 주로 과거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또 성지에 지은 절들이 대부분이 외국인 순례자를 위한 것이지 인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인도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nbspnbsp둘째, 암베드카르의 불교 운동은 인도에서 일어났고 민중들의 삶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계급 해방이라는 내용도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너무 계급 해방적 정치 투쟁으로만 치우쳐 있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계급을 초월해서 붓다 담마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런 감동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두 운동 모두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 갖고는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외국에서 들어와서 하고 있는 활동들은 이제 자신들의 순례객들을 위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도 현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희망을 줄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즉, 인도 사람들을 위한 절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둥게스와리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것도 한국 불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시작한 활동입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는 대부분 힌두교인데 불교가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으로 출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들마저도 포용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힌두교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더 위로 나아갈 수 있는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암베드카르 쪽에서 하고 있는 계급 해방 운동은 좋은 일이지만 힌두교와 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인도에 불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암베드카르 운동이 인도 불교를 새로 일으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nbspnbspnbsp앞으로 인도에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붓다 담마를 힌두어, 벵갈어 등 현지어로 번역해서 민중들에게 다가가기 쉽도록 가르치는 것, 둘째,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괴로움을 벗어나 니르바나를 증득할 수 있도록 수행을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다만 한가지 장점은 힌두교는 불교를 외래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 사상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보다 훨씬 저항을 덜 받으면서 인도 불교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앞으로 한 30년 정도 지나면 인도가 경제적으로도 세계 중요 세력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때 인도는 물질 문명 뿐만 아니라 정신 문명도 세계로 수출해야 하는데, 힌두교는 인도 안에서는 통하지만 세계화 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연적으로 인도 정부도 불교를 발전시키려고 할 겁니다. 지금 인도의 총리는 불교가 아니라 요가를 알리려고 하는데 요가 갖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전통 종교인 유교를 공산주의가 굉장히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발전하고 세계화가 되면서 중국이 정신적으로 세계에 수출할 것이 없다 보니까 지금은 공자를 굉장히 받들고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도 이제 시간이 흐르면 정부가 알아서 성지도 가꾸고 불교도 부흥시키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데 끌려가면 형식만 커지지 내용이 없어져요. 그래서 빨리 상가에서 정부의 부흥 정책의 내용을 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 안에는 테라바타, 마하야나, 탄트라, 암베드카르 이 네가지의 서로 다른 불교가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도록 만드느냐가 지금 중요합니다. 조건은 앞으로 점점 좋아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준비가 아직 부족합니다. 같이 준비를 잘 합시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언론사 기자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매우 감탄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질링에서 인도 사회에 불교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스님을 다질링으로 꼭 한번 모시고 싶다”고 인사하면서 스님에게 다질링에서 가져온 차를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인도 기자에게 스님의 영문 번역책 “기도”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동남아 각국에서 초청받아 온 스님들이 모두 도착하자 이번에 새롭게 리모델링을 한 끄리빠사란 스님 메모리얼 홀 준공식을 짧게 가졌습니다.nbspnbspnbsp컷팅식을 갖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참석한 스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함께 예불을 올리는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참석한 스님들은 모두 삼귀의 오계를 게송으로 읊고 끄리빠사란 스님의 탄생 150주년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한마디씩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예불 의식nbsp이어서 점심 공양 시간이 되었고, 스님은 동남아 각국에서 온 스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점심 공양nbsp오후에는 인도의 ‘Business Economics’ 라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후 곧바로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이 열렸습니다. 끄리빠사란 상 수상식 소식은 곧이어 또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20~21 농사일 및 발우공양 중 ‘계율’에 대한 법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메르스로 인해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의 힐링 동문회 행사가 취소되어 두북에서 농사일을 했고, 서울로 올라와 공동체 대중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nbspnbsp대전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부친 후 다시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날이 흐리고 오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도 있었지만 스님은 가뭄으로 바짝 말라있는 작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일찍 물을 적셔주고자 호수를 들었습니다. 물을 흠뻑 머금은 작물들을 보며 스님은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꽃밭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을 열심히 뽑았습니다. 텃밭에는 토마토가 영글게 익어가는 모습이 무척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마당 한 구속에는 얼마 전 심어 놓은 고소가 막 새잎을 틔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화단에는 스님이 직접 심어놓은 여러가지 꽃이 피어 있었는데 특히 보라색의 청사초 꽃을 보고선 스님도 더욱 기뻐하는 모습이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오후에는 비가 내릴 것 같다”면서 “비가 내리기 전에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다 중단했던 것을 마치고 오자”며 예초기와 낫을 들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메르스로 인해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면서 산소 벌초를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그 때 다하지 못한 구역이 있어서 한시간 정도 더 벌초를 했습니다.nbspnbspnbsp산소 벌초를 마무리 짓고 나서는 올라오는 길도 깨끗이 깎았습니다. 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는데 스님이 예초기를 들고 한번 지나가고 나니 깨끗이 정돈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머리 깎아 놓은 것처럼 깔끔해졌다” 며 흐뭇해 했습니다. nbspnbspnbsp산소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비가 우두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행사를 못해도 좋으니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다” 며 연신 기뻐했습니다. 최근 극심한 가뭄으로 남한도 북한도 모두 농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했습니다.nbspnbsp오후 내내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10시 무렵 두북에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새벽2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더 보시다가 새벽 4시30분부터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계율을 지키는 의미’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발우공양 시간에 매일 40가지 계본을 갖고 자신이 어긴 계율에 대해 대중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데, 오늘 대중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선 어떤 마음으로 계율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자세히 알려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자유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가 있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nbsp‘자유와 권리’는 선택 사항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자유는 있는데 그렇게 할 건지 안 할 건지는 내가 선택해도 됩니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즉,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율은 이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계율은 ‘책임과 의무’만 규정하고 있습니다.nbspnbsp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하면 그 첫째가 ‘모든 악은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무 사항입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자유와 권리에 해당합니다. 하면 좋은 일이지만 안 해도 괜찮습니다.nbsp악은 하면 안 되는 일이고, 선은 하면 좋은 일입니다. 악을 행하면 나쁜 행동이 되지만,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좋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행동이 되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악을 멈추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에 해당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 사항에 해당합니다. 선을 행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행동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닙니다. 하면 좋은 일입니다.nbspnbsp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그 이하로 가서는 안 된다는 미니멈이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무엇을 하면 좋다는 것은 어디까지 해야 한다는 맥시멈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행하면 행하는 만큼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생활할 때는 주로 좁은 의미의 계율을 중요시하죠. ‘나쁜 행동을 하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악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nbspnbsp이어서 이것을 계율에 적용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습니다.nbspnbspnbsp“이것을 계율에 적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살고자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살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와 자유는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범위 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금기 사항이에요. 그러나 죽어가는 다른 생명을 살려주라는 것은 권장 사항이에요. 그렇게 하면 선행을 하는 것이 되고 복을 짓는 것이 됩니다.nbspnbsp나의 권리는 살 권리입니다. 그러나 나의 책임은 다른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말로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나는 술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괴롭힐 정도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계율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 해당합니다.nbspnbsp악은 멈추고 선을 행한다고 할 때 악을 멈춘다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에요. 이것이 소승 계율의 기본이에요. 그런데 악을 멈추는 것으로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수행자의 미니멈이기 때문입니다. 소승은 악을 멈추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대승은 ‘수행자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된다’ 고 하면서 ‘악을 멈추고 선을 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즉,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어라.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은 나의 선택의 자유입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짓는 것이 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물에 빠트리거나 죽이는 것은 악행에 해당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것을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악행은 아닙니다. 그러나 수행자라면 마땅히 살려주어야 하겠죠.”nbspnbsp그러면서 계율을 단순히 소극적인 의미의 금기 사항로만 보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와 권리로서 바라볼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그래서 계율을 단순히 금기로만 보지 마세요. 그것이 금기인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라면 몰라도 지혜로운 자라면 재앙을 초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이라는 것은 나에게 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라면 마땅히 행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나는 결혼할 자유가 있고 아이를 낳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키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내가 부모를 봉양할 책임과 의무는 없습니다. 같은 성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선이지만 봉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악은 아닙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자식을 돌보지 않으면 악행에 들어가지만, 자식을 돌보는 것을 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땅히 부모로서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소극적인 의미의 계율인 금기 사항을 지킨다고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금기 사항, 즉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할 것은 마땅히 행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를 가집니다. 그것은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행자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그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nbspnbsp우리에게는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 ‘웃으며서 부드럽게 말한다’ 이 두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화내어 욕설하지 않는다’는 금기에 해당합니다. 어기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성질을 내면 잘못된 행동에 들어가지만 웃지 않는 것은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한다’는 좋은 행동입니다. 나쁜 행동인 화내어 욕설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좋은 행동인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참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nbspnbsp참회는 금기 사항을 어겼을 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권장 사항을 행하지 않았을 때도 자기 스스로 ‘아, 내가 오늘 선행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참회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내가 선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참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 참회할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행자 집단이기 때문에 행하면 좋은 행동까지도 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자각해서 ‘제가 오늘 좋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드러내 놓고 반성하는 모습을 갖게 되죠.nbspnbsp계율을 지킨다고 할 때 좁은 의미의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지키지 못할 때는 대중에게 공개해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또 부족하면 대중에게 요청해서 지적을 받아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좋은 인격을 닦고 복을 지어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할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서 정토회의 40가지 계본에는 ‘하지 마라’는 것과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 마라’는 것은 악을 짓지 마라는 의미이고, ‘하라’는 것은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승이기 때문에 소대승을 함께 아울러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소승이라면 생명을 해치지 마라는 계율만 있겠죠. 소승의 소극적인 계율에서는 게으르지 마라는 계율만 있지 부지런하라는 계율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승이니까 게으리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지런하라, 죽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려주라, 남에게 손해끼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도와주라,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기쁘게 해주라, 이렇게 계율이 잡혀 있는 것입니다.nbspnbsp계율은 단순히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막아주고 선을 행하도록 해줍니다. 계율은 불행을 막아주고 복은 받도록 인도하는 것이니까 계율을 너무 속박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대승 계율을 의무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그것이 자신을 가볍게 해줍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 복을 짓기 위해서 내가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는다면 정진을 하는 것이 조금 더 가볍고 밝아지지 않겠느냐 싶어요.nbspnbsp많은 수행자들이 금기 사항인 책임과 의무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남에게는 좋은 일을 하면서 본인은 조금 무겁거든요. 그러나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유이며 권리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삶이 가벼워지고 적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진을 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계율은 금기 사항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좋은 일을 행하도록 하는 자유와 권리의 의미도 담고 있다는 말씀에 공동체 대중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계율을 생각할 때 무거운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나는 선을 행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인도와 런던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습니다. 6월22일에는 인류의 화합과 형제애를 이뤄나가며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공로로 인도 뱅갈불자협회에서 주는 ‘우수 사회 활동을 기리는 까르마요기 크리빠사란 상’을 스님이 수상하게 되었는데 그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캘커타로 떠났습니다.nbsp▲ 인도로 출국 nbspnbsp 또 6월24일부터 27일까지는 3박4일 동안 세계 한민족 포럼이 런던과 파리에서 열리는데 스님은 ‘한반도 통일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6.19 희망세상만들기 대전 청년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울 공동체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법문한 후, 저녁에는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4시에 법당에 내려와 혼자서 108배 정진과 명상을 먼저 한 후 5시부터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 후에는 집무실에서 원교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발우공양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발우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수행 공동체에 들어와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을 위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짧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어울려 살다보면 갈등이 많이 생길 수 있는데 어떤 관점을 가져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고무신nbsp“도반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업무 등 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방청소를 제대로 안 한다, 물건을 어지럽힌다, 머리카락을 떨어뜨린다 등 생활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성격으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갈등이 생기는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nbspnbsp타인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죽고 못 살아서 결혼한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렇게 부부처럼 사랑하는 관계도 아닌데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들도 동료들 사이에 늘 갈등이 생기는데 여기서 돈도 안 받고 일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갈등이 생기지 않겠어요? 또 수행이 잘 되어 있으면 이 좋은 세상에 왜 여기 들어와서 살겠어요? 다 부족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사는 것 아니겠어요?nbspnbsp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는 ‘화를 좀 낼 수도 있겠다’, ‘짜증을 좀 낼 수도 있겠다’, ‘업무를 좀 제대로 못할 수도 있겠다’, ‘보고를 좀 못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수행자라는 기준으로 상대를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이라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그래도 여기 와서 수행하려고 한 것만 해도 장하고, 꾸벅 꾸벅 졸면서도 수행하려고 하는 것만 해도 장하고, 짜증내면서도 여기 같이 있어 주는 것만 해도 장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장한 사람들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보통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맙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이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 즉 세상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스님이 왜 저러냐’, ‘법사가 왜 저러냐’, ‘수행자가 왜 저러냐’ 이렇게 보지 말고 그냥 ‘세상 사람으로서 그만해도 참 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마음 속에 화가 일어나거나 짜증이 일어나거나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저 자식 왜 저러지?’ 이렇게 화가 일어나고 짜증이 일어나고 미움이 일어나더라도 금방 돌이켜서 ‘아참, 고마운 사람이지’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자기 자신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행하러 여기 들어와 있지 않느냐’, ‘그래도 명색이 내가 수행자가 아니냐’, ‘수행자가 질투를 한다든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든지, 욕심을 낸다든지, 게으르다든지 한다면 내가 왜 여기 들어와 살고 있느냐’ 이렇게 자기에게는 수행자라는 자각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의 업식을 고쳐나가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타인에 대해서는 ‘이해’ 자기에 대해서는 ‘자각’ 이 두 가지를 가지면, 우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순간순간 놓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이 지속되지 않고 그것이 미움으로까지 가지는 않습니다. 놓쳤기 때문에 그 순간만 불뚝불뚝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지 꽁 하고 있지는 않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기가 쉽습니다. 자기한테는 이해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 사는 것만 해도 얼마인데’ 이렇게 하고, 타인에게는 ‘그래도 수행자인데 절에 들어온 지 10년이나 된 사람이 저렇게 해도 되나?’ 이렇게 거꾸로 적용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수행자들이 모여 살지만 세속과 아무 다름이 없이 갈등이 끝없이 계속 됩니다.”nbsp타인에게는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자신에게는 수행자임을 놓치지 않는 ‘자각’을 하라는 가르침에 모두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상대를 고쳐서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꿈으로서 상대를 그대로 두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줍니다. 늘 못마땅하게 여겨온 도반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이라는 기준으로 이해해 본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니 절로 미안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당당하고 겸손하라고 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비록 공동체에 들어와 살지만 마음이 어둡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대중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이렇게 말했어요. 당당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당당해야 하느냐? ‘이 세상에 제일 소중한 자가 바로 나다’, ‘금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고, 하늘의 신도 아니고,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기는 어느 정도까지 겸손해야 하느냐? ‘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길가에 밟히는 풀 한 포기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nbsp교만함을 꺾고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아야 하고, 비굴한 마음이 일어날 때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도 거꾸로 적용합니다. 교만할 때는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쓰이고, 비굴할 때는 풀보다도 더 비굴하게 굴잖아요. 이렇게 적용을 거꾸로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수행을 하면서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늘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에 기준을 두고, 자기에게 기준을 두고, 거꾸로 적용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nbspnbsp그러니 수행자로서 정진할 때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 선배들이 어떻게 하느냐, 법사가 어떻게 하느냐는 논할 필요가 없어요. ‘당신도 그러지 않느냐’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가는 것이고, 못 가면 내가 반성하는 것이고, 내가 간다고 타인보고 가라고 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타인 보고 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고, 남이 못 한다고 나무랄 필요도 없고, 내가 한다고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당연한 것입니다. 나는 다만 부처님과 계율에 기준을 두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면 고마운 사람들이에요.nbspnbsp이런 관점을 딱 가지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게으른 사람들 속에서도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은 다 늦잠 자도 자기는 제 시간에 일어나서 자기 정진을 하면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잘한다면서 목에 힘주는 것도 아니고요.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앞에 갈 수 있도록 밀어주고 격려해 주면서 가면 됩니다. 남이 같이 가주면 고마운 일이고, 안 가면 나는 나대로 가면 됩니다. ‘남이 안 가도 나는 간다’ 이것이 소승이에요. 거기에 추가해서 ‘가능하면 남과 같이 간다’ 이것이 대승이에요. 남하고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적극적이냐면 내가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가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너도 안 가니 나도 안 간다’ 이런 태도는 대승이 아니라 중생에 불과합니다.nbspnbsp우리가 다 부족하니까 이렇게 모여서 살지만, 그래도 그 부족한 에너지를 모아서 좋은 일에 쓰고 있잖아요. 정말 일이 많은 것이 아닌데도 늘 밤늦게까지 일하는 습관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이렇게 자기 습관 때문에 건강이 나쁜 것은 수행이 아니잖아요? 세상에서는 일을 열심히 한다고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일에 집착하거나 자기 습관을 못 버리는 것이지요. 다리가 하나 없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눈이 하나 안 보이는데도 최선을 다한다, 체질적으로 건강이 나쁜데도 그 사람의 역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이런 경우라면 비록 아프면서 일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치료를 안 하고 늘 병을 안고 골골 대고, 먹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과식해서 위 아프다고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까르마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몸에 집착해서 몸을 사라지 말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몸이 소중하니까 몸을 함부로 하지 말라, 이렇게 계율에 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세상 속에서도 늘 자기 습관을 못 벗어나서 건강을 해치는 것처럼 수행 집단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늘 자기 까르마를 고집하고 움켜쥐고 있어서 건강을 해치든지 성질을 내든지 합니다. 같이 살면서도 ‘저 사람은 성질이 저러니 좀 봐주자’ 이렇게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데 본인은 그런 수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해 나가야죠.nbspnbsp죽는 순간이 와도 얼음이 녹듯이 아무런 집착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몸을 함부로 해서 맨날 골골 대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업무를 좀 절도 있게 처리하고, 휴식이 필요하면 휴식을 하고, 주말이 되면 조금 산책도 하고요. 내년부터는 계획을 잡아서 노동을 많이 하려고 해요.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가 생산하려고요. 바쁜 가운데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웃고 정신을 늘 맑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지쳐서 얼굴에 웃음이 없고, 건드리면 터지기 직전이고, 화장도 안 한데다가 회색 옷까지 입고 있으니까 우중충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속이 시커매도 겉으로는 화사한 옷 입고 얼굴에 분이라도 발라서 그래도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여러분들은 안팎으로 다 어두워요. nbspnbspnbsp그래서 좀 마음을 일신해 보세요. 조금 우울해져도 다시 마음을 내어 웃고, 자꾸 자신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만약 스님이 밖에 가서는 온갖 고민들을 다 들어주면서 정작 본인이 괴롭고 죽겠다고 하면 남들이 웃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토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골골대고 있는데, 밖에 가서는 너희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하면 서로 안 맞잖아요. 그래서 조금 기운을 내고 자신의 상태를 환기해 가면서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마음을 가볍게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이 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깨달음을 얻겠다’, ‘통일을 이루겠다’ 이런 원이 있으면 좀 힘들어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는데, 그런 원이 없고 억지로 하니까 자꾸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고 몸이 아프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절을 할 때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예불 시간이 기쁨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시간이 안 되고 눈을 감고 졸아가면서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고 있거든요. 기도를 하고 예불을 하면서 괴로운 마음이 즐거워져야 하는데 즐거운 마음이 종만 치면 괴로워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 마음을 전환해서 밝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이렇게 스님이 기운을 북돋워주자 서울공동체 대중들은 모두 더욱더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기획팀들과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을 위한 논의를 장시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기독교계에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배기찬 이사장이 찾아와 통일 운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북 분단을 두고 회개는 누가 해야 합니까. 북한은 당연히 회개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합니다. 분단 70년이 되었는데도 그리스도인조차도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배기찬 이사장의 평소 주장입니다. 그리고 8월에 있을 중국 역사기행 준비팀과 함께 일정, 숙소, 강의, 차량 배치 등에 대해서 마무리 점검을 하였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청년정토회 주관으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원래는 충남대학교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메르스 때문에 학교 측에서 행사 주관을 많이 부담스러워해 대전 정토법당에서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가득 메운 250여명의 청년들은 소개 영상과 함께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대전 정토법당nbsp스님은 먼저 얼마 전 메르스 환자가 제주도 여행을 한 것으로 일어난 사회적 파장을 이야기하면서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질문을 던지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청중들이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얼마 전 제주도에 메르스 환자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을 두렵게 했는데 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알고 그랬어요? 모르고 그랬어요?”nbspnbsp“모르고 그랬어요.” nbsp“세상에서는 모르고 한 행동은 죄가 안 되는데, 사실은 모르고 한 행동이 죄가 더 큽니다. 이것은 옛날부터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스님에게 ‘알고 짓는 죄가 큽니까? 모르고 짓는 죄가 큽니까?’ 하고 물으니 ‘모르고 지은 죄가 더 큽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왕이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런가?’하니 스님이 왕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알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뎁니까?’ 모르고 잡는 불덩이에 손을 더 많이 데겠죠.nbspnbspnbsp양심으로 따지면 알고 저지르는 죄가 나쁘고, 모르고 지은 죄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편한테 주는 피해는 모르고 저지를 때 더 큽니다. 본인이 알면 조심을 하게 되고, 죄를 지으면서도 눈치보면서 하게 되는데, 모르면 눈치도 안 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여행을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식당, 호텔 등 다녀간 곳은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알았으면 그만큼 그랬을까요? 이처럼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의 원인도 사실은 무지입니다.nbspnbsp우리의 고통은 무지, 즉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깨쳐야 됩니다. 즉 감은 눈을 떠야 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지입니다. 알지 못함에 있습니다.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죄업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경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nbspnbsp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nbsp죄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죄라고 하는 정해진 씨앗이 없다. 다만 어리석은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에 이 마음의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게 된다.nbspnbsp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이 어리석음도 사라지고, 이 죄업도 사라지고, 둘 다 텅 빈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다.nbspnbsp‘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진실한 참회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도 여러분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든 어떤 의문을 갖고 있든 문제의 해결은 누구한테 용서를 빌거나 누가 대신 죄를 사해주거나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데에 있습니다.”nbsp그러면서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었지만 총 11명이 스님께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nbspnbsp욕심이 많아서 성취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욕심도 줄이고 성취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청년, 5년을 사귀어서 결혼한 남편과 성격이 달라서 계속 힘든데 어떻게 편해질 수 있는지 묻는 여성, 전공을 살려서 디자인을 공부할지 지금 돈을 벌고 있는 영어 교사를 하면서 여행을 다닐지 결정을 할 수 없어 고민인 재미 교포,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데 식탐을 줄일 수가 없어 고민인 여학생, 종합건강검진 결과 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덜 놀라시고 잘 치료받도록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묻는 청년, 우울증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늘 걱정인데 어머니와 인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6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찾아와서 음식을 소화할 수 없고 현재에 집중할 수 없어 고민인 남학생, 정신분석학자가 자꾸 자신을 미행하며 괴롭힌다고 하면서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묻는 분, 성격이 급하고 지레짐작을 해서 잘못된 결정을 자주 하는데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묻는 여성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 중에서 ‘자살하겠어’, ‘짜증나’ 등 부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는 한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을 하는 과정에서 표정이 점점 밝아지다가 마침내 유쾌하게 웃는 여학생의 모습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저의 고민은 자꾸 ‘자살하겠다’는 말을 쓰는 겁니다. 저희 학교는 중간고사가 두 번, 기말고사가 두 번, 또 과목별로도 시험이 정말 많아요.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한 친구가 ‘교실에서 뛰어내리겠다’ 그랬는데 교수님께서 농담으로 ‘7층에서 뛰어내려야 즉사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로 시험만 못 보면 장난으로 ‘우리 손잡고 7층 갈까?’ 그런 식이 되었는데 장난이 반복되니까 이제는 습관적으로 ‘자살해야겠다’ 계속 말하고, ‘아, 짜증나’ 그런 말을 계속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건 부정적인 말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습관은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서 긍정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짜증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부정적인 말을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말을 덜 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죽으면 부정적인 말을 안 하게 되지요. 제일 완벽한 방법은 죽어버리면 겁니다. 다시는 부정적인 얘기를 안 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실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다 살았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봐야 됩니다.nbspnbspnbsp부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살아있으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아픈 것도 살아있으니까 아프지요. 죽으면 아파요? 그러니까 제일 긍정적인 것은 여러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살아있으니까 아프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헤어지기도 하고 살아있으니까 부모님 모시기도 하지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가장 긍정적인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기가 자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딱 눈뜨자마자 세 번 이렇게 외쳐 봐요.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바뀔 거예요. 한번 따라 해 봐요.”nbspnbsp“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살았네” nbspnbspnbsp“말해보니까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요?” nbspnbsp“좋아요.”nbsp“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내 기분도 좋아지지만 기분이 좋으면 몸의 호르몬과 여러 가지 기분 좋게 하는 물질이 분비가 돼요. 그래서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이고 살았네, 오늘도 살았네, 아이고 살았네, 부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세요. 부처님 믿으면 부처님 감사합니다고 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 조상님을 믿으면 조상님 감사합니다고 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전복이 되어서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았으면 팔이 하나 부러져도 부러진 팔을 잡고도 기분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나만 살았네’ 이럴 것 아니에요, 다 죽고 자기만 살아있는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거예요. 매일 매일 살아있는 것이 이렇게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괴롭게 사는 거예요. 내가 살았다는 것만 해도 기뻐할 수 있으면 이런 건 다 괴로움 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에 늙은 부모님도 모시고, 살아있으니까 두 남자도 좋아하고 그러는 것이죠. 살아있으니까 몸이 뚱뚱하니 안 뚱뚱하니 그러죠. 죽으면 그런 것도 다 없어요. 그러면 죽으면 편안하냐. 그게 아니에요. 살았다는 것에 대한 가장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는 얘기에요.nbsp내가 몸이 아프지만, 밥을 잘 못 먹지만,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로 보면 죽어야 되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다’ 이렇게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죽을 과보를 받아야 되는데 죽지 않은 것은 큰 복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몸 안의 전체 신경에서 긴장이 다 풀려요. 친구들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말고요. 같이 손잡고 죽는다고 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그건 기분이에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살았네’ 세 번 외치고 생활하면 돼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한 가지 더 있다며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엔 식탐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nbspnbsp“요즘 식욕이 늘어서 살이 좀 찐 건 괜찮은데 계속 배가 고파요. 예전에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어느 스님께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셔서 계속 먹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두 달 전부터 갑자기 또 식욕이 증가했어요.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그 양이 보통 사람들이랑 달라요. 피자 한 판을 먹고 다른 것을 또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nbspnbsp“배가 고파도 안 먹으면 되지요. 단식을 해서 음식을 아예 안 먹었을 때 배가 고픈 것이 더 배가 고플까요? 한 끼, 두 끼라도 먹었을 때 배고 고픈 게 더 고플까요?nbsp“아예, 안 먹는 것이 더 배고프죠”nbsp“그래요. 스님처럼 아무것도 안 먹고도 배고픈 것을 견딜 수 있는데 하루에 조금이라도 먹고도 그것을 왜 못 견뎌요?”nbsp“그런데 저는 약간 음식이 들어갔을 때부터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요.”nbspnbsp“자기가 고프든지 말든지 그것은 육체의 증상이고, 나는 정해진 양만 딱 먹고 끊어버리면 됩니다. 나는 딱 정해놓은 그것만 먹고, 배가 고파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먹기 싫어도 그것만 먹고, 딱 정해놓는 겁니다. 밥 한 그릇을 정했다면 밥 한 그릇은 먹기 싫어도 꼭 먹고, 먹고 싶어도 더 이상 안 먹고, 이렇게 딱 정해놓고 하면 처음엔 미칠 거 같아도 그것만 딱 하고나면 100일만 지나가면 저절로 컨트롤 돼요. 딱 정해진 것만 먹고,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것만 딱 먹고 끝을 내세요.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이 담배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피우고 싶다고 피워야 돼요,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nbspnbsp“안 피워야 돼요.”nbsp“그렇게 피우고 싶은데 어떻게 안 피워요?”nbsp“사탕을 대신 먹어요.” nbspnbsp“그렇게 하면 안 돼요. 담배 피우고 싶다고 사탕을 먹으면 그것은 담배 끊는데 도움이 안 돼요. 아무리 피우고 싶어도 안 피워야 돼요. 그런 것처럼 아무리 먹고 싶어도 딱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저절로 개선이 돼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아무리 먹고 싶어도 정해진 것 이상은 안 먹으면 된다는 명료한 답변에 질문자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또다시 웃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이 nbsp“벌써 2시간 반이나 됐네요. 재미있었어요?” 라고 묻자 모두들 “예”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치를 깨우쳐서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내가 몸이 뚱뚱해서 안 먹으려고 하는데 자꾸 먹어진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끝이 안 나요. 먹고 싶으면 뚱뚱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나한테 안 좋다면 ‘아무리 먹고 싶더라고 마약은 안 먹듯이 이것도 안 먹어야지’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얼버무리지 말라는 거예요. ‘복은 안 지어놓고 부처님 복 좀 주세요’ 하는데 복을 안 지었는데 복이 어디서 나와요? ‘죄는 지어놓고 부처님 죄 좀 안 받게 해 주세요’ 하는데 죄를 지었으면 기꺼이 받아야지요. 복을 안 지었으면 복 받을 생각을 말아야지요. 이렇게 이치에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이런 자세를 가지면 삶이 자유로워져요. 부처님 하느님한테 매달릴 일이 없어져 버려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는 이치를 가르쳤지 남에게 매달리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종이 되라고 가르친 게 아니에요. 네가 부처가 되라고 가르쳤지요. 그러니까 스님의 종이 되려고 하면 안돼요. 스님의 얘기를 듣고 자기가 이치를 깨쳐서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돼요.nbsp어떤 경험을 가졌든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그 말은 모두 다 행복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행복하게 살 건지 안 살 건지는 자기 선택이에요. 괴롭게 살고 싶어서 괴롭게 사는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니까 우리가 간섭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계속 먹고 뚱뚱해지는 것도 자기 선택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러나 내가 뚱뚱한 것이 싫다면 먹고 싶어도 멈춰야 되요. 달리 방법이 없어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죽을 것 같아도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렇게 각오를 해야 돼요. 어떤 사람은 멀쩡한데도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그래도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켜보려고 하다가 죽는 게 더 낫잖아요. 이렇게 생각해서 하기로 했으면 ‘죽으면 죽지’ 이런 단호한 자세가 있어야 개선이 되지 안 그러면 늘 마약처럼 끌려서 살아요.nbspnbsp그러니 자기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식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스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돼요. 자기가 주인이에요. 자기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야 돼요. 그런데 자기에게만 이익이 되는 길을 가면 나중에 후회가 되기 때문에 자기 행복이 훼손돼요. 그렇게 여러분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긴 시간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을 향해 250여명의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청년들을 위해 스님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자원봉사자들과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방금 전 사인회 중에 어떤 분이 예쁜 상자에 초코렛을 가득 담아서 스님에게 선물을 했는데,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은 선물 받은 초코렛을 자원봉사자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으로부터 직접 초코렛을 받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nbsp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원래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주관하는 평화리더십, 여성리더십,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수료생들의 힐링 동문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메르스로 인해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두북에 머물면서 농사일을 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8 평화재단 심포지엄 및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소감을 나눠주었고,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에 참여해 통일의병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친 후 발우공양 시간에는 어제 정토회 행정처 간부들과 함께 메르스 대책에 대해 의논한 결과를 공유해 주면서 6월말까지 예정되어 있는 다중 행사에 대해서 어떻게 방침을 정할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메르스로 인해서 전국적으로 대중이 모이는 이번 주의 행사는 전부 취소했습니다. 지역 행사라 하더라도 방역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먼저 이번 주말에 있는 불교대학 특강 수련과 다음 주말에 있는 경전반 특강 수련을 둘 다 취소했습니다. 23일 전에 갑자기 취소하면 스탭들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이번 주만 취소하려다가 다음 주 것까지 같이 취소를 했습니다. 취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취소해 버리면 다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일정이 안 나와서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자체는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닌데 지금 정부가 잘못 대응함으로 해서 국민들의 불안이 굉장히 가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는 만의 하나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 취소를 했고요.nbspnbspnbsp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는 1박을 하지 않는 당일 행사이고 일반 대중이 아닌 정토회 회원이 참석하는 행사여서 취소를 안 하려고 했는데 장수군에서 취소해 달라고 요청을 해왔어요. 그래서 용성스님 탄신 기념일 행사에 대중이 참여하는 것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들만 가서 도량을 정비하고 다례제를 지내고, 서울 실무자들도 바쁘지 않으면 가서 행사도 참석하고 도량정비도 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6월말에 있는 청춘콘서트 행사도 취소할지 논의를 했는데요. 하루에 34시간 행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봐서는 큰 위험이 없는데 지금 사회 전체적으로 공포 분위기가 되어 있어요. 사회 전체를 안정시킨다는 측면에서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낫지만, 다중 집회에 대해서 장소 제공하는 쪽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서 조금 더 검토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일단은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며칠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병원에서만 전염이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전염 경로가 나타날지 모르고, 또 잠복 기간이 최장 18일까지 나타나고 있으니까 며칠 더 유의해 주시고, 꼭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감기 환자는 별도의 방에서 취침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기침을 하면 다른 대중을 위해서 마스크를 꼭 써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현재 정부에서는 너무 공포 분위기가 되어가니까 관광객이 줄고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위험에 비해 사람의 두려움이 더 커서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하는 사람들이니까 같이 불안해하지 말고 조금 진정을 해서 기존 사업들을 차분하게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러나 대중들이 불안해하는데도 고집을 해서 막무가내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도록 해주세요. 대중만 원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고 관점을 잡아야 합니다. 대중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추진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장소를 제공해주는 측에서 강력하게 하지 않기를 원하면 굳이 하려고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중들이 불안해하면 취소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해서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메르스로 인해서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스텝들이 걱정이 많았는데, 스님이 대략의 방침을 일러주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 했습니다. 그러나 스텝들은 행사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정성껏 준비를 해왔는데 줄줄이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부터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시부터는 출판, 영상, 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스님의 법문을 어떻게 더 많이 알려나갈지에 대해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담당자 회의nbsp회의를 통해 스님은 그동안 출판, 영상, 미디어 관련 업무들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왔는데 통합된 하나의 부서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희망편지를 더욱 참신하게 다가가도록 해야 할 필요성, 스님의 하루와 희망편지를 시각 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인터넷방송을 어떻게 준비할지, 연령과 지역을 구분한 타겟 홍보 방식, 불교대학 강의 내용의 개편 방안, 3.1절과 8.15 등 기념일별 기획 법문 제공의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앞으로는 출판, 영상, 미디어가 서로 융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서 정토회가 홍보에 있어서도 좋은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 하며 회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nbsp오후 1시에는 프레스센터로 이동하여 광북 70주년을 맞이해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의 모색’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nbspnbsp심포지엄에 앞서 기조 발제를 맡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을 만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박형준 사무총장님은 평소 스님이 강조하는 통일 문제 해법에 대해 많은 공감을 표하면서 스님과 반갑게 대화를 나눈 후 스님과 함께 심포지엄에 자리했습니다.nbspnbsp▲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nbsp오늘 심포지엄에는 총 350여명이 참석해 높은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박형준 국회사무총장님이 ‘한반도 평화의 우선성과 유연한 상호주의’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고려대 임혁백 교수님이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상’에 대해 방대한 연구 결과를 압축해서 잘 설명해 주었고, 이에 대해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님,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님,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님이 토론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에서도 질문지를 쓸 수 있도록 해서 전문가들에게 답변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 발표1 주제인 ‘통일코리아의 평화외교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을 주제로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나갈지 박동천 전북대 교수님의 발표를 들었습니다.nbspnbsp▲ 발표2 주제인 ‘평화공동체를 위한 한국 사회의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전문가들nbsp이에 대해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님, 국회의원 천정배, 이현우 서강대 교수님이 열정적인 토론을 이어 나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과 토론 내용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가 사회자가 닫는 말씀을 청하자 단상에 올라 오늘 발표된 두 주제에 대한 각각의 요약과 함께 스님의 소감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을 요악하면 이런 것 같아요. ‘우리 주위의 국제 질서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외교적으로 위기에 처해 가고 있다.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통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키는 결국 대한민국이다.’ 이런 결론처럼 들렸습니다. 제일 못하는 국가가 북한인 줄 알고 비판했더니 북한도 우리 보고 ‘너나 잘 해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nbspnbspnbsp결국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에 평화도 유지할 수 있고, 통일도 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체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기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좋은 기회인 상황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두 번째 발표와 토론에서 느낀 점은 우리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니까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시민이 아니고 신민이 되어서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 또 마음에 안 들면 욕만 하는 이런 수준이죠.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는 신민이 아닌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욕하거나 정치인을 욕하거나 이렇게 누구를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각이 먼저 필요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거나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 통일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 등 우리가 선택한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만들어나가면 지지해 주지만, 그렇게 안 하면 다음에는 교체를 하고, 교체 시기가 멀었으면 그렇게 가도록 독려를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정부를 욕하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nbspnbspnbsp또 동아시아에 있어서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지 북한이 해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결국 키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의 키는 정치 행위를 하는 주체인 정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 그런 정부가 되도록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선출해야 합니다. 이제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틀에 갇히거나, 지역주의의 틀에 갇히거나, 계급의 틀에 갇히지 말고,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고 그 구성원인 국민들이 행복해지도록 하는 그런 정부를 우리가 구성해야 합니다. 즉 통일 지향적이면서도 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이제는 시민이 행동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nbspnbsp우리 사회를 보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반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집회도 하고 돈도 내고 댓글도 달고요. 그런데 중도적인 사람들은 굉장히 신사예요. 사고가 합리적이고요. 하지만 아무런 행동을 안 합니다. 그래서 늘 극단주의자들이 사회를 주도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앉아서 불평만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구체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nbspnbspnbsp그런 면에서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분들은 고명하신 분들의 발표를 잘 들었으니 이제는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평화적이고 미래 문명을 지향하는 세계시민다운 품위있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필요하면 돈도 내고 필요한 행동을 해야만 세상이 바뀌지 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 않습니까. 우리 함께 그 길을 갔으면 좋겠습니다.”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참석한 대중들 모두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공감을 표현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평소 스님은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통일 문제와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은 비슷한 내용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그 근거와 논리를 다시 들으니 훨씬 더 자신감이 생기는 듯 했습니다.nbspnbsp▲ 심포지엄 발표자들과 함께nbsp심포지엄을 마치고 나서는 오늘 발표를 해준 전문가들에게 저녁 식사 접대를 해드린 후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저녁 8시부터 평화재단에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당에 들어서자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스님으로부터 의병 메달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촐하게 앉아 있는 대중들을 보며 “저는 한 천명쯤 임명장을 주는 줄 알았어요. 일인당 백 명이라고 생각하고 드릴 게요” 라며 웃음을 머금으며 신입 의병들에게 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nbsp각각 수여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임명장과 통일의병 메달을 받아든 통일의병들은 함박웃음을 웃으며 스님과 일대일 기념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 모두들 일당백이 되어 통일한국의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스님은 ‘통일의병의 마음자세’에 대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의병은 관군, 반군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준 후 과거의 의병과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통일의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의병은 관군에 반대되는 말이에요. 국가에서 지위도 주고, 녹봉도 주고, 무기도 주고, 훈련도 시켜서 상시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관군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의병입니다. 의병은 국가를 지킬 아무런 의무가 없는 사람인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돈 내고, 자기 옷 입고, 자기 무기 가져와서, 자기 목숨 바쳐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반군입니다. 나라가 잘못할 때 관군과 싸우는 것이 반군입니다. 그러나 의병은 관군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관군이 힘이 부족할 때 관군을 지원하면서 나라를 보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병은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관군도 아니지만 반군도 아닙니다.nbspnbspnbsp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입니다. 고조선이 망하고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고 일으킨 것이 다물군입니다. 중국의 침입을 받아서 전쟁에 지고 정규군은 다 도망가고 항복했는데 아무런 의무가 없는 민이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자고 한 것이 다물군입니다. 후에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고주몽이고 그래서 고구려의 건국이념이 다물 사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의 옛 땅을 되찾겠다, 우리 선조의 고토를 회복하겠다, 이런 정신으로 일종의 독립군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역사를 보면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부흥군이 있었고, 백제가 망하고 백제 부흥군도 있었고, 발해가 망하고 발해 부흥군도 있었고, 고려 때는 조금 성격이 다른 사병 집단이긴 했지만 항몽 전쟁을 한 삼별초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병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입니다. 진주성의 김성일, 김시민, 곽재우 이런 분들이 가장 대표적인 의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민이 혼연 일체가 되어서 왜적을 막아내었습니다.nbspnbsp최근 들어와서는 일본의 침략에 반대해서 조선조 말에 1차 의병, 2차 의병이 일어났었고, 이 의병 정신을 계승한 것이 독립군이었습니다. 또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독재 정권에 항의해서 싸웠던 민주화 운동도 외부의 적과 싸운 것은 아니지만 의병과 비슷한 성격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할 때는 총을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돌멩이 들고 화염병 들고 싸웠고 잘못하면 감옥에 갔습니다. 이제 통일 운동을 하는 의병은 총도 안 들고 돌멩이도 안 들고 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돼요. 손가락 들고 투표만 잘 하면 됩니다. 이것은 잘못해도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운동입니다.” nbspnbspnbsp손가락만 들고 싸우면 된다는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왜 손가락만 갖고 싸워도 될까요? 옛날에 대한제국일 때는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고 백성은 신민이었어요. 그 때는 왕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왕을 갈아치우는데 그러면 반군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뽑아 놓은 머슴들이 지금 직무유기를 하고 있어요.nbspnbspnbsp첫째, 우리가 지난 50년 간 일궈온 재산과 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한반도에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즉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려면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이제 통일이 우리에게 지상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대통령의 임무이자 대한민국의 국가 지표로 민주사회를 발전시키는 것과 평화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어요.nbspnbsp이렇게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목표를 방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대통령과 정치권력의 직무유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자꾸 머슴한테 눈치를 보고 있어요. 그러나 CEO가 회사를 잘 운영 못하면 주주총회를 열어서 CEO를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선 국가를 발전시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이제 우리는 더 이상 야당이냐 여당이냐 진보냐 보수냐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가장 통일지향적 자세를 갖고 있느냐?’ 이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복지를 얼마나 할 거냐?’, ‘경제를 얼마나 성장시킬 거냐?’ 이런 것을 가지고 투표 행위를 결정하지만, 통일의병은 그런 것도 보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얼마나 통일지향적이냐?’ 입니다.nbspnbsp오늘 의병 임명장을 받았으니까 내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중에서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설득해서 알려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그냥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만 번 불러봐야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힘을 딱 보여주면 정치인들도 당선되기 위해서 공약을 통일로 내걸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정치색을 너무 따질 필요도 없어요. 통일은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고, 보수가 집권하지 않아서 안 된 것도 아니에요. 양쪽에서 다 집권해 봤지만 그것 갖고는 못해냈잖아요.nbspnbspnbsp여러분들은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실제로는 지금 외교가 가장 위기입니다. 역사를 전환시키고 통일을 이룰 세력은 북한이 아니에요.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을 목표로 갖고 거기에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고,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은 앞으로 배지를 하나씩 나눠주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이 일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활동해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앞으로 배지를 하나 만들어서 나눠드릴 거예요. 세월호 추모하듯이 통일의병 배지를 하나 달면 ‘나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는 뜻이 되고,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백만 명이 되고 2백만 명이 되면 정치인들도 통일 문제에 신경 쓰게 되겠죠?nbspnbsp배지 하나 달았다고 회사에서 쫓겨나겠어요? 공무원 그만두라고 하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도 통일을 원하니?’ 물어보고 ‘그렇다’고 하면 배지를 나눠주고 통일기금을 받으세요. 이렇게 확산을 시켜야 됩니다.nbspnbspnbsp우리 선배들이 한국 사회를 민주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또 우리 선배들이 산업화를 이뤄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되었으니까 민주화가 된 것이고, 민주화를 해놓으니까 우리가 이런 운동을 할 수 있죠. 민주화가 안 된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운동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중국이나 북한에 태어난 것보다 훨씬 좋은 거예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는 통일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런 데서 여러분들이 확고부동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여기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과거는 따질 필요가 없어요. 과거에 진보에 있었든 보수에 있었든 지금 본인만 통일 지향에 동의하면 남녀노소, 과거의 전역을 묻지 않습니다. 이런 열린 자세를 갖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통일은 지금도 조금 어려워졌어요. 미국과 중국의 경쟁 틀이 거의 짜여 가고 있고, 우리는 그 하위 변수로 배치가 되어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우리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남북 관계를 잘 풀면,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일본이 감정적으로는 밉지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잘 풀어야 됩니다. 남북 관계도 잘 풀어야 하고요. 한미 동맹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이 문제를 못 풉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중요하지만 중국 눈치만 봐서는 안 됩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시해야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우리의 운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를 잘 풀고, 이 작은 힘을 키워서 큰 힘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국민이 압력을 넣어줘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알고 의병이 되어야지 그냥 의병이 되면 안 됩니다. 죽을 일은 없지만 이런 활동을 죽을 각오로 하셔야 합니다. nbspnbspnbsp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지 말고 ‘나라만 잘 된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도 좋다’ 이런 관점에서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먹을 것 다 먹고, 입을 것 다 입고, 화장도 다 하고, 자기 할 일을 다 하면서 해도 되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 부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감을 갖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nbsp스님이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주자 신입 통일의병들은 기뻐하면서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파이팅’을 외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이어서 손님이 찾아와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한 즉문즉설 강연이 대전정토회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6.15~17 중국 방문 후 귀국, 행정처 회의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지난 6월15일부터 17일까지 중국을 방문하여 단둥, 도문, 용정, 연길 등 지역을 둘러보며 중국 동포들과 북한 동포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오는 8월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을 어떻게 준비할지 등에 대해 답사를 하고 왔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출국nbsp6월15일에는 먼저 단둥에 도착해 시내 주변을 본 후, 단둥을 출발해 통화를 거쳐서 길림을 통해 연길까지 갔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새벽2시에 도착해서 다음날인 16일 오전에는 도문시 일광산에 새로 짓고 있는 화엄사를 방문하고, 공사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는지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중국 동포들의 자녀가 다니는 조선족 학교가 자꾸 폐교가 된다고 해서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을 세우기 위해 답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부분의 학교들이 통폐합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현장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직접 둘러보지는 않고 그 현황만 자세히 들어보고 무엇을 도울 것인지 의논을 하였습니다. nbspnbsp현재는 향·진에 학교 하나씩만 남기고, 리 단위의 학교는 거의 다 없어진 상황이라고 합니다. 통폐합된 학교도 인원이 100명 내지 200명 밖에 되지 않고, 100명 중에서도 70명 정도가 한족이고 조선족은 30명 정도로 편성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용정시나 도문시 등 시내에는 조선족 학교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는 8월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을 담당하고 있는 조선생님을 연길에서 만나 역사기행 일정과 숙소, 식사 문제 등을 의논했습니다. 또 저녁에는 평생 동안 발해 역사를 연구하신 방학봉 교수님과 조선생님 등 그동안 스님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저녁을 대접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용정시에 정토복지협회를 공식적으로 꾸려서 중국 동포들과 북한 동포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17일 오전에는 옥수수 국수를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에 있는 양로원과 고아원 등 가난한 곳에 지원하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옥수수 국수를 배분하는 것을 둘러본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 양로원, 고아원 등에 옥수수 국수 지원nbsp그리고 스님은 중국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짧은 소회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북한 쪽도 경계가 삼엄하고 중국 쪽도 철조망을 다 치는 등 경계가 삼엄한데도 탈북자들이 넘어오는 일이 자주 있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는 못 넘어오도록 총까지 쏘아서 사망하는 사람들도 발생하고 있고요. 북한의 지방 쪽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평양은 다녀온 사람들 얘기를 들오보면 조금 좋아졌다고 하는데 지방 사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100년 만에 닥친 큰 가뭄으로 모내기를 제대로 못한 논이 많고, 또 모내기를 했다 하더라도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져 벼가 말라죽는 피해가 많다고 하네요. 지금 남북관계가 나쁘더라도 이럴 때는 양수기를 지원하면 좋겠는데 서로 주겠다고도 달라고도 하지 않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nbspnbsp그리고 중국은 지금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런 것을 보면 북한 사회의 내부 변화에 대해서는 남한보다도 중국 쪽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더 적절하게 대응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은 북한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비핵화를 하고 개혁 개방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이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통일에 큰 장애가 될 소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nbsp현재 북한 내부의 정세는 정권이 교체되었니까 지도 인력을 일부 교체할 수 밖에 없겠지만 갑자기 지도 인력을 교체함으로 해서 간부들은 좀 불안해 하는 것 같아요.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된 것은 없고, 간부들은 신변 안전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어 겉으로는 체재가 안정되어 있어 보이는데 내부적으로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았어요.nbspnbsp도문에는 큰 산업단지가 꾸려져서 북한 노동자들이 많이 와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밖에서는 괜찮아보이는데 안에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좋은 소식들 보다는 안 좋은 소식들이 더 많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여러 가지 소식을 이야기해 주면서 무척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17일 오후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스님은 곧바로 정토회관에서 여러차례 미팅을 이어 갔습니다. 정토회 행정처 집행부와 미팅을 가지면서는 메르스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중들이 모이는 행사 중 이번주 내의 행사를 전부 취소하고, 지역 행사라도 방역 등 예방에 최선을 다하도록 당부하였습니다. 그 외에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정토회 행정처와 미팅nbsp내일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반도 평화공동체 건설을 위한 실천 전략의 모색’을 주제로 평화재단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고, 저녁에는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6.14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한 입재 법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백일출가에 입재하여 만배 기도를 마친 행자들을 위해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해 주셨습니다.nbspnbsp새벽 4시30분, 스님께서는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문경정토수련원 대웅전nbsp기도를 마친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이 참석하는 발우공양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는 먼저 “어제와 오늘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면서 “그렇지만 원래 잡혀 있었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발우공양에 참석한 대중들을 살펴보시더니 어제 입재 만배를 마친 25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을 보고선 환영 인사와 함께 출가자의 마음 자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출가’와 ‘가출’의 차이에 대해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백일출가에 입재한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출가라고 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집을 떠난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왜 집을 떠나는가? 집은 우리를 안온하게 하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를 속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죠. 대다수 사람들은 집을 속박으로 느끼기 때문에 집을 떠나고 싶어하지만 집을 나가면 속박에서는 벗어나는데 안온함도 같이 사라지니까 집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집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집이 안온한 보호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집을 찾게 됩니다.nbspnbsp그래서 집으로 들어오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가면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다시 안온한 곳을 찾아서 들어오게 되고, 또 얼마 있으면 속박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원합니다. 새로 결혼을 하면 그런 집이 될까, 외국으로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절에 가면 그런 집이 있을까, 이렇게 속박은 없고 안온함만 있는 그런 집을 찾아가는데 가보면 또 속박을 느끼고, 나오면 또 외로워지고, 이렇게 방황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것을 ‘가출’이라고 부릅니다. 집을 나오긴 나왔는데 더 좋은 집을 찾아 나왔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들어가면 또 속박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것은 가출입니다.nbspnbsp그러면 출가란 것은 무엇이냐? 집은 안온함과 속박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이 둘은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 안온함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이 안온함마저도 버려야 출가가 됩니다. 즉 집을 불살라 버려서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 ‘출가’입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직장을 다니다가 직장에서 속박받고,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가정에서 속박받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부모에 속박이 되고, 그래서 늘 속박을 느껴서 ‘이제는 좀 자유롭게 살아보자’ 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유로움은 잠시일 뿐 몇일만 살면 집의 안온함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떠나온 곳을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괜히 왔다’, ‘이 고생 안해도 될텐데’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자꾸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출가가 아니고 가출이 됩니다.”nbsp이어서 왜 백일출가를 시작하기 전에 만배를 시키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래서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고 만배를 하는 겁니다. nbsp집이 그리운 사람은 만배를 하는 중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이런 얘기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의지처를 찾게 됩니다. 만배는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절을 하다보면 온갖 생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괜히 왔다’, ‘집에 있는 게 나았을 걸’, ‘어떻게 오자마자 만배부터 시키냐?’, ‘다리 다치면 어떡하냐?’nbspnbsp그래서 만배하는 중에 자신의 까르마에 사로잡혀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만배를 끝내면 괜찮아지느냐? 그런 뜻은 아니에요. 만배 중에 일어나는 자신의 분별심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은 여기와서 살아도 백일 안에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니 그 자신을 위해서도 시간 낭비입니다. 출가를 해서 좋은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고 괴롭게 보내다가 불교를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만두고 가게 되면 다시 여기 찾아오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을 마음에서 피하고 싶어지고, 백일출가 하다가 중간에 나갔다는 말도 듣기 싫어집니다. 좋은 마음을 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원수가 됩니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원수가 안 될텐데 와서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원수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만배입니다.”nbspnbsp다행이 오늘 발우공양에 참석한 분들은 모두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만배의 관문을 통과한 후 다음 과제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는 마음이 많이 드는데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제 여러분들은 이 만배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만배의 관문을 통과하면 수행이 저절로 되느냐? 아닙니다. 어떻게 다겁생래로 지은 무명 업식이 만배 한다고 없어지겠어요? 다만 하나의 관문을 넘은 것입니다. 즉 여기서 백일 정도 살 힘을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것도 자랑스러운 일이죠.nbspnbsp수행의 목표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롭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목표를 향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사람을 ‘수행자’, 즉 ‘보디사트바’라고 말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을 이름하여 ‘붓다’라고 합니다. nbspnbsp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안온함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큰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어려움에 처할 때 더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해서 안온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심리, 이것이 종교입니다.nbsp그런데 불교는 이런 의미의 종교가 아닙니다.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중생의 이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스승이 되는, 즉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어려울수록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중생의 업식이고, 어려울 때 의지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극복해내는 것, 그래서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수행의 목표입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이곳에 수행하러 들어왔지만 자기도 모르게 점점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자꾸 의지하려고 합니다. 부처님께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법사님께 의지하고, 스님께 의지하려고 합니다. 즉, 잘 보일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그분들을 안내자로 삼아서 내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자발성이 있어야 됩니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nbspnbsp▲ 백일출가 입재자들nbsp수행은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다음은 선배들을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남들이야 계율을 어기든 말든 나는 나대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런데 오리엔테이션도 받고 수행의 원칙을 잡아서 몇일 열심히 하다보면, 선배들도 원칙대로 안 하고 동료들도 원칙대로 안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안해도 되네’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면 세상에 물듭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고, 욕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 욕하게 되고, 술 먹는 사람과 같이 살게 되면 술을 먹게 되는데, 이렇게 물드는 존재가 범부중생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물들지 않는 자입니다. 옆에 사람이 술을 먹으면 그건 그 사람의 식성이고, 옆에 사람이 욕을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성질이고 말버릇입니다. 그건 그의 문제이고, 그것이 옳지 않다면 남이 다 먹어도 나는 먹지 않고, 남이 다 욕해도 나는 욕하지 않고, 남은 다 늦잠 자도 나는 일찍 일어나서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남이 안 하면 나도 따라서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한다고 안 하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내가 한다고 남이 안 하는 걸 비판해도 안되고, 남이 안 한다고 나도 따라서 안 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안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고, 그것이 옳다면 나는 내 인생의 길을 가야 합니다.nbspnbsp이제 오늘부터 ‘때 아닌 때 먹지 않는다’, ‘비닐에 쌓인 음식은 먹지 않는다’ 이런 계율을 받게 됩니다. 만약 ‘늦게까지 일해서 피곤하니 내일 아침 예불은 좀 늦게 해도 됩니다’ 이렇게 공지가 나가더라도 대중들이 다 늦게 해도 그건 그들의 일이고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혼자라도 한다, 간식을 줘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나는 안 먹기로 했으니까 나는 안먹는다, 술을 한잔 하라고 해도 먹는 것은 그들의 일이고 안 먹는 것은 나의 일이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정했으면 선배가 어떻게 하더라, 스님이 어떻게 하더라, 동료가 어떻게 하더라,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nbspnbsp자발적이라야 이런 태도를 갖지 자발적이지 않으면 ‘스님이 쉬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자기가 자기 힘을 키우려면 거기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안 먹기로 했으니 나는 안먹는다’ 이런 정도의 자세가 되어야 해탈로 갈 수 있습니다.nbspnbsp대중이 안 먹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해도 안 먹는 자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잘 안될 겁니다. 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수준이겠지요. nbspnbspnbsp안 먹기로 했는데 혼자서 몰래 먹는 것은 계율을 어긴 범부중생이고, 먹어라고 해서 먹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먹어라고 해도 안 먹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밖에 있을 때는 늘 이것저것 먹고 싶을 때 먹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안 끄달릴 것 같은데, 때 아닌 때에 안 먹는 생활을 해보면 내가 얼마나 먹는 것에 끄달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살 때는 속박만 느끼고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데, 집을 떠나보면 집이 좋은 줄 아는 것처럼 자신의 까르마를 멈춰봐야 내가 거기에 얼마나 중독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먼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것에 끄달리는지 점검을 해야 합니다. 다음은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자기 수행의 원칙이 딱 있어야 합니다.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원칙을 정하면 안돼요. 정해진 계율에 따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 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중이 다 하니까 나도 따라서 하기가 쉬워요. 세속에서 혼자서는 못하지만 대중이 같이 하니까 할 수 있게 됩니다.nbspnbsp그러나 가끔 필요에 따라서 원칙을 유예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기 중심을 잡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되면 수행자 소질이 있고, 그게 안되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환경에 물들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 나쁜 환경에 물드는 수준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것에 물드는 것이나 나쁜 환경에서 나쁜 것에 물드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러니 남이 하고 안하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일은 남이 안해도 하고, 나쁜 일은 남이 해도 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여기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딱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만 마음을 먹으면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잘 안돼요. 이미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에요. nbspnbspnbsp좋은 것에 물이 들어서 아침에 깨우면 벌떡 일어나서 잘 해요. 그러나 ‘이래도 된다’ 이렇게 유예를 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마치 학교 선생님이 오늘 수업 없다고 얘기하면 학생들이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발성이 없이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됩니다. 자발성 없이 좋은 일을 하면 착한 사람일 뿐이지 수행자는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세상이 함께 해주면 좋지만, 세상이 함께 해주지 않아도 자기 갈 길을 갑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은 세상을 거스른다고 말합니다.”nbsp그리고 수행자는 항의하고 싸우는 방식이 아닌 정말 개선을 원한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초발심이 중요합니다. 이제 시작이니 오늘부터 원칙을 정해놓고 한번 해봐요. 그래서 정토수련원의 분위기를 여러분들이 확 바꿔보세요. 그렇지 않고 ‘선배들도 제대로 못하는데 뭐’ 이렇게 되면 안됩니다. 남을 따라 가면 안됩니다. 나쁜 행동은 금방 따라하기 쉽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안바뀌는 이유는 윗물이 흐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선배들이 문제다’ 라고 얘기하는데, 원인은 맞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 개선할 길이 없어요. 선배들이 그렇든지 말든지 그것이 부처님 법이 아니면 안 따라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면 안 해야지요. 이런 자세로 해나가면 세월이 흐르면 개혁이 되어 버립니다. 기존 선배들은 제대로 못하더라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부터 딱 바로 하면 수행 분위기가 바뀌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할 역량이 안되는 겁니다. 즉 그만큼 발심이 안 되어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자발적인 수행자가 자꾸 자꾸 들어오면 정토회가 좀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확 개선이 되어버립니다. 막 항의하고 싸워서 개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윗물이 맑아도 밑으로 내려가면 흐려져서 시간이 흐르면 못해지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nbsp그러면서 백일출가를 한 행자님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nbspnbsp“누가 뭐라든 주어진 계율대로 할 수 있겠어요?”nbsp“네”nbspnbsp“대답이 신통찮네요.nbsp평생 하라는 것이 아니고 백일만 해보세요. 백일만 해보고 좋으면 계속 하고, 안 좋으면 그만두면 됩니다.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 이거 백일 동안 할 수 있을까요? 이거 한 개라도 백일 동안만 딱 해봐요.”nbsp“네”nbspnbspnbsp백일 만큼은 해볼 수 있겠는지 묻는 질문에는 우렁찬 대답이 터져나왔습니다. 한 개라도 꼭 지켜보라는 말씀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불교라고 하면서 남이 아닌 오직 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수행의 원칙이 이렇다는 겁니다. 선배가 해탈 안한다고 나도 해탈 안할 거에요? 선배가 중생놀음 한다고 나도 중생놀음 할 거예요? 내가 해탈하고 부처되려고 들어왔지 선배 본받으려고 들어온 것 아니지 않아요? 같이 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안해주면 나 혼자라도 가야 합니다.nbsp만배 하는 게 쉬워요? 때 아닌 때 안 먹는 게 쉬워요? 만배도 했는데 때 아닌 때 안 먹는 걸 왜 못해요? 그런데 만배는 이를 악 다물고 해놓고 간식은 그 유혹을 못 이겨요. 그래서 예로부터 협박보다 유혹이 더 어렵다고 한 겁니다. 협박을 하면 이를 악 다물고 저항을 하거나 참는데, 유혹을 하면 금방 넘어가 버립니다. 만약 새벽 2시에 들어와서 4시 예불에는 참석 안 해도 된다고 공지하더라도 자기는 그냥 4시에 일어나서 예불을 하는 겁니다. 아무도 안해도 나 혼자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해탈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거센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다 해도 나는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아도 흔들림이 없습니다.nbspnbspnbsp그렇지 않으면 여기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물을 좀 빼고 나가면 또 물이 들어서 들어오고 또 나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를 넘어서서 세상을 정화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우선 세상에 물들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 격리 수용되어 있는 거에요. 이렇게 격리 수용되어 있는데도 몰래 혼자서 물들고 그러잖아요.nbspnbsp그러니 여기에서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을 대비해서 법이 아닌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지 안 하는지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 누구도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내가 짜증이 나나 안 나나, 오직 나를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던데’ 이렇게 보면 안됩니다. 도반이 어떻게 하든, 선배가 어떻게 하든, 법사님이 어떻게 하든, 그건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되나 안 되나, 오직 이것만 보고 정진을 해야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오늘 처음 들어왔다고 하니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겁니다. 벌써 오래된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백일출가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수행적 관점을 분명하게 잡아주고자 정성껏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남 볼 필요 없이 오직 나만 보라’는 말씀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백일출가 행자님들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부터 백일출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스님 법문이 큰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원래 오늘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기로 시간을 비워 놓으셨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는 바람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아침 10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부터 3일 동안은 중국을 방문하여 폐교 위기에 놓인 조선족 학교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답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2015.6.13 통일의병대회
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메르스로 인해 정토회의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었지만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순례 코스를 스님 혼자서 걸으며 통일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30분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두북정토수련원nbsp기도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통일의병대회를 메르스 때문에 대중이 못하니까 나 혼자라도 해야겠다” 고 하시며 오늘 원래 통일의병들이 집결하기로 한 “법흥왕릉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nbsp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통일이라고 하는 민족의 염원은 남이 안 한다고 나까지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같이 하면 고마운 일이고, 다른 사람이 안 해도 나 혼자라도 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 염원이라고 하지. 용성 조사님께서 다른 스님들이 독립운동 안 한다고 안 하신게 아니잖아. 다른 스님들이 친일한다고 따라하지 않았잖아. 수행자는 그것이 해야 할 일이면 남이 하든 안 하든 나는 하는 사람이야.”nbspnbsp6시 무렵 법흥왕릉에 도착하니 새벽녘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아주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가사를 수하고 삼귀의 반야심경을 하면서 혼자 통일의병대회 입재식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정성껏 하셨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기도를 마친 후 스님께서 “오늘 통일의병대회 입재식을 잘 했다. 뒤에 통일의병 900명 서 있는 거 안 보였어?”라고 하셔서 멀뚱히 스님을 바라보니 “눈에 안 보이는 통일의병들이야”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법흥왕릉을 내려오는 길에는 함께 동행한 묘덕법사님과 김신아님에게 법흥왕릉에서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려고 했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법흥왕의 가장 큰 업적은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을 이루어낸 점이야. 신라가 가야와 합병한 이후에 국호를 신라로 했다는 것은 우선 자기 아이덴티티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그만큼 자기중심성이 있었던 반면에 상대에 대해서는 포용을 해야 되니까 상대의 정신적인 이념인 불교를 공인해서 그들의 신앙이나 사상을 존중해 주었지. 그리고 상대의 신분을 보장해 주었어. 즉 가야 왕족을 신라의 진골로 모두 받아들여 준 거야. 이렇게 포용을 했다는 것이지. 그러니 우리도 통일을 하려고 할 때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 분명하면 북한을 포용해줘야 한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법흥왕릉에서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려고 했던 거야. 자, 그럼 다음 순례 장소로 가보자.”nbspnbsp스님의 짧은 설명을 듣고 나서 ‘과연 한국은 북한을 포용할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신라가 불교 국가인 가야의 신앙을 공인해 주었듯이 과연 남한이 북한의 공산당 이념을 허용해 줄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졌습니다.nbspnbsp다시 황룡사지로 가는 길. “가야를 포용한 법흥왕이 참 대단하다”고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야”라고 하면서 덧붙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법흥왕도 처음부터 포용 정책을 편 것이 아니야. 처음에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어. 젊은 이차돈이 순교를 한 이후에야 불교를 공인했거든. 왕도 보수세력의 포로가 되어서 공인을 못해주고 있었는데 이차돈이 527년에 순교하면서 전세가 뒤집어져서 528년에 불교가 공인이 되었어.”nbspnbsp그때서야 이차돈의 순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포용 정책에는 많은 반발이 따를 수 있고 그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곧이어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분황사를 지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라 당시 최고의 고승들이 설법을 했다고 하는 백고좌 강당터를 지나 대웅전인 금당터에 올라섰습니다. 스님께서는 삼존불을 모셨던 자리 앞에 서서 목탁을 손에 드시고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 황룡사지 금당터nbsp그리고 돌아서서 9층탑이 세워졌었던 터를 향해 잠시 기도를 한 후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탑돌이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황룡사지를 참배하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 9층탑 주위를 돌며nbsp“황룡사는 진흥왕이 신라의 국력이 한창 신장되고 있을 때 지은 절이야. 그러나 9층탑은 선덕여왕 때 외적의 침입을 막고 삼국 통일을 발원하면서 쌓은 것이고. 여기서는 대중들에게 한반도의 통일을 발원하는 얘기를 하고 통일의병들과 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하려고 했지.”nbsp설명을 듣고 나니 만약 오늘 900여명의 대중들이 와서 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했었으면 장관이었을 것 같습니다. 황룡사지의 넓은 터에 가만히 서 있으니 흐린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는데 스님께서는 “오늘 통일의병대회 했으면 날씨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을 뻔 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황룡사지를 출발하여 낭산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로 한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도로는 신호가 걸릴 때 대중들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에서 낭산으로 향하는 길nbsp중간에 나지막한 언덕에 최치원 선생이 집필 활동을 했다고 하는 독서당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늘 먼발치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오늘 한번 가보자” 하시면서 앞장섰습니다. 독서당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문이 열려 있어서 마당 안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최치원 선생에 대해서 간략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최치원 선생의 독서당nbsp“최치원은 신라 말의 대문장가였어.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했지. 중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개혁정책을 내놓았는데 신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낡은 왕조가 개혁정책을 안 받아주니까 결국 은둔 생활을 하다가 죽었어. 말하자면 당나라에서 대문장가로 출세를 하고 자신의 뜻을 펼쳐보려고 신라에 들어왔는데 신분적 한계가 있었던 거야. 신라는 왕족인 진골이여야 출세를 할 수 있는데 최치원 선생은 6두품이었거든. 원효스님, 최제우 선생과 더불어서 한국이 낳은 3대 역사적 인물 중에 한 분이라고 볼 수 있지.”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해외에서는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국내로 들어오면 기득권 세력에게 밀릴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기차 철로를 지나 낭산을 올라가는 입구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 능지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능지탑 앞에서도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능지탑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능지탑은 통일 이후 신라의 진로를 보여주는 곳이야.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의 화장터에 세운 탑이거든. 문무대왕은 마지막 남은 적인 왜를 방어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어서 동해 바다의 용이 되겠다고 원을 세웠어.”nbsp여기서는 지도자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어떠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된다면 문지기라도 하겠다고 얘기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선덕여왕릉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소나무 숲길이 길게 나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그 거리를 재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거리 측정을 해보니 시원한 그늘을 이루고 있는 숲길이 총 450m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1m당 2명씩 앉으면 2줄로 900명이 앉아지니까 충분하네. 내가 가운데 지점에서 법문을 하면 양쪽으로 225m 되니까 송수신기로도 들을 수 있고, 법문 끝나면 그늘 아래서 간식도 먹을 수 있고” 하시면서 예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nbspnbsp▲ 선덕여왕릉nbsp“왜냐하면 능지탑이나 사천왕사지는 그늘이 없어서 6월이면 햇볕이 뜨겁거든. 그래서 선덕여왕릉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이 숲길에 일렬로 주욱 앉아서 설명을 듣고 사천왕사지에서는 기도만 하고 가려고 했지.”nbsp많은 대중들이 6월의 뙤약볕 아래에서 법문을 들으려면 힘들다는 것을 아시고 그 대책을 마련하느라 많은 연구를 하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선덕여왕릉을 통일의병대회의 순례 코스로 잡은 이유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선덕여왕은 삼국 통일을 준비한 사람이야. 황룡사 9층탑도 쌓았고, 김유신과 김춘추를 시켜서 통일을 준비하게 했어. 김춘추는 고구려에 먼저 가서 고구려와 협력을 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잡아서 죽이려고 했어. 그래서 할 수 없이 김춘추는 당나라로 가서 당태종과 합의해서 나당 동맹을 견고하게 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때가 선덕여왕 때야.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키워낸 사람이고 통일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nbsp통일을 준비한 지도자였다는 말씀에 뭔가 깊은 울림이 남았습니다. 본인이 통일의 과업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통일될 나라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를 했다니 ‘우리에게도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찰나에 ‘아, 우리에게는 스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에 도착하니 전체가 깨끗하게 벌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잘 정돈된 사천왕사지를 보니 오늘 통일의병대회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다시 한번 느껴졌습니다.nbsp▲ 사천왕사지nbsp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에서 불상을 모셨다고 하는 법당 터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간절히 통일 염원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 후에는 왜 이곳에 통일의병을 데리고 와서 기도를 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신라가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우방이었던 당나라와도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사천왕사지는 그 마지막 승리를 위해 신·불의 도움을 청하려고 기도했던 곳이야.nbsp사천왕사지에서는 언제 기도를 해야 하느냐 하면, 남북 간에는 합의가 되어서 통일하려고 하는데 그 때 미국이나 중국이 반대를 할 수 있거든. 그 때는 여기 와서 기도를 해야 돼.”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 역사 속에는 이미 선조들이 국난을 극복해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습니다. 선조들의 경험 속에서 교훈을 잘 얻는다면, 또 그 힘을 빌린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명랑법사가 12명의 스님들과 함께 문두루비법을 행해 당군을 수장시켰다고 하는 곳을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nbsp“당나라와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면서 문두루 비법을 행한 곳이 여기 법당 뒷쪽에 있어. 이쪽에 12개의 기초석 위에는 법사님 12명이 올라서고, 저쪽에 12개의 기초석 위에는 대중부 대표 12명이 올라서서 그 때 당시처럼 문두루 비법을 해보려고 그랬어.” nbspnbsp옆에서 묘덕법사님이 “문두루 비법 주문은 무엇으로 해요?” 라고 묻자 스님께서도 웃으셨습니다.nbspnbsp다음은 통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암’ 이라고 해서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작은 암자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암자 뒤에는 대나무와 소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어서 900명의 대중이 능히 앉을 만했습니다.nbspnbsp통일암에서 걸어서 내려오니 염불사라고 하는 작은 절이 나타났습니다. 염불사 앞마당에는 큰 탑 2개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회향식을 하려고 했다 하시면서 탑 앞에 서서 다시 한번 간절히 통일 염원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nbsp▲ 염불사nbsp“여기서는 통일의병의 실천 과제로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그러기 위해서 실천 사항을 이야기하고, 다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하려고 했지.”nbsp이렇게 얘기하신 후 스님께서는 “그럼 오늘 통일의병대회는 이것으로 다 한 거다” 라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nbspnbspnbsp스님 혼자서 진행한 통일의병대회 순례 코스는 대중들과 함께 할 때보다 훨씬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아침 6시에 시작한 순례는 입재식부터 회향식까지 3시간 30분이 걸려 9시30분 무렵에 마쳤습니다. nbspnbsp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 “스님의 통일 강의를 많이 들은 사람들은 스님의 통일 비전이 너무 좋지만 막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많이 얘기한다” 고 하면서 스님의 생각을 여쭤 보았습니다. 항상 이 부분이 답답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간단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nbsp“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래서 스님이 대안을 제시한 거야.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통일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지금부터 2년 간 계속 확대해 나가야지. 다른 건 의미가 크지 않아. 그러니까 하반기에는 통일을 원하는 국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을 해나가야지. 그게 통일의병이야.nbsp가령 이런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nbspnbsp‘우리는 통일을 원해 ♬ 대한민국이 통일의 중심이 되어야 해.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해. 그러려면 상대편을 이해해야 해 북한을 포용해야 해. 통일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야nbsp♬nbsp이제 등불을 켤 때가 되었어.’nbspnbsp이런 짧은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야지. 요즘 젊은이들 노래가 이런 식이잖아. 또 이런 가사도 만들어 볼 수 있잖아.nbspnbsp‘밥 먹자. 배고플 때는 혼자 먹어도 괜찮아 ♬ 그런데 배부를 때는 혼자 밥 먹으면 재미없어. 배부를 때는 같이 밥을 먹어야해 ♬ 이제 우리 북한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자.’nbspnbsp이렇게 해학적이고 재미있게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어.”nbsp스님 말씀을 듣고 갑자기 랩퍼가 되어 스님의 얘기한 가사를 따라 불러 봅니다. 우리들이 부르기엔 영 어색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스님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통일을 주제로 한 재미있는 노래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 들었습니다. 조만간 그런 날이 오겠지요.nbspnbsp이렇게 나홀로 통일의병대회를 마치고 나서는 원래 오늘 강의를 해주기로 약속했던 경주고등학교에 잠깐 들르셨습니다.nbspnbsp▲ 경주고등학교nbsp경주고등학교 강연도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었는데, 스님께서는 “경주고등학교 안에 6.25전쟁 전몰 학도병 추념비가 있는데 거기를 참배하고 와야겠다” 하시면서 학교로 향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었지만 추념비는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6.25전쟁 전몰학도병 추념비nbsp6.25전쟁 때 경주고등학교 학생 320명이 안강 전투에 출정하여 전사한 이가 39명이고 실종된 이가 1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기려 추념비를 세웠는데, 비석 앞에 서서 분단의 아픔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미쳤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몰학도병들의 넋을 기리며 해탈주 삼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두북으로 돌아온 스님께서는 도착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nbsp마당에 심어 놓은 갖가지 채소들을 뜯고 물을 준 후 중간 중간에 잡초가 난 것을 제거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도에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김신아님과도 밭일을 하며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예초기와 낫, 톱을 들고 부모님 산소를 찾으셨습니다. 산소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벌초하고 깨끗이 정돈하셨습니다. 형체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무성했던 산소는 스님께서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한지 2시간 만에 아주 깔끔하게 변했습니다.nbspnbsp▲ 작업 전nbspnbsp▲ 작업 후nbsp벌초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씻고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는 어제에 이어서 BTN에서 스님께서 꼭 보셔야 한다고 전해 준 ‘붓다’ 드라마 3회, 4회를 시청하셨습니다.nbspnbsp원래는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내일 오전에 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기로 약속을 해놓으셨는데 메르스 때문에 최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취소된 건 그들의 사정이고, 나는 약속을 지켜야지” 하시며 내일 새벽 예불과 발우공양을 문경에서 하고 서울로 이동하기로 하셨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2 INEB 환송 및 두북 이동
▲ INEBnbsp스텝 봉사자들과 대화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며 환송 인사를 하고,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를 한후, 오후에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먼저 메르스로 인해 주말에 예정된 정토회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메르스 확산 때문에 통일의병대회와 불교대학 특강수련, 대전에서 있는 청년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특별히 위험해서라기 보다는 대통령도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하고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서 전국민이 협력하는데 전체적으로 같이 협력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번주 행사는 모두 최소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아시고 함께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병원에 갈 때는 주의를 좀 해주세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했거나 또는 집에 있는 환자를 방문한 사람은 당분간 상주 대중생활을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어제 법광 법사님은 딸이 메르스 환자와 가까이 있었던 처지로 격리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방문하고 왔기 때문에 열흘간 법당을 출입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환자를 방문할 때는 검토를 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방문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현재까지는 대부분 병원에서 전염되고 있습니다. 병문안 갔다가 전염되고, 입원했다가 전염되고, 응급실에 갔다가 전염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전염된 예는 크게 없는 것 같군요. 현재까지는 모두 병원에서 전염되었기 때문에 병원을 방문할 때는 모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도 겨울이 되면 독감 환자가 생기면 같은 방에 사는 사람은 다 전염되잖아요. 올 겨울부터는 독감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독방을 쓸 수 있도록 하고, 같은 대중방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올해부터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매년 독감에 대해서 예방을 못해 거의 한달을 고생하잖아요. 그래서 누구든지 독감 환자가 생기면 대중과 분리시켜서 함께 생활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독감 환자는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리고 INEB 동남아 스님들이 모두 출국을 하게 되는데 스텝 봉사자들은 공항 배웅을 다녀오면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밥이라도 한끼 먹으면서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함께 소감이라도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nbspnbsp그리고 내일 열릴 예정이던 통일의병대회가 취소되어서 대신에 그동안 경주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많았는데 못해주다가 내일 해주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음주에는 폐교 위기에 처한 조선족 학교들을 방문하려고 하는데 학용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JTS 담당자에게 요청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난주에 49일 출가 수행프로그램을 회향하고 밖에서 살고 있지만 일주일마다 하루씩 법당에 다시 들어와 정진을 이어나가기로 한 청년들을 보고선 세상 속에 살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한번 더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밖에 가서 일주일 살아보니 어때요?”nbspnbsp“다시 들어오고 싶어요.”nbsp“역시 밖이 좋더나?”nbsp“아니요. 안에 사는 게 더 좋습니다.”nbsp“여기 사는 게 좋아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마워요. 그러면 아예 직장 그만두고 들어오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좀 어려워요? 여기서 출퇴근하면 잠을 제대로 못자서 피곤했잖아요.”nbsp“그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또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네요. 수행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늘 이뤄져야 하니까 절에 있으면 수행이 되고 밖에 나가면 금방 물들면 아직 수준이 안되는 것이거든요. 지금은 물드는 존재이지만 여기서 연습을 해서 이제 물 안드는 존재로 가야 되잖아요. 물 안드는 존재는 두 가지가 있어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말처럼 물 안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물이 안 드는 방법이 있고, 물들 수 있는 세상 속에서도 물이 안드는 방법이 있어요. 소승은 세속을 경계해서 세속을 멀리하고, 대승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물이 안드는 수행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 들어와서 수행하는 것과 같이 회사에서도 화를 안내고, 짜증도 안내고, 먹는 것에 욕심 안내고, 승진에도 욕심 안내고, 야단을 쳐도 새소리처럼 듣고 이렇게 되는지, 그게 안되면 여기 와서 다시 기도하고, 또 직장에 가서 되는지 검토하고, 그래서 그 속에서 되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을 매일 점검하고 한주에 한번씩 와서 정화시키고 또 나가서 살면서 물 좀 들면 또 정화하고 또 나가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49일 한 것은 물 안드는 격리 조건에서 연습한 것이고, 이번에는 다시 나가서 왔다갔다 하면서 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물 안드는 수준이 되는지 검토해 보고, 그게 되면 나가 살아도 되고, 그게 안되면 아예 회사 사표를 내고 들어와야 해요. 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는가 봐요. 여기 사는 사람들도 세속에 살 수준이 안되어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거에요. nbspnbsp결혼해서 애기 낳고 사는 사람들은 수준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보통 수준이 안되는 사람이 멋도 모르고 결혼해서 살다가 괴롭다고 아우성치고 난리잖아요. 그래서 스님이 늘 얘기하잖아요. ‘나도 수준이 안되지만 그래도 나는 안되는 줄을 알아서 이렇게 혼자 사는데, 너희는 안되는 수준인데도 되는 줄 착각해서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되었다’ 하고요. nbspnbsp자기가 결혼하고 자기가 애 낳고 자기가 직장다니고 이렇게 자기가 선택해놓고 자기가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건 좀 모순이잖아요. 밖에 나가 살다가 후회가 되면 다시 들어오면 됩니다. 그런데 그 수준에서 들어오면 여기서 살아도 또 괴롭다고 아우성을 쳐요. 여기 살면서도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러니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연습을 해보세요. 늘 여여하게 되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청년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49일 수행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니 힘든 점이 여전히 많았나 봅니다. 다시 들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히 느껴졌지만 역시나 스님께서는 힘들어하는 바로 그곳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함을 다시 일깨워 주셔서 모두들 다시 수행 자세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며 스님께서는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는 INEB 동남아 스님들께 다같이 삼배로 인사를 드리자고 하셨습니다. 삼배를 한 후 ‘다음에 다시 만나요’라고 할 때 태국말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물어보니 ‘폽깐마이’라고 하자 공동체 대중들과 다함께 ‘폽깐마이’를 외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고국으로 떠나는 동남아 스님들께 삼배로 인사를 하는 정토회 상주 대중들nbspnbsp이어서 다같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폽깐마이’를 외치니 동남아 스님들 모두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공항에 배웅을 나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미팅이 있어서 나가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고, 동남아 스님들은 마지막으로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도 맞절을 하면서 “다음에 태국을 방문하겠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서울 공동체 상주 대중들이 다함께nbsp오전에는 평화재단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계속 미팅을 하셨고, 점심 때는 동남아 스님들 공항 배웅을 마치고 온 INEB 스텝 봉사자들과 함께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을 비롯하여 평화재단 봉사자들이 차려준 음식에는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 INEB 스텝 봉사자들과 점심 식사nbsp식사를 하면서 스님께서는 “동남아 스님들은 어떤 점이 좋았다고 하더냐?”고 물어보았고 스텝 봉사자들은 “동남아 스님들 모두 법륜 스님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가장 좋았다고 얘기하셨다”,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과 원리에 대해 설명해준 것이 좋았다고 한분도 많았다” 등을 말해주었습니다. 메르스 때문에 행사들이 연이어 취소되는 바람에 대중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 덕분에 동남아 스님들은 스님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게 되어서 오히려 더 좋아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 스텝들은 동남아 스님들이 말한 다양한 건의 사항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참가자들끼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저녁마다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정토법당 화장실이 좁아서 불편했다”, “도착한 첫날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해서 힘들었다” 등 각각의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가장 의견이 많이 나온 첫째날 일정에 대해서는 “다음에는 공항에 도착한 후 바로 문경으로 가서 쉬면서 수련에 대해 먼저 보여주고, 마지막에 서울에서 사회활동에 대해 보여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평가 겸 소감 나누기 형식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스님께서는 수고한 봉사자들 모두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도 그동안의 수고가 녹아나는 듯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nbspnbsp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 경주에서 진행될 예정이였던 통일의병대회가 메르스로 인해 최소되긴 했지만 대신에 경주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경주고등학교는 스님의 모교인데 오래 전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으나 시간이 나지 않아 응해주지 못하다가 마침 시간이 생겨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저녁6시 정도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짐을 풀자 말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마당 구석 구석의 텃밭에 시원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요즘 가뭄이 심하고 햇볕이 뜨거워서 마당의 텃밭 작물들이 타들어가서 걱정이 많으셨는지 물을 주면서 안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농작물들도 스님이 준 물을 흠뻑 머금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 잘 자란 마디호박nbsp그리고 인도에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김신아님도 두북으로 와서 스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8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몸이 삐쩍 마른 김신아님에게 “소도 팔 때가 되면 잘 먹여서 살을 찌워야 값이 오르는데, 신아도 잘 먹여서 세상에 보내야지” 라고 농담을 하시며 특별한 저녁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식사를 하며 그동안 수고한 김신아님을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달래꽃nbspnbsp그런데 저녁에 경주고등학교 강의가 메르스 때문에 최소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연락을 받고 나서 “메르스 때문에 잡힌 강연이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늘 바쁜 스님께 이렇게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스님의 법문을 원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했습니다. nbspnbsp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녁에는 BTN에서 스님께 전해준 ‘붓다’ 드라마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최근 인도에서 ‘붓다’라는 드라마가 제작되었는데 이번에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이 이 드라마 얘기를 많이 해서 스님께서도 관심을 갖고 보셨습니다. 밤이 늦어서 드라마는 1회와 2회만 시청을 하고, 스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셔서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메르스 방지 대책으로 인해 연달아 일정들이 모두 취소가 되는 바람에 내일 일정은 아직 미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2015.6.11 INEB 간담회 및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INEB 동남아 스님들과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을 마무리하는 간담회를 가진 후 저녁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께서는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기도를 마치고 발우공양 시간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의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친 INEB 스님들의 소개와 간단한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분 한분의 소개를 듣다보니 오늘 고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는데 더 깊이 있는 교감을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이번 인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INEB 동남아 스님들은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러 이동했고,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30분부터 점심 때까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시작으로 몇 번의 미팅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2시부터는 전국 비구니 회관을 둘러보고 온 INEB 스님들과 함께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셨습니다. 특히 이번 시간은 INEB 동남아 스님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간담회입니다. ㄱ래서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하고 있는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어려운지 얘기하고 스님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마지막 간담회nbsp먼저 태국의 두사디 스님은 센터를 지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분인데 “학생을 가르칠 스님이 부족하고, 수련 후 돌아가서 어떻게 수행하는지 체크할 수가 없고, 지역사회와 학교, 절이 함께 참여하는 제대로 된 교과 과정이 부족하다”고 얘기했습니다. nbsp또, 태국의 콩신 스님은 계를 받기 이전의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스님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특히 요즘은 아무도 스님 되려는 것에 관심이 없고, 계를 받아도 지속되지 않고 나중에 환속하게 된다”고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헤이마 비구니 스님은 청년들을 위한 교육, 훈련, 사회활동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분인데 역시 갈수록 청년들의 참여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이번에 오신 분들 대부분이 교육이나 트레이닝에 관계된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 교과 과정이 완전하지 않고, 팀웍이 안되니깐 교육에 치중할 힘이 부족하고, 그것을 꾸려갈 인력과 재정이 부족함을 호소했습니다. nbspnbsp이에 대해 스님께서도 “한국도 불교대학이 많이 개설되어 있는데 지식은 많은데 믿음이나 계율, 실천이 안되고 있고, 지식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개발되어 있다”며 한국 불교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태국의 지라삭 스님은 “우리는 윤리에 대해서 강조하기 때문에 교리보다는 윤리 중심으로 가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얘기 했습니다. 또 태국의 아노샤 스님은 “출가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사회적 실천 활동이 부족한 남방 불교의 한계를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서 듀사디 스님이 “지금 태국 불교는 중앙 집권적이여서 진보적인 스님들은 민중으로부터 시작하는 방식으로 함께 교육하는 허브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INEB가 만들어진 취지를 설명해주시면서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현대사회에 맞게 전할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새로운 것을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30년 전에 민주화 운동에 참여할 때 그건 불교가 아니라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가 되어서 사회 실천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감옥에 갔을 때도 교단으로부터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님 중심이 아닌 재가자나 청년들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도 기존의 스님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보여졌습니다. 신도는 담마를 알 필요가 없고 그저 복만 빌면 되지 공부는 스님들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바뀌어서 불교 교리를 신자들에게도 가르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새로운 불교 운동을 할려면 목표를 한 30년 정도 잡고 미래를 보고 해나가야 합니다. 그동안 사이비 취급도 받고 왕따도 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저의 경우엔 불교에서 먼저 인정받기 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서 나중에 불교에서 인정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각오하셔야 합니다.nbspnbsp아까전에 윤리 이야기를 하셨는데 불교와 윤리를 동일시하게 되면 젊은이들이 싫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혼을 하겠다고 할 때 ‘결혼했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이 윤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혼하는 건 너의 선택인데, 지금 이혼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너 자신을 살펴보라’고 얘기해 줍니다.nbspnbsp‘결혼할 때는 이 사람이 좋아서 결혼한 거 아니냐? 그런데 지금 살아보니깐 안 좋지 않으냐? 그러면 너가 그 때 판단을 잘못한 거 아니냐? 그리고 지금은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지 않느냐? 그럼 또 일정하게 지나면 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첫 번째 한번 잘못 했으면 두 번째는 좀 신중해라. 그리고 우리가 좋아서 한 것이 결과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 또 싫다고 안 하면 그것이 또 반드시 좋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붓다가 말씀하시길 좋다 싫다에 끌려가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돌고 도는 것이 윤회다. 지금 너가 먼저 해야할 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 같이 있어도 괴롭지 않은 것을 먼저 달성하고, 그러고도 헤어지고 싶으면 그때가서 헤어져도 된다. 지금 해야할 일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고 싫은 것과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수행을 먼저 해야 된다.’nbspnbsp이렇게 이혼 문제로 제기했지만 이것을 수행의 문제로 바라보고 수행의 과제로 삼도록 안내합니다. 젊은이들은 ‘그러면 안된다’ 이렇게 하기 보다는 ‘나를 위해서 안 하는게 좋겠다’ 이렇게 자기 선택이 될 수 있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율과 윤리는 다릅니다. 윤리는 선악의 개념이고 계율은 내가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계율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리고 계율에 대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불살생 계율의 경우를 보면, 한국에서는 ‘모기를 죽여도 되는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마구 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율을 줄 때 첫 번째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그 다음에 짐승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되면 어류도 죽이지 말라고 하고요. 그래서 최소한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는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하도록 기초를 잡아 줍니다.nbspnbsp술 먹지 말라는 계율도 술을 안먹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 일이 생긴다면 음료수 먹는 수준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울리다 보니 조금 더 먹었다면 정신적으로 취하는 증상이 없을 정도까지만 먹어라고 얘기합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술을 먹고 취했다, 이러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불자라면 적어도 인격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 우리 선생님이 불교 신자라면 ‘아, 맞을 일은 없겠다’고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재가 신자들에게도 ‘불자는 다르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인격자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기독교 신자와 불교 신자는 이름만 다르지 그 행동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이 사회에서 조금 더 앞서가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정토회는 이런 것을 계속 실험해 가는 것이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곳에 직접 가보고 어떤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배우려고 합니다. 아비 달마에 대해서 저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고 싶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생활에 적용이 될 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 않으면 가르침의 내용이 어려워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가르침이 굉장히 쉽고 재미있을려면 자기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제가 가서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게 많아요. 준비를 좀 해주세요.” nbspnbsp이번에는 스님께서 한국 불교와 정토회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안내를 해주었으니 다음에는 동남아 스님들이 스님께 자신의 활동을 보여줄 차례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든지 스님께서 방문해 주시면 성의껏 안내해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활동과 nbsp남방 불교 간에 더욱더 활발한 교류가 일어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더 현대사회에 맞게 자리매김하게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간담회를 마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일주일 동안 많은 가르침을 준 스님께 각자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어떤 분은 꿀을 선물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야자수에 글자를 세긴 펜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히 선물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미얀마에서 오신 비구니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스님께 절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리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동남아 스님들은 인사동으로 가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깃든 상품들을 구경하거나 쇼핑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냈고, 스님께서는 잠시 시간을 내어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에 다녀오셨습니다.nbspnbsp김윤신 작가님은 지난 세계 100회 강연 때 아르헨티나 강연을 준비해주셨던 분입니다. 현재 서울에 와 계시면서 그림 전시회를 하고 계신데 스님께서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초대장을 보내서 잠깐 방문해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김윤신 작가님의 전시회nbsp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30분부터는 평화교육원의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에 참석했습니다.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지난 3월26일 개강하여 6월11일까지 총 12주 동안 우리사회 각계 각층의 리더들을 모시고 강연도 듣고 토론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갈등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통일 한국의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해왔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수료하는 분들이 졸업과 동시에 어떤 마음 자세를 갖고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식nbsp먼저 스님께서 “축하합니다. 3개월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2주 동안 강의도 듣고 경주도 다녀오고 하면서 자신이 변한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묻자, 남자분 중에 한 분은 “통일에 대한 생각이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었고요. 필수로 가도록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된 점입니다.”라고 말했고, 여자분 중에 한분은 “사회를 보는 눈이 넓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그러자 스님께서는 비록 나이가 사십, 오십이 되었지만 다시 한번 가슴 뛰는 꿈을 꾸어보자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 민족의 꿈, 아시아의 꿈, 인류의 꿈으로 확대해 나가 보자는 말씀에 정말로 가슴이 설레였습니다.nbspnbsp“아직 만족은 못하실 것 같아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옆에서 제가 볼 때는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 됐으면 된 것 아니냐 싶어요. 이 말은 여기서 끝내라는 것이 아니에요. 첫째, 이제 나이가 벌써 40대, 50대가 되었잖아요. 키가 더 클 것도 아니고 이제 꺽이기 시작한다 이말이예요. 둘째,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잖아요. 의사가 되었든 변호사가 되었든 이제 자신의 전문 직종을 가졌잖아요. 여기서 갑자기 생각도 못한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은 1의 확률도 안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갈 뿐이지 청소년이나 대학생처럼 생각도 못한 변화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nbspnbspnbsp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은 인생의 진로가 거의 정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큰 변화는 없습니다. 이 중에 한두명은 또 변화가 생길지 모르지만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충 삶의 방향이 잡혀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nbspnbsp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인 사회는 어떤가요? 우리 사회도 어렵게 살다가 이제 먹고 살만하게 되었고, 자유없이 살다가 자유롭게 되었고, 옛날보다 좋아졌어요. 한국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도 계속 성장하고 좋아질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무와 풀도 7,8월이 지나면 더 이상 성장이 안되듯이 우리 사회도 거의 정체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저성장하고 정체되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쇠퇴로 가는 것이 이미 보입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든지, 출산율이 낮아진다든지, 사회적인 복지 요구가 높아진다든지 이런 전반적인 상황과 우리 주위의 국제 정세를 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자연의 질서에 맞게 늙고 죽는 과정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요.nbspnbsp그런데 개인은 대충 방향이 잡혔지만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저는 약간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한번 더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 눈에는 보여요. 제가 볼 때는 지난 천년 동안의 역사 속에서 지금이 가장 나을 때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런 시대에 살았다는 것만 해도 괜찮은데 여기서 멈추기에는 조금 아깝지 않나 싶어요. 여기서 조금만 잘하면 3천년 만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고, 우리 전체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느냐. 그 첫발이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국가가 조금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의 길로 가지 않고서는 달리 그 기회가 없고, 국민이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주화의 심화, 즉 분권이 이뤄져야 하고, 경제민주화, 즉 빈부격차가 좀 해소가 되어야 하는 몇가지 과제들이 있습니다. 국가가 더 발전하고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조금만 더 힘을 합하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nbspnbsp세월호 사고나 메르스 대책을 보면 양이 커진 것에 비해서는 질이 너무 떨어져서 좀 챙피하거든요. 옛날에는 이 정도 수준이여도 별로 안 챙피했어요. 왜냐하면 그 때는 우리가 별 볼일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굉장히 괜찮은 줄 알고 있는데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좀 신통치 않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심화도 좀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목표의식을 갖고 힘을 모으면 한단계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첫단계가 통일입니다.nbspnbsp지난 50년 간 우리가 이룬 것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유지되어야 하고,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통일은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된 대한민국은 일본과 중국까지 포용해야 합니다. 즉 일본은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하기로 하고 우리는 좀 용서해주고,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발전을 용인하되 어느 정도 경계할 것은 경계하면서 협력을 모색하면, 한국의 발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이것이 조금 더 지속이 되면 아시아 시대를 우리가 꿈꿔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러면 타고르가 얘기했던 동방의 등불을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타고르는 이것을 생각하고 동방의 등불이라고 얘기한 게 아니고 생각도 못했던 3.1운동이 일어나서 그 3.1운동의 영향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고, 5.4운동의 영향이 바로 인도의 반영 독립 운동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 때 타고르가 한국에 대해 찬미를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났으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으로써 우리가 통일을 생각해볼 수 있고, 통일 없이는 그 가능성을 아예 생각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현상 유지하는 것도 사실은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nbspnbsp그런데서 통일은 이제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민족의 비전과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정도만 살고 말겠다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문제로 느껴지겠지만, 약간 꿈을 갖고 뭔가를 달성해보겠다는 사람에게는 이 통일이 굉장한 메리트가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꿈을 좀 가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청소년기에 ‘나는 무엇이 되겠다’ 고 꿈 꾸었던 것처럼 지금 나이 사십, 오십이 되어서도 이런 꿈을 꿀 수가 있다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까요?nbspnbspnbsp물론 꿈을 갖고 도전을 하면 고생스럽지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힘이 들 듯이요. 그러나 거기에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저도 승려이기 때문에 제3세계 구호활동이나 환경운동이나 사람들의 수행 지도나, 그래도 조금은 이 땅에 태어난 인연으로 남북의 평화나 북한의 인도적 지원이나 이런 활동들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지난 20년 동안 미국을 다니며 민간 외교를 해봐도 현재 상태에서 통일 문제는 결국 한국 정부가 어떤 자세를 갖고 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nbspnbsp미국이 아무리 뭐라 그래도 ‘북한은 우리 나라다. 우리 문제니까 우리가 책임지고 할테니 너희가 나서지 말고 우리를 좀 도와라. 핵문제는 통일하면 우리가 해결할테니 너무 그것 갖고 설치지 마라’ 이렇게 딱 책임지는 자세로 민족의 주인으로서 입장을 갖고 대응을 하면 되거든요. 그렇지 못하니까 억지로 끌려가서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을 딱 잡고 한미동맹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통일 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됩니다. 이제 2017년이라는 기회를 놓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통일이 어려워집니다. 첫째는 미국과 중국의 세력이 비등해지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둘째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버텨줘야 협상도 하고 중국의 개입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친중 정부가 들어서 버리면 우리도 지금 미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듯이 북한도 이제 중국 때문에 자주적으로 결정을 못하게 되어서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nbspnbsp통일의 기회는 언제든지 오는 게 아니에요. 제일 좋기는 이명박 정부 때 잘했으면 가장 좋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설 때만 해도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어려워졌어요. 벌써 미일 동맹이 굳어져버렸고, 우리는 이제 하위 변수이지 대등한 변수가 안돼요. 여기에 사드 배치까지 다 되고나서는 정권이 새로 들어서든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과 약속해 놓은 것을 다 번복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서 사실은 분단 쪽으로 이미 기울어졌어요. 그러나 저는 아직은 한번 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제가 보기에 어렵습니다. 미중 간의 세력 균형, 북한 권력이 자주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 그리고 판이 이미 짜여져 버린 상황을 고려했을 때 통일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통일하고 싶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nbspnbspnbsp그런데서 여러분들은 더 이상 통일 문제를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여니 야니 지방이 어떠니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통일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알고, 그 쪽을 향해서 모든 국가적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사람과 세력이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겠느냐, 이것을 봐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니까 ‘우리는 이런 정부를 원한다’ 이렇게 우리가 내세운 방향에 누구든지 가장 동의하는 사람과 세력을 지지하는 관점만 분명히 가지면 됩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도 오늘 졸업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시야가 좀 넓어졌으니까 이제는 개인의 꿈을 공동의 꿈으로, 개인의 꿈을 민족의 꿈으로, 마치 독일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과 프랑스의 꿈을 유럽의 꿈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는 지금 개인의 꿈을 우리 민족의 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한국의 꿈을 아시아의 꿈으로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다시 아시아의 꿈을 인류의 꿈으로 더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약소국으로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지 우리가 인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생각을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인류는 고사하고 아시아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생각도 안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도 생각 안하고, 한국 정도의 책임도 별로 생각 안하고, 자기 가문의 꿈도 별로 생각 안하는 것 같아요. 겨우 개인의 꿈이나 가족의 꿈 정도만 생각하지요. 조금 더 우리의 꿈을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꿈을 꿔 봅시다.” nbspnbsp스님의 열정이 담긴 간곡한 말씀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매번 반복하시는 말씀이지만 정말 들을 때마다 새롭고 들을 때 마다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스님께서 진정을 다해 말씀하시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렇게 인사 말씀을 한 후 오늘 수료하는 한분 한분에게 수료장과 개근상, 정근상을 각각 나눠 주셨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함께 통일한국을 향해 나아가자’는 무언의 말씀을 하시듯 꼭 잡은 손으로 악수까지 해주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통일코리아”를 외쳐 보았습니다. 모두들 변호사, 의사, 기업가 등 각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인데 이번 12주 동안의 아카데미 과정을 통해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함께할 자세가 되어있는 통일의병이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료생 일동은 스님께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더 많은 활동을 해달라는 뜻으로 등산화 한 켤레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감사합니다. 잘 신을게요”라고 고마워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으로 가셔서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발우공양 시간에 nbspINEB 동남아 스님들과 환송 인사를 하고, 평화재단에서 회의를 한 후 오후에는 경주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