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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21 (인도 19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 및 한국 귀국
▲ 인도JTS 스텝들과 함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 및 전체 조회에 참석해 학생들과 JTS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nbsp▲ 새벽 예불nbsp오늘도 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하고 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교정에 있는 나무들에서 새소리가 들려와 마음을 맑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6시30분,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소심경을 외우며 발우공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인도에서 스님과 함께하는 마지막 발우공양 시간입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의 하루를 담기 위해 식사도 함께하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님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발우를 펴고 조용히 식사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이곳 둥게스와리에서 수행정진을 하게 될 행자님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nbspnbsp“계율이라는 것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구를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는 ‘왜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규제처럼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러나 그 욕구를 따라하게 되면 그 과보가 고통으로 오게 됩니다. 담배를 피우면 지금은 기분이 좋은데 나중에 건강을 해칩니다. 이렇게 수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미래를 내다보고 하신 말씀인데, 중생은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만 생각하니까 ‘왜 못하게 하느냐?’ 이렇게 받아들여서 계율이 규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계율을 어기는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겁니다.nbspnbsp제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 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식량, 옷 이런 것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를 지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했으니까 이것은 마을 사람들의 현실적인 요구는 아니였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든 안 가르치든 당장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요구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생겼어요. 그러나 10년 20년을 내다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이죠.nbspnbspnbsp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요구되는 것과 이 마을의 20년 후를 내다볼 때 차이가 있습닌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 땅값이 조금 오르니까 팔려고 생각할 때는 참 좋은데,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볼 때는 비싼 값이지만 외지인이 볼 때는 비싼 값이 아니잖아요. 이 땅을 팔면 앞으로 10년 지나면 땅값이 다시 오릅니다. 외지 사람은 돈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땅을 살 수 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다시 땅을 못 삽니다. 그래서 제가 땅을 팔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이 말이 주민들에게는 귀에 안들어 옵니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할수록 당신들에게 손해라고 하는 이 말을 알아듣기 어렵잖아요. 낮은 가격으로 거래할수록 급할 때 팔았다가 필요할 때 살 수가 있는데, 높은 가격으로 팔면 다시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까지 못 본다는 것이죠.nbspnbsp그런데서 부처님께서 이런 삶의 지침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그것이 손실이 나기 때문에 하지 마라 하신 겁니다.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그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권장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멈추고 모든 선은 행하겠다는 원을 우리가 세우는 것이예요.nbspnbsp지금 업무 배치 속에서도 내가 이것 하고 싶은데 그걸 못하게 하면 흥이 안나죠. 하기 싫은데 하라고 하면 이것도 흥이 안나죠. 그러나 정토회가 여러분을 괴롭힐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은 그렇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건 위험이 따른다’, ‘이건 극복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해서 규칙과 계율이 있는 것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수행자는 항상 주어진 대로 마음을 내는 연습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바깥에 나가서 활동하면 좋고 사무실에 있으면 나쁘다’ 이렇게 자꾸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nbspnbspnbsp일반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만, 수행자는 하고 싶은 일에 배치되면 능력을 발휘하고, 나에게 별로 적성이 안 맞는 일이 주어지면 내 까르마를 극복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행자님들은 수행을 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계율을 금기와 규제로 여기면 수행 생활이 감옥살이가 됩니다. 수행은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 수행자가 늘 긴장해서 감옥살이 하듯이 삽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계율을 어겨도 되면 기분이 좋고 ‘아이고, 살았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구가 있을 때 요구를 만족시켜 주면 기분이 좋고, 만족이 안되면 기분이 나쁜 것은 사람의 심리 현상이예요. 이것 자체는 심리가 작용하는 현상이니까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지만, 기분을 따라가면 반드시 고가 따릅니다. 그래서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사람이 개가 되었다가 소가 되었다가 하는 것이 윤회가 아닙니다. 이런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이다’ 라는 원칙을 갖고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 nbspnbsp계율은 자율적이여야 합니다. 계율은 해탈로 나아가기 위한 보호대이지 규제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규칙을 어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규칙을 정하는 것이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규칙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안 들으니까 두드려 패서라도 질서를 잡는다 이런 관점에 서면 안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일이고, 깨끗이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좋은 일인데 이것을 아이들이 몰라서 지금 이렇게 안한다. 그러니 이것을 바르게 해야 된다’ 이런 자비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엄격하게 야단도 쳐보고 설득도 해보고 규제도 해보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마음에서 ‘이것들이 내 말도 안듣고 학칙도 안지키고’ 이렇게 접근하게 되면 화가 나고 아이들을 미워하게 됩니다.nbspnbspnbsp사랑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지금은 모르니까 때로는 기다려줘야 하고, 때로는 설득도 해야 하고, 때로는 규제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질서 없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마을 개발이 안 되는 이유도 협동하면 이익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못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협동조합을 하려면 누군가가 한 사람은 희생을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헌신적으로 해서 신뢰를 얻어야 협력사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시작을 하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한다고 하면 못 믿지만 JTS가 한다고 하면 믿음을 줄 수 있거든요.nbspnbsp그러나 앞으로는 인도인들에 의해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뒤에서 보조해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나 당장 마을개발을 하려면 인도 사람만 갖고는 안됩니다. 아이디어와 신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파견되어서 시도를 해서 자리를 잡으면 다음 단계에서는 인도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즉, 시작은 우리가 해야 하고 결과는 인도 사람들이 책임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내가 앞장서서 해주고, 목표는 인도 사람들이 맡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현실과 결과를 동시에 염두해 두고 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너무 설쳐 버리면 이 사람들을 의지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버려서 지금은 성과가 있지만 미래에 자생력이 없어지고, 자생력을 키운다고 ‘너네가 알아서 해라’ 이러고 있으면 시작 자체가 안됩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모순을 어떻게 중도적으로 통합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쉬운 것은 아니예요. 조금 앞서서 하면 의지하게 되고, 조금 물러서면 진척이 안되어 버리는 문제가 늘 반복되거든요. 이것을 염두해 두고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말씀은 3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수행정진할 수 있도록 챙겨주시는 모습 속에서 스님의 행자님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nbspnbsp8시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수자타아카데미 담벼락 주위를 둘러보시고, 또 주택 개량을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 놓은 가옥을 살펴보시면서, 앞으로 건물을 어떻게 더 지을 것인지, 땅은 어떻게 구입할 것인지 등을 검토하셨습니다.nbspnbsp▲ 아직 건물을 짓지는 않았지만 JTS가 병원 뒤쪽에 보유하고 있는 땅nbsp▲ 주택 개량을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 놓은 가옥. 마을 주민들의 호응도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nbspnbsp다시 숙소로 돌아오셔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신 후 오전 10시부터는 쁘락보디홀 대강당에서 열린 수자타아카데미 아침 조회 및 교장 이취임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조회에 모인 학생들에게 어제 마을 잔치 때 즐거웠는지 물어보신 후,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파악을 해보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추가로 더 세워지게 될 직업학교, 예술체육학교 등을 염두해 두신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아침 조회 시간nbsp“풋볼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크리켓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배드민턴 선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춤을 잘 추는 무용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노래를 잘 하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nbsp“공부를 잘 해서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기술자가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선생님이 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nbspnbspnbsp학생들은 스님께서 물어보실 때마다 손을 번쩍 들었는데, 스님의 예상대로 예술과 체육 쪽으로도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nbspnbsp“앞으로 무엇이 되든지 간에 지금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요? 안해야 돼요?”“열심히 해야 돼요”nbsp“앞으로 공부 열심히 잘 할 거예요?““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이취임식nbsp학생들은 쁘락보디홀 강당이 무너질 듯한 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지난 8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는 6월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을 격려해주시고, 이번에 새롭게 교장 선생님으로 취임하는 쁘리앙카님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지난 8년간 인도JTS에서 라니 시스터가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교장선생님을 맡아서 여러분들의 학교를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8년간 인도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 더 있다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쁘리앙카 선생님이 예전에 교장선생님을 하시다가 8년간 한국에서 공부를 하셔서 박사 학위를 따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장선생님으로 이사회에서 임명했습니다. 새로운 교장 선생님 쁘리앙카님을 위해서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학생들은 환영의 박수를 크게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의 이임사와 새로 교장선생님이 된 쁘리앙카님의 취임사를 들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을 이임하는 라니 시스터 김신아님nbsp▲ 새로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한 쁘리앙카님nbspnbsp지난 8년 간 함께해온 김신아님의 이임사를 들으면서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은 무척 아쉬워하는 눈빛이였고, 새롭게 함께 하게 된 쁘리앙카님의 취임사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큰 박수로 환영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초등학생 조회를 모두 마치고 나서 11시부터는 중학생들과 교사, 스텝들만 모두 법당에 모여서 이번에 새롭게 파견을 오게 된 행자님들 6명을 비롯해 신규 스텝으로 인준을 받은 인도인 활동가 4명 등 각 팀별 담당자들을 전체적으로 함께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인도JTS 스텝들 소개 시간nbsp먼저 이번에 인도JTS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로 오신 보광법사님을 스님께서 소개해 주셨습니다. 보광법사님은 인도JTS 식구들에게 간단히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nbspnbsp▲ 인도JTS 총괄 책임자가 되신 보광 법사님nbspnbsp“저는 98년 1월에 인도에 처음 왔었습니다. 그 때는 부처님의 성지를 따라서 순례를 왔었고요. 17년 만에 다시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들과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제가 인도에 왔을 때와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수자타아카데미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학교도, 병원도, 마을개발도 새롭게 해나갈 수 있도록 제가 뒤에서 열심히 뒷바라지 하겠습니다. 지구 어느 곳에 가더라도 둥게스와리에서 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둥게스와리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부족한 것이 많으니 먼저 하고 계신 선생님들과 스텝들이 많이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인도JTS 식구들은 큰 박수로 보광법사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올해 학교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교 파트에서는 유치원 책임자로 인드라짓 선생님이 배정되었고, 초등학교 책임자로 빠완 선생님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 까나홀 분교 교장선생님으로는 카필데오지가 배정되었습니다. 한국인 담당자는 기획실장을 맡은 권도영님이 배정되었습니다. 권도영님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을 도와서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가 직업교육, 예체능교육, 인문계 교육 체계 등을 내실있게 갖추기 위한 많은 실무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김미정, 심애남 행자님이 학교 파트에서 올해 1년간 일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파트 담당자들nbspnbsp다음은 올해 병원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박종화님이 병원팀장이 되었고, 인도인으로는 작년에 이어서 까미스와지와 삼부지가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김민경 행자님이 병원 파트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지이바카 병원 파트 담당자들nbspnbsp이어서 올해 마을개발 파트에서 일하게 된 한국인과 인도인 활동가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최동호님과 신예슬님이 배정되었고, 인도인으로는 아룬지가 새롭게 마을개발 담당자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 파견을 온 박영민, 정유진님이 마을개발 파트에 함께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또 주연우님이 무더운 4월6월 동안 잠시 한국에 귀국했다가 오는 7월부터 다시 돌아와 마을개발 파트에서 일할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 마을개발 파트 담당자들nbsp스님께서는 마을개발 파트 담당자들을 소개하면서는 특별히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nbspnbsp“앞으로 마을개발 파트에 조금 더 사람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활동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 가서 취직을 안 하고 이 동네에 뼈를 묻고 살게다고 하는 사람은 마을개발 파트로 옮겨 오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주택을 개량하거나 협동조합 운동을 하거나 길을 새로 만드는 등 마을개발 파트에 관심있는 분들은 신청하세요.nbspnbsp우선 이번 마을개발팀이 해야 할 일은 인구 센서스 카드를 새로 발급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짧은 시간에 해내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이 파트 타임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있죠? nbspnbsp이것이 빨리 이뤄져야 청년회를 만들든, 부녀회를 만들든, 마을 조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치원 운영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초등학생들이 정부학교와 우리학교에 몇 명이 다니는지 파악할 수도 있고, 중학교에 못 간 아이들이 파악되어야 우리가 직업학교를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있고요. 모든 것의 기초가 인구 센서스 카드이기 때문에 이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협조를 해주셔야 합니다.“nbspnbsp스님의 당부 말씀에 교사들도 모두 마을개발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무 파트 담당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한국인으로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을 이임한 김신아님이 대외협력팀장을 맡았고, 새로 파견 온 분들 중에서는 강명희 행자님이 사무 파트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nbsp이렇게 각 파트별 담당자들을 모두 소개한 후 이번에 새로 인도인 스텝으로 인준을 받은 4명의 인도인들에게 스텝 임명장을 스님께서 직접 전달하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인도JTS 스텝 임명장을 받은 인도인 활동가들nbsp한명 한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인도인 스텝들도 새 식구가 된 4명을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오늘 함께 모인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인도인 스텝들, 중학생들 모두에게 “올 한해도 열심히 해봅시다” 라고 하시면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스님께 “단야바드” 라고 크게 인사한 후 모두들 전정각사 법당 앞 계단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모두 환하게 웃으며 “함까랑게” 구호를 외치자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 찰칵 눌러졌습니다. 스님께서 이곳 천민마을인 둥게스와리에 학교를 세우신지 21년째, 이제는 한국인이 인도인을 돕는다는 구분은 없어지고 다만 ‘둥게스와리를 어떻게 살맛나는 공동체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한 식구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전체 조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가야 공항으로 가기 위해 수자타아카데미 트럭에 올라타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공항으로 떠나는 스님께 합장을 하며 “스님,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인사를 했습니다. 좀 지쳐 있는 활동가들은 스님 덕분에 새롭게 기운을 얻었고, 새로 파견을 온 활동가들은 3개월 이상 걸릴 현황 파악을 스님을 통해 3주만에 할 수 있었으니 시간을 내어주신 스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잘 있어“ 하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20일 동안 머물렀던 수자타아카데미를 떠나며nbsp가야 공항을 2시5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를 경유하여 방콕공항에 9시30분 무렵 도착했습니다. 방콕공항에서 잠시 머문 후 밤 11시1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내일 새벽 6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문경으로 내려가셔서 오전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법문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nbsp
2015.3.20 (인도 18일째) 둥게스와리 마을잔치, JTS 이사회
▲ 둥게스와리 마을잔치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잔치에 함께 참석하셨고, 오후에는 인도JTS 이사회와 인도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셨습니다.nbsp nbsp 인도에 온지 18일째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였고,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숙소 주변이 깨끗이 청소가 안 된 모습을 보시고는 청소할 때의 원칙에 대해 그 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nbsp “항상 수행 도량을 깔끔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수행자는 옷을 기워 입더라도 항상 깔끔하게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 배정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구역은 우리가 해야지 노동자들을 시키면 안돼요. 우리의 기준은 늘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느냐입니다.nbsp nbsp 부처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전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다니면서 했다면 훨씬 더 많이 하실 수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마차를 전혀 타지 않으셨거든요. 말을 타지 말라는 계율이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말을 탄다는 것은 내가 편리하기 위해서 동물을 학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편리를 쫓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편리를 너무 쫓으면 안됩니다.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편리를 쫓아서는 안됩니다. 일에 필요해서 자동차를 타긴 하지만 자꾸 더 좋은 차를 타려고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nbsp nbsp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가 운전해서 가면 괜찮지만 운전수를 고용해서 생활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학교와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운전자도 다 수행자들이 맡아서 해나가면 제일 좋습니다. 이것은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생활하는 수행 도량에는 노동자를 시켜서 청소를 한다든지 밥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병원, 학교 등 마을 개발을 위해서는 당분간 시간적으로 유예를 하는 것이지 원칙적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먹고 사는 수행 도량은 우리 손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자원봉사는 괜찮지만 수행 도량에 월급을 받고 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절에서 노예를 부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거든요.nbsp nbsp 이 사회 속에서 세상까지는 못 바꾸더라도 우리가 사는 도량은 이런 원칙에 의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일상 생활을 할 때는 하인 부리듯이 사람을 돈주고 고용해서 생활하면 안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때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법당과 숙소의 경계 안에는 청소를 할 때 노동자를 시키면 안됩니다. 여기는 우리가 청소 당번을 정해서 청소를 해야 합니다.” nbsp 스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니까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오늘 발우공양 시간에 스님께서는 이곳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공간이니까 활동가들이 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제에 이어서 오늘 함께 배울 소심경 구절을 다함께 독송했습니다.nbsp nbsp “원단일체악 원수일체선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원단일체악, 원하옵나니 일체 악을 멈추겠습니다. 악은 남을 해치거나 남을 괴롭히거나 남을 손해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남을 돕지는 못할망정 남을 손해끼쳐서는 안됩니다. 내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내가 남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남을 괴롭혀서는 안됩니다. 남을 해치지 말고, 남을 손해끼치지 말고, 남을 괴롭히지 마라. 이런 저런 변명을 할 게 아니라 이런 행동을 딱 멈추어야 합니다.nbsp nbsp nbsp 원수일체선, 원하옵건데 일체 선은 내가 다 닦겠습니다. 남을 해치는 것이 악이라면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제로 베이스이지 선은 아닙니다. 선은 여기서 더 나아간 행동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남에게 손해끼치는 것이 악이라면 손해끼치지 않는 것은 제로 베이스입니다. 선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남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또 말로써 남을 해치거나 남을 손해끼치거나 남을 괴롭히지 말고, 남을 위로하고 남을 격려하고 자비롭게 말해야 합니다. nbsp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일체의 악은 멈추고 일체의 선은 닦는 것인데, 이것만 하면 윤리의식 밖에 안되잖아요. 그래서 더 나아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nbsp nbsp 원공제중생 동성무상도, 원하옵건데 모든 중생이 다함께 위없는 도를 성취하기를 원하옵니다.nbsp nbsp 이렇게 밥 먹기 전에 다짐을 한 후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사를 한 후 발우를 물로 깨끗이 씻는데 씻고 난 후 물이 깨끗해야 해요. 고춧가루 하나 있어도 안됩니다. 그릇 씻은 물이 깨끗하다는 것은 그릇이 그만큼 청결하다는 것입니다. 아귀는 늘 배고픔에 껄떡거리는 존재예요. 이를 비유해서 말하기를 배는 산만큼 크고, 목구멍은 바늘 구멍만 합니다. 바늘 구멍만한 곳으로 음식이 들어가서 산만한 배를 채우려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이렇게 늘 기아에 헐떡거리는 것을 아귀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릇을 씻고 남은 이 청수물만이 아귀의 목구멍에 걸리지 않고 그 아귀를 배부르게 한다는 것은 인도의 문화에서 유래된 것인데, 즉 청수물이 지저분하게 되면 아귀의 목구멍에 걸려서 아귀가 고통을 받습니다.nbsp nbsp nbsp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음식 찌꺼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 것은 결국 배고픈 자를 배부르게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함부로 버리면 그만큼 식량이 필요하고, 그만큼 많이 수입하게 되면 식량값이 오르게 되고, 식량값이 오르게 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양이 적어집니다. 결국 그 사람을 배고프게 만듭니다. 우리가 여기 음식 한 숟가락 버리는 것이 제3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버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음식을 적당하게 적게 먹어야 될 뿐만 아니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nbsp nbsp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내가 발우를 씻은 이 물은 하늘 나라의 감로수와 같다.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너희 아귀들에게 베푸노니 다 받아먹고 배불러지이다.”nbsp nbsp 이렇게 해서 발우공양의 의미와 소심경에 대한 법문을 모두 마쳤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늘 생각하는 정신이 발우공양 속에 담겨 있는데, 이곳 수자타아카데미는 배고픈 사람들과 늘 함께 사는 곳이니 발우공양의 의미가 더욱 와 닿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발우공양을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8시30분부터 SBS와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SBS 촬영팀은 스님께 “석가모니는 왜 둥게스와리를 고행의 장소로 정하셨는지?”, “처음 둥게스와리에 구호의 둥지를 틀려고 했을 당시 이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으로 보였나요?”, “처음 시작할 때보다 규모가 커졌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정도까지 이분들을 보살펴야 한다고 보시는지?”, “JTS의 구호 사업의 원칙이 무엇인지?”, “스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체력이 딸려서 픽픽 쓰러지는데 스님은 항상 왕성하신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시는 것인지?”, “작년에 115회 연속 세계 강연을 하셨는데 어떤 목적이 있으셨는지?”, “건강이 안 좋으신데도 쉬지 않으시고 끝까지 마치신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진솔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한가지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 nbsp ▲ SBS 인터뷰nbsp nbsp “인도에 구호사업을 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으신지요? 인도가 스님에게 갖는 의미가 있는지요?” nbsp “인도는 인구가 12억이니까 큰 대국이고요. 나라로만 보면 구호 대상이 안됩니다. 그런데 인도는 계급제도가 있다 보니까 빈부격차가 극심해요. 그래서 소위 인도에서의 하층 계급인 극빈층의 인구는 아시아의 전체 극빈층보다 많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의 인구 자체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나라만 보면 안되고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극빈층을 봐야 해요. 그 극빈의 상태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주 가난한 나라보다 더 심합니다. 저희가 여기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 난민 구호하러 갔는데 여기 사람들이 그래도 우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한다든지, 쓰나미 피해지역에도 파견을 하니까 ‘왜 우리들이 여기까지 와서 부자들을 도와줘야 하느냐’ 하는 얘기를 할 정도거든요. 이렇게 극빈층이기 때문에 지원을 하는 것이고요.nbsp nbsp nbsp 계기는 부처님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부처님의 성지순례를 왔다가 이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성지이기 때문에 구호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성지순례를 왔다가 만난 경우입니다. 부처님과의 관련성은 부처님도 평생 인도 사회에서 이분들에게 얻어 드셨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좀 갚아야죠. 또 혜초 스님도 여기 오셔서 얻어 먹었으니까요. 이것을 2500년 동안 복리로 이자를 계산하면 아마 꽤 많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nbsp 부처님은 인도 사람들에게 얻어 드셨으니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실 때에도 한국에 태어난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렇게 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임하시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 nbsp 인터뷰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는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의 마을 주민들과 주변 15개 마을의 리더들을 포함해 1,800여명을 수자타아카데미로 초대해서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을잔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주민들이 수자타아카데미로 몰려 왔습니다. 아이를 등에 엎고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오는 등 많은 주민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학교 안으로 입장했습니다.nbsp nbsp ▲ 마을 잔치에 참석하러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오는 마을 주민들nbsp nbsp 먼저 잔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께서 나오셔서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 인사말씀을 하시는 스님 nbsp “나마스떼 오늘은 우리 둥게스와리 마을의 축제날입니다. 지난번 설은 잘 보내셨어요? 원래 홀리 때 잔치를 열었어야 하는데 홀리 때 열지 못하고 오늘 열었어요.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흥겹게 노는 날입니다. 마을마다 다 나와서 해야 하는데 다 나오지는 못하고, 마을에서 다섯 팀과 짜르카 하시는 부녀팀 이렇게 총 여섯 개 팀이 나왔습니다. 심사를 할 때 가장 큰 점수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응원을 하느냐입니다. 그러니 각 팀마다 잘했다고 생각하면 열렬히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들인 학생들이 찬조 출연으로 나와서 공연을 보여줄 겁니다. 자, 그러면 큰 박수로 마을 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nbsp nbsp nbsp 마을주민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와 함께 둥게스와리 마을잔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뱅뱅’ 이라는 음악에 맞춰 수자타아카데미 남학생들이 멋진 댄스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 멋진 춤을 보여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 nbsp 마을주민들은 자녀들이 멋진 춤사위를 보여주자 웃음을 머금으며 기뻐했습니다. 한국식으로 치면 자녀들의 갈고 닦은 솜씨를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학예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 nbsp 마을별 풍물팀이 나와서 공연을 시작하자 심사위원들은 점수표를 보면서 하나씩 체크하면서 심사를 함께해 주었습니다.nbsp nbsp ▲ 스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들nbsp nbsp 첫 번째 출연팀으로는 짜르카를 짜는 부녀회 여성들이 나와서 인도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분들은 엄청나게 긴 노래 가사를 개사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가 너무 길어서 도중에 스텝이 올라가서 그만 부르도록 부탁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끝까지 노래를 다 불렀습니다. 아주머니들의 표정이 다들 심각해서 그런지 한국인들 모두 이 아주머니들을 보고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nbsp nbsp ▲ ‘짜르카’라고 하는 물레를 짜는 부녀회 여성들 nbsp 다음으로 두 번째 출연팀으로는 바가히 마을에서 결성된 팀이 나왔습니다. 저마다 인도 전통 악기를 손에 들고 나와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구수한 노래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 nbsp ▲ 바가히 마을 풍물 공연팀nbsp nbsp 마을마다 풍물 공연을 보여주면서는 특히 여자 옷 사리를 입은 남자들이 한명씩 나와서 여자 모습을 흉내내어서 주민들의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 nbsp 다음은 자그디스푸르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팀이 나와서 풍물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nbsp nbsp ▲ 자그디스푸르 마을의 풍물 공연팀 nbsp 다음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으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나와서 멋진 품새를 보여주었습니다.nbsp nbsp ▲ 태권도 시범 nbsp 이어서 사두들로 구성이 된 만코시힐 마을팀이 나와서 멋진 풍물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두들은 힌두 종교인들이여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불렀습니다. 특히 노래 가사를 JTS의 역사로 개사해 불러서 마을 주민들의 더 큰 박수와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 nbsp ▲ 만코시힐 마을에서 온 사두 공연팀nbsp nbsp 다음은 수자타아카데미 여학생들이 나와서 ‘Soil Pot’과 ‘비하르 겔릴라’ 라는 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여학생들의 공연이여서 그런지 더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 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여학생들 공연 nbsp 다음은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풍물팀이 나왔습니다. 두루가푸르 풍물팀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출연해서 무리를 지어 나왔습니다. 조금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두들 서서 정말 풍물 놀이를 하듯이 무대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한껏 흥을 돋구었습니다.nbsp nbsp ▲ 두르가푸르 마을 풍물팀nbsp nbsp 다음은 마지막 마을 공연팀으로 가왈비가 풍물팀이 나와서 신나는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왈비가 풍물팀은 노래 가사도 개사를 새로 했을 뿐만 아니라 여장을 한 남성의 춤 실력도 뛰어나 보였습니다. 그리고 북을 치는 분의 손놀림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박자가 빨라지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오든지 한참 동안 빠른 박자를 유지하며 구경하는 초등학생들도 빠른 박자에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nbsp nbsp ▲ 가왈비가 마을 풍물팀nbsp nbsp 오늘 마을잔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은 초등학생들의 댄스 공연이었습니다. 남학생들이 여름에 무더울 때 머리에 둘러쓰는 감치를 목에 둘러메고 나와서 멋진 동작을 보여주자 마을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환호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nbsp nbsp nbsp nbsp ▲ 감치를 목에 메고 율동을 보여주는 수자타아카데미 남학생들 nbsp 이렇게 한바탕 함께 어우러진 후 스님께서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인사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여러분 재미있었어요? 얼마나 재미있었어요? 오늘 출연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모든 분들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오늘 즐겁게 놀았는데, 오늘만이 아니라 올 한해가 모두 즐거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점심 준비를 했으니까 부족하지만 잘 드시기 바랍니다.”nbsp nbsp 마을 주민들은 초대해준 스님께 감사의 뜻으로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먼저 특별상으로 짜르카 팀이 사리 한 벌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4등은 두르가푸르 마을 풍물팀에게 돌아갔습니다. 두루가푸르 마을 풍물팀에게는 마을별로 잔치를 할 때 사용하라고 큰 물통을 하나 선물했습니다.nbsp nbsp ▲ 4등을 하고 물통을 선물 받은 두르가푸르 풍물팀nbsp nbsp 3등은 가왈비가와 자그디스푸르 두 개 마을 풍물팀에게 동시에 돌아갔습니다. 두 마을에는 카페트를 각각 선물했습니다. 2등은 사두들이 중심이 되어 멋진 공연을 보여준 만코시힐 풍물팀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에 참가한 모든 분들께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영예의 1등은 주민들의 환호가 가장 많이 나온 바가히 마을의 풍물팀에게 돌아갔습니다. 1등 상품은 앞으로 마을에서 더 신나게 춤추고 지내라는 뜻으로 악기 세트와 룽기를 각각 스님께서 무대 위로 올라오셔서 시상해 주셨습니다.nbsp nbsp ▲ 마을잔치 시상식 nbsp 시상식을 마치고 나니 초등학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신나는 춤판을 벌였습니다. 어른들의 기운을 물려 받아서 그런지 아이들도 춤을 추는 체력과 자세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마을별 점심식사 장소가 공지로 나가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한두명씩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아이들 먹을 것까지 다 챙기느라 배식 장소는 아주머니들로 둘러쌓여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JTS로부터 훈련을 받고 익숙해져서 그런지 평화롭게 배식이 끝났고, 또 엄마들과 어린 아이들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 점심 식사 시간 nbsp 든든히 점심을 먹은 주민들은 아주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수자타아카데미 정문을 걸어 나갔습니다. 집에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하는지 대부분 음식을 남겨서 한 봉지씩 들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JTS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도와주고 계신 지역 인사 분들이 모두 이사회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스님께서는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분들게 먼저 감사 인사를 해주신 후 지난 1년 동안의 사업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덧붙여 주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이사회nbsp nbsp “지난해 1년 동안은 인도JTS 사업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FCRA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특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국JTS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야팔 스님과 많은 분들이 노력해 주셔서 FCRA 문제는 이제 해결을 했습니다. FCRA 쪽에서 FCRA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서 작년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업을 일시 중단시켰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 있으면서 학교를 문 닫은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는 큰 일이 생겼을 때도 학교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 쪽에서 FCRA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해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았습니다.nbsp nbsp nbsp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사업보고를 할 것은 적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현상 유지를 하는데 경비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JTS를 통해서는 돈을 지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JTS를 통하지 않고 지원을 해서 그나마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업보고는 JTS에서 경비를 지출한 것만 보고를 하기 때문에 아주 간략합니다. 이제 2015년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가겠습니다.“ nbsp 스님 말씀에 이어서 사무국장 라니 시스터가 2014년 사업보고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사업계획에 대해 발표한 후 스님께서 “이 외에 다른 제안이 있으신 분은 말해 보라”고 하자 교사들이 몇가지 제안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nbsp 먼저 유치원 책임자인 인드라짓은 마을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JTS에서 대책을 세워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또 다른 교사 한 분은 지금 수자타아카데미는 3개 마을 학생들만 입학을 받고 있는데 다른 마을에서도 정말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별도로 받아주면 어떨지 건의를 해주었습니다. 또 초등학교 책임자인 빠완은 마을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가 집에서는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이여서 마을별로 유치원에 불이 들어오게 해줘서 저녁에는 아이들이 숙제를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고 하시면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FCR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한해동안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게 큰 박수를 부탁한 후 JTS 이사회를 마쳤습니다.nbsp nbsp 다함께 법당 앞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한 이사회 회원 분들게 안부를 물으시면서 개개인별로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이사회 회원들 nbsp 이어서 곧바로 인도정토회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2014년 사업보고와 2015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이사회 회원들의 의견을 더 수렴한 후 간단히 이사회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이렇게 인도에서의 18일 동안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였습니다. 이로써 내일 오전에 있을 전체 조회 일정만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 6명의 행자님들을 축하하고, 또 곧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쿠스 브라더와 주연우 법우님, 그리고 라니 시스터를 격려해주기 위해 다함께 가야로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가야에 나갔다 오니 밤9시가 넘었습니다.nbsp nbsp ▲ 스님께서 사주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nbsp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는 상카시아에서 온 수바스지를 비롯한 석가족 청년들이 다시 상카시아로 돌아간다고 해서 다함께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사무실로 들어와서 스님과의 마지막 사업논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들을 간략히 정리해주시면서 아직 역할 배정이 확정되지 않은 부분 등을 다시 체크하시고 최종적으로 방침을 정리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밤 10시 무렵 회의를 다 마치고 난 후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사업 논의nbsp nbsp 내일은 오전에 초등학교 전체 조회를 갖고, 이어서 중학생, 교사, 스텝들과 조회를 가진 후 오후 2시50분 비행기로 가야 공항을 출발해 방콕을 경유하여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
2015.3.19 (인도 17일째) 둥게스와리 마을리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 모임
▲ 전정각산에 올라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들과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모임을 갖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오늘도 새벽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전정각사 법당으로 올라가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 경전 독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6시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하며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나눠 먹었습니다. 오늘 발우공양에는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회에서 온 인도인 세 분이 함께 참석해서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석가족 세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셨습니다. 석가족 분들이 “인도에서 옛날에 밥 먹는 방식과 너무 비슷해요” 라고 말하자 스님께서는 “그래요. 맞아요. 발우공양은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도 이렇게 인도식으로 밥을 먹는데, 너희들은 인도에서 살면서 왜 다 잊어버렸어요?” 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 세 분이 함께한 발우공양 nbsp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발우공양 때 함께 외우는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배울 게송을 함께 따라해 보았습니다.nbsp nbsp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옴 시리시리 사바하nbsp nbsp오관일적수 팔만사천중 약불염차주 여식중생육”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 이 게송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여등귀신중, 너희 귀신의 무리들아. 아금시여공, 내가 지금 이 음식을 너희들에게 공양을 올리노니.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이 음식이 온누리에 있는 일체 귀신들에게 두루 베풀어져 다 먹고 배불러지이다.nbsp nbsp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만 생각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모양 있는 사람과 모양 없는 사람 두 가지를 늘 함께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양 없는 사람, 즉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도 함께 배불러지이다 하는 의식을 했단 말이예요. 그래서 자기 밥에서 조금 덜어서 발우에 모은 후 ‘옴 시리시리 사바하’ 하고 진언을 외우는데, 이것은 성경에 비유하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의미입니다.nbsp nbsp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설교를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산 위에 올라와서 그 설교를 듣고 점심 때가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이다 보니 대부분 음식을 못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음식을 들고 온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지고 온 것을 이리 다 내어놓아라” 하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을 다시 주욱 나눠주었더니 다 먹고도 남았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nbsp nbsp nbsp 이것이 현재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서 값비싼 호텔에서 두 사람이 먹는 비용이면 이곳 마을 사람들 2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돈을 가져와서 마을잔치를 한다고 하면 이것은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호텔에서 먹으면 10여명 밖에 먹지 못하는 돈이 이곳에 오면 2천명이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손가락을 튕길 때에는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음식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뻥튀기가 되어서 배고픈 무리들은 모두 배불러지이다. 배고프다고 내 먹는 데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는 늘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끼 굶어서 그 돈을 북한에 보내주면 일주일치의 식량이 됩니다. 돈을 보시하는 것도 있지만 배가 고파봐야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 nbsp 오관일적수, 물 한반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관해보니. 팔만사천충, 한량없는 생명체가 살고 있구나. 약불염차주, 만약에 이 염불을 하지 않고 이 음식을 먹는다면. 여식중생육,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nbsp nbsp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니, 깨끗한 물 한방울 속에 뭐가 들어있노’ 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깨끗한 물 속이라도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죠. 이렇게 자신의 삶의 존재 방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생존하고 있는지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nbsp 늘 배고픈 사람을 함께 생각하고, 내 존재가 수많은 생물들의 희생 위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는 발우공양의 의미를 들으니 ‘밥 한끼 먹는 것도 큰 수행이 되는구나’ 하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이렇게 발우공양을 모두 마치고 아침 7시40분에는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에 올라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을 올라가시면서 21년 전 수자타아카데미를 처음 세울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세워지고 난 후 지금은 구걸하는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nbsp nbsp ▲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으로 출발하시는 스님 nbsp 그런데 올라가는 길에 구걸하고 있는 아이 한명을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곧바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nbsp nbsp “너는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에 있니?”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안보내줘요” nbsp 그러면 수자타아카데미에 오면 되지 않느냐?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안 받아 주어요. nbsp 왜? 라르푸르에 살아요. 입학 대상이 아니예요. nbsp 알았다. 스님이 허락해 줄테니nbsp오늘 바로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입학 등록을 하거라”nbsp nbsp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스님께서는 전정각산으로 올라가시고 아이는 마을로 내려갔는데, 산을 내려와보니 이 아이는 정말로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지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입학 등록을 하러 학교에 와 있었습니다.nbsp nbsp ▲ 아침에 스님을 만나고 구걸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겠다며 교무실로 찾아온 아이 nbsp 스님께서는 전정각산 위에 올라가서 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촬영팀이 스님께 “여기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nbsp nbsp ▲ 전정각산nbsp nbsp “멀리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 아름답게 보여요. 그러나 마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죠. 자연 풍경은 아름다운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힘들게 살고 있어요. 여기 온 관광객들이나 멀리서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뇌를 잘 모르죠.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가서 보면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nbsp nbsp 제가 여기 학교를 짓겠다고 해서 여기 지은 것이 아니고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마을과 제일 멀리 떨어져있고, 농토로 부적합한 황무지여서 못 쓰는 제일 위쪽 땅을 저한테 준 것이죠. 45평씩 10명이 450평을 초등학교 지을 자리만 저한테 기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인 부처님이 6년 고행했던 그 자리에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였고요. 여기 유영굴에 성지순례를 왔다가 아이들이 구걸하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으니 “학교가 없어서 그렇다” 하고, 주민들은 “학교가 필요하다” 해서, 제가 “그럼 너네가 못 쓰는 땅을 좀 내어놓아라” 하니까 이 땅을 준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학교를 짓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학교가 된 것입니다.” nbsp nbsp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이 물밀 듯이 올라왔습니다. 한 수행자가 심은 작은 보리수 나무 씨앗 하나가 21년을 자라 지금은 제법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물을 드신 곳인 샘터와 명상을 하시던 자리에 남겨진 탑터를 더 둘러보시고 잠시 앉아서 명상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nbsp nbsp ▲ 부처님께서 명상을 하셨던 곳 nbsp 전정각산을 내려와서는 곧바로 10시부터 마을 리더들과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을 더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주에 1400여 가구를 모두 방문하시면서 새해 인사를 하셨는데, 마을 방문을 하시면서 생각해낸 마을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이야기해 주시고 또 이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이 스님의 입이 되어 원활히 통역을 해주어서 스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 nbsp 특히 오늘은 젊은 여성 분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을에서 유치원 선생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데리고 오라고 마을 리더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늘 함께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마을의 유치원 선생님을 이 여성들이 맡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시고, 주민들도 이것에 대해 만족해하는지 최종 의사를 확인해 보셨습니다. 모두들 여성들이 맡으면 좋겠다고 동의를 해주었습니다.nbsp nbsp ▲ 마을 유치원 교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젊은 여성들 nbsp 또 유치원에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요청에 대해 시범적으로 한두곳 지어서 운영해보고 난 후 확대하자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축구장으로 꾸밀 수 있는 공터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시고, 또 까나홀 마을은 하수구와 도로를 새로 정비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얘기들을 함께 나누신 후 둥게스와리의 마을 개발에 대해 큰 틀에서 이런 제안을 해주셨습니다.nbsp nbsp “앞으로는 우리가 마을별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조직을 만듭시다. ‘우리 마을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이냐?’ 하고 머리를 맞대면 훨씬 더 빨리 개선할 수 있어요. 마을에 골목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고민해서 벽돌을 깔아서 비가 와도 괜찮도록 하고요. 하수구로 어떻게 물을 뺄 것인지, 핸드펌프를 파더라도 어느 위치에 파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편하게 할 것인지, 주택을 지을 때도 협동해서 지으면 더 잘 지을 수 있고요. 비료나 벽돌, 시멘트 같은 것들은 1000명이 필요한 것을 동시에 구입하게 되면 훨씬 더 싸게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염소나 소를 키우는 문제도 이런 마을별 조직을 통해서 하면 키우는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유 같은 것도 공동으로 모아서 판매를 하거나, 우리가 공장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면 훨씬 더 이익이 남습니다.nbsp nbsp nbsp 현재처럼 이렇게 그냥 살면 더 이상 수입이 없으니까 공부한 젊은이들은 다 외지로 나가버리고 시간이 흐르면 노인들만 남게 됩니다. 땅은 외부인들이 다 사서 가져가 버리고요. 그래서 마을이 우리 것이 되지 못합니다. 자그디스푸르와 두르가푸르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 외부인들이 땅을 사버릴 겁니다. 왜냐하면 곧 도로가 나고 관광객이 몰려오고 가게가 생기면서 외부인들이 땅을 비싸게 준다고 하면 여러분들도 땅을 다 팔어버릴텐데 지금 팔 때는 돈이 비싼 것이 좋지만 한번 팔면 다시 살 수는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합니다.nbsp nbsp 그럴려면 수입이 될 만한 것들을 자꾸 만들고, 주택도 개량하고 도로도 정비해서 가난하지만 예쁜 동네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도 대학까지는 못보낸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20년 전에는 마을에 배운 사람들이 없어서 불가능했는데, 이번에 마을을 주욱 돌아보니까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 nbsp 주민들 중에 한 분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nbsp nbsp nbsp “스님께서 저희들의 미래에 대해서 참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지금 스님말씀처럼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도 우리들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다시 한번 주민들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셨습니다.nbsp nbsp “젊은이들이 가야나 큰 도시로 돈 벌러 간다고 하지만 돈 조금 더 버는 것 외에는 남 밑에서 고생하고 건강만 더 헤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외부로 나가봐야 남들 밑에서 심부름 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살 수 있어요.” nbsp 주민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렇게 2시간 동안 스님께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핸드펌프부터 주택 개량, 마을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 등에 대해 스님의 아이디어들을 세세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 잔치에 꼭 오시라고 부탁하시고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집안일이나 밭일을 제쳐두고 시간을 내어 준 마을 주민들에게 스님께서는 티셔츠 한 장씩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nbsp nbsp ▲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티셔츠를 나눠주시는 스님 nbsp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학교 급식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주민들과 식사를 하시면서는 주민들이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지, 모판을 만드는 것, 모내기 하는 시기 등에 대해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화두를 참구하듯이 어떻게 하면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몰입해 계신 것 같았습니다.nbsp nbsp ▲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부지와 달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신 스님 nbsp 쉴 틈도 없이 바로 이어서 오후1시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 전체와 모임을 가지셨습니다. 오늘 교사들과의 모임은 무려 4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 20년간 마음 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말씀들을 진솔하게 들려 주셨는데, 교사들은 스님의 간곡한 말씀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의 모임 nbsp 무엇보다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에서는 윤리와 도덕적은 측면에서만 항상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붓다 담마에 대해 이해를 해야 JTS의 활동 원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붓다 담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인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에 이곳 둥게스와리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하다 생각하시고 이곳에서 6년간 정진을 하셨습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에 대추 한알씩 드시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 대추 많이 있죠? 여러분들도 많이 주워서 먹었죠?nbsp nbsp 네 nbsp nbsp 그러니 여러분들도 부처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처럼 조금 먹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 아직 부처가 못 되고 있는 거예요. nbsp nbsp nbsp 그래서 이런 고행상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를 못하니까 왜 깨닫지를 못하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어요. 출가하기 전에는 욕구를 쫓아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기분이 좋지요? 그것으로 행복을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요? 욕망이 더 커져요? 그래서 욕망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돈이 1락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1락이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이 될까요? 이렇게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렇게 치면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롭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것이 길이 아니다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왕자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길이 아닌 줄 알게 된 것입니다.nbsp nbsp 그래서 출가를 하고 나서는 욕구를 무조건 억압을 한 것입니다. 먹는 것도 포기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고 목욕도 안 했어요. 이렇게 고행을 하시다가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정반대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과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모두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이해하세요? nbsp nbsp 세상에는 이 두가지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이 두 길은 결국 욕구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아요. 이 두 길이 아닌 제 3의 길은 무엇일까요? nbsp nbsp nbsp 이 제3의 길을 바로 이곳에서 발견하신 겁니다. 그것은 붓다가 이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길입니다. 이 길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길이예요.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즉, 지금 다리가 아프다면 첫 번째 길은 다리를 펴는 거예요. 두 번째 길은 참는 거예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은 그냥 ‘다리가 아프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예요. 긴장하는 것이 아니고 ‘통증이 있구나’ 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 nbsp 이렇게 6년간 수행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은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보드가야에서는 100일 계셨고, 이곳은 6년 계셨어요. nbsp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한번 봅시다. 당시는 노예제 사회였어요.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심부름하는 노예가 있다는 것이죠. 말을 모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 입혀주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고, 음식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야 하죠. 만약 왕이라면 종이 10명이든 30명이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한 뒤에, 또 부처님이 되신 뒤에 종을 데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당시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면 누군가 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것 없이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밥은 남의 집에 가서 얻어 먹고, 옷은 시체 싸던 것을 주워서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요. 그러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부처님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가 그랬어요.nbsp nbsp nbsp 그런데 지금 절은 어떻습니까? 절에 밥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운전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그러면 그 사람들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님들이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nbsp nbsp “사장입니다” nbsp “그러면 저는 어떻해야 합니까? 여러분과 저의 관계에서 저는 여러분의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동안 붓다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사장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 스승이 되기 위해서 출가를 했어요?”nbsp nbsp “스승이 되기 위해서요.”nbsp nbsp “그런데 저는 지금 여기서 사장하고 있잖아요. 이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고민이예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스승이 되고 싶지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모두 저한테 돈을 달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사장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잖아요.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되고 싶고, 여러분들은 자꾸 저보고 사장이 되라고 하고, 이 사이에 간격이 자꾸 생겨요. 이해하시겠어요?”nbsp nbsp “이해하는데 이해 안하고 싶어요.” nbsp nbsp “그런데 저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장이 아니고 스승이예요. 왜냐하면 서로 돈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예요. 모두 다 수행자예요. 수행자로써 역할이 분담되어 있을 뿐이예요. 부처님이 나이가 많을 때 아난존자가 옆에서 도왔죠? 그런데 종으로서 도왔어요? 월급 받고 도왔어요?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로서 역할을 분담한 것이예요. 우리는 지금 수행자로서 어떤 사람은 운전하고 어떤 사람은 밥을 하고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것이예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말하면 모두가 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nbspnbsp nbsp 그런데 지금 인도는 그렇지 않아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모순은 계속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수행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고민이예요. 둥게스와리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도 아니고 저의 친척들도 아니고 저의 자식들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니예요. 그러나 저는 둥게스와리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집을 보면 어떻게 집을 개선해야 할까, 물은 어떻게 더 확보할까, 골목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 먹고 살 수 있는 수입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서로 협력하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마을에 살면서도 이런 생각을 안해요.nbsp nbsp 학교 안가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공부 못하는 아이를 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학용품이든 교복이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이 아이들이 다 여러분의 마을 아이들이잖아요. 다 인도 사람이고. 같은 둥게스와리 마을에 살고 있고, 우리 친척의 아들인데... 어떻게 하면 서로 힘을 합해서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좀 하면 좋겠어요.nbsp nbsp 우리가 조금만 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하면 좋은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전부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붓다 담마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붓다 담마에 기초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노동자를 고용하면 안돼요. 그것은 부처님 당시에 노예를 데리고 상가를 구성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급을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우리가 같이 이 마을을 좋도록 만드는 같은 활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현실은 이해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것만 하다가 죽어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nbsp nbsp 여러분들이 만약 ‘우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님은 악덕 기업주가 아니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좋은 스폰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 좋은 사장은 될 수 있지만, 좋은 스승은 될 수 없어요. 여러분들은 사장이 필요하지 스승은 필요 없죠?” nbsp nbsp “저희들은 둘 다 필요해요.”nbsp nbsp nbsp “오늘 스님이 갖고 있었던 20년 동안의 고민을 처음 이야기 했어요. 왜 오늘에서야 이야기하느냐?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너무 어렸어요.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노동자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고 마을을 변화시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학교를 운영하든, 유치원을 운영하든, 병원을 운영하든, 마을개발을 하든, 스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을을 가꾼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nbsp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말 내 일이다’ 생각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일을 해도 지치지가 않아요. 그래서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듭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너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물으면 “둥게스와리에서 왔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둥게스와리’라는 말 뜻이 원래는 ‘부정한 곳’이잖아요. 그러나 부처님이 이곳에서 6년간 수행함으로 해서 성스러운 곳이 되었단 말이예요. 그런데 천민들이 가난하게 살다보니 다시 나쁜 마을이 되었단 말이예요. 바깥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이곳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JTS가 들어오고 나서 위험한 것도 많이 없어졌잖아요.nbsp nbsp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설성봉님 같은 분의 희생이 있었어요. 설성봉님의 죽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치안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들 동네 버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둥게스와리를 자랑스럽게 한번 만들어 봅시다.” nbsp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Yes” 라고 크게 대답했습니다. 인도인 교사들의 눈빛은 더욱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려 4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그리고 통역을 해준 쁘리앙카님에게 모두들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 nbsp nbsp 둥게스와리 마을을 가난하지만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만들어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통역을 하던 쁘리앙카님은 이곳에 봉사를 왔다가 강도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설성봉님을 스님께서 언급하자 목이 메여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아니라 스승이 되고 싶다는 스님의 호소에 뒤에 앉아 있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 법문을 마치고 법당을 나가시자 인도인 교사들은 한층 밝고 들뜬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내일 있을 마을잔치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모습 속에 평소보다 더 큰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 교사들에 대해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에 대해 그리고 둥게스와리 마을에 대해 갖고 계신 따듯한 사랑을 모두들 느꼈을 것입니다.nbsp nbsp 긴 시간 법문을 마치시고 스님께서는 잠시 쉬었다가 6시부터는 어제에 이어서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 청년들과 담마 센터 건립을 위한 회의를 하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에서 온 석가족들과 회의 nbsp 저녁 식사 시간도 없이 회의를 하고 나서 오후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을 위해 수행법회를 해주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원래 매주 목요일마다 수행법회를 영상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즉문즉설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기존에 파견되어 있던 활동가들, 그리고 이번에 새로 파견을 오게 된 9기 행자대학원생들, 보광법사님, 쁘리앙카님, 그리고 SBS 촬영팀까지 카메라 촬영을 멈추고 스님께 고민을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활동가 수행법회nbsp nbsp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화를 잘 내는 편인데 인도에 파견을 와서 다시 아이들에게 화를 낼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분, 한가지 일에 집중을 잘 하지만 전체를 살피는 눈이 없어 고민인 분, 인도에 오고 나서 언어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서 조급한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남들보다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묻는 분, 행자 교육을 받고 있지만 잘 생긴 남자를 보고나 결혼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분, 인도에 행자로써 파견이 되어 왔는데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등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소개해 드리지는 못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께서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해 주신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 것 같아 함께 나눕니다. nbsp nbsp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욕구를 억압하면 괴로움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욕구를 억압하는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너무 자기를 규정하지 마세요. 일단 자기 상태를 늘 알아차리면 됩니다. ‘나는 이런 욕구에 치우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지 ‘치우치면 나쁜 거야’ 이렇게 규정을 자꾸 짓지 마세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nbsp nbsp nbsp 부족하다고 열등의식을 가지며 안돼요. 열등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가 잘 나고 싶어서 열등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부족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해서 그 부족한 점을 개선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너무 빨리 개선하려고 하면 부족한 것이 자꾸 부각이 되니까 자학 증상이 생기고, ‘나만 그런가?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렇게 부족한 것을 합리화시키면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어져 버려요. 부족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부족한 것을 극복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nbsp nbsp 수행자는 밖을 보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를 봐야 합니다.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는 도반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입니다. 이 화는 내가 다스러야 할 문제이지 저 사람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원칙을 어긴 것은 지적해서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가 나서 지적을 하거나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으로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은 자기 문제로 봐야 합니다.nbsp nbsp nbsp 개선이 필요하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요구를 해야 됩니다. 불평하거나 화내지 않고 끝없이 문제제기를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화가 나는 것은 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연구하고 시도하고 도전해 나가야 하지요. 그러나 화가 나면 ‘내가 나를 고집하고 있구나’ 이렇게 내 문제라는 것을 딱 알아차려야 합니다.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앗, 내가 집착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아니, 그런데도 화를 어떻게 안 낼 수가 있어?’ 이렇게 나가면 수행자 아닙니다.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자기로 돌아올 수 있으면 수행자이고, 그것을 놓쳐버리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놓치면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nbsp nbsp 스님의 명쾌한 말씀에 인도JTS 활동가들도 모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세명씩 네명씩 모여서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구체적이고 명쾌한 답변에 마음이 홀가분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 수행법회 후 마음나누기 nbsp 법회 후 8시30분부터는 사업논의 회의를 하였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준비 상황을 함께 점검하고, 초등학교 인도인 책임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마을 개발 인도인 담당자는 누구를 배정할지 등을 논의하면서 인도JTS 2015년 사업계획을 거의 완성시켜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사업논의 nbsp 이렇게 오늘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오후에는 인도인 교사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시고,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려는 스님의 애정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오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nbsp nbsp 내일은 둥게스와리의 마을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마을별로 장기자랑 경연대회도 하고, 푸짐한 음식도 함께 먹으면서 왁자지껄하고 신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만큼은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도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
2015.3.18 (인도 16일째) 수자타아카데미 마을리더, 중학생, 초등학생, 교사 모임
▲ 수자타아카데미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둥게스와리 마을리더들을 비롯하여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 초등학생, 교사들, 상카시아 석가족, 인도JTS 활동가들과의 모임을 하루 종일 연이어 가지셨습니다. 인도에 오신지 16일째로 접어들면서 스님께서는 이제 그동안 둥게스와리 마을과 수자타아카데미 전체를 둘러본 결과를 총정리하기 위해 각 단위별 모임과 회의를 여시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최종적으로 수립해가는 시간을 갖고 계십니다.nbsp nbsp 오늘도 새벽 4시30분에 도량석 소리와 함께 전정각사 법당에 올라가 새벽 예불과 108배,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 nbsp ▲ 새벽 예불nbsp nbsp 6시30분부터 시작된 발우공양에는 어제 도착한 SBS촬영팀도 함께 참석해 대중들과 잠깐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발우공양 때 인사하는 SBS 촬영팀nbsp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지난번 법문에 이어서 소심경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다함께 오늘 스님께 배울 소심경 구절을 함께 따라했습니다. nbsp nbsp “계공다소량피래처 촌기덕행전결응공 방심리과탐등위종 정사양약위료형고 위성도업응수차식” nbsp nbsp 이어서 스님께서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nbsp “발우 공양을 하는 마음 자세에 대한 내용은 전체 소심경에 다 들어있지만 이 구절이 가장 핵심입니다. 전체 소심경을 다 할 수 없으면 이 구절만이라도 해야 됩니다. 이 내용을 줄여서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고 하고 식사를 하기도 하죠.nbsp nbsp 계공다소량피래처,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그 수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한번 생각해 본다는 뜻입니다. 밥이라는 것은 부엌에서 밥을 지어야 내가 먹을 수 있으니까 밥을 짓는 사람의 공덕이 있을 것이고, 밥을 짓기 전에는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노고와 그것을 시장에 팔아서 내 앞에까지 오는 노고가 있을 것이고, 또 갖가지 채소나 반찬도 그것을 생산한 농민들, 또 그 도구들을 생산한 노동자들의 노고가 있을 겁니다. 즉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는 뜻입니다.nbsp nbsp nbsp 촌기덕행전결응공, 나의 하루 생활이 이 음식을 먹을만한 공덕을 지었느냐는 뜻입니다.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통해서 이 음식이 나 앞에 왔는데 내가 이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나의 하루 생활을 돌아봤을 때 과연 나는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거기에 부족함은 없는지 자기를 돌아보는 내용입니다.nbsp nbsp 방심리과탐등위종, 욕망을 떠나고 탐진치 등 삼독을 제어하기 위해서 내가 이 음식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잖아요. 이 세가지를 잘 제어하기 위해서 이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nbsp nbsp 정사양약위료형고, 이 몸이 죽지 않도록 유지시키기 위한 약으로 이 음식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수행을 하려면 몸둥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 몸둥이에 음식을 안 주면 말라 비틀어져서 죽게 됩니다.nbsp nbsp 위성도업응수차식, 그러니 이 음식을 먹고 위없는 도를 이루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마지막에는 발원을 하는 것입니다. nbsp 첫 번째는 음식의 공덕에 대해서 생각하고, 두 번째는 나의 하루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보고, 세 번째는 이 음식을 먹는 이유는 모든 탐진치를 제거하고 마음을 바로 가지기 위해서이고, 네번째는 수행하려면 몸둥이가 있어야 하니까 이 몸둥이를 유지하는 좋은 약으로 생각하고 이 음식을 먹고, 다섯번째는 이 음식을 먹고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발원을 하게 됩니다.nbsp nbsp nbsp 물 한방울 속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밥한톨 속에도 만민의 노고가 스며 있으며, 한 올의 실타래 속에도 베 짜는 여인의 피땀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니 이 물을 마시고, 이 음식을 먹고, 이 옷을 입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는 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음식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일체 중생의 노고를 늘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맛에 자꾸 집착하게 되면 이 음식에 내 앞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 줘도 맛 없다고 버리게 되지요. 그런 공덕을 생각하면 쌀 한톨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음식 찌꺼기를 하나도 안 버리고 이렇게 발우공양을 하는 이유는 그 공덕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 nbsp 농촌 사람들은 쌀 한톨 속에 자기가 노동한 것이 다 깃들어 있기 때문에 쌀을 한움큼 땅에 떨어뜨리면 아무리 부자라도 그냥 버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쓸어서 다시 씁니다. 그런데 도시에 살면서 그 노고를 모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도 그냥 버립니다. 옛날에 베를 짜는 사람은 이 옷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동을 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작은 옷 조각도 남겨 놓았다가 다 기워서 쓰는데, 요즘은 잘 살아져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옷을 만드는데 어떤 노고가 들어가는지 전혀 모르니까 유행에 안 맞다고 옷을 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그 공덕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못된 행동이라기 보다는 몰라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공덕을 하나하나 다 알게 되면 누가 보든 안보든 아무런 관계 없이 스스로 아껴쓰고 검소하게 생활하게 됩니다.nbsp nbsp 모든 우리들의 고통은 무지에서 나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무슨 구름타고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다. 그런데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이런 자세를 늘 잊지 않아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법문을 해주신 후 8시부터는 실무자들과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주위를 둘러보시면서 나무를 어떻게 가꿀 것인지를 점검하셨습니다.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야 할 나무들, 위치를 옮겨야 할 나무들, 더 심으면 좋은 나무나 꽃 등에 대해 두루 살펴보시고 실무자들의 의견은 어떤지를 파악하셨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안 정원nbsp nbsp 9시30분부터는 15개 마을리더들과 함께 JTS 센터에서 회의를 하셨습니다. 몇일 전 홀리 기간 때 둥게스와리 14개 마을 1423가구를 모두 방문하신 스님은 마을을 방문하시면서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많은 구상을 하셨는데 오늘은 그 내용을 직접 마을리더들과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nbsp ▲ 둥게스와리 15개 마을 리더들과 회의nbsp nbsp 먼저 마을별로 식수 문제에 대해 어려움은 없는지 점검을 하셨습니다. 바가히 마을에서는 핸드펌프에서 철분이 나온다고 하고, 스리람푸르 마을에서는 우물이 무너졌다고 하고, 자르하르 마을에서는 유치원에 있는 핸드펌프가 고장났다고 하고, 가왈비가 마을에서는 우물 뚜껑을 만들어달라는 등 주민들은 많은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각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조언해 주시고 마을개발 담당자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셨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주택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양민마을에서 소를 빌려와 키우는 문제를 어떻게 더 소득이 생기도록 개선할 수 있을지, 마을마다 일거리가 없는 청년들에게 어떤 일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마을별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지, 유치원 교사를 마을별로 결혼한 여성들에게 맡길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하면서 스님의 생각도 함께 들려주셨습니다.nbsp nbsp nbsp 오늘은 주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내일 오전10시에 다시 모여서 더 얘기를 나누기로 한 후 주민들과의 회의를 마치셨습니다.nbsp nbsp 12시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과 모임을 nbsp가지셨습니다. 중학생들은 오전에는 마을별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 학교로 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 태권도 잘하는 사람, 춤 잘 추는 사람, 축구 잘하는 사람, 크리켓 잘 하는 사람 등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 하나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유치원생들이 몇 명인지, 개선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무엇이 더 개선되면 좋은지 학생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셨습니다. 그러고 난 후 학생들이 꼭 명심했으면 하는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과의 모임 nbsp “여러분들은 두 가지 일을 해야 돼요. 하나는 자기 공부를 하는 일이고, 하나는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겠죠? nbsp nbsp 그런데 우리 인생이 둘 중에 하나만 할 수 없고 둘 다 해야 해요. 공부만 하고 싶으면 정부학교로 가든지요. 여기에서는 초등학생이면 공부만 해도 돼요. 그러나 중학교 이상은 반드시 자기가 봉사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내 공부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해요. 저도 중학교 때 두가지 일을 다 했어요. 학교 수업 끝나고 방과 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쳐서 돈을 벌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도시 학교에 다니면서 생활비가 필요했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다니면서 초등학생을 가르쳤어요. 여러분들도 지금 초등학생들 가르치라고 하면 잘 가르칠 수 있겠어요? nbsp nbsp nbsp 자기 공부를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 공부는 내가 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세 가지를 중시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공부할 것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고 가야 합니다. 5분이나 10분 정도 오늘 무엇을 배울지 미리 읽어보고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오늘 배운 것을 다시한번 간단하게 복습해야 합니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한번 더 읽어봐야 합니다. 한번 더 읽으면 기억력이 세배 네배 더 높아집니다.nbsp nbsp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요. 첫째,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화를 내면 안돼요. 몰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차근 차근 가르쳐줘야 해요. 모르면 또 가르쳐주고 두 번 세 번 가르쳐줘야 합니다. 한번 가르쳐주면 알겠거니 이렇게 생각하면 안돼요. 두 번째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귀찮다’ 하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면 안돼요. 지금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nbsp nbsp nbsp nbsp nbsp 세 번째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역할이 세가지입니다. 첫째 사람입니다. 둘째 학생입니다. 셋째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선생으로서는 아이들을 아끼고, 반복해서 잘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으로서는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예습을 하고 수업에 집중하고 복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 nbsp 첫째, 때리지 않는다.nbsp 둘째, 훔치지 않는다.nbsp 셋째, 성추행하지 않는다.nbsp 넷째, 거짓말하지 않는다.nbsp 다섯째, 욕하지 않는다.nbsp 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생이라면 이 다섯가지를 꼭 지켜야 해요.” nbsp nbsp 이렇게 학생들에게 법문을 해주신 후 스님께서는 다시한번 계율을 학생들이 명심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따라하도록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사무지가 헤?” 라고 물어보자 모두들 “yes” 라고 크게 대답을 했습니다.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연달아 모임을 가지시면서 점심을 미쳐 드시지 못해 늦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오후 2시부터는 곧바로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생들과의 모임을 가지셨습니다.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이 각각 몇 명 왔는지 확인하시고 나서, 또 각 마을별로는 몇 명이 다니고 있는지도 확인하셨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생들과의 모임 nbsp 그리고 지난번 홀리 때 강조하신 다섯가지 계율에 대해 학생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셨습니다. 학년별로 한명씩 일어나게 해서 다섯가지 계율을 잘 외우고 있는지 물어보신 후 잘 외우면 “참 잘했어요” 하고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섯가지 계율을 지난 일주일 동안 한번도 어기지 않은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니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nbsp nbsp nbsp 또 한번이라도 계율을 어긴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니 몇몇 학생들이 손을 들어서 왜 어겼는지도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어겼을 때는 참회를 해야함을 강조하셨습니다.nbsp nbsp nbsp “다섯가지 중에 하나를 어겼을 때는 ‘아이고, 잘못했다. 다음에는 어기지 말아야지’ 하고 참회를 해야합니다. 어떻게 참회하느냐? 어길 때마다 열 번 절을 해야 합니다.”nbsp nbsp 그리고 아이들이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또 수학 문제를 직접 내어주시고는 아이들이 얼마나 수학을 잘하는지 테스트를 하셨습니다.nbsp nbsp nbsp “15 마이너스 7은 몇이예요?”nbsp “7 곱하기 8은 몇이예요?”nbsp “13 곱하기 7은 몇이예요?”nbsp “9 곱하기 8은 몇이예요?”nbsp nbsp 그리고 스님께서 학생들에게 “학교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세요” 라고 말하자, 학생들은 그동안 필요했던 것들을 웅성거리면서 여기저기서 쏟아내었습니다.nbsp nbsp nbsp “크리켓 장비가 더 필요해요” “축구공이 필요해요.nbsp “배드민턴 채와 공이 더 필요해요.” “미크럼틀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네가 있으면 좋겠어요.” “철봉이 있으면 좋겠어요.” “시소가 있으면 좋겠어요.” “줄넘기를 많이 사주세요.”nbsp “태권도 보호대가 더 필요해요.”nbsp “감치가 필요해요.” “이야기책을 더 많이 구입해 주세요.”nbsp “도서관을 개방해 주세요.” “여름용 교복이 한 벌 더 필요해요.” nbsp nbsp 학생들은 다양한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생들의 요청 사항을 직접 수첩에 다 적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nbsp nbsp “여러분들이 요청한 것들은 한꺼번에 다 해드리지는 못하고요.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순차적으로 갖춰 드릴게요. 공부 잘 하세요.”nbsp nbsp 학생들은 모두들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초등학생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마을개발 사무실 앞으로 가셔서 마을개발 스텝들에게 오전에 마을리더 회의에서 나온 핸드펌프 고장 문제라든가 학생들의 고장난 자전거 문제, 학교 정원을 어떻게 가꿀지 등에 대해 물어보시고 각 담당자에게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요청을 하셨습니다.nbsp nbsp ▲ 마을개발 스텝들과 미팅 nbsp 이어서 오후 3시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회의를 하셨습니다. 교사들에게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논의를 통해 최종 정리된 수자카아카데미의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 공유해주시고 이에 대한 교사들의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nbsp nbsp ▲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들과 회의 nbsp “우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아주 잘 가르쳐야 아이들이 정부학교로 가게 되면 적응을 잘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학교로 보내도 중간에 다 떨어져 버립니다. 적어도 마을마다 유치원 원장은 마을의 아주머니가 하거나, 학교에서 선생님 한명이 지원을 간다는 계획을 한번 짜보세요. 이제 유치원 책임자는 중학생들만 갖고는 안될 것 같아요. 적어도 여기 교사들이 책임을 맡거나 마을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게 해서 유치원은 아주 잘 가르치는 것이 첫째 중요하고, 둘째는 아이들이 전부 다 유치원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를 중점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기자재가 필요하면 더 공급을 하고요.nbsp nbsp 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일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문맹퇴치는 다 유치원에서 하고요. 초등학교 교육은 모두 정부학교에 위탁하고요. 그리고 두르가루프, 자그디스푸르, 방갈비가는 초등학교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초등학교 한 반을 운영합니다. 두 번째는 유치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아이들만 시험을 봐서 2030명 정도 한 반을 운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체육을 잘하거나 음악을 잘하거나 예술을 잘하는 아이들만 한반을 뽑아서 운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르가루프, 자그디스푸르, 방갈비가 아이들은 일반 초등학교처럼 공부를 잘 가르쳐주고요. 각 유치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뽑은 반은 앞으로 가야에서도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로 반을 운영하고요. 체육 예술 반은 어릴 때부터 아예 체육과 예술 쪽으로 나갈 수 있게 가르쳐주고요. 이렇게 특색 있도록 운영해보면 좋겠어요.nbsp nbsp nbsp 중학교는 첫째, 정부학교를 나왔든 수자타아카데미를 나왔든 관계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못 간 아이들을 모아서 직업학교를 만듭니다. 그리고 둘째,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뽑은 것은 중학교로 그대로 올라가고요. 그러나 다시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은 정부학교로 보내고요. 그렇게 빠진 학생 수만큼 다른학교 학생들을 시험을 쳐서 뽑고요. 세 번째는 예술 중학교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이나 음악을 하던 아이들은 계속 그 길로 중학교로 올라가고요. 태권도도 계속 그 반으로, 축구반도, 크리켓반도 계속 그 반으로 계속 올라가고요. 이렇게 중학교는 세 종류입니다. 하나는 직업학교, 하나는 공부 잘 하는 인문계 학교, 하나는 예술학교입니다.nbsp nbsp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면, 직업학교 졸업생은 바로 취업을 하러 나가고요. 다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직업 고등학교로 들어오도록 하고요. 공부 잘 하던 아이들은 그대로 고등학교로 올라가고요. 거기서도 다시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은 정부학교로 보내고요. 예술 체육 학교는 그대로 계속 올라가고요. 여기도 수준이 떨어지면 직업학교로 옮겨가고요. 직업학교는 고등학교로 끝이 나고요. 일반 인문계 학생들은 칼리지로 가고요. 예술 체육 학교를 졸업하면 전문 체육인이나 예술인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요.nbsp nbsp nbsp 이렇게 각각의 경우에 맞도록 종류별로 학교를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해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빛내고요. 예술이나 체육을 하는 학생들은 예술과 체육으로 공연을 하거나 대회에 나가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빛내고요. 그리고 다수의 학생들은 직업학교를 통해서 직업을 빨리 빨리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요.nbsp nbsp 직업학교에서는 공연히 어려운 공부를 가르칠 필요 없이 어학과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무 행정도 배워야 합니다. 컴퓨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서류 작성도 할 수 있어야 하고, 회계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기술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건축, 전기, 중장비 등에 대해서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도의 시골에 전부 전기가 들어오게 되면 전기 시설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해집니다. 그리고 인도가 발전하면 건축을 많이 하게 됩니다. 빌딩을 짓거나 도로를 닦거나 다리를 놓는 기술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nbsp nbsp nbsp 대학을 나와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도 어렵지만 합격해도 뒷돈을 달라고 하니까 갈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인도도 공무원 말고 개인 회사에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럴려면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이 되려면 성적이 아주 좋아서 뒷돈 없이도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앞으로 인도가 살기 좋아지면 체육 예술에 대한 수요가 많아집니다. 이제는 축구만 잘해도 먹고 살 수 있게 됩니다.nbsp nbsp 지금까지는 글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주는 문맹퇴치가 지난 20년 간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큰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일은 정부학교에서 충분히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정부학교가 할 수 없는 다른 일들을 또 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방향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이 연구를 좀 하셔야 합니다. 현재 주어진 것은 해나가면서 이런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서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제가 이런 제안을 먼저 던지니까 생각을 해보고 내일 회의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nbsp nbsp 스님께서 그려주시는 큰 그림을 듣고 나서 교사들은 매우 설레여하는 눈빛을 보였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수자타아카데미가 바뀌어 나간다면 둥게스와리에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교사 회의를 마치고 나서도 교사들은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에 대해서 웅성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더 주고 받았습니다.nbsp nbsp 오후5시30분부터는 상카시아에서 석가족 청년들이 찾아와서 상카시아에 담마 센터를 짓는 일과 관련해서 스님과 상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번 석가족 수련 때도 여러차례 강조하셨지만, 이번 미팅에서도 석가족들이 주체가 되어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nbsp nbsp ▲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들과 회의 nbsp 오후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사업 논의 회의를 하셨습니다. 우선 모레 있을 마을잔치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상품은 무엇을 줄지, 심사위원은 누가 할지, 주민들을 자리에 어떻게 앉힐지 등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해 미리 체크하고 역할분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마을리더 회의, 중학생 법회, 초등학생 법회 때 나온 주민들과 학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해서 실행에 옮길지 등을 검토 했습니다.nbsp nbsp ▲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nbsp nbsp 인도JTS 활동가들과의 회의까지 다 마치고 나니 밤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연이어 미팅을 가지시면서 잠시도 쉴 틈이 없으셨습니다.nbsp nbsp 내일은 아침 일찍 SBS 촬영팀과 함께 전정각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오전에 마을 리더들과 한차례 더 모임을 갖고, 오후에는 교사들과 한차례 모임을 더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인도JTS 활동가들과 최종적으로 사업방향을 정리하는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하루종일 회의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nbsp
2015.3.17 (인도 15일째) 주인도 한국 대사님 수자타아카데미 방문 및 라즈길 성지순례
▲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이 둥게스와리의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하셔서 인도JTS의 사업에 대해 소개하고, 라즈길에 있는 부처님의 성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108배,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둥게스와리의 새벽을 깨웁니다. 오늘도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지혜를 닦아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발원을 하며 한배 한배 몸을 낮춥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아침6시40분이 되자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이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두 분께 반갑게 환영 인사를 한 후 JTS 홍보관으로 함께 들어가셔서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와 인도JTS의 사업 전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간단히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입구에 마련된 JTS 홍보관nbsp“이곳은 부처님이 6년간 고행을 하신 성지입니다. 이곳에 부처님께서 정진하신 동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보러 왔는데 아이들 수백명이 줄을 서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이 일요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다” 라고 해요. “그런데 왜 아이들이 학교에 안가고 구걸을 하느냐?” 물으니까 “학교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학교가 없느냐?” 하니까 “진짜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마을로 내려와서 마을 사람들과 학교를 짓는 것에 대해 의논을 했지요. 처음에는 교실 4칸짜리 학교를 지어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4칸을 지어놓으니까 아이들이 더 몰려와서 300명이 넘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2층으로 건물을 올렸어요.nbspnbsp그리고 세 번 정도 강도를 당했는데, 결국 마지막 세 번째는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 분이 강도가 쏜 총에 맞아서 돌아가셨어요. 2002년이였어요. 그 때 이후에는 경찰이 주둔하게 되면서 치안이 조금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얻은 평화라 할 수 있죠.nbspnbsp이 산은 부처님이 고행하시던 전정각산이예요. 이 산 주위에 천민마을이 주욱 있습니다. 15개 마을이 있는데 마을마다 유치원을 다 지어주고 핸드펌프를 설치해주었어요.nbspnbsp1999년부터 지이바카 병원도 지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지이바카는 부처님의 주치의 이름입니다. 1995년도에 콜레라가 발생해서 그거 치료하다가 저도 콜레라에 걸렸었어요. 병원은 아직 보건소 수준이예요.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저체중아와 산모에 대한 영양식 지원을 하고 있고요. 결핵 퇴치를 계속해서 결핵환자가 처음에는 300여명이였는데 지금은 4명만 남았습니다. 종기 환자가 많아요. 간단한 치료는 자체에서 하는데, 그 이상 되는 치료는 보드가야 병원으로 데려가서 치료하고요.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고 계신 스님nbsp지금은 도로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이곳에 차가 들어오지도 못하는 곳이였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인도 경제가 좋아지면서 성지 개발이 시작되고 여기까지 많이 좋아졌거든요.nbspnbspJTS는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입니다. 일방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Join Together, 즉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어떤 지원도 공짜로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항상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마을에 어떤 건물을 지어줄 때도 우리가 재료를 주면 짓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지어야 합니다.” nbspnbspnbsp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상물을 보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nbspnbspnbsp“제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저렇게 구걸을 하고 있었어요. 학교를 짓기 전에는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동생들을 다 엎고 와서 수업 진행이 제대로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유치원을 짓게 된 거예요. nbsp중학생들은 오전에는 마을마다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해요. 얘들은 유치원 선생 1년을 하고 나면 금방 어른이 되어 버려요. 여기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전부 다 학교 선생님이 되었어요.nbspnbsp마을 사람들은 인도말로 “함까랑게” 라고 해서 “내가 하겠습니다” 라는 구호를 갖고 전부 쉬람단이라는 공동 노동을 합니다.”nbsp대사님과 함께 국제불교연합에서 오신 인도인 여성 한분은 “스님은 한국의 마더테레사입니다. 너무 훌륭하십니다” 라고 하면서 외국인이 자기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했습니다. 대사님과 문화원장님도 “JTS 후원신청서를 가져다달라” 고 하시면서 무척 감격스러워 하셨습니다.nbspnbsp▲ 인도JTS 소개 영상을 보고 계신 이준규 대사님과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nbsp인도JTS 활동가들은 그냥 늘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일 뿐인데 감격스러워하는 대사님 일행을 보면서 ‘외부에서 우리들의 활동을 바라볼 때는 큰 감동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최말순 보살님과 인도JTS 활동가들이 새벽부터 준비한 아침식사를 대사님 일행 분들께 대접해 드렸습니다. “음식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다” 고 하시면서 맛있게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 최말순 보살님과 인도JTS 활동가들이 정성껏 마련한 아침식사nbsp식사 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를 한바퀴 둘러보면서 스님께서 각 건물마다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 차가 앰블란스입니다. 동네에 타고 다니면서 예방 접종하고 환자 실어다 나르고 있는데, 조금 더 큰 차로 바꿔달라고 자꾸 그러네요.”nbsp▲ 지이바카 병원의 앰브란스nbsp“이것은 ‘짜르카’라고 해서 무명으로 실 만드는 기계입니다. 부녀자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운영하고 있어요.”nbspnbsp▲ 짜르카 물레 교실이 열리는 곳nbsp“이것은 중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자전거입니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 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 유치원에서 가서 아이들 가르치고, 오후에는 다시 학교로 와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어요.”nbsp▲ 중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nbsp“여기가 교실이고요. 저학년들은 책상이 없고 바닥에 천을 깔고 공부하고 있고요. 상급 학년은 책상을 놓고 공부하고 있고요.”nbsp▲ 수자타아카데미 1학년 교실 복도nbsp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이렇게 주마간산 식으로 학교를 둘러본 후 전정각산으로 올라갔습니다.nbspnbsp“이 산이 부처님이 6년 간 수행하셨다는 전정각산입니다. 부처님이 계셔던 곳마다 탑을 세웠는데 이 산 전체에 탑이 17개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여기가 유적지라는 개념이 없다보니까 탑을 반으로 갈라서 길을 낼려고 하길래 제가 올라가서 말리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여기 탑들은 아쇼카 왕 때 쌓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손을 거의 안 댄 거예요.”nbspnbsp▲ 전정각산 산 봉우리마다 세워진 탑을 가르키는 스님nbsp“저기 보세요. 칼날 능선이죠? 대사님이 시간만 좀 더 내시면 대사님 애를 좀 먹일려고 저 능선을 다 가볼려고 했거든요. 저 능선을 따라가면 산 맨 끝에 네이란자라 강이 흐르는데 강 건너편에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자리가 있어요. 그 근처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수자타 여인의 마을이 있고요. 그 너머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대탑이 있습니다.”nbspnbspnbsp▲ 전정각산의 칼날 능선nbsp“저기 보이는 것이 부처님께서 드셨다는 샘터입니다. 이 산 전체에서 유일한 샘입니다. 여기서 자연 그대로 물이 나오는 곳은 저기 밖에 없었어요. 원숭이, 소, 사람 모두 물은 저기서 마셨죠. 저기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보고 갈게요.”nbspnbspnbsp이렇게 전정각산을 올라가 본 후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아침 8시 무렵이여서 그런지 중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유치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기 전에 조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사님께서는 중학생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 조회 시간nbsp“여러분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들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해야지 찾아옵니다. 법륜 스님을 비롯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여기 와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이분들의 봉사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을 격려해주고 계신 이준규 대사님nbsp중학생들은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대사님께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스님, 대사님, 문화원장님 그리고 중학생들이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 교사들과 함께nbsp스님께서는 “얘네들이 어릴 때는 다 구걸하던 아이들이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선생님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래요” 하시면서 선생님들과 중학생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수자타아카데미 방문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대사님 일행 분들과 함께 라즈길로 이동하셨습니다. 문화원장님께서는 불교 성지를 가꾸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스님께서는 “성지순례를 하실려면 제 안내를 받으면 좋아요” 하시면서 라즈길에 있는 대표적인 성지들을 찾아가 그곳에 얽히 부처님의 일화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대사님께서 이동을 하게 되니까 인도 정부에서 경찰들의 경호를 붙여 주어서 이동하는 내내 선두 차량과 후미 차량은 경찰들이 싸이렌을 요란스럽게 울리며 에스코트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지에서도 경찰들이 앞과 뒤를 경호해 주어서 지난번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이번에 스님께서 인도에 머무시는 21일 동안 라즈길을 3번 다녀가게 되는데, 첫 번째는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했고, 두 번째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버스를 타고 순례를 했고, 이번에는 경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코스를 색다르게 경험을 하게 되네요. nbspnbspnbsp▲ 대사님 차량을 에스코트 해주는 인도 경찰 차량nbsp아침 8시4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먼저 10시 무렵에는 ‘다사라뜨 만지’라고 하는 인도 사람이 22년간 망치와 정만 갖고 산에 길을 낸 일로 유명한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인도 사람은 부인이 병으로 위독했으나 길이 산을 돌아가야 해서 병원에 긴급히 데려가지 못해 부인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다시는 나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하고 22년 동안 혼자서 바위를 깨서 산에 길을 만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 일화를 들려주시면서 산 중간에 길이 난 곳에 직접 올라가 보고 대사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부인을 잃고 22년 동안 ‘다사라뜨 만지’가 만들어낸 길nbsp산을 내려와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제가 다사라뜨 만지의 손자입니다” 라고 소개하면서 한 청년이 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대사님은 무척 반가워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과 다라라뜨 만지의 손자nbspnbsp10시30분 무렵에는 ‘제띠안’ 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제띠안은 부처님 당시 왕사성의 서문 밖 15km에 위치해 있는데,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처음으로 영접했던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입니다. 스님께서는 제띠안의 탑터 위에 올라가 대사님께 이곳에 얽힌 부처님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한 ‘제띠안’ nbspnbsp“이곳은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이 만난 곳입니다. 부처님은 가야에서 우루벨라 가섭 등 천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고, 왕도 몇 천명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와서 서로 만난 곳이 이곳입니다.nbspnbsp그 때 왕이 우루벨라 가섭한테 절을 하면서 “제가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가 팔십 먹은 노인을 보고 ”너는 내 손자요“ 하는 것보다 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우루벨라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바퀴 돌고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이 분은 저의 스승이고,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을 만나고 나서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윤회의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푸자를 지내고 복을 구했다는 얘기이고, 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것은 수행 정진해서 해탈 열반의 길을 갔다는 얘기입니다. 그때서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을 청합니다.nbspnbsp부처님이 왕을 위해서 설법을 하자 왕은 그 설법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너무 기뻐한 나머지 이렇게 신앙 고백을 했어요. “내가 왕자 때 다섯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내가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네 가지 소원은 이제 다 이루었는데, 이제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싶으니 부처님께서 왕궁으로 오소서.” 하고 식사 초대를 했는데 부처님께서 승낙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왕은 성 밖에 있는 왕사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대나무 숲을 기증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가 생긴 연원입니다.nbspnbsp여기에 와보셔야 죽림정사로 가는 스토리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래서 여기로 모셔 온 겁니다. 이 탑은 아쇼카왕 때 이후로 손 댄 적이 없기 때문에 2300년 된 탑입니다.” nbspnbsp▲ 제띠안에 올라서서. 뒤로 부처님께서 왕사성으로 걸어가셨다는 길이 보입니다. nbspnbsp이렇게 제띠안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다음은 왕사성 서문 쪽으로 들어가 영축산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지순례를 오시면 항상 걸어서 올라가시는데, 오늘은 국제불교연합에서 안내원이 나와서 안내를 하는 바람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니 산치 수투파의 모양을 그대로 따라서 만든 일본 절이 정갈하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일본 절에서 앞을 내다보니 라즈길 전체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산 능선에는 왕사성 성벽이 남아있는 흔적도 보였습니다. 저 성벽은 3천년 전에 쌓아진 아주 오래된 성벽이라고 합니다.nbspnbsp▲ 3천년 전에 쌓았다는 왕사성 성벽nbsp다시 산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니 부처님이 설법을 하셨다는 영축산이 보였습니다. 영축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리푸트라가 수행하였다는 동굴이 하나 있었고, 동굴 위에는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해칠려고 돌을 던져 그 돌조각이 부처님 발에 맞아서 피가 났다고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아난다 존자가 수행하던 동굴도 있었습니다.nbspnbsp▲ 사리푸트라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 동굴nbsp영축산은 인도말로 ‘그리드라쿠타’라고 부르고, 독수리봉이라는 뜻에 맞게 정말로 산 봉우리가 독수리 모양으로 생겼습니다.nbspnbsp▲ 뒤에 보이는 바위가 독수리처럼 생긴 바위입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셨다고 하는 정상 부분에 이르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작은 단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대사님과 문화원장님 각각 기념사진을 한 장씩 찍으신 후 다함께 영축산을 내려왔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는데 내려오는 길은 제법 바람이 불어 선선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축산을 내려오면서 이 영축산 아래에서 육방예경이라고 하는 경전이 설해졌다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스님의 주례사’ 라는 베스트셀러 책이 출간된 배경을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영축산을 내려오며 육방예경이 설해진 배경을 이야기해 주고 계신 스님nbsp“부처님이 이 영축산에 계시다가 마을에 내려가서 탁발을 하고 올라오다 보니까 어떤 젊은이가 한번은 남쪽을 절을 하고 한번은 동쪽으로 절을 하고, 또 하늘을 보고 절을 하고 땅을 보고 절을 하고, 이렇게 동서남북상하 여섯 번을 절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너는 왜 절을 하느냐?“ 고 물으니까 ”모른다“고 했어요. ”모르면서 왜 절을 하느냐?“고 하니까 ”아버지가 하라고 해서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부처님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그 젊은이가 절을 한 방향마다 교훈을 심어 주십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이죠.nbspnbsp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어떻게, 친구 지간에는 어떻게, 또 주인과 종은, 요즘으로 비유하면 상사와 아랫 사람이겠죠. 이렇게 총 여섯가지에 대해 서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각각 지침을 줘요. 지금 읽어도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인간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아주 잘 설해 놓았거든요.nbspnbsp그래서 이 경전을 기초로 주례사를 한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된다, 부부지간에는 서로 어떻게 해야 된다,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 부모한테는 어떻게 해야 된다, 친구 관계는 어떻게 해야 된다, 직장에서 상하관계는 어떻게 해야 된다, 하는 것들을 기초로 해서 제가 이야기한 것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입니다.”nbsp대사님과 원장님은 스님의 주례사가 부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놀라워 하셨습니다.nbspnbsp영축산을 내려오니 벌써 12시가 되어서 다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 대사님, 문화원장님과 점심 식사nbsp스님께서는 부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 가장 신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 인도 정부에서 나온 안내원들이 영어로 영축산에 대한 안내를 함께 해주기도 했는데, 책에 나와 있는 얘기를 주욱 늘어놓는다는 느낌 뿐 그 속에 부처님의 대한 존경심과 감동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얘기해 주시는 부처님의 일생을 듣고 있노라면 부처님 당시로 다시 돌아간 듯 금방 몰입이 되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죽림정사로 갔습니다. 죽림정사 안에 위치한 연못을 한바퀴 빙 둘러보면서 스님께서는 죽립정사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nbspnbsp“이곳은 ‘배누반 바나’라고 하는데 대나무숲이란 뜻입니다. 죽림정사는 절이 아니라 숲이란 개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아무런 건물을 짓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적지에 지어진 건물들은 다 나중에 지어진 거예요.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시는 동안 당시 최대의 제자였다고 하는 지혜제일 사리푸트라와 신통제일 목갈리나가 부처님께 출가를 합니다. 두 분은 산자야라고 하는 분의 제자였는데 각각 자신의 제자 100명씩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께 귀의를 하게 됩니다. 그 분들이 나중에 실제로 교단을 이끄는 사람들이 됩니다. 두 분 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종교적인 수행 경력도 훨씬 많으셨고요.nbspnbsp그러니 여기서는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에다가 사리푸트라와 목갈리나의 제자 200명까지 총 1200명의 제자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처음 깨닫고 나셔서 사르나트에서 설법을 해서 제자가 되신 분들이 60명이거든요. 그래서 경전에는 이 분들을 다 합쳐서 ‘1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가 항상 나오거든요.”nbsp이렇게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 대사님과 원장님 다함께 연못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죽림정사nbsp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께 “언제 한번 이곳에 다시 와보시겠어요? 사진을 꼭 남기셔야죠” 하시며 주요한 곳곳마다 사진 한 장씩을 꼭 찍으실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죽림정사를 끝으로 라즈길에 있는 성지에 대한 안내는 모두 마쳤습니다. 대사님과 함께 온 ‘국제불교연합’ 이라는 단체에서 나란다 대학과 파트나 일정에 대한 안내를 이미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죽림정사까지만 안내를 해드리고, 대사님과 원장님께 인사를 한 후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셨습니다. 대사님과 원장님은 “한국에서는 정말 뵙기 어려운 스님을 여기 인도에서 하루 종일 뵙게 되었다” 면서 아주 감사해 하셨습니다.nbspnbsp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니 오후4시가 다 되었습니다. 숙소로 들어오니 SBS에서 촬영팀이 도착해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도 촬영팀을 반갑게 환영해 주셨습니다.nbspnbsp저녁 6시45분부터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18일부터 21일 한국 출국 전까지 남은 일정과 마을잔치 등 계획된 행사들에 대한 준비사항을 점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마을리더들과 함께 논의할 토론 주제, 신축해야 할 건물이 있는지, 유치원 교육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학교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새로운 인도 스텝 인준, 등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밤9시가 넘었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nbsp내일은 오전에 마을리더들과 회의, 오후에는 중학생 법회, 초등학생 법회, 교사들과의 회의, 저녁에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를 각각 연달아 계속 가지실 예정입니다.nbspnbspSBS 촬영팀은 스님의 내일 일정을 공유받고 나서는 “스님께서는 인도에서도 어쩜 이렇게 쉴 틈 없이 계속 바쁘시냐?” 고 하면서 “잠시만 시간을 내셔서 전정각산만이라도 같이 한번 올라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같이 웃었습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nbsp
2015.3.16 (인도 14일째) 주인도 한국 대사님과 문화원장님 보드가야 대탑 참배
▲ 보드가야 대탑 보리수 나무 앞에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nbsp안녕하세요.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을 마치고 어제 오후 이따와역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에 가야역에 도착한 후 오후에는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께 보드가야 대탑을 안내하신 후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하셨습니다.nbspnbsp어제 낮 12시40분에 이따와 역을 출발한 기차는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더니 원래 밤11시30분에 도착 예정이였으나 7시간을 연착하여 오늘 아침 6시4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인도의 기차는 도착 시간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고 하는데 오늘도 그랬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일어나시자 마자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기차 안에서 명상하시는 스님nbsp어제밤이나 늦어도 오늘 새벽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가야역에 마중을 나와 있던 주연우님은 스님 일행을 기다리다 지쳐 오토릭샤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nbspnbsp▲ 가야역에 마중을 나온 주연우님nbsp아침 8시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오전에는 장거리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겸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 16시간 동안의 먼 길을 달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 스님 일행nbsp12시30분에 점심을 먹고 오후1시30분에는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한국문화원장님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비롯한 보드가야 대탑을 방문하러 오셔서 최동호님은 공항으로 대사님 일행을 마중나가고, 스님께서는 보드가야에 나간 김에 잠깐 시간을 내셔서 차크마 템플에 계시고 인도JTS 및 인도정토회 부이사장이신 쁘리야팔 스님을 만나셨습니다. 차크마 템플에 스님께서 도착하자 쁘리야팔 스님은 너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스님께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는 쁘리야팔 스님nbsp쁘리야팔 스님은 얼마 전부터 스님을 계속 뵙기를 요청하셨습니다. 2013년부터 인도 불자 대회를 보드가야에서 매년 8월에 개최해 오고 있는데 올해는 스님께서도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행사 내용을 검토해 보고 답변을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불자들이 인도 사회에서는 소수 민족 취급을 받는데 우리는 소수 민족이 아니라는 것,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도 우리 인도 불자들에게 돌려달라는 것, 성지로 가는 도로를 제대로 정비해 달라는 것, 공무원 시험에 빨리어 시험이 없어졌는데 다시 복원해 달라는 것, 대탑 근처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을 우리는 인도 정부에 요청하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좀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nbspnbsp“이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부와 관계된 일입니다. 인도 국민으로서 당연히 요구해야 하는 일이지만, 제가 지원할 일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정치적인 일입니다. 인도에서 상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승려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미승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도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테라바타와 마하야나, 탄트라를 서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가 서포트를 할 수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인도 불자들 자체에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쁘리야팔 스님은 보드가야 대탑 주변에 태국 절이 있는데 그곳 주지스님과 스님이 서로 만나면 좋을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요청을 해서 태국 절을 잠깐 방문해서 주지스님을 만나 뵈었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 대탑 바로 옆에 세워진 태국 절nbsp태국 절 주지스님은 10년 전에 스님과 만나셨던 인연을 금방 기억하시고는 “륜 반테지” 라고 하시며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nbspnbsp▲ 태국 절 주지스님nbspnbsp태국 절 주지스님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대사님 일행이 보드가야 대탑 앞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태국 절 주지스님께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한 후 보드가야 대탑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보드가야 대탑 앞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과 김금평 한국문화원장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각각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이곳에 방문해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셨고, 대사님은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꼭 스님을 뵙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뵙게 되었다”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를 방문하신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nbsp그리고 대탑 안에 있는 법당을 함께 참배하고, 스님께서는 대탑과 대탑 주위에 있는 유적지를 하나씩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 보드가야 대탑 안 법당 참배nbsp“부처님께서는 강변의 큰 보리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으셔서 이곳에서 마지막 정진을 해야되겠다고 결심을 하십니다. ‘내가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즉 죽어도 좋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것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나서 49일만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nbsp▲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nbspnbsp“성도 후에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 아래의 그 자리에 앉아서 일주일 간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하셨고, 두 번째 주에는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응시하면서 일주일 간 정진을 하셨어요. 세 번째 주에는 열아홉 발자욱을 왔다갔다 하면서 행선을 하셨습니다.”nbspnbsp▲ 세 번째주에 부처님께서 열아홉 발자욱 행선을 하신 곳nbsp“네 번째 주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몸에서 빛이 나는 방광을 하셨어요. 다섯 번째 주는 어떤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합니다” 했더니 그 바라문이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 지나갔다고 합니다.nbspnbsp여섯 번째 주는 이 지역에 홍수가 나서 이곳이 다 물에 잠겼나 봐요.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져서 큰 용왕이 부처님 몸을 보호했다고 해요. 일곱째 주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두 명의 상인이 지나가다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성도 후 처음으로 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기 전에 49일, 얻은 후에 49일 해서 98일 동안은 아무것도 안드셨는데, 그러니 인간이 단식을 한다면 100일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구나 알 수 있죠.”nbsp▲ 여섯 번째 주에 용왕이 부처님 몸을 보호했다는 무차린다 연못nbsp이렇게 대탑 주위의 유적지를 하나씩 설명하신 후 대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사님과 원장님은 스님께서 이렇게 직접 안내를 해주시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해 했습니다.nbspnbsp▲ 대탑 앞에서 함께 기념촬영nbspnbsp그리고 5시30부터는 마하보디 소사이어티에서 국제불교연합 주관으로 인도의 방송, 신문들과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대사님은 인도의 불교 성지를 잘 가꿀 수 있도록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본격적인 지원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함께 자리해 기자 회견 모습을 잠시 지켜보셨습니다.nbspnbsp▲ 인도 언론사들과 기자회견nbsp이어서 고행을 끝내고 네이란자강 강변에 쓰러져 있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수자타 여인의 집터에 세워진 탑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해가 다 져서 어두웠지만 스님께서는 “대사님이 언제 한번 이곳에 와 보시겠어요? 어두워졌지만 한번 보시고 갑시다” 하시며 자세히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자타 여인의 집터에 세워진 탑nbspnbsp그리고 수자타의 탑에서 수자타 여인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는 곳, 부처님이 네이란자라 강변에서 쓰러지셨던 곳 등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곳을 찾아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곳nbsp“우르벨라 가섭을 교화하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는 부처님께 우루벨라 가섭은 머물 곳이 없다며 거절을 했어요. 그러자 부처님은 “어떤 자리도 좋습니다”고 했어요. 우르벨라 가섭은 부처님을 ?아낼 심산으로 “당신이 머무를 곳은 화룡이 있는 곳 밖에 없다”고 해서 부처님은 화룡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우르벨라 가섭은 ‘좋은 수행자를 잃었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무사히 자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를 하였는데, 바로 그 화룡굴이 바로 여기입니다.nbsp우루벨러 가섭이 교화가 되자 그의 제자 500명도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사용하던 제사 용구를 모두 물에 던져버렸습니다. 물에 떠내려 오는 형님의 제사 용구를 보고 형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염려하여 ?아온 동생 나디 가섭은 형님의 말을 듣고 300명 제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막내 동생 가야 가섭 역시 200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1000명의 제자들을 교화하고 이들과 함께 라즈길, 당시의 ‘왕사성’으로 갑니다. 라즈길에서도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죽림정사를 기증받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내일 라즈길로 가서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이렇게 설명을 해주신 후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한 이야기까지 이곳에서 설명해 드려야 내일 방문하게 될 라즈길에 있는 성지들에 대한 스토리가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시면서 내일 라즈길 방문 일정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안내를 마치시고 나서는 보드가야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대사님께서 특별히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도 식사 초대를 해주셔서 오랜만에 봉사자들도 보드가야로 나와서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대사님께 소개하고 있는 스님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 한명 한명을 대사님과 원장님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대사님은 “먼 곳에 오셔서 정말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으십니다” 라고 하시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저녁 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함께 자리한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데에 집중하셨습니다. 저녁식사 자리에는 국제불자연합 관계자들과 이곳 가야 지역의 행정 책임자인 DM, 이 근방의 6개 디스트릭을 총괄하는 컴미셔너 등이 함께 자리해서 스님께서 둥게스와리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구호활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지난 22년 동안의 구호활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저희들은 둥게스와리에서 22년 전부터 학교와 병원, 마을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문맹퇴치를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100 문맹 지역이였습니다. 이제 20년이 되었기 때문에 문맹퇴치를 넘어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립학교 설립 허가를 정식으로 받으려고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사립학교가 되면 이제는 직업학교도 운영하려고 합니다. 시설은 이미 다 갖춰져 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들은 이 지역의 DM과 Commissioner는 “참 훌륭한 일을 하고 있으십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행정 책임자인 두 분께 둥게스와리의 성지 가꾸기 사업에 대해서도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 맞은 편에 앉은 분이 DM과 Commissionernbsp“불교 성지를 잘 가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불교 성지가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둥게스와리는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신 곳입니다. 이곳만큼은 조용한 성지로 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순례도 오지만 명상을 할 수 있는 공원을 겸해서 가꾸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개발을 하는 모습을 보면 보드가야처럼 복잡하게 개발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직은 빈 공터가 많으니까 공원을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로가 좋아지면 관광객이 훨씬 더 많이 올 것이기 때문에 주차장을 멀리 떨어뜨리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둥게스와리만큼은 외국 사람들이 왔을 때 조용히 명상할 수 있게 해주세요.”nbspnbsp스님의 간곡한 요청에 두 분께서도 긍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에 있는 많은 성지들이 보드가야처럼 난잡하게 개발될 것을 많이 염려하고 계셨는데, 관광객 유치에 더 관심이 많은 인도 정부가 과연 어느만큼 스님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녁식사를 마칠 때 즈음 대사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주욱 둘러보시더니 “다들 싱글들만 있네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싱글이 아니면 이런 오지에 올 사람이 누가 있어요?” 라고 하니 대사님도 웃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한국 젊은이들이 이런 오지에 와서 봉사활동을 꼭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한국의 젊은이들이 너무 한국에서만 살아서 나약한 것 같아요. 정부 차원에서 청년 실업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해야할 일이고요. 젊은이들은 스스로 이런 오지에 나와서 살아보면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한국 안에서만 있으면 진짜 못 살 나라라고 느껴지는데... 제가 여기 마을을 방문해 보면 대부분 스무살도 안되어서 장가가서 애 낳고 부모 모시고 흙집이지만 자기 집을 갖고 살거든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너네는 대학도 나왔는데 장가도 못가고 시집도 못가고, 이게 꼭 경제적인 문제만일까?“ 그러거든요.”nbsp스님의 말씀에 대사님도 크게 공감을 하시면서 특히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이렇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격려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 이준규 주 인도 한국 대사님nbsp“여러분들이 이곳 오지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느낍니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고,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월급도 많이 받고 나라에서 제공해 주는 집에서 살면서 외교를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들은 월급도 안 받고 고생하면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데, 여러분들의 이런 노고가 작은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여러분들의 후손들이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nbspnbsp대사님의 격려를 듣고 나니 수자타아카데미 활동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대사님은 이런 노고가 언젠가는 결실을 맺게 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인도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이 어려울 때 한국의 청년들이 이렇게 헌신적인 활동을 했음을 기억한다면 이것 자체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대사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을 듣고 수자타아카데미의 활동가 9명은 트럭을 타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한국문화원장님은 배웅을 해주시며서 화려한 호텔 레스토랑을 나와 털털 거리는 트럭 뒷칸에 비좁게 앉는 활동가들을 보며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이런 오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애틋하게 보이셨나 봅니다.nbspnbsp▲ 덜컹 거리는 트럭에 탑승하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니 밤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내일 대사님 일행이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할 때 어떻게 안내 할지에 대해서 간단히 역할분담을 하고, 또 앞으로 스님께서 한국 출국 전까지 세부 일정을 어떻게 가질지에 대해서 논의를 한 후 밤11시 넘어서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 인도에서의 앞으로 남은 일정에 대해 의논하시는 스님nbsp내일은 오전에 대사님과 원장님 일행이 수자타아카데미로 오셔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신 후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에 대해 스님께서 안내를 해주시고, 오후에는 라즈길로 가서 제띠안, 영축산, 죽림정사에 대해 안내해주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5 (인도 13일째) 상카시아 답사 및 가야로 이동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상카시아의 불교 유적지 한 곳을 답사하고 인도인 슈레스지가 운영하는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한 사업장을 방문하신 후 이따와에서 가야로 가는 기차를 타셨습니다.nbspnbsp어제밤 석가족 청년들과의 수련을 마치고 미얀마 절에서 하룻밤 머문 스님께서는 새벽 5시30분에 미얀마 절을 나와서 어제 수련이 열린 인도 절에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 그저께부터 스님께서는 짜파티, 사부지, 달, 짜이 등 3일째 인도 현지 음식으로만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nbspnbspnbsp맛있게 음식을 먹고 나서는 차를 타고 이동해 상카시아 스투파 근처에 불교 성지가 한 곳 더 있다고 해서 답사를 가셨습니다. 성지에 도착하니 아쇼카 석주가 세워졌다가 땅 속에 nbsp묻혀 일부분만 드러나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쇼카 석주를 둘러싸고 미얀마에서 온 불자들이 정성껏 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쇼카 석주를 둘러본 후, 이곳 성지를 안내해 준 담마빨 스님께 이곳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담마빨 스님은 이곳 성지를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사리푸트라가 500명의 제자들을 교화했다고 하는 곳nbsp“부처님께서는 담마가 너무 어려워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먼저 사리푸트라에게 설법을 하셨습니다. 사리푸트라가 그 법을 먼저 이해하고, 사리푸트라가 다시 500명에게 그 법을 설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얀마 스님들이 이곳이 중요하다고 많이 믿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아쇼카 석주가 정말 맞는지?” 다시 물어보셨고, 담마빨 스님은 “아쇼카 석주는 확실하다”고 대답하면서 “현재는 아직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진행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아 놓기만 했다” 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성지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새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동네 아이들이 “1월달에 사탕 주시는 바바가 오셨다”고 하며 벌떼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쁘리앙카님이 통역으로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이야기를 전해주자 스님께서는 “미안해. 오늘은 사탕을 준비해 오지 못했어. 너희들이 있는지 몰랐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을 달래주고 다시 차에 타셨습니다. 이곳 동네 아이들에게도 스님은 유명인사가 되어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님께서는 상카시아 지역에 부처님과 관계된 유적지가 더 있는지 담마빨 스님께 물어보셨습니다. 담마빨 스님이 다시 대답했습니다.nbspnbsp“이 근처에 아직도 스투파처럼 높은 곳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첫 번째 성벽 문으로 사리푸트라가 쉬라바스티에서 이곳 상카시아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져 오고 있어요.”nbspnbsp얘기를 하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상카시아의 성벽 흔적이 보였습니다.nbspnbsp▲ 상카시아의 성벽이 있었던 자리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인도JTS 사업을 시작할 때 초창기부터 인연이 되어 온 슈레스지가 인도 불교 부흥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을 방문해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슈레스지는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석가족 청년들을 나가푸르의 암베드카르 쪽, 티벳 불교의 달라이라마 센터 쪽, 고엥가 명상센터 쪽으로 각각 보내어서 불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업장에 아쇼카 석주도 높이 세우고, 건물을 짓기 위해 벽돌 기계도 마련해서 벽돌을 생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스님께 소개를 했습니다.nbspnbsp▲ 슈레스지가 세웠다고 하는 아쿄카 석주nbsp하지만 슈레스지는 “불교 공부를 하라고 곳곳에 보낸 석가족 청년들이 나중에 이 사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서로 분열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라고 하며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될 확률이 99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보낸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예요. 누군가가 여기서 담마는 같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서로 다른 문화는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담마를 중심으로 잡을 때 어느 것을 중심으로 잡느냐 하는 선택이 중요합니다. 테라바다, 마하야냐, 탄트라, 젠의 공통된 담마를 잡아줘야 통합을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금방 분파가 되어 버립니다. 가장 바탕은 부처님의 생애와 부처님 당시에 가르쳤다고 생각되어지는 근본불교를 바탕에 깔아야 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100이라고 하면 테라바다는 50 정도만 남아 있다고 보면 되고, 마하야나는 30 정도 남아 있다고 보면 되고, 탄트라는 10 정도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인도 문화라고 보면 됩니다. 젠 부디즘도 10 정도 남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10 라도 공통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게 안 잡히면 다 갈라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가능하면 나중에 생기도록 한다든지, 덜 갈라지게 한다든지 하려면 담마를 중시해야 해요. 확대되는 것보다는 공동체 생활의 중심을 잡는데에 비중을 더 많이 두어야 해요. 그리고 분열하면 안된다 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분열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죠. 분열되지 않도록 노력하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혹시나 분열이 되어도 내 마음에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괴로우면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스님께서 조언을 해주시자 슈레스지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제 수련을 함께한 힌두 사두 한분이 자신이 지은 학교 건물과 땅을 모두 스님께 기증하고 자신은 출가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분을 찾아가서 잠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 건물과 땅을 보시하고 싶다고 말하는 힌두 사두nbspnbsp이 분은 스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 건물과 땅을 모두 기증하고 싶다고 했고, 자신은 노동도 잘 할 수 있으니 스님이 짓고자 하는 담마 센터를 짓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어제 스님 법문 들었어요. 50는 너희들이 모으면 50는 스님이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죠. 저는 어제 스님 법문 듣고 너무 기뻐서 제가 갖고 있는 이 건물과 땅을 다 스님께 드리고 싶어요. 이 학교는 군인 생활 마치고 저도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어서 사람들의 보시를 받아서 지은 겁니다. 스님 하시는 일이 좋아서 스님께 다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노동도 할 수 있어요. 담마 센터를 짓는 데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nbsp스님께서는 “잘 알았어요” 하면서 합장을 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보시도 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1시간 2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따와로 왔습니다. 이따와에 있는 수바스지의 집에서 잠깐 짜이 한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기차 시간이 되어서 기차 역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출발하기 전 수바스지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1박2일 동안의 석가족 수련 준비를 총괄해준 수바스지와 그 가족들nbsp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온 수바스지는 가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는 스님을 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스님께서는 “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뜻대로 잘 안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시면서 수바스지의 애틋한 마음을 읽어 주셨습니다. 수바스지는 20년 전 청년 시절에 스님을 만나 스님의 뜻을 받들어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한 일을 평생 동안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20년 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스님을 이렇게 정성껏 모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기차에 올라탄 스님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수바스지nbsp수바스지와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스님 일행은 가야행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낮 12시40분에 이따와 역을 출발한 기차는 밤 11시30분에 도착할 예정인데, 인도 기차의 특성상 연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내일 아침 무렵에 가야역에 도착할 것 같네요.nbspnbsp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지난 1박2일 동안 석가족과 함께한 수련에 대한 소감을 나누시면서 휴식도 취하시고, 아이패드로 한국에서 온 이메일도 체크하고, 원고 교정도 하는 등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스님께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아마도 인도의 기차 안 밖에 없지 않을까 싶네요.nbspnbsp내일은 오전에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셔서 오후에는 주 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대사님과 한국문화원 원장님이 보드가야를 방문하셔서 보드가야 대탑을 직접 안내해 주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4 (인도 12일째)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2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 석가족들과 함께하는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새벽부터 오후까지 석가족들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석가족들과 함께하는 2일째 수련은 새벽 5시 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 석가족들에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석가족들에게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스님nbsp“콧구멍 끝을 가만히 주시하면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흡을 한다는 것은 숨이 들어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숨이 들어가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온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들어올 때는 숨이 길게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나올 때는 숨이 길게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규칙적이면 규칙적이구나 알아차립니다. 의도적으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지 않고 자연상태로 그대로 숨을 두고 그 숨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nbspnbsp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긴장하지 않습니다. 애쓰지도 않습니다. 편안한 상태로 마음을 코 끝에 집중합니다. 시작합니다.”nbspnbsp스님의 안내가 끝나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명상은 30분간 계속되었고 어두웠던 창밖이 서서히 밝아올 즈음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nbspnbsp명상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즉문즉설을 계속 진행하셨습니다. 석가족들은 어제 스님께 들은 법문 중에서 또는 자신들이 평소에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아침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잠시 휴식을 한 후 8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스님께서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에 대해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nbsp“오늘은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럴려면 첫째, 내가 먼저 담마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담마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담마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담마에 대해 많이 안다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경험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 좋은 담마를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담마센터가 지어지면 상카시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담마를 배우고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각 디스트릭마다 작은 센터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인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떻게 했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처님은 왕자였습니다. 부처님이 왕자일 때는 밑에서 말을 모는 종도 있고, 옷 갈아 입혀주는 종도 있고, 침실을 청소하는 종도 있는 등 하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할 때 그 시종들을 데리고 갔어요? 안 데리고 갔죠.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도 시종들을 다 데리고 살았어요? 시종들 없이 살았지요.nbspnbspnbsp당시 사회는 노예제 사회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노예들이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제도를 버리셨습니다. 상가 안에는 어떠한 노예 제도도 없었습니다. 오직 여기는 수행자만 있었습니다. 마하가섭 존자도 굉장한 부자집의 아들이였지만 출가하고 나서는 걸식하고 살았습니다. 상가를 돕기 위한 어떤 노예도 시종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큰 절을 지어서 밥을 해먹고 살려면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은 옷은 주워서 입고, 밥은 얻어 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노예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 없는 삶을 사셨어요.nbspnbsp부처님이 나이가 드셔서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아난다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난다는 수행자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노예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수행자였습니다.nbspnbsp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려면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시스템 없이 이 세상을 살기가 어려워요. 제가 만약에 절을 운영하는데 수위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고 수위를 고용한다, 밥 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 청소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면 이 절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그 수위가 저를 볼 때는 제가 사장으로 보이겠어요? 스승으로 보이겠어요?”nbspnbsp“사장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사장이예요? 스승이예요?”nbspnbsp“스승입니다.”nbsp“정말 그럴까요? 스님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22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둥게스와리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제가 스승일까요? 사장일까요?”nbspnbsp“사장으로 보일 겁니다”nbsp“그래서 제가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를 볼 때 스승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존경합니다. 우리가 모두 수행자이고 제가 스승이라면 여러분과 저하고 사이에 돈을 주고 받는 거래는 없어야 합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줘야 해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시를 해야 해요?”nbspnbsp“저희들이 보시해야 합니다.“nbsp“법륜 스님이 지난 20년 동안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의 사장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금방 절을 지을 수 있어요. 월급을 1만 루피씩 주면서 금방 지어버리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제가 주는 돈을 받고 생활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고 사장이 된단 말이예요. 이해하셨어요?”nbsp“스님은 저희들에게 스승이시지만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때로는 사장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nbspnbsp“아주 솔직하게 잘 말했어요. 그래서 진짜 붓다 담마가 행해지려면 제가 여기서 사장이 되면 안되고 스승이 되어야 해요. 절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절은 필요하지만 핵심은 아니예요. 아난 존자가 부처님을 시봉할 때 노예로서 했어요? 월급 받고 했어요? 같은 수행자로서 하신 것이지요. 부처님이 빔비사라왕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그 돈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줘서 절을 지으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에게 주었어요?”nbspnbsp“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께 드렸어요.”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저한테 절을 지어달라고 해요?”nbspnbspnbspnbsp“아난다핀디카라든지 빔비사라왕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해드릴 수 없어요. 우리들 말고 한국에서 스님한테 배운 수행자들 중에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보시하면 우리가 거기에 보태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주로 몸으로 노동을 해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우리들은 석가족이 멸망할 때 겨우 도망쳐서 숨어서 살다가 노예로 살게 되었고, 노예로 살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제 와서 어느 정도 살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스님한테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해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nbspnbsp“잘 알았습니다. 우선 원칙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절을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셨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실제 사정은 그런 경제력이 없다는 것 아니예요? 그렇다면 절을 지을 수 있는 땅이나 철근이나 시멘트 등 자재는 스님이 일부 지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절반을 모으면 제가 절반을 지원해 주겠다고 지난번에도 회의를 했잖아요.”nbspnbspnbspnbspnbsp석가족들은 근심어린 표정이었다가 스님께서 자재는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니 박수를 치며 금새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한분이 다시한번 질문했습니다.nbspnbsp“스님한테는 아난다핀티카처럼 돈이 많은 수행자들이 한국에 많이 있지 않나요?”nbsp“그런데 부처님이 아난다핀티카에게 ‘너는 돈이 많으니 절을 하나 지어라’ 이렇게 말을 했어요?”nbspnbsp“아닙니다. 스스로 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이곳 상카시아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어떡해요? 인도에서도 누군가 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절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절을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절반은 여러분이 모으고 절반은 제가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절을 지으려면 누군가는 여기 와서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한다’ 고 하면서 아무도 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떡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월급 줄게 하면 당장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제가 사장을 해서 절을 지으면 거기서 어떻게 붓다 담마를 할 수 있어요? 스승도 없이 건물만 크게 지어서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절을 지으면서 월급을 받으면 그것은 노동자이지 부디스트는 아니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수행자로써 쉬람단을 해야 합니다.nbspnbsp돈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절을 지으면 그 사람들이 그 절의 주인이 됩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다 돈을 가져와서 여기에 절을 지으면 이 절은 한국 절이예요? 석가족들의 절이예요? 여기 땅을 산 이유는 한국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석가족들의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예요.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안하면 석가족들의 절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스님이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벌써 상카시아에 온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까요? 절 하나 못지어서 가만히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참여해야 여러분들의 절이 되는 것이예요. 저는 사장이 되기 싫어요.”nbsp“스님의 마음 속에서는 석가족들을 사랑하는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는데...”nbspnbsp“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장이 되기 싫다 이말입니다. 부처님도 전륜성왕이 될 것이냐, 부처가 될 것이냐 두 가지 길이 있었잖아요. 둥게스리에서 수행하실 때도 마왕이 나타나서 붓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전륜성왕이 되라고 자꾸 요구하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저보고 자꾸 스승이 되지 말고 사장이 되라고 요구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왕이예요?”nbspnbspnbspnbspnbsp“저희도 스승으로 모시고 싶지만 저희들 형편이 워낙 안 좋으니까요.nbsp스님이 이곳에 오신 것은 담마를 전하러 온 것이지 절을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스님께서 이렇게 1년에 한번씩 오셔서 담마를 가르쳐 주셔서 너무 좋지만, 스님께서 가시고 나면 다시 똑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들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스님들이 마을마다 계시는데 이 스님들이 스님이 가시고 나서 스님처럼 담마를 계속 알려주실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해요.”nbsp“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저는 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담마가 인도 사회에 널리 퍼져나갈 수 있어요. 담마에 대해서는 스님께 의지하는 것이 괜찮은데, 절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nbsp“스승 역할도 해주시고 사장 역할도 해주시고 두 개 다 해주시면 안될까요?”nbspnbsp“그럼 부처님이 전륜성왕도 되고 부처도 되고 두가지 다 하셨어요?”nbspnbsp아니요nbspnbsp“인도 불교를 부흥하기 위해서는 석가족이 앞장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도 전체에 불교도가 0.5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북쪽에 있는 탄트라 불교는 티벳 난민들이거나 소수민족이예요. 동쪽에 있는 테라바타도 소수민족이예요. 암베드카르는 신분적으로 nbsp낮은 사람들이예요. 모두 인도의 비주류예요. 숫자도 적지만 사회의 중심이 되기에도 어려워요. 그렇다고 영향력 있는 브라만이 불교로 바꾸지는 않을 것 아니예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계급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평민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내면 인도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nbspnbsp20년 전에 젊은 석가족 청년들이 저한테 약속을 했어요. 자기가 출가를 하든지 아니면 아들을 출가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님이 안되더라도 일생을 바쳐서 불교를 부흥시키는 운동을 하겠다고요.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지금은 다 어디 갔어요?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각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스님이 못되었으면 세속에 살더라도 스님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시간을 더 내고 마음을 더 내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좀 가지시라는 것입니다.nbspnbsp담마는 신에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잖아요. 그것처럼 상카시아의 불교 발전을 위해서는 저를 신으로 만들지 말고,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면 제가 스승 역할을 하면서 서포트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좀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담마 센터를 지으려면 더 마음이 모여져야 해요. 아직 부족해요. 여러분들이 준비가 되면 저는 언제든지 지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머리가 다들 복잡해지면서 웅성거리게 되자, 여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일단 휴식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스님께서는 수련이 진행되는 동안 석가족들이 이 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고 설명하고 때론 반복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수 차례 “사마지가 헤?” 라고 물어보시고 표정이 갸우뚱 하면 다시 다른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석가족들은 점점 더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휴식 시간을 마치고 나서 다시 법상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이번에는 우리들의 삶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열가지 계율을 함께 지켜보자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새로운 마을개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인도 석가족 청년 8명이 자신이 그런 일을 해보겠다고 당당하게 손을 들어서 스님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nbspnbsp“붓다 담마만 공부한다고 불교 전파가 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석가족들에게는 그래도 불교 전파가 쉽지만 다른 카스트로 전해지는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부디스트들이 수행도 잘 하지만 생활하는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좋아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훌륭하다고 말할 때는 그 행동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계율입니다. 올해는 10가지는 꼭 지켜봅시다.nbspnbspnbsp첫째, 때리지 않는다. 애 키우면서 안 때릴 수 있어요? nbspnbsp그래도 불교신자는 아이를 때리면 안됩니다. 아이를 교화해야 합니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불교신자라고 하면 아이들이 ‘올해는 맞을 일은 없겠구나’ 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할 때 남자가 불교신자라고 하면 ‘저 남자는 부인을 절대 때리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nbsp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 여기에 아무리 물건을 놓아두어도 잃어버릴 일이 없어야 해요.nbspnbsp셋째, 성추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특히 잘 지켜야 해요. 아무리 외진 곳에서 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성추행하면 안돼요. 상대가 부디스트라고 하면 ‘절대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해요.nbspnbsp넷째, 거짓말하지 않는다.nbsp다섯 번째, 욕설하지 않는다.nbsp여섯 번째, 잔소리하지 않는다.nbsp일곱 번째, 짜증내지 않는다.nbspnbsp여덟 번째, 술먹고 취하지 않는다. 술먹고 취하게 되면 때리게 되고 훔치게 되고 성추행하게 되고 욕하게 되고, 그래서 나머지 계율을 다 어기게 돼요. 그래서 술을 안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술을 먹더라도 취하면 안돼요. 술 먹고 취하면 불자라고 할 수 없어요.nbspnbsp아홉 번째, 음식에 탐착하지 않는다.nbsp열 번째, 사치하지 않는다. 옷이나 가방을 유명 상품으로 산다거나 하지 않고 돈이 있더라도 수행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nbspnbsp지킬 수 있겠어요? 물론 살다보면 어길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는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 열가지만 잘 지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nbspnbspnbsp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좀 잘 살아야 사람들이 존중하겠죠? 그런데 여러분 개개인이 잘 살려고 하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개인도 열심히 일을 해야하지만 그러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요. 그러나 우리가 협력을 하면 조금 쉽습니다. 협동조합이라고 아세요? 협동조합에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이 있어요. 첫째, 공동구매입니다. 비료나 농약, 벽돌, 시멘트 등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많이 공장에서 구매하면 값을 낮게 살 수 있어요. 둘째, 공동판매입니다. 여러분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개인이 판매하는 것보다 모아서 한꺼번에 사업자한테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셋째, 마을금고입니다. 우리가 남는 돈을 저축하고, 저축했을 때 이자는 은행보다 더 받고, 우리가 돈을 빌릴 때는 사채보다 더 값싸게 빌리고요. 이런 것을 부디스트들이 공동체를 이뤄서 마을을 공동개발해서 다른 마을보다 잘 살게 되면 이것도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개개인들은 힘이 없지만 뭉치면 힘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첫째,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붓다 담마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넷째, 개인이 계율을 잘 지켜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협동 조합을 만들어서 우리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면 이것 역시 불교의 영향력을 크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라 하더라도 부디스트들이 잘 산다고 하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들도 조합원이 되고 싶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담마 센터에 가서 수련을 해야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들도 담마를 배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확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담마를 전파시켜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마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운동을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마다 있는 담마센터가 이런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과 사회활동이 따로 분리가 되지 않고 같이 이뤄져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붓다 담마를 수행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합니다.”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을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누가 한번 이 일을 해볼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nbspnbsp“그런데 문제는 누가 나서서 이 일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월급을 주면 노동자가 되잖아요. 한국의 정토회는 많은 일을 하지만 100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수행자로서 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이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좀 나서야 합니다. 여기 청년들 중에서 ‘결혼 안하고 내가 평생 이런 일을 하겠다’ 하는 사람 없어요?”nbsp▲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해 평생 일해보겠다고 당당히 일어선 청년들nbsp스님께서 이렇게 묻자, 인도 청년 8명이 당당하게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남자 4명, 여자 4명이였습니다. 스님께서 “부모님이 반대해도 할 자신이 있어요?” 라고 묻자 “허락 받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허락 안하면 그냥 집을 나와버릴 수 있어요?” 라고 다시 묻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당당히 이야기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스님과 함께 일해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인도 석가족 여성 4명nbspnbsp그리고 한 청년의 아버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스님께서는 아버지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반대 안할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흔쾌히 마음을 낸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격려를 해주셨습닌다.nbspnbsp▲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해보겠다고 말하는 인도 석가족 청년 4명nbspnbsp“물론 세상살이도 좋은 면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농시짓고 아이 낳고 그것 밖에 더 하겠어요? 죽을 때까지 밥 벌어 먹고 살고, 아이 키우기만 하다가 죽어요. 그런데 우리가 크게 마음을 내면 붓다 담마도 공부할 수 있고, 붓다 담마를 널리 전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마을 개발을 한다면 동네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공동판매, 구매 같은 협동조합 운동도 할 수 있고요. 그러나 우리는 붓다 담마를 하면서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뿐이지 활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오늘 손 든 청년들은 학교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스님이 데리러 올 테니까요. 스님이 아주 기뻐요. nbsp인도 사람들은 나고 죽고 윤회한다고 믿고 있잖아요. 계속 이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번 한 생만 이런 일을 해보자는 것이예요. 우리가 이번 한 생만 투자하면 이 인도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이 청년들처럼 완전히 집에서 나오지는 못해도 마음을 더 내셔야 해요. 여러분들도 처음보다는 조금 더 마음을 내셨어요? 한번 해볼까요? 변화를 위해서 스타트를 할 준비가 되었어요?”nbspnbsp이번에는 마을 주민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준비되었습니다”nbsp“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미승 학교를 만들면 보내줄 거예요? 스님이 되어도 괜찮아요?”nbspnbsp“문제 없습니다.”nbspnbsp“아주 좋았어요. 그러면 올해 1년 동안 준비해서 무엇이든지 한번 해봅시다.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기회가 지금 왔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담마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나의 인격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정말 서로 협력해서 좋게 사는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시골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법이 인도 사회에 빠른 속도로 전파될 것입니다.nbspnbspnbsp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서지 못하면 여러분들의 자녀라도 나서도록 하고 서포트 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정토회가 이렇게 이뤄진 것도 누군가가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으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이뤄지는 것이예요. 개인 생활만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씩 마음을 내어서 같이 해봅시다. 준비 되었어요?”nbsp“네” nbsp1박2일 동안의 스님 법문을 듣고 하루밤 사이에 이렇게 사람들이 달라지다니 놀라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법문 곳곳에서 느껴진 스님의 석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인도 불교의 새로운 부흥은 가난한 석가족 사람들의 초발심을 통해 그 첫바퀴가 막 굴러가려고 삐끄덕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20년 동안이나 석가족들이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매년 법문을 해주고 기다려주고 하셨던 스님의 애틋한 사랑이 아니였다면 석가족들도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스님의 간절한 서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인도 대학에 다니면서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인도 스님 몇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특히 요즘 스님께서는 인도에 와 있는 동안 오후 불식을 하고 계신데, 오후 불식 하는 계율이 생기게 된 배경과 현재 남방 불교의 스님들은 어떻게 걸식을 하고 어떻게 오후 불식이라는 계율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시고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nbspnbsp▲ 남방 불교의 계율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nbsp또 스님께서는 마을에 살고 있는 인도 스님들을 보시면서 한국인 스텝들에게 “이런 스님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출가한 스님들 같다”고 하시면서 “대부분의 남방 스님들은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데, 이 마을 스님들은 여기 온다고 아무런 대접도 안해주는데 법문도 열심히 듣고 참 소박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마지막 순서로 지금까지 스님 얘기를 듣고 더 궁금한 것에 대해 더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주신 후 이번 수련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석가족들이 부디스트로서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부디스트로서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전 인도 사람이 다 힌두교이고 나 혼자만 부디스트라고 하더라도 자신있게 살아야 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는 전부 브라만교이고 혼자 부디스트이였잖아요. 우리가 잠을 자고 있다고 합시다. 제가 혼자 깨었어요. 여러분들이 다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해요. 그럴 때 이 한 사람이 백명을 깨우겠어요? 이 백명을 따라서 한 사람이 다시 잠꼬대를 하겠어요?”nbsp“한 사람이 잠꼬대 하는 사람들을 깨울 수 있습니다.”nbspnbspnbsp“붓다는 깨달은 이,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인도 사람 전체를 깨워야지 여러분들도 같이 따라서 잠을 자면 안돼요. 자, 그러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수련을 모두 마치겠습니다.”nbsp석가족들은 큰 박수를 치면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인도 절의 주지이신 담마빨 스님이 남방불교 방식으로 법회를 마치는 의식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법회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수바스지의 사회로 지난 1박2일 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준비해주신 분들, 설거지를 해주신 분들, 법당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분, 한국에서 이곳까지 함께 와준 스텝들 등 모두에게 큰 박수로 다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린 아이 중에서 한명, 여성들 중에서 한명, 남자들 중에서 한명, 한국 사람 중에서 한명 각각 나와서 노래 한곡씩을 부르며 오늘 수련을 마치는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한국 사람 중에서는 스님 의전을 맡고 계신 최말순 보살님이 한국 가요를 멋지게 불러주셔서 석가족들로부터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nbspnbsp▲ 인도 석가족들에게 한국 가요를 들려주는 최말순 보살님nbsp이어서 수련에 참가한 석가족들은 스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스님의 발에 손을 올리는 예를 취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시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시 들어온 돈 전체를 이곳 인도 절을 수련을 할 수 있게 빌려주신 담마빨 스님께 전달하셨습니다.nbspnbsp▲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꽃공양을 올리는 석가족들nbsp스님께서도 참석한 석가족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하나씩 직접 손목에 끼워 주셨습니다. 석가족들은 단주를 받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단주를 선물 받는 석가족들nbsp이렇게 수련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여성들이 나와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20년 전부터 스님과 함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석가족 청년회 멤버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 촬영nbsp석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석가족 청년회 구성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였습니다. 오늘 수련을 한 것을 토대로 올 한해 동안 어떤 일들을 할지 등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최종 계획을 세웠습니다.nbspnbsp▲ 상카시아 불교 부흥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nbsp회의를 마치고 나서 다시 숙소인 미얀마 절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곧바로 휴식을 취하시며 한국에서 온 이메일 등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상카시아 스투파 근처에 또다른 불교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잠깐 둘러본 후 슈레스지가 인도 불교 관련해서 하고 있는 사업장을 둘러보고 격려를 해주신 후 이따와로 와서 기차를 타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13 (인도 11일째)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
▲nbsp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1일째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가야에서 이따와로 이동하셔서 상카시아 석가족들을 위해 수련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1박2일 동안 상카시아 인도 절에서는 석가족들 100여명이 모여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하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입니다.nbspnbsp▲nbsp가야에서 상카시아로 가는 기차nbspnbspnbsp새벽1시30분에 이따와 역에서 도착 예정이였던 기차는 예상했던 대로 밤새 서행을 하더니 5시간이 연착되어 아침6시30분에 이따와 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기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시다가 새벽4시30분에 일어나셔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기차 안에서 명상 중이신 스님nbspnbsp이따와 역에 도착하니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가 아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기차역에 마중을 나온 석가족 청년회 회장 수바스지nbspnbspnbsp차량을 타고 수바스지의 집으로 가서 짜파티와 사부지, 달로 아침식사를 한 후 8시30분에 출발하여 오늘 개원법회 및 불상 점안식이 있는 메인뿌리의 산띠뿌르 마을까지 1시간20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nbspnbsp산띠뿌르 마을에 새로 개원한 법당에 스님께서 도착하자 인근 지역의 스님들 30여분과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 합장을 하거나 스님의 발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공경의 예를 표하며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법당 입구에서 긴 줄로 나란히 서서 환영해주는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nbspnbsp먼저 스님께서 한국식으로 간략하게 점안식을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예불을 하시고 난 후 이곳 산띠뿌르 법당과 마을 주민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산띠뿌르 마을 개원법당 점안식nbspnbsp이어서 인도 스님들이 인도 방식으로 예불을 올렸습니다. 점안식을 마치고 난 후에는 스님께서 참석자들이 잡고 있는 오색 실을 가위로 끊어주셨고, 참석자들은 끊어진 오색 실을 서로에게 묶어주면서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예를 표했습니다.nbspnbsp▲nbsp오색 실을 잘라주는 스님nbspnbsp법당 밖으로 나와서는 스님께서 마을 주민들을 위해 법당 개원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쁘리앙카님의 통역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들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새해 잘 보냈습니까? 지난 한해의 근심걱정은 다 잊어버리시고 올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법당 개원법회nbspnbsp오늘 이곳 산띠뿌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담마로꼬 쁘라까스 실 보드 비하르’ 라는 새로운 절이 생겼습니다. 부처님도 새로 모셨습니다. ‘로터스 수투라’라고 하는 경전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로 부처님 얼굴을 그리고 탑을 쌓아도 큰 공덕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없어질 모래로 만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신 것은 그것보다 수천배 더 공덕이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많은 도네이션을 해주신 분이 실소만 스님이십니다. 그리고 담마실 스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분들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 절을 책임 맡으신 분은 보드 길라얀 스님이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점안식을 위해 30여분의 스님들도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환영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nbspnbsp부처님이 계실 때는 우리는 부처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우리가 경배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대신에 보리수 나무를 경배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발바닥 무늬를 경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한 불상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 불상은 돌로 만든 조각입니다. 조각이 부처님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같이 생긴 조각을 부처님으로 여기는 의식인 ‘점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점안식을 하기 전에는 조각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점안식을 하고 나면 비록 돌로 만든 조각이지만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점안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불법승 삼보를 먼저 청합니다. 그래서 이 불상 속에 부처님의 기운이 들어가도록 요청합니다. 그럴 때 다른 잡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붉은 팥을 뿌려서 다 쫓아냅니다. 그리고 덮어쓴 천을 벗깁니다. 부처님의 미간에 부처님의 지혜의 광명이 깃들도록 점안을 합니다. 눈을 뜨게 한다 이런 의식입니다. 점안을 하면 비록 돌로 만들어진 불상이지만 오늘부터는 부처님처럼 그 앞에서 경배를 해야 합니다. 이제 자주 자주 찾아오셔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오색실을 쥐고 있으셨는데 오색실은 불교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여러분을 모두 연결해서 부처님의 기운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색실을 손목에 묶고 있으면 올 한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 종교 의식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45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며 교화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의 종족은 육체적으로는 대를 이어서 지금의 여러분들에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육체는 받았는데 부처님의 마음은 잃어버렸습니다. 붓다 담마는 없고 힌두의 믿음만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 담마는 석가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한국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2천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인도에서 담마를 전하는 스님이 한국까지 와서 전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몸은 석가족이 아니지만 붓다 담마는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nbspnbspnbsp이 몸둥이가 석가족인 것이 진짜 석가족이예요? 붓다 담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석가족이예요?nbsp붓다 담마를 가진 사람이요nbsp그럼 여러분은 석가족이 아니예요?nbspnbsp석가족 맞아요nbsp이 몸둥이가 중요해요? 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사람 마음이 중요해요nbsp그러니 몸둥이만 석가족이라고 해서 석가족이라고 하면 안돼요. 반쪽 밖에 안돼요. 마음 속에 붓다 담마를 가져야 진짜 석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무지가 헤? nbsp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는 석가족 산띠뿌르 마을 주민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돼요. 붓다 담마를 공부 안 한 사람은 “너 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석가족이다” 라고 대답하면 안돼요. nbspnbsp오늘 절도 새로 생겼고 스님들도 이렇게 계시니까 이제 붓다 담마를 공부하셔야 해요. 알았지요? 절에 가서 붓다 담마는 공부 안하고 기도만 하면 힌두와 다른 차이가 없어요. 여기 절을 지은 이유는 붓다 담마를 공부하라고 지은 것입니다. 붓다 담마를 공부하겠다고 약속 하시겠어요? nbspnbsp오늘 절을 개원하는 것을 기념해서 제가 이곳에 온 것은 개원식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께 붓다 담마를 꼭 공부하라고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진짜 석가족이 되려면 몸만 석가족이 아니라 붓다 담마를 가슴에 안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여러차례 반복해서 강조하며 붓다 담마를 공부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4대 성지와 8대 성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서 인도에 살면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감로의 법문을 듣고 마을 주민들은 모두들 큰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문 후 스님께서는 석가족 마을 주민들에게 생활 형편이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들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물어보시는 스님nbspnbspnbsp“농사를 얼마나 지어요?”nbsp“5비가 지어요”nbspnbsp“농사 그만큼 지어서 생활이 괜찮아요?”nbsp“생활이 어려워요 감자, 마늘, 쌀, 밀 농사를 지어도 값이 낮아서 남는 것이 없어요”nbspnbsp“소를 빌려서 키우기도 해요?”“네”nbspnbsp“소를 나중에 어떻게 해요?”“팔아서 생긴 이익을 주인과 반반 나누어요”nbspnbsp“돈을 빌리면 이자를 얼마 갚아야 해요?nbsp“월 5입니다.”nbspnbsp“비싸지 않아요?”nbsp“비싸요”nbspnbsp“그러면 열집이나 스무집이 힘을 합쳐서 수확한 농산물을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값이 오를 때 판매한다든지, 비료를 스무집이 한꺼번에 구입한다든지 하면 좀 싸게 구입할 수 있잖아요. 공동 판매하면 조금 더 비싸게 팔 수도 있고요”“그러면 좋은데 단합이 잘 안돼요”nbspnbsp이곳 상카시아 석가족 마을에서도 스님께서는 둥게스와리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협동조합을 통한 주민생활의 개선에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둥게스와리에서 모델이 빨리 만들어지게 되면 이곳 상카시아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짜파티를 만들고 있는 부녀자들nbsp▲nbsp뿌리를 만드는 남자들nbspnbspnbsp그리고 부녀자들은 집집마다 나무판과 막대기를 가져와서 법문을 들으면서 짜파티를 만들었고, 또 한쪽 편에는 남자들이 짜파티를 기름에 튀기며 뿌리를 만드는 등 정성껏 요리를 해서 스님 일행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유미죽도 아주 달콤하고 맛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참석한 스님들 한분 한분에게 거마비를 드리고 마을 주민들과도 인사를 한 후 산띠뿌르 법당을 나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스님께서 차를 타고 떠나실 때까지 정성껏 배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차를 타고 곧바로 오늘 석가족들을 위한 수련을 진행할 상카시아 인도 절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쯤 절에 도착하자 이곳 주지인 담마빨 스님을 비롯한 미리 도착한 석가족들이 스님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인사만 하고 오늘 숙소로 잡은 근처의 미얀마 절에 짐을 내린 후 오후 3시에 다시 인도 절로 와서 석가족들과 함께 수련을 하셨습니다.nbspnbsp석가족들은 스님을 뵙자 스님의 발에 손을 대고 엎드려 절을 하며 스님께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가야에 있는 석가족 청년들도 김정준님과 함께 15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수련에 참가하러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삼배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메인뿌리, 이따와, 까노즈, 에따, 가야 등 곳곳에서 많은 석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가야에서 온 석가족들은 스님께서 멀리서 왔다고 특별히 소개를 시켜 주셔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직업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셨는데, 대부분 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업하시는 분, 학교 선생님,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을 법문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nbsp스님께서는 1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시면서 첫 번째 법문에서는 불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종교와 다른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무한한 힘을 가진 신이 있고 미약한 인간이 있는데, 미약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신의 도움을 얻는 의식이 ‘푸자’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와 힌두교만 다르고, 불교와 크리스천만 다른 것이 아니고, 불교는 모든 종교와 근본적으로 그 입장이 다릅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이 생겼어요. 정말 이 세상 만물을 신이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이 생겼어요. 신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럴 듯 안해요? 현대 사회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과학을 배우고 우주를 공부하고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이런 시대에도 아직도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이미 ‘이건 아닌 것 같다’ 고 생각하셨어요.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어요?nbspnbsp두 번째는 사람이 진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종자가 다른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도 부처님은 의문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고 여겼는데 부처님은 남자와 여자가 왜 차이가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nbspnbsp세 번째는 사람이 죄를 지어놓고 제사 지낸다고 그 죄가 없어질까 이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셨어요. 강가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목욕한다고 죄가 없어지는가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은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문제아 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런가?’ 계속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nbsp nbspnbspnbsp그래서 부처님은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브라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서 출가 사문들의 무리 속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았습니다.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늘 따라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무조건 억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억압하는 것이 정반대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욕망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욕망에 일체 반응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새로운 길을 발견합니다. 붓다가 발견한 길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로 쾌락과 고행을 떠난 제3의 길 ‘중도’입니다.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욕구를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참는 것과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참는 것은 저항을 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은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그런 욕구가 있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릴 뿐인 것입니다. 즉 욕구를 따라가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nbspnbspnbsp즉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하고 알아치리고 있다는 것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예요? 안 피운다는 얘기예요? ‘담배를 피우고 싶구나’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은 참고 있는 거예요? 안 참고 있는 거예요? 알아차림이 있어야지 참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든지 참든지 두 길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니르바나로 가는 길은 이 두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알아차림입니다.nbspnbsp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모든 의문이 다 풀렸어요. 이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연관되어 존재할 뿐입니다. 즉, 이 세상을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서로 다른 종자라는 것도 부정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은 사람이예요. 어떻게 사고의 습관을 들였느냐, 즉 왕자로 훈련시켰느냐, 브라만으로 훈련시켰느냐, 노예로 훈련시켰느냐, 하는 의식의 차이에 의해 나눈 것이지 모두 똑같다는 것이죠. 남자다 여자다 하는 것도 서로 다를 뿐이지 높고 낮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급제도를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괴로운 것은 신의 벌이 아니고, 인간이 행복한 것도 신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군가가 조정하는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우리의 무지에 의해서 형성된 까르마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지 누군가가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수행을 통해서 이 무지를 깨뜨려야 니르바나를 증득하는 것이지 푸자를 지낸다고 니르바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사제 계급도 필요없어 지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 안에는 브라만도 없고 크샤트리아도 없고 바이샤도 없고 수드라도 없고, 그냥 수행자 딱 한가지만 있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것도 위대한 것이지만, 그 당시의 브라만 사회에서 부처님의 법을 전파해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도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도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할 때는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이렇게 삼보에 반드시 귀의해야 해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nbspnbsp중요한 것은 붓다 담마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운명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행복하고, 없어도 행복해야 합니다. 가족이 죽어도 행복하고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결혼해도 행복하고 혼자 살아도 행복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행복을 유지해야 합니다.”nbsp이렇게 해서 무려 3시간 동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기울여 들으며 불교가 어떻게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차”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습니다.nbspnbsp이어서 저녁식사 및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저녁7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방금 전 낮에 스님 강의를 들으면서 또는 평소에 붓다 담마에 대해 궁금하던 것들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이 편안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열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제가 작년 8월부터 세계 115회 도시 강연을 했습니다. 매일 한 도시씩 바꿔가면서 115일 동안 강연을 했어요.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돼요. 유럽이나 아메리카는 부처님 당시와 비교하면 모두 왕족처럼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먹는 것도 충분하고 집도 좋고 차도 좋고 옷도 좋고 사회 시스템도 좋고, 옛날과 비교하면 이상세계라고 할 만큼 아주 좋아졌어요. 그러나 인간의 괴로움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만 가지고는 그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붓다 담마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왕자로써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는데도 고뇌가 있었고 그런 조건에서 이 고뇌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찾았기 때문에 지금 현대인들의 고뇌와 문제의식이 같습니다. 이 고뇌는 대부분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이 정신적인 고뇌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깊은 연구가 된 것이 붓다 담마입니다.nbspnbspnbsp아마 인도에서도 앞으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사람들에게 붓다 담마가 새롭게 요구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첫째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둘째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면 ‘인도에서 왔다’ 하면 다 불교에 대해 질문할지도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물질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아도 정신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지도를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는 붓다 담마가 없단 말이예요. 그래서 여러분 석가족들이 이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남에게 얘기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붓다 담마를 알아야 돼요. 그래서 오늘 작은 의문이라도 의문이 있는 것은 다 물어보세요.”nbsp그러면서 석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한 분이 죽고 태어나는 전생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이런 얘기가 있어요. 강도 한명이 총 맞아 죽었는데 우리 가족이 한명 태어났어요. 그 아이에게 흉터가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의 전생에 강도가 총맞아서 죽었고 그 강도가 이 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가 맞았어요. 이건 뭐예요? 강도가 죽은 것이예요? 아이가 새로 태어난 것이예요?”nbspnbspnbsp“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엄청나게 많아요.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 기도해서 대학 시험에 걸렸다, 이런 얘기는 모든 종교마다 다 있어요.nbspnbsp얼음 알아요? 얼음으로 만든 구슬 세 개를 어린 아이에게 주었다고 합시다. 어린아이는 그 구슬을 그릇에 담아 놓고 밖에 나가서 한참 동안 놀다가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얼음이 없어지고 물만 생겼어요. 그러면 어린 아이는 ”엄마, 얼음이 없어졌어“ 그럴 것 아니예요? ”물이 생겼다“ 이럴 것 아니예요? 왜 어린 아이는 이렇게 얘기할까요? 그것은 얼음과 물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어졌다, 생겼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는 과정을 아는 어른은 ”없어졌다, 생겼다“ 이렇게 말하지 않겠죠. ”모양이 변했다“ 이렇게 말하지요. 변화 과정을 아는 사람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변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nbspnbspnbspnbsp이 세상 모든 사물은 변화할 뿐이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생겼다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제한된 인식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제의 세계는 변화할 뿐이예요. 태양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합니다.nbspnbsp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요. 이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예요.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평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평면이 아니예요. 지구 표면은 휘어져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성립하는 것이예요.nbspnbsp여기 앞에 앉은 사람과 저 사이에 최단 거리의 선은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서로 뒤로 물러서서 이 사람은 북극점에 가서 서고, 저는 남극점에 가서 선다고 합시다. 그럼 선을 몇 개 그을 수 있어요? 무한히 그을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지구가 둥그니까요. 하나 밖에 그을 수 없다는 것은 평면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그렇습니다. 곡면이 되면 전혀 다른 문제가 돼요.nbspnbsp우리가 갖는 상식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과 진리는 다릅니다. 붓다 담마는 상식을 뛰어 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문화 속에서 생각하는데 붓다 담마는 그 문화를 뛰어넘어 있는 것입니다. 붓다는 2600년 전 사람이니까 2600년 전의 생각을 해야하는데, 지금 봐도 합당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붓다 담마를 진리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붓다 담마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이 아는 범위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 담마의 근본 가르침을 이해해야지 다음 시대로 가면 또 안 맞아 버립니다. 인도 역사 속에서 있는 불교를 배우면 진리라고 하면서도 붓다 담마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급차별이 없다고 하신 이야기는 당시 인도 사람들이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남녀 차별이 없다는 이야기도 알아듣기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중간에 세상의 상식으로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계급차별이 없고 남녀차별이 없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예요. 중간에 인도에 맞도록 붓다 담마를 해석한 것은 지금 와서 안 맞는 거예요. 오히려 부처님이 가르쳤던 그것이 지금 시대에 맞는 거예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교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예요.nbspnbsp저는 붓다 담마가 얼마나 위대하냐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세상이 이렇게 점점 변해가면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이 과학의 시대, 우주의 시대에 맞는 종교는 불교 밖에 없다.” 그 불교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붓다 담마를 말하는 것입니다.nbspnbsp붓다 담마는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것과 조금 다릅니다. 믿음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있는 것처럼 작용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식 속에서 그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그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이냐 아니냐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nbspnbsp인도에서는 모든 것을 다 전생에 한 것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여기 두명이 싸우게 되면 전생에 원수였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하면 설명은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문화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것들을 믿는 사람은 그것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붓다 담마가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에 속합니다. 이것은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면 안되고 ‘아, 저 사람들은 저런 문화를 가지고 있구나’, ‘저런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nbspnbsp옛날에는 이런 문화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시대에는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남자가 되었고, 전생에 복을 적게 지어서 여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것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믿음으로써 이 시스템을 그대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전생에 죄를 지어서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장애인이다 할 때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다쳤거나, 유전인자적인 문제가 있거나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nbspnbsp몇 년 전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5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떤 기독교 목사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마는 무엇이냐? 미얀마에서 싸이클론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재산이 파괴가 되었다면, 비록 내 가족도 아니고 내 나라 사람들도 아니지만 그들이 이렇게 불행을 겪었을 때는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담마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과 담마는 다르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불교에도 담마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교가 인도에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힌두 문화를 받아들여서 섞였기 때문입니다. 또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국 문화와 섞이면서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와 또 다릅니다. 담마는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부처님도 인도의 전통문화 속에서 굉장히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세계화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우리는 그런 문화와 믿음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인도 문화와 담마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담마라는 것은 사실 그대로입니다. 불교인이 봐도 기독교인이 봐도 한국인이 봐도 인도인이 봐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한 것이 해결되었어요?”nbspnbsp“네”nbspnbsp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계속 이어져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자상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통역을 맡은 쁘리앙카님도 마치 스님의 입이 된 것처럼 통역을 잘해주어서 석가족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다들 기뻐했습니다. 스님께서 “너무 어렵지 않았어요?” 라고 묻자 “좋았어요. 사회와 연결되어서 생각할 수 있어 더 좋았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은 이런 불교를 어떻게 전파할 것인지를 의논해 봅시다”라고 하시면서 오늘 수련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수련을 마치고 절을 나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오늘 숙소인 미얀마 절로 왔고, 석가족들은 수련이 열렸던 인도 절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5시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수련을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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