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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30.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통일학교 제1강
nbsp nbsp 오늘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신 스님께서는 새벽 기도 후 5시 30분에 아침공양을 하시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탑곡으로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nbsp nbsp nbsp 작년에 봤을 때 약간 특이한 색깔의 진달래가 있었는데, 다시한번 그 진달래꽃을 관찰하기 위해 탑곡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탑곡으로 오는 시기가 늦어져 진달래꽃을 많이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가보니 온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분홍빛깔의 특이한 진달래꽃도 피어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예전에는 진달래꽃으로 꽃망방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오졌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직접 꽃송이가 많은 꽃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습니다. 요즘 우리가 보는 진달래는 꽃이 23개씩 달렸는데, 스님이 보여주신 진달래는 5개의 꽃이 한꺼번에 달려 있어 보기에도 훨씬 풍성해보였습니다. nbsp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탑곡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잠깐 들러 산소상태를 체크하신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nbsp 11시 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예전에 스님께서 가르친 제자분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현재 큰 회사의 사장님이신데, 스님께 인사도 드릴 겸, 또 강의 요청도 할 겸 찾아오셔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nbsp 그리고 지난번에 스님께서 민중미술가이며 설치미술가이신 임옥상 미술작가님이 하시는 ‘헌법을 다시 읽읍시다.’는 운동에 후원을 하신 적이 있는데, 임옥상 작가님께서 헌법 읽기 운동을 후원해주신 분들께 헌법을 새긴 종이병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직접 검은색과 흰색 종이에 헌법을 새겨서 병풍처럼 만든 것인데, 보기에도 너무 정성스럽고 감동스러워 보였습니다. nbsp nbsp nbsp 오후 2시부터는 서울 서초법당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제 1기 통일학교가 열렸습니다. 이날 강의는 사전에 접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집중 밀착 강의였습니다. 시작 30분 전부터 이미 많은 대중들이 속속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보통의 법회나 강의와는 다르게 법당에는 통일학교 학생을 위한 100여 개의 앉은뱅이 책상이 마련되어 벌써 ‘학교’의 분위기가 물씬 났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되고 기다려온 강의이기에 시작 전부터 조용한 가운데서도 기대감이 흘렀습니다. 통일의병학교는 오늘 입학을 시작으로 마지막 역사기행까지 총 6강으로 진행이 됩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의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의병이 무엇입니까? 의병은 관병에 반대되는 말, 즉 정규군이나 직업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하므로 보통 민병이라고도 부릅니다. 의병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이후의 용어고 그 전에는 주로 민병이라고 썼습니다. 의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은 다물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 말기에 중국에서 한군이 고조선을 침략했는데 이것이 단군 조선 이래 최초의 외세침략일 겁니다. 이때 관병이 전쟁에서 지고 나라가 망하니까 관병이 해체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애국심이 강한 민간인들이 스스로 일어나서 한사군에 대항하며 ‘한군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고 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자, 우리 조국을 되찾자’는 민병운동이 일어납니다. 이게 다물군입니다. nbsp 다물군에 참여해 그것을 계승한 사람이 고주몽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건국이념이 다물사상이예요. 그냥 나라 하나를 세우는 게 목적이 아니고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자는 큰 원을 가지고 시작이 된 거에요. 때문에 고구려는 고조선을 이어서 동북아 대륙에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 후에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민병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의병이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해서 1차 의병봉기, 2차 의병봉기가 있었고 이 의병운동을 계승해서 나라 밖에서 독립군이 조직됐습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정의로운 뜻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산을 다 바쳐 헌신했지요. 이를 일컬어 의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nbsp 그러므로 의병은 첫째,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어난 사람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꼭 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무기도 식량도 의복도 자기가 알아서 구해야 돼요. 다만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두 가지 이유를 위해. 그래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와 백성이 고통 받을 때 의병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의병은 반군하고는 달라요. 반군은 나라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 임금을 갈아치우고자 일어나서 관군과 싸우지요. 그러니까 의로운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을 잡으면 보상이 따르죠. nbsp 그러나 의병은 반군이 아니에요 정부군과 싸우는 게 아니에요. 제 역할을 못한 나라, 그 관군을 도와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의병은 실패하면 목숨도, 재산도 다 잃습니다. 비난도 받습니다. 그러나 관군은 죽으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든지 인정을 받습니다. 그럼 성공을 하면 어떠냐. 관군은 출세를 합니다. 반군은 권력을 잡으니까 이 또한 이득을 얻죠. 근데 의병은 승리해도 아무 얻는 게 없어요. 자기 본래 직업으로 돌아가야 해요. 때로는 관군으로부터 공로에 대해서 시기, 질투를 받고 모함을 받아 오히려 희생이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관병하기가 제일 쉽고 두 번째 반군은 위험도 따르지만 잘하면 보상을 받는데, 의병하기가 제일 어려운 겁니다. nbsp nbsp nbsp 그러니까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정의로운 생각으로 나서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한다면 의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데서 의병의 성격이 규정됩니다. 비전문적이고, 자발적이며, 자급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성공하면 자기 직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병은 관군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의병이 관군에 아무리 지극히 협력을 하더라도, 관군은 의병을 달가워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오히려 사지로 내몰기도 합니다. 의병은 처음부터 이런 걸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알고, 여러분들이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의병이라는 용어가 부담스럽다고 바꾸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성격상 의병이라는 말이 가장 맞아요.” nbsp 스님의 재치 있는 설명에 간간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강연은 어느 때보다 숙연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됐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왜 지금 이때 통일의병이냐?”는 질문을 던지시며 강연을 이어가셨습니다. nbsp “의병이라는 것은 백성이 처한 고통을 해결하고자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큰 어려움, 국민의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분단에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통일의병이 일어납니다. 마치 일제 식민지배가 그 당시 백성이 처한 가장 큰 고통이라는 인식에서 항일독립의병이 일어났듯이, 분단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이 있어야 통일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nbsp 그런데 그런 인식이 없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65279. 하나는 이해관계, 즉 같은 백성이라 하더라도 외세의 침략에 큰 손실을 보는 집단이 있는 반면, 오히려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어요. 이익을 보는 집단에서는 외세의 지배를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두 번째는 식민지배가 많은 불이익이 있어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 고통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nbsp 예나 지금이나 모든 국민이 이런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들 자기 사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출발할 때는 올바르게 인식한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거병을 해서 그들의 주장이 세상에 알려지고, 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하면 대중 참여가 이뤄지기는 어렵습니다. 일정한 성과가 있어서 가능성이 열리면 대중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거기까지 만드는 게 사실 제일 힘들어요. 가능성 있는 데까지 끌어올리는 데 열정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거기까지 만들어가야 합니다. nbsp 그럼 통일에 있어 관군은 누구일까. 첫째 정부, 그중에서도 통일부가 대표적이죠. 국방부도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이런 주체들이 관군이라 할 수 있죠. 관군을 지원하는 통일연구원이나 민주평통 같은 준 관군도 있습니다. 이런 관군이 통일을 추진하는데 역부족이라면 밀어줘야 하고, 추진할 생각이 없다면 비판을 해야겠죠. nbsp 옛날 같으면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임금이 안하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민이 주인이니까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면, 정부를 비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하면 반군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걱정이 그겁니다. 아닙니다. 민주국가에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교체하는 것을 반군이라고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지금은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에 맞지 않게 정부가 운영되거나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요구하고 또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구성하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병의 역할입니다.” nbsp 참가자들은 스님의 한 말씀, 말씀마다 깊이 호응하면서 높은 집중력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그렇다면 “지금 국민의 가장 큰 고통이 과연 분단 때문인가 검토해보자”고 하셨습니다. 크게 국내요인과 국제요인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정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우리를 둘러싼 역학관계, 즉 힘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어 통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nbsp 현재 국제정치 역학을 설명하기 전에, 분단 70년의 역사를 먼저 짚어주셨는데, 지난 1945년 전후로 국제 정치의 역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에 따라 왜 우리가 이런 분단 상황을 맞게 됐는지 설명해주셨는데, 정말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학교에서 1945년 전후의 세계사와 국내 상황을 배울 때는 세력의 충돌과 계파가 하도 많아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스님 설명 덕분에 통시적으로 그러면서도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nbsp “1945년 이전은 어땠냐.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시대였고, 우리는 그에 저항했지만 힘이 못 미쳐서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어요. 일본제국주의와 적대관계로 대항하고 있던 것은 연합군이었습니다. 연합군의 주축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작게는 중국도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패망하면서 국제 질서는 연합군으로 함께 활동하던 미국과 소련이 양대 세력이 된 거예요. 당시 중국은 항일을 하던 세력이 둘이었는데,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었습니다. 이 둘도 경쟁관계에 돌입하게 됩니다. 일본이 패망하자, 한반도는 전후처리를 두고 연합국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nbsp 남측은 미국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북측은 소련의 후원을 받는 세력이 장악하게 되죠. 우리로서는 상해임시정부가 정통인데, 이미 들어와 있는 미국이나 소련으로서는 자기네들이 후원하는 세력이 주도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임정요원들은 남북 양쪽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nbsp 그런데 당시 미국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국제 여론은 인민해방의 기치를 걸었던 소비에트가 더 컸어요. 봉건제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개혁, 혁명, 즉 민족해방이든 계급해방이든 여성해방이든 토지개혁이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명분 면에서 훨씬 앞섰던 거죠. 또,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도 한반도의 지형지세로 보면, 중국 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에 참여한 사람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드나들며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도 한반도와 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은 소비에트가 자기 세력을 형성하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남에서 자기 세력을 형성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미국이 후원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무장투쟁을 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미국은 남한 내에서 주도를 잡는데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미국이 미국에서 공부한 소수의 사람으로 중심을 세우면서 다수의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에 이런데서 남한 안에는 사회적 갈등이 많이 생겼습니다. nbsp nbsp nbsp 북한은 이런 남한 내부 정세를 보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통일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전쟁을 일으켰죠. 사실 이 판단은 비교적 정확해서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내부 정세는 정확했지만, 국제정세를 오판했습니다. 국제정세 측면에서 보면 당시 미소경쟁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최대 세력이었고, 미국이 용납을 안 하니까 UN에서 침략으로 규정받고 미국을 비롯한 UN군이 참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nbsp 미국의 참전으로 당장 전세가 뒤바뀌어서 이북으로 막 밀고 올라가니까 이번에는 중국이 나섭니다. 38선 위로 올라오면 자기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것이지요. 당시 중국은 1949년도에 국·공 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고 겨우 공산정부를 수립했는데 미군이 올라오니까 자기들 체제가 위태롭다고 보지 않았겠어요? 평양까지 올라가니까, 이것은 우리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하고는 100만군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 말로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참여한 것이지요. nbsp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시간은 흐르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는 어려울 것 같으니 1953년에 휴전협정을 맺습니다. 그 전에는 북한에도 북한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 남한에도 남한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각 진영내 반대세력은 모두 말살되다시피 합니다. nbsp 미국은 점점 초강대국이 되니 미국이 후원하는 한국은 점점 발전하고, 반대로 북한은 소련의 세력이 축소되는데다, 소련과 중국이 싸우면서 주체경제를 내세웠지만 경제가 점점 취약해집니다. 처음에는 북쪽이 우세했지만 점점 남쪽이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70년대 들어 남북한 양쪽의 세력이 비슷해지면서 이제는 누구도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흡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자각이 생기면서 탄생한 게 7.4 남북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세력판도가 급속도로 바뀌게 됩니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이 해체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죠.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니 안보가 튼튼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더욱 성장해갑니다. 북한은 공산진영 자체가 붕괴되니 판로가 없어지고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자본주의 사회와는 차단돼 있어 급속히 경제가 추락합니다. nbsp nbsp nbsp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다시 일어났지만 체제의 성격이 바뀌었죠. 정치는 사회주의라지만 경제는 시장경제로 바뀌어, 북한과 정치적으로 안 맞아서 북중 사이에 갈등이 심화됩니다. 이러니까 북한은 더욱 체제붕괴위험에 몰리게 됩니다. 경제를 회복할 가능성도 없고 안보가 불안하니까 핵을 개발하는 쪽으로 가죠.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 6.15 공동선언이 일어납니다. ‘남북한이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상호협력하자.’ 이렇게 됩니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국내 변화는 국제 변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nbsp 스님 말씀 덕분에 우리나라가 국제정치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미국과 함께 이른바 ‘G2’ 시대에 돌입하면서 또 다시 달라졌습니다. 남한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20년 전에 한중수교를 맺은 바 있습니다.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제적으로 대중의존도도 급격히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한중교역액이 한미와 한일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1.5배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나 안보적으로는 여전히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즉 경제로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안보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스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려말 ‘원청 교체기’와 조선 중기 ‘명청교체기’, 그리고 구한말 ‘청일교체기’와 비교하면서, 그 시점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설명해주셨습니다. nbsp “우리는 늘 대륙세력의 교체기에 우리끼리 싸웠습니다. 명나라와 원나라가 교체되던 시기에 고려말 기득권 세력은 원나라를 지지하고 신진세력은 명나라를 선택해서 이성계의 반정으로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그러면서 명나라에 자발적으로 사대주의를 선택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에는 어떻습니까?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이유로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아서 두 번의 침략을 받고 결국은 패해서 속국이 돼버렸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을 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구한말에는 청의 지배를 받던 시기였는데 일본이 부상하니까 다시 우리나라에서 각축이 벌어졌습니다. 주변세력을 등에 업고 우리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결국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nbsp 일제 강점기말에는 일본이 주변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해버렸습니다. 만약 일본이 어느 한 나라와 싸워서 망했다면, 또 그 나라의 속국이 됐을지 모르지만, 연합군과 싸우다가 망하니까 그 연합국이 후원했던 세력이 제각각이라 우리 내부에서 또 여러 갈래로 분열하게 된 것입니다.” nbsp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우리는 역사의 중요 고비마다 내부 분열 때문에 미래를 안전하게 선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전쟁위기와 참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민족은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동안 주변 강대국에 좌우되는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그것이 지금껏 유지돼왔다”며 지금도 마찬가지임을 짚어주셨습니다. nbsp “중국이 부상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중국이 완전히 뜨는 해가 될지, 아니면 뜨다가 가라앉을지, 미국이 예측대로 서서히 가라앉을지, 아니면 다시 부상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 정부는 아직도 중국에 고개 숙이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 정부가 굉장히 문제가 많은 정부이지만, 통일의 시각에서 보면 아직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북한 정부가 얼마 못 버티고 중국에 고개를 숙이면, 통일은 더 어려워집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통일 후의 전망에 대해서도 잠깐 말씀해주셨습니다. 통일을 하면 저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을 수 있고, 동아시아의 통합과 평화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우리였습니다. nbsp “통일된 한국이 미국에 붙을지, 중국에 붙을지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달라집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남북한이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통일을 하려면 어때요? 우리의 통일이 너희 두 나라에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통일을 하겠다고 우리가 마음을 똘똘 뭉쳐도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우리 내부가 분열돼있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본다면 90는 계속 분단상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nbsp 우리 개인적인 삶은 어때요? 우리 까르마를 보면 대충 미래가 예측되잖아요? 우리 업식도 바꾸기가 굉장히 어렵죠. 그래도 한 번 바꿔보자는 것이 수행아닙니까? 가만히 있어도 성불할 바에야 우리가 뭣 하러 수행하겠습니까?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거죠.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통일이 된다면 뭣 하러 노력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냥두면 안 되니까 우리가 나서서 ㅂㅏ꾸어 보자는 겁니다. nbsp 통일만이 전쟁의 위험을 막는 항구적 평화요,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발해 멸망 이후 천년 넘게 주변국으로 전락해서 늘 우리의 운명이 주변 강대국의 운명에 좌우되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즉 통일은 우리 민족이 천년의 한을 푸는 일이고, 천년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의병으로 일어나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부담이 아니라 큰 은혜요, 혜택을 입은 거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nbsp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옛날에 왕이 주인이던 시대의 백성 의식이 있어서 ‘주인들이 안 하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제 ‘국민이 주인이니,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통일의병이 되어 통일운동을 한번 일으켜보자는 것입니다. 정토회 창립의 꿈이 하나는 불교중흥이고, 하나는 민족중흥인데, 민족중흥의 핵심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해서 천년의 한을 풀어 천년의 꿈을 실현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시도해볼 때가 왔습니다.” nbsp nbsp nbsp 의병이 무엇인지 의미를 규정하면서 시작했던 첫 강의는, 이렇게 우리가 왜 통일의병이 되어야 하는지 당부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2시간여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첫 강의는 우리에게 ‘천년의 꿈’을 되살려주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누구랄 것 없이 한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토회 김은숙 행정처장의 입학 환영 인사가 이어졌는데,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김은숙 처장은 “이젠 정말 통일을 이룰 시간과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린다”며 감동받은 소감을 나눠주었습니다. nbsp nbsp nbsp “통일의병, 하자, 하자, 하자”라는 구호 선창에 따라 힘차게 외치며 사진기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새내기 ‘의병’들의 모습을 보니, 그 어떤 장애와 곤란이 오더라도 희망하는 이가 있는 한 꿈은 꼭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병 정신으로 우리부터 똘똘 뭉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nbsp 강의 후 스님께서는 앞으로 5일동안 계속 진행되는 통일학교 강의를 위해 강의내용을 정리하시는 등 서울정토회관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nbsp 내일은 아침 7시에 기획위회의, 통일학교 제2강,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2015.3.29. 수도권 가을불교대 특강, 서울공동체 봄 나들이
nbsp nbsp nbsp 어제 청년학교 마치고 문경수련원에 도착하니 새벽 12시 40분경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방에서 새벽예불을 드리고 5시에 간단히 아침공양을 한 후 새벽 6시부터 있을 2015년 가을불교대학 수도권지역 특강을 위해 대수련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늘 특강은 불대생들이 그동안 불교대학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궁금한 것들을 스님께 물어보는 즉문즉설로 진행되었습니다. 불대생들이 미리 적어 낸 질문지를 보고 스님께서 답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던 학생들은 이른 새벽이지만 가르침을 받고자 똘망똘망한 눈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먼저 서두에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들과 함께 수련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예요. 수련장에서 불편을 느낄 때 불편에 빠지지 말고 습관성에서 오는 불편임을 알고 직접 경험을 통하여 습관을 바꾸면 매사가 좋아집니다.”는 말씀으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함으로서 오는 불편함을 잘 살펴보도록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강은 한학기 동안 공부하면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시간이니 주로 불대에서 배운 것을 중심으로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하다보니 전체 학습에 대한 질문보다는 근래에 배운 것에 대한 내용, 특히 근본불교사상에 대한 질문이 많아요. 그리고 새벽부터 수업을 하니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지금 좀 졸릴 때니 졸리는 사람은 앉아서 졸지 말고 자리에서 서서 들으세요. 한명 서고 두 명 서고, 열 명 서고, 오십 명이 서면 휴식시간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가볍게 웃으시며 첫 질문을 읽으셨습니다. nbsp nbsp Q. “희망편지로 희망을 만나고 정토회를 만나 희망을 갖고 살고 있고 제 인생을 다르게 살게 해주신 은혜로 길게 수행·보시·봉사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제 질문은 중도가 무엇인지, 마음을 절제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고 하면 기쁨,슬픔,분노를 돌이키고 알아차리면 된다면 중도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꼭 중도의 삶을 사는 건지 헷갈립니다. ” nbsp 스님께서는 “수업 시간을 제대로 안 들은 거 같아요. 불교사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또, 들어도 들어도 이해가 어려운 것 중 첫째가 중도, 둘째가 무아, 셋째가 연기입니다. 이 3가지는 이치가 힘든 건 아니에요. 이치는 아주 간단해요.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런데도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중도적으로 생활을 안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런 것들을 경험해본 바가 없어요. 늘 치우쳐서 생각하고 생활했기 때문에 이게 뭘 의미하는지 들을 때는 알겠는데, 지나고 나면 금방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도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즉,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제 3의 길이 중도라는 것입니다.”라고 하시고는 대중들이 중도를 익히 알 수 있도록 따라 해보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한번 따라 해보세요. 뭐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대중들은 스님의 말씀에 따라 신나게 따라 합니다. nbsp “제1의 길 쾌락, 제 2의 길 고행, 제 3의 길 중도, 이렇게 말합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줄을 매달아 놓고 줄타기하는 사람이 그 줄을 딛고 건너갑니다. 그러면 이치로 설명할 때 줄타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왼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가면 돼요. 쉽죠? 그런데 자기가 직접 올라가서 해보면 될까요? 왼쪽으로 치우치든, 오른쪽으로 치우치든 떨어지겠죠. 그러면 ‘이거는 몇 번 해보니까 안 된다, 이건 불가능한 거야. 말도 안 돼.’라고 하는데 실제로 불가능한 것일까요? 내가 안 되는 거지 이치로는 가능한 거예요. 그러면 이치로는 가능한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면 이 갭을 어떻게 맞추느냐? 연습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분이 또는 여러분들이 줄타기를 하면서 떨어지면 또 하고, 또 떨어지고, 이렇게 몇 번쯤 연습하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최소 만 번 이상은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 해보고 난 안된다. 열 번 해보고 ‘아, 난 줄타기가 안 돼.’ 그러면 이사람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에요? 욕심쟁이에요? 만 번 해야 되는 걸 다섯 번, 열 번 해서 안된다고 포기합니다. 좌절과 절망은 해봐도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nbsp nbsp nbsp 그래서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될 때까지 꾸준히 하는 걸 정진이라고 합니다. 되고 안 되고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돼도 하고 안 돼도 하고. 그렇게 꾸준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참회 기도할 때 절을 하고 싶어도, 절이 하기 싫어도, 절을 하면 다리가 아파도, 다리가 안 아파도, 꾸준히 하는 걸 정진 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중도는 이렇게 경험을 해야 합니다. nbsp 그러면 제 1의 길, 쾌락이란 건 뭘까요? 쾌락이란 건 철학적 용어이지 생활용어가 아닙니다. 술 먹고, 영화보고, 놀고 이런 걸 쾌락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뭔가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욕구는 삶의 동력입니다. 그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욕구를 채워주고 충족시키면 정신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것을 즐거움이라하고 그게 충족이 안 되고 뜻대로 안되면 기분이 나빠지는데 그것을 괴로움이라 합니다. 이걸 한문으로 ‘즐거움은 락, 괴로움은 고.’라고 합니다. nbsp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때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끝이 나나요? 오히려 욕구가 좀 더 커집니다. 그 다음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히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노력을 하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고와 락이 늘 이렇게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고락이 되풀이 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nbsp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개 되고, 말 되고 하는 이것도 윤회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전통 민간사상인 힌두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nbsp nbsp nbsp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고락이 똑같이 50, 50로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떨 때는 고가 70, 락이 30일 때도 있고, 락의 비중이 점점 많아져서 거의 100에 근접하면 락이 지극히 많다고 해서 극락이라고 합니다. 고가 점점 많아져서 고가 지극히 많아지면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가 많아져도 고만 100프로가 될까요? 거기에 락도 조금 있을까요? 아무리 락이 많아도 거기 락이 100프로가 될까요? 고도 조금 있을까요? 그래서 고락은 떨어질 수가 없이 돌고도는 것입니다. nbsp 우리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는 없어지고 락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락이 되풀이 되는 이 사슬, 쳇바퀴처럼 얽혀진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 해탈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고락이 윤회하는 세계 안에서 고와 락을 분리시켜서 고는 없고, 락만 있으면 좋겠다는 이런 허황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복을 구하는 윤회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nbsp 욕구가 있으면 욕구가 충족이 돼야 즐거움이 생기니까 중생은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좀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복을 구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복을 구하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천당 가는 게 목표이고 이것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불교의 ㅂ자도 모르는 것입니다. nbsp 사람은 욕구가 일어나면 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 해서 일어나는 기분 좋음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하는 것이 쾌락주의가 아니고 욕구를 충족시켜서 일어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라고 쾌락주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신 후 불대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다시 예를 들어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nbsp “예를 들어, ‘누가 나한테 100만원만 줬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100만원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 다음달에도 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그 기분 좋음이 계속 늘어날까요? 똑같을까요? 줄어들까요? nbsp nbsp nbsp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하면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 귀찮아지고, ‘그냥 통장으로 넣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통장으로 10년째 100만원이 들어오면 감각이 있을까요? 아무 감각이 없어집니다. 이 기분좋음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0만원 들어오고, 그 다음에 200만원 들어오고, 300만원, 500만원 점점 늘어나야 합니다. 마약과 똑같습니다. 기분 좋음을 유지하거나, 기분 좋음을 점점 높이려면, 마약 투여량을 늘여야 합니다. 나중에는 한달치 한꺼번에 맞아도 별로예요. 그래서 마약과 똑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먹는 것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는 종류를 따지지 않고 배만 불렀으면 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먹을 게 주어지면 맛있는 것을 따지게 됩니다. 맛있는 것만 따지나요? 영양도 따지고, 어느 그릇에 담았는지도 따지게 됩니다. nbspnbsp 이처럼 욕구를 따라가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치로 알아지나요? 대답이 신통찮네요. nbsp nbsp 욕구, 욕망이라는 것은 용납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아예 용납을 안 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것도 씨를 말려야 합니다.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자고 싶어도 안 자고, 가고 싶어도 안 가고. 더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에 필요한 먹는 것까지 부처님께서는 안 먹었잖아요. 잠도 안 자고, 목욕도 안 하고 그래서 아무리 작은 어떤 욕구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철학적으로 고행주의라고 합니다. nbsp 꼭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고 하는 것이 고행이 아니라 욕구를 참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고행주의이고, 욕구 따라가서 해결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nbsp 부처님은 29살 출가하기 전까지 쾌락주의를 따랐습니다. 이건 기존의 길이었고, 세속의 길이었습니다. 출가 이후에는 이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까 고행주의자의 길, 잠도 들에서 자고, 콩 한알만을 먹기도 하고, 그렇게 6년을 했는데 해결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뭐가 문제일까?’고민하며 자기 삶을 돌아봤더니 지금 이야기한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nbsp 출가하기 전에는 욕망을 쫓아갔고, 출가한 후에는 욕망을 억제했던 것입니다. 둘 다 심리가 편안한 상태가 안돼요. 욕망을 따르는 것은 욕망을 수용하는 것이고, 억제하는 것은 욕망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둘 다 욕망의 노예입니다. 욕망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욕망을 참는 것도 욕망의 노예인 것입니다. nbsp 여기서 제 3의 길은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욕구가 있는데 욕구에 대응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즉, 이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간다는 것입니다. 다만 욕구를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처럼 중도는 욕구를 따르지 않고, 욕구를 알아차리고, 욕구를 지켜보는 것입니다.”라며 현실적인 문제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시니 중도가 좀 더 명확하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nbsp nbsp nbsp 그 외에도 무아, 윤회에 대한 질문, 계급타파를 위해 부처님은 어떤 실천을 하셨는지, 통일의병 양성, 북한에 정토행자 만들기등의 계획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부처님은 열반후에 극락에 계시는지 궁금해 하는 질문, 욕구와 집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달라는 분,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살행이 오히려 자본주의 더 강화시키는게 아닌지 궁금해 하는 질문, 내가 없다는 것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모순 되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연기법이 진리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의 실체가 공하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질문,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 다겁생래 지은 업장이라는 말에는 나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 하는 질문, 부처님의 신통력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 기독교의 유일신과 불교에서도 부처님만을 모시고 태어난 곳, 설법하신곳등을 순례하고 성도제일을 기념하는 것이 비슷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천주교 신자분, 불교의 많은 부처와 보살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중도에 대해 실제로 본인이 고민되는 질문을 하신 분등 다양한 질문들도 이어졌습니다. nbsp 약 3시간 30분동안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해주시고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서울공동체 대중들 20여 명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미리 약속을 해둔 터였습니다. 서울공동체 상주자들은 전날 두북수련원에서 자고, 오늘 아침엔 나물 캐기와 연등 울력을 하고, 또 일부는 저녁 식사 준비 등을 미리 해두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거의 주말마다 경주에 오시는 일정이신데, 올해부터는 서울 공동체 성원들도 두북수련원에서 울력을 하거나 짬짬이 스님과 일정을 함께 보내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다음 주에는 청년정토회 평지순례가 있고, 그 다음 주에는 불교대생들의 남산 순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은 업무 때문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4월 한 달 동안엔 가급적 주말마다 두북수련원에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업무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심신을 새롭게 하고, 활력을 키워보자는 스님의 제안이십니다. nbsp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아주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남산 산행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아무리 ‘가볍게’라고 하셨지만, 이미 정토회에서 수십 년 장판 때를 묻히고 살아온 노회한 공동체 식구들은 압니다. 그렇게 만만한 산행이 아니라는 것을요. 역시나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장장 4시간의 시간이 잡혀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은 각자 물병과 모자, 등산화 등을 단단히 챙기고 나섰습니다. nbsp nbsp nbsp 경주 남산 부처바위골로 올라 탑곡 마애여래상군을 참배하는 것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바위에는 삼존불과 독립된 불상, 본존과 보살상, 7구의 비천상, 그리고 9층목탑과 7층 목탑이 남면, 동면, 북면 등에 멋지게 새겨있습니다. 마모되기도 해서 찾아보기 힘든 그림도 있지만, 그만큼의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어 그 앞에 서면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nbsp nbsp 어딜 가나 늘 스님께서 먼저 설명하곤 하시는데, 갑자기 묘덕법사님더러 설명해보라 하십니다. 다다음주에 있을 불대생 남산순례에서 이곳은 묘덕법사님이 담당하게 되는 코스라고 합니다. 묘덕법사님이 약간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공동체 대중들은 “법사님, 설명이 너무 짧아요. 좀 더 길게요. ”, “법사님 공부하시라고 일부러 스님이 여기로 오자고 하셨나 봐요” 등 그저 법사님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봅니다. nbsp 부처바위의 부처님들께 참배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아픈 환자들도 몇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오늘 죽기 살기로 한 번 가보자”며 격려하신 터여서 나름 각오를 다지는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가장 팔팔해야 할 스물 두 살 풋풋한 대학생 친구가 어쩐지 비틀비틀합니다. 스님의 ‘가벼운’ 산책을 곧이곧대로 듣고, 운동화를 신고 온지라 아직 낙엽이 쌓여있는 길이 미끄럽기도 합니다. 나이든 실무자들은 “다음부터는 아무리 스님께서 가볍게 산책하자고 하셔도 중장비를 갖추고 떠나야 한다”며 실실 웃으며 한 마디씩 던집니다. 중장비라고 해봤자 바닥이 덜 미끄러운 등산화를 이르는 말이지만요. nbsp 그런데 실제로 예전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산행이었습니다. 오르막길을 최소화하고, 아주 평평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중간 중간 자주 쉬기도 하셨습니다. nbsp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산에 다닐 수 있을까? 최장으로 잡아도 한 십년쯤 될까? 아니면 5년 정도가 최대로 잡은 것이지 않을까?” nbsp nbsp 누구도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집니다. 우리 스님은 안 늙으시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게나 좋아하시는 산행인데 못할 때를 꼽아보신다니, 이제 스님도 세월의 흐름을 의식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과 함께 산행을 못할 때가 언젠가 오긴 하겠지만, 오늘은 그저 봄날의 축복을 만끽해봅니다.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가 산허리 둘레둘레 어디나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키 큰 진달래나무들이 넝쿨을 이뤄 꽃 동굴을 만들어놓은 곳도 많았습니다. 아직 꽃봉오리가 활짝 피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34일이면 온천지 사방에 꽃 동굴들이 만들어져 장관을 이룰 것 같습니다. nbsp 스님 뒤를 종종 따라가면서 여쭤보았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도 여기 남산에서 못 가본 곳이 있으신가요?” nbsp 안 가본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딱 한 군데 못 가봤다고 하십니다. 아시겠지만 경주 남산에는 약 40여 개의 골짜기가 있지요. 122개의 절터와 57개의 석불, 64개의 석탑 등 불교 유적지가 곳곳에 있고, 수많은 산길이 있어 답사코스만 70여개에 달한다고 하지요. nbsp “비파골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는 유적지가 별로 없어서 지금껏 가보지를 못했어. 전설은 있지. 무슨 전설이냐면, 옛날 신라시대에 어느 왕이 무슨 낙성식에 참석을 했는데 아주 행색이 남루한 스님이 찾아왔다는 거야. 사람들이 문전박대를 했겠지. 스님이 그래도 왕께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하니까 왕이 뭐 허락을 하기는 했는데 ‘어디 가서 왕이 함께 한 불사에 참석했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대. 그러니까 그 스님이 왕한테 ‘왕께서도 어디 가서 진신석가를 친견했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하고는 구름 위로 사라져버렸다는 거야. 왕이 부랴부랴 그 스님을 따라가 보라고 시켰는데, 신하들이 거기 비파골까지 가보니까 스님은 온데간데없고 발우가 떡 하니 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부처님이 없다고 해서 불무사라고 이름을 짓고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는 전설이 있어. 그런데 거기를 내가 못 가봤어.” nbsp nbsp 아마 머지않아 그곳에도 가볼 날이 있으시겠지요. 봉화대를 지나 칠불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에서 숨고르기를 한 뒤 하산 길을 잡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새갓골 석불좌상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사실 스님께서 보여주고 싶어 하신 부처님은 석불좌상이 아니라, 그 옆에 보호막이 쳐있는 마애불입상이었습니다. 입상이었다는데 무슨 연유인지 부처님 얼굴이 땅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엎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옆모습이 정말 예술입니다. 눈과 코, 얼굴 옆선이 마치 그리스 조각상처럼 아주 뚜렷하고 부드러우며 우아합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되면 아름다운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nbsp 그런데 워낙 무너진 바위의 크기가 거대해서 복구 작업이 만만치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길이 또 진달래꽃들로 장관입니다. “여기는 남 남산이라고 해. 남산의 남쪽이라는 말인데, 그러니까 봐라, 진달래꽃들이 여기는 더 활짝 폈잖으냐. 저기도 봐라. 저 진달래꽃은 나무가 아주 훌륭하네. 저쪽 옆에도 봐라. 저 멀리도 봐라. 다 진달래꽃들이잖으냐.” 스님께서는 여기, 저기 사방팔방 손으로 진달래꽃을 가리키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십니다. nbsp 차량 운전자들은 산행 중간에 내려가 차를 미리 하산 지점에 대기해놓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얼른 올라갔다 와봐라. 조금만 올라가면 진달래꽃들이 아주 멋지다”며 꽃구경을 하라고 권유하십니다. 몸은 어느덧 노곤해졌지만, 스님 뒤를 열심히 따라나선 덕분에 진달래 삼매경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산에서 스승님과 또 한 편의 소중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서울 공동체 대중들도 진달래꽃을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nbsp nbsp 남산을 내려와서는 다함께 목욕을 하고 두북수련원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스님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각자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논의할 것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nbsp 먼저 문화사업부부터 이번에 나오게 될 스님 책과 관련해서 책제목부터 언제쯤 어떤형식으로 나올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기도 하였고, 평화재단 교육원과는 다음에 있을 평화리더십 경주역사기행과 관련하여 숙소등을 답사한 것을 가지고 어떤 숙소로 할 것인지등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nbsp 또, 4월 마지막주에 한국을 방문할 필리핀 송코 마을 사람들의 한국일정과 숙소, 차량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부서들이 스님과 함께 고민되는 것들을 논의하였습니다. nbsp 오늘 모임은 다들 산행후 피곤할 것을 감안해서 9시 30분경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11시 30분에 평화재단에서 모임이 있으셔서 아침 7시에 모두 함께 출발하자고 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2015.3.28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의, 청년학교 행복특강
nbsp 스님께서는 오늘 오전 9시부터 예정된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강연을 위해 입학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는 용인의 대웅경영개발원으로 울산 두북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셨습니다. 이틀 전 목요일에 입학식을 마친 12기 평리아 수강생들은 잠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1박 2일 워크숍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내서인지 서로 친해져서 다음 날 아침, 모두 환한 표정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nbsp nbsp nbsp 진정 성공한 삶을 꿈꾼다는 주제로 가볍고 유쾌하게 시작된 강의는 2시간 동안 이어졌지만, 전날 새벽까지의 늦은 일정에 피곤할법한데 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웃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필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이 이뤄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nbsp “우리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이 뭘까요? 어떤 상태를 행복하다고 볼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를 잘 살피면 어떻게 심리가 작용하는지 알아야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분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음이 일어날 때를 살펴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분은 욕구의 충족과 불충족이라는 것에 따라 좋고 나쁘게 반응하고, 이렇게 좋고 나쁨을 반복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괴로움과 즐거움 이 둘을 분리시켜 즐거움만이 있는 인생을 꿈꿉니다. 그러나 고락이 함께 윤회하기 때문에, 고락의 윤회로부터 벗어나려면 ‘락’이 곧 ‘고’임을 알아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인생은 ‘고락’인데, ‘락’이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입니다. ‘락’이 곧 ‘고’임을 꿰뚫어 알아야합니다. nbsp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생에서 늘 재미를 쫓아 살고 있습니다. 그 재미란 것도 지나고 보면 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즉 재미를 쫓아서 하다보면 지금은 ‘락’인데, 나중에 ‘고’가 되는 일이 있는 반면에, 일할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놓고 보면 보람으로 다가오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좋게 평가되는 것이 나중에 달리 나쁘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nbsp 예를 들어 저는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구슬치기를 했습니다. 구슬치기를 해서 딴 구슬을 모아서 집에 항아리에 보물처럼 가득 채워놓았는데, 지금은 그 구슬들이 어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슬은 그때는 소중했는데 지금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어렸을 때 구슬 같은 것이 뭘까요? 이처럼 지나놓고 보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nbsp nbsp nbsp 여러분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믿었던 것들이 10년, 20년이 지나서 돌아보면 오히려 실패임을 느낄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20대 초반에 고시에 합격해서 성공일로를 달리던 검사가 8·15 해방되던 날 갑자기 친일매국노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린 사례를 보면, 이 사람의 삶은 윤리, 법률, 신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개인의 삶과 시대적 과제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 됐습니다. 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일원으로써 국민 전체가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과제가 무엇인지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nbsp 그러면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앞으로 12주 동안 전문가들의 강의 내용도 듣고, 각기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30여명이 서로 토론을 하면서 어떤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과제인지 알아보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함께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라는 당부의 말씀을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서서 지친 기색도 없이 물 흐르는 듯 한 강연을 마치시고 질의응답에 답변을 해주시고 수강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마친 후에 떠나셨습니다. nbsp 다음 일정은 경기도 여주에서 열리는 평화재단 청년포럼 주최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5기 첫걸음 워크숍’ 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청년들을 위한 행복특강을 해주기로 하셨습니다. 일정이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관계로, 스님께서는 중간에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양지IC 근방, 백암 지역 쪽에 수련원 부지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청주에도 조그마한 부지가 있어서 둘러보시고 난 후 여주 행사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nbsp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스님께서는 담당자인 평화재단 청년포럼 오태양 국장과 청년학교 교장인 최광수 교수님을 만나 잠시 이번 행사에 대해 말씀을 나눈 뒤 시간이 될 때까지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는 전국의 2030대 청년들이 8주 동안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인생관과 사회관, 시대관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이날은 특별히 새벽 일찍부터 전국 38개 지역에서 속속 모여들어 총 366명이나 참석했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 강연장에 들어서시자, 청년들이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단상에 오르신 뒤 “저녁은 잘 먹었느냐?”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얼마 전 필리핀, 라오스, 인도 등을 다녀오셨는데, 남방불교에서 스님들은 오후 불식을 한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오후에 식사를 안 하고 계시는데, “내가 안 먹었으니 여러분도 안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가볍게 농담을 하시면서 “듣자하니 오늘 오기로 한 청년들 중에 새벽에 못 일어나서 30명이 못 왔다고 하는데, 초등학생들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새벽부터 먼 길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풀어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개인의 고민을 많은 대중들 앞에서 얘기하라고 하면 부담을 느끼니, 그 전에 스님 근황부터 얘기해주겠노라며 말문을 터주셨습니다. 최근 인도에 다녀온 말씀을 해주셨는데, 사실 이번에 스님께서 둥게스와리 지역 15개 불가촉천민마을 1430집을 한 집, 한 집 다 방문하면서 마을의 앞으로의 발전계획을 세웠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nbsp각 마을을 방문하실때 nbsp청년 자원봉사자 몇몇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하셨답니다. 40년 넘게 자전거를 안 타보시다가 이번에 장장 80km를 주파하셨는데, 그 뒤 며칠 동안 골반이 아파서 몹시 힘들더라는 말씀도 재밌게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앞을 보고 해야 해요. 지금 당장 요청되는 일이라도 10년, 20년이 지나면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또 지금은 별로 현실성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10년, 20년 지나면 아주 중요해지는 게 있고요. 그러니 미래까지 고려해야, 실패할 확률이 적어집니다. 그러려면 첫째 방향을 잘 잡아야 하고, 두 번째 헌신적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원래 미래를 바라보고 하는 일은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시행착오도 많고요. 그러니 시작할 때 각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새 여러분들을 보면 제가 느끼기에 안전한 것에 보다 집중하는 것 같아요. 공무원이나 교사, 관청 직원, 아니면 대기업 등에 몰리지 않습니까? 안전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렇게 안하려고 해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젊음이란 뭔가요? 도전성 아닙니까? 필리핀이나 이런 데 가서 한 3년 일한다면, 해마다 2,500만원 정도 연봉을 받는다고 치면 한 67천 만원 정도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현장 경험을 쌓는 측면에서는 손해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오히려 자기 삶의 큰 자산이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청년들의 도전성을 격려하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질문이 시작되자 많은 청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10년 된 친구들이 있는데 작년에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렇고, 최근 집수리할 때도 자기를 외면하는 바람에 친구들이 너무 미워져서 절교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 친한 동생이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돼서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질문, 자신이 바보 같은 부분이 많고 후회를 되풀이하는 데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질문,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소비욕구가 심한 것 같아 고민이라는 질문, 남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남자가 더 좋아진다는 질문, 아버지의 암 선고와 이모의 죽음에 이어 언니까지 암에 걸려 집안에 우환이 계속되자 점집이며 철학관에 다녔는데 모두들 조상님께 천도재를 지내라고 해서 고민이라는 질문, 군대까지 기다리며 3년 사귄 남자 친구랑 헤어져서 힘들다는 질문, 가정사가 힘든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데 조언에 한계를 느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질문, 사람을 인상 보고 판단하고 싶지 않은데 인상을 보고 판단해서 고민이라는 질문, 어떻게 스님처럼 현명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등 아주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nbsp 이 중에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4년제 대졸 출신이 아니면 승진 기회를 주지 않아 고민이라는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nbsp nbsp nbsp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4년제 대졸 출신이 아닌 사원은 승진이라든지 상위 직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데 막상 그만두려고 하니 우리나라 경제 상황 상 다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제 스펙에서도 힘듭니다. 첫 번째는 이런 직장을 단ㅕ야 하는지를 고민 하는 게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두 번째는 이런 걸 감안하고 계속 회사에 다닐 거라면 어떤 마음으로 다녀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질문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 고민해서 뭐해요. 다른 직장을 가질 기회가 있다고 하면 미래를 생각해서 옮겨야 할까, 현실을 생각해서 그냥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수가 있지만, 지금 질문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아닙니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승진의 기회가 없는 구조라면, 승진할 생각을 안 하면 됩니다. 농땡이 치라는 소리가 아니고, 승진 같은 것에 고민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자기는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nbsp 그런데 이런 문제이면 다릅니다. 사회가 헌법에 어긋나는 규정을 갖고 있다면 노동청이나 법원에 이런 규정이 합당하지 않다고 제안해서 변화를 시킬 수는 있습니다. 이때도 자신은 회사를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안 그러면 자기 기분이 나빠서 먼저 떨어져 나가버려요. 이 회사가 승진을 안 시켜주지만, 그래도 나를 고용해주니 정말 고맙다, 이런 마음을 내야 합니다. ‘사장님, 그러나 이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지켜야 할 헌법에 어긋나네요. 개선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렇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nbsp nbsp 우리 사회는 경쟁사회입니다. 경쟁사회는 경쟁이 공정해야 합니다. 경쟁이 공정하다는 것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출발선상에서 기회가 균등한가. 둘째, 경쟁 과정에서 적용되는 규칙이 공정한가. 즉 집행이 공정한가. 셋째, 결과가 공평한가. 그런데 어떻습니까? 첫째, 둘째도 어렵지만 셋째는 더 어렵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지난 20여년간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었잖아요.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다 갖고, 진 사람은 못 갖습니다. 결과에서도 공정하려면 어떻습니까? 이긴 사람이 많이 갖고, 진 사람이 적게 갖는다고 해도, 적절한 비율로 나눠야 합니다. nbsp 예를 들어, 우리가 예전에 가난하고 못 살 때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10명이 100m 달리기하면 상으로 줄 공책이 6권밖에 없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1등에게 3권, 2등에게 2권, 3등에게 1권 이런 식으로, 1, 2, 3등에게 6권을 몰아줍니다. 나머지 7명은 아무 것도 못 받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경제가 좋아져서 상품이 많아져서 공책이 16권이나 된다고 합시다. 그럼 예전 방식대로 하면 1등에게 10권 주고 2등 4권, 3등 2권 이런 식으로 3명에게 다 몰아주겠지요? 그런데 참가자 전원에게 1권씩 주고, 또 경쟁은 경쟁이니까 나머지 6권에 대해서 1등에게 3권 주고, 2등에게 2권 주고, 3등에게 1권 준다고 하면 어때요? 우승한 사람이 많이 가져가지만, 동시에 진 사람들도 일정 비율 배분받을 수 있는 안전망이 구축되는 거죠. 이게 공평한 분배라는 겁니다. 공평하다는 건 똑같은 분배를 한다는 말이 아니고요. nbsp nbsp 대한민국은 그렇다면 공정사회냐? 대한민국은 공정한 사회가 아닙니다. 과거와 동일한 분배방식을 주장하잖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출발선상에서의 균등한 기회, 과정에서의 공정성,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공평한 분배가 공정사회인데,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회 불만이 생깁니다. 지금 질문자가 불공평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겁니다. 그런데 이런 관습이나 체제는 혼자서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남녀차별, 학벌 차별, 지역 차별 등 이런 건 모두 헌법정신에 어긋나지만, 관습이 아주 강고하게 남아있으니까요. 그러니 경쟁 사회 속에서도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런 사회를 바로 복지사회라고 하는 겁니다. nbsp 즉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는 건데, 경쟁 자체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장애인, 환자, 재난을 당했거나 실업을 했거나 등등 이런 사람들은 경쟁 자체에 포함시키면 안 됩니다. 둘째, 자유경쟁을 하더라도 조세정책이 바르게 집행돼야 합니다. 즉 바른 조세정책과 재정정책에서 바른 복지정책이 나옵니다. 마치 복지정책이라고 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뭐를 자꾸 나눠주는 거라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예전처럼 최저빈곤선에서는 벗어났지만, 현재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사회 불공정이 극심해지면서, 상대적 빈곤감이 깊어졌습니다. 자기가 불공정함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 아니겠어요? nbsp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거냐 이럴 때는 ‘고용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래야 하지만, 불공정성에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불공정한 것을 빤히 보고도 눈감는 건 오히려 사회 발전의 장애 요소입니다. 자기 마음은 편안히 하더라도, 불공정은 시정하려고 해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민주사회에서 불공정을 시정할 수 있는 수단 바로 투표입니다.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주권 행사를 안 하기 때문에 이 불공정이 시정되기 어려운 겁니다. nbsp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불공정을 느끼는 세력일수록 투표를 거의 안합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에 차선도 아니면 차악이라도 투표를 해야 하는데, 이도 저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죠. 우리에게 선택지가 최악과 차악밖에 없다고 하면, 우리는 그래도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투표를 아예 안하니까 결과적으로 최악을 늘 온전 시킵니다. 우리에게는 불공정을 개선해나가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nbsp 그런데 합법적인 절차로 파업을 하더라도 악을 쓰고 분노를 표현 하면 오래 못합니다. 하다가 관두게 되고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게 오래 갈까요? 악을 쓰면서 하는 게 오래 갈까요? 그러니까 개선이 필요하면,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래하지 못합니다. nbsp nbsp 질문자도 문제를 개선하려면 그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합니다. 상사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못 견뎌서 자기가 고치도록 말이죠. 수행과 사회 변화는 상반되는게 아닙니다. 개인이 행복한 것과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동시에 할 수 있는 겁니다. 국가를 부정하지 않고 헌법의 틀 안에서도 할 수 있고, 헌법이 잘 못 됐다면 그것마저 시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저 누가 해주기를 바랍니다. 기성세대가 뭣 때문에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런 수고를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기득권이 나쁘다고 비판하면서, 그 사람들이 알아서 바꿔주기를 바랍니다. 알아서 바꿔주면 그 사람들이 천사잖아요. 그러니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개선을 하려면 여러분부터가 노력을 해야 하고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되, 불공정한 것들은 시정해나가려고 해야 하는 겁니다.” nbsp 개인의 고민에서 비롯된 질문이었지만,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이 질문 외에도 청년들의 다양하고 유쾌한 질문과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행복특강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nbsp 질문 중간에 한 청년이 “스님 저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너 잘하고 있어’라고 한마디만 해주세요.”라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못 해줘”라고 말씀해줘서 강연장에 큰 웃음이 터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스님은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니라 다만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남을 비난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위로해주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런 말은 옆에 있는 남학생한테 해달라고 해요”라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정리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도 이틀을 살아도 연애를 하든 헤어지든, 헤어져 우는 가운데 행복해야 합니다. ‘헤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이런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슬퍼도 슬픔에 깊이 빠지지 않습니다. 둘째,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자립을 해야 합니다. 자립하는 것이 꼭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집에서 먹고 살면 밥값을 해야 해요. 엄마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해드리고, 파출부로 생각해서 50만원어치는 내가 해야 하는 겁니다. 어린애처럼 굴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nbsp nbsp 그리고 이 사회의 민주화가 더 심화될 수 있도록, 좀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심화된 나라에서 투표 의무제가 있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호주같은 경우는 투표율이 90 가까이 나옵니다. 투표는 국민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는 겁니다. 만약 투표를 안한다고 하면, 주권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의식이 좀 약한 것 같아요. nbsp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은 행복하도록 하되, 사회의 불공정은 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회의 불공정을 시정하면 어때요?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하죠. 기성세대처럼 그저 니가 문제야 이렇게 얘기하지 말고, 투표를 통해서 개선해가도록 해보세요. 여러분들이 힘을 합해야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투신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투신해야 할까? 공공의 정의를 위해 한번쯤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이야말로 우리시대의 큰 과제가 아니겠습니까? 이건 할아버지도 못했고, 아버지도 못했잖아요. 이 통일조국을 건설하겠다는 큰 비전을 갖고 노력하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꿈도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의 꿈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삶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좋은 질문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nbsp 스님의 마지막 정리 말씀에서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는데 큰 용기를 주고자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가 많은 관계로 앉아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떠나시는데 스님이 들어오셨을 때보다 더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이 나가는 길목마다 많은 청년들이 나와서 악수를 청하면서 스님께 “스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를 외쳤습니다. 뜨거운 환호성 속에 청년들의 고민들도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결국 밤 11시가 넘어서야 강의장을 나설 수 있으셨습니다. nbsp 질문을 했던 참가자들은 “답은 내 안에 있었는데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청년학교에서 방황해도 괜찮아 세미나를 하고 와서 오늘 스님 말씀이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개인의 고민에 대한 조언에서 우리 사회를 보는 시각까지 넓혀 깊이 있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내일 새벽 6시부터 가을 불교대 특강이 있어서 바로 문경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2015.3.27. 출가재일 기념법문
nbsp nbsp 어제 해관 장두석 선생님의 시타림에 다녀오니 새벽 3시 40분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잠시 개인정비를 하신 후 바로 새벽기도와 발우공양에 참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이 출가재일이라고 하시면서 “출가열반절 사이 일주일간 정토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일을 쉬고 용맹정진 해왔어요. 이런 정진기간 중에는 개별적 외식은 삼가주시고 각자 정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가자는 출가열반재일이라고 모두 절에 와서 정진하는데, 여기 절에 사는 대중들은 업무 본다고 정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대중들 정진기간이라는 것 명심해서 공동체 대중들은 정진 중에 잠시 나와서 일 본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출가·열반재일 입재·회향법문은 직강이니 가능한 법회에 참가하기 바랍니다.”라며 공동체 성원들도 이번 출가열반재일기간에는 업무보다는 정진에 중심을 두고 생활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nbsp 발우공양후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헌법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시는 사회원로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나누신 후 10시부터는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출가재일기념법문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은 부처님께서 수행하기 위해 출가하신, 29년간 살던 집을 나오신 출가일입니다. 날짜로는 음력 2월 8일, 나이는 29세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여 6년간 고행하신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시고 45년간 쉬임없이 전법을 하시다가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출가일인 음력 2월 8일에 입재하여 열반일인 음력 2월 15일 회향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nbsp 이어서 스님께서는 출가절을 비롯한 4대 명절과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2600여년전 인도의 브라만 시대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브라만시대는 역사적으로 1천여년간 지속되었는데, 베다시대, 종교시대, 철학시대, 쇠퇴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브라만시대의 특징은 세가지인데 첫째가 우주만물을 신이 창조했다는 창조설이고, 둘째는 신이 인간을 4개의 계급으로 창조했으므로, 인간은 신의 창조질서에 따라 계급질서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 의식을 통해 죄를 사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이라고 설명해 주시면서 nbsp “그런데 사회가 발전, 변화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모순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무기 등 군사력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신의 보살핌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믿음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제계급의 권위가 떨어지고 왕족의 힘이 강해지고 장자계급의 힘이 커졌습니다. 급기야는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신은 없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런저런 다양한 주장이 나타나고 지지자가 등장하여 브라만 사상에 반대하는 비주류를 형성해 갔습니다. 그런 많은 견해 중에 영향력이 큰 세력을 불교에서는 ‘6사외도’라고 합니다.” nbsp nbsp “이러한 때에 부처님이 태어나셨는데, 부처님은 전통 브라만 사회에서 자랐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전통 브라만 사상을 지녔습니다. 부처님은 성장하면서 사회의 여러 모순을 접하게 되고 그동안 믿었던 전통 브라만 사상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오히려 비주류의 주장에 동조하는 등 13년 동안 많은 고뇌를 하고 사색을 하게 됩니다. 부모의 권유로 결혼하고 애를 낳기도 했고, 왕인 아버지의 명령으로 한 지역을 맡아 다스려 보기도 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nbsp 결국 29세때 집을 나와 스승을 찾아 답을 구했지만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해서 결국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야 근방의 전정각산으로 가셔서 6년 동안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6년의 고행 끝에 욕구를 따라가는 쾌락의 길도, 욕구를 억압하는 고행의 길도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달으시고 중도의 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nbsp 부처님은 출가 전에는 주류의 길인 쾌락주의를 ?다가 출가 후에는 비주류의 길인 고행주의를 ?다가 다시 이 길, 저 길을 다 버리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이 중도이고 이 중도의 수행을 하셔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nbsp nbsp nbsp 부처님이 어떻게 출가하시고 어떻게 중도의 길을 발견하셨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하실 때 대중의 분위기가 숙연해 집니다. 출가가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해 보기도 했습니다. nbsp 스님은 이어서 부처님이 출가 전과 출가 후의 어떤 옷을 입으시고, 어떤 음식을 드시고, 어떤 집에서 사셨는지를 말씀하시면서 출가정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nbsp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옷을 입으시다가 출가해서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덮는 천, 부정한 것으로 여겨 아무도 손대지 않는 분소의를 입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최고의 음식을 드시다가 출가해서 얻어먹었습니다. 어떤 사람보다 더 못한 음식을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비단으로 장식하고 향을 피운 최고의 집에서 사시다가 출가해서 나무밑이나 동굴에서 사셨습니다. nbsp nbsp 의식주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바꿔지는 게 출가입니다. 스님 된다고 다 출가가 아닙니다. 가치관과 생활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스님이 된다고 다 출가가 아닌 이유는 가치관이 안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출가하고도 높은 지위, 부귀영화를 못 버리잖아요. nbsp 집이 무엇인가요? 집이 상징하는 것은 안온한 곳입니다. 동시에 속박, 구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 으로 돌아간다’, ‘집을 뛰쳐 나간다’고 말하잖아요. nbsp 정토행자 한 분이 지금까지 여기에서 사시다가 오늘 집으로 돌아간대요. 왜 절에 왔을까? 그때는 집이 속박으로 느껴지니 뛰쳐나온 거예요. 그럼 왜 다시 들어가는가? 집이 안온한 보호처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시 들어가면 처음에는 안온하지만 다시 또, 속박으로 느껴지겠지요. 그럼 또 집을 나오겠죠. 이렇게 갔다 왔다 하는 것은 출가가 아니고 가출이라고 합니다. 더 좋은 보호처를 찾아가는 것은 가출입니다. 더 좋은 보호처는 더 큰 속박이 됩니다. nbsp nbsp 부자집이나 지위가 높은 집으로 시집가면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집에서 살겠지만, 속박은 커지고 하녀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과연 행복일까요? 사람들은 더 좋은 안온한 곳을 찾는데, 이것이 더 큰 속박이 된다는 것을 잘 꿰뚫어봐야 합니다. 안온처가 되었다가, 굴레가 되었다가, 이렇게 늘 뒤바뀌는 게 윤회입니다. 그래서 해탈은 ‘윤회를 끊어버린다, 집을 불살라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nbsp 속박과 안온처는 분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끔찍이 사랑받고 싶지요? 끔찍이 사랑받을 때 속박이 더 심해지지요. 그래서 제가 늘 말하잖아요. 누가 나를 좋아 한다고 하면 나는 겁난다고. nbsp 중생은 낙만 있고 고는 없고, 안온처는 되고 굴레는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움직입니다. 이를 꿰뚫어 알아야 고집멸도에서 ‘일체가 고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낙이 고인줄 알아야 고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낙이 고’인줄 알아야 낙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nbsp 집을 불살라버리는 게 출가입니다. 더 좋은 집을 찾아 집을 떠나는 것은 가출입니다. 과연 집을 불살라버리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집이 고임을 꿰뚫어 아는 자가 몇이나 있을까요?” nbsp nbsp 이 대목에서 대중들은 모두 숙연해 집니다 nbsp “이게 딱 안 잡히면서, 절에 다니며 ‘불교가 좋다’, ‘정토회가 좋다’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 쌓기입니다. 출가하겠다고 절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출한 사람입니다. 집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도 가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갔다 오너라’ 하고 얘기합니다. 부처님이 좋은 옷 입고 마차 타고 다니면 어땠을까요?” nbsp 스님은 분위기를 바꿔 다정한 어조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대중은 중간중간에 밝은 목소리로 일제히 “예, 쉬워요.”라고 대답합니다. nbsp “출가절을 맞아서 오늘부터 열반일까지 1주일만 출가정신으로 살아봅니다. 출가의 자세로 살아보기 위해 작은 거 몇 개만 지켜서 해봅시다. 여러분, 하실 수 있어요?” 첫째, 걸식하라는 소리는 안할테니, 일주일만 더 맛있는 거 찾지 않도록 합니다. 있는 것만 먹지, 먹는 거 가지고 껄떡거리지 않습니다. 둘째, 하루 한끼 먹으라 소리는 안할테니까 정해진 3끼 이외에는 먹지 않습니다. 쉬워요? 안쉬워요? 셋째, 일주일만 고기 안 먹는다. 이미 섞여있는 것을 골라낼 것까지는 없지만, 일부러 먹지는 않습니다. 넷째, 분소의를 입으라는 소리는 안할테니까 옷 입을 때 고르지 않고, 무얼 입을까 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입는 것 가지고 신경쓰지 않습니다. 다섯째, 나무 밑이나 동굴에 자라고는 하지 않을테니까, 때 아닌 때에 졸거나 자지 않습니다. 밤에 자지 말라는 게 아니고, 낮에 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섯가지를 지켜서 해보고 괜찮으면 계속하고 못하면 열반절까지 해봅니다. nbsp nbsp 머리 장식은 꾸며서 잘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거 못하게 하려고 머리 깎게 한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고 분소의를 입었다는 것은 기존의 가치관과 기득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번주 수행중에는 사장이라 하더라도 권위를 부리지 않습니다. 이번 주 중에는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권위에도 기죽지 않고,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야 합니다. 자기가 교만해지거나 비굴해 질 때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nbsp 작은 거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 봅니다. 자기 습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극복해 봅니다. 욕망의 노예, 습관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욕망과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이번 주만이라도 결심을 해서 5가지를 지키면서 300배 정진을 해봅시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래야 출가절의 의미가 있습니다.”라며 출가열반절을 맞이하여 5가지를 지키면서 정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오늘 참석한 대중들은 모두 힘차게 “네”라 답하여 스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지켜서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nbsp 이렇게 출가절 법륜스님의 법문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태산 같은 가르침을 주시고 출가열반재일 용맹정진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과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습관 때문에 과제를 이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가르침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법문이 끝나자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4월 3일 회향법문 때 뵐 때까지 300배 정진과 출가정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nbsp nbsp 법회후 JTS 관계자와 간단히 업무 논의를 한 후 이어서 법사단 회의가 방 1에서 12401510까지 두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논의는 전국 가을불대생 대상으로 진행되는 4월 경주남산순례 일정 및 코스 점검, 신규법사님들의 역할 배정, 9월 미주행자대회에 참가할 법사 배정, 초파일 이후 진행될 법사단 수련 일정, 본부불사, 연수원 불사, 인도와 필리핀 공동체 운영, 의식 및 염불 등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nbsp 경주남산순례에 대해서는 참가자 수에 따라서 순례횟수를 조정하고 코스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방침을 정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답사를 먼저 다녀오신 뒤에 법사단에서 담당 코스별로 답사를 할 때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코스, 가장 먼 코스, 가장 볼 것이 없는 코스 등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대중이 안전하면서도, 시간에 맞추어서, 볼 것도 많도록 할 것인지 의견을 주셨습니다. nbsp 매년 틈나는대로 자주 자주 올라보는 남산인데도 행사 전에는 다시 한번 답사를 하며 꼼꼼하게 볼거리와 안전문제, 시간 등을 체크하시면서 연구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뵈면서 큰 배움을 얻습니다. nbsp nbsp 신규법사님들에 대한 역할을 배정하면서도 개개인의 부족함에 초점을 맞추고 이제는 극복하는 방식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장점이 잘 살려지도록 기회를 주고자 고려하시는 모습에서 법사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됩니다. nbsp 인도와 필리핀에 공동체가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제이티에스 사업과 공동체 살이가 섞이거나 충돌이 되지 않도록 다시 정리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런 저런 논의를 하다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nbsp 법사단 회의를 마치자 마자 스님께서는 정토회 고문이신 각해보살님을 문병하기 위해 오후 3시 부산으로 출발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의 어머님 별세소식을 듣고 병원에 먼저 들러 문상을 한 후 성불사를 찾아 각해보살님 병문안을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계속해서 해외 일정이 있어서 병환소식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하다가 오늘 찾아뵈니 각해보살님께서는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내신 후 두북 숙소로 들어가니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nbsp 내일은 아침 9시부터 용인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의가 있습니다.
2015.3.26.SBS촬영팀과 식사및 회의, 제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등
오늘 새벽 12시 4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새벽 1시 40분경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계속 원고수정등 업무를 보시다가 새벽 5시 기도와 발우공양에 나오셨습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대중공사를 통해 공동체 봄 나들이 일정을 확정지었고, 스님께서 일정중에 언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의논하셨습니다. 또, 어제 대중공사에서 스님께서 발우공양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오늘은 누가 공양당번이었는지를 확인하시고는 어제 스님께서 짚어주신대로 잘 하셨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오늘은 두부구이가 나와서 기름이 좀 있었는데, 팔팔 끓는 숭늉을 잘 준비하였고, 밥도 촉촉하게 잘 했다고 대중들앞에서 공양당번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나서 스님께서는 어제 밤 잠을 주무시지 않아서 오전은 휴식을 취하셨다가 12시부터 평화재단에서 SBS촬영팀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촬영할 것인지, 스님께서 어떤 것을 더 지원해주면 되는지를 논의하셨고, 또 촬영팀은 스님을 더 이해하기 위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 nbsp 촬영팀 중 한 분이 스님께 스님에 대해 취재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우울해진다고 말씀하시니 스님께서는 잘 전달하고 싶다는 것은 괜찮지만, 잘 전달하고 싶다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지금과 같이 우울해 지게 된다면서, 어차피 100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30를 전달할 때도 있고, 70를 전달할 수도 있는데. 가능하면 조금 더 퍼센테이지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촬영팀에서 “이틀전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에서 종교인이라면 정부가 막는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넘어서서 감옥에 가더라도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것을 방송에서 방영해도 괜찮을까요?”하며 질문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말 표현을 세련되게 하지 못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종교인들은 신앙의 원칙과 목표가 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야 하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야 합니다. 일반인은 사람이 굶어 죽어도 범죄인이니까, 적이니까 죽는 게 잘된 것이란 식의 사고를 하기 쉽지만, 이는 감정에 치우친 것입니다. 그것은 보통사람의 이야기이고, 종교인이면 그 감정을 뛰어넘어서 국적, 성별, 인종과 상관없이 굶어죽는 사람을 먹여 살리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 정신이 적십자 정신 이고 인도주의 정신입니다. nbsp 북쪽에 어린이, 환자 등 소위 말하면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정부에게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야 합니다. 각 국의 법을 넘어선 보편적 윤리가 바로 유엔인권헌장입니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입장이 아니라 전 인류의 입장에서 본 원칙입니다. 정부가 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우리가 정부를 설득해야하지만 그래도 정부가 지원을 반대한다면 시민단체는 이것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이라면 때로는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거기에 갇혀 있으면 굳이 종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종교인들은 법을 어겨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법을 어겨서 처벌은 받게 된다면 그 처벌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이야기 인데 발표장에서 짧게 얘기하다보면 오해가 생길 수가 있는 것 같아요. nbsp nbsp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5년 동안 인도적 지원이 잘 안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도적 지원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이 없으면 정부가 지원하라고 해도 지원할 필요가 없고,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면 정부가 지원하지 말라도 해도 해야 합니다. 지금 북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데, 북한 권력자가 미워서 안 돕는다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이중피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nbsp 다만 그것이 북한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북한지도자가 밉다고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nbsp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정말 굶어 죽고 있는지, 영양실조 상태가 심각한 지를 먼저 조사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지원한 것이 그들의 열악한 상태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가를 모니터링 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지원하면 100 가는 것은 아니고, 하나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일부가 유출됩니다. 그것을 감안하고라도 지원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 된다고 판단된다면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 원칙에서 벌써 56년 이상 있으니까 이제는 종교인들이 너무 정부눈치 보지 말고 굶어죽는 거 알면서 못 돕고 있으니까 좀 극복해야 합니다. 첫째 정부를 설득 해야 하고, 더 이상 설득 안 되면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을 십자가를 질어진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라면 마땅히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에겐 그런 십자가 정신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그런 측면에서 얘기 한 것입니다. 요약하면 인도주의적 원칙에 어긋난다면 현행법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런데서 오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뜻으로 말했는데.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종교인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다시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nbsp nbsp 이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나 무지가 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 가지 사회활동, 환경활동 등을 하시는데 이런 것들을 일반인들이 하면 되지, 왜 불교에 있는 스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가? 하는 궁금증들을 갖고 있습니다.”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nbsp “여러분들은 스님이다 하면 스님이라는 정해진 울타리 안아 가두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결혼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남편이고,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아버지이고, 회사와의 관계에서는 직원이 됩니다. 가정에서 부인이 아내 역할만 충실하기만을 바라고, 아이는 아버지 역할만 제대로 하기를 바라고, 회사에서는 직원으로 보고 직원으로 충실하길 바란다면, 이것만 가지고도 갈등이 됩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교회를 다닌다면 교회에서 신도 역할을 해야 하고 학교에 가면 학생, 가게에 가면 손님역할을 해야 합니다. 존재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 뿐만 아니라 누구든 마찬가지로 역할이 많고 바쁩니다. 근데 이게 현실인데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신자 역할만 해라, 직원 역할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nbsp 또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면 제가 사는데 승려니까 승려로써 요구되는 일이 있어요. 승려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뭐냐 하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자입니다. 내가 나라가 독립이 안 되었다고 괴로워하면 애국자는 되더라도 수행자는 아닙니다. 인도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돕는다고 괴로워하면 사회사업가는 될지언정 수행자는 아니에요. 수행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주 역할이에요. nbsp nbsp 그 다음에 수행자는 자기만 행복해지면 된다고 하면 소승불교에요. 그리고 자기도 행복하고 남이 행복하고 자유로운데 기여하는 게 대승불교에요. 그 기여하는 방법은 첫째 이 좋은 법을 남에게 알려야 합니다. 불교 신자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깨달은 이런 이치를 다른 사람도 배우면 자유로워지니까 ‘괴로운 사람들 이거 한번 해 봐라’하고 권하는 것이에요. 또 내가 수행자인데 초심자가 아니라 시니어 그룹에 속하면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nbsp 저는 정토회에서 지도 법사입니다. 이 길을 가는 데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무작위 대중을 위해서는 즉문즉설을 해서 도움을 줍니다. 그 다음에 불교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불교진리에 근거해서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황사 문제가 있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이 문제된다면 수행자라고 황사나 방사능 오염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행을 하던 안하던 다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단체, 시민단체 할 것 없이 다 같이 해야 합니다. nbsp 그러니까 나도 숨 쉬고 사니까 인류의 한 사람으로 환경은 보존해야 하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나서 수백만 명이 죽고 재산을 잃는 고통은 수행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안 일어나야 하고 평화를 유지하려면 미래를 보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옛날 얘기만 하면 부부싸움도 끝이 안 납니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에요. 계속 옛날 얘기만 하면 갈등이 끝이 없습니다. 서로 부족함이 있지만 협력하는 게 이익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평화 통일을 얘기해야 합니다. nbsp 또 인류의 한 사람으로써 인도 불가촉천민들처럼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야 합니다. ‘왜 이런 일 하느냐?’고 질문 하는데 이게 맞는 얘기인가요? ‘너는 왜 네 남편 네 자식만 돌보느냐’고 사람들이 문제제기 하지, ‘왜 이웃집 애까지 돌보냐?’ 하는 것은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nbsp 정리해 본다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데 자기가 생각하는 특정 존재로 규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영향력을 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영향력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인도에서도, 여기에서도 열 가지를 얘기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때리지 말고 훔치지 말자. 성추행 하지말자. 거짓말하지 말자. 욕설 하지 말자. 그 다음에 술 먹고 취해서, 취한 행동 하지 말자. 화내거나 짜증 내지 말자. 잔소리 하지 말자. 음식에 욕심내지 말자. 물건에 탐착하지 말자등 열 가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거는 법보다도 더한 윤리를 지키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법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얘기한 인도적 지원에 해당하는 것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은 인도주의 지원을 현행법이 막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법은 우리가 잘못 되었다고 지적을 해야 합니다. 조선시대에 남녀 차별하는 관습이 있고, 제가 조선시대 태어낫다면 이런 관습을 시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회지배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저항을 받겠지요. 그러니까 어떤 관습이냐가 중요합니다. 남녀차별, 계급차별, 인종차별등은 극복해야 합니다.” nbsp nbsp 또한 스님은 촬영팀과 촬영일정과 인터뷰 대상자에 관한 사항을 의논하시고, 앞으로 촬영을 진행하면서 필요하면 중간에 다시 회의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nbsp 이후에 윤여준 전 교육원장님과 조민 현 교육원장님과의 만남이 있은 후 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12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함께 참석하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nbsp “한국사회가 지나온 모습을 보면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로, 민주화에서 이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을 볼 때, 민주화는 지방자치가 더 심화되어야 하고, 경제적인 것은 이제는 생산만이 아니라, ‘어떻게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불행히도 현재 우리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념 논쟁을 하고 있고, 지금의 정치인들은 한쪽에서는 산업화의 공로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화의 공로를 주장하면서, 과거를 먹고 사는 세력만 있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nbsp nbsp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향해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젊은이들이 어떤 꿈을 가지게 할 것이고, 어떤 성취를 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통일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통일없이 지속가능한 성장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앞선 민주화 세대라면 통일 시대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로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여러분들처럼 어느 정도 성공하신 분들은 그런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이제는 통일 국가의 비전을 논해야 합니다. nbsp nbsp nbsp 우리의 지향은 통일 국가이고, 그것의 첫 발은 통일을 지향하는 남한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정치하겠다, 국회의원을 하겠다, 시장을 하겠다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통일국가를 만들어가는 중심세력이 되어야겠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현재 하는 직업이 무엇이든 그것을 넘어서 통일에 부합할 수 있도록 본 강좌에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스님께서는 입학식 축하 인사를 하시면서 통일한국의 비전 및 이를 위해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인사말씀을 마무리하시고, 재단을 떠나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그동안 스님과 관계를 맺어오던 해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님이 별세 하셔서 저녁 8시에 광주로 이동하셨습니다. 밤 11시 30분경 광주 조선대병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장두석 선생님의 영정에 인사를 한 후 상주와 장례위원 분들과 만나 장례식에는 참여를 못하지만 49재때 참석하겠다고 약속하신 후 12시 30분경에 다시 서울로 이동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셨습니다. nbsp nbsp 내일은 새벽 7시 30분부터 조찬모임이 있으시고 오후에는 부산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2015.3.25 서울 공동체 새벽기도, 발우공양
nbsp 스님께서는 오늘도 새벽 5시부터 대중들과 함께 기도하시고 발우공양하시면서 서울 공동체 대중들의 수행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985170수행생활을 할 때 질서를 중요시 합니다. 단지 보기 좋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깨어 있어라, ’자신의 동작에 깨어 있어라, ‘정신없이 살지 말고 매 순간 깨어 있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질서로 나타납니다. ‘방석을 가지런히 놓으라는 것은 보기 좋고 사용하기 편하게 한다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방석을 놓는 그 순간에 깨어 있어라’는 것이 그 취지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라’는 것도 ‘신발을 벗을 때 깨어 있어라’는 것입니다. nbsp 법당에 예불 준비하는 사람은 촛불을 켜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난 후, 불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 촛대가 균형 있게 놓여 있는가, 향로와 공양구가 중심에 있는가, 앞에 놓인 법상이 딱 가운데 놓여 있는가, 스님 방석을 놓는다면 균형이 맞게 놓여 있는가 잘 살펴야 합니다. nbsp nbsp 발우를 놓으면서도 상석을 기준으로 하여 줄을 맞춰서 놓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군대식으로 선을 그어 줄을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라면 누구든지 들고 날 때 살펴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깨어서 살피면서 하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 한 선방의 부목으로 살 때 선방스님들의 쓰레기통을 치우면서 쓰레기의 내용을 보면 수행자들이 얼마나 깨어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경험을 얘기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발우공양 좌석을 준비하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주셨습니다. nbsp 985170첫째, 여러분들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매사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지적하면 이것만 하고,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연등을 달면 연등 간격이 바른지, 처진 것은 없는지, 불 꺼진 것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연등에 불이 꺼져 있어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몇날며칠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회관 옆에 부착되어 있는 현수막도 행사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붙어 있습니다. 여기 대중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살고 있는데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도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처리하도록 알려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살피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정토회관의 여러 가지 일들도 잘 챙겨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발우공양을 준비하면서 좌석을 배치할 때 유의점, 공양을 준비할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음식을 준비할 때도 반찬에 기름이 들어갔다고 하면 숭늉을 팔팔 끓여서 내야합니다. 기름기와 고춧가루는 섞이게 되면 붉은 색깔이 잘 닦이지 않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부어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예 기름을 쓰지 마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가능하면 발우공양에는 기름을 안 쓰거나 적게 쓰고, 기름을 쓸 때는 거기에 맞추어서 뜨거운 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수도 보통 때는 차게 해도 되지만, 오늘처럼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 있을 때는 청수도 데워서 준비해야 합니다. 공양을 준비하는 사람이 주변을 살피고 상황을 살펴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다 수행입니다. 수행을 형식화 하면 군대처럼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늘 긴장해서 살아야 합니다. 군대생활처럼 외출 나오면 퍼지게 되고, 다시 복귀하게 되면 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명상할 때 편안한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긴장을 풀고 편안히 하라는 것입니다. 편안한 가운데 또렷이 깨어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일상생활에 적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편안하면 얼굴이 밝을 것이고, 긴장하면 얼굴이 굳고 건드리면 터지게 됩니다. 편안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 있으면 됩니다. 여기 이곳은 우리가 계속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집입니다. 여기서 계속 긴장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수행자로 살펴서 사는 것이 바로 생활불교, 불교의 생활화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겸해서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라며 우리가 일상에서도 편안하면서 깨어 있도록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참회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대중 공사에서 참회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놓친 것을 자각해서 참회하는 것이고, 다음은 대중들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계율을 놓쳐서 이렇게 참회합니다.’ 그러면 대중들은 ‘저 사람은 자기가 계율을 어긴 것을 알고 있네.’ 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정이 있어서 계율을 어긴 것을 대중 참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의혹을 해소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기도하다가 갑자기 밖에 나갔다 왔는데, ‘저 사람은 왜 나가나’ 하는 의혹이 들게 됩니다. 나갔다 온 사람은 대중공사시간에 ‘내가 아침에 설사를 해서 기도 중에 나갔다 왔습니다.’고 참회를 하면 됩니다. 나갔다 온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혹이 생긴 것을 대중 참회를 통해서 풀어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nbsp 똑같은 계율을 가지고 참회가 오늘도, 내일도 계속 반복된다면 이번 달에는 이중에 한 개는 꼭 지켜봐야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때 아닌 때 먹지 말자’, ‘비닐에 든 것을 먹지 말자’등을 이번 달에 1개를 정해서 지켜서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녁예불을 빠진다고 참회를 매일 반복한다면 이번 달에는 내가 사업은 사업대로 하더라도 예불은 예불대로 꼭 지켜서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중심을 가지고 해보면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nbsp 천주교에서는 12시 종을 치면 면담하다가도 ‘죄송합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고 끝나면 다시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오히려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nbsp 전에 아프간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가 가다가 기도시간이라고 택시를 세우고 그 자리에다 자리를 깔고 기도를 마친 후 다시 갔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미쳤다고 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nbsp 저는 지난 1월부터 인도, 동남아 지역을 다니다 보니 남방불교의 관습대로 지금 오후불식중입니다. 손님과 저녁 일정이 잡혔어도 양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식사초대를 해놓고 나는 안 먹으면 실례입니다. 그렇기에 가능한 저녁 식사 일정은 안 잡는 것이 제일 좋고, 어쩔 수 없다면 비록 실례이긴 하지만 내가 정한 것을 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생활의 원칙을 정하고 지켜나가는 것은 업무에 방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을 잡고 있으면 일을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계율은 한 가지씩 목표를 세우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율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1년에 한 번씩 건의를 하거나 또, 지역에 따라 맞지 않다면 일정기간 유보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인도 짜이나 한국의 차처럼, 필리핀 원주민 마을에는 커피가 기호식품이 아니라 식음료에 해당합니다. 그동안 행자들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무조건 지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필리핀의 경우 이번에 행자들까지도 커피는 마시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수행이나 계율은 다 잘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정토회에 살다보면 주로 행자들이 엄격하게 잘하고, 신참들이 잘 지키고, 오래된 사람들은 적당히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나도 빨리 고참 되기를 바라기만 합니다. 계율보다 관습이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서 여기 정토행자들은 선배도 그렇다, 법사도 그렇다고 하면서 따라하지 말고 여기에 수행하러 왔으니까, 남을 따지지 말고 나는 한 번 해본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물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사람이 많아져서 분위기가 좋은 쪽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안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고 내가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살피면 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분위기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생활해 봅시다.” nbsp nbsp nbsp 스님께서는 지나온 습관대로 살기보다는 내가 새로운 바람이 되어 수행정진 해 나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중들과 함께 아침 일정을 마치시고 중국 방문 일정으로 공항으로 출발하셨습니다.
2015.3.24. 공동체 발우공양 및 천주교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약 20여일간의 인도 일정을 마친 후 오랜만에 서울 정토회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기도를 올린 후 발우공양을 함께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스님과 함께 한 새벽기도 시간은 평소보다는 더 경건하고 감동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좀 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에 이어 스님과 함께 발우공양을 한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모습을 지켜본 후 대중들이 발우공양에 임하면서 간과하는 몇가지를 짚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먼저 발우공양 좌석에 대해 대중들의 드나듦이 많아 좌석배치에 혼란함이 오는 것에 대해 “발우공양 좌석 배치는 원래 발우공양을 하기로 한 사람들을 우선 배정하고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발우공양을 하게 되는 사람들은 바라지 옆 말석에 배치하도록 해라”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야 혼란을 최대로 줄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nbsp 또, 대중들이 참회하는 내용을 들으시면서 참회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참회는 계율에 따라 하는 것으로 계율은 내가 행복과 자유로 가는데 어긋나지 않게 나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찰라무지가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어기게 됩니다. 그럴 때 자기도 모르게 놓친 것을 아이고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되돌아오는 것이 참회입니다. 그러나 알고도 어기는 것은 참회가 아니고, 계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반복되는 참회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때 아닌 때 먹었습니다’라고 참회를 일상적으로 한다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때 아닌 때 먹는게 뭐가 문제인가, 계율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나는 내 식대로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려는데 과거의 습관 때문에 잘 안되어서 어기게 되므로 고쳐나가는 연습 기간인지, 고칠 의지가 전혀 없는 형식적 참회인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고칠의지가 없는 것은 참회가 아닙니다. nbsp nbsp nbsp 회의등 업무적 일정으로 인해서 예불, 잠자는 시간이 안지켜지겠다고 하면 미리 체크해서, 사전에 공지를 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이 원칙인데 어떤 상황 때문에 어긴다고 각성하고 있어야 상황이 달라지면 바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계율이 이치에 안 맞다고 생각이 들면 이의를 제기해서 재검토하도록 해야 합니다. 타성적인 참회가 되지 않게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절에 10년을 넘게 살아도 개인의 변화가 없습니다.”라며 서울 공동체 대중들이 절에 살면서 습관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행생활부분에 대해서도 짚어주시니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수행자로서의 자세가 맞는지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그 외에도 스님께서는 소심경 게송의 음이 늘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세세히 짚어주셨고, 신규법사님들과 대중들이 인사하는 시간도 가지면서 신규법사님들이 만행을 떠나는데, 법사수계를 받고 만행을 떠나는 것은 정토회의 오랜 전통이라고도 알려주셨습니다. nbsp 또, 서울 공동체의 식목행사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봄이 되었는데도 몸이 좋지 않아 움츠러 든 대중들을 살피시면서 다함께 봄에는 야외로 나가서 자연을 만끽하는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공동체 대중들에게 수행지도를 해주시고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아침 7시부터 기획위 회의가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대중들과 발우공양을 함께 하느라 회의에 조금 늦게 참석하셨습니다. nbsp 4시간여의 긴회의를 하다보니 12시 가까이가 되어 회의를 마치신 후 다시 몇 분의 기획위원들과 점심공양을 겸한 논의 시간을 더 가지시고는 천주교 평화나눔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그동안 천주교가 평화통일에 관계된 기관이 없었는데, 이번에 평화나눔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앞으로 남북관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활동을 할 것임을 밝히면서 목사님, 신부님, 스님을 모시고 통일에 대해 함께 나누는 평화토크를 마련한 것입니다. nbsp nbsp nbsp 행사에 앞서 염수정 추기경님, 박종화 목사님, 최창무 대주교님과 함께 차담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995년도에 북한 동포돕기를 위해 김수환 추기경님과 강원룡목사님을 모시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가 함께 힘을 모아 북한돕기를 시작한 이야기등 약 20여년전부터 함께 해 온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오태순 신부님까지 자리를 함께 하면서 20여년 전에 북한동포돕기를 시작한 주 멤버들이 다모여서 그때를 다시 회상하면서 차담을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행사시간이 가까워지자 행사장인 프란체스코홀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평화나눔연구소를 개소한 것에 대해서 축하를 하면서도 천주교가 가진 역량에 비해 너무 늦었다고 아쉬움을 밝히면서 평화나눔 연구소가 한반도의 평화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큰 역할을 해주기를 당부하시면서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지금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이 경쟁 관계가 치열해지는 등 동아시아의 주변 정세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자기 힘에 걸맞는 세계적 역할을 하고자 하고 미국은 과거에 자기 패권을 그대로 유지시키고자 하는 둘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북한은 오직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등 이런 각각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남북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럴때 대한민국은 국가 목표가 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분명합니다. 지난 50여년간 피땀 흘려 모은 재산과 인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지금까지는 분단상태 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하고 번영이 가능했지만 현재 주어진 국내외 조건은 더 이상 분단 상태로는 국가 발전을 모색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체제 붕괴 위험에, 남한은 성장한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남북한 양쪽 다 그 부분에 있어 뚜렷한 국가비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요즘 일어나는 현상처럼 한쪽은 미국의 요구에 끌려가고, 한쪽은 중국의 요구에 끌려가고 이러지도 저라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이 사이에서 적극적 평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하위 변수로 끌려다니는 모습이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불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을 만들어가는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라며 지금 우리 한반도 놓여진 상황에 대해서 먼저 짚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어떤 요소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합니다. 세대간에 갈등, 지역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진보보수간의 갈등 등이 많은데 그 갈등들의 근저에 있는 주원인은 분단 갈등입니다. 분단 상황이 극복되지 않고는 남한사회 안에 진정한 국민화합과 계층간의 협력은 어렵습니다. 평화는 남북간의 평화만이 아니라, 남한안의 화합과 협력을 가져오기 위해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남북간에 분단 70년이 됐는데도 왜 이렇게 대립 갈등이 심한가하고 돌아보면, 일본에 36년간 지배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해방 후 20년만에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일간에 많은 교류 협력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일본은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이 부족합니다. 그런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협력은 우리에게도 이익이고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 한국 전쟁때 중국은 100만 군대 보내서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습니다. nbsp nbsp 그러나 지금은 한중수교 20년이 넘었고. 한중간에 무역교류액은 한미, 한일 합한 것보다 1.5배이상 많습니다. 중국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제 우리의 경제성장을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중국이 우리에게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을 반성했냐면 아닙니다. 시진핑 주석이 부주석으로 있을 때 한국전쟁에 대해서 소위 항미원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까지 했는데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민족인 일본과 중국에게는 이렇게 관용하면서 왜 같은 민족인 북한에게는 관용하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남북 간의 문제가 풀리기 어렵습니다. 물론 북쪽에서 내려오신 분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전쟁때 돌아가신 많은 분들의 원한을 이해해야 합니다. nbsp 그러나 계속 원한을 가지고 살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픔을 뛰어넘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남북이 협력하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번영 위해서 큰 이익입니다. 자꾸 과거 이야기로 풀려고 하지 말고, 미래 희망으로 이 문제를 풀면 능히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 갈등도 과거에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쪽과, 민주화를 이룬 쪽이 서로 자기가 한 이야기만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는 이해하지만 미래를 보고 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아가는 자세가 된다면 우리가 갈등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갈등이 해결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남갈등부터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오늘 행사는 종교인들이 모여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이다 보니 한반도 평화에 대해 종교인들의 소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종교인들은 보통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싸우면서 북한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남을 미워하는데 앞장서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만약 북한에서 총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종교인이 앞장서서 ‘한 대 때리면 다섯대 때리자.’고 한다면 맞지 않습니다. 보통사람보다 못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듯이 우리가 대신 참회하는 운동이 이뤄져야 합니다. 대신 참회하지 않으면 원한이 풀리지 않습니다. 남북정부간에 갈등이 일어나도 우리 종교인들은 그런 것을 넘어서서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nbsp 일본이 독도문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고 우리 감정을 건드려도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때 우리는 일본을 도왔습니다. 종교인들은 이런 불행이 왔을 때 원수도 도와야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종교인들은 정부간의 갈등이 생겨도 지속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런 활동이 국민의 저항을 받아도 종교인은 이런 저항마저 기꺼히 받아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종교인이 정부에 호소해서도 안되면 직접 인도적 지원을 해버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문제입니다.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북한 난민을 지원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남북 관계 갈등이 분쟁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북한의 반발이 있더라도 인권개선, 난민지원문제는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남북간의 교류 협력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정말 북한 민심을 잡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면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적 지원인 동시에 통일정책입니다. 종교인들은 일반인들과 다르게 십자가를 지는 행동이 필요합니다.”라며 종교인들이라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그리고 행사를 마무리 하면서 스님께서는 “처음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민간단체가 협력해서 북한인도적 지원을 함께 했습니다. 민간 종교단체가 조금 더 종교적 실효성이 나타나려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가난이라는 말이 똑같지, 가난이 처해있는 상황은 남북간에 천양지차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더 기부하는 문화, 적극적으로 모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지원단체들은 정부허락을 얻어서 해야 하지만. 정부가 하겠다고 한 영유아 지원등 인도적 지원마저도 허가를 안해주면 종교인들은 감옥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적지원 원칙을 지키는 입장을 고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가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어기는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민간단체는 할 수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생색내려고도 하지 말고 공덕을 땅에 묻어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종교적으로 말해서 천국가서 이자 붙여 받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일 해서 금방 복 받으려 하니까 성과가 제대로 나지 않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종교단체는 숨은 공덕을 만들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나아갔으면 합니다.”라며 우리가 하는 활동이 비록 인정받지 못하고 비난과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종교인이라면 담담히 받아안고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nbsp 행사가 모두 끝나고 스님께서는 평화나눔연구소 현판식에도 함께 하셔서 ‘나중 간자가 앞서간다.’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시면서 늦었지만 앞서 가 줄 것을 당부하면서 다시한번 축하드렸습니다. nbsp 그리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 못다 한 업무를 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20150323 경주 남산 답사 및 행정처 집행위 회의등
오늘 새벽 4시 30분부터 기도를 한 후 5시 30분경에 아침을 먹고 서울로 가기 전에 경주 남산에 다시 올랐습니다. 오늘도 4월 19일에 있을 가을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에 대비한 답사를 겸했습니다. 오늘은 용장골로 올라서 용장사 삼륜대좌불,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3층 석탑을 보고 통일전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nbsp nbsp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어제의 따뜻한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다시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래도 어제 핀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벚꽃등은 움츠러들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nbsp 용장골로 오르는 길은 용장사 3층 석탑으로 가는 어려운 탐로와 일반 탐방로가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어려운 탐방로로 오르셨습니다. 바위가 가파르게 자리잡고 있어서 중간에 밧줄을 타고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먼저 용장사 삼륜대좌불을 보았습니다. 목 없는 부처님이 삼륜대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비록 목은 없으나 그 기운만은 당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지나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을 보니 단순하지만 천년이상을 그 자리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음이 당당해 보였습니다. nbsp 두 부처님을 친견한 후 조금 더 올라가니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마치 산아래를 다 관장하듯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힘들게 여기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3층 석탑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도 했고 낭떠러지가 이곳저곳에 있어서 그런지 CCTV가 설치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용장사 3층 석탑까지 어려운 탐방로로 오는 과정에서 바위에서 미끄러지기도 하셨던 스님께서는 ‘어려운 탐방로는 위험하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오를때는 등산로의 흐름이 원활해야 하는데 정체되기 때문에 어렵겠다.’고 하시면서 나중에 불대생들이 올때는 일반 탐방로로 오는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 nbsp 삼층석탑을 지나 다시 통일전으로 내려왔습니다. 통일암에 도착하니 유수스님, 묘덕법사님이 계셔서 가을불교대 남산순례때 다함께 모이는 장소에 대해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를 의논했습니다. 약 1천여명의 대중이 모이니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수많은 대중들이 다함께 어울릴 수 있을지, 어떻게 장소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셨습니다. nbsp 경주 남산 답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서울로 향했습니다. nbsp 오후 2시부터는 4월 일정을 비롯해 정토회 대중부 1년 일정을 확정하고, 각 사업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듣는 행정처 집행위 회의가 있었습니다. 제8차 천일결사 제5차 백일기도 입재식 기획안을 중심으로 해외총무단 교육수련, 통일학교 기획안, 안산 다문화 센터 준비등 굵직한 사안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뒤이어서 2번의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저녁 8시부터는 신규법사님들의 일정과 역할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정토회 전반에 대한 논의를 위한 법사단 회의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11시가 넘어서야 회의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 내일은 조찬회의를 시작으로 천주교 평화나눔 연구소 개소식에 참가하는 일정이 있습니다.
2015.3.22 한국 귀국 및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 가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nbspnbsp안녕하세요. 스님께서는 어제 오후 인도를 출발하여 오늘 새벽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곧바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해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신 후 두북으로 내려가셨습니다.nbspnbsp어제 오후 2시50분에 인도의 가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를 경유해서 밤 9시30분에 방콕공항에 도착한 후 1시간 30분 동안 방콕 공항에 머문 후 11시 10분에 출발해서 밤새 5시간을 비행하여 오늘 새벽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에 내리기 전 비행기에서 바라본 하늘nbsp스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 앉은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시다가 인천공항에 내려서는 곧바로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전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한 특강수련 법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혹시나 법문 시간에 늦어질 것이 염려되어 잠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항까지 따라온 SBS 촬영팀은 이런 스님의 스케쥴을 보고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nbspnbsp다행히 오전 9시 30분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세면을 하시는 등 정비시간을 가지신 뒤 10시15분부터 작년 가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정토불교대학생들은 어제 오후3시부터 이곳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특강수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 시간에는 그동안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께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이렇게 이번 주말에는 영남권과 중부권 불교대학생들이 이렇게 스님과 수련을 하고, 다음주 주말에는 수도권 불교대학생들이 이렇게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nbspnbsp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수행, 보시, 봉사를 함께 해야 하는 이유, 불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총 8명이 그동안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했습니다.nbspnbsp▲ 가을 정토불교대학 특강 수련nbspnbsp“부처님은 도를 이루기 전에 마왕 파순에게 ‘나는 전생에 셀 수 없는 많은 보시를 했다”고 하고, 정근과 희사의 시간에는 “다겁생래 지은업장 지금 내가 참회하니” 이런 구절들을 보면 전생과 내생을 불교가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전생과 내생이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라고 배웠는데, 업을 지으면 내생에 과보를 받는다는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nbsp“춘다는 부처님 법문을 듣고 한번만에 깨쳤다고 나와있는데 우리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을까요?”nbsp“지난주 근본불교 1강을 들었는데 윤회란 없다고 하셨어요. 맞나요?”nbspnbsp“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하였는데 108배 안하고 마음나누기만 올리면 안될까요?”nbsp“부처님의 세력이 커지면서 왕이나 귀족들의 탄압이 있었는지요? 제가 속한 조직이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이라 정토회라는 것을 밝히면 불이익이 있을 것 같은데 밝혀도 괜찮을지요?”nbsp“명상을 하면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정상인가요? 명상의 의미와 알아차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nbsp“천일결사 입재식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간염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108배 하는 것이 혹시 무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할까요?”nbsp“정토회에 나오게 되면서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분단 문제와 통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 같이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정말 통일은 힘든 걸까요? ”nbspnbsp이렇게 다양한 질문 중에서 두번째 질문인 참 나는 무엇인지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공부를 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인데 오늘 스님께서는 쉬운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나라고 할 것이 없는 고정된 ‘나’는 없다고 배웠는데요. 업식과 까르마도 진짜 나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럼 참 나는 어디에 있고 어떤 것일까요?”nbspnbsp“자기가 자기 엄마를 만나면 자기를 뭐라고 불러요?”nbsp“딸이요.”nbspnbsp“아이는 자기를 뭐라고 불러요?”nbsp“엄마요.”nbsp“남편은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아내요.”nbsp“가게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손님이요.”nbspnbsp“택시 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승객이요.”nbsp“학교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학부모요.”nbsp“절에 가면 자기를 뭐라고 그래요?”nbsp“신도요.”nbspnbsp“이렇게 열번 스무번 물을 때마다 불리는 이름이 같아요? 달라요?”“달라요.”nbspnbsp“그럼 자기는 그 중에 무엇이예요?”nbsp“전부 다요...”nbspnbsp“엄마 노릇을 오래 하면 내가 엄마라고 착각하기 쉽고, 아내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아내로 착각하기 쉽죠. 아내 노릇을 오래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나는 남편이 없는 아내인가’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이것은 자기를 아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자기는 아내예요? 아내 아니예요?”nbspnbsp“아내 아니예요”nbspnbsp“남편이 죽으면 더이상 아내가 아닌데 아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남자랑 다시 손을 잡아야 아내가 됩니다. 남편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아내가 아니예요. 그래서 ‘남편이 죽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내가 벌써 다른 남자를 만나도 될까’ 이런 생각은 다 헛된 생각이예요. 남편이 없는데 자기가 아내라고 착각하는 이것이 ‘자아’ 입니다.nbspnbspnbsp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원한 것이예요? 일시적인 것이예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루든 열흘이든 십년이든 백년이든 천년이든 그것은 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관계가 바뀌면 바로 다른 것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루에 열두번도 더 규정이 바뀌지요. 이것이 존재의 본질이예요. 그런데 그 어떤 것으로 나를 삼을 것인가? 그 무엇도 ‘나’라고 규정할 것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시때때로 그 무엇도 될 수가 있는 거예요. 나는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나 시공간의 한 순간과 한 입장에서는 그 무엇도 될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무아’입니다.nbspnbsp그런데 ‘이것 빼고 또 나는 무엇이냐?’ 이런 생각을 nbsp왜 또 해요? ‘참 나’ 라는 말은 ‘나’라는 것이 있다는 전제 위에 나온 생각입니다. ‘이것이 나다’ 해서 따지고 보니 ‘나 아니네’ 이렇게 되니까 그럼 ‘진짜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엉뚱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짜냐 진짜냐 따지는 것입니다. 가짜냐 진짜냐 하는 것은 없습니다. 진짜 나가 있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 이 얘기만 하면 됩니다.nbspnbsp nbspnbsp그래서 우리는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아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 국민이여야지 중국 국민, 미국 국민이 될 수 없었죠.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한국에서 태어났는데도 중국 사람, 미국 사람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옛날에는 한번 결혼하면 남편이 죽어도 영원히 한 남편의 아내여야 했는데, 요즘은 남편이 살아있어도 헤어지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 가능하잖아요. nbspnbspnbsp만주벌판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고구려 사람이었다면 지금도 다 한국 사람이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 중국 사람이 되어 있죠. 한국 사람들이 다 죽고 중국 사람들이 늘어나서 중국 사람이 되었을까요? 뇌 속에서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중국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일까요? 육체적으로는 그대로이지만 생각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또 양반과 쌍놈이 다 죽어서 양반과 쌍놈이 없어졌어요? 양반이다 쌍놈이다 하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생각이 없어진 것이죠.nbspnbsp‘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있느니까 죽으면 옮겨 다니면서 이것이 되었다가 저것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아트만관에 따라서 윤회니 전생이니 이런 사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아트만은 없다’ 고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고립된 단독자는 없고 모든 것이 다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nbspnbsp자, 여기 물체가 세 개 있습니다. 이 두 개 중에 어느 것이 더 큽니까?nbspnbspnbsp이렇게 하면 이 컵이 커요, 적어요? nbsp이렇게 하면 이 컵이 커요, 작아요? nbsp그렇다면 이 컵은 큰 것이예요? 작은 것이예요? nbspnbsp그러니 첫째, 크다 작다는 언어를 갖고 대답을 하면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둘째, 크다 작다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답하면 그냥 그것일 뿐입니다. 크냐 작냐 열두번을 물어도 ‘그냥 그것일 뿐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셋째,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공’이라고 말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번에는 또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닌 이것은 또 뭐예요?” 이렇게 묻습니다. 왜 꼭 그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이 두개만 비교하면 작은 것이 되지요. 그런데 영원히 작은 것입니까? 이 조건에서만 작은 것이지요. 다른 조건에 가면 큰 것이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크다 할 수도 있고 작다 할 수도 있고, 새것이다 할 수도 있고 헌것이다 할 수도 있고, 신선하다 할 수도 있고 부정하다 할 수도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닙니다. 이것이 연기법이고, 이 연기법에 따라서 ‘무아’가 나오는 것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차근차근 사실적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고, 살펴보고, 있는 그대로 보면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얼핏 보기 때문에 “그건 큰거야”, “그건 작은거야” 이렇게 말 하고 말죠. 즉 사실은 이 컵이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 크다 작다고 하는 것은 인식 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가 다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문제가 아니고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의 논리로 말하면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 됩니다. 크다 작다고 규정되는 것이 ‘색’이고,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공’입니다. 그러니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 되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교리다 뭐다 온갖 것을 다 배우면서도 항상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실체가 있고 불변하는 것이 있다는 사고인 ‘아관’과 ‘상관’이 무의식 속에 깔여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을 배워도 항상 그 틀로 인식을 합니다. 그러니 지식으로는 그 용어를 아는데, 다가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외우는 것입니다. 말로는 불교는 무아이고 무상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아관과 상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 교리를 굉장히 연구해서 박사 학위를 따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내 때문에 괴로운 경우가 있겠지요? 이것은 그냥 불교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지 붓다 담마는 아닙니다.nbspnbspnbsp우리는 지금 불교 철학을 공부하러 왔어요? nbsp종교로서의 불교를 공부하러 왔어요? nbsp과학을 공부하러 왔어요? nbspnbsp우리는 진리로서의 불교인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고뇌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면 내가 병이 안나게 될까요? 내가 병이 나도 웃을 수 있게 될까요? 이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병이 안 나는 게 중요하지 웃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현대 사회로 올 수록 점점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시험에 걸리고 안 걸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해집니다.nbspnbsp부처님은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하셨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하잖아요. 부처님은 왕이 되어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이라고 아셨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저한테 자꾸 찾아와서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잖아요. 그러면 저로서는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굉장히 철학적으로 어려운 내용이였지만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즉문즉설을 통해 인생 상담을 하면서도 그 속에 불교의 핵심 교리를 쉽게 설명해주셨는데, 불교 교리에 대해 질문을 해도 이렇게 쉽게 설명해 주시니 불교대학생들도 무척 기뻐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8가지 질문에 대해 무려 3시간 15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답변을 모두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왜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하는지 한번 더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적어도 우리가 정토행자라면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라면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도 착하고 성실해야 하지만, 주위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그리고 미래에도 이익이 되는 약간의 선지자적인 요소도 있어야 역사 속에서 존경을 받습니다. 자기끼리만 노력해서 자기들 세력만 키우고, 그래서 큰 절 하나 짓고 큰 교회 하나 짓고 자기들끼리 만족한다면, 그래서 세계 최대의 불상이니 세계 최대의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그 교회 밖에서 볼 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정토회는 첫째 개인 수행을 하고, 둘째는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정토회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이 잘 되는 일을 해야 하고, 셋째는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봐도 참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갖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인도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한테는 잘하지만 환경한테는 못하면 결국 사람한테도 해가 되잖아요. 그래서 환경까지 고려해서 살아가는 것이 정토회입니다.nbspnbsp이런 일을 하려면 첫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경비가 들겠죠. 인도에서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다 돈이 들지요. 정토불교대학이 각 도시마다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법당을 유지하려면 다 돈이 들겠지요. 정부나 재벌이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nbsp결국 누가 이 돈을 다 내야할까요? 우리가 이 돈을 다 내야 합니다. 그래서 둘째, 보시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월급을 주는 사람을 고용하면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이겠지요. 그러나 부처님이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법하고, 장자들에게 절을 지으라고 시키면서 그렇게 살았어요? 걸어다니고 나무 밑에서 살으셨죠. 어떻게 보면 그 당시 사회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이였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불법의 원칙에 어긋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법이 좋아서 법문을 듣고 공부하지만, 여기서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은 저와 수행자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되잖아요. 그럼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모든 운영을 수행자들이 와서 역할분담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청소도 하고 방석도 깔고 하는 봉사를 해야 하는 겁니다. 저희 정토회에서는 일체 월급을 주거나 하인을 부리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반찬과 도시락을 집에서 싸오고 그릇도 집에 가서 씻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를 이제 아시겠어요? nbspnbspnbsp우리는 이곳에 수행하려고 모였죠? 첫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보시해야 합니다. 셋째, 봉사해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교리 강의 듣고 부처님 일생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예요. 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전체 학사과정의 50도 안됩니다. 마음나누기를 하면서 자기 체험화해야 하고요. 그리고 천일결사 입재해서 매일 아침 수행을 해야 하고요.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데 깨달음의 맛을 봐야 하거든요. 교리를 이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뇌가 해결되네’ 이렇게 맛을 봐야 정체성이 딱 잡힙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장도 다녀와야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든 작든 형편따라 보시를 해야 이 모든 것들이 유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봉사를 해야 유지가 됩니다. 이곳에는 월급 받고 일하는 그 어떤 사람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주인이예요. 이곳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진해가시기 바랍니다.”nbsp수행, 보시, 봉사를 함께 해나가야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한국에 도착하자 말자 시차 적응도 없이 곧바로 연이어 강행군을 하셨지만, 조금도 피곤한 기색없이 열정적인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불교대학생들은 다시한번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법문을 마치고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을 나오신 스님께서는 곧바로 대기해 있던 차를 타고 경주로 가셨습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문경까지 따라와서 촬영을 하던 SBS PD님은 막 차에 타려고 하는 스님께 “지금 공항에서 오자마자 3시간 동안 강연을 하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일정이 가능하시죠?”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냥 웃으셨습니다.nbspnbsp중부권과 영남권 가을 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경주에서 갑자기 일정이 생기셔서 바로 경주로 이동하셨습니다. 경주일정을 마치신 후 다시 경주 남산으로 향해서 앞으로 있을 불대생들의 경주남산순례에 필요한 답사를 하셨습니다. 더불어 약 20일간 인도에 계시면서 듣지 못한 한국의 봄소식을 산을 오르면서 몸으로 직접 봄을 느껴보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nbsp경주 남산에는 노란 산수유가 피어있고, 진달래도 양지 바른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꽃들과 나무들도 연두빛깔을 잎을 드러내며 봄을 알리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내려오는 중에 멀리서 용장사 3층 석탑을 보며 잠시 참배를 드리기도 하였고, 용장골을 거의 다 내려와서는 목이 없는 절골 석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해 다시 옆길을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남산순례코스 중 용장골 코스가 제일 짧아서 한군데 더 볼 곳을 답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nbspnbsp nbsp nbspnbsp목이 없는 부처님은 약사여래불이신데 어떤 연유인지 목은 없고 아름다운 무늬의 몸만 덩그렇게 있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절터였으나 무너지고 절터의 기단들만 남은 채 부처님은 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곡 여기저기에 탑의 잔재들, 절터의 잔재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이 부처님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랍니다.nbsp약 5.5km의 산행을 끝으로 어제밤 비행기를 탄 이후로 기나긴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경주 남산 추가 답사와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외부인사 만남이 있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