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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오후) 청춘캠프 2일째, 통일 강연
nbsp오전에 순례한 법흥왕릉, 태종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에 이어서 오후에는 도보 순례로 황룡사지,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를 차례로 찾아가 보았습니다.nbspnbsp먼저 황룡사지에 도착했습니다. 광활한 터를 바라보며 이곳에 높이 솟았을 9층탑을 상상해 보았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nbsp황룡사의 금당은 380평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저렇게 큰 법당을 짓기가 어려운데 6세기 경에 저런 건물을 지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진흥왕 때 시작해서 선덕여왕 때까지 4대 왕에 걸쳐 93년의 세월 동안 지었을 만큼 큰 절이었던 것이죠. 황룡사 9층탑은 높이가 227척이니 아마 지금의 아파트 높이로 치면 어림잡아 25층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그 어떤 탑보다 규모가 큰 탑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자부심도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거대한 탑은 몽고의 9차 침입 때 불타버렸다고 합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금 청년들이 앉아 있는 이곳이 황룡사에서 법회가 열렸던 백고좌 강당 터라고 알려주면서 이곳을 참배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황룡사 9층탑은 신라가 통일을 발원한 곳입니다. 통일을 발원한 것은 선덕여왕 때고 통일을 완성한 것은 문무대왕 때입니다. 선덕여왕이 발원했지만 진덕여왕과 태종무열왕을 거치고 문무대왕에 와서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30여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통일의 출발, 기초는 선덕여왕이 쌓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선덕여왕은 지혜로운 분이였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많이 얕보았습니다. 신하 중에도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특히 당태종이 이걸 두고 굉장히 조소했습니다. 당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 중이었는데 어느 날 기도를 하고 있는데 웬 선인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대요. ‘신라는 여자가 임금이 되어 있으니 덕은 있지만 위엄은 없어 외적의 침입이 잦다, 빨리 귀국해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기도하면 적의 침입을 막게 될 것이다’.nbspnbsp1층은 왜,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6층은 말갈... 9층은 예맥, 이렇듯 신라 당시 주위에 신라와 관계 맺고 있는 나라가 아홉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홉 나라의 침입을 막고 국가를 보우하기 위해서 탑을 쌓았다고 해요.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힘을 빌려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탑을 쌓은 겁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통일이었습니다. 완전한 평화는 통일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여러분들도 황룡사 9층탑 앞에서 남북통일을 발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10년 후나 20년 후, 혹은 30년 후에 언젠가는 통일이 완성될 수 있겠죠. 시간이 정확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어요. 5년 후가 될 수도 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고 30년 후가 될 수도 있지만,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것을 소실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 유지는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더 발전하려면 통일밖에 길이 없습니다. 평화는 지금의 상태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고 통일은 우리가 더 발전하는 비전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통일을 발원해야 합니다.”nbsp이렇게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지을 정도로 신라인들이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성이 지극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 정성이 어느 정도일까 돌아봐지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청년들은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강당터부터 시작해서 금당터, 9층 탑터를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9층탑이 있었던 자리를 지나 황룡사지를 빠져나온 청년들은 걸어서 신라인의 얼이 깃든 낭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황룡사지에서 낭산으로 가는 시골길에는 황금 들녘이 펼쳐졌습니다.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익은 벼들이 가을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은 “연휴에 집에 있었으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도보 순례를 기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nbspnbspnbsp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사이 어느덧 능지탑에 다달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탑 뒤로 넓직한 그늘이 보이자 스님은 그늘 속에 자리를 잡고 청년들이 모두 그늘에 앉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그늘이 모자라자 청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스님은 자리를 옮겨 햇살이 있는 곳에 모자를 쓰고 앉아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신라는 이제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마지막으로 동맹국이었던 당나라와 8년에 걸친 기나긴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당나라가 신라 땅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나라와 화친을 맺었으니 신라는 더 이상 아무런 적이 없을 것 같은데, 유일하게 한 나라가 남았어요. 바다 건너에 있는 왜가 신라의 유일한 적국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문무대왕은 자기가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왜적을 막겠다는 원을 세웁니다.nbspnbsp그러니까 어떤 스님이 ‘아무리 나라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축생이 되려고 합니까’ 하고 말렸어요, 용은 축생이잖아요. 육도윤회 중에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이거든요. 축생은 아무리 힘이 세도 인간보다 아래예요. 그러자 문무대왕이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내가 축생이 된들 어떠하리오’라고 답했어요. 이게 신라 당시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입니다.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또 있어요. 김구 선생입니다. ‘나라가 독립만 된다면 내가 중앙청의 수위가 돼도 좋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문무대왕은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그 뼈를 동해바다에 묻어다오. 내가 동해의 용이 되겠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대왕이 죽은 뒤 이곳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여기가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고 해서 여기서 화장을 하고, 뼈를 추슬러서 동해바다의 바위섬에 묻었습니다. 그것을 대왕암이라 합니다.nbsp문무대왕은 무덤이 없어요. 화장하고 그 뼈를 동해에 묻었으니 무덤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화장한 재를 가지고 이곳에 무덤을 대신해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탑을 세웠습니다. 탑은 불교건축물이지만 세속적 의미로 보면 이것은 문무대왕의 무덤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능지탑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문무대왕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 신문왕이 되었습니다. 신문왕은 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 해서 바닷가 조금 안쪽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고, 감은사에서 바다까지 강을 따라 수로를 내어 대웅전 아래까지 물길이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대왕암의 호국룡이 언제든지 법당에 와서 부처님의 법문을 늘 들을 수 있도록 했어요. ‘감은’은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중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 남북을 평화롭게 통일한다면 제가 감은사를 지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nbspnbspnbsp남북 통일에 기여하면 스님이 감은사를 지어주겠다고 하자 청년들도 크게 웃었습니다. 아마도 통일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갈 청년들이 평생을 통일을 위해 몸바친 스님을 위해 감은사를 지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nbsp호국의 정신이 깃든 능지탑을 뒤로하고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솔숲 길을 지나 낭산을 오르니 선덕여왕릉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무덤 한쪽에 빼곡이 앉은 청년들에게 스님은 선덕여왕과 관련된 신령스러운 설화 3가지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면서 지금도 배울 점이 많은 선덕여왕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 선덕여왕릉nbsp“여왕은 자기 당대에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통일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김춘추, 김유신 등 통일의 주역들이 전부 30대에 선덕여왕을 보필했던 친위세력입니다. 그 사람들이 결국 30년 후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재를 양성하고 다양한 문물을 진작시킨 왕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nbspnbsp이제는 옛날과 달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활동하는 시대입니다. 세계 각국에는 여왕뿐 아니라 여성 대통령도 나오고 여성 수상도 많잖아요. 여성도 남성과 다름없이 아주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시대죠. 선덕여왕의 이런 리더십은 지금도 배울만하다 싶습니다.nbspnbspnbsp남성들이 가진 폭력적 리더십보다는 어머니가 갖는 포용적 리더십을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대처리즘 같은 것도 보면 좀 폭력적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이라고 하면 뭔가 센 걸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 리더십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닦고 마련해주는 것이 앞으로 미래의 리더십입니다.”nbsp여성 지도자의 포용적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나라의 현 대통령의 모습과 자연스레 비교를 하게 되면서 무엇이 훌륭한 리더십인지 많은 것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선덕여왕릉을 내려온 청년들은 오늘의 마지막 순례 장소인 사천왕사로 향했습니다. 한낮을 따깝게 비추던 가을 햇살이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후 햇살을 받으며 스님은 사천왕사는 당시에 어떤 연유로 지어진 절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당나라는 20만 대군을 훈련시켜서 신라를 침공하려 합니다. 신라는 신앙심으로 이를 막아내야 한다고 해서 명랑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명랑법사는 그 당시에 신을 부려 기적을 행하는 종파를 이끌고 있었는데, 국난 극복 요청을 받고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신의 은덕을 입어야 합니다.’라고 했어요. 여기가 신라 대대로 성스럽게 여기는 성스러운 터인데 ‘신유림’이라고 했습니다. 신들이 노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이 신유림에 사천왕사라는 절을 지어 제석 환인과 사천왕과 팔부 신장의 도움을 얻어야 당나라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이곳에 급히 사천왕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유가승 12명이 문두루 비법을 행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 기도를 했더니 서해 바다에서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20만 당나라군을 싣고 오던 배가 서해바다에서 폭풍에 휘말려 모조리 파선되어 버렸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nbspnbspnbsp그래서 이 사천왕사는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절,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절이에요.”nbsp이어서 스님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갖는 의미와 한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어쨌든 신라는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성장했습니다. 동쪽에 치우친 작은 나라였던 신라가 어떻게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울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신라가 국제적 역학관계를 잘 이용한 것도 배울 게 있어요.nbspnbspnbsp반면, 신라는 역사의식이 없었어요.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가 아닙니다. 환인의 한나라, 환웅의 배달 나라, 그리고 단군의 조선 나라의 역사를 계승한 역사의식이 신라에는 없었습니다. 박혁거세가 신라의 왕이 되었다 뿐이지 신라 이전에는 어떤 나라인지가 없어요. 그런데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한 나라이고 부여는 조선을 계승한 나라였어요. 조선은 배달나라를 계승했고 배달나라는 환인의 한나라를 계승했고, 이게 아주 분명하잖아요. 환웅은 환인의 아들이었고 단군은 환웅의 아들이었고 해모수는 단군의 아들이었고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었고, 이렇게 역사가 계승되어 갔습니다. 이것이 민족사의 정통이에요.nbsp그런데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부족국가가 발전해서 벼락부자가 되듯 갑자기 커진 국가니까 역사의식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제 나라의 이익밖에 모를 뿐 민족사 전체의 이익을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사를 축소시키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신라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런 부족한 면이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 남한도 어려운 조건 속에서 상당히 부강해진 데 비해서 남한의 지도자나 국민들은 역사의식이 부족합니다.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어요. 북한의 존재가 귀찮으니까 중국이 북한을 관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자꾸 중국에 가서 북한 좀 어떻게 해보라는 소리가 나오죠. 남한의 지도자가 남한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까지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과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민족의 지도자예요.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현재의 남한은 신라 꼴이 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서 우리의 적대국인 북한을 멸망시키고 위험은 제거할지 몰라도 북한이 중국에게 관리되는 보호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과거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신라가 어떻게 부강해졌느냐에서 배울 점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민족사 전체로 보면 손실이 생겼는가를 알아야 해요. 우리 민족사의 축소를 가져온 요인은 신라의 역사의식 부재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발해가 멸망하면서 우리는 역사의식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고려부터는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하게 된 겁니다.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한 게 지금 천 년이 넘어버렸어요. 우리가 만약 통일을 해서 동아시아의 변방으로 전락했던 것으로부터 동아시아의 자주국가로 돌아서면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백년의 한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천년의 한을 풀게 될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 기회가 지금 주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신라의 비약적 성장 과정에서는 많은 배울 점이 있지만 역사 의식의 부재는 큰 손실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천왕사에서의 설명까지 마치니 정말 오늘 하루는 2천년의 역사를 넘나들며 기나긴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역사 이야기는 이렇게 과거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역사기행을 마치고 나니 지금 우리들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사천왕사 순례를 마친 청년들은 곧바로 숙소인 보문 청소년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걸었더니 스님도 피곤함이 있었는지 잠시 휴식을 취했고, 청년들은 저녁 식사를 하며 잠시 여유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련원 대강당에서 ‘통일코리아를 향한 청년의 상상력’을 주제로 스님의 통일 강연이 열렸습니다. 원래는 10명 정도가 오늘 역사기행을 하면서 그리고 평소에 통일 관련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첫 번째 질문자에 대한 답변이 길어지면서 스님은 질문 하나만 받고 그 속에 통일코리아의 비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보문 청소년수련원nbsp오늘은 한 여학생이 첫 번째로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시 신라에 비해 오늘날 한국은 자주성이 약한데 이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오전에 무열왕릉에 가서 스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나라와도 전쟁을 해서 영토를 회복하고자 했다고 하시면서 신라는 그런 자주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해서 그런 자주의식이 있을까 물어보신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친일파도 대거 정리되지 못했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신라처럼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nbsp“네, 저도 그런 의문이 들고 있어요. nbspnbspnbsp“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내부를 통합해서 외세에 대응을 잘 할 수 있을까요?”nbsp“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외세를 몰아내야 한다고 너무 생각하면 안 돼요. 요즘은 전 세계가 서로 협력해서 살아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웃 나라에 대해서 너무 배타적이여서는 안 돼요. 그렇다고 너무 이웃 나라에 종속이 되어서 끌려다녀도 안 돼요. 남한은 좀 종속적인 면이 강하고, 북한은 너무 배타적인 면이 강해요. 자주적이되 협력적이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갖되 이웃 나라와 상호 협력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 면에서 한국이 미국에 대해서 반미를 하는 것은 국가 이익에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미국과는 긴밀한 협력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에 이롭습니다. 과거에는 한미 관계가 돈독했지만 그것은 미국에 종속된 한미 관계였습니다. 즉,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는 한미 관계였습니다. 앞으로는 자주적 한미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nbspnbsp종속적 한미 동맹과 자주적 한미 동맹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친미에서 반미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의 이해 관계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대한 이해 관계는 우리가 미국의 이해 관계에 동조해주지만 한반도에 대한 이해 관계는 한국의 이해가 먼저 되고 미국이 여기에 협력해주는 정도는 최소한 회복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도 회복 못한다면 그것은 종속적 한미 관계입니다.nbspnbspnbsp옛날에는 우리가 북한의 침략에 대해서 우리를 지킬 수 없었고, 그래서 미국이 도와주는 수준이였기 때문에 종속적 한미 관계를 통해 나라를 지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고맙게 생각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옛날의 대한민국이 아니고 경제력이 세계 13위가 될 정도의 규모있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종속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옛날에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 역할을 했던 것이나 조선이 명나라에 대해서 사대주의적인 예를 취해서 한글을 만들자고 할 때도 ‘어떻게 우리가 한글을 만들면 되나?’ 이렇게 말했던 수준의 사대주의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또 이것을 잘못 오해해서 반미로 가서도 안 되고 과거에 해오던 대로 종속적 한미 관계로 가서도 안 됩니다.nbspnbsp그렇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을 하면 통일한국은 미중의 세력 균형이 될 수 있어요. 미국 쪽에 조금 더 서 있지만 중국과도 균형을 이루어서 세력 균형을 잘 잡게 되면 우리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가 평화지대로 갈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 통일한국이 되려면 북한이 잘 해야 될까요? 북한은 일본도 못 움직이고, 중국도 못 움직이고, 미국도 못 움직여요. 그러나 한국 정부가 딱 제대로 잡히면 미국, 중국, 일본도 좀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설득을 하면 우리한테 유리하게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역할을 잘 하는 것입니다. 북한 정부는 우리가 아무리 잘 하라고 얘기해도 안 들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나 한국 정부는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고 헌법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그런 정부를 선택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아무 관심이 없잖아요.nbspnbspnbsp현재 우리나라는 이것도 문제이고 저것도 문제이고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또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일 문제에 있어서 정말 의지가 분명하고 치우치지 않은 합당한 정책을 자주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과 세력을 지지해서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1번 우선 순위입니다. 그리고 2번은 경제 민주화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3번은 정치적인 권력이 너무 대통령과 중앙 정부에게 집중되어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지방자치가 거의 연방 수준으로 분권이 되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도 내각으로 옮겨가서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지역주의에 기반한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꿔나가고, 다당제에 의한 연립정부 형식으로 나아가야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수용될 수가 있습니다.”nbsp한미동맹을 종속적인 관계에서 자주적인 관계로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남북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통일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자 사회자가 나와서 다시 한번 스님에게 청년들을 격려하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2시간이 넘도록 이미 격려를 해주었는데...” 하면서도 청년들 위해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자기 권리를 찾을 줄 알아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통일을 위해 청년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너무 이기적이면 안 되지만 자기 권리도 찾을 줄 몰라서는 안됩니다. 자기 권리를 찾을 줄 모르면 착한 것이 아니고 바보예요. 자기 권리 주장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은 탐욕이에요. 재벌은 지금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을 부리는 것입니다. 개인도 탐욕을 버려야 하지만, 국가는 탐욕을 규제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은 자기 권리를 찾을 줄 알아야 하고,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탐욕을 개인의 권리처럼 방치하고, 개인의 권리를 욕심부리는 거 아닌가 하면서 주장하지 마라고 그럽니다. 여러분들이 탐욕은 버리되 권리는 주장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청년으로서의 권리, 시민으로서의 권리, 애기 엄마로서의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크게는 두 가지 권리가 있어요. 우리는 정부에 이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그럴 때 반정부적이라고 해도 기죽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선거 때 권력을 교체할 권리가 법에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청춘콘서트를 하는 이유는 첫째, 청년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살만하다, 다시 일어나 봐라, 이렇게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지만 둘째는 우리가 힘을 합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여러분들이 좀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싶어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때요?“nbspnbsp“네 맞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셨으면 해요. 직장 그만두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연애나 결혼을 하지 마라는 얘기도 아니고, 아이도 낫지 마라는 얘기도 아니예요.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다만 얼마라도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쓰자는 겁니다.“nbspnbsp2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고 마지막에 당부의 말씀도 아낌 없이 해준 스님에게 청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정말 오늘 하루는 신라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서 종합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스님의 지혜가 묻어난 방대한 이야기들이 청년들의 가슴 속에 어떻게 담겨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청년들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보문 청소년수련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수련원을 출발하여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법문을 하느라 피곤했는지 감기약을 챙겨 드시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용성조사님의 오도 기념일을 맞이하여 다례제에 참석한 후 정토 경전반을 수강하는 60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념 법문과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
2015.10.10 (오전) 청춘캠프 2일째, 경주역사기행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청춘캠프 2일째를 맞이하여 400여명의 청년들과 경주역사기행을 한 후 ‘통일코리아와 청년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아침 8시에 경주로 향했습니다. 법흥왕릉 앞에서 청년들을 기다리며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9시 30분에 청년들이 도착하자 함께 법흥왕릉으로 올라갔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으로 올라가는 길nbsp청년들도 저 멀리서 황금 들녘을 사이로 법흥왕릉을 향해 걸어 올라왔습니다.nbspnbsp오늘은 하루 종일 신라의 삼국통일과 관련이 깊은 유적들을 차례대로 순례할 예정입니다. 순례는 법흥왕릉을 첫 코스로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법흥왕릉 앞에 모인 청년들에게 “무덤 앞에 왔으니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겠죠”라며 선 채로 합장 삼배를 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먼저 약소국이였던 신라가 통일의 주역으로 올라설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든 사람이 법흥왕이라고 하면서 이곳에서 역사기행을 출발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내물왕 때인 AD 400년에는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라가 가야보다 문명 수준과 국력이 약했어요. 가야는 낙동강 유역에 6개의 부족국가를 갖고 있었고 바다 건너 지금의 일본 땅에도 가야의 부족국가가 있었습니다. 이 때 가야와 왜의 연합군이 신라를 침공했어요. 위기에 처한 신라의 내물왕은 고구려에 조공을 바쳐 신하의 예를 취하고 원군을 청했습니다. 당시 고구려 왕이 광개토대왕이에요. 광개토대왕은 5만 군대를 신라에 보내서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격파했고, 신라는 국난을 피했습니다. 그래서 신라는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신라가 그만큼 약소국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신라가 어떻게 삼국통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이걸 우리가 역사에서 연구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통일의 주역으로 올라설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든 사람이 여기 있는 법흥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곳까지 왔어요.”nbsp그러면서 스님은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 신라와 가야가 합의 통일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법흥왕 때 와서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 등 개혁 개방 정책을 쓰면서 국력이 신장되기 시작했고, 이 신장된 힘을 가지고 신라는 가야와의 통합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입니다. 스님은 그 과정에서 지금의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해법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야와 신라는 이웃이긴 하지만 130년 전에 가야가 신라를 침공해서 신라가 망할 정도의 위기에 처했던 철천지원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흘러 거꾸로 가야는 약해지고 신라가 강해졌어요. 신라 쪽에서는 옛 원수를 생각해서 무력으로 가야를 침공해서 통합하고 원수를 갚자는 요구가 많았겠죠. 반면 가야는 옛날에 자기들이 잘 살았으니 지금은 약간 힘에 부치긴 해도 신라가 침공한다면 목숨 걸고 싸워서 침략을 막아야겠죠? 이것이 통상적인 관계예요.nbspnbspnbsp현대의 우리나라에 비춰보면 상황이 유사하죠? 과거에 북한이 잘 나가고 남쪽이 못 나갈 때 북한이 남쪽을 침략해서 남쪽이 망할 뻔 했는데 미국의 힘을 빌려서 간신히 막아냈어요. 그런데 60년이 지나면서 남쪽이 힘이 세지고 북쪽이 약해지니까 남쪽에서 북쪽을 붕괴시켜버리고 흡수통일하자는 주장들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이 똑같이 전개되고 있어요.nbsp그런데 이때 신라에서 힘으로 가야를 몰아붙이지 말고 가야와 협상해서 통일을 하자는 소위 평화적 통일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신라 안에서도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었겠죠. ‘무슨 소리냐, 원수를 갚아야지’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봐야 전쟁의 피해만 많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가야 쪽에도 협상을 통한 통일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강력하게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할 때 신라를 중심으로 통합하게 되었어요. 즉 신라가 강하니까 신라 중심으로 통합하되 대신 신라는 가야의 요구조건을 들어준 것입니다.nbspnbspnbsp두 가지 요구조건이 있었어요. 하나는 가야의 신앙, 사상을 신라가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불교신앙을 신라가 먼저 공인하라는 것이 가야의 요구조건이었어요. 두 번째는 가야 지배층의 신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통합 이후에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고 통합된 나라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을 보장해달라고 했어요. 신라가 이걸 수용해줬습니다.nbsp요즘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남북한을 통일하기 전에, 남한 중심으로 통합하겠다 한다면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면 공산주의 활동을 우리가 먼저 허용해야 합니다. 즉 통일된 이후에도 자기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가지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합법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이 남한에 통합되는 것에 동의를 하도록 했다는 겁니다.nbspnbspnbsp두 번째는 그 당시가 혈통사회니까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인정해 준 겁니다. 이게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부분 통합을 하면 약한 나라 쪽의 왕족은 전부 평민도 아닌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런데 신분을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거예요. 남북한이 통합될 경우, 북쪽의 별 두 개짜리 소장이라고 하면 통합한국군에 그대로 부임하는 셈입니다. 북쪽 군대는 해산해버리고 남쪽 군대만 남기는 게 아니라 남북통합군을 편성하고 북쪽에서 장군이었던 사람도 사단장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셈이에요. 북한에서 도지사 했던 사람은 도지사를 그대로 하도록 허용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왕만 빼고요. 가야가 신라의 한 주로 편성되었으니 가야 왕은 왕이라는 이름은 없어졌지만 가야 전체 지역을 총괄하는 성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용해달라는 요구를 신라가 받아들여 주었어요. 이것을 포용정책이라 합니다. 강자가 양보하면 포용이라 하고 약자가 양보하면 굴복이라고 해요.nbspnbsp이렇게 해서 신라와 가야는 전쟁을 통한 통일이 아닌 합의 통일을 했습니다. 합의 통일을 할 때 그 중심을 가야가 아닌 신라에 두는 대신 신라는 가야의 신앙과 가야 사람들의 신분을 그대로 보장해주었어요. 그래서 신라와 가야가 통합을 이룬 것입니다. 그것을 성사시킨 사람이 법흥왕입니다.nbspnbsp그런데 신라와 가야가 합의통합을 하니까 단순히 영토와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야는 신라보다 문물이 앞서고, 철기문화가 발달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밀양 가다 보면 낙동강변에 물금이라는 역이 있습니다. 물금은 삼국시대부터 유명한 철광석 산지입니다. 그 가야의 철기문화가 신라에 들어오면서 신라의 무기와 농기구가 급속도로 철기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국력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특히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농업 생산량도 크게 늘었습니다.nbspnbsp단순 통합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 힘을 가지고 다음 왕, 즉 진흥왕 때 백제와 힘을 합해서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더 치고 올라가서 지금의 강원도, 함경남도까지 점령했어요. 한강유역 점령을 기록한 진흥왕순수비가 북한산순수비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함경남도에 비석이 둘 있어요. 마운령비와 황초령비입니다. 신라의 영토가 북쪽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대가야가 신라에 통합되면서 낙동강 유역이 전부 신라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에는 창녕순수비가 있지요. 이렇게 영토가 세 배 정도 늘고 국부 또한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의 인재들이 신라의 인재로 들어오면서 다음에 삼국통일을 할 때 중요한 활약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김유신 장군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자예요. 가야 출신 사람들이 신라에 와서 출세한 쪽은 주로 군대를 통해서였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북한 출신들이 남쪽에 와서 출세하는 길도 아마 군대일 겁니다. 그리고 예술 분야도 있어요. 가야금도 가야에서 신라로 들어온 악기입니다. 북한 사람들도 악기를 잘 다루잖아요.nbspnbspnbsp이렇게 해서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힘을 가지고 신라는 삼국통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거예요. 그 기초를 닦은 것은 법흥왕이고, 그 힘을 빌어서 신라의 영토를 세 배 이상 넓인 것은 다음 왕인 진흥왕이었습니다.”nbsp신라와 가야의 합의 통일을 지금의 남북 관계에 비춰서 설명을 해주니 그 당시에 얼마나 쉽지 않은 결정을 했는지 금방 와 닿았습니다. 지금 남한이 그런 포용 정책을 취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신라와 가야의 통합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우리 역사 속에서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통합한 삼국통일은 흡수 통일이었기 때문에 민족사 전체적으로는 손실도 있었지만, 신라와 가야의 합의 통일은 부작용 없이 국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을 봐야 합니다. 통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이 국력을 크게 키워줬다는 거예요. 우리가 만약 힘으로 남북통일을 한다면 남북이 통일되는 것에 그칠 뿐입니다. 1 더하기 1이 2가 되는데 그치지만 남북이 합의통일을 한다면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5나 10이 됩니다. 남북이 합의통일을 하면 통일한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힘이 중국과 일본까지 연대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는 기초가 되고, 다시 이것이 세계 문명이 동아시아로 오는 기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남쪽이 북쪽을 무력으로 통합하게 되면 북한의 배후로 간섭을 하려드는 중국은 통일된 한반도와 적대관계가 되겠죠? 한중 양국이 적대관계가 되면 우리가 통일은 할지언정 통일 이후가 밝지 못합니다. 남북이 합의통일을 함으로 해서 단순 통일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과도 협력해서 아시아에 새로운 평화지대를 구성하고 협력을 강화시키는 기초를 닦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비전을 정할 때 통일을 끝으로 보면 안 돼요. 통일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통일이 출발이고 그 다음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그 다음으로 새로운 문명의 중심인 동아시아 시대를 가져오겠다는 목표 하에서 우리가 통일의 길을 가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통일이 어떤 통일인지에 따라서 통일만으로 끝날 수도 있고, 통일 이후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고, 통일이 시너지 효과를 낳아서 통일의 징검다리를 거치고 더 발전하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국내의 예가 바로 신라와 가야의 통합입니다.”nbsp역사기행의 시작부터 정말 가슴 뛰는 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외국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역사가 현재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다음 순례 코스인 태종무열왕릉으로 향했습니다. 태종무열왕릉 앞에서도 먼저 다함께 합장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이곳에서 스님은 태종무열왕이 된 기춘추가 삼국 통일에 어떤 기여를 했으며 특히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어떻게 외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 태종무열왕릉nbsp“국가적 위기를 막기 위해서 외교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삼국 통일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즉 내부적으로 정치를 안정시키고 신라의 군사력을 키운 것은 김유신이고 그것을 수, 당과 외교를 해서 위기를 막았을 뿐 아니라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쪽으로 외교전을 펼친 것은 김춘추예요. 그래서 김춘추가 삼국통일의 3대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김춘추, 김유신, 여기에 통일을 완성시킨 문무대왕, 이 세분을 우리가 삼국통일의 영웅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이곳에서는 실제 통일 과정에서 일어나는 외교전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지금 통일로 가려면 외교전이 중요해요. 그래서 가야와의 통합에서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 거냐를 생각해야 하고, 실제로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외교전을 펼쳐갈 거냐는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 외교전이 동맹국과 다시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는 문제가 발생해요. 우리가 한중동맹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중국과 싸우게 될 수도 있고 한미동맹을 했다가 나중에 다시 미국과 싸우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 정도로 국가 이익이라는 관점이 분명한 가운데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통일의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기 있는 태종무열왕은 신라의 왕권을 강화하고, 즉 내정의 혼란을 막아내고, 외교전을 펼쳐서 실제로 통일에 중요한 기회를 만든 사람입니다.”nbspnbsp이렇게 설명을 마치고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해 뒤이어 더 큰 규모로 조성되어 있는 4개의 무덤 주위를 한바퀴 산책하듯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큰 무덤 앞에서 다같이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신라의 청년들로 구성된 화랑도가 삼국통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듯이 오늘 이 청년들도 남북통일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태종무열왕릉을 걸어나오면서 스님은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역사기행으로 공부삼아 왔지만 다음에 올 때는 데이트하러 오세요. 결혼하면 애들 손잡고 여기 와서 역사 이야기도 해주면서 키우면 아이들이 역사의식을 갖게 됩니다. 우리 선조들을 보면 부모가 어릴 때부터 환웅 천왕이며 단군 왕검에 대한 이야기를 늘 해준 사람들은 나중에 역사의식이 뛰어납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어릴 때 학습 과정을 보면 집안의 가정교육이 그랬던 사례가 많습니다. 유대인들의 가정교육이 그래요. 학교에서 학습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가정에서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자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배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말은 달라도 공유하는 역사는 같습니다. 러시아 가서 사는 유대인들은 다 러시아말을 쓰고 프랑스에 살면 프랑스말을 씁니다. 그러나 역사는 말과 관계없이 똑같이 배워요. 우리는 지금 말을 더 중시하지만 역사의식이 훨씬 더 중요해요.nbspnbspnbsp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말과 글은 다 우리와 같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중국 역사를 국사로 배웁니다. 조선 역사는 못 배워요. 그러니 우리와 공유하는 역사의식이 희박하고 중국 안의 한 소수민족으로서 살아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민족의 뿌리에 해당되는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칩니다.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일제시대 때부터 공부해서 일본 교수로부터 배운 것으로부터 현대적 학문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민족의 뿌리에 대한 역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전통 때문에 한국의 역사교육은 과거에 대한 지식만 좀 배울 뿐 역사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nbsp역사의식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태종무열왕릉을 빠져나왔습니다.nbspnbsp다음은 김유신장군묘로 향했습니다. 김유신 장군 역시 김춘추와 함께 삼국통일의 주역 중에 한명이죠.nbspnbsp▲ 김유신장군묘nbsp김유신장군묘에서는 김유신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여러 일화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면서 청년들의 흥미를 유발한 뒤 나당 전쟁을 예로 들며 김유신 장군을 비롯해 당시 신라가 가졌던 자주적인 면모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선덕여왕과 진덕여왕 두 여왕을 모시면서 정치외교는 김춘추가 맡았고, 국방은 김유신이 맡았습니다. 이것은 나쁘게 말하면 군정유착이라 볼 수 있고, 좋게 말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국내 정치를 안정시켰다고 볼 수 있어요. 왕위쟁탈전 때문에 늘 시끄러웠는데 양쪽의 힘이 뭉치니까 누가 반란이나 모반을 일으켜도 금방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660년에 백제가 멸망했고 태종무열왕이 661년에 죽었어요. 그리고 문무대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당나라가 신라와 협공을 해서 그 강대하던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거기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9개의 도독부를 설치해서 고구려를 직할통치했습니다. 신라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분개한 신라가 항의하자 당나라는 오히려 신라에 계림도독부를 설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신라 조정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런 당나라에 복속되어 고개 숙이고 살 거냐, 부당함에 맞서 싸울 거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문무대왕이 요즘 말로 민족주의자였고 김유신도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이대로 복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부분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며 반대했지만 신라는 결국 한반도에 들어와 있는 당나라군을 선제 공격해서 쫓아내버렸습니다.nbspnbsp그래서 당나라 본토에서 신라로 20만 대군이 침공해 들어와 나당전쟁이 시작되었어요. 당나라는 신라 왕을 폐위시키고 당나라에 와 있는 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신라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자기들 멋대로 ‘문무왕은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인문 네가 왕이다’ 이렇게 해버려서 싸움이 붙은 게 나당전쟁입니다.nbspnbspnbsp이럴 때 김유신이 자기 조카이기도 한 문무대왕을 보필하며 노장으로서 활약해 삼국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라를 나쁘게 본다면 외세와 협력해서 동족의 나라를 없앴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면이 있어요. 그러나 한편 다른 시각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정도의 자기 자주성을 갖고 그것을 지켰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렇듯 김유신은 무장으로서는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김유신 장군을 비롯한 당시 신라인들이 가졌던 자주성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nbsp▲ 김유신장군묘 둘레에 세밀하게 새겨진 십이지신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스님nbsp자리에서 일어난 스님은 여기서 같이 사진을 찍자 하며 김유신장군묘 앞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습니다. 계단 위에 빼곡이 선 400여명의 청년들은 길가에 만발한 코스모스처럼 활짝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김유신장군묘에서 조금 걸어내려와 흥무공원에 조별로 흩어져서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선선한 가을 바람을 쐬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 흥무공원에서의 점심 식사nbsp배를 두둑이 하고 오후에는 도보 순례로 황룡사지,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를 차례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
2015.10.9 청춘캠프 1일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김제동씨와 함께 청춘콘서트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며 농사일을 했습니다. 얼마 전 심어 놓은 가을 배추가 지난번에는 새싹만 나와 있던 것이 오늘 와서 보니 커다란 배추로 다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거 봐라. 배추 잘 자랐지?‘ 하면서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리고 무는 잎이 푸릇하게 잘 자란 무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무도 있어서 “무를 너무 촘촘하게 심은 것 같다”고 하면서 사이 사이를 속아주는 일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지난번에 심어 놓은 가을 국화는 잘 자라서 꽃잎의 색깔이 선명한 것도 있고 약간 시들해진 것도 있어서 싱싱한 것을 위주로 다시 자리 배치를 하니 마당의 분위기가 더욱 화사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특히 가을 배추가 한가득 자라 있는 밭고랑 사이에는 고소가 잘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손수 고소를 한바구니 정도 따서 직접 손으로 씻었습니다. 김제동씨가 오후에 오기 때문에 정성이 들어간 밥을 먹여주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엿보였습니다.nbspnbspnbspnbsp한편 그저께부터 최말순 보살님은 김제동씨가 시골에 내려오면 꼭 맛보게 하고 싶다며 산에서 주워 온 도토리로 묵을 쑤기 위해 3일째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껍질을 까고 물에 불렸다가 다시 갈고, 도토리묵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 묵은 정말 쫀득쫀득 하고 맛있었습니다.nbspnbsp두부찌개, 도로리묵 등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김제동씨가 오면 같이 점심을 먹고 청춘캠프가 열리는 청소년수련원으로 함께 이동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라 명절 때보다 차가 더 막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은 김제동씨를 계속 기다리다가 청춘캠프에서 하기로 한 강연 시간이 다 되어서 곧바로 청소년수련원으로 이동했고, 김제동씨는 스님이 강연을 하는 동안 뒤늦게 도착해서 때 늦은 점심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nbspnbsp경주로 가는 길에 두북 정토수련원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고 해서 잠시 내려서 구경을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연휴를 이용해 몇몇 봉사자들이 농사 울력을 하러 와 있어서 스님은 “수고가 많다”고 격려를 해준 후 같이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에 찾아온 자원봉사자들과 함께nbsp그리고 스님도 활짝 핀 코스모스처럼 환한 웃음을 띠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흰색, 분홍색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가 함께 함께 어우러져 잠시나마 스님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코스모스nbsp잠시 여유를 부리고 출발했는데, 경주 시내로 진입하니 경주엑스포가 한창 진행 중이여서 그런지 곳곳에 차가 막혀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강연 시간에 늦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본격적으로 아이패드를 들고 지도 앱을 열어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경주가 고향이여서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스님은 이 방향이 막히면 저 방향으로, 저 방향이 막히면 또다른 방향으로, 이러지러 노선을 바꾸어가면서 막힌 차선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분 걸릴 거리를 1시간 10분이 걸려 겨우 강연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nbspnbsp오늘 청춘캠프가 열리는 경주 청소년수련원에는 지난 6월부터 4개월 동안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청춘콘서트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서포터즈와 청년학교 재학생 4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행사는 그동안 청춘콘서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수고가 많았지만 정작 행사를 진행하느라 스님의 강연을 제대로 듣지 못한 청년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nbspnbsp스님은 도착하자마자 지체없이 곧바로 강연장으로 항했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청년들은 큰 박수와 함성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 경주 청소년수련원nbsp스님은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길이 막혀서 오신다고 고생이 많았죠? 같은 돈 내고 차를 두 배 탔으니 좋은 일입니다. 저도 오면서 길이 막혀서 이리저리 가도 한참 걸렸습니다. 제가 경주 출신인데도 이리 가면 안 막힌다고 안내했는데 가보니 막히고, 저리 가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그리 가자 하니 또 막혀 있었어요. 그래서 20분이면 올 걸 1시간 10분 걸렸어요.”nbspnbsp질문 하고픈 사람은 손 들어 보라고 하자 10명의 넘는 청년들이 이곳저곳에서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질문할 사람이 많은 관계로 스님은 평소보다 짧게 짧게 대답을 하면서 조금은 스피드하게 즉문즉설을 이끌어 갔습니다.nbspnbsp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고 하더라도 계속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 법륜 스님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할말이 전혀 없어서 대화 자체가 안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눈물이 자꾸 나는데 어떻게 감정을 조정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청년학교에서 만난 친구랑 곧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자 친구와 성격이 서로 달라 결혼 준비 과정에서도 충돌이 가끔 있는데 어떤 마음 가짐으로 결혼을 해야 하는지, 불교의 팔정도에서 이야기하는 ‘바르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IS는 과연 팔정도의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장유유서라는 말이 있는데 어른을 왜 공경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에는 금방 수긍을 하고 받아들이는데 정작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오히려 잘 듣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례식에 다녀와서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졌고 앞으로 남미 여행을 앞두고 있는데 할머니도 병환이 있으셔서 죽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소개팅을 여러 차례 나갔지만 외모만 보고 거절당하는 경우가 반복되었고 여자를 만나는 것도 이제 두려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막무가내로 추진되고 있는데 이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김제동씨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는데 펜으로서의 마음을 넘어서서 이성적인 감정이 자꾸 생겨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너무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부끄럽지만 이 자리가 아니면 안 되어서 말씀드립니다. 나이 서른 살에 제가 이렇게 김제동 오빠에게 빠질 줄 몰랐어요. nbsp팬심으로 좋아하면 되는데 짝사랑과 비슷하게 너무 빠져 있으니까 주위에서 정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입니다. 덕분에 청춘콘서트에 가서 스님 말씀 듣고 감명 받고, lt새로운 100년gt도 읽고,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계속 기울이게 되고, 뉴스와 책을 읽으면서 변해가는 제 모습이 좋긴 하지만,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팬심만 남기고 사랑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nbspnbsp“그걸 왜 내려놓아요?”nbsp“내려놓고 싶은데 내려놓아지지가 않아요.”nbspnbsp“기독교의 모든 신앙, 불교의 모든 신앙이 다 짝사랑인 거 알아요? 종교는 짝사랑이에요.”nbsp“그렇긴 한데 이 상태가 이어지면 어쩌나 걱정돼요.”nbsp“계속 이어져도 괜찮아요.” nbspnbsp“제 나이가 있다 보니 집에서 부모님도 너무 걱정하세요. ‘언제까지 김제동에 빠져 있을 거냐, 그만 돌아와라. 그러다 서른 다섯 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시거든요.”nbsp“서른 다섯 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잖아요. 부처님을 좋아하면서 결혼 생활 할 수 있어요. 법륜 스님을 좋아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어요. 김제동 오빠를 좋아하면서도 결혼할 수 있고, 김제동 오빠를 좋아하면서도 스님 될 수 있고, 아무 문제 없어요.” nbspnbsp“그럴 순 있는데 저는 여기에 너무 이성적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저도 예전에 이기성 작가님을 좋아해서 온라인 ID며 비밀번호도 전부 작가님 책 관련된 걸로 할 정도였지만 그때는 작가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스스로도 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nbsp“남자인데 그럼 남자로 보이지 여자로 보여요?” nbsp“그래서 뭔가 이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마침 누가 말해주길, 거절을 당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nbsp“그럼요. 거절 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야죠.”nbsp“거절 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거절을 당하기 위해 제가 이 자리에 섰는데... 혹시 김제동 오빠가 사인지에 ‘이제 그만’이라고 써주실 수 있을까요? 증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이건 현실이 아니다, 너는 이상적이다’라고 해도...”nbsp“이상이 아니라 현실인데요. 뭘. 내가 저 사람 좋아하는 게 현실인데 어떡해요?”nbsp“제가 세종대왕님을 좋아한다고 해도 세종대왕님은 이미 돌아가셨잖아요. 그것처럼 아무리 좋아해도 제가 이성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nbsp“짝사랑이란 영원히 배신이 없는 사랑이라니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어요. 그냥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에는 부작용이 없어요. 그런데 절에 다니다 교회가거나 교회 다니다 절에 왜 가느냐면, 짝사랑을 쌍방의 사랑으로 해보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도 나한테 뭘 좀 달라는 거예요. ‘부처님께 기도할 테니 우리 아들을 대학에 넣어다오’ 이렇게 쌍방 소통을 시도하는데 그게 안 되면 ‘에이, 부처님 믿어도 소용없더라’ 하면서 교회에 간단 말이에요.nbspnbsp그런데 그런 요구조건 없이 그냥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배신이 없어요.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설악산이 나를 좋아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없으니 영원히 설악산을 좋아할 수 있잖아요. ‘내가 널 좋아하니 너도 날 좋아해라’라는 요구 때문에 배신이 일어나는 겁니다. 질문자가 김제동 오빠를 좋아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날 좋아해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겁니다.”nbspnbspnbsp“맞아요. 그것 때문에 제가 괴로운 것 같아요.”nbsp“그래요. 그 요구만 내려놓으면 돼요. 좋아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그래서 그걸 내려놓는 방법이 필요한 거죠.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nbsp“아뇨, 방법은 없고 요구를 하지 말라니까요.”nbsp“그러니 요구를 안 하는 방법으로 ‘이제 그만’이라고 사인해주겠다고 약속해주실 수 있는지...”nbsp“요구는 자기가 안 해야지, 그걸 누구더러 약속해 달래요? ‘나는 하나님 안 믿고 싶지만 하나님이 자꾸 좋으니까 하나님이 나한테 이제 그만 믿어라는 쪽지를 보내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랑 똑같잖아요.”nbsp“하나님은 볼 수 없지만 김제동 오빠는 볼 수 있잖아요. 그냥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요. 어딜 가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안 돼서요. 김제동 오빠가 진행하시는 프로그램마다 열심히 방청 신청했지만 다 떨어져요.”nbspnbsp“내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부처님을 좋아하고, 설악산을 좋아하고, 김제동 오빠를 좋아하고, 법륜 스님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그만두려고 해요? 계속 좋아하면 되잖아요.”nbsp“팬심은 계속 간직하고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 가는 행보도 지켜보고...”nbsp“팬심 뿐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좋아해도 괜찮다니까요. 요구를 하지 말라니까요.” nbspnbsp“안 그러고 싶어요.”nbsp“그럼 요구를 위해서 노력해보세요. 이따 오거든 한번 껴안아도 보고 노력해보세요. 질문자가 지금 그렇게 요구를 하고 있잖아요.” nbspnbsp“어쨌거나 거절을 당하고 싶어요. 거절당하면 원래대로 제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거절을 당하려면 만나야 거절을 당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nbsp“제가 사인하는데 어떤 여성분이 와서 ‘제가 법륜 스님을 좋아합니다. 스님이 저한테 “너 싫다”라고 써주세요’라고 하면 써주겠어요?” nbsp“싫다 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그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nbsp“그게 이상해요. 질문자가 그만두면 되잖아요.”nbsp“저 스스로 그냥 그만두라고요?”nbsp“아뇨, 좋아하는 건 놔두고 요구를 그만두라는 거예요. ‘네가 날 좋아해다오’ 이게 요구잖아요.”nbsp“그런 요구는 안 하는데요.”nbsp“‘내가 당신을 좋아하니 당신도 나를 좋아해주세요’ 이게 요구잖아요.”nbsp“그게 아니라 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제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을까 하는 거예요. 저는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nbsp“아니, 김제동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도 좋아해도 된다잖아요.”nbsp“마음에 한 사람밖에 없지 어떻게 여러 사람을 들입니까?” nbsp“요즘 시대가 바뀌었어요.” nbspnbsp“아. 스님, 그럼 이렇게 여쭐게요. 이렇게 연예인을 좋아하는 중증 팬들을 많이 보셨을 테니 그들이 어떻게 내려놓는지 알려주세요. 어떻게 내려놓는가를 두고 제가 검색도 해봤어요.”nbsp“어떻게 내려놓긴요, 대부분 그냥 그렇게 중독증상으로 가죠.”nbsp“검색해보면 어떤 연예인이든 사람들이 한창 좋아하던 때 팬질하던 건 남아 있는데, 싫어져서 그만둔 과정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볼 수 없으니 배울 게 없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내려놓지? 갑자기 보지 말까?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안 보고, 인터넷 검색도 그만하고, 그렇게 다 내려놓을까?’ 그랬지만 안 되잖아요.”nbsp“그런 것들을 할 필요가 없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그냥 내버려두면 돼요. 그러면 제풀에 꺾여요.”nbsp“제가 스님 말고도 여러 사람 강연을 많이 쫓아다니거든요. 그런데 너무 이상적인 분이시잖아요. 스님도 그렇고, 그런 분들이 말씀만 하시면 귀에 꽂혀요. 이런 말씀만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이런 문제도 있어요. 일반 사람을 만났을 때 예를 들어 쉬는 시간에 게임을 한다면 저는 그 사람을 다시 보지 않아요. 그런 증상도 있고...”nbsp“그런 증상은 사랑과는 관계가 없고 약간 편집증에 가까운 증상이에요. 심리적으로 말하면 일단은 편집증이에요.”nbsp“그냥 내버려두면 되는 겁니까?”nbsp“아니죠, 편집증이기 때문에 김제동을 놓아도 좀 있으면 다른 데 가서 또 꽂혀요. 기독교에 들어가면 기독교 광신자가 되고, 법륜 스님을 좋아하면 법륜 스님 광신도가 되고, 공산주의를 신봉하게 되면 완전히 극좌파가 되고, 이렇게 약간 편집증 증상이 있는 거예요. 어떤 대상에 한번 꽂히면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지금 김제동한테 꽂힌 거예요.nbsp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면 깨질 확률이 높아요. 그건 사랑이 아닌 편집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이해예요. 상대에 대한 이해여야 하는데 이해가 동반되지 않잖아요. 자기 느낌에 꽂힌 요구만 있지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서로 눈에 불이 튀어서 사랑을 해도 오래 못 가요. ‘이건 내 까르마구나. 김제동이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 자각하면 되요. 김제동을 자꾸 내려놓으려고 하진 마세요. 그런 편집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좋아하는 대상이 김제동이라서 아직 부작용이 적은 거예요. 김제동에게 꽂혔으니 따라다녀도 부작용이 적지, 저 같은 스님한테 꽂혀서 따라다니면 말썽이 나잖아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김제동에게 꽂힌 게 부작용이 제일 적어요. 결혼도 안 했고 스님도 아니니 누군가가 좋아한다 해도 크게 부작용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그냥 놓아두세요.” nbspnbsp“그러면 지칠 때까지 쫓아다니라는 말씀이세요?”nbsp“아뇨.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두란 말이에요. 결혼한 사람을 따라다니면 그 사람 아내가 오해를 하니 부작용이 될 소지가 있지만 이건 부작용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니 다른 걸로 대상을 바꾸기보다 그냥 놓아두는 게 제일 낳아요.”nbspnbsp“그런데 제가 걱정이 되는 건 이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어요. 오늘도 부장님이 출근해서 일하라고 했는데 그걸 거절하고 여기에 왔어요.”nbsp“그건 부작용이 아니라 좋은 작용이죠. 그 덕분에 오늘 우리 좋은 모임에 오게 됐잖아요.”nbsp“아, 예. 유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인간 심리라는 게 참 묘해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걸 억지로 안 좋아하려고 하면 좋아하는 감정이 더 극성을 피웁니다. 여러분이 TV를 보다가 안 보려고 한다, 담배를 피우다가 끊으려고 한다면 반작용이 더 커져요. 그러니 이걸 끊으려 들지 마세요. 그냥 놔두세요. 놓아 두되, ‘내가 꼭 좀 이걸 약화시켜야겠다’ 한다면 굳이 TV를 끄거나 버리려 들지 말고 그냥 바빠서 TV 볼 시간이 없도록 만들어버리면 돼요. 이걸 가지고 감정적으로 싸우지 말고 TV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지내보면 TV를 향한 편집증이 약화돼요.nbspnbsp그러니 ‘김제동을 안 봐야겠다. 거절 편지를 받아야겠다’ 자꾸 이렇게 하면 감정이 더 극단적으로 돼요. 지금은 이런 모임이 있을 때 회사 사정이 출근 안 하고 와도 될 정도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 또 이 모임에 가면 잘릴 정도가 되어서 아무리 좋아도 못 갈 형편이 되었다, 이렇게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거예요. 내가 갈 수 있는데 안 간 게 아니라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못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에 이게 약해지다가 다른 쪽으로 쏠립니다. 아니면 다른 쪽에 새롭게 꽂히면 이게 약화돼요.nbspnbspnbsp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마세요. 질문자도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일어나버린 거니까 자기통제가 안 돼요. 통제가 된다면 저한테 묻지도 않았겠죠. 김제동을 좋아하는 게 통제가 안 된다는 것과 대중 앞에 나가면 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은 다 똑같은 이야기예요. 여러분이 볼 때는 이건 괜찮고 저건 안 괜찮냐고 하지만 제가 보면 똑같이 우리의 까르마인 겁니다. 이건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그래서 그걸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보면 돼요. ‘내가 어떤 사람에게 한번 관심이 쏠리면 집착하는 경향이 있구나. 내 까르마에 이런 경향이 있구나.’ 이렇게 알면, 앞으로 살면서 다른 곳에서도 자기를 돌아보면 항상 이렇게 어떤 대상에 꽂히면 확 정신을 잃었다가 다른 데 꽂히면 또 예전 것은 온데간데 없어요.nbspnbsp그래서 ‘아,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약간 편집증 기질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야 해요. 앞으로 살면서 예를 들어 자식한테 꽂히면 아이가 힘들겠지요? 그러니 이걸 반드시 없애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이 경우를 통해서 자기를 아는 과정으로 삼으세요.” nbspnbsp스님과 질문자의 문답을 지켜보며 나머지 청년들은 계속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각한 질문자는 미진한 점이 조금 남아 있는 듯 보였으나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2시간 동안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곧이어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김제동씨는 최말순 보살님이 차려준 점심 겸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청소년 수련원에 막 도착했습니다. 스님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7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김제동씨도 청춘콘서트 서포터즈들을 위해 2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앞서 스님에게 김제동씨를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라는 친구가 그 첫 순서로 김제동씨와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김제동씨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여성의 등장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오히려 여성 분을 격려해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도 똑같은 편집증 같은 증세가 있어서 알아요. 그게 잘 안 됩니다. 잘 되면 사람이 아니죠.”nbsp“이 마음을 계속 가진 채 살란 말씀이시죠?”nbsp“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라, 말아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옛날에 좋아하던 여자친구 있을 때 그랬거든요. 제가 한창 좋아할 때 좋아한다 이야기해봐도 그쪽에서 안 된다고 하면 사실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제가 좋은 걸 어떡하겠어요.”nbspnbsp“그러니까 안 된다고 말해주세요.”nbsp“안 된다고 말하라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예요? 저를 보자마자 안 된다고 말해달라니 어떻게 해요. 제가 안 된다고 하면 나쁜 놈이고, 된다고 하면 이상한 놈이고, 모르겠다 하면 어중간한 놈이 되잖아요. nbspnbspnbsp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여놓고요... 그 마음은 제가 알겠습니다. 충분히 그런 마음은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 저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nbsp저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여러분에게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건 각자의 취향이니까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왜 저러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 나타나는 증상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죠. 저도 저런 마음이 있었고, 여러분도 누굴 좋아하면 저런 마음이 들잖아요.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잊거나 내려놓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아, 이렇게 내 마음이 흘러가는구나’ 하고 알지만,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에게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꼰대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본 횟수가 저보다는 적을 거 아니에요? 저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저보다 덜 살았으니까요.nbsp그런 아픈 시간을 견디고 뚫고 나갈 힘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지요. 그런 아픈 시간을 견디고 뚫고 나가는 과정들이 결국 살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장담하건대 질문자에게는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길 거예요. 앞으로 또 어떤 사람이 생겨서 ‘김제동을 내가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나’ 할 겁니다. nbspnbspnbsp진심으로 그런 이야기를 툭 털어놓고 해준 건 굉장히 멋있고 고마워요. 저한테도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이런 일이 제가 살면서 몇 번 없거든요, 하하하. 그래서 굉장히 고마워요.” nbsp김제동씨의 따뜻한 배려심에 강연장 전체가 훈훈한 기운이 감돌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어져 갔습니다.nbspnbsp그동안 청춘콘서트를 함께 하면서는 강연 시간이 스님에게 70분, 김제동씨에게 70분 이렇게 각각 시간이 짧게 주어지다보니 청년들과 여유있게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 제약도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서 청년들도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있는 기분” 이라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열정적인 강연이 끝나자 김제동씨를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톡투유, 힐링캠프 등 바쁜 방송 스케쥴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12번씩 하루를 통째로 시간을 내어 전국을 순회하고 있고, 그 모든 것을 재능 기부로 참여하고 있는 김제동씨에게 청년들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nbspnbsp먼저 그동안 진행된 청춘콘서트에서 보여준 김제동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지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김제동씨도 영상을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nbspnbsp▲ 청춘콘서트의 모습을 담긴 영상을 보고 있는 김제동씨nbsp이어서 사회자가 나와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김제동씨에게 선물을 건내겠다고 하자 김제동씨도 무척 기대되는 눈빛이었는데, 청년들이 준비한 선물은 바로 ‘맞선 20회 제공권’ 이었습니다. 장난스럽게 난색을 표하며 “선물이 이게 뭡니까?” 하자 청년들도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 김제동씨를 위한 청년들의 감사 선물 맞선 20회 제공권nbsp그리고 다함께 셀카를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제동씨가 무대 위에서 객석에 앉은 청년들이 배경으로 나오도록 셀카봉을 들고 셀카를 찍었습니다. 김제동씨는 “제 얼굴만 크게 나오고 여러분들 얼굴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아요” 했지만 청년들은 이런 이벤트에 열렬히 환호하며 좋아했습니다. nbspnbsp▲ 청년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김제동nbsp다시 사회자가 “선물을 마음에 안 들어 하실 줄 알았다”며 “플랜B로 또다른 선물을 준비했다” 고 덧붙이며 다시 선물을 건넸습니다. 다시 기대하는 눈빛으로 선물을 받아 든 김제동씨는 다시 한번 난색을 표하며 “또 이게 뭡니까?” 했습니다. 다름 아닌 선물은 바로 ‘출가 용품 선물세트’ 였습니다. 맞선 20회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면 출가를 하면 된다는 뜻으로 재미있게 마련된 선물 이벤트인 것 같았습니다.nbspnbsp▲ 김제동씨를 위한 청년들의 두번째 선물 출가 용품 선물세트nbsp‘출가 용품 선물세트’는 법륜 스님이 직접 무대로 나와 김제동씨에게 전달했습니다. 스님은 주머니 속에서 염주를 꺼내 김제동씨의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김제동씨는 당황해 하면서도 기쁜 듯 활짝 웃으며 감사히 염주를 받았습니다.nbspnbsp▲ 스님이 김제동씨에게 준 선물 108 염주nbsp이렇게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흐뭇한 시간을 함께 가진 후 이번에는 정식으로 스님과 김제동씨를 가운데 앉히고 다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4시간이 넘게 스님과 김제동씨의 애정과 기운을 듬뿍 받아서 그런지 청년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빠져 나온 스님은 김제동씨에게 저녁이라도 푸짐하게 먹여서 서울로 올려보내고픈 마음에 같이 두북으로 가려고 했지만 김제동씨는 내일 아침에 일정이 생겼다고 해서 두 분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13일 창원 청춘콘서트에서 다시 보자고 하면서 헤어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들어와 방에서 원고 교정 등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 스님은 청춘캠프 2일째를 맞이하여 청년들을 위해 하루 종일 경주역사기행을 안내해 줄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
2015.10.8 (오후) 광양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광주에서의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순창으로 향했습니다. 순창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님이 통일 씨감자 농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스님의 방문을 요청해서 광주에 온 김에 잠깐 들르게 되었습니다. nbspnbsp정 전 장관님은 순창의 시골 마을 폐교된 초등학교를 인수해서 ‘식생원’을 만들어서 씨감자를 실험적으로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전통 씨감자 생산 방식은 6년 걸리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1년 만에 몇십배의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실험 중이라고 합니다.nbspnbsp스님이 식생원에 도착하자 정동영 전 장관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정 장관님은 먼저 스님에게 통일 씨감자의 획기적인 재배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 씨감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동영 전 장관nbsp“농촌진흥청에서는 감자 줄기를 유리병에서 하나씩 하나씩 배양하는데 여기서는 4천원짜리 생수통에 콩나물 시루 기르듯이 몇 천개씩 감자 줄기를 배양할 수 있고, 이것을 모판에 심으면 3개월만에 감자가 주렁 주렁 달리게 되는 기술입니다. 이것을 다시 땅속에 심으면 먹을 수 있는 감자가 되고요. 감자 씨눈을 떼내어서 거기서 줄기를 배양하는 시스템입니다.nbspnbsp감자는 수분 덩어리여서 저장 보관이 어려워요. 현재는 씨감자 하나의 생산 단가가 1만원 정도 하기 때문에 너무 비싸서 경제성이 없죠. 그런데 김재훈 박사는 대량생산을 통해 100원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겁니다. 여기서 4명이 일해서 1년 동안 씨감자 12천만개를 생산해낼 수 있는데, 농진청에서는 몇백억을 지원해서 겨우 10만개 밖에 못 만들어요.”nbsp정 장관님의 설명을 들으며 줄기 배양 기술과 모판 이식 모습, 노지 재배 과정까지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 모판에 이식해 줄기를 재배하는 단계nbspnbsp▲ 기본종 재배 단계nbsp▲ 줄기 재배를 통해 생산된 씨감자nbspnbsp▲ 노지 재배 단계nbsp그리고 스님은 정 장관님과 함께 통일 씨감자 연구를 하고 있는 김재훈 박사님의 설명까지 다 듣고 나서 “나름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 우선 면밀하게 실험하고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의견을 주었습니다. 특히 획기적인 증산이 가능하다면 이 기술을 북한에 지원해서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차차 검토해 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일단 씨감자를 북한에 10만개씩 각 도별로 주든지 해서 실험적으로 재배해 보도록 하고, 수확량이 어떤지를 점검해봐야 될 것 같아요. 북한의 평균 수확량보다 적으면 우리가 다 물어주겠다고 하고, 평균 수확량보다 많으면 북한에서 다 가져라고 하면서 시작해야 될 거예요. 그래서 수확량이 월등히 좋아서 북한에서 관심을 보이면 김 박사님이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하시면 될 겁니다.”nbspnbsp김 박사님은 “일단 하우스와 모판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북한 같은 가난한 나라에서 식량 생산량을 급격하게 높일 수 있어요. 감자는 줄기 배양을 통해 윗 세대를 심으면 바이러스가 없는 좋은 감자를 쉽게 얻을 수 있거든요.”라면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스님은 실험 재배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대면적에 재배할 때 발생할 때 생각지 못한 병충해가 생기거나, 토양에 따른 변수, 또 북한은 비닐 멀칭이 어렵고, 비료를 주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예전에 스님이 함경북도 온성군에 직접 농업 지원을 해봤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도 내년에 한번 실험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nbspnbsp“내년 봄에 저도 작은 땅에 실험해 볼게요. 비닐, 비료, 퇴비 각각의 조건에 따른 생산량 차이를 비교해 봐야 하거든요. 여러 통계를 내어서 북한 상황에 맞게 제안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에서도 실패를 안 하지 우리 계산대로만 해보고 제안하면 안 돼요. 최소한 열가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심어봐야 할 것 같아요. 감자는 원래 모래땅에 잘 되는데, 모래땅인지 진땅인지도 체크해야 해요. 산 모래땅에 심어야 알도 굵고 껍질이 터실터실해서 삶으면 분이 확 나서 맛이 좋아요. 그런데 이 씨감자는 비료가 3분의1만 주어도 같은 효과가 난다고 하니까 비료가 부족한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이 있는 것이죠.”nbspnbsp스님의 예리한 지적에 정 장관님은 “감자 전문가를 제가 몰라봤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웃었습니다.nbspnbsp식생원을 다 둘러보고 난 후 담소를 나누다가 인사를 한 후 식생원을 나왔습니다. 통일 씨감자 사업이 북한과 잘 성사가 되어서 북한 주민들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담양에서 광양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 황금 들녘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운치를 한껏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코스모스를 보고서는 ‘원고는 나중에 보고 가을 구경 좀 해야겠다’며 차창 밖을 한참 동안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연이어 계속된 강연 때문에 많이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광양시 중마동 커뮤니티센터 다목적홀에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nbspnbsp▲ 광양 커뮤니티센터nbsp이번 강연은 광양에서 열리지만 광양 순천 여수 광주에서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여러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모이다보니 다른때보다 시끌법적한 잔치집같은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에 마련된 340석의 자리를 다 채우고 자리가 없으신 분들은 복도와 계단에도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공업도시에서 진행된 강연이라 젊은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법륜 스님이 등장하자 청중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청중의 환호에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중2, 고1을 둔 엄마는 아이들을 학원에도 보내 보았지만 성적이 크게 향상되지 않아 남편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55세 예비 은퇴자라고 하신 남자분은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살아오다보니 나를 위해서는 살아보지 못해 외롭고 삶이 공허하다며 외로움을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물었고, 40대 남성분은 늦게 결혼에서 낳은 아들이 뇌성마비로 다리를 절고, 최근엔 백반증인 난치병을 얻어 고통이 큰데 이런 아들을 보는 아빠의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물었고, 31세의 미혼인 여성은 현재 하고 있는 회계일을 그만두고 사회복지사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4살 아이를 가진 아빠는 나쁜 아빠가 되지않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물었고, 계량한복을 입은 남자분은 불법에서 정법과 외도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질문마다 명쾌한 답변도 좋았지만 스님의 재미있는 비유가 큰 nbsp웃음을 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이 주말에 쇼파에 누워서 TV만 보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 않아서 못마땅하다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연애를 7년 하고 결혼한 지 7년이 되었는데 요즘 남편을 보면 게으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이들이 7살, 4살이다 보니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주말에는 집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그런데 남편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리모콘만 잡고 있으니까 이런 남편을 매주 보는 게 좀 힘들어요. 나가자고 하면 서로 싸우게 돼요. 몇 번은 나가주지만, 매번 나가자고 이야기해야 하는 저도 힘들고요. 스스로 나서서 같이 가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nbsp“피곤한데 어떻게 그래요.” nbsp“그 마음도 알겠는데 아이들과 같이 나가서 활동하는 것도 좋잖아요. 제가 나가는 걸 좀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도 나가자고 하고요...”nbsp“애들하고 나가서 놀면 좋겠다는 건 누구 생각이에요?”nbspnbsp“제 생각이요.”nbspnbsp“그래요. 그건 질문자 생각이지 남편 생각은 아니잖아요.”nbsp“남편과 대화도 많이 해보긴 했는데...”nbsp“대화의 목표가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잖아요. 내 의견을 설득시켜서 끌고 가려 드는 건 대화가 아니죠. 독재 근성이 있으시네요.” nbspnbsp“게으른 남편이 조금 바뀌었으면 해서요...”nbsp“게으른 게 아니라니까요. 남편이 평일에는 직장에 나가잖아요. 주말에는 좀 쉬게 두세요.”nbsp“하루만 쉬면 되잖아요.”nbsp“하루만 쉬면 된다는 건 누구 생각이에요? 남편은 3일 쉬고 싶은데 이틀 밖에 못 쉬어서 피곤한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을 빼앗겠다니까 짜증을 내죠. 애들이 뛰어놀면 놀도록 놔두고, 데리고 나가고 싶으면 질문자가 데리고 나가면 되잖아요. 안 그래도 5일 동안 직장 나가느라 피곤한 남편한테 왜 그래요? 애들은 밖에 내보내서 ‘너희들끼리 놀아라’ 하고 남편 누워 있으면 차도 끓여다주고 커피도 끓여다주고 먹을 것도 갖다 줘야죠. 그래야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한 재미가 있을 거 아니에요.” nbsp“처음에는 그렇게 했는데 자꾸 그러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당연시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어서요.”nbspnbsp“남편이 번 돈을 술집이나 다른 데 가서 쓰면 서비스가 질문자가 해주는 그것보다 훨씬 좋아요. 서비스 할 때마다 돈을 조금씩 주면 서비스가 좋아질텐데, 한꺼번에 목돈을 그냥 줘버리니 서비스가 없는 것 같네요. nbspnbspnbsp자꾸 그렇게 잔소리하면 남편이 밖으로 돌아요. 밖에서는 돈을 주면 왕처럼 대우해주거든요. 어깨도 주물러주고 맛있는 것도 갖다 주고 친절하게 해주잖아요. 남편이 밖으로 돌아서 골치 썩히지 않고 주말에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 이야기 한번 들어봐요. 매일 골프 치러 간다, 등산 간다, 친구 만나서 논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내 남편은 주말에 딱 들어앉아 있으니 좋잖아요. 그런데도 이러면 저게 문제고 저러면 이게 문제고 끝이 없어요. 저는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옛날에 내가 어쩌다 결혼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어요. 절벽에 떨어질 뻔 하다가 살아난 기분이에요, 하하. nbsp그러니 남편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주중에 자기 직장 생활 충실히 하고 주말에 누워서 TV 좀 보는 게 어때서요? 그렇다고 월요일 아침에 일 안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nbspnbsp“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한두 번이 아니니까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요.”nbsp“화가 치미는 건 재앙을 자초하는 거예요.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내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엄마로 인해 아이들도 멀쩡히 직장 잘 다니는 아빠를 나쁘게 보게 됩니다.”nbspnbsp“그럼 제가 나쁜 거예요?”nbspnbsp“그걸 이제 알았어요? nbspnbsp네nbsp남편이 누워 있는데 옆에서 마누라가 계속 잔소리하면 남편이 화가 나요. 그러면 처음에는 성질을 내고, 심하면 물건을 집어던지다가, 그 다음엔 나가버려요. 질문자는 지금 애 손 잡고 놀러가는 게 아니라 남편을 밖으로 쫓아내고 있는 거예요. 이제 나갈 때가 거의 다 되어갑니다. nbspnbspnbsp그러면 나중에 또 후회해요. 호강에 받쳐서 요강 깨는 격이에요. 남자들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여기 남자분들 중 제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은 손들어보세요. 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거예요.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몰라요. 저런 아내와 살면 남편 속이 좀 답답해져요. 답답하니까 화를 내는 거예요.“nbsp“그러면 저 스스로 풀어야 하는 거예요?”nbsp“푸는 게 아니라 고맙게 생각하면 됩니다.”nbsp“고마운 마음이 별로 안 드는데요. 직장생활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래도 한창 크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어야...”nbspnbsp“아이들은 질문자가 키우면 되죠.”nbsp“아빠의 역할도 필요하잖아요.”nbsp“물론 아빠가 더 놀아주는 게 좋죠. 그러나 그건 의무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애가 공부를 하면 좋은 일이지만 안 한다고 야단쳐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아빠가 애들과 놀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안 놀아준다고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에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질문자가 화를 내니 상대방이 스트레스를 받죠. 하루 종일 누워 있다 하더라도 누워 있는 게 뭐가 나빠요?”nbspnbsp“가끔 꼴 보기 싫을 때가 있어요.” nbsp“그건 질문자의 성질이 더러운 거죠. 얼마나 성질이 더러우면 다른 사람 누워 있는 것도 꼴 보기 싫다고 하겠어요? 앉아 있는 것도 보기 싫고 TV 보는 것도 보기 싫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은 그냥 주말에 피곤하고 힘드니까 누워서 TV나 좀 보고, 잠이나 좀 자고, 맛있는 거 있으면 좀 먹고 싶은 거예요. 첫째,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둘째, 가만 내버려두세요. 셋째, 먹을 거나 좀 갖다 주세요.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nbspnbspnbspnbsp“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이제 아이들과 같이 이렇게 나가는 횟수가 잦아질까요?” nbsp“또 계산하네요. 그게 무슨 사랑이에요? 장사꾼이지. 그냥 남편이 원하는 대로 사랑으로 베풀어주세요. 아이들은 질문자가 알아서 키우고요.” nbspnbsp“저 혼자서 키우라고요?”nbspnbsp“남편 없으면 어떡할래요? 남편이 죽고 없으면 질문자가 돈도 벌고 애도 키워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 꼴 나려고 해요?”nbspnbsp“아니요.”nbsp“그래서 제가 그런 마음은 재앙을 자초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계속 못 알아듣고 있으시네요.”nbspnbsp“알겠습니다.”nbspnbsp“별로 아는 것 같지 않아요. 겉으론 ‘그런가’ 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그렇지, 애들 데리고 좀 나가면 좋잖아’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러면 못 고칩니다. 질문자의 생각을 딱 바꿔야 해요. 남편이 주말에 쉬는 건 충분히 쉬도록 배려해주세요. 나가고 싶으면 내가 나가면 돼요.nbspnbspnbsp서로의 생각이 다른 거예요. 남자는 ‘5일간 열심히 일하고 왔으니까 주말에는 제발 나 좀 건드리지 마라, 좀 쉬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여자는 5일간 계속 집에만 있었으니까 ‘당신이 직장 안 나가는 주말에는 가족들 데리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뭘 좀 해라’ 이래서 싸워요. 남자가 먼저 ‘여보, 5일 동안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지?’ 하고 차를 태워주면 좋죠. 그런데 질문자 복에 그런 남자를 못 만났잖아요. 자기 꼴을 좀 알아야죠. 7년 사귈 때 그렇지 않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nbspnbsp“아뇨, 달라졌어요. 처음엔 안 그랬는데...”nbsp“7년이나 사귀면서도 그걸 못 봤으니 질문자 잘못이에요. 그리고 또 아내라면 5일 동안 일하고 고생한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해도 ‘여보, 내버려두고 당신은 쉬어. 5일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또 무슨 일이야. 쉬어, 쉬어.’ 이렇게 해주세요. 상대를 좀 위해줘야 사랑이지, 내가 원하는 걸 해달라고 조르다가 그거 안 해준다고 미워하는 게 무슨 사랑이에요. 그러니 장사꾼처럼 머리 굴리지 말아요. ‘이렇게 해주면 나 데리고 나갈까요?’ 이게 무슨 소리예요? 주산알은 그만 튕기고 그냥 해줘요. 알았죠?”nbsp“네, 감사합니다.” nbspnbspnbsp질문자가 스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되묻자 청중들의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아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남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답변이야 말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나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질문자의 밝아진 표정을 보면서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닫는 말씀을 하면서도 스님은 질문자를 위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주말에 좀 누워서 TV 보는 게 뭐가 문제라고 그걸 갖고 성질을 내고 그래요? 애가 공부 안 하는 게 뭐가 문제예요? 자기가 공부 안 하겠다잖아요.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문제를 삼아서 자꾸 분란을 일으키니 인생이 복잡한 거예요. 결혼할 때는 싸우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결혼했잖아요.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혼자서는 몰라도 둘이 사는데 어떻게 그게 되겠어요? 하나는 불 끄고 자자는데 하나는 할 일 있다고 하고, 하나는 TV 보자는데 하나는 책 보자 하고, 하나는 김치찌개 해먹자는데 하나는 두부찌개 해먹자는 게 인생이에요. 내가 맞추면 전혀 문제가 없어요.nbspnbsp그러나 반드시 맞춰야 되는 건 아닙니다. 김치찌개 먹자고 해도 ‘아니야, 두부찌개 먹자’ 하고 한번 세워봐도 돼요. 따라오면 다행이고, 안 따라오면 ‘너는 김치찌개 먹고 나는 두부찌개 먹자’ 이렇게 나눠 먹어도 됩니다.nbspnbspnbsp그게 꼭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한 명은 ‘짜장면 먹으러 가자’ 하고 한 명은 ‘비빔밥 먹으러 가자’ 하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짜장면 먹고 싶어도 상대방한테 맞춰서 비빔밥 먹으러 가든지, ‘비빔밥은 내일 먹자’ 하고 짜장면 먹으러 끌고 가든지, ‘너는 비빔밥 먹고 나는 짜장면 먹은 뒤 이따 저 앞에서 보자’ 이러면 되잖아요.nbspnbsp연애나 결혼을 해서 밥을 따로 먹으면 왜 안 돼요? 왜 둘이 꼭 같이 가서 맞상해서 먹어야 해요? 따로 먹고 보면 되죠. 부부니까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부 사이가 자꾸 나빠지는 거예요. 서로를 옥죄잖아요. 소파에 누워 있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예요? 자기 할 일 다 하고 주말에 들어와서 앉아 있든 누워 있든 엎드려 있든 그게 질문자와 무슨 상관인데요?”nbspnbspnbspnbsp스님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지만 청중석에서는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욕심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종교의 진정한 역할은 세상에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배고픈 사람, 가난한 사람,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고,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일은 투표를 잘해서 국민으로서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인생은 두 가지예요.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똑같은 마음이라도 사회 조건이 변하면 행복도가 달라져요. 이 두 가지를 다 해야 해요. 자기 마음을 바로잡아서 행복해지는 게 수행, 즉 성불로 가는 길입니다. 세상을 바로잡아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정토 건설이에요. 이것을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두 길을 다 가야 해요. 이 둘을 동시에 행하는 자를 보디사트바, 보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보살의 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이에요. 그래서 아까 소개영상을 보면 제가 수행도 지도하지만 환경운동도 하고 평화운동도 하잖습니까.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도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 행사를 똑바로 해야 해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강연이 끝나자 청중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고 이어서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책을 가슴에 안고 사인을 기다렸는데,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nbsp선물한다며 여러권을 사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아마 강연의 감동을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엿보였습니다.nbspnbsp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아 남편이 얄밉다는 질문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보니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고 답해주었습니다. 한층 밝아진 표정의 질문자를 보니 덩달아 기뻤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하는 사진 촬영에 환한 미소로 응해주었습니다.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웃음으로 응해주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광양 정토법당 자원봉사자들nbsp사진 촬영을 마치고 스님은 봉사자들이 각각 어느 법당 소속인지 확인한 후 “수고 많았다”며 격려도 해주고 합장을 하며 고마운 마음도 표현해 주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일일이 챙겨주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nbspnbsp많은 자원 봉사자들도 흥겨운 잔치를 정리하듯 즐거운 얼굴로 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자원 봉사자들과 청중 모두 가슴 속에 행복에 대한 답을 하나씩 담아가는 즐거운 강연이었습니다.nbspnbsp광양을 출발한 스님은 밤 12시가 넘어서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 2시30분부터는 청춘콘서트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서포터즈들을 위해 김제동씨와 함께 경주에서 특강을 해줄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
2015.10.8 (오전) 광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저녁에는 광양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울산 두북에서 하룻밤 주무신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아침 7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광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울산에서 광주로 가는 길에는 가을의 황금 들녘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가을 풍경이 참 좋네” 하며 가을을 만끽했습니다.nbspnbsp▲ 가을 들녘nbspnbsp9시 30분에 광주시청에 도착한 스님은 윤장현 광주시장님이 출타 중이라 대신 사모님과 가볍게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윤장현 광주시장 사모님nbsp윤 시장님이 최근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이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시청사 앞에 농성을 하는 한 사람이 있어 연유를 묻기도 하는 등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10시 30분이 되자 광주시청 3층 대회의실은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모인 500여명의 광주 시민들로 자리가 빼곡이 메워졌습니다. 한달 전부터 광주정토회에서 85명의 봉사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협력하여 준비한 결과입니다. 봉사자 중 한 분은 손녀와 남편까지 함께 온가족이 출동하여 봉사에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광주시청 대회의실nbsp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분위기가 고조되어 박수가 쏟아졌고, 스님은 다소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었지만 환하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만나서 반갑습니다. 오전 강연은 주부들이 집안정리 하시고 나오시느라 좀 바쁘시죠? 그래도 광주는 다른 곳보다는 교통체증이 덜해서 다행입니다. 저는 울산에서 출발하여 왔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의 황금 들녘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좋은 가을 날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일방적으로 강연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으면 같이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즉문즉설을 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100 만족하지는 못해요. 어떤 이는 스님이시니 법문을 들으러 오고, 어떤 이는 개인 가정사 상담을 하러 오고, 어떤 이는 정치 이야기를 들으러 오고 각자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듣고자 하는 내용들이 다르다 보니 그렇습니다. 모든 이를 100 다 충족시킬 수는 없으니 양해 바라고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가 해야 합니다.”nbsp이렇게 즉문즉설의 특성을 짧게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크리스찬인 40대 여성분은 6학년 큰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4년 동안 겨우 안정화시킨 학원 운영을 그만두어야 할 상황이 되어서 고민이고, 또 가족들의 어려운 부분을 많이 책임져 주었는데 정작 내가 어려울 때는 가족들이 함께해주지 않아 서운하다며 어떻게 마음아 가져야 하는지 물었고, 천주교 신자인 남자분은 아파트의 동대표로서 부정한 이익에 관계하는 주변 사람들과 5년째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는지 물었고, 두 아들을 둔 30대 남성분은 아내가 지금 임신 중인데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지만 아내가 반대해서 고민이고, 요즘 인터넷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회가 정의롭지 못해 답답한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중년 여성분은 큰 딸이 대학생인데 불안 장애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데 아무리 고치려해도 관계만 더 나빠져서 고민이라고 울먹이며 하소연을 하였고, 30대 여성분은 어디를 가든 왕따를 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데 어떤 기도문으로 기도를 해야할지 물었고, 또 다른 중년 여성분은 어릴 때부터 항상 착하다는 칭찬을 받고 자랐지만 가족 안에서도 힘든 것을 말할 상대가 없었다며 착함의 굴레를 벗어나 어떻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미리 신청한 사전 질문들이 끝나고도 스님에게 간절히 질문을 원하는 분 딱 한 분만 더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30대 여성 분이였는데 스님의 ‘새로운 100년’ 책을 읽고 통일의병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이들에게는 통일의 필요성을 쉽게 설득할 수 있는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은 설득이 어려워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스트리스를 받는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결혼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에요. 30년 동안 술을 안 마신 날이 1년에 45일 밖에 안 될 정도로 매일 술을 마십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해결 방법을 못 찾았고, 제 나이도 54세다 보니 건강상으로도 힘듭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오늘 나와 봤습니다.”nbsp“남편 술 끊는 방법이라도 일러줄까 싶어서요? 매일 술 마시는 사람더러 술 끊게 해주는 비법을 제가 안다면 그런 회사를 차려서 떼돈을 벌었겠죠. 그런 기술은 없어요. 질문자는 종교가 뭐예요?”nbsp“성당을 좀 다니다가 냉담하고 있어요.”nbsp“하느님을 찾든 천주님을 찾든 부처님을 찾든, 질문자가 기도를 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술 안 마시는 날이 1년에 45일이라고 했죠? 그러면 ‘하느님, 우리 남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 마시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지금 45일이 빠져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nbspnbspnbsp그 45일을 다 채우도록 기도하고, 그렇게 마음을 쓰세요. 혹시 오늘 저녁에는 안 마시고 들어올까 봐 조마조마해야 합니다. 내 기도가 들어지려면 남편이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야 해요. 안 마시고 들어오면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거예요. 예를 들어 올해 말에 계산해보니 3일이 빠졌다면 질문자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것이니 다시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해요.nbspnbsp108배가 안 되면 200배를 하세요. 남편이 하루도 안 빠지고 마시고 오는 걸 목표로 잡아서 1년 365일을 다 채웠다면 기도가 성취된 거예요. ‘스님 말씀대로 기도를 했더니 3년 만에 우리 남편이 100퍼센트를 다 채웠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한테 천만원을 보시하고픈 마음이 들 거예요. 왜 그럴까요? 그쯤 되면 질문자가 남편이 술 마시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남편이 술 마시는 게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nbsp“그런데 지금 문제 되는 게요. 그렇게 술을 마시고 한 달에 네댓 번은 저한테 주정을 심하게 부려요. 좀 심할 때는 폭언도 하고요...”nbsp“그건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마음을 질문자가 가지고 있으니까 남편이 주정을 부리는 거예요. 남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오늘 기도 성취했다’고 마구마구 기뻐해주세요. 안 마시고 오는 날에는 기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질문자가 술상을 차려줘서 먹여야 해요.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집에서 술상 차려 먹이려면 귀찮으니까, 밖에서 자기가 알아서 마시고 들어오면 굉장히 좋죠. nbspnbspnbsp이렇게 마음을 내어버리면 술은 여전히 마시고 들어와도 주정이 줄어듭니다. 마시고 들어오는 걸 질문자가 기뻐해보세요. 말리든 권하든 남편은 어차피 마시잖아요. 그러니 질문자가 ‘마셔라’ 하면 마시고 오는 게 기뻐지는 거예요.nbspnbsp‘하느님, 우리 남편에게 있어서의 술은 보약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보약은 빼먹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빼먹으면 내가 챙겨줘야 해요.”nbsp“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니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못 미칠 행동을 종종 하고, 경제적인 책임감도 없어요. 제가 젊고 건강할 때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좀 버겁습니다.”nbsp“질문자가 마시지 마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질문자는 질문자 대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도 나고 버겁고, 남편은 남편대로 술 마시고 악을 쓰고 주정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이라고 생각하세요. 남편이 이렇게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나마 안 죽고 사는 거예요. 남편이 술을 끊으면 곧 죽어요. 남편이 이렇게 술을 마셔야 그 까르마가 하루하루 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남편이 술 마시는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에요. 다른 사람에게는 술이 나쁠지 몰라도 우리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인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안 마시고 오면 반드시 보약 챙겨 먹이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 먹여야 해요. 지금 몇 일 빠지기 때문에 문제인 거예요. nbspnbspnbsp그렇게 하면 남편이 술을 마셔도 질문자가 아무렇지 않아집니다. 딱 들어오는데 ‘아이고, 여보. 보약 드시고 오셨네요. 내가 굳이 안 챙겨도 되니 좋네요’ 이런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면 주정이 줄어들고 질문자의 스트레스도 줄어들어요. 한번 해보세요.nbspnbsp그런데 이게 초기에는 반드시 마장, 즉 부작용이 따릅니다. 첫 번째 부작용은 기도하다가 내가 성질이 나요. 내 까르마가 발동하는 거예요. ‘내가 미쳤나, 왜 이런 기도를 하나?’ 이렇게 자기 저항이 일어납니다. 더 힘든 것은 두 번째인데, 이렇게 하면 남편이 내 정성을 이용해서 더 많이 마시고 더 행패를 부려요. 스님이 기도하면 좋아진다니까 좋아지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실제로 해 보면 안 그래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한 달쯤 지나면 더 마시고 들어옵니다. 기도에는 반드시 마장이 끼는 건데, 이 고비를 이겨야 합니다.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게끔 방해를 해야 하니까 반드시 남편은 더 술을 마시고, 주정을 더 심하게 부리면서 난동을 피웁니다. 그러면 참고 기도하다가 확 뒤집어져서 ‘기도해보니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진다’고 기도를 그만두게 돼요. 이 저항을 질문자가 이겨내야 해요. 이것은 당연히 따르는 저항인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기도해서 100일이 넘고 1년이 넘어가면 까르마가 소멸되는 쪽으로 가니까 까르마 입장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기도하거나 수행할 때는 마장이 나타납니다. 그걸 그만둘 핑계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고요. 이렇게 제가 시켜보면 열에 아홉은 그만둡니다. 그 장애를 뛰어넘어서 가는 사람은 드물어요. 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이 기도를 하려면 신앙심이 깊어야 해요. 성당 다시 다니세요. 하느님을 믿고, ‘우리 남편은 술을 마시는 게 사는 길이다. 그러니까 이건 주님의 뜻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세요. 술은 우리 남편에게 보약이라고 기도하세요. 보약은 하루도 빠지면 안 되니 마시고 오면 기뻐하고, 늘 술을 준비해뒀다가 안 마시고 오는 날에는 챙겨서 내주세요. 남편이 ‘네가 웬일이냐’ 하면 ‘그래도 한 잔 하셔야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남편이 ‘고맙다’ 하기보다는 ‘드디어 이게 미쳤구나’ 이러면서 상을 집어던지더라도 다시 가져다 주세요.nbspnbsp‘여보, 나쁜 뜻으로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스님한테 물어보니 매일 먹는 건 매일 먹도록 해야지 중간에 쉬면 오히려 건강에 나쁘다더라. 그래서 챙겨드리니까 드세요. 빠뜨리고 오면 내가 챙겨주느라 힘드니까 밖에서 드시고 오세요’ 이렇게 권유도 해주세요. 비아냥이 아닌 진심으로 하세요. 그런데 처음에는 상대가 이걸 비아냥으로 듣기 때문에 나는 비아냥이 아니었다 해도 횡포를 부립니다. 그래도 그걸 꿋꿋이 이겨내면 남편에게 진심이 전달돼요. 진심이 전달되면 술은 마셔도 난동 부리던 것은 줄어듭니다. 한 100일쯤 지나면 그래요. 술을 마시는 것은 자기 사정이고 나는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nbspnbsp질문자는 어차피 지난 30년을 술 마시는 남편과 살았잖아요. 앞으로 남은 세월이 30여 년밖에 안 남았는데 그 사람과 못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못 산다면 질문자가 못 견뎌서 못 사는 건데, 지금도 사는데 앞으로 계속 같이 사는 게 뭐 그리 힘들어요? 놔두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어떤 영험과 가피가 일어나는데 그렇다고 또 그 결과를 기대하면 안 돼요. 질문자가 ‘술을 안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술 마시는 게 우리 남편은 오히려 건강에도 좋고 수명에도 좋다고 믿으세요.nbspnbsp술이 건강에 나쁘다고요? 술 끊어서 건강은 좋아져도 당장 내일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린다면 술 끊은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러면 남편 영정 앞에서 ‘아이고, 그렇게 좋아하는 술 실컷 마시게나 해 줄 걸’ 이렇게 후회하는 거예요. 그러니 실컷 마시도록 두세요. 가능하면 더 먹이면 더 좋고요. nbspnbspnbsp그러면 하느님이 기도를 받아줍니다. ‘우리 남편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이 당장 영험을 보여서 오늘 술 마시게 해주는데, ‘우리 남편 술 안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도 내 기도를 안 들어줘요. 그러면 ‘기도해봐도 소용없다’ 싶어서 내 신앙이 흔들립니다. 질문자가 ‘하느님, 우리 남편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질문자는 하느님의 영험을 믿고 신앙도 안 흔들렸을 거예요. ‘하느님, 술 안 마시게 해주세요’ 하니까 하느님도 이걸 못 들어주잖아요. 그러니 성당 다녀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해서 흔들리는 거예요. 질문자가 기도를 잘못해서 그래요. 하느님이 할 수 있는 걸 기도해야죠.” nbsp“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전혀 예상하지 못한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는 처음에 당황했지만 이내 곧 스님의 의중을 알아듣고 활짝 웃었습니다. 상대를 고치는 것은 어렵지만 내 마음을 고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는 즉문즉설의 미묘한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nbspnbsp8명의 질문자들이 쏟아내는 각양각색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고민거리들을 갖고 스님과 울고 웃는 사이 2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마무리 말씀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수행이라고 강조하면서 방금 전 질문한 술 마시는 남편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사물을 늘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늘 문제가 있다고 해요. 수행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거예요. 아침에 눈뜨면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아이고, 오늘도 살았네’ 이렇게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고 나머지 번뇌는 금방 없어져요. 살아있는 건 당연하고, 더 오래 살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하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복잡한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nbspnbspnbsp아침에 눈 딱 떴을 때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에요. 버스 타고 가다가 버스가 전복되어서 서른 명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야 꼭 기적인 게 아니에요. 그런 기적이 매일매일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일어나는 걸요. 감았던 눈 못 뜨면 죽는 거예요. 들어왔던 숨이 못 나가도 죽고, 나갔던 숨이 못 들어와도 죽잖아요. 삶과 죽음은 사실 이 호흡지간인 찰나에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기긍정성이 있어야 삶을 행복하게 삽니다.nbspnbsp우선 자기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 세상 문제도 개선할 만큼 개선하는 겁니다. 방금 술 마시는 남편 이야기를 했는데, 질문자가 매일 1000배 기도를 한다고 남편이 술을 끊을까요? 성당에 1억 보시한다고 하느님이 술 끊게 해줄까요? 아니에요. 벌써 30년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술 안 마실 사람이면 진작에 아내 말을 들었겠죠.nbspnbsp아내가 마시지 말라고 해도 30년을 마시는 남편이 고집이 셀까요? 30년 동안 마시는 꼴을 보면서도 아직도 마시지 말라고 주장하는 아내가 고집이 셀까요? 아내의 고집이 훨씬 셉니다. 그 고집 센 남편의 고집을 꺾겠다는 고집이잖아요. 그러니 사람이 자기 고집 센 줄 모르는 거예요. nbspnbsp고집을 버리라는 것은 놔두라는 뜻입니다. 하지 말래도 하는 걸 보면서 30년을 살았는데, 마시라고 한다고 더 마시고 마시지 말란다고 안 마시리라 생각하는 게 오산이에요. 마시지 말라고 하는데도 마시는 걸 보면 내 말 안 듣는 인간이잖아요. 내가 마시라고 한다고 마시고, 더 마시라고 한다고 더 마실까요? 어차피 마시는 걸 마시라고 하면 내 말을 잘 들으니 얼마나 좋아요? 내 말을 잘 듣게 하는 방법은 어차피 마시는 사람한테 마시라고 하는 겁니다. nbspnbsp마시는 걸 보고 ‘하느님, 술 마시게 해주세요’ 하면 하느님이 내 기도를 바로 들어주잖아요. 왜 이렇게 쉬운 길을 안 가요? 그건 세상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시잖아요. 쉬운 길이 있다는 말이에요.nbspnbsp‘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 이 말은 긍정적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좋아집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단명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속으로 ‘40살까지 살면 잘 산다’ 이렇게 여기고 살았어요. 그런데 40살 넘었는데도 안 죽어요. 그래서 저는 늘 매일 기쁘게 살아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내일 죽어도 뭐 별로 아쉽지 않습니다. 보너스야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안 받는 것보다 기쁘잖아요. 제가 이렇게 일하니까 여러분들은 꼭 통일이 되어야 제가 성공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아닙니다. 저는 40살까지 제 할 일을 다 했어요. 나머지는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에요. 그렇지만 안 죽는데 일부러 죽을 것까지는 없잖아요. 사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nbspnbsp여러분들이 보기에는 제가 늘 건강한 것 같지만 제가 별로 그런 거에 대해서 구애를 안 받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몸이 안 아픈 게 아닙니다. 오늘도 오면서 두통약을 몇 개씩 먹었어요. 아프지만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이기 때문에 아픈 건 별로 문제 안 삼아요. 아픈 것이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강골이라고 하죠? 저는 매일 아파요. 오죽하면 ‘스님은 아파 죽다가도 강의 있다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고 할까요. 강의할 때만 멀쩡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안 따라다녀 보니 그렇죠. 나머지는 늘 차 타고 가면서 쉬고 오면서 쉬고, 이렇게 사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자기 인생을 조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셔야 해요. 주어진 삶을 복되게 받아들이세요. 안 그러면 이제 죽는 길밖에 없어요. 그러니 나날이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매사에 긍정적인 자세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매일 아침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하면 매일 매일이 기적이라는 스님의 귀한 말씀을 새겨들으며, 아쉽지만 언제나처럼 감동과 울림이 넘치는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강연을 듣고 나가시는 청중들의 환한 미소와 고맙다는 인사 말씀에 더욱 힘을 낸 봉사자들은 연이어 스님의 책 사인회와 단체 사진까지 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잘 마무리 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책 사인회를 하면서 스님은 길게 줄을 선 광주 시민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차례가 된 시민들은 “오늘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nbspnbsp봉사자들은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모두들 기쁜 마음이 되어 웃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광주정토회, 파이팅” 하는 목소리에는 즐거움과 보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 광주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nbsp파도가 지나가듯 환희와 감동의 순간들이 지나고 봉사자들은 한데 모여 여법하게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처음 봉사를 해본 사람들이 유독 많은 조금은 특별한 상황이었지만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즐겁게 강연을 잘 치러낸 서로를 격려해 주면서 가슴 뭉클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일일이 격려해 주는 스님의 모습에 감동 받아 오늘 처음 봉사했다는 불교대학생은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습니다.nbspnbsp광주시청을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광주를 출발하여 순창으로 향했습니다. 순창으로 가는 길에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광주정토회에서 꼬마 김밥을 싸주어서 김치와 함께 맛있게 먹으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풍경을 구경했습니다.nbspnbsp▲ 스님의 점심 식사nbsp시골길에 들어서자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반갑게 손을 흔들듯이 하늘거리며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해 주었습니다.nbspnbsp▲ 길 가에 핀 코스모스nbsp담양에는 정동영 전 장관님이 최근 고향에서 통일 씨감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스님이 꼭 방문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광주로 온 김에 잠깐 들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됩니다...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7 대구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 대중들보다 일찍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8시에 조찬 모임을 위해 외출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를 몇 차례가 가진 후 오후 1시에 서울을 출발해 대구로 향했습니다. nbspnbsp오후 5시에 대구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6시 2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수성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수성대학교 김선순 총장님이 직접 인도로 나와 스님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총장님과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눈 후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 수성대학교 김선순 총장님nbspnbsp강연을 하기 전에는 대구 지역 통일의병들과 함께 간담회 시간을 30분 동안 가졌습니다. 대구 지역 통일의병은 변호사,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모임이 구성되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대구 지역 통일의병 간담회nbsp각자 자기 소개를 마친 후 스님이 먼저 왜 지금 시기에 통일의병이 필요한지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궁금한 것을 묻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보수적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과연 통일운동이 잘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물었고, 한 분은 청소년들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통일 교육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분은 통일은 북한이라는 국가와 국민들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시간 제약 상 짧게 답변을 해주었고,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평화적인 해법에 대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충분히 설명을 잇지 못한 스님은 “자세한 이야기는 강연장에 들어가서 하자”고 하면서 자리를 일어섰습니다.nbspnbsp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의 만남이 대구 지역 통일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nbspnbspnbsp수성대학교 대강당에는 따뜻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맑은 하늘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있게 앞자리부터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시민들은 담소를 나누며 스님을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0대 여성분은 “스님을 TV에서 한번 보고 직접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온 건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고,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는 엄마와 함께 왔다며 웃음을 보였고, 40대 남성분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스님 얼굴을 직접 뵈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설레여 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가 되자 500여명이 자리를 모두 채운 가운데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말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륜 스님이 지난 20여년 간 해온 통일 활동에 관한 소개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 대구 수성대학교 대강당nbsp먼저 스님은 분단이 되고 70년이 지났으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생각은 아직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죠.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으니까 강산이 변해도 7번은 변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생각은 안 변하고 그냥 머물러 있어요. 특히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분단 당시와 6.25 전쟁 때의 아픔 같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늘 그 생각을 하게 돼요. 어릴 때 부모님에게 야단맞은 기억은 지금도 여러분들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많이 바뀌었는데 우리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현실과 많이 유리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대화하면서 5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해 지금 얼마나 국제정세가 바뀌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들 내부의 삶도 많이 바뀌었으며 청소년들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달라진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nbspnbsp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관심도 적고, 통일에 대해서 거부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살면 우리 걸 줘야 하니 손해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하기 때문이에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이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 현실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사물을 봐야지, ‘너 지금 생각 잘못하고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현실에 안 맞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지만,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현실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남북의 통일 문제를 남녀의 결혼에 빗대어 통일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통일 문제는 좌우, 진보와 보수, 야당과 여당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예요. 통일 없이는 이제 더 이상 국가 발전이나 민족의 비전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요만큼 살게 된 것도 어디냐, 옛날에 비하면 이만큼 살게 된 것만 해도 됐지’ 이렇게 만족한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니다, 아직은 더 발전해야 한다. 통일을 발판으로 삼아 고구려의 꿈을 실현하자. 통일을 통해서 자주독립국가를 구성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다시 한번 일어서자’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접근할 수도 있어요. 천 년 만에 다시 도약할 기회가 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우리의 선택이에요.nbspnbspnbsp예쁜 여자를 보고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하자고 했는데 여자가 콧방귀도 안 뀌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그래, 너 잘났다’ 하고 혼자 계속 사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꼭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면 콧방귀를 뀌더라도 구애를 계속해야죠. 그런데 선물을 사줘도 집어던져버려요. 당연히 기분이 굉장히 나쁘죠. 그래도 참고 다시 사다줬는데 또 집어던져버려요. 심지어 욕까지 해요. 그러면 옆에서 이럽니다. ‘왜 그리 바보처럼 여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냐? 한번만 더 그러면 따귀를 때려버려라.’ 그 말도 맞다 싶어서 다음 번에 또 선물을 집어던졌을 때에는 따귀를 때려버렸어요. 그러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결혼은 안 돼요. nbspnbspnbsp목표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래도 그 여자와 결혼하려면 오히려 뺨을 한 대 맞고서라도 ‘그래도 사랑합니다’ 하고 구애를 계속해야 합니다. 때리더라도 결혼식은 올리고 때려야 해요.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 수모를 겪었지만 일단 결혼하면 내 마누라인데 굳이 때릴 이유도 없잖아요. nbspnbspnbsp제가 이런 비유를 드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살 길이 통일이고 비전이 통일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이 통일을 안 하려고 한다, 북한이 이러저러해서 안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북한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목표를 달성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건 우리의 선택이에요. 북한이 저런다고 그럼 우리가 일본하고 통일을 할까요? 중국하고 통일을 할까요? 미국하고 잘 지내니까 미국하고 통일할까요? nbsp지금 우리에게 최대의 위협 세력은 북한이지만, 통일할 대상도 북한이에요. 남북 관계에는 그런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지금 나한테 제일 못되게 구는 사람도 저 여자지만 내가 결혼할 여자도 저 여자예요. nbspnbspnbsp그래서 포용이 필요합니다. 내 사람을 만들려면 포용해줘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 하나하나 다 따지면 안 돼요. 주인 된 자세가 아니라면 성질대로 하고 치워버리면 돼요. 성질대로 하면서 저처럼 이렇게 혼자 살아도 돼요. 이것도 뭐 괜찮아요, 하하. 그러나 정말 주인 된 자세를 가진다면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nbspnbsp결혼에 임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남북의 통일 문제로 등치시키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통일 강연이지만 스님은 이렇게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여는 이야기를 마치고 “오늘은 강연의 시간이 아니라 대화의 시간이에요. 질문이 있으면 뭐든지 해보세요.”라며 대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50대 남성 분은 매일 새벽과 저녁에 108배 참회 기도를 하고 있고 매일 1000배를 1100일 동안 한 적도 있는데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도 내 주장을 계속 내세우다 보니 직장동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어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2년째 육아 휴직 중에 있다는 여성분은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지금도 가끔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 성격이 느긋한 남편이 육아를 하는 것이 나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엄마가 육아를 하는 게 나을지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길게 이야기하며 스님에게 하소연을 하던 여성분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횡설수설을 하기도 했는데 도저히 스님의 답변을 알아듣지 못해 안타깝지만 답변을 멈추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구에 살고 있다는 40대 남성분은 국내적으로는 기득권자들이 통일을 방해하는 요인인 것 같고 국제적으로는 주변 강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그렇다면 남은 건 대한민국 국민들이 합심하는 길 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의 질문에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정성껏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새터민이 질문한 통일에 관련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북한에서 탈출한 지 20년이 되었고 한국에 온 지는 5년 좀 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국정원과 하나원, 사회 감호소를 거칠 때부터 ‘통일이 10년 내로 될 것’이라고 계속 들어왔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10년이면 된다’고 하니 참 답답합니다. 저는 현재 새터민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는 정말로 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번씩 모여서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나 눈물만 앞섭니다. 어떻게 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얼마나 노력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하면 빨리 앞당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nbsp새터민의 목소리에는 고향의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터민들의 마음을 받아주면서 이렇게 답변해 주었습니다.nbspnbsp“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통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저분들은 통일을 안 하면 안 돼요. 통일을 해야 고향도 가고 가족도 볼 수 있으니까 절박해서 이런 질문도 하시는 것이지요.nbsp그러나 생각해볼 점이 있어요. 첫째, 통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통일이 쉽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쉬웠으면 분단 70년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그렇게 외쳤는데도 지금까지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은 통일이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산업화도 쉽지 않았지만, 산업화는 그래도 해냈잖아요. 그건 산업화가 통일보다는 쉬웠다는 이야기예요. 민주화도 할 때는 아주 어려웠어요. 감옥 가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민주화를 이 정도 해냈다는 것은 민주화가 통일보다는 쉬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통일은 우리 선배들이 한 산업화보다, 우리 선배들이 한 민주화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안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또 뒤집어놓고 보면 오히려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1960년대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노래 부를 때 우리가 이만큼 잘 살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1980년대에 청년 학생들이 감옥 가고 데모할 때 정말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될 거라고 상상 못 했어요. 특히 기성세대들은 모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졌어요.nbspnbsp통일도 그와 비슷합니다. 지금 여러 상황을 보면 통일은 가망이 없어요. 미국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이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통일된 한국이 자기 편이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도와줄 텐데, 통일된 한국이 어느 쪽으로 갈지 자기들은 모르잖아요. 그러니 남북을 갈라서 미국은 남한을, 중국은 북한을 지금처럼 반쪽씩이라도 잡고 있는 게 더 확실하고 유리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아주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은 현상 유지가 목적이에요. 그러니 국제적으로도 별로 안 좋은 상황이지요.nbspnbsp북한은 어떨까요? 질문자도 북한에 살아봤으니 알지만 북한은 입으로는 ‘통일, 통일’ 외쳐도 실제로는 통일할 생각보다는 자기 체제 유지에 급급하지 않을까요?”nbsp“정권은 그렇지만 백성들은...”nbsp“아니, 정권이요. 정권은 말로는 통일을 요구하잖아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통일이 중요할까요? 자기들 권력 체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할까요?”nbsp“체제 유지를 원합니다.”nbsp“그렇죠. 그러면 또 남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국민도 그렇고 지도자도 그렇고 정말 통일해야 되겠다고 진심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던가요? 통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도 그 사람들이 통일하려고 일합디까, 자기 승진하고 출세해서 돈 벌려고 일합디까?”nbsp“안전하게 승진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nbsp“공무원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는 거예요. 정말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통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고 다들 어떻게든 승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요. 통일을 주장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으면 통일을 주장하고, 통일을 반대해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으면 통일을 반대하고, 이렇게 지조가 전혀 없고 자기 목표만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래요.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제가 통일 강연 하러 왔다는데도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하잖아요. 아이가 어떻고 배우자가 바람 피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지금 나라가 이런데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냐는 이야기는 관심 없어요. 여기서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가버릴 겁니다. nbspnbspnbsp그런 게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만 보면 통일이 되기 어려워요. 북쪽의 지배층처럼 남쪽에도 지배층이 있지요? 정권을 잡고 있거나 권력의 핵심에 서 있는 소위 기득권은 분단으로 인해 이익을 본 사람들이어서 통일에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어요. 통일하면 요즘은 기업가가 좀 더 이익일 것처럼 되었어요. 자본가가 더 이익을 얻고, 권력도 좀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금방 통일대박론 주장하고 보수언론까지 통일에 앞장서는 거 봤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게 다 이해관계로 일어나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이렇게 해가지고는 좀 어려워요. 어떤 힘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야 이루어져요. 이런 현상만 본다면 통일하기 어렵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 너무 ‘5년만 있으면 통일될 거다’ 이런 생각 하지 마세요.nbsp두 번째, 그렇다고 통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산업화도 불가능하다 했는데 되었고 민주화도 불가능하다 했는데 됐어요. 산업화할 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하고 엄청나게 노력했잖아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1차, 2차, 3차까지 실행하니까 불가능하다고들 하던 것도 이루어졌어요. 민주화 할 때 청년 학생들이 무더기로 감옥 가는 걸 보고 기성세대들은 모두 ‘저놈들이 나라 망친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그런 투쟁을 통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면 통일을 이루려면 누군가가 통일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서, 인권 개선을 위해서, 남한 젊은이들의 미래 희망을 위해서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과 집단이 있어서 그게 세력화가 되어야 통일이 이루어지지, 가만히 앉아서 통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될 수 있습니다. nbspnbsp국제 환경은 어떨까요? 옛날에는 통일 가능성이 별로 없는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통일하기에 유리해졌어요. 앞에서 통일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유리해졌을까요? 전에는 미국 일국 체제였다가 지금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질서가 바뀌어야 하잖아요. 변화가 오는 겁니다. 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분단 고착화로 가지만, 변화에 제대로만 대응하면 현상이 변경되는 과정을 이용해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해요.nbspnbsp국내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굶어죽는데 독재를 하고 권력을 3대 째 세습하는 놈들과 어떻게 통일하느냐? 게다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통일하면 손해 아니냐?’ 이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통일하기에 유리한 분위기가 된 셈이에요. 저렇게 독재를 하니까 주민들이 겉으로는 복종해도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잖아요. 그러면 통일에 유리해진 거예요. 거기는 거기대로 충성하고 여기는 여기대로 충성하면 끝이 안 날 텐데 한 쪽이 충성도가 약해졌잖아요. 저 사람들이 나쁘게 하면 할수록 통일에 유리해요. 그러니 그걸 욕하지 마세요. 우리가 볼 때 엉뚱하게 하면 할수록 통일에는 가까워지고 있어요. nbspnbspnbsp주민 생활이 어려우면 통일에 유리해요. 그것도 북쪽의 상황이 통일에 유리하게 됐어요. 그런데 유리하다고 힘으로 밀어붙여 통일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6.25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는 북쪽이 남쪽보다 유리했어요. 그래서 북쪽이 생각하기에 자기들이 유리하니까 남쪽을 밀어붙이면 통일이 될 거라 생각해서 전쟁을 일으켰잖아요. 그래서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는데 미국을 고려 못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수도를 회복했어요. 우리도 밀릴 때는 방어에만 급급했는데 전세가 유리해지니까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중국이 올라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밀고 올라갔잖아요. 우리가 유리한 것만 생각했지 중국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중국이 개입해서 또 밀려 내려오고, 오락가락 하다가 휴전을 했잖아요.nbspnbsp그때처럼 지금 우리가 유리하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중국은 바보가 아니에요. 북한은 군사력으로 보나 뭘로 보나 유리하지 않아요. 그러나 전쟁을 하면 북한이 비록 진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까요?”nbsp“피해를 많이 줄 것 같습니다.”nbspnbsp“다 초토화된 뒤에 이기면 뭐 해요? 이기기는 이기는데 피해가 막대합니다. 게다가 북한을 이기더라도 완전히 점령하기는 중국의 개입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러니 무력으로 밀어붙여 하는 통일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그러면 통일을 평화적으로 해야겠지요. 평화적으로 한다는 건 상대의 요구도 좀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거예요. 남쪽이 통일을 하려면 무조건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들지 말고 북쪽의 요구와 북쪽이 우려하는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쪽 정부가 중심이 되되 북쪽을 조금 포용해주면 통일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쪽이 딱 중심을 잡아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의 이익을 우선해다오. 세계의 이익은 우리가 미국에 협조할게’ 이렇게 미국을 설득하고, ‘통일된 한국은 중국을 적대하지 않을게’라고 중국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취한다면 생각보다 통일이 빨리 올 수도 있어요.nbspnbsp그런데 꼭 휴전선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통일이 질문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질문자는 북쪽의 가족들을 마음대로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게 지금 제일 급하지 않아요?”nbsp“네.”nbsp“여러분들은 통일이라고 하면 꼭 체제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통일하겠다는 방침만 확실히 정해지면, 즉 ‘저 사람과 결혼하겠다’라는 결심만 딱 서면 상대가 좀 시비를 걸어도 거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철도 복구하고 나무 심고 농업 지원하면서 지금부터 투자를 해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쪽에서 시비 거는 것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돼요. 다만 앞으로의 행동 계획을 짤 때 고려는 해야지요. 언제쯤 가면 어떤 시비를 걸지 예측해서, 딱 안보를 유지하면서 위험요소는 관리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해나간다면 질문자에게 필요한 그런 통일은 한국 정부만 제대로 한다면 23년이면 가능해요.nbspnbsp제일 먼저 평소에는 왕래 못 하더라도 추석과 설만에라도 왔다 갔다 하자, 이런 건 할 수 있잖아요. 이산가족 만나듯이 할 수 있어요.nbspnbspnbspnbsp다음으로, 남쪽에서 버는 돈을 북쪽 가족에게 보내줄 수 있도록 하자. 그러면 질문자가 돈 열심히 벌어서 가족들 보내주고 고향에 투자도 할 수 있잖아요. 이 정도만 되어도 질문자에게는 이미 통일이 된 것이지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이게 통일의 시작이라는 거예요. 이 시작은 우리가 결심만 하면 내일부터 당장 할 수 있어요. 완전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시간이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30년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통일은 빨리 할수록 부담이 크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건 천천히 해도 아무 경제적 손실도, 사회적 혼란도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통일을 보는 관점만 정확하게 잡으면 23년 안에 사실상 통일의 길에 들어서는 성과를 아주 빨리 이룰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인 것까지 다 이루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질문자는 결과는 별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통일은 멀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눈앞에 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nbsp“저는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nbsp“그렇죠. 질문자가 대통령 될 것도 아니고 정치할 것도 아닌데 북한이 다 없어지고 하나가 되는 게 뭐 필요해요? 질문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이 안 일어나고, 고향에 마음대로 가고, 내가 번 돈 내 가족에게 마음대로 주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이 거기서 사업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잖아요. 그 정도는 남북 간에 협상을 서두르면, 아니 딱 남쪽만 결심을 한다면 몇 년 안에 할 수 있는 거예요. 빨리 그런 날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합시다.”nbsp“예. 감사합니다.”nbsp통일은 복잡하고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연하게만 다가왔는데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우선 통일을 하자고 방향을 명확히 하기만 하면 지금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통일은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가슴이 두근 두근 뛰었습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nbspnbsp강연을 마치고 질문한 분에게 찾아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저런 것을 하면 좋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생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nbsp질문자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특히 새터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명쾌한 답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이야기해 주면서 그 첫발은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라고 강조한 후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우리 대한민국의 의지, 둘째, 남북간의 합의, 셋째, 주변국의 협력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추진해야 통일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첫발이 되는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예요.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이건 우리 손가락만으로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겠어요?”nbspnbsp“네” nbspnbsp“나 혼자 나서 봐야 우리는 소액주주라서 별로 도움이 안 돼요. 1인당 최소한 100명은 투표장으로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니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해주세요. 통일이 어떻고 저떻고 설득하려 들면 힘드니까 그러지 말고 밥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이런저런 것을 잘해주면서 ‘신세져서 어떡해?’ 하면 ‘나중에 내가 부탁할 게 있으니까 괜찮아’ 이러세요. 이렇게 우군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야, 밥값 할 때가 왔다. 이렇게 찍어라.’ 하면 됩니다. nbspnbsp여야를 떠나서 통일을 정말 지향하는 지도자, 정당, 세력을 지지하겠다고 마음먹기만 한다면 제가 보기에 23년이면 통일합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요.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안 먹어요. 통일이 되면 청년들이 군대 가서 죽을 일도 없고, 기차 타고 유럽 여행도 갈 수 있고, 혜택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북한 개발에 돈 들지 않냐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투자잖아요. 투자는 돈이 없으면 빌려 써도 돼요. 투자를 하면 이익이 막대하게 나오는데요. 철도 놓을 때 돈 드는 건 맞아요. 그러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해 화물 운송을 시작하면 10년, 20년 안에 본전 다 뽑습니다.nbspnbsp오늘은 경제적인 면에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통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우리의 숙원입니다. 지난 천 년 동안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아픈 기억이 참 많습니다. 몽골이 침략했을 때 삼별초가 항몽 투쟁 하다가 다 죽은 거 아시죠? 임진왜란 때 의병들 몰살당한 것도 아시죠? 또 동학 혁명 때 얼마나 많이 죽었어요? 1차, 2차 의병 전쟁 때며 6.25 전쟁 때는 또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우리는 혁명을 해서 성공한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우리 속에 피해의식이 생겼기 때문에 지금도 뭐든지 머리로는 옳다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안 나서려고 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이렇게 쌓여온 천 년의 한을 다 청산할 수 있습니다. 주눅 들어 살던 우리 모습도 극복할 수 있어요. 이처럼 통일은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자신감을 가져옵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을 만났을 때 절대 기죽을 이유가 없어요. 식민지 지배의 모든 상처도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낸다면 다 과거의 추억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은 해도 그만 말아도 그만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발전, 국가의 발전,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로 다가왔고 그 시기도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기회를 잘 활용하면 통일로 가고, 기회를 놓치면 영구분단으로 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이런 점을 자각하셔서 통일의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세요.nbspnbsp통일의병에 참가한다고 손해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손가락만 잘 놀리면 됩니다. 그리고 잘못 놀려도 부작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데모는 잘못하다가 잡히면 감옥에 가야 하지만, 이건 감옥 갈 일도 없고 야단맞을 일도 없어요.nbspnbspnbsp우리가 이렇게 쉽게 통일의병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총 들고 목숨을 내던져가며 싸워서 나라를 독립시켜 주었고, 우리 선배들이 피 흘리고 투쟁해서 민주화를 이루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쉽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요. 공짜로만 먹으려고 하면 안 돼요. 조금이라도 노력하면서 좋은 세상을 바래야지요. 그런 활동에 여러분들도 같이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통일의 필요성에서 시작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까지 일목요연하게 딱 정리가 되는 명쾌한 강연이었습니다. 청중들은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반드시 할 것을 다짐하며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2시간 30분 동안의 강연을 마친 후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대중은 스님과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손잡고 불렀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여자 어린이의 목소리가 애틋한 마음을 더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노래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질문했던 분들을 비롯한 청중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강연을 들려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에는 강연을 듣고 나가는 대구 시민들을 향해 ‘통일시민학교 입학생 모집’을 위한 통일의병들의 열띤 홍보전이 펼쳐졌습니다. 대구에서는 10월 17일과 18일 양일 간 대구 수성대학교에서 통일시민학교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입학해서 새로운 통일의병으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 입학생 모집nbsp다른 한쪽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펼쳐졌는데,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자 많은 분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분 한분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강연장까지 찾아와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책 사인회를 마치고 시민들이 모두 돌아간 후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이 봉사한 통일의병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을 당당히 외치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수성대학교를 빠녀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12시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어보며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광주시청 대강당에서 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있고, 저녁 7시에는 광양 커뮤니티센터에서 광양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6 (오후) 동대문구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오전에 백담사 기본선원 초청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오후 6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7시에 동대문구민회관에 도착하였지만, 차 안에서 보던 원고 교정 업무가 아직 끝나지 않아 7시30분까지 차 안에서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차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스님nbsp저녁 7시부터 입장이 시작되어 많은 청년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지만, 7시 30분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객석의 절반 정도만 채워진 상태여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장소가 지하철역과는 먼 외진 곳이기도 했지만, 직장생활로 바쁜 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이 평소보다 홍보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꽉 차지 않은 강연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청년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께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동대문구민회관nbsp스님이 “저녁은 먹고 왔어요?” 라고 웃음을 띠며 묻자 일하고 오느라 못 먹고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저도 저녁을 안 먹었어요. 한끼 정도는 안 먹어도 괜찮아요”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대중부에서 주관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 청년들이 참석해도 되는데 요즘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청년들만을 위해 특별히 오늘 강연이 별도로 마련되었다”고 하면서 청년들을 향한 애정을 듬뿍 내비쳐 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제도의 개선을 함께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적 사고를, 사회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개선해 나가야 하는 핵심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는 긍정의 기반 위에 비판 의식을 가져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우선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버리고 이민 갈 나라도 아니고, 자살할 나라도 아니고, 자포자기 할 것도 아니에요. 살 만한 나라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가 아주 많아요. 특히 코리안 리스크라고 해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있지요. 그러니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경제력을 골고루 분산시켜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분배 정책을 바꿔줘야 해요. 정치적으로는 중앙에 너무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내각으로 옮겨서 그 권력이 시민들에게 가까이 오도록 ‘주민자치’라는 직접민주주의가 일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줘야 우리 사회가 보다 살 만한 사회가 됩니다.nbspnbspnbsp‘그래도 50년 전에 비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보 면에서나 좀 나아졌다’고 하는 긍정을 바탕으로 해서 ‘그러나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고 하는 비판의 정신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긍정의 정신이 없이 부정적인 시각만 강해요. 부정적인 시각 위에 비판을 하면 파괴적으로 가기 쉽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면 반대로 비판 정신이 또 없어져서 안주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긍정적 시각 위에 비판 의식을 가지면 혁신적 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자, 이 정도로 하고 여러분들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nbsp여는 말씀을 마치자 여기 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20대 여성분은 10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져는데 나 자신에게도 참회하고 남자친구에게도 참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고 물었고, 역시 20대 여성분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한 상태인데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자꾸 금전적인 것을 원하시니까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고, 30대 남성 분은 외가집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나서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는데 제사와 인과응보가 관계가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20대 남성분은 지금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수준인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살아가려면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물었고, 직장을 다니는 20대 여성분은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강하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지 못해 앞으로 점점 고독하게 지내게 될 것 같아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 질문자가 한명 더 있었지만 강연장의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질문을 더이상 받지 못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7개월 된 아이를 계속 키우는 것과 돈을 더 벌기 위해 직장에 복직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이 자꾸 생긴다는 아기 엄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어린 아기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말 못하는 아기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자 목소리가 많이 높아졌습니다.nbspnbspnbsp“7개월 된 아기 엄마입니다. 육아 휴직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저희 회사는 1년만 쉴 수 있어서 2월에는 복직해야 합니다. 휴직 시작할 때는 무조건 회사를 그만두고 3년은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했는데, 복직할 때가 점점 다가오니까 그만두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요. 아기와 지내는 것이 즐거워서 회사 생활에 미련에 남진 않지만 돈에 미련이 생기고, 요즘 외벌이로는 절대 아기 못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아기를 제 손으로 3년 키운 뒤 돈을 다시 벌고 싶지만, 지금도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데 3년 뒤에 과연 40대의 경력단절 주부를 써줄 직장이 있을지도 고민되고요.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쉬웠지만 막상 제 이야기가 되니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질문드립니다.”nbsp“돈을 빌리고 싶으면 빌려도 되지만, 빌린 돈은 갚아야 합니다.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은 것은 욕심이에요. 욕심이 결국 고통을 가져옵니다. 지금 빌릴 때는 좋지만 나중에는 갚아야 할 빚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그때 좀 참고 안 빌릴 걸’하고 후회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는 후회하지 말고, 이미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기꺼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안 빌릴 걸’ 하고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러나 겪어보고 ‘다시는 빌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까지 바라봐서 ‘앞으로는 좀 궁하더라도 다시는 빌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줄 경험은 필요합니다. 다만, 한번만 실수하지 두 번은 안 해야죠. 이걸 두고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빌리고, 나중에는 갚느라 괴로워하고 후회합니다. 그래놓고 또 조금 궁하면 빌리고 갚느라 괴로워하기를 반복해요. 빌리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빌렸으면 갚으라는 겁니다. 갚을 때 괴로워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니까 기꺼이 받으라는 이야기예요.nbspnbsp아이라는 존재의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큰 부잣집에 사는 것과 작은 집에 사는 것, 큰 자동차를 타는 것과 작은 자동차를 타는 것의 차이가 한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기저귀가 일제인지 한국제인지가 아기에게 중요할까요? 이건 아이가 아닌 엄마에게 중요할 뿐이에요. 엄마가 아이 유모차를 좋은 걸로 해놓으면 기분이 좋고, 기저귀를 좋은 걸로 갈면 기분이 좋고, 큰 자동차를 타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엄마에게 좋다고는 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nbsp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 젖꼭지를 무는 게 우유병 꼭지를 무는 것보다 나아요. 또 말랑말랑한 엄마 가슴 만지고 심장박동 들으면서 젖 먹는 게 좋지요. 아이 입장에서는 사랑해주는 사람의 품에 안겨서 자라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훨씬 안정이 됩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자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안는 사람 마음이 엄마처럼 되기가 쉽지 않아요. 자기가 낳아서 안는 마음과 남의 돈을 받아서 봐주는 마음은 같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유아원에 자기 애를 맡긴다고요? 맡기는 건 자기 자유예요. 그러나 질문자는 나의 미래, 나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지 아이의 행복,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를 위해서 나의 목숨도 버리는 존재가 엄마예요. 건물이 무너졌다면 아이를 껴안아서 애는 살리고 나는 죽는 게 엄마란 말이에요. 그런 마음일 때 아이가 그 마음을 먹고 자라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문제인 것은 그걸 제대로 못 먹어서예요. nbspnbspnbsp옛날 사람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옷도 제대로 못 입었지만 3살 때까지 엄마 품에서 자라면서 엄마의 그 정성을 먹고 자랐는데, 지금 사람들은 우선 젖부터 소의 젖을 먹고 자랐잖아요. ‘엄마가 젖이 안 나와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소젖이라도 먹는 게 낫다’는 것과 ‘젖 먹이면 몸매 가꾸는데 장애가 되어 귀찮으니 소젖을 먹인다’는 것을 비교해보세요. 후자는 아이가 최고의 가치가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키운다면 애초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나 엄마가 키우나 별 차이가 없어요.nbspnbsp그러니 이건 비교할 대상이 아니에요. 직장을 다녀야 한다면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든 3년은 내 손으로 키우겠다’ 하고 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싸워야죠. ‘1년은 유급 휴가 썼지만 2년은 무급 휴가라도 달라’ 이렇게요. 싸운다는 건 화내고 싸우라는 게 아니라 내 권리를 주장하라는 거예요. 요청해서 안 들어주면 또 요청하고 또 요청하고, 아기 업고 가서 이야기하고 또 업고 가서 이야기하고, 예외가 만들어지도록 감동을 시키세요. 아니면 아기를 업고 근무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아니면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해야죠. 왜 자기 권리를 못 찾아요? ‘내가 지금 나쁜 짓 합니까? 지금 출산률이 이렇게 낮은 가운데 애를 낳아 키우는데, 애를 잘 키워야 국민이 건강하고 대한민국이 좋아질 거 아니에요.’ 이렇게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요청해야 해요. 무급휴가를 달라, 안 되면 재택근무하게 해 달라, 그것도 안 되면 아기 업고 근무하게 해 달라, 그것도 안 되면 아기 업고 근무하는 동안에는 월급 절반만 달라,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세요. 3년 뒤에 복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핵심을 두고 투쟁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도 도저히 안 된다면 아무리 아까워도 직장을 버려야죠. 3년 후에 이만한 직장 없는 거야 당연하죠. 그게 희생이지, 다 보장되면 그게 무슨 희생이에요? 지금 아이를 내가 돌보지 않고 직장에 돌아갈 경우 월급 300만원이 보장되어 있다면 앞으로 내가 아이를 키워놓고 직장에 갈 때는 100만원쯤 깎이는 것은 감수해야죠. 한 달에 100만원씩 손해 본다면 1년에 1200만원, 10년에 1억 2천만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커서 문제가 생기면 1억 2천이 아니라 10억을 주고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려고 들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머리로 장사꾼처럼 계산하면 안 돼요. 아이 키우는 것을 왜 자꾸 계산하려 들어요? 아이 낳아서 장사할 일 있어요?nbspnbsp무조건 아이를 키우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 24조원이나 되는 돈을 강에다 쏟아 부어서 녹조를 만드는 일을 합니까? 그걸 이런 데 쓰도록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사내 보유금이 있는데 그걸 사람 키우는데 쓰도록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남자는 군대에 가면 경력을 인정하는데 여자는 이 소중한 아이를 키우는 것을 사회의 공적으로 인정을 안 해줍니까? nbspnbspnbsp비싼 외제 무기, 그것도 전부 고장 나서 쓸모없는 걸 사들이느라 돈을 쓰는 건 내버려두고, 이 소중한 아이 키우는 데 예산이 덜 배정되는 건 왜 방치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돈 모두 여러분들이 내는 세금이잖아요. 이런 것까지 애 없는 제가 가서 싸워줘야겠어요? nbspnbsp제가 다 해주면 여러분은 뭐 할래요? 왜 자기 권리도 못 찾아먹어요? 왜 국민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요? 나라가 대통령 것입니까? 시장 것입니까? 그러니 주주총회가 열릴 때 CEO가 회사 운영을 잘못하면 갈아버리듯 선거 때 갈아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선거 때는 선거 안 하고 다들 놀러다니느냐는 말입니다. 도무지 자기 권리를 찾아먹을 줄 몰라요. 그러면서 불평만 하면 뭐 해요? nbspnbsp모든 보육 정책은 아이를 위한 정책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엄마를 위한 보육정책이에요. 아이를 자기가 직접 키우면 아무 도움이 없고, 보육원에 갖다 맡기면 무상으로 지원해주니까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갖다 맡기잖아요. 아이를 엄마로부터 빼앗는 게 무슨 보육정책이에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는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떡하느냐?’ 그러면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독신세를 거둬야 합니다. 결혼했지만 아이 안 낳는 사람들에게서도 세금을 거둬서 아이 키우는 사람에게 줘야 미래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사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아이가 있어야 하잖아요.nbspnbsp사람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야 해요? 20년을 키워야 하고 하나하나 다 손이 들어가요. 이건 기계로 할 수도 없고 자동화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걸 그냥 방치하니까 지금 사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지금 젊은 세대를 보면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예전보다 정신질환이 많습니다. 이것저것 잘 먹어서 키는 크고 덩치도 좋지만 심리는 갈수록 불안정해져서 조금 더 가면 미국처럼 조그만 애들부터 ‘묻지마 폭력’이니 ‘묻지마 총격’이니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겁니다. 엄마부터 자기 출세, 자기 이익을 위해 아이를 남에게 갖다 맡기잖아요.nbspnbsp여러분들은 나름 잘 사는지 몰라도 제가 보면 다들 정신 나간 사람들이에요. 사는 게 뭐예요? 아이를 하나 낳아서 잘 키우는 게 진짜 사는 거지, 뭐가 잘 사는 거예요? 집이 크고 차가 좋으면 잘 사는 겁니까? 향수 갖다 뿌리고 턱 깎고 눈꺼풀 크게 만드는 게 잘 사는 거예요?nbspnbspnbsp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키우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겁니다. 여기 기독교 신자가 있다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은총이 그 아이에게 있지 어디 다른 사람에게 있겠어요? 그런데 아이를 방치하는 사회잖아요. 아이가 무슨 장애물인 양 이쪽에 갖다 맡겼다가 저쪽에 갖다 맡겼다가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러면 친정어머니는 또 못 살겠다고 야단이에요. 자기가 낳아놓고 친정어머니에겐 왜 맡겨요? 친정어머니는 나 키워준 것만 해도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자기가 키워야 자기 아이지 남이 키우면 남의 아이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키우면 엄마가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이 생깁니다.nbspnbsp제 이야기는 엄마가 키우면 가장 좋지만 그게 불가능하면 최소한 3살까지는 엄마가 키우라는 거예요. 3살까지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엄마가 키우되, 엄마가 집에 앉아서 맨날 울고 직장 못 간다고 성질내면서 키울 거면 그냥 남이 키우는 게 낫습니다. 엄마가 키우라는 건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이 되려면 헌신적으로 키워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제 정을 떼 줘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얼마나 거꾸로들 사는지 몰라요. 경상도 말로 ‘디비쫀다’고 하죠. 어릴 때는 오히려 아무 데나 맡겨서 키우고, 아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들어가서 문제가 나타나면 그제야 법문 찾아 듣고 ‘아이고,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이리 되었구나. 지금부터라도 돌봐야지’ 해서 직장 그만두고 아이에게 돌아가요. 그때는 아이로부터 떨어져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겨울에 춥다고 불 때주라 할 때는 불 안 때서 아이가 얼도록 내버려두더니 뒤늦게 여름에 와서 불 땐다고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nbspnbspnbsp그러니 3살 때까지는 헌신적으로 키우고, 만 4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때부터는 엄마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되 못 돌보면 낮에는 직장 가고 저녁에 와서 돌보면 됩니다. 초등학교 가면 가능하면 자기 알아서 살도록 하면서 관심을 줄여주고, 사춘기가 되면 거의 놓아두고, 20살 넘으면 완전히 정을 끊어서 남처럼 대해줘야 합니다. 완전히 남처럼 대해줘야 제대로 자라는 거예요. 한겨울에는 장작을 10개 때고, 2월 되면 7개 때고, 4월 되면 5개 때고, 5월 되면 3개 때고, 67월 되면 장작을 안 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점을 딱 가지면 혼란이 안 와요.nbspnbsp좋은 건 알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을 안 빌려도 되면 안 갚아도 되니까 좋아요. 그런데 살다보면 돈을 꿔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갚으면 됩니다. 1년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고 싶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하면 유아원에 갖다 맡겨도 아무 문제없어요. 대신, 나중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후회하지 말고 참회해야 합니다. ‘아이고, 내가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는데 네가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이렇게 아이 보고 나무라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고 과보를 기꺼이 받으세요. ‘내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도 네가 그 정도라도 되어주니 다행이다’ 이렇게 항상 아이를 보면서 고마워하면 아이와 싸울 일이 없어요.nbspnbsp엄마는 아이와 싸우면 안 돼요. 엄마가 애와 싸우면 아이는 힘에 부쳐서 못 이기기 때문에 심리가 억압됩니다. 그 억압된 심리가 사춘기에 폭발하기 때문에 엄마를 때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앞으로 갈수록 자식이 부모 때리는 게 심해질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엄마는 아이에게 화내거나 싸울 필요가 없어요. 마냥 내버려두란 말이 아니에요. 말 안 들으면 엄마는 밥을 안 주든 빨래를 안 해주든 여러 가지 수단이 많으니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잖아요. 애가 뭐라고 해도 ‘그래, 네 생각이 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애와 싸워요?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하면 돼요. ‘유학가고 싶어’ 하면 ‘가라’ 하면 돼요. ‘돈은?’ ‘돈은 네 알아서 해라.’ nbspnbspnbsp‘밥 안 먹을래’ 하면 ‘그래, 먹지 마라’ 하고 상을 치워버리면 돼요. 나중에 ‘엄마, 밥 줘’ 하면 ‘네가 찾아 먹어’ 하고요. 수단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싸워요? 그러면 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도 엄마에게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습니다. 심리가 엄마로부터 억압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깡패라도 엄마 앞에서는 기가 팍 죽어요.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엄마한테 대드는 것은 다 엄마가 아이들과 싸웠기 때문에 생긴 문제예요. 여러분들 지금 심리를 보세요. 부모가 화내고 짜증내고 아버지가 고함치고 해서 심리가 억압되어 있으면 점점 더 아버지가 미워지잖아요. 한쪽이 억압하면 다른 한쪽은 저항하고 싶어집니다. 억압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저항을 해요?nbsp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좋다’고 제가 이야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인생에 길이 정해진 건 아닙니다. 최선책이 없으면 차선책을 선택하면 됩니다. 1년은 키우고 2년은 그냥 맡기자 결정했으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 나중에 후회하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항상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라주어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리 해도 된다는 거예요. 아이를 이 nbsp사람 저 사람에게 자꾸 뺑뺑이 돌리지는 말라는 말이에요. 그건 적어도 자아가 확실히 형성된 후에 하세요.nbspnbsp모성애는 자기가 없는 거예요. ‘남자는 되는데 왜 여자는 안 되느냐’고 남녀관계로 비교할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생물학적인 거예요. 어미가 이렇게 해야 그 생물 종이 지속적으로 번성할 수 있어요. 이건 자연의 질서란 말입니다. 싫으면 안 낳으면 돼요. nbspnbsp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왜 자기 권리만 중요하고 아이 권리는 생각 안 해요? 아이 권리를 무시하는 게 여성운동이에요?nbspnbspnbsp나중에 엄마 나이가 40살이 넘고 아이가 사춘기 넘어가면 여성분들도 대부분 제 의견에 동의를 합니다. 그 결과를 보거든요. 그런데 30대 여성분들은 아직 아이의 결과를 보지 못했어요. 돈 빌리기만 했지 아직 빚 갚을 때가 안 된 사람들이라 ‘그럴듯하긴 한데 좀 그렇다. 스님이 남자라서 저러나, 아기를 안 키워봐서 저러나’ 합니다. 질문자도 안 키울 땐 동조했는데 키워보니까 동조 못 하겠죠? 그래서 이 문제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저는 그러는 게 좋다고 권유하는 것이지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단호한 이야기에 질문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뉘우쳐졌는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청중들 중에 어머니 또래의 연세를 가진 분들도 눈물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기 엄마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에는 말 못하는 아기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울컥한 감동이 함께 일어났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균형잡힌 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야기의 흐름이 대충 이해되지요? 여러분들이 부모를 위하는 행동을 하면 효자이지만 안 해도 그만이에요.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건 안 하면 안 되는 일에 속합니다. 하는 것이 당연하고, 안 하면 죄가 됩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책임과 의무에 들어가고,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택에 들어갑니다. 부모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성인이라서 부모와의 관계는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적 윤리도덕을 따르던 옛날에는 너무 이것을 부모 중심으로 보았어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애를 갖다버리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어요. 그건 자연의 질서에 맞지 않아요. 효도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닙니다.nbspnbspnbsp효도를 하면 선행입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악행은 아니지만, 아기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악행입니다. 그러니 지악수선, 악은 멈추고 선은 행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금기에 들어가고,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택에 들어갑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선을 행할 권리를 행사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기를 돌보는 것은 악을 멈출 책임과 의무에 들어갑니다.nbspnbsp이렇듯 사물에는 딱 균형 잡힌 관점이 있어야 해요. 부모는 모시지 않아도 되지만,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죄에 들어갑니다. 그 어떤 부모라도 자식이 부모를 원망할 이유는 없어요. 모시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원망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이에요. 원망할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화를 낸 것은 부모의 성질이지, 내가 원망할 대상이 아니에요. 부모가 나에게 뭘 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요구일 뿐입니다. 듣고 안 듣고는 내가 결정하면 되지 그게 부모를 원망할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관점을 딱 잡으면 삶이 편한데, 여러분들은 그렇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거예요.nbspnbsp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면 자기학대로 가게 됩니다. 자기를 높이 평가하면 우월주의에 빠지는데, 우월주의는 곧 열등의식으로 떨어집니다. 자기 기대만큼 되지 못하는 자기를 자학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을 모두 버려야 해요. 나를 존중하고 남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청년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웃음과 감동,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번갈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스님은 질문자들 모두에게 악수를 건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장 입구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2명을 추첨하여 스님 책을 선물하였는데 책을 받고 뛸듯이 기뻐하며 사인회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웃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받는 분들의 눈을 한명 한명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고, 청년들도 강연 내내 좋은 말씀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장 곳곳에서 수고한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강연을 진행하게 할 수 있게 되어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청년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 속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청년정토회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nbsp강연장을 시간 내에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빠른 속도로 강연장을 정리하였고,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돌아오는 차안에서 스님은 사인회 할 때 어떤 분이 건네준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간단히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노원구청에서 열렸던 강연에서 시누이가 미워서 힘들다고 어떤 분이 질문했는데 그 분이 쓴 감사 편지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처음에는 화가 나고 울고불고 했는데 집에 가서 스님 말씀대로 다시 생각해보니 시누이가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가슴 한켠이 시원해지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감사 인사가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답변은 오늘 아기 엄마에게 답변해 준 것처럼 아픈 곳을 콕 찔러서 고름을 팍 짜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납득이 안 되지만 근본 처방을 알려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밤 10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손님과 미팅을 한 후 오후 1시에는 대구로 내려가서 저녁 7시부터는 통일의병에서 주최하는 통일이야기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6 (오전) 백담사 조계종립 기본선원 초청법회
▲ 백담사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법륜 스님은 오전에 조계종립 기본선원인 백담사에서 교과 안거를 하고 있는 사미, 사미니 스님들이 초청한 법회에 참석해 법문했습니다. 오후에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백담사 기본선원 초청법회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새벽 4시에 일어나 대중들보다 일찍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5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백담사로 향했습니다. 백담사 기본선원은 비구게를 받기 전 4년 과정으로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갓 출가한 스님들에게 참선, 간경, 예경, 의식, 가람수호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인데 오늘은 일과 수행이 하나된 삶을 몸소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법륜 스님을 특별 초청해 법문을 듣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백담사로 향하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국수 한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아침 7시 20분 무렵에 백담사에 도착했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벌써 온 산을 수놓기 시작하고 있었고, 특히 백담사로 들어가는 계곡은 크고 작은 연못과 햐얀색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가뭄으로 인해 계곡이 바닥을 드러낸 곳이 곳곳에 보여 많이 아쉽기도 했습니다.nbspnbsp▲ 백담사 계곡nbsp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자 시봉 스님이 마중을 나와 선원장 스님이 머무르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곳 기본선원의 선원장인 선룡 스님은 반가운 표정으로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담소를 나누다가 경내를 둘러본 후 선방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nbsp기본선원 안에 큰 선방인 검인당에는 교과안거 중인 120여명의 스님들이 장삼을 입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약간 경직된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환한 웃음을 내보이며 “공부 잘 하고 계세요?” 라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편안한 가운데 이야기를 해보자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nbspnbsp“오늘 여러분들과 편안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일반 대중들과도 일방적인 강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인생살이에서 어렵거나 궁금한 점을 먼저 물으면 거기에 맞춰서 대화를 합니다. 부처님이 초기에 대기설법을 하신 게 다 그랬어요. 대중의 자기 고뇌에 따라 부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하지요. 선불교의 초기 취지도 현란한 교리나 사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생겨나는 의문을 바로 주고받으면서 마음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화 된달까, 형식화 되면서 자꾸 복잡해지고 제도화 되다 보니 권위주의적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만큼은 가능하면 불교의 원형의 모습을 어떻게 닮을까, 어떻게 원형으로 돌아갈까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오늘은 불교의 원형으로 돌아가보는 시간이 되자는 말씀으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을 듣는 스님들의 모습은 아주 장엄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nbspnbsp우선 스님은 전 세계에는 ‘테라바타’, ‘마하야나’, ‘탄트라’, ‘선’이라는 네 종류의 불교가 있는데 이런 다양한 불교를 포용해 내려면 부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펴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다양한 불교를 하나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뿌리로 돌아간다는 건 부처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고, 어떤 말을 하셨고, 어떤 행동을 하셨느냐? 어떤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어떤 설법을 하셨느냐? 다시 말해 역사적, 사회적, 자연적 조건 속에서 그 분과 그 분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 그 분에게 질문하는 대중들도 그냥 대중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처한 어떤 고뇌를 가진 사람이었는지 살펴야 붓다께서 내린 처방의 맥락과 그 가르침을 비교적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잘 안 되면 언어에 집착해서 글자나 말에 끄달리게 됩니다. 언어나 말을 절대화시키면 삶의 현실과 점점 유리되고 맙니다. 관념적이 되거나, 권위주의가 되거나, 형식화되어서 결국에는 껍데기만 남고 말아요.nbsp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하셨는지에 관계없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nbsp‘부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인도의 자연환경은 어떻고,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의 사회적인 조건은 어땠는가? 남녀 차별과 계급 차별은 어떤 상태였고 정치적 조건은 어땠는가? 이런 환경에서 그 분이 태어나서 어떤 고뇌를 했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가?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 될 예정이었고 결혼해서 자식까지 둔 사람이 왜 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nbspnbsp이렇게 그 분의 고뇌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 고뇌가 이해되어야 출가의 의미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가한 뒤에는 6년간 어떤 수행을 했는가. 스승을 찾아다녔고, 또 스승을 떠났습니다. 그냥 ‘6년 고행했다’고 하지만 그 6년의 고행 기간 동안 어떤 삶의 여정을 겪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해야 해요.nbspnbsp인류 역사상 붓다가 가장 독특하다고 손꼽히는 것은 바로 중도를 발견하셨다는 거예요. 다른 건 다 인도에 있던 것을 그 분도 따라 하셨어요. 그러나 이런 삶과 고행 끝에 붓다는 중도를 발견하셨고, 그 중도에 의한 정진을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열반, 니르바나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이것이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여전히 깨닫기 전의 자신처럼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도 그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셨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불교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었습니다.nbsp제가 보기에 초기의 상가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불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불교는 제도화되고 종교화된 불교지만, 부처님과 초기 제자들은 아직 제도화되기 전, 종교화되기 전에 그냥 수행자로 출발했습니다. 부처님은 사제, 즉 제사장이 아니고 수행자였습니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고 스승이었습니다. 우리를 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스승이었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신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불교의 정체성과 수행자의 정체성을 우선 여러분들이 확보해야 합니다.”nbsp불교가 종교화되기 전에 부처님과 초기 제자들은 사제가 아닌 수행자로 출발했고, 부처님은 ‘중도’를 발견해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했으며, 이런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불교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사미·사미니 스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스님의 법문에 몰입해 들어갔습니다. 특히 세속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분이 왜 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하는 질문은 진정한 출가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부처님의 일생과 선불교의 역사를 주욱 짚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이 발견했다고 하는 ‘중도’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많은 비유를 들어가며 그 원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욕계 중생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는 누구에게나 다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욕구를 대하는 방법은 따라가거나 억압하는 두 가지 길밖에 없어요. 명상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프니까 펴거나 아니면 참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고 싶을 때는 하든지 참든지 두 길밖에 없어요. 따라 하면 쾌락주의가 되고 참으면 고행주의가 됩니다.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지만 그 뿌리는 욕망에 따른 대응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nbspnbsp참는다는 건 긴장하는 거예요. 통증을 참든, 먹고 싶은 것을 참든, 갖고 싶은 것을 참든, 참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긴장한다는 뜻이에요. 긴장하면 선정에 깊이 못 들어갑니다. 붓다도 6년의 고행 기간 동안 밖에서 보기에는 엄청난 고행을 했지만, 마음의 평정이란 측면에서 보면 어릴 때 농경제에 참석해서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던 때 만큼의 선정 수준도 안 되었던 겁니다. 바로 여기에서 붓다가 중도를 발견하신 거예요.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을 억제하는 것도 모두 욕망의 노예입니다. 그래서 그 욕망을 다만 알아차릴 뿐이에요. 저항하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요. 그래서 위빠사나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이 알아차림이잖아요. ‘다만 알아차림’, ‘다만 바라보기만 해라’, ‘다만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이 표현되어 있죠. 이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nbsp군인이 보초를 설 때는 적이 오는지 신경을 딱 써야 하잖아요. 그러면 알아차림은 있지만 긴장 상태가 되어 편안하지 못해요. 반면에 긴장을 풀고 편안하면 번뇌가 생기거나 졸거나 멍청해지죠. 이 양쪽을 모두 극복해야 해요.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있으면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게 선정의 요체예요.nbspnbsp붓다는 이 중도를 처음으로 발견한 거예요. 이것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붓다의 중도, 공자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라고 하는 중도가 모두 거의 BC 5세기에 나왔어요. 서로 다른 문명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도 세계 철학사에 굉장한 성과지요. 물론 공자는 그 중도를 주로 정치에다 적용했지만요. 중도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적절한 것, 이쪽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저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알맞음을 뜻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 중도는 상황에 따라 늘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라고 합니다. 이걸 ‘시중’이라고 해요. 그때그때 조건에 따라서 적절함이 늘 변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같이 살 때를 예로 들어보면, 내가 관심을 가져줘야 상대가 좋아한다면 관심을 가져주는 게 중도이고, 관심을 가져줬더니 간섭이라고 싫어하면 덜 가져주는 것이 중도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좋도록 유지하는 데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 가져야 한다’를 절대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그건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 다르니까요.nbspnbsp붓다의 대기설법은 다 그 중도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항상 질문한 그 사람에게 적절한 것, 이것을 붓다가 처음으로 보였습니다. 열반이니 붓다니 하는 온갖 용어는 원래 인도 철학에 있던 용어예요. 그러나 중도는 붓다가 처음으로 발견한 진리입니다.”nbsp중도에 대해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니 법문을 듣던 스님들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큰 박수로 그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치고 나서 2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사미·사미니 스님들에게 “혹시 수행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나 궁금한 점, 오늘 강의를 들으며서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질문해 보세요” 라며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뒤쪽에 앉은 사미니 스님 한 분이 번쩍 손을 들고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nbspnbspnbsp“수행 과정 중 윗반 스님들이나 도반 스님들이 저에게 하는 좋은 말이든 저를 경책하는 말이든 거기에 끄달리지 말라는 내용이 스님의 강연 내용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중도와 연결이 되는 것인가요?”nbsp“그것은 중도라기 보다는 경계에 끄달리는 거예요. 칭찬하면 약간 기분이 좋고 비난하면 기분이 좀 나쁜 것은 내가 말에 끄달리는 것입니다. 이걸 경계에 끄달린다고 해요. ‘그 사람이 좋은 말 했다, 나쁜 말 했다’ 하면 시비가 되고요. 수행은 내 마음이 끄달릴 때 끄달리는 나를 보는 거예요. ‘아, 내가 칭찬에 들뜨는구나. 내가 비난을 싫어하는구나. 내가 지금 좋고 싫고에 마음이 끄달리고 있구나.’ 이걸 내가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건 내 문제입니다. 조언하고 싶어서 하든, 비난하고 싶어서 하든, 칭찬하고 싶어서 하든 그 사람이야 자기 좋을 대로 말 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내가 끄달리면 그 사람과 시비가 일어납니다. 내 마음만 보라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 말에 끄달리고 있구나.’ 하고 알라는 겁니다.nbspnbsp‘끄달리지 말아야지’라고 하면 고행이 됩니다. 화를 내든 들뜨든 끄달리면 쾌락주의가 돼요. ‘끄달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도 끄달리지 말고, 다만 끄달리고 있는 나와 이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저 말에 끄달리고 있구나. 칭찬에 들뜨고 있구나. 비난에 시비하고 있구나.’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면 금방은 없어지지 않더라도 알아차린 거기에서부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증폭되는 쪽으로는 가지 않아요.”nbspnbsp스님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 사미니 스님은 이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추가했습니다.nbspnbsp“같은 맥락에서 이어지는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자기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서 어느 정도 중심이 잡힌다면, 나중에 자기만의 수행이 아니라 바깥의 중생들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생겨서 사회 실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저는 차후에 공부를 더 해서 가난한 학생들이나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럴 때 자기 관찰을 깊이 하는 것이 도움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우선 자기가 끄달리고 있는 줄 알아차려서 비난이나 칭찬에 덜 흔들리게 되면 끄달림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의 사고 구조는 내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반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붓다가 발견한 위대한 정신작용의 특징이에요. 우리는 거의 늘 끄달리고 있습니다. 한번 습관이 된 까르마는 계속 반복됩니다.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은 내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거예요. 자각한다고 바로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반복에서 벗어나는 첫 시작이 됩니다. 내가 윤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하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을 딛게 되는 거예요. 전에는 모두가 운명론을 믿었어요. 그런데 붓다는 우리가 운명 지어진 존재임을 알아차림으로써 운명론을 극복하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고락이 윤회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고락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를 찾은 거예요.nbspnbsp좋고 싫음, 즉 애가 일어나면 좋은 건 가지려 들고 싫은 건 버리려 드는 취가 일어나는데, 거기서 멈추도록 하는 게 계율이에요. 그래서 수행자는 첫째,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리로 따라가지 않아야 해요. 그런데 이 욕망, 갈애는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계율만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갈애의 뿌리는 뭡니까? 이건 좋고 싫음이 일어나기 전에 기분의 호불호가 있어요. 그게 먼저 일어나고, 거기에 충동적으로 심리가 결합한 게 좋고 싫음이에요. lt신심명gt에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말은 좋고 싫음에 끄달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좋고 싫음에 끄달리는 자기를 알아차리는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을 자기가 보는 거예요. 그 뿌리는 ‘수’, 기분입니다. 그래서 ‘수’를 알아차리는 게 위빠사나예요. 그걸 딱 알아차리면, 내 까르마로부터 ‘수’가 일어나더라도 ‘갈애’라는 좋고 싫음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어요. 그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아주 초기에 알아차리면 쉽게 멈출 수가 있지만 이미 흥분이 되어버리고 나면 알아차려도 쉬이 멈춰지지가 않아요.nbspnbsp갈애가 일어나도 갈애에 끄달리는 말과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계율이에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말과 행위를 해버렸다, 즉 계율을 어겼다고 하면 어긴 줄을 알아차려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게 참회입니다. 참회도 안 하는 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원칙을 어겼으면 어긴 줄을 알아서 참회를 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계율을 어기지 않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nbspnbsp계율을 지킨다는 것도 사실은 긴장이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으로 가야 해요. 이것이 선정입니다. 선정은 고요함이 바탕이에요. 고요하기만 하면 그건 꿔다놓은 보릿자루예요. 거기에는 알아차림이 아주 선명해야 합니다.nbspnbsp그렇다고 여기까지만 가면 공부를 다 한 것이냐? 아니에요. 바로 이런 원리와 법을 알아야 해요. 이게 지혜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nbsp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훗날 복지사업을 할 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예를 들어 어린애들이 밥을 못 먹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너무 불쌍해요. 그 불쌍함이 일어나는 것은 자비심인데, 그 불쌍한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도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한다면 어떨까요? 그 열 명을 내가 다 도와줘야 할 텐데 내 능력으로는 두 명밖에 도울 수밖에 없어서 나머지 여덟 명이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아프다면 그것은 경계에 끄달리는 거예요. 내 가슴만 아프지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울고 슬퍼하고 잠 못 이룰 시간에 한 명을 도울 수 있으면 한 명을 돕는 게 낫지요. 마음이 슬프다는 것은 이미 수행자가 자기 본분을 잃은 거예요. 이미 마음이 가라앉거나 흥분되어 있다는 뜻이거든요. 비심이 일어나되 마음이 아프면 안 돼요.nbspnbsp그럼 바로 뭘 해야 할까요? 나머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해야지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 해서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세 명, 세 명에서 네 명을 돕는 구체적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게 원력이에요. 비심이 원력으로 가야지, 비심이 그냥 주저앉고 끝나면 그냥 속인이에요. 경계에 부딪혔을 때 경계에 빠지지 않고 아픔을 원으로 승화시키는 자기 수행을 해야 합니다.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자기를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안 그러면 경계에 놀아나서 울고불고 하며 괴로워 하지요. 세상에서는 ‘저 스님 훌륭하다’ 할지 몰라도 수행적 관점에서는 아니에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도우면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만, 수행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게 없어야 합니다. 희생은 반드시 칭찬이든 뭐든 대가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대가가 없으면 나중에 섭섭해지고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nbspnbsplt금강경gt 대승정종분에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항복받느냐’고 물으니까 ‘일체 중생을 구제하라. 구제를 마쳤다 하더라도 내가 구제했다는 생각을 가지면 보살이 아니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보살이 아니라는 말은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놓쳐버렸다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지만, 내가 그 가난이라는 데 빠져서 분노를 일으킨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분노하는 건 수행자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안 일어나진 않아요. 그러나 분노가 일어났을 때 그 분노가 상대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에 끄달려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잠재울 수 있어야 수행이에요.nbsp수행자의 수행은 다음 두 가지라 하겠습니다. 우선은 이렇게 자꾸 정진해서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단계까지 가는 거예요.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단계까지 가면 아라한이에요. 두 번째는 경계에 끄달리더라도 경계에 끄달리는 줄을 알아서 그 경계에 빠지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경계에 끄달리는 줄을 알아차리는 게 수다원이에요. 알아차리긴 하지만 이게 반복되고 있지요. 끄달리고 다시 알아차리고, 끄달리고 알아차립니다. 끄달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긴 하지만, ‘끄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달리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끄달리는 존재예요.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끄달릴 때 끄달리는 줄을 알아서 거기에 빠지지 않는 거예요. 명상을 하면 상념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면 좋지만,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일어날 때 거기에 따라가지는 않아야 해요. 망상을 피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걸 지금 연습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이 화두를 참구하든, 수식관을 하든, 생활 속에서 분별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든, 이 모두가 다 수행이에요. 걷거나 앉거나 서는 순간순간을 항상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래서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다 선이다’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nbspnbspnbsp복잡한 세상을 떠나서 고요한 가운데 딱 집중하면 알아차림이 유지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면 알아차림을 놓치기 쉬워요. 앉아서 하는 공부는 운전으로 말하자면 운전교습소에서 면허증을 따기 위해 정해진 코스를 도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운전은 도로주행을 해야 합니다. 도로주행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차선을 지키더라도 상대가 쑥 끼어들어오고 급정거 해요. 그걸 탓하면 운전 못 해요. 그런 것까지 대비해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납니다. 이런 속에서 내가 어떻게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로우냐, 이게 해탈이에요.nbspnbsp분별이 나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그걸 먼저 봐야 합니다. 시선을 안으로 향해서 나로부터 일어나는 걸 늘 주시해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살아보면 이걸 놓치고 자꾸 눈이 상대 쪽으로 나가요. 겉으로 말은 안 해도 마음으로는 ‘네가 그러니까’ 이렇게 되잖아요. 그럴 때 ‘어, 내가 또 놓쳤구나’ 이렇게 되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을 때 혹은 초심에 신통이 생기거나 강의를 잘 해서 인기가 있거나 재능이 많으면 대부분 수행에 실패합니다. 칭찬에 들떠버리거든요. 그래서 시련이 좀 많아야 합니다. 시련이 많아야 오히려 자기 내면에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어요. 육조혜능 대사도 이치는 몇 개월 만에 깨쳤지만 보림을 16년이나 했잖습니까. 그것도 도망다니면서 사냥꾼들 속에 섞여 지내셨어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기초를 잘 익혀야 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생활하며 온갖 분별이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확하게 점검한 뒤에, 밖에 나가 경계에 부딪혀 가면서 연습을 또 해야 해요. 그런데 밖에 안 나가고 이 안에 있는 동안에도 내내 연습은 됩니다. 도반을 봐도 그렇고, 분별심이 늘 생기잖아요. 여러분이 세상을 어떻게 고칠 거냐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이고, 우선은 이 속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자기가 힘을 딱 얻어야 해요. 이걸 득력이라고 합니다. 자기 힘이 없으면 세상에 금방 휘둘립니다. 그렇게 정진을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nbsp수행은 사회적 실천을 더 잘하기 위한 토대가 됨과 동시에 우리의 일상 생활 모두가 수행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먼저 해야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감로와 같은 법문을 설해준 스님에게 사미·사미니 스님들은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친 스님에게 선원장인 선룡 스님은 “백담사에 기본선원이 생긴 이후 150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법문을 해준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다” 며 깊이 있는 가르침을 설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선방을 나온 스님은 시자 스님의 안내로 점심 공양을 하러 이동했습니다. 선원장 스님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하면서는 기본선원의 운영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백담사를 나온 스님은 단풍이 물들고 있는 산을 보면서 잠시라도 걸어보고 싶어 했으나 서울로 곧바로 올라가야 해서 차창 밖으로만 가을 단풍과 백담사 계곡을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 무렵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원래 회의 시간을 잡으려고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녁 7시30분부터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해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5 (오후) 안산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성남시청에서 진행된 성남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에는 한양대 ERICA 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강연 사전 준비를 위해 안산정토회 회원들은 아침 9시부터 모여서 역할분담과 리허셜을 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신 분들 중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반차 휴가를 내고 와서 접수대를 지키는 분도 있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의 땀과 정성으로 오늘 강연이 열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안산 한양대 ERICA 캠퍼스 컨퍼런스홀nbsp강연장에는 6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도 많은 분들이 앉았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스님 소개 영상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대학교에서 진행되는 강연이여서 그런지 대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엄마와 이모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3학년 아이부터 중년의 부부,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낮의 차가운 기운과는 다르게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법문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중들의 얼굴을 보자 스님의 얼굴은 금새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추석 인사와 함께 말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예로 들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작년에는 제가 유럽, 미주, 남미, 오세아니아, 일본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을 했어요. 115개 도시를 115일 동안 하루에 한 개 도시를 찾아다니며 강연을 했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남자든 여자든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다 괴로워해요. 혼자 살다가 괴로워서 ‘결혼하면 나을까’ 싶어 결혼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는 않고, ‘애 낳으면 나을까’ 싶어서 애를 낳아보면 골치가 더 아프고, ‘이혼하면 될까’ 해서 이혼을 해봐도 해결이 안 되고, ‘미국 가서 살면 나을까’ 싶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봐도 해결이 안 되고, ‘직장을 그만두면 나을까’ 싶어서 그만둬도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하지요.nbspnbspnbsp산에 사는 다람쥐도 별로 괴로워하지 않고 사는데 왜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태어나서 괴로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예요. 여러분들이 요즘 쓰는 스마트폰은 옛날 전화기보다 유용하죠?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더 안 해요. 기기가 좋을수록 잘 쓰면 좋지만 잘못 쓰면 더 나빠요. 쓰기에 따라 스마트폰이 옛날 2G폰보다 못할 수 있어요. 그것처럼 인간은 동물보다 더 진화했어요. 다시 말해 정신 작용이 더 뛰어납니다. 스마트폰의 예처럼 뛰어난 정신 작용을 잘 쓰면 동물보다 낫지만 잘못 쓰면 동물보다 못합니다.nbspnbsp그럼 마음을 어떻게 쓰면 동물보다 낫고 어떻게 쓰면 동물보다 못할까요? 어떤 사건이나 일에 임할 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만족이 크고 기쁨이 생깁니다. 반면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면 불만이 크고 괴로움도 커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 괴로운 거예요. 부정적으로 보는 사고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것만 바꿔도 행복도가 훨씬 높아집니다.”nbspnbspnbsp스마트폰을 예로 들어주니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에 대해 요점을 이야기한 후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문답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고의 경향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6살의 아이를 둔 엄마는 아이에게 자꾸 욕심이 생겨 학습지도 시키고 이것 저것 요구를 하는데 아이가 응하지 않아 화가 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38살의 치킨집을 운영하는 청년은 자신의 의심병과 집착으로 여자 친구와 갈등이 생겨 결국 결혼식도 취소되고 이별 통보도 받았는데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자신도 자존감이 많이 낮은 것 같다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20대 여성은 결정 장애가 있고 행동이 많이 느린 편인데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 수 있는지 물었고, 현재 해양융합과학과를 다니고 있는 한양대 학생은 학과가 적성이 맞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 되고 싶어 편입을 하거나 학교를 옮기고 싶은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남성 분은 아이의 엄마가 일본인인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육에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한양대 학생은 세월호 사고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위로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남편이 갑자기 가출을 한 이후 관계 회복과 자녀 양육 때문에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여성 분은 울먹이며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지난 6월에 차안에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이 가던 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에게 ‘아빠는 엄마가 할머니랑 아빠 형제들을 싫어하는 게 싫어서 앞으로 말을 안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남편이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몰라요.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이들과는 연락을 하고, 월급 통장도 원래 제가 관리하던 대로 관리 중입니다. 얼마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내오면 그 금액만 남편 통장에 다시 보내주고, 몇 달 간 부부 간에는 전혀 연락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nbspnbsp원래 화가 나면 얘기를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여러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저와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요. 추석 전에는 옷을 챙기러 오겠다고 문자가 오길래 대화를 해볼까 싶어서 밥을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역시 밥도 먹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옷만 챙겨서 나갔습니다. 추석에도 아이들은 시댁에 갔지만 저는 오지 말라고 하고요. 주로 문자로 대화하지만 그나마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남편이 답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옷 챙기고 나간 후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라는 문자를 제가 보냈더니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은 없는데 앞으로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고민이다. 당분간 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답이 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대화를 시도해봐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지요? 그리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제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계속 울먹이자 청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즉설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제가 결혼 안 한 게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여러분의 고통을 먹고 살아요. 그래도 질문자는 결혼해봤잖아요?”nbsp“예, 아이도 있습니다.”nbsp“그래요. 아이도 있잖아요. 그런데 상처를 질문자가 받았을까요? 아이들이 받았을까요?”nbsp“아이들이 더 많이 받았겠죠.” nbspnbsp“그런데 왜 질문자가 받은 것처럼 울어요? 질문자가 상처받았으면 아이들도 상처받고, 질문자가 상처 안 받았으면 아이들도 상처 안 받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자기의 거울이에요. 아이들을 정말로 걱정한다면 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아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상처를 받았어요. 상처를 안 받았다면 울 일이 없잖아요. 이야기만 꺼내도 운다는 건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아이들도 상처를 받은 거예요. 자기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니까 좋은 엄마는 아니죠. 밥은 다른 사람도 해줄 수 있어요. 엄마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안 주는 게 중요해요.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면서 밥은 해주고 빨래는 해주죠? 밥이나 빨래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작 안 하는 거예요.nbspnbspnbspnbsp질문자가 재미나게, 즐겁게, 쾌활하게 살면 아이들은 상처 안 받아요. 아빠에 대해서 물을 때 ‘엄마가 잘못해서 그래,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래’ 하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너희 아빠가 문제다, 연락도 없다’ 자꾸 이러면 아빠가 나쁘다는 소리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은 상처 받아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는데 그 자식인 자기 자신이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했으니 더욱더 사실이 되잖아요.nbspnbsp여기서 두 가지 모순이 생겨요. 엄마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아빠는 나쁜 사람이 되고,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거짓말쟁이가 돼요. 그것도 자기 자식한테 거짓말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엄마든 아빠든 둘 중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아니면 둘 다 나쁘든가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존감이 없어져요.nbspnbspnbspnbsp그러니 아이들이 아빠를 원망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질문자는 항상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 아빠는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럼 왜 안 오냐고 하면 ‘엄마가 잘못해서 그래. 아빠가 엄마 때문에 상처를 입어서, 너희들은 보고 싶지만 엄마가 보기 싫어서 안 오는 거야. 그러니 아빠를 나무라면 안 돼.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월급도 이렇게 다 보내주잖니.’ 그러면 좋은 아빠를 가진 아이들은 자존감도 생기고 상처를 안 입어요. 그리고 엄마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가 자기 문제를 알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으면 아이들도 문제가 없어요.nbsp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많이 힘들겠구나. 혼자서 저렇게 밖에서 빙빙 돌려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생각하고, 남편에게 연락이 오면 남편 입장을 생각해서 받아주세요. 지금 질문자 이야기를 죽 들어보면 자기 답답한 말만 하려 들지, 남편이 어떻게 힘든지는 관심 없잖아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서 접근하잖아요. ‘옷 가지러 가겠다’ 문자 오면 ‘그러세요’ 이러면 되죠. 와서 편안하게 옷 챙기고 밥 먹고 갈 수 있도록 밥상 딱 차려놓고 질문자는 안 보이는 데에 있으면 되잖아요. 먹고 간 뒤에는 ‘고마워요’ 하고 문자 보내주고요. ‘맛있었지?’ 이러면 안 돼요. nbspnbspnbspnbsp그건 생색내는 거예요. ‘먹어줘서 고마워요’ 하면 돼요. 그리고 또 추석날 와서 옷 가져가겠다 하면 ‘그러세요, 챙겨 놓을게요’ 하고, 가져가면 ‘그래도 추석날 와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보내주세요. 그래도 아직 미련이 남아 있으니 월급을 보내주는 것이예요. 저 같으면 안 보내줄 텐데요. 하하.” nbspnbsp“그건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nbsp“그런데 그게 뭐 울 일이에요? 반성할 일이죠. 대화를 하고 싶다고 ‘왜 대화를 안 하니?’ ‘언제 들어오니?’ 하는 건 모두 내 상처, 내 문제의식이에요. 자기 걱정만 하지 말고 ‘저렇게 밖에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까’ 하고 남편 걱정도 좀 하세요. 질문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원래 사람은 자기 걱정부터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가보면 아내 되는 분이 저를 붙들고 이렇게 말하면서 울어요. ‘아이고, 스님. 이제 남편 죽고 저 혼자 어떻게 살아요? 아이들은 혼자 어떻게 키워요?’nbspnbsp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좀 이상해요. 이 여성 분은 지금 죽은 남편 걱정 안 하고 자기 살 걱정만 하잖아요. 상대가 죽었는데도 죽은 사람은 걱정 안 하고 자기를 걱정하고, 아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 키워야 하는 자기를 걱정하는 거예요. 이게 인간이에요. 인간은 남 걱정할 줄 몰라요. 길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도 다친 사람보다 자기 걱정부터 해요. 존재 자체가 이래요. 그러니 질문자도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사랑은 아니에요.nbspnbspnbspnbsp교회에 좀 다니세요.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했어요? 저라면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둘은 지옥에 확 처넣어버리세요.’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랬어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걱정이 아닌 남 걱정을 하셨어요. 예수님이 있기 전까지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었어요. 하나님 말 안 듣는다고 유황불로 확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들어봤죠?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말은 똑같은 하나님이지만 성격이 180도 달라요. 어떤 기독교인들이 저에게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는데 이건 징벌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유대교 신자이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해놓고 자기는 크리스천이래요. 이렇게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모르듯이 절에 다녀도 불교를 모르는 거예요.nbspnbsp지금 질문자는 자기 걱정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들까,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 이렇게 남편 걱정을 해야 해요. ‘나는 애 둘 키우느라 힘든데 이 놈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돼요. 불평할 게 없어야 해요. 남편 걱정을 조금이라도 해주세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돈을 봉투째로 주면 큰소리 치면서 돈값을 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는 얼마나 좋아요? 혼자 살면서 돈은 돈대로 받고 잔소리도 안 듣고요. nbspnbspnbspnbsp좀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집으로 들어오면 또 귀찮아져요. 들어온 뒤에 나가라고 하지 말고, 없을 때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세요. 또, 남편과 같이 살 때는 자주 싸웠는데 막상 남편 없이 살아보니 아쉽지요? 쓸모가 없으면 그냥 그대로 혼자 살면 되지만, 쓸모가 있다면 귀한 존재인 줄 알아서 다음부터는 잘 해주면 돼요. 걱정할 문제는 아니에요. 언제 들어올 거냐 하는 건 자기 걱정이지요. 점 보러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올 때까지 놔두세요. ‘나가신 김에 실컷 놀다 들어오세요’ 이러고요.nbspnbsp돈도 10만원 보내 달라 하면 20만원 보내주고, 50만원 보내 달라 하면 70만원 보내주세요. ‘밖에서 혼자 사는데 얼마나 힘드세요? 우리야 집 있으니 괜찮아요. 조금 더 쓰세요.’ 이렇게 문자 보내주고요. nbspnbsp그런 수준에서 왜 결혼을 했어요? 안 한 나도 이 정도는 아는데요. 이만큼 아는 나도 결혼 안 하고 사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왜 그리 겁도 없이 결혼을 했어요? 반성 좀 하세요. 하하하.” nbspnbsp“예, 잘 알겠습니다. 겁이 없어서 결혼을 했어요.” nbsp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엄마가 상처를 받지 않으면 아이들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에 질문자도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헤아리게 되면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질문자가 받은 상처도 근본적으로 치유될 것이라는 말에 다시 용기를 얻은 눈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울먹이며 질문을 했지만 자리에 앉으면서는 편안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질문자는 남편이 시부모님을 너무 챙기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고, 스님은 시어머니, 며느리, 남편 삼자가 각자 어떻게 입장을 가져야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지 지혜로운 방법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청중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며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nbsp“유익했어요?”nbsp“네”nbspnbspnbsp“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않으면 여기서는 다 웃지만 문 열고 나가면 허전합니다. 요즘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 프로들이 그렇잖아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서 졸아요. 재미도 있으면서 유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요. 재미있으면 지금 좋고, 유익하면 나중에 좋거든요.nbspnbsp그리고 나만 좋고 남에게 손해인 것은 오래 못 가요. 상대가 참지 못하기 때문에요. 남이 좋고 내가 손해인 것도 오래 못 가요. 나도 세 번 이상 못 참거든요. 그래서 이 이익이 지속되려면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예요. 불경이 어떻고 성경이 어떻고 하는 게 진리가 아니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재미도 있고 유익하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진리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그랬다면 진리의 바다에서 놀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청중들도 정말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지 스님을 향한 박수 소리가 아주 크고 오래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고 무대로 다시 올라가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서 입구까지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다들 차분하고 여유롭게 서 있는 모습은 스님 강연의 덕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질문을 했던 한 여성 분에게 가서 오늘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 같다” 고 하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이곳 안산에 있는 JTS 다문화센터에서 월광 법사님을 비롯해 미얀마 스님과 청년이 강연을 모두 듣고 스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스님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모두 다 잘 알아들었다”며 “감명 깊은 법문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은 한국에 온지 오래 되어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습니다.nbspnbsp▲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법문을 들으러 온 미얀마 스님과 청년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안산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한 후 스님은 강연장 밖으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다들 처음 맡아보는 소임들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나가는 안산 시민들을 보며 강연이 잘 마무리되어 뿌듯해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은 안산을 출발하여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에 백담사로 출발해 선방 스님들을 위해 법문을 해준 후 오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저녁 7시부터 동대문 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