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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8 (오후)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에서 의사와 환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관악구청에서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을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룻밤 주무신 후 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마친 후 4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새벽녘 고속도로 위에는 그믐달이 선명하게 떠서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미소짓는 표정의 그믐달의 향기를 은은하게 받으면서 부지런히 고속도로 위를 달려서 아침 8시 30분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새벽녘 고속도로 위에 보이는 그뭄달nbsp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담벼락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정비하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엄나무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는데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일을 했습니다. 혹시나 잘라진 가지가 지붕 기와를 쳐서 떨어뜨릴까봐 나무에 밧줄을 묶어 안전 장치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윗가지부터 하나씩 잘라서 가볍게 한 후 마지막으로 밑둥을 잘랐습니다.nbspnbspnbsp베어낸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더 잘게 잘랐습니다. 또 잘라진 나무토막은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끼질을 해서 더 가늘게 쪼개었습니다.nbspnbspnbsp옹이가 있는 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도끼질을 여러 번 해도 쪼개지지 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 하고 힘을 모아서 갈라진 틈을 여러번 반복해서 찍었고, 마침내 반으로 갈라지자 “아이고, 힘들다” 하며 땀을 닦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전 내내 장작을 팬 후 갈라진 장작들은 한켠에 가지런히 쌓아두었습니다. 오늘 스님은 전기톱도 사용하고, 도끼질을 하느라 힘을 많이 썼는데 “그러시다가 앓아 누우시면 어쩌시려고요?” 라고 물으니 “아니야, 옛날에 늘 하던 일인데 뭐.” 하며 웃으셨습니다. 스님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춘인 것 같았습니다.nbspnbsp▲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지런히 쌓아둔 장작nbsp마당에 소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져서 가지를 쳐주었고, 대문 앞에 감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서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톱질을 할 때도 스님은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 성큼 올라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나무에서 자른 잔가지들과 톱질을 하고 남은 토막들은 모두 한데 쓸어모아 아궁에 넣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곳곳을 가지런하게 정비를 하다가 강연을 위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울산 두북을 출발해 오후 3시에 영남대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스님을 초청한 영남대 의과대학 김성규 교수님이 나와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nbspnbsp▲ 영남대병원nbsp김교수님과 함께 의료원장실로 이동해 잠시 의료원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최병연 의료원장님은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초청 강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스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최병연 의료원장님과 김성규 교수님nbspnbsp의료원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이 열리는 본관 1층 이산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강당에는 100여 명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자리해 있었는데, 스님이 얼굴을 비치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의료원장님이 나와 스님을 간단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환자와 의료인에게 편안을’ 이라고 소개해 주면서, 환자들도 심적 어려움이 많고, 의사들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데 오늘 스님을 모시고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스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다고 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서슴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내가 간호할 수도 있고, 간호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환자가 와야 의사 선생님들도 먹고 살 수 있고, 의사 선생님이 계셔야 환자가 병을 치료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서로 돕는 상생, 공생 관계인데 또 어떤 때는 서로 상대방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오늘은 여러분들의 속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여기 의료원장님도 계시고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즉문즉설이란 그런 데에 구애받지 않아요. 상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괴롭다는 문제니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nbsp그리고 스님은 병원 측에서 초청 강연에 대한 요청이 여러번 있었지만 강연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어 약속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오후 시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며, 낮시간이라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많이 참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석에는 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어떤 환자 한 분은 닝겔을 꽂은채 휠체어를 타고 강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다소 아픈 표정의 환자들도 많이 보였지만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습니다. 환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들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의사 선생님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자리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사, 간호사, 환자가 함께한 야단법석인 셈입니다.nbspnbspnbsp이어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앞자리에 앉은 교수님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며 소통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직장인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이 업무가 아닌 인간관계, 소통의 문제라고들 합니다. 저도 업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쉽게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와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지게 할 수 있는지 질문 드립니다.”nbsp“교수님이라 그런지 너무 막연한 질문을 하십니다. 인간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는 스승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제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부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식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상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하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인간관계가 어떻다’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용건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귀찮아한다면 딱 용건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버려두면 되고요. 반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도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예요.nbspnbsp질문에 굳이 답을 한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사람마다 각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맞추기가 좀 어렵죠. 사람은 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향, 자기 성질, 자기 취향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생각하니까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죠.nbspnbsp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요. 상대가 어떤 성질인지, 뭘 원하는지를 살펴서 거기에 맞춰주면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처음부터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살아보면서 맞추는 것이지요.nbspnbspnbsp같이 길을 갈 때 내가 조금 빨리 가면 상대가 ‘뭘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그렇게 천천히 가면 언제 가느냐?’ 또 이렇게 아이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람, 성질이 뭐 이래? 조금 빨리 가면 빨리 간다고 그러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간다고 그러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러기가 쉽습니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고, 또 느리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적절하게 맞아집니다. 그렇게 적절히 맞아지는 것을 불교용어로 중도라고 해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딱 정확하게 맞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 되지만, 약간 넘쳤다가 모자랐다가를 반복하며 몇 번 조율하다 보면 비교적 과녁에 맞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잘 안 맞추지요?”nbsp“예, 그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nbspnbsp“그게 왜 힘들어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러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는데요. 질문자는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라는 마음이니까 안 맞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안 맞는지, 뭐가 안 맞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nbspnbspnbsp“조직사회에서 제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게 대화의 단절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수용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대화의 단절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사람 중에는 자기의 속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사람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해 봤자 세상 사람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해서 용건만 이야기하고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네가 마음의 문을 안 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안 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안 여는 사람은 안 여는 대로, 여는 사람은 여는 대로, 그냥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nbspnbspnbsp예를 들어 ‘강연은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강연하는 사람이 복잡해지지요. 그런데 저는 강연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묻는 대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보통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잖습니까. 저는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뭘 물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둘째,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해본 가장 짧은 답은 ‘모른다’입니다. nbspnbspnbsp모를 때 모른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긴장이 되고 노력이 많이 드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음에 설명해 줘도 되는 사람이면 ‘제가 다른 데 가서 물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틀리면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응하면 됩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이런 겁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강릉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강릉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해야죠.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대응해야 합니다.nbspnbsp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원칙은 없고, 인연에 따라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며 ‘1원칙, 2원칙, 3원칙, 4원칙’을 정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 보고 ‘어른한테 인사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인사를 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한테 ‘임마,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인사는 생활화가 안 돼요. 아이한테 먼저 인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사라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반가우면 ‘반갑습니다’하면 됩니다. 상대가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받을 사람은 받을 거예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도 그냥 자기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안녕?’ 이러고 그냥 들어가면 되고, 학생이 물으면 대답해 주면 되고, 말 안 하면 놔두면 돼요. 그걸 내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소통이 안 된다’,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자꾸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질문자의 업무 중에 와서 묻더라도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없으면 ‘지금은 업무시간이니까 이따 휴식시간에 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인연에 따라서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nbsp“예, 제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맙습니다.”nbspnbsp교수님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함께 강연을 들은 의사, 간호사, 환자들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인간 관계의 갈등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nbsp이어서 교수님이 한가지 질문을 더 했고, 환자 가족분의 질문도 추가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3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서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세 번째 질문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힘이 든다고 질문한 것에 대해 답해 주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 시간 동안에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할애해 답하지만 딱 그 시간 끝나고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 제 소맷자락을 붙잡고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립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nbspnbsp이처럼 남이 하는 이야기에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담을 이야기인지 살펴봐서 들을 만한 이야기라면 내가 바꾸면 되고,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흘려야지요. 누군가가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 좋아요’ 라고 하는 건 그냥 그들의 생각이나 기분이 그렇다는 뜻일 뿐,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진짜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면 연예인이나 인기 탤런트처럼 정신질환이 생겨요. 영화를 한 편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람을 보고 기분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것은 그들의 기분이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라고 해야 칭찬에 들뜨지 않고 비난에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상대는 그렇게 느끼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nbspnbsp“예, 고맙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너무 그런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왜 신경을 썼을까요? 잘 보이려고 신경을 썼던 겁니다. 뭐 잘났다고 잘 보이려고 그럽니까? 생긴 대로 살면 되지요.”nbspnbsp“예, 고맙습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닝겔을 꽂고 있던 환자 분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더 질문하실 분이 있어요?” 라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마지막 질문자에게 대답해준 대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강연이 끝나서 당황해하는 분도 몇몇 보였지만 스님은 다음 일정이 바빠 웃으면서 양해를 구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 스님을 초청해준 김성규 교수님과 최병연 의료원장님nbsp그리고 스님은 강연을 주관한 김성규 교수님에게 “근무 시간인 오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이렇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저녁 시간에 꼭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음 초청강연 일정을 의논한 후 오후 5시에 병원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 진주에서 예정되어 있는데, 시내에서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대구에서 진주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다행히 무사히 제 시간에 진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진주교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7 서울 관악구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관악구청 8층 강당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전국 순회 강연을 시작한지 20번째를 맞이한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통일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아침 일정을 보냈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러 선물용 김장 김치를 추가로 발송할 것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시골 형님이 농사를 지어 보시한 쌀 여러 포대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봉사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차에 실었습니다.nbspnbsp▲ 어제 추가로 포장한 선물용 김장 김치nbsp▲ 가정 형편이 어려움에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선물할 쌀포대nbsp그리고 그동안 선물용 김장 김치를 담그기 위해 수고가 많았던 화광 법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울산 두북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오늘 강연이 있는 관악구청으로 갔습니다.nbspnbsp▲ 관악구청nbsp저녁 6시 30분에 관악구청에 도착한 스님은 접견실에서 머물며 유종필 관악구청장님을 비롯해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유 구청장님에게 강연 장소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책 ‘야단법석’을 선물했고, 유 구청장님도 스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유종필 관악구청장님nbsp한편 일찌감치 관악구청 8층 강당에 모인 통일의병들은 서울시민들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기념 촬영을 잊지 않았습니다.nbsp82328232▲ 추운 날씨에 서울대입구역에서 안내 푯말을 들고 있는 통일의병nbsp강연장 입구에서 60대 남성 분은 열심히 질문을 적고 있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스님께 꼭 nbsp여쭙고 싶다고 합니다. 사촌 3명이 함께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종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라며 웃음을 내비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천주교도인데 스님의 팬이라고 하면서 매일 아침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오는 ‘스님의 하루’로 시작한다고 기분 좋게 말했습니다.nbspnbspnbsp네 대의 nbsp엘리베이터가 바삐 오르내리며 시민들을 nbsp8층으로 실어나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350개의 좌석이 다 채워졌습니다. 7시가 되자 만석을 넘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강연장 문을 열어주면 밖에 서서라도 듣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nbsp없어서 8232죄송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되돌아가시도록 안내를 해야 했습니다.nbsp82328232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이 특별히 참석해 환영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 강연을 듣고 모두 대한민국을 밝히는 찬란한 꽃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대표 김홍신 작가님nbsp“옛날에는 귀신이 정말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귀신이 없어졌어요. 그 많던 귀신이 어디로 갔죠? 바로 전기불 때문입니다. 거리가 밝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니 귀신이 사라져 버렸어요.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처럼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은 아직도 귀신이 무지하게 많아요. 대한민국은 살기 좋아져서 많이 밝아졌는데 아직도 전기불이 비춰지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우리의 북녘 형제들입니다. 이제는 평화적인 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람이 살만한 땅이 될 것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대비해야 합니다. ‘광명’ 이라고 할 때 ‘명’은 자기를 밝히는 것이고 ‘광’은 남을 밝히는 것입니다. 광명을 밝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nbsp강연이 끝나고 며칠 후에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는데 이것을 수강하면 통일의병 군번이 나옵니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당신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냐?’ 고 반드시 물을텐데 그 때 ‘나는 통일의병 군번 몇 번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nbspnbsp그런데 저는 통일의병 대표인데 아직 군번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군번이 1000번으로 예약해 두었는데, 아직 통일의병이 1000명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통일의병이 되셔서 저를 빨리 통일의병 군번을 받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새겨 들어서 모두들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찬란한 꽃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nbsp청중들은 작가님의 간곡한 호소에 화답하며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이 시작되고 nbsp밝은 얼굴로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강연 후 통일의병들과 쫑파티가 예정되어 있어서 강연을 일찍 마치기 위해 강연 취지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관한 강연입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저를 데려온 거예요. 항상 저만 보면 아이나 배우자와 관계된 개인의 인생 고민을 묻고 싶어 하시지만 오늘은 좀 참아주세요. 그런 이야기로 시간이 다 가버리면 주관한 단체에서 다시는 저를 안 불러줄 겁니다. ‘스님이 오시면 사람은 많이 오는데 도무지 우리가 목적하는 통일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통일 이야기로 질문을 받겠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통일 강연이었지만 그래도 개인 고민을 묻는 분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였는데요. nbsp화를 잘 내고 못된 오기가 있어서 8232상대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8232해도 마음에 안들면 그 이야기를 틀렸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개인 고민을 묻는 사람은 통일시민학교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nbsp두 번째 질문자부터 네 번째 질문자까지는 통일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막연하다며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은 현상 유지가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통일을 적극 추진할 것을 기대했지만 남북관계에 변화가 별로 없다며 현 정부에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의 대답과 nbsp스님의 말씀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착착 맞아 nbsp들어 가고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시민들의 웃음 소리는 강연장을 더욱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강연장 여기 저기에는 필기를 열심히 하시는 분,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 등 스님 말씀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니 만큼 스님은 그동안 진행된 강연을 총정리하면서 가슴 뛰는 통일 비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명쾌하게 종합적으로 설명을 해주었기에 듣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nbspnbspnbsp“통일이 되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 변화가 좀 막연하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nbsp“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않고 통일된 뒤의 떡고물부터 탐내시네요.” nbspnbsp“질은 일단 놔두고 양적으로 우선 설명해 보면 경제와 정치, 안보 모든 측면의 돌파구가 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즉 남한만 보면 인구가 5천만이고 국토가 9.8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 1인당 GDP는 약 3만 달러 가까이 되고, 총 GDP는 세계 13위 정도예요. 노무현 대통령 때 11위로 가장 순위가 높았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연이어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 경제를 망쳤다’라고 주장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말을 한 근거가 있긴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18년 동안에 평균 GDP 성장, 즉 경제성장률이 11퍼센트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정치는 문제가 많았지만 경제만큼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7년 동안 연 평균 10퍼센트씩 성장했어요. 노태우 대통령 5년 동안에는 9퍼센트, 김영삼 대통령 5년 동안에는 7퍼센트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5년 동안에는 5퍼센트, 노무현 대통령 5년 동안에는 4퍼센트 성장했어요. 그러니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 말할 만 했어요. ‘그 전에는 아무리 못해도 7퍼센트 성장했는데 저 두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가 10년을 잃어버렸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아무리 못 해도 7퍼센트 성장을 달성하겠다. 그러면 1인당 GDP 4만 달러 시대가 도래해서 세계 경제 11위에서 7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큰소리 친 게 소위 747 정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BBK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밀어줬어요. 경제 성장의 향수 때문이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5년 동안에 3퍼센트 성장했습니다. 7퍼센트는 고사하고 전대 대통령들 만큼도 달성하지 못했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2.8퍼센트예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3.8퍼센트 정도를 목표로 세웠지만, 임기 끝날 때까지 2.5퍼센트 정도 하면 잘 한 축에 들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음 선거에 어떤 대통령 후보든 ‘내가 당선되면 5퍼센트 성장시키겠다’라고 주장해도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3퍼센트 이상은 더 끌어올리기 어려워요. 앞으로 20년 이상은 갈수록 성장이 둔화되어 평균 2퍼센트 성장도 어렵다고 이미 국제기구에서 예측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인 장기불황에 우리도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못 받아들이죠. 왜? 지난 50년 동안 분단된 상태로도 이렇게 성장해왔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상태로도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고, 국방력도 크게 증가시켰기 때문에 지금 조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잘 하면 다시 경제도 성장하고, 정치 민주화도 더 나아가고, 안보도 튼튼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건 과거의 향수 때문에 착각하는 거예요.nbspnbsp현실을 보면 국내적으로 이미 성장 동력이 소진됐어요. 첫째 원인은 모방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미국이 100이라면 유럽이 93, 일본이 90, 우리가 한 83까지 따라왔어요. 그 차이가 클 때는 따라잡는 성장속도가 빠르지만 차이가 좁혀질수록 성장속도도 느려집니다.nbspnbspnbsp중국도 차이가 많이 날 때는 두 자리 수 성장하다가 차이가 줄어드니 7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잖아요. 조금 더 가면 5퍼센트 대로 떨어질 겁니다. 갈수록 둔화되고 정체되는 것이 우리만 겪는 현상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겁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가다가 이미 20년 전에 저성장에 돌입한 거예요.nbspnbsp그래서 우리도 장기불황에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계속 잘 되리라고 아무리 믿어도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인구 구성을 봐도 노령 인구가 많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집니다. 국제산업구조를 봐도 뒤에서는 중국이 바짝 추격해오고 앞에는 일본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이 이제 더 이상 고성장은 어렵다는 겁니다. 국제적인 상황도 그렇습니다. 한때 수출이 매년 2, 30퍼센트씩 늘었지만 지금은 줄어들잖아요. 작년보다 올해는 더 많이 줄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nbspnbsp문제는 경제만이 아닙니다. 정치며 안보도 그래요. 그동안 우리는 분단된 속에서도 독재에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지방 자치도 이루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오고,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민주화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더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간다는 인식들이 팽배합니다.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이야기도 나와요. 지방 자치단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들 할 정도입니다. 국회도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구조가 국민의 정치수요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질적인 줄 세우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nbspnbsp이런 게 꼭 대통령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문제라고만 하긴 어렵습니다. 분단된 상태에서의 민주주의는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안보도 국방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최근 56년 사이에 전쟁 직전까지 간 위기가 벌써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전에 국방력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때도 전쟁 위험을 이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잖아요. 물리력은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실질적인 전쟁 위험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앞서 말했듯 경제도 성장했는데 내적인 질은 안 좋고요. 겉으로는 살기 좋은 편인 것 같이 보이지만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7위여서 카메룬, 말리 같은 나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성 평등도는 115위이고 자살률과 저출산율은 세계 1위입니다. ‘헬조선’의 악명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항목이 60여 가지나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외적인 규모는 커졌지만 내부 질은 굉장히 부실한 거예요. 그런데 그 양의 성장마저 이제는 거의 멈췄습니다.nbspnbsp전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였어요. 미국이 전 세계 부의 30퍼센트와 전 세계 국방예산의 50퍼센트 정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미국과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미국과 동맹을 맺고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안보도 안심할 수 있었고, 과학기술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경제도 성장했고, 정치도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거예요.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일극이 아닌 양극 체제로 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안보는 미국에 의지해있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해 있어요. 중국에의 수출량이 미국에의 수출량 두 배가 넘고, 우리의 흑자는 대부분 중국에서 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하니까 어느 한 발을 떼야 하는데, 안보도 못 떼고 경제도 못 떼는 진퇴양난에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 미국이 한국더러 대중 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안보 면에서 계속 압력을 넣는 거예요.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해라, 사드 배치하라는 게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면 중국과는 갈등관계가 됩니다. 지금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하고자 친중 외교를 하려고 하다 보니 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불신을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줄타기를 해왔지만, 이게 올해까지 갈지 내년까지 갈지 모릅니다.nbspnbsp이런 속에서는 우리의 안보도, 경제도, 정치도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은 없다는 현실진단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그냥 정체국면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의 정체국면은 곧 불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거나 몰락하는 양 길밖에 없어요. 정체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어렵습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돌파구가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일단 인구가 7천3백만, 영토가 21만 제곱킬로미터로 늘어납니다. 여기에 정치적 갈등과 군사적 갈등이 사라지고 북한의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력과 기술이 결합한다면 우리는 다시 세계적인 생산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때 세계적인 생산기지였다가 중국에 그것을 넘겨줬잖아요. 지금은 중국에서 인도로 이동해가고 있는데, 그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다시 한국이 생산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1020년 동안은 다시 57퍼센트 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철도, 도로와 항만, 비행장, 공장 등 인프라 건설만 하더라도 북한개발에는 엄청난 수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동부가 정체국면에 빠졌을 때 서부개척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일본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100년 전에는 위기 극복을 노리고 한국을 침략해서 실제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지금은 침략을 할 수 없으니까 길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정체국면을 당분간 해소할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그게 통일이에요.nbspnbspnbsp통일은 남한에게만 좋은 게 아니에요. 북한도 생존의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통합경제, 즉 통일경제로 간다면 북한은 연 10퍼센트 이상 성장은 당연하고 연 100퍼센트 성장도 가능합니다. 국제통계학에서 이미 관련 예상 수치가 다 나와 있어요. 통일하고 20년만 지나면 통일한국의 인구, 규모, 영토, 경제력은 세계 7위권까지 올라간다고 보고들 있어요. 남북한과 동북 3성, 연해주, 일본까지 결합하는 환동해권 인구만도 3억 5천만 명 가까이 됩니다. 그 영토는 유럽과 맞먹습니다. 거기에 시베리아나 사할린의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바로 들어와요. 그러면 중동이 저렇게 불안해도 걱정 없이 값싼 에너지원을 들여와 이용할 수 있어요. 경제적으로 활력이 생기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입니다.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돈이 많이 들지 않냐고 우려하겠죠. 돈이 많이 드는 건 맞아요. 그런데 이 돈은 전부 투자비용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비용이 몇 년 전 계산으로 4조원이었으니 지금은 56조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이 돈은 1020년 안에 회수할 수 있어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되면 한국에는 물류혁명이 일어납니다. 물류가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이렇게 투자비용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우리 돈으로 하고 없으면 외자 유치해서 하면 됩니다. 세계에 투자처를 찾는 자본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나머지도 다 그냥 허공에 뿌리는 돈이 아니라 투자비용이에요.nbspnbsp북한의 2천만 인구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여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돈이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양질의 값싼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2천만 인구 자체가 엄청난 자산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묻혀 있는 희귀 금속과 각종 지하자원은 적게 잡으면 4조 달러, 많이 잡으면 8조 달러의 가치를 지닙니다. 매장량의 가치가 남한의 30배에 달해요. 그러니 하나하나 이야기할 것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nbsp그리고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사고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하다가도 ‘그런 이야기 하면 종북으로 몰린다’ 이럴 정도로 사고에 늘 어떤 벽이 있잖아요. 통일되면 그런 벽이 다 허물어져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사상이든 자유로이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의 사고의 창의성이 굉장히 발달합니다. 특히 미래에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가 과제잖아요.nbspnbsp그리고 한국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 들어봤죠? 한국은 지금은 잘 나갈지 몰라도 언제든 전쟁이 나서 국가기반 시설 몇 개만 폭격당해버리면 하루아침에 경제가 붕괴되는 위험을 안고 있어요. 이걸 ‘코리아 리스크’라고 해요. 우리의 실력이 100이라면 국제사회에서는 70밖에 평가를 안 해줍니다. 언제든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해서 값어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데, 통일이 되면 코리아라는 상표가 제 값어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지 않으니 잘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 ‘코리아’라고 하면 핵, 전쟁, 기아, 독재, 인권문제 같은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성, 현대가 한국 기업인지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습니다. 코리아 상표가 아닌 자기 상표로 자리 잡은 거예요.nbsp그런데 통일이 되어 코리아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코리아 상표에 힘입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면도날은 독일제가 좋더라’ 하지 않고 ‘뭐든지 독일제면 좋더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듯, 한국도 그리 될 수 있어요. 대기업은 자기 상표를 갖고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자기 상표를 가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코리아 상표가 좋아져버리면 모든 중소기업이 다 살아납니다. 그냥 화장지 하나, 드라이버 하나도 한국제라고 하면 무조건 좋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돼요. 통일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nbspnbspnbsp이렇듯 통일 뒤에 얻어지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산가족의 아픔 같은 우리들의 오래된 한을 풀 수도 있고,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도 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경쟁하다 보니 북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고 남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어요. 지금 교과서 논란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역사 왜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부정해야 하다 보니 독립운동할 때 사회주의 계열에 섰거나 훗날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제외시켜버려서 독립운동사가 빈약합니다. 북한은 또 독재를 해야 하다 보니 중요한 독립운동은 김일성과 주변 인물들이 다 했다 하고 북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에서 죄다 제거해버렸어요. 이런 역사적 왜곡이 아주 심한데, 통일되면 이런 역사가 전부 복원될 수 있어요.nbspnbsp통일의 효과는 문학과 예술 면에도 미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면 우리가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이 평화상과 문학상입니다. 이 분단의 고통, 전쟁의 고통을 승화시켜서 낸 소설이 지금 노벨상을 받는다면 남쪽에서 나온 작품은 북쪽에서 반대할 테고 북쪽에서 나온 작품은 남쪽에서 반대할 겁니다. 받을 만한 사람들은 이미 대략 윤곽이 나와 있어요. 통일이 되면 그런 걸림돌이 없으니 바로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겁니다.nbsp외교 면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미중이 각축하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우선 목적이 있으니까 일본을 내세워요. 전후 패전국의 이미지를 다 지우고 재무장시켜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한국도 붙으라고 압력을 가하는 거예요. 한일 간에 군사협력을 하라는 게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과 완전히 적대 관계에 놓여야 해요. 통일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지금 미국은 남한만 떼 와서 미국의 대중 방어선에 붙이려 들어요. 중국은 지금 남한을 거기 못 들어가게 하려고 잡아당기고는 있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북한을 껴안을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의 아래에, 남한은 미국의 아래에 붙어서 미중의 싸움 속에서 다시 서로 갈등해야 합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남북이 갈등하고 전쟁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남북이 통일국가를 형성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생기면 한국이 중국 쪽으로 협력하느냐 미국 쪽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질서, 판도가 달라져요. 그래서 우리만 중심을 잡으면 오히려 우리 덕분에 동아시아가 평화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통일한국에 중국과 일본, 미국까지 손을 잡아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면 그 규모가 유럽이나 미국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러면 일부 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가 동아시아로 다시 옮겨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동아시아가 지금처럼 민족적인 갈등을 하고 있으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경제 규모나 군사 규모만 커져서 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의 신장, 학문의 창조성, 이런 많은 요소가 다 결합해야 하잖아요.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21세기 초반에 통일을 하고 중반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나간다면, 21세기 후반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오고 우리가 그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됨으로 해서 결국은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지금 열려 있는데 그 첫 발이 통일입니다.nbspnbsp우리가 미중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서 갈등의 분쟁 지역이 될 것이냐, 아니면 통일국가를 형성해 미중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번영의 중심이 될 거냐를 가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예요.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됩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큰 이익을 생각해서 작은 감정이나 손실, 즉 북한을 포용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감수해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거에 입었던 피해에 대한 복수심에 너무 사로잡혀서 미래의 큰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우리의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의 통일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남북한의 통일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그 통일이 합의통일이 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일본 및 중국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북한을 굴복시켜 통일하게 되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중국과 우리는 갈등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없어집니다.nbspnbspnbsp그러니 통일이 돼야 하지만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는 방법론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남북이 대등하게 통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쪽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남한 사람인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대등하게 통일하기가 어려워요. 남한도 문제가 없진 않지만 남한을 좀 리모델링해서 통일의 중심을 삼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북한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경제만 먼저 통합하되 정치는 10년이든 20년이든 중국처럼 여유를 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북한 자체에 어떤 변화가 올 때까지 좀 열어둬야 해요. 그러나 경제 문제는 내일이라도 당장 통합경제, 통일경제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nbspnbsp통일의 이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확신이 없어요. 미래는 불안정하잖아요. 미국 가서 이야기해봐도 그래요. 자기들이 봐도 통일된 한국이 미국 편에 딱 붙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쉽게 도와주지 않으려 합니다. 중국에서도 손을 쉽게 내밀어주지 않아요. 지금의 한국이 미국과 군사며 뭐며 전부 결합되어 있는데 통일됐다고 해서 중국과 협력관계가 되리라고 확신하기 어렵잖아요. 자기 쪽으로 온다는 게 확실하면 지지하겠지만, 미래의 불확실성보다는 현실에 주어진 확고한 것을 확실히 가지려 드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미국은 남한을 확실하게 끌어오는 쪽으로 관심을 갖고, 중국은 남한이 미국과 결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일본까지 결합하지는 않도록 잡아당기고 있어요. 중국이 지금은 우리에게 잘 해주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북한을 잡을 겁니다. 지금은 한국을 잡으려고 북한과 거리를 좀 두고 있다는 거예요.nbspnbsp이런 위태로운 균형이 유지되는 것도 몇 년 안 남았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가서 사드 배치에 사인을 안 했기 때문에 그나마 아직 시간이 좀 있는 거예요. 사드 배치에 사인하면 대세가 거의 기울어진다고 봐야 해요.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아직은 중국에 고개를 안 숙이고 버티고 있으니 시간을 번 겁니다. 그런데 저걸 얼마나 더 버티겠어요? 고개 숙여버리면 끝나요. 남쪽이든 북쪽이든 아직은 통일의 기회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못 견뎌서 이쪽이든 저쪽으로든 기울어지면 통일은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편제되어 장기간 분단 상태로 가야 합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몇 십 년은 이어질 거예요. 그러면 미래의 100년 역시 과거의 100년과 다름없는 상태로 가야 해요.nbspnbspnbsp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알아서, 국민이 뜻을 모아야 합니다. 현재의 정부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압력을 가하고, 현 정부가 그리 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통일을 확실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행동 없이 현재의 정치인들만 가지고는 마치 임진왜란 때 관군만 가지고는 안 되었듯이 통일도 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의병운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시험이 중요하고 결혼이 중요하고 자녀 문제가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전체 공동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분단된 상태에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잘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굉장히 불확실한 조건에 놓여 있는데, 이걸 지금 안 보고 그 안에서 자기 개인 문제에만 안주해 있으면 미래는 어둡습니다. 조선말엽에 소위 서세동점이라는 국제적인 위기에 처했는데도 아무런 방비 없이 내부에서 사색당쟁만 하다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세력 교체 되는 시기에 결국은 나라를 잃고 식민 지배를 겪었잖아요. 지금 그와 비슷한 새로운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의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nbsp스님의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동안 통일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어떤 이익이 있는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기운이 약동하는 듯한 희망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불안해 하고만 있는 우리들의 앞길에 대해 이렇게 멋진 청사진을 그려주시는 어른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지금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우리는 주권자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이익과 발전,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행해야 해요. 만약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가 임명해야 합니다.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주주들이 모여 주주총회를 열고 CEO를 새로 뽑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대주주는 사람 수는 적지만 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소액주주는 힘을 많이 모아야 해요.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언론을 장악한 사람들은 몇 십만 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각성해서 다음 선거에는 반드시 국가의 목표를 평화와 통일에 두고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그렇게 투표의 기준을 세워야 해요.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공장을 세운다’ 이런 공약에는 그만 현혹되고요.nbspnbspnbsp‘사실상 통일에 준하도록 해서 북한 개발을 하면 우리는 최소한 5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면 진짜지만, 무턱대고 그냥 경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피땀 흘려 이뤄온 발전,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수칙이 평화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평화를 기초로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는 비전을 가지려면 통일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우리의 공동체인 국가는 발전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국가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국민은 행복하지 않아요. 아까 국민 행복도가 세계 117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국가운영체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런 쪽으로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nbspnbsp의병은 반군이 아닙니다. 반군은 정부군과 싸우지만, 의병은 정부군과 손잡아서 외세와 싸우는 거예요. 국가의 목표인 평화와 통일을 해나가는데 정부만으로는 힘이 미약하니까 우리가 밀어줘서 그 목표를 이루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해나간다면 대한민국에게 새로운 희망, 비전이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nbsp그러니 여기서 이념이나 지역, 종교 같은 논쟁은 이제 좀 빼면 어떨까 해요. 국가 전체의 목표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떠나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룬 사람들도, 경제 산업화를 이룬 사람들도 모두 힘을 모아야 해요. ‘저 사람들은 친일 후손이다’, ‘저 사람은 빨갱이 후손이다’ 이런 말 너무 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의해서 해야지, 자꾸 과거 따지고 연좌제 따지지 마세요. 과거가 어땠든 지금 그가 이 평화와 통일 대의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도 함께할 수가 있다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지도자를 우리가 뽑아줘야 해요. 그게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평가를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다음 대선까지는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현 정부가 남은 2년 동안 통일을 위해 일하도록 강력한 지원과 압력을 넣고, 현 정부가 그걸 못 하면 다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는 언제 들어도 새롭게 들리고, 정신도 번쩍 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정말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는 반드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의 말씀 중에 와닿는 것이 너무 많았던지 오늘따라 가사가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스님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으로 강연장을 찾아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몇몇 분들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오늘 스님 말씀 중에 이제는 성장이 한계에 다달았다, 통일만이 유일하게 남은 길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며 강연 내용 전반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내일 스님의 하루에 오늘 강연 소식이 올라가면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달을 할 것이다” 라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nbspnbsp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가운데서도 통일의병들은 ‘통일시민학교’ 참가자 모집 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들고 열정적으로 홍보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계기로 관악구에서도 많은 통일의병들이 탄생해서 통일을 위한 작은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에 접수 신청을 하고 있는 시민들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모두 돌아가고 텅빈 강연장에 다시 통일의병들이 모두 모여 조촐하게 쫑파티를 가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의 불을 끄고 어둡게 한 상태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들어오자 통일의병들은 모두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두 분을 반겼습니다.nbspnbsp▲ 2015년 통일이야기 20회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쫑파티nbsp‘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동안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이어서 지난 전국 순회 20회 강연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니 보이지않는 곳곳에서 수고해 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다시 한 번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돌아보는 영상 상영nbsp곧이어 통일의병들은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내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 많은 곳을 종횡무진 다니시라고 운동화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님에게 선물을 건네는 통일의병nbsp선물을 받고 나서 스님은 수고한 통일의병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올 한해 20회 강연을 준비하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힘들다고 하더니 20회를 진행해 보고 나니 이력이 좀 생겼죠? 오늘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네요. 내년 일정을 잡아보니까 상반기에 9회, 하반기에 9회, 총 18회 강연 일정이 나와요.nbspnbspnbsp어떤 일이든 처음에 굴릴 때가 어려워요. 왔다갔다 할 때는 미는 게 무척 힘이 드는데,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잘 굴러가요. 아직은 저절로 굴러가는 수준까지는 안 된 것 같아요. 아직 좀 더 밀어야하지 않나 싶은데, 이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개인적인 다른 일들이 장애가 되더라도 이 일에 조금 더 정열을 바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직장 생활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세상이 변하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잖아요.nbspnbspnbsp극단적인 사람들의 장점은 행동한다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든지, 인터넷에 댓글 다는데 목을 매든지, 데모를 하든지 하는데, 합리적인 사람들은 사람만 신사이지 행동을 잘 안하니까 역사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안 돼요. 그러니 우리는 행동하는 신사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하는 중도, 행동하는 합리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할 수 있어야 시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민에 불과한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행동하는 시민이 되기를 바랍니다.”nbsp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달라는 당부 말씀에 모두들 힘찬 박수로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통일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유랑극단처럼 전국을 누비고 다닌 ‘즉통팀’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한마디 속에 그동안 수고로움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하는 동안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전국을 누빈 즉통팀 nbspnbsp“통일을 알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우리가 뿌린 이 씨앗을 잘 가꾸어서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내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nbsp“평생 못해본 현수막 아줌마, 전단지 아줌마도 해보면서 덕분에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처음에는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 가슴 속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도 스타렉스에 몸을 맡기고 전국을 누비고 싶습니다.”nbspnbsp특별히 고생한 ‘즉통팀’을 위해 모두들 더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도 소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숫자 ‘20’ 이 꽂혀 있는 케익이 무대 가운데에 자리했습니다. ‘20’은 올 한해 진행된 통일 강연 20회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박수와 함성 속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함께 ‘후’하고 촛불을 끈 후 케익 컷팅을 했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 마치며 기념 케익을 자르는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nbsp이어서 통일의병 노래팀인 ‘학수고대’가 20회 강연을 원만히 마친 것을 기념하여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노래를 열창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노래팀 학수고대의 축하 공연nbsp“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nbsp기타 반주에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며 그동안 수고했던 서로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언젠가 학수고대가 노래를 잘 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스님께 노래를 들은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통일이 다 되어 간다” 라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서로 웃으며 쫑파티를 마무리한 후 다함께 오늘의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의병들은 글자 하나씩을 들고 “통일이야기 20강 완수. 의병아 통일 해버리자” 는 문장을 만든 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통일 의병”을 외쳤습니다.nbspnbspnbsp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니 내년에는 정말 통일로 성큼 다가서게 해줄 기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포크로 케익을 서로 먹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며 스님은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관악구청을 나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울산 두북에 들렀다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에서 초청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6 (오전) 제8기 행자대학원 졸업수련
nbsp새벽 6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정토회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는 행자님 한 분이 찾아와 스님께 인사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정토회 ‘행자대학원’ 과정은 3년 교육과정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1년, 서울 공동체에서 사회실천 활동 6개월, 인도JTS에 파견되어 1년, 다시 문경 행자원에서 6개월을 지내며 일과 수행의 통일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입니다.nbspnbsp오늘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온 행자님은 제8기 행자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 2월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원래 처음 시작할 때는 7명이 함께 시작했지만 모두 도중에 그만두는 바람에 이 행자님 한 분만 끝까지 남아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행자반장과 졸업하는 행자님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은 졸업 수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과 동행을 하며 스님 가까이에서 일상 속에서의 수행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먼저 스님이 일주일 동안 같이 다녀보니 어땠는지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행자님은 “법문에서 하시는 말씀 그대로 소박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금강경 제1분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상이 떠올랐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의 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같은 원리를 지치지 않고 수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것이 가슴에 많이 남는다”고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혹시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행자님은 두 가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또 포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자주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자상하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남을 못 봐주는 마음, 그래서 갈구는 마음, ‘악심’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든지 행자대학원 도반들도 못 봐줬습니다. 그리고 자책의 정도나 빈도가 강합니다. 지난번에 정진을 하다가 그런 제 마음을 알아차리니까 스스로가 무서웠습니다. 그게 ‘살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도가 세다’, 그래서 ‘두렵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쭤봅니다.”nbspnbsp“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 스님도 고문을 당할 때 ‘이 자식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독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 누그러진 이유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사과를 해서도 아니고, 내가 참선해서 깨친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그냥 일반 사람이구나’ 하는 걸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고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 인연에서는 저 사람들이 나한테 악마 같은 역할을 하지마는, 집에 가면 자상한 남편이고,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미움과 증오심이 많이 사라졌던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악심이 생기는 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나?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하고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자가 그 사람의 까르마를 보면서, 그 사람이 자란 환경에 비추어서 그 사람의 살아온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 수 있겠다’, ‘저런 경우에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저 사람이 저래서 저런 말을 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면 악심이 없어지는 거예요.nbspnbsp그렇다고 ‘그게 옳다’ 라든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행위나 말은 이해가 된다’ 하면 내 속의 악심은 없어진다는 거예요. 다만 내가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싶으면 개선하려고 노력을 해야지요.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게 아니라 이게 더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거 아니냐? 더 효율적인 거 아니냐?’ 이렇게 접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린 늘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주장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쪽으로 가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의 습관이 그런 거니까 그런 내 모습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 나마저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는 거구나’ 하고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한테 이해받을 권리가 있듯이 나 또한 이해받을 권리가 있으니까요.nbspnbsp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것’과 ‘바람직한 것’은 다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건 개선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나 개선이 잘 안 된다고 질문자가 나쁜 인간은 아니고, 다만 좀 이해가 부족할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것이지요. 대신 행자님은 일은 잘할 겁니다. 우리 정토회에서 일을 빨리빨리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다른 사람이 일을 못하는 걸 못 봐내고, 소통이 잘 안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걸 과제로 삼아야지요. ‘간섭하지 마라’ 하니까 외면한다든지, ‘외면하지 마라’ 하니까 간섭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되고, 간섭도 외면도 다 버려야 됩니다. 미워하는 것도 버리고, 외면하는 것도 버려야지요.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나한테 있는 증오심이나 미움은 사라집니다. 또 행자님은 ‘정토를 만들겠다’는 원이 있으니까,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잖아요.nbspnbspnbsp반면 그렇게 안 되는 것도 내 현실이니까,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꾸준히 해 나가면 올해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건 좀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아직 습관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이렇게 가면 됩니다.”nbsp행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되 잘 안되는 현실 또한 수용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씀이 많은 위안이 된 것 같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행자님은 두 번째 고민을 물었습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눈치를 자주 보게 된다는 고민이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서도 자상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일을 할 때는 남 눈치 살살 봐가면서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고, 대충 하고, 그러면서 집중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주인된 마음 없이 눈치만 보며 적당히 하니까 흥미도 없고 기분도 쳐집니다. 서울공동체에서 지낼 때도 그랬고, 인도에서 지낼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행자원으로 다시 돌아왔는데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줄 잘 몰랐는데, 이번 학기 들어서 ‘패턴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줄 알게 되었는데도 개선이 잘 안 됩니다. 계속 다른 데 기웃거리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말 거는 식으로 집중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곳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nbspnbsp“그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108배를 할 때 가만히 자기를 살펴보세요. 예를 들어 ‘절반만 하면 하기 싫고 꾀가 나고 안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70배쯤 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등의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1000배를 한다면 한 500배에서 그렇다든지, 700배에서 그렇다든지, 시작할 때는 주로 그렇지만 하다 보면 괜찮다든지, 시작할 때 약간 거부반응이 있지만 해 버리면 괜찮다든지, 시작할 때는 좋은 마음으로 하는데 중간쯤 가면 꼭 그렇다든지, 중간만 넘어서면 마무리할 때까지 꼭 집어치워버린다든지 하는 자기 패턴을 알아야 되거든요. 그게 업입니다.nbspnbsp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형성된 것이기도 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분명한 극복과제로 삼아버리면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극복이 됩니다. 모를 때는 하다가 그만 두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알고 있으니까 ‘아, 이거 극복대상이다’ 하면서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내가 눈치 보는 까르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눈치 보게 될 때 마다 ‘아, 또 업식이 나타나는구나’ 하며 눈치 보는 자기를 알아차리면 됩니다.nbspnbsp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업식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어떤 심정이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서 거기에 맞춰서 살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극복해야 되겠다’ 싶다면 그것을 과제로 분명히 삼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분별심이 많다면 ‘이 정도 수준의 분별심은 그냥 갖고 살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걸 문제 삼지도 말고, 분별심 낸 걸 참회만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면 계속 지켜보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 이것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지요. 동일한 패턴이 열 번, 스무 번 반복된다면 그건 윤회이지만 그렇게 반복되더라도 극복하려는 목표를 세워놓고 지켜본다면 그건 연습이거든요.”nbsp스님은 고민이 더 있는지 물었고, 행자님은 더 이상 고민이 없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행자님이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면 정토회의 사회활동 부서에 배치되어 다양한 실천 활동을 하게 될 것을 헤아리며 사회 활동을 하면서도 어떻게 수행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수행자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지, 개인으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군데에 앉아서 평생 선정을 닦다가 죽는 것도 ‘수행자’라고 할 수 있지만, 꼭 앉아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평정심만 유지한다면 움직일 수도 있고, 오고 갈 수도 있고, 일할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날 nbsp수도 있는 거예요. 그랬을 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괴로움, 분별심, 분노 등은 수행의 과제로 삼으면 됩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서 사회활동을 하는 건 수행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nbspnbspnbsp일상이 다 수행이 되는 거예요. 일을 할 때는 일을 맵시 있게 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맵시 있게 하려고 하는데 집착이 되고, 또 집착하는 자기를 한탄하면 그건 수행을 놓치는 겁니다. 또 안 된다고 포기를 해 버려도 그건 수행을 놓치는 겁니다.nbspnbsp수행이라는 것은 꾸준히 연구하는 자세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수행자가 농사를 지으면 농사의 결과, 즉 ‘잘 지었나, 못 지었나’가 우선이 아니고, 일단 준비를 해서 농사를 짓고, 거기서 발생하는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보완해서 다음에 또 해 보고, 다시 또 해 보면서 농사짓는 겁니다. 그냥 ‘농사짓는 게 재밌다’ 해서 쾌락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치를 터득해 가면서 하는 겁니다. 마음에 호기심이 있으면 재미있어집니다. 그렇지요?”nbsp“예.”nbspnbsp“노래하고 춤추니까 재미있다고 하는 것과 성격이 다른 거예요. 이런 자세를 유지하면 일상에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불교지식은 필요 없다’거나 ‘불교지식을 가져야 된다’가 아니고, 필요한 지식은 틈틈이 습득해 나가는 겁니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지식습득을 못해서 문제가 있다’면 지식에 집착하는 거고, ‘할 필요가 뭐 있어?’ 한다면 이것은 무식으로 가는 길입니다. 학습할 생각이 없는 것이니까요.nbspnbsp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우리가 다 할 순 없는 겁니다. 정토회도 농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진작부터 갖고 있었지만 20년이 되도록 아직 못하고 있잖아요.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못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런 목표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리해서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꾸준히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를 생각하면서 조금씩 하다가, 이제 기회가 오면 하면 되는 겁니다. 저도 지금 작은 텃밭을 경작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실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심심하니까 소일거리로 해 보는 게 아니라 터도 조금 밖에 없고, 시간도 조금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시간이 되는 만큼 연습을 해 보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공부를 해 나가면 됩니다.nbsp수행이라는 것은 이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치를 파악하고 그 이치를 이용해서 효율을 높이는 게 과학이잖습니까.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작용하는 걸 파악해서 그걸 가지고 삶을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때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한 달 동안 가만히 있어 볼 수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할 때도 편안해야지 ‘심심하구나’ 하면 그건 일에 집착하는 거예요.nbspnbsp이것을 물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 따라 모양이 변하고, 경사가 완만하면 천천히 흐르고, 경사가 급하면 빠르게 흐르며, 웅덩이를 만나면 고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떨어집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환경 따라 적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게 잘 안 되는 거거든요. 또 반대로 우리는 필요하면 환경을 바꿀 수도 있는 겁니다.nbspnbsp예를 들어 아무 데나 감자 심고, 고구마 심는 게 아니라, 토질을 조사해서 토질에 맞게 곡식을 심는 경우가 있을 테고, 고구마를 심기는 해야겠는데 토질이 고구마에 적당하지 않다면 토질을 개선해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선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토질에 딱 맞춰서 곡식을 심는 게 제일 간단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게 제일 쉬운 길이에요. 그러나 그것만 길은 아니에요. 때로는 감자 심을 모래땅에 고구마를 심어야 될 때도 있을 텐데, 막상 심어보니 고구마가 잘 안 된다면 다른 데 가서 찰흙을 파다가 넣어준다든지, 거름을 더 집어넣든지 해서 토질을 개선해야 됩니다.nbspnbsp환경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나무로 집을 지으면 일손이 적게 들겠지요? 그러나 건물에 필요한 땅이 하필 둔덕이라면 땅을 깎아서라도 지어야 되지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늘 중도적이어야 됩니다. 치우치면 안 돼요. 치우치면 ‘적응’만 주장하거나 ‘개발’만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적응과 개발이라는 것은 같이 가야 됩니다.”nbspnbsp수행은 이치를 터득해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생활 속에서 모든 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험과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행자님에게 언제 졸업하는지 물어본 후 졸업을 하게 되더라도 수행하는 자세는 똑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게 되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주인된 자세가 중요함을 덧붙이며 행자대학원 졸업에 대한 격려 말씀을 마쳤습니다.nbspnbsp“2월에 졸업인가요?”nbsp“예.”nbsp“졸업이라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일상과 똑같은 겁니다. 다만 일정한 학습기간을 마치고 졸업하게 되면 학생신분을 벗어나서 한 부서에서 뭐든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수행을 꾸준히 같이 해나가야 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밥하라’ 그러면 밥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밥을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쌀을 먼저 씻어 놓아보기도 하고, 불을 크게 대거나 작게 대보기도 해 보고, 찹쌀을 섞어 보기도 하고 안 섞어 보기도 하면서 연구를 하는 게 수행입니다. 김치를 담글 때도 배추가 맛있어야 되는 건지, 절일 때 잘 절여야 되는 건지, 양념을 뭘로 해야 맛있게 되는 건지, 어떤 온도가 보관하기에 적당한지를 연구하면서 김치를 담그는 게 수행입니다. 행자님에게 김치공장을 맡기면 김치를 연구하고, 농사를 맡기면 농사에 대해서 연구하고, 통일 운동을 맡기면 통일을 연구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걸 맡기면 아이들 가르치는 걸 연구하면, 그게 수행입니다.nbspnbsp성과를 자꾸 내려고 하면 욕심에 치우치고, 주어진 것만 한다면 그건 게으른 겁니다. ‘주인’은 종과 다른 겁니다. 주인은 자기 농사이니까 열심히 지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더라도 아프다면 쉬겠다고 결정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종은 그게 안 되고, 아파도 나가서 일해야 되고, 건강해도 오늘 휴일이라면 놀아야 됩니다. 그러나 주인은 휴일이라고 놀 이유가 뭐가 있어요? 안 아프면 일하는 것이지요. 휴일이라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면 집에서라도 일을 하잖아요. 그게 주인과 종업원의 차이입니다. ‘놀아라’ 한다고 노는 주인은 없습니다. 일을 하지요. 그러나 일해야 되는 상황인데도 좀 아프다면 스스로 휴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정토회에서 ‘수행자’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nbspnbsp그런 관점에서 행자님은 정토회에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주어진 규칙을 지키기도 해야겠지만 본인이 주인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이라고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규칙을 따르다 보면 종속적으로 되기가 쉽고, ‘주인 되라’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하기가 쉽습니다. 행자님은 정토회에서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가 잘 되도록 하는 자기 역할이 있겠지만, 그러나 또 그 안에서 주인으로서 연구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조정도 하고, 그래서 건의도 하고, 안 되면 또 다시 조정해서 해 보고 이래야 합니다.nbspnbsp종업원들은 한두 번 해 보고 안 되면 ‘거, 뭐,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내가 머리 쓸 이유가 뭐가 있나?’ 하고 포기해 버리잖아요. 일이라는 것은 늘 연구를 해야 됩니다. 김치를 저장하기 위해서 비닐로 포장을 하더라도 어떻게 포장해야 효과적인가를 연구하고, 또 포장한 김치를 들 때도 탁 들다가 약간 삐끗하면 ‘아, 포장할 때는 안전하게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밑이 터질 염려도 있겠구나’ 알아차려서, 더 연구를 해서 포장에 신경을 쓴다든지 이렇게 자꾸 해 보면서 터득을 하는 겁니다.nbspnbspnbsp그래서 수행자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 늘 이치에 맞게 연구하고, 실수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 욕할 게 아니라 그 실수의 원인을 연구해야 되고, 또 실수를 했을 때 지적을 받으면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죽어라고 김치 담가서 포장해 놨더니 그 밑이 좀 터졌다고 야단치느냐 ’는 식으로 접근하면 공부에 진척이 생기지 않습니다.”nbsp스님의 애정이 깃든 말씀에 행자님은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특히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 가까이에서 김치를 포장하고 배달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직접 피부로 느낀 점이 많기에 스님의 말씀이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nbspnbsp행자님과의 일문일답 형식으로 모임이 진행되었지만 스님의 말씀은 직장생활을 하든, 가정생활을 하든, 언제 어느 곳에서든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길 바랍니다.nbspnbsp▲ 스님의 낡고 해진 신발. 밑창이 떨어진 것을 스님은 본드로 다시 붙여서 신고 있습니다. 행자님은 이런 검소한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nbspnbsp행자반장과 행자님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님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하는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곱게 차수를 한 채 스님의 차량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nbspnbsp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오후 1시가 되어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두북에 도착해서는 아랫방에 보관하고 있던 감 상자에서 홍시가 된 것을 분류해 모으는 등 소일을 한 후 오늘은 수행팀 전체가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밤늦게 다시 새책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면서 늦게까지 일하시는 것을 보니 약간 마음에 부담을 갖고 계시는 듯 했습니다.nbsp내일은 두북 정토수련원에 들러 선물용 김장김치의 포장상태와 택배 주문을 살펴본 후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저녁 7시부터는 관악구청 8층 대강당에서 서울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립니다.※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6 (새벽)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부터 9시 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한 350여 명의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새벽 5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6시부터 특강수련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어제부터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에서 1박 2일 동안 특강수련을 하고 있는 정토불교대학생들도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부터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간단히 간식만 먹고 고요히 명상을 하며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서울제주 지역과 대전충청 지역에서 정토불교대학을 듣고 있는 학생들 350여 명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죽비 삼성과 함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스님은 간밤에 모두 잘 잤는지 안부를 물은 후 이런 낯선 환경에서 불편함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수행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nbsp“네.”nbsp“매일 혼자 자다가 300여 명이 함께 자니까 잠이 잘 안 왔는지 대답이 신통찮네요.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자면 잠이 잘 오는데, 여기는 코로 연주하는 음악을 여기저기서 틀어줍니다. 못 잔 사람은 잠을 안 자도 되는 사람이에요. 너무 졸리면 무당이 굿을 해도 잔다고 하잖아요. 또 화장실에 갔더니 엉덩이가 시원하죠? 문경에서는 화장실에도 늘 에어컨을 틀어둡니다. nbspnbsp불편함을 경험해보는 것도 수행이에요. 일상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기에는 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습관과 다르기 때문에 불편한 거예요. 애초부터 이런 환경에 사는 사람은 적응이 되어서 불편하지 않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서양식 좌변기가 불편했어요. 시설이 아주 좋았는데도 불편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습관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문경 갔더니 시설이 열악해서 불편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속적 관점, 즉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관점입니다. 이제는 마음공부를 하니까, 내가 살아온 삶의 습관과 다르기 때문에 불편을 느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다시 말해 이건 주관적인 문제입니다.nbsp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습관에 맞게 시설을 고치는 것, 즉 주변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게 세속적 관점이에요. 다른 하나는 내 습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업식을 소멸시킴으로써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습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적 관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는 내 욕구대로 하는 것을 이릅니다. 수행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내 욕구대로 하겠다고 하는 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nbspnbsp동산에 뜬 달을 보고 어머니 살아계실 때 보름달을 보며 기도를 함께 하던 것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고 합시다. 그때 ‘아, 오늘은 달마저도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라고 한다면 좋은 시 구절이긴 하지만 이건 세속적 관점입니다. 수행적 관점은 슬픔이 일어난 원인이 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고 내가 슬퍼했어요. 나에게서 슬픔이 일어났습니다. 달에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달이 나의 옛 추억을 자극해서 나에게서 슬픔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겁니다.nbspnbspnbsp이 차이가 정리되지 않으면 불교대학을 졸업해도 과학이나 역사 배우듯 ‘불교가 뭐고 수행이 뭐다’라는 지식만 쌓았지, 수행이 된 건 아니에요. 수행이 됐는지 여부는 내가 가진 고뇌가 해결이 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고뇌가 없어졌거나 줄어들었다면 수행으로 한 발 나아간 것이지만, 박사학위를 따도 될 만큼 불교 지식이 많아도 내 고뇌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으면 그건 수행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수행은 관점이 중요합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을 바꾸어서 행복해지는 것은 욕망을 따라가는 세속적 관점입니다. 욕망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해탈이고 수행이에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하룻밤 자는 것도 수행이 됩니다. ‘여기 와서 여럿이 자느라 잠을 설쳤다. 화장실이 불편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졸린다.’ 이런 불편을 느꼈을 때 ‘왜 여럿이 같이 자야 하나? 왜 화장실을 이따위로 만들어놨나? 왜 스님은 법문을 꼭두새벽에 하나?’ 이렇게 내 불편이 이러저러한 조건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보면 세속적 관점입니다. 마왕 파순의 자식이에요. nbspnbspnbsp그 불편을 통해 자기를 봐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혼자 자는 잠버릇이 있었구나. 내가 좌식변기에 익숙했구나. 내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었구나. 그래서 이 습관이 여기에 저항을 하는구나. 습관은 길들여진 것이고, 그 길들여진 대로 나아가려고 하는 관성이 있구나. 그래서 그렇게 안 되니까 마음이 불편하거나 짜증이 일어나는구나.’nbspnbsp불편을 느끼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편을 느낄 때 이 불편, 이 괴로움의 원인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자기가 알아야 합니다. 화장실 갈 때 약간 가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처럼, 불편함이 일어나는 것을 먼저 알아차려야 해요. 그리고 이 원인이 나의 업식으로부터 일어남을 알아서 여기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불편을 느끼다가 ‘어’ 하고 나를 알아차림으로 해서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nbsp우리는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이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환경에 처해도 거기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지는 게 수행이에요. 정토회 수련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시설 개선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지금껏 살아온 습관과 달라서 불편을 느끼니까 가능하면 시설을 그 사람들 습관에 맞도록 해주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그러나 수행을 목적으로 여기 온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괴롭지 않아야 그게 해탈입니다. 시설이 나쁘다고 해서 꼭 수행에 장애가 되는 건 아닙니다. 수행은 항상 자기에 깨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번에 저에게 요청된 강연 시간은 무려 3시간입니다. 저는 3시간을 앉아서 설법할 수 있는데 여러분은 3시간을 앉아서 들을 수 있을까요?”nbspnbsp“네”nbspnbsp“저는 안 졸고 앉아서 법문할 수 있는데 여러분도 안 졸고 3시간 들을 수 있어요?”nbspnbsp“네”nbsp“저는 화장실에 안 가고 3시간 할 수 있는데 여러분도 그럴 수 있어요?”nbspnbsp“네”nbspnbspnbsp대답은 컸지만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새벽에 3시간 동안의 법문은 모두들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이 수행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절로 마음이 났는가 봅니다.nbspnbsp이렇게 여는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은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법문이 시작되고 나서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3시간 30분 동안 26명의 질문에 대해 연이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불교대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해결해주려다보니 스님의 말도 평소보다 더 빨라지고 목소리도 더 높아졌습니다.nbspnbsp1번 질문자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 중에서 그 생명에는 식물도 포함이 되는지, 식물을 먹어도 되면 동물도 먹어도 되는 것 아닌지 물었고, 2번 질문자는 모든 것을 베풀라는 가르침에 따르면 자신의 장기도 타인을 위해 모두 이식해야 하는지 물었고, 3번 질문자는 마음이라는 것은 경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작용하는데, 선, 염불, 화두, 호흡관을 함께 수행해도 괜찮은지 물었고, 4번 질문자는 수행을 해보니 진척이 없고 미움을 비웠다가 채웠다가 반복하는데 이것이 윤회인지 물었고, 5번 질문자는 교회를 다닐 때는 죄의 사함을 얻었다고 해주어서 마음이 금방 밝아졌는데 불교에서는 인과 연이라고 하니까 다시 죄인이 된 것 같다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여기까지 답변을 마치니 벌써 1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이 졸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척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주며 계속 웃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녘이라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습니다.nbspnbsp그래서 스님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자”며 노래를 한곡 불러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한 분이 번쩍 일어나서 멋들어지게 노래를 한자락 불러주었습니다.nbspnbspnbsp“빗물이 몽실몽실 하늘나르며 ♬ 부처님의 노래를 불러주네.nbsp새들이 넘실넘실 하늘나르며 ♬ 부처님의 노래를 곱게 부르네.”nbspnbsp박수를 치고 웃다보니 어느새 잠이 모두 깨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또한번 청중들을 웃겨 주려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영상 강의가 좋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졸아도 영상 속에서 법문하다가 ‘너 왜 졸고있어?’ 이런 얘기를 절대 안 합니다. 오늘처럼 직강에서는 여러분들이 졸면 ‘왜 졸아요?’ 하고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가능하면 영상 강의를 많이 들으세요.” nbspnbsp스님의 농담에 활짝 웃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이어서 스님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6번 질문자는 모든 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불법도 모든 법에 포함되는 것인지 물었고, 7번 질문자는 사회 생활과 신앙 생활 둘 중에 사회 생활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는데 괜찮은지 물었고, 8번 질문자는 세상의 변화와 발전은 욕망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데 욕망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고 가르치니 어리둥절하기만 하고, 그래서 불교국가인 동남아가 가난한 것 같다고 물었고, 9번 질문자는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니 화도 적어지고 불만도 거의 없어지고 편안한데 그냥 이렇게 편안하고만 있어도 되는지, 욕심을 버리고 열망을 가지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10번 질문자는 고와 락은 욕구에서 비롯되니 욕구 없이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욕구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11번 질문자는 출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돈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데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항상 고민이 된다고 물었고, 12번 질문자는 스님께서는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동생이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고 정토불교대학도 다녔으면 좋겠다며 어떻게 권유해야 하는지 물었고, 13번 질문자는 스님의 가르침을 생활에 적용하고 싶은데 수행의 원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었고, 14번 질문자는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지켜보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고, 15번 질문자는 아무리 기도해도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16번 질문자는 스님께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지 물었고, 17번 질문자는 자녀가 20세가 되면 독립적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20세는 과거 기준이 아닌지, 사회 진출이 늦은 요즘 시대를 감안하면 30세로 높여야 하지 않는지 물었고, 18번 질문자는 최근 가정에서 정토법회를 열었는데 참석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들어 마음이 무겁다며 어떻게 전법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19번 질문자는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의 차이는 무엇인지 물었고, 20번 질문자는 함께 수행하는 도반과 어떻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21번 질문자는 왜 불교에서는 108배를 하는지 물었고, 22번 질문자는 기독교 신자이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100일이 지난 지금 배신한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고 물었고, 23번 질문자는 정토회는 어떤 종파를 계승하고 있는지 물었고, 24번 질문자는 정토회를 다니면서 다른 사찰과 많이 다른 점을 보았는데, 기존 사찰에서 하는 방생 기도나 산신 기도 이런 것에 계속 참석해야 할지 물었고, 25번 질문자는 정토회를 만나서 너무 좋은데 특히 아내에게 권유하는게 잘 안된다며 어떻게 전법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26번 질문자는 스님 법명 앞에 ‘지광’ 이라는 법호가 붙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일일이 나열하기도 버거울만큼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고, 스님은 각각에 대해 막힘없이, 마치 물살이 가파른 계곡을 거침없이 유유자재하게 흘러내려가듯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교회에 다닐 때는 죄의 사함을 받아서 좋았는데 불교를 알고나서부터는 인연과보를 알게 되어 더 마음이 무거웠다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명쾌한 스님의 답변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웃기도 하면서 성인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기독교에서는 주 예수만 믿으면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해서 마음이 금방 밝아지는데 불교에서는 인과 연의 이치라고 설명하니까 기도를 해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회 다닐 때는 죄 사함을 받았는데 여기 오니까 다시 죄인이 된 것 같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침 정진할 때 옛날의 죄업이 툭툭 떠올라 괴롭습니다. 스님의 밝은 법문으로 다시 죄 사함을 받고 싶습니다.”nbsp“교회를 다시 가세요.” nbspnbspnbsp“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사제인 브라만, 즉 바라문들이 말하길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성스러운 강가 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죄가 다 씻겨내려가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다’라고 했어요. 부처님의 제자 중 가미니라는 젊은 제자가 그 말을 듣고 의문이 생겼어요.nbspnbsp‘아무리 죄를 지어도 목욕만 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면 밥 얻어먹고 나무 아래서 잠자고 다 떨어진 옷 입고 매일 명상하면서 힘들게 수행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호의호식하고 남 때리고 물건 빼앗고 예쁜 여자는 추행하고 성질나면 욕하고 술 마셔서 취해도 강가 강에 몸만 담그면 죄가 다 없어진다면 왜 부처님은 우리더러 이렇게 힘든 길을 가라 그러실까?’nbspnbsp그래서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저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아무리 죄를 지어도 강가강에서 목욕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사해지고 천국에 간다는데 그 말이 맞습니까?’nbspnbsp이 질문에 답하기가 참 어려워요. ‘틀렸어’라고 하면 남의 종교를 비방하는 게 됩니다. 비방하지 않으려고 ‘그 말도 일리가 있다’라고 하면 진리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가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가겠구나.’ nbspnbspnbsp‘그들의 말이 맞다면’은 상대를 배척하지 않고 수용한 거예요. 사람은 목욕을 잠시 하고 말지만 물고기는 거기서 태어나고 평생 살다가 죽으니, 바라문들이 말하는 이치대로라면 물고기가 하늘나라에 가장 먼저 가겠죠. 이 말을 듣고 ‘그래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거예요? 안 태어난다는 거예요?’ 이렇게 묻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게 깨우침이에요. 내가 의문을 가졌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깨달아버리는 거예요. 부처님이 간다고 하니까 간다, 못간다고 하니까 못 간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알아버린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태어나는지 여부를 두고 아무리 논쟁을 벌여도 나는 상관이 없어요. 이걸 깨달아버렸으니까요. 그래서 가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습니다, 부처님. 알았습니다, 부처님. 잘 알았습니다, 부처님.’nbspnbsp여러분도 깨달았을 때는 이렇게 대답해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 ‘작은 것이라도 깨쳤습니다’라는 뜻인데, 대답만 듣고 그냥 앉아버리면 ‘내 생각하고 다르네요’라는 뜻이에요. nbspnbspnbsp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가미니가 또 질문했어요. ‘저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죽을 때 바라문들이 하늘나라에 태어나라고 축원해주면 하늘나라에 태어나고, 사람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죽을 때 바라문들의 축원을 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nbspnbsp저라면 ‘아까 이야기했잖아’ 하면서 죽비로 머리통을 후려쳤을 겁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을 때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도 일일이 대답해주시잖아요. 부처님은 가미니를 연못가로 데려가서 돌멩이를 연못에 집어던지셨어요.nbsp‘가미니야, 돌멩이가 어떻게 되었느냐?’nbsp‘물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nbsp‘왜 가라앉았느냐?’nbsp‘돌멩이가 물보다 무거우니까요.’nbsp‘그렇다면 이 둑에 바라문들이 둘러서서 돌멩이가 물 위로 뜨기를 기도하면 돌이 떠오르겠느냐?’nbsp‘안 뜹니다.’nbsp‘왜 안 뜨느냐?’nbsp‘무거운 게 밑으로 가라앉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nbsp‘그렇다. 너의 말과 같다. 사람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빼앗고, 성추행을 하고, 거짓말로 남을 괴롭히고,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면 그 지은 업은 검고 무거운 것이어서 저절로 지옥으로 가느니라.’nbspnbspnbsp그리고 부처님은 연못에 기름병을 던졌습니다. 병이 가라앉자 긴 장대로 병을 깼어요. 그러자 병 속에 들었던 기름이 물 위로 떠올랐습니다.nbspnbsp‘가미니야, 기름이 어떻게 되었느냐?’nbsp‘물 위에 떴습니다.’ ‘왜 물 위에 떴느냐?’nbsp‘기름이 물보다 가벼우니까요.’nbsp‘그렇다면 이 둑에 브라만들이 둘러서서 기름이 가라앉기를 기도하면 기름이 가라앉겠느냐?’‘안 가라앉습니다.’nbsp‘왜 그렇겠느냐?’nbsp‘가벼운 게 위로 뜨는 것은 자연의 이치니까요.’nbsp‘그렇다, 가미니여.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베풀고, 괴로워하는 자를 위로하고, 진실을 말하고, 취하지 않아 맑은 정신을 가지면 그 지은 업은 희고 가벼운 것이어서 저절로 하늘나라로 가느니라.’nbsp‘알았습니다, 부처님. 알았습니다, 부처님. 잘 알았습니다, 부처님.’nbspnbsp질문자는 이 이야기의 뜻을 알겠으면 절에 다니시고 ‘못된 짓 실컷 하고 죄 사함 받는 게 훨씬 편하고 좋다’ 그러면 교회 가시되, 불교대학은 이왕 입학했으니 마치고 가세요. nbspnbspnbsp그런데 이건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고, 부처님 이전의 인도 사람들은 마음대로 살다가 죽어도 하늘나라는 가고 싶다는 바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논리를 만든 거예요.nbspnbsp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마태복음 25장 31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 원문 그대로의 인용은 아니고, 쉽게 풀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최후의 심판 날, 주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워 양떼와 염소떼를 나누듯 좌우로 나눈 뒤 한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르셨어요.nbspnbsp‘천국이 너희의 것이니라.’‘주여, 저희가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너희들은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고, 나그네 됐을 때 영접했고,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를 왔느니라.’‘주여, 저희가 언제 그런 일을 했습니까?’‘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nbsp그리고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이르셨습니다.nbsp‘너희들은 영원히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리라.’‘주여, 저희가 왜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까?’‘너희들은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나그네 됐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 오지 않았느니라.’‘주여, 언제 주께서 그러신 적이 있고 저희가 언제 주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니라.’nbsp못된 짓 하면서 교회만 열심히 다닌다고 천국 가는 게 아니에요. 천국 가는 기준은 ‘네가 어떻게 행했느냐’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걸 주었는가.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었는가.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었는가. 나그네를 잘 보호해주었는가. 나그네는 요즘 말로 하면 난민에 해당하겠지요. 억울하게 감옥에 간 사람을 보살폈는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다른 게 아니에요. 성인의 가르침은 그런 용어를 쓰든 안 쓰든 다 인연과보를 말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유대교든 힌두교든 성인이 출현하기 이전의 가르침은 그저 못된 짓 하고도 죄 안 받고 쉽게 천당 갈 수 있다고 하고, 복은 하나도 안 지어놓고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하면 복을 준다고 가르쳤어요. 또 성인이 출현하기 이전은 인과응보의 사고방식이었지만, 성인이 출현한 이후의 가르침은 인연과보예요. 이게 다른 점입니다.nbspnbsp인과응보는 일본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 ‘일제시대 때 못된 짓 하더니 천벌받았다’, ‘하나님 안 믿어서 벌 받았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장애아를 낳았을 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 라고 하는 것이 인과응보적 사고방식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무런 죄의 과보가 아니며, 장애인으로 태어났어도 그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인간으로서 존엄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이러저러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며, 피부색이나 성별이나 장애 유무 같은 것으로 인간을 차별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든 사람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입니다.nbspnbsp사제들만 하나님의 아들이고 유대인만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어요. 전통 유대교에서는 구원의 기준이 유대인인지 여부였습니다. 인종적인 문제를 기준 삼았어요. 유대인이면 다 구원받고 유대인 아닌 이방인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라고 하자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nbsp‘길에 강도를 당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사제와 레위인이 그를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보살폈다. 누가 쓰러져 있는 그에게 이웃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nbspnbsp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에서 멸시당하는 이방인이었어요. ‘네가 유대인이냐, 아니냐’가 구원의 기준이 아니라 ‘여기 병든 사람에게 네가 어떻게 행했느냐’가 기준이라는 이야기예요. 아까 말씀드린 최후의 심판 때와 같은 기준입니다. 이런 점을 똑똑히 알고 교회를 다니십시오. nbspnbspnbsp예수님의 가르침과 관계없는 걸 구분하세요. 기도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믿는 건 좋지만, 그건 예수님의 참 가르침이 아니라 예전 사고방식입니다. 인연과보는 콩을 심어야 콩 싹이 트고 팥을 심으면 팥 싹이 튼다는 원리입니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고, 저축을 해야 목돈을 타요. 빚을 냈으면 빚을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다음부터는 빚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과거에 진 빚을 갚는 과정이거나 내가 지금 저축하는 과정, 이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어려움에 처한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지은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든지, 아니면 기꺼이 복을 지으면 됩니다. 이런저런 일은 생기지만 괴롭지는 않아야 해요.”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들 크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의 입에서 성경 구절이 막힘 없이 줄줄 나오자 곳곳에서 감탄하는 표정을 자아내었습니다.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성인들의 참된 가르침은 서로 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고, 또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지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진 질문에서는 정토회를 만나서 삶이 많이 행복해졌는데 어떻게 하면 아내에게도 정토회를 만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일 것 같아 함께 소개합니다. nbspnbspnbsp“다른 사람에게 정토회를 소개할 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저는 불법을 공부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아내에게 전하는 것이 더 어려운데, 조심할 게 무엇이며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nbspnbsp“아내나 남편, 가족에게 불법을 전하는 것은 가능하면 말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말과 행위가 맞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의 신뢰를 얻기 힘들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행동을 못 보고 말만 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동을 보기 때문에 말을 하면 시비거리가 됩니다. ‘남을 이해해라’ 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은 대번에 ‘너는 왜 이해 안 하냐?’라고 하고,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해라’라고 하면 ‘너는 왜 나한테 안 하는데?’라고 받아쳐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말로 전하려 하면 전달이 안 돼요.nbspnbspnbsp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첫째, 말로 전하려 하지 마세요. 둘째, 자기가 아는 만큼 몸으로 보여주다가 상대가 느껴서 말을 꺼내면 요령 있게 대화를 풀어가세요. 좀 변했다 싶으면 상대가 먼저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보, 당신 요즘 좀 변한 것 같다. 요즘은 화를 전보다 좀 덜 내네.’ ‘그래? 요즘 스님 유튜브 법문을 많이 봤더니 좀 변하긴 변했나 보다. 특별히 잘 한 것 같진 않은데, 변했다면 그건 스님 유튜브 법문 본 덕이다’ 이러면 ‘나도 좀 볼까?’ 이렇게 됩니다. ‘깨달음의 장 다녀왔더니 그렇다’, ‘요즘 불교대학 다니면서 느낀 바가 좀 많다’ 하면 ‘나도 다녀볼까?’라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 말이 나오려면 먼저 자기가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동을 먼저 보기 때문에 말부터 앞세우면 시비거리가 돼요.”nbsp아내나 남편,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전법을 해야 하는지 깊이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얘기하실 수 있을까 하며 모두들 스님에게 감탄하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이렇게 26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마치니 벌써 3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21번 질문부터 26번 질문까지 이어진, 기독교 신자이지만 정토회에 나와도 되는지, 정토회는 어떤 종파를 계승하고 있는지, 기존 사찰과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일련의 내용들을 헤아리면서 정토회가 추구하는 정체성과 포용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기본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요. 제가 항상 여섯 가지 공부를 하라고 하죠? 첫째, 우주의 기원, 즉 물질의 기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생명의 기원, 생명의 본질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인간 존재의 기원, 인간 종의 기원, 인간의 진화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 인류 문명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 정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그게 정신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와 민족과 인류를, 그리고 인간과 생명을, 그리고 우주를 알아야 해요.nbspnbspnbsp그런데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명이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고, 인간이라고 하는 큰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람이라는 게 별로 보이지도 않고, 한국 사람이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나라는 인간은 별로 보이지도 않아요. 이렇게 좀 큰 관점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사고가 편협해지지 않습니다. 교회 가면 교회가 옳고, 절에 가면 절이 옳고, 절 안에서도 이 종파에 가면 이게 옳고, 저 종파에 가면 저게 옳고, 같은 종파 안에서도 무슨 절 어느 스님이 최고이고, 이런 데 빠지면 안 됩니다.nbspnbsp정토회는 불교적 정통을 계승하지만 불교를 고집하지 않고, 대승불교를 계승하지만 대승불교를 고집하지 않고, 선을 계승하지만 선을 고집하지 않고, 조계종을 계승하지만 조계종을 고집하지 않고, 종교적 입장에 서 있지만 종교만을 고집하지 않고 과학까지도 아울러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여기서는 승속 개념도 없고 오직 수행자로, 즉 모두 부처 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단체예요. 그래서 앞에 ‘수행공동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정토회’ ‘대승불교 정토회’ ‘선종 정토회’ 이런 말을 안 쓰고 ‘수행공동체 정토회’라고 해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겁니다. 수행자들이 포교도 하고, 수행자들이 구호활동도 하고, 수행자들이 농사도 짓고, 수행자들이 통일운동도 하고, 수행자들이 평화운동도 하는 거예요. 우리는 평화운동가도 아니고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농사꾼도 아니에요. 수행자라는 것이 바탕에 깔리고 나머지는 역할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내가 기독교인인지 불교인인지도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교적 전통에 서서 하기 때문에 굳이 따져물으면 불교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러니 어떤 신앙을 가져도 괜찮습니다. 개인이 하는 것은 자유예요. 그러나 정토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엇을 할 때 수행적 관점을 버리는 것은 안 됩니다. 아까 이것저것 섞어서 비벼먹고 싶다는 질문이 있었죠? 개인이 그렇게 하는 건 괜찮지만 정토회 수행을 그렇게 섞어찌개처럼 하면 안 돼요. 예컨대 개인이 복을 비는 건 자유예요. 혼자 법당에 와서 복 비는 것은 아무리 빌어도 정토회에서 간섭하지 않고, 사이비라는 소리도 안 합니다. 그건 인간의 오래된 욕구이기 때문이에요.nbspnbsp그러나 정토회가 집단적으로 모여서 ‘정토회에서 입시 기도하면 서울대학 간다’ 이런 건 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수행단체이기 때문에, 정토회에서 공식적으로 하는 것은 수행에 어긋나지 않는 것만 합니다. 그러나 정토회에 소속된 개인들은 기본 계율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는 모든 걸 자유롭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느 스님은 참선을 최고 수행이라 하던데 나도 해 봐야지’ 하는 것은 좋은데, 정토회 회원들에게 ‘우리, 참선하자’ 이러면 안 돼요. ‘정토회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면서 왜 안 됩니까?’ 이런 소리 하면 안 돼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배타하지 않고 포용한다는 뜻이에요. 정토회는 정토회의 목적이 정해져 있습니다. 개인은 자유롭게 해도 되지만, 정토회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때는 딱 원칙이 정해져 있어요.nbspnbspnbsp이제 자기 정체성이 무엇이고 포용성이 무엇인지 이해하셨어요? 종교가 다르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고, 잘난 척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 와서 ‘그럼 나는 절 안 해도 돼요?’ 이렇게 물을 필요 없어요. 수행자에게 해도 되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그냥 남들이 하면 따라하면 됩니다. 그거 한다고 하나님이 벌주시진 않아요. 문화를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보시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문화도 포용하되 수행적 관점은 굳건히 유지해가는 수행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어났습니다.nbspnbsp3시간 30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정토불교대학생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대수련장을 나온 스님은 곧이어 명상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내년 2월에 행자대학원 3년 과정을 졸업하게 되는 행자님이 찾아와 스님께 졸업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1월과 2월에 인도에 주로 계시기 때문에 일찍 찾아와 인사를 한 것입니다.nbspnbsp또 행자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과 동행하며 스님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개인적인 고민을 묻고 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5 경주 남산 산책
▲ 겨울에 핀 진달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과 함께 경주 남산을 산책하며 오랜만에 여유있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 후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러 김장 울력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어제 1차로 선물용 김장 김치를 배달한 이후 오늘은 추가로 더 김장을 담그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몇몇 봉사자들이 와서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선물용 김장 김치의 포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스님nbsp스님은 “김치를 포장할 때는 비닐로 한 겹을 싸고 그 위에 다시 한 겹을 더 싸야 나중에 택배로 배달할 때 한 겹에서 김칫물이 새더라도 비닐이 한 겹 더 있기 때문에 밖으로는 새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고, 또 “플라스틱 통을 들 때는 통이 무겁기 때문에 손잡이를 들면 뚜껑이 벗겨져서 쏟을 수 있으니 통을 안고 들어야 한다” 면서 혹시나 배달 과정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단속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히 연구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추운 날씨에 김장을 담그고 있는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스님이 직접 감나무에 올라가 딴 감홍시를 한 상자 주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자상한 배려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 김장 울력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nbsp그리고 오늘은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한국을 방문해서 스님도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하루종일 대표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대표님은 지난 10여 년 간 JTS가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서 구호사업을 개척하는 일을 도맡아 해오신 분입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nbsp JTS가 하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봉사를 해오셨습니다. 이번 방문은 내년도 스님의 필리핀 방문 일정을 잡고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스님도 오늘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특별히 시간을 내었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nbsp마침 이원주 대표님이 경주 남산은 한번도 순례하지 않았다고 해서 산책도 할 겸 의논도 할 겸 경주 남산을 올랐습니다.nbspnbsp아침 10시 30분에 배리 삼존불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안내 표지판을 가르키며 오늘 등산할 코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배리 삼존불에서 출발해서 산기슭을 걷다가 삼릉을 지나 냉골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창림사지로 내려오는 길을 코스로 택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에게 오늘 산행 코스를 설명해주고 있는 스님nbsp먼저 배리 삼존불을 참배했습니다.nbspnbsp▲ 배리 삼존불nbsp배리 삼존불은 풍만한 얼굴에 크게 반원을 그린 눈썹이 깊이 패어졌고, 그 위에 눈두덩이 부풀어 올라 가느스름한 눈자위에 그늘을 지우면서 두 눈이 천진스럽게 웃음을 짓는 형상이었습니다. nbspnbspnbsp스님은 “원래는 이 위에 처마가 없었어요. 처마가 없을 때는 햇살이 드리워서 그 미소가 정말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처마 때문에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요.” 라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삼배로 참배를 한 후 곧이어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아주 상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삼릉 계곡nbsp스님은 이 대표님과 등산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주고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입니다. 산등성이에 뾰족한 바위 기둥들이 솟아 있었는데 그 중 한 바위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연꽃을 들고 있고, 왼손은 감로수병을 들고 있었는데,nbsp감로수병을 든 것은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여서 저 물을 마시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하고, 연꽃을 든 것은 어떤 중생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nbspnbsp▲ 마애관음보살상nbsp광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뒤쪽의 비스듬한 바위를 광배 삼아 보살상을 조각했기에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듯한 모습 같았습니다.nbspnbsp그런데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에 길가 바위 근처에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위 위에서 앉아서 놀다가 그냥 버리고 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쓰레기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직접 다 쓰레기를 주웠습니다.nbspnbspnbspnbsp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다가 하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또 불자들은 이곳을 민중 불교의 요람으로 신성시하는 곳인데,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태도가 참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니 넓은 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선각육존불’이라고 이 불상을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 선각육존불nbsp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어서 마치 신라의 불교 회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새겨져 있었고,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생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nbspnbsp햇살이 잘 드리우는 곳에서 스님은 이 대표님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한국에 자주 오지만 경주 남산은 오늘 스님 덕분에 처음으로 와 봤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런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스님이 갑자기 깜짝 놀라하며 “우와, 저기 봐라” 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겨울로 진입하는 12월 초인데 봄이 되어야 활짝 피는 진달래가 핀 것입니다.nbspnbsp▲ 겨울에 핀 진달래를 발견하고 반가워하고 있는 스님nbsp아마도 요즘 가을 날씨가 예년과 달리 많이 따뜻해져서 이상 기후로 인해 일어난 현상 같았습니다. 이 대표님은 “날이 따뜻해지니 진달래도 봄인 줄 착각하고 나왔는가 보네요” 하고 나름의 해석을 붙이며 웃었습니다.nbspnbsp▲ 겨울에 핀 진달래nbsp그리고 스님도 “오늘 강연이 없어서 스님의 하루에 쓸 내용이 없을 줄 알았는데, 겨울에 핀 진달래야말로 진짜 특종이다” 하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드디어 남산의 두 봉우리 중 한 봉우리인 금오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이곳은 해발 468m라고 알려주면서 “그래도 정상에 올라온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 가자”며 금오산 비석 앞에 섰습니다.nbspnbsp▲ 금오산 정상nbsp남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주 넓고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옆으로 나란히 서서 걸으며 이야기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nbspnbspnbsp내려오는 길에는 겨울에 핀 진달래를 한 송이가 아니라 여러 송이가 핀 것을 발견했습니다. 스님은 “옛말에는 한 겨울에 꽃이 피면 새로운 나라가 일어날 징조인데...” 하며 풀어진 운동화 끈을 묶으며 상서로운 기운을 반겼습니다.nbspnbspnbspnbsp아무튼 오늘 경주 남산에서 만난 겨울에 핀 진달래는 두고 두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 뿐만 아니라 집 안에는 장미, 코스모스, 민들레, 채송화도 피어서 참 신기했습니다.nbsp모두 겨울에 핀 꽃들입니다.nbspnbsp▲ 민들레▲ 사철 채송화 ▲ 코스모스▲ 장미꽃은 여러 송이가 피었습니다.nbsp산능성이에는 칼바람이 불어서 몸이 오싹할 정도였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찬 바람을 피할 겸 잠시 큰 바위를 바람막이로 하고 앉아 간식을 먹었습니다.nbspnbspnbsp이 대표님은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할 때 마다 항상 함께 동행하며 온갖 밀림과 정글을 헤치며 다니신 분인데, 오늘 산행은 그냥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나 봅니다. 등산을 하는 내내 편안한 웃음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또 산능성이에는 전혀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약수물이 졸졸졸 나오고 있었습니다. 대장균도 전혀 검출되지 않은 1급수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 그런지 차가운 물맛이 일품이었습니다.nbspnbspnbsp내려오는 코스는 창림사지로 정했습니다. 스님은 “창림사지는 인근에 박혁거세의 탄생지인 ‘나정’과 신라 6촌의 촌장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를 신라 건국 초기의 궁궐터로 추정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은 복원된 3층 석탑만 홀로 서 있어서 조금 황량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첫 출발지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 보이는 곳이였습니다.nbspnbsp▲ 창림사지 삼층석탑nbsp겨울이라 더욱 누런 논밭을 가로질러 다시 배리 삼존불이 있는 삼불사 주차장에 도착해 경주 남산 산책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삼불사 옆에는 망월사라는 원효종 사찰이 있는데, 이곳은 스님이 20대 때 청소년과 대학생 포교를 위해 영남불교교육원을 차리고 사무실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주지 스님도 스님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언제나 환대를 해주시는데, 오늘은 주지 스님이 밭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와 상추를 스님에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곳을 자주 지나가면서 배추와 상추 농사가 잘 된 것 같다는 말씀을 가끔 하시곤 했는데, 오늘은 직접 시식을 해볼 수 있게 된 셈입니다.nbspnbspnbsp텃밭에서 수확한 김장 김치, 그리고 망월사 주지 스님이 준 배추와 상추를 곁들어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이 대표님 부부를 울산역까지 배웅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 갈 때 늘 이 대표님 부부가 마중과 배웅을 나와 주었는데, 오늘은 스님이 이 대표님 부부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이 대표님은 “오늘 스님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고 간다”며 감사 인사를 했고, 스님은 “아이고 무슨... 이 대표 때문에 내가 하루 운동도 하고 잘 쉬었구마는...” 하며 악수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이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 스님은 곧장 울산역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 밤 11시 무렵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 30분까지 특강수련에 참가한 정토불교대학 수강생들을 위해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을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4 부산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탑곡수련원에서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한 김치를 선물로 포장하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며 하루를 보낸 후 저녁 7시부터는 부산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 1시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기도 중 100일째 기념법회를 마친 후 새벽 5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차안에서 숙면을 취했습니다. 시골에 도착해서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마치고 곧바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원고를 교정하다가 햇살이 따뜻해지자 9시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지난주에 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화광 법사님이 인근 지역 정토회에서 온 봉사자들과 함께 김장을 담궜습니다. 스님은 작년에 화광 법사님이 담근 김치를 맛보고서 맛이 좋다며 내년에 실험적으로 더 만들어보고 내후년에는 더 확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토표 김치가 처음으로 생산된 첫해가 되는 셈입니다.nbspnbsp▲nbsp평화재단의 통일 운동을 돕고 있는 사회 인사들에게 선물할 김치 박스들nbsp오전에는 양념이 버무려진 김치들을 스티로폴 박스에 담고, 택배 회사에서 가져갈 수 있게 선물 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포장이 잘 된 것과 조금 부족한 것을 구분하고 총 개수를 헤아려본 뒤 어떻게 배달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습니다.nbspnbspnbsp이 김치들은 정토회와 평화재단을 위해 도움을 주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선물로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가을 가뭄으로 배추 생산량이 처음 계획보다 많지 않아 모든 분들에게 드리지는 못하고 평화재단의 통일 운동에 물심양면으로 도운 사회 인사 분들에게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지난주에 법사님들과 함께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일부 담그었는데 오후에는 이 김치들과 무를 뒤뜰에 묻어 둔 장독에 담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 가을에 텃밭에 심은 무로 만든 총각 김치nbsp비나 눈이 오면 물이 장독에 들어갈 수 있어서 비닐로 뚜껑을 묶어주고 겨울에 얼지 않도록 뚜껑 위에는 부직포로 살포시 덮어 주었습니다. 내년 봄에 이 장독을 열면 김치가 아주 먹음직스럽게 잘 익어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 땅에 묻은 장독에 김장 김치를 넣고 있는 스님nbsp그리고 창문에 비닐을 쳐서 외풍을 막고, 지난주에 화분에서 국화를 땅으로 옮겨 심어놓은 자리에는 땅이 얼지 않도록 부직포를 덮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이러저러한 일들을 바쁘게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뒷산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오후 5시가 되어서 강연이 열리는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퇴근길에 길이 막혀서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긴장을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10분 전에 무사히 강연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청년 강연이 열린 부산일보사 대강당nbsp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희망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부산시 동구 부산일보사 10층 대강당에는 오후 5시부터 많은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부산일보사 대강당은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되는지 각 의자마다 리본장식이 되어 있어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2시간 전부터 친구끼리, 혹은 형제 자매끼리, 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강연장 입구에 모여 입장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위의 권유로 혹은 스님의 책과 즉문즉설을 보고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준비된 300여 석을 다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의자를 빌려와 앉고 그것도 여의치가 않아 사이사이 통로에도 청중들이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강연장 뒷문에서 걸어나오자 청년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그 환호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nbsp스님은 강연에 앞서 즉문즉설이 무엇인지, 부처님이 원래 설법하셨던 방법에 대하여 경전에 기록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한 방법인 사성제와 중도, 팔정도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한 후 불교는 쉽고 생활 속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그 중 의문이 들거나 고뇌가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우리 이야기를 먼저 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원인들을 규명해 가다 보면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그보다 더 좋은 경우는 마치 꿈을 깨듯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즉, 문제 삼았는데 알고 보니 문제가 아니다 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예를 들면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서 속상해 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비켜주니 다른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잘 된 일이네’ 이렇게 돼요.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입니다.nbspnbsp우리가 사용하다가 쓸모없다고 갖다버린 것을 쓰레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가 곧 요긴한 거름이에요. 똥을 오물로 보면 버려야 할 대상이고, 거름으로 보면 취해야 할 대상입니다. 여러분들은 똥을 오물로 보는 경험밖에 없지만 저는 똥을 거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친구네 가서 놀다가도 똥이나 오줌이 마려우면 일단 집으로 가서 똥을 누고 다시 친구네로 갔어요. nbspnbspnbspnbsp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본래 없다, 즉 좋은 일이니 나쁜 일이니 하는 것은 자기 보기 나름이라고 하셨어요. 이걸 일체유심소조라고 말합니다.nbspnbsp이런 즉문즉설은 부처님이 2600년 전에 원래 설법하신 방식이에요. 깨달음을 얻는 가장 중요한 진리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 해서 사성제라고 합니다. 그 사성제의 첫째는 사물의 현상, 즉 실제의 모습을 먼저 보라는 겁니다. 그게 ‘고’, 괴로움입니다. 둘째, 그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라고 해요. 그것을 ‘집’이라 합니다. 셋째, 그 원인이 소멸하면 그 현상이 소멸한다는 사실을 직시해라. 그것을 ‘멸’이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그 원인을 소멸시킬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라. 이것을 ‘도’라고 합니다. ‘고집멸도’가 네 가지 거룩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실천 방법은 어디에도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걸 ‘중도’라고 해요. 화살이 과녁을 맞추듯 딱 적중해야 합니다. 중도가 곧 ‘정도’입니다. 그 ‘정도’에는 8가지가 있다고 해서 ‘팔정도’라고 합니다.nbspnbsp붓다가 최초로 한 설법은 ‘중도’, ‘사성제’, ‘팔정도’ 이것뿐입니다. 사실은 중도나 사성제, 팔정도라는 표현도 쓰지 않으셨어요. 사람이 찾아와서 물으면 이런 원리에 의해서 그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nbspnbsp부처님이 숲에서 명상하고 있을 때 청년 30여 명이 헐레벌떡 오더니 방금 어떤 여자가 도망가는 걸 못 봤냐고 물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친한 친구들이 각자의 애인과 함께 나들이를 왔는데 한 명만 애인이 없어서 유녀, 즉 기생을 1일 애인으로 삼아서 왔다는 거예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다가 다들 취해서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지니고 있던 패물과 귀한 보석이 싹 없어지고 그 여자도 안 보인다는 거예요. 그 여자가 패물을 훔쳐 달아나면서 틀림없이 이 앞을 지나갔을 테니 어느 쪽으로 가는지 보셨냐는 거예요. 그 때 부처님께서 ‘젊은이들이여, 잃어버린 재물을 찾는 게 중요합니까?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게 중요합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졌어요. ‘그야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게 더 중요하죠’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 ‘그렇다면 여기 앉으십시오’라고 해서 설법을 하셨어요. 소위 요즘 말로 하면 자아 상실, 즉 자기를 잃어버리고 쾌락에 빠져 흥청망청 살던 청년들이 그 설법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설법을 들은 30명이 다 출가를 해버렸어요.nbspnbsp요즘도 이런 일이 좀 생기면 좋겠는데, 아직 제가 부처님만큼 안 돼서 그런지 아무리 설법을 해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따라오는 사람이 도무지 없고 박수만 칩니다. nbspnbsp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불법은 너무너무 쉬울 뿐더러 다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무지를 깨달아서 행복의 세계,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nbsp아파본 뒤에 진료를 받는 것도 좋지만 미리 예방한다면 훨씬 좋겠죠. 그런데 인생은 그게 잘 안 됩니다. 치통으로 고생하며 치과 다니다 보면 ‘평소에 치아 관리를 잘 해야겠다’ 하고, 허리 다쳐서 병원 치료 받다 보면 ‘미리 조심할 걸’하고 후회하잖아요. 항상 우리는 실패를 하고 다시 또 일이 닥친 뒤에야 후회하고 정신차리기를 반복합니다. 한 번만 실패하고 정신차리는 것만 해도 굉장히 양호한 사람입니다. ‘부처님, 하나님, 이것만 해결되면 제가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다짐하지만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되풀이하잖아요. 술 마시는 사람들이 그래요. 저녁에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서 속 쓰리고 힘들면 ‘다시는 안 마시겠다’ 해놓고 저녁이 되면 또 마십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 사이클에서 못 벗어납니다. 한두 번 실수하는 것은 괜찮아요. 실수를 통해서 ‘아, 이것은 나쁘구나. 이것은 나에게 손해구나’ 하고 깨달아서 그 윤회로부터 벗어나버려야 합니다. 그게 해탈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늘 반복하잖아요.nbspnbsp불법의 이치라는 것은 ‘불교’라고 특별히 이름 지을 필요도 없는 보편성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믿음이 불교인지 기독교인지 이런 것도 따지지 않는 보편적 진리입니다. 게다가 그 진리는 매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떠난 하늘이나 산속이 아니라 우리가 고뇌하고 의문을 갖는 지금 여기에 진리의 길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으니 오늘 함께 해봅시다. 단순히 인생 상담하는 게 아니라, 그 질문을 예로 삼아 우리가 함께 진리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질문자들 손들어 보세요.”nbsp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고 재미있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지고, 복잡하던 머리가 시원해진 기분입니다. 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권위적인 직장상사와 트러블이 생겨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잘 지낼 수 있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대학 2학년생이었는데 학교 생활과 동아리 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까지 하니 너무 바쁜 듯하여 동아리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남다보니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이를 특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질문하였고 세 번째 질문자는 삼수를 성공한 수험생이지만 더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사수를 하고 싶은데 반대하는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을 해야하는지 질문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아버지와 함께 화목한 가정에서 살고 싶은데 아버지가 이를 받아주질 않아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올해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하여 발령 대기 중인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회생활에 임해야 하는지 질문하였고,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질문자는 통일은 언제 되며 통일이 되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nbspnbsp매 질문마다 스님은 질문자가 이해하기 쉽게 답해 주었습니다. 스님의 재미있는 비유는 틈틈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도 첫 번째 질문자가 물었던 권위적인 직장 상사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질문을 하기 전에 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며 식사를 잘 챙겨 드시라고 오히려 스님을 다그치는 질문자의 모습에 청중들도 시작부터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냉정하고 권위적인 직장상사와 트러블이 많습니다. 다른 직장동료들은 다 저를 좋아하지만 유독 상사만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말을 험하게 하세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소한 일로도 꾸중이 심해 화가 납니다. 상사에게 대들면 제가 손해니까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넘기지만 집에 가면 계속 생각나고, 스님 법문을 들으며 자고 일어나면 좀 낫다가도 출근해서 상사를 보면 다시 짜증이 나는 일이 반복됩니다.nbspnbsp이런 성격을 좀 고쳐보고자 심리학 관련 책도 많이 읽었는데 어릴 때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 그런 권위적인 사람이나 상사에게 큰 거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고 어머니더러 무식하다고 구박도 많이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를 미워했다가 ‘직장생활하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친정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예전의 마음이 다시 올라옵니다.nbspnbsp어떤 마음을 가져야 이런저런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당당한 제가 되어 권위적인 상사와도 문제없이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nbsp“직장 상사가 어떤 말을 주로 하기에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요.”nbsp“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도 ‘더 완벽을 기해라’ 라고 합니다.”nbsp“완벽을 기하라는 말이 뭐가 잘못됐어요?”nbsp“너무 사소한 걸 갖고 완벽을 기하라고 하니까요.”nbspnbsp“사소한 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니까요.”nbspnbsp“기안 같은 것도 좀 더 완벽하게 하라고 하시고... 잘 모르겠습니다. 성격이 난폭한 것 같아요.”nbsp“미워하는 건 좋은데, 미워할 만한지 아닌지 우리가 지금 함께 알아보자는 거잖아요. ‘완벽을 기해라’ 이 말 자체는 미워할 대상이 아니에요.”nbspnbsp“‘이거도 모르냐’라고 무시하는 듯한 말도 많이 합니다.”nbsp“그럼 질문자는 그걸 알았어요? 몰랐어요?”nbsp“몰랐던 것 같습니다.” nbspnbsp“그러면 ‘이것도 모르냐’고 말할 수 있죠. 저도 즉문즉설 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했을 때 여러분이 잘 못 알아들으면 ‘내 강연을 들으려면 적어도 중학교는 나와야 하는데 이렇게 초등학생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강연에 오면 어떡하느냐’고 해요. 그 말은 ‘어떻게 대학 나온 사람들이 이것도 모르냐’라는 말이에요.”nbspnbsp“좀 더 부드럽게 표현할 수도 있잖습니까.” nbsp“그럼 ‘아이고, 이 ㄴㅕㄴ아’ 라고 하면 부드럽고 ‘아이고, 이 년아’ 하면 욕이에요?”nbsp“욕은 안 하세요.”nbsp“저는 그저께 질문자가 하도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못 알아들어서 나중에는 ‘어리석은 년’이라는 표현까지 썼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년’이라는 표현을 쓰냐는 항의가 들어왔어요. 이렇게 반응이 달라요. ‘좀 정신 차려라’ 이렇게 몇 번씩 말해도 안 되니까 극단적인 표현으로 자극을 준 거예요.nbspnbsp그걸 보고 어떤 사람은 ‘스님이 애정을 가지고 저렇게까지 하면서 깨우쳐주려고 하는구나. 그걸 알아서 이제 좀 그만하지’ 하는데, 어떤 사람은 답답한 나머지 자기가 나서서 ‘그만해’라고 소리쳤어요. 그래서 제가 소리친 사람에게 그랬습니다. ‘당신도 질문 한번 해보세요. 당신은 그럼 깨칠 줄 알아요? 옆에서 들으면 금방 알 것 같지만 당사자는 못 깨달아요. 얼마나 답답하면 여기까지 와서 이 많은 청중 앞에서 핀잔 받아가며 질문하겠어요? 그러니까 좀 기다리세요.’nbsp그러면 또 반응이 다양합니다. 첫째,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그냥 넘어가지, 그걸 무엇 때문에 자꾸 하느냐’ 이런 사람이 있고, 둘째, ‘깨우쳐주려고 스님이 저렇게까지 자비하게 애쓰시는구나’ 이런 사람이 있고, 셋째, ‘아니, 저 중이 저 사람을 언제 봤다고 저렇게 욕을 하는 거야?’ 이러는 사람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마다 개념이 다릅니다. 질문자는 세 번째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상사는 그런 욕도 안 한다면서 뭐가 불만이에요?”nbsp“욕은 안 하지만 무시하는 말을 하십니다.”nbsp“‘이것도 모르냐’는 말이 무시하는 말이에요?”nbsp“그 밖에도 이것저것 많은데 기억이 안 납니다.” nbsp“질문자가 말한 건 ‘확실히 해라’, ‘이것도 모르냐’라는 두 가지였어요. 질문자가 별로 확실히 하지 않아서 ‘확실히 해라’라고 했고, 몰랐으니까 ‘이것도 모르냐’라고 한 거잖아요. nbspnbspnbsp또 이야기해보세요. 우리가 다 듣고 진짜 나쁘다고 할 만한 걸 하나라도 찾아볼게요. 생각해보니 없죠?”nbsp“사람이 다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직장 상사가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너는 아냐?’ 이런 생각이 들어요.” nbsp“질문자 같은 사람이 깨달음의 장에 오면 어떤지 알아요? 깨달음의 장에 오는 사람은 자기가 깨우치러 온 거니까 제가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그런데 발끈해서 오히려 저에게 반발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가 깨우치러 와놓고 법륜 스님을 깨우치려 드는 거예요.nbsp그것처럼 질문자는 지금 부하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상사 노릇을 하려 들고 있어요. ‘네가 잘못했다’ 하니까 ‘그러는 너는 잘 하냐?’ 이렇게 받아치잖아요. 이해는 돼요. 부모님이 일찍 들어오라고 하면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인상 쓰면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려요. 문을 쾅 닫을 때 아이는 속으로 ‘너나 빨리 들어와라’ 이러는 거예요. nbspnbspnbsp잘못했다고 야단칠 때 쾅 닫고 들어가는 건 ‘그러는 너는? 너나 잘 해라’ 이런 마음의 표현이에요. 문을 닫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잠가버리는 건 듣기 싫다는 소리예요. 따라 들어와서 두 번 물을까 봐 잠가버리는 겁니다. 어릴 때는 이렇게 하는데, 자기가 부모님보다 덩치도 커지고 힘이 세지면 대들어요. 힘이 약할 때는 말을 안 하고 피하지만요.nbsp질문자도 지금 힘이 약하니까 앞에서 바로 싸우지는 못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한테 했던 걸 그대로 하고 있어요. 아까 심리학 책 보고 배웠다지만 실천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nbsp“직장 상사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습니다.”nbsp“직장에 붙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이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확실히 해라’하면 ‘네, 다음에 확실히 하겠습니다’ 하고, ‘그것도 모르냐’ 하면 ‘네, 몰랐습니다. 앞으로 알겠습니다’ 하면 되죠. 그게 사실이잖아요. 아니면 이런 소리 하는 사람과는 같이 못 지내겠다 하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면 되잖아요. 안 맞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는 게 제일 좋은데 못 나오잖아요.nbsp첫째, 질문자는 밥 먹고 살아야 하니 직장을 그만두지 못합니다. 둘째, 자기가 못 그만두면 상사를 잘라버리면 되는데 질문자는 상사를 자를 능력이 안 돼요. 셋째, 그러면 상사의 성질머리를 고치면 되는데 질문자에게는 그걸 고칠 능력도 없어요. 어차피 그만두지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고 있어야 한다면 괴로워하면서 있는 게 나아요?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있는 게 나아요?”nbsp“괴로워하지 않는 거요.”nbsp“괴로워하지 않으면서 거기 있으려면 남은 길이 하나잖아요. 제가 하는 말을 ‘상사가 말하면 무조건 거기 있어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돼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만둘 수 없어요. 그러면 상대를 바꾸면 되는데 바꿀 능력도 나에게 없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계속 그런 말투를 쓸 텐데 나는 계속 거기서 살아야 해요. 그래서 지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면 남은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길과 안 받고 사는 길이 있어요. 내가 상사의 말을 가지고 시비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그걸 그냥 그 사람 성격이고 말투라고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삽니다. 또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이것도 모르냐’ 하면 ‘네, 몰랐습니다’ 하고, ‘확실히 해라’ 하면 ‘확실히 하겠습니다’ 하고 그냥 받아주면 되죠. 그런데 다른 직원한테는 안 그러고 질문자한테만 그래요?”nbsp“네.”nbsp“한 사람한테만 유독 다르게 구는 걸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애정이 좀 있다는 거예요.” nbspnbsp“저도 그 상사를 좋아합니다. 유부남과 유부녀 사이니 오해는 마시고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데 직설적인 화법은 힘들어요.”nbsp“그런데 상사가 관심이 없으면 이런 말을 아예 안 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안 하면서 유독 질문자에게만 한다는 것은 애정을 표현하는 부산 사람들의 말투입니다. 저도 울산 사람이니까 경상도 사람들의 말투를 알잖아요. 저희 고향 친구들끼리 하는 말을 보면 이래요. ‘내일 우리집에 놀러와라’ 하면 ‘그래, 갈게’ 하면 될 걸 ‘가면 뭐 주는데?’ 합니다. nbspnbsp한번은 모임에 한 친구가 늦게 왔어요. ‘늦어서 미안하다’ 이러면 서울 사람들은 보통 ‘오는 데 길이 막혔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경상도 친구들은 절대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자식, 나는 너 오다가 죽은 줄 알았다’ 이래요. nbspnbspnbsp말투가 그렇다 보니 서울 여성들이 경상도 남편을 만나면 이런 것 때문에 엄청나게 상처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말투인데도 오해를 사는 거예요.nbspnbsp제가 서울에서 강연을 마치고 12월 31일 밤 12시가 다 되어 정토회관에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보니 실무자들이 뭔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연말정산 작업인 줄은 나중에 알았는데, 제가 ‘12시가 다 되었는데 잠도 안 자고 뭐 하냐?’ 이래서 청년들이 엄청나게들 상처받았다고 해요. 뭐 하는지 보면 알지 않냐는 거예요. 질문자처럼 반응한 거죠. ‘보면 모르냐? 우리가 지금 놀고 있냐? 작업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뜻입니다. ‘아이고, 밤늦게 수고한다. 뭐라도 좀 먹었냐?’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텐데, 우리 경상도 사람들은 수고한다고 대놓고 말하면 몸에 거머리가 기어가는 것 같아요. nbspnbsp그런 말이 잘 안 나오니까 ‘아직도 안 자고 뭐 하냐?’ 이러는 게 말버릇이에요. 어릴 때부터 그런 말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무런 악의 없이 나름 잘 한다고 말 붙이는 게 그렇습니다. 그럴 때 ‘연말정산하고 있습니다’ 하면 ‘아, 그러냐?’라고 또 말해주지 않습니다. ‘좀 일찍 일찍 하지, 그걸 꼭 또 연말 다 되어서 하냐?’ 이럽니다. 스님이 좋아 보여도 같이 한번 살아보면 그 상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nbspnbspnbsp오늘도 새벽 1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새벽 5시에 울산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서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서 울산에 도착할 때까지 안 깨고 계속 잤어요. 평소에는 중간에 휴게소 들러서 기지개도 켜고 화장실도 다녀와서 다시 잘 텐데, 오늘은 아예 한 번도 안 깨고 깊이 잠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운전하시는 분더러 ‘아이고, 오랜만에 잘 잤다’ 이러니까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서 천천히 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이고, 수고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결국 네가 운전 잘 했다는 이야기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요, 길이 미끄러워서 천천히 왔습니다’ 이래요. 그래서 제가 ‘평소에도 그렇게 운전했으면 내가 항상 잘 잤을 거 아니냐’라고 했어요. nbspnbsp왜 평소에는 그렇게 천천히 운전을 안 하느냐고 구박한 것처럼 들리지요? 아닙니다. 이게 ‘밤길 운전하는데 정말 수고했다’는 제 대화방식이에요. 저와 비교해보면 상사가 그래도 좀 낫죠?”nbspnbsp“비슷비슷한데 진짜 싫습니다. 칭찬을 안 합니다.”nbsp“그런데 질문자는 법륜 스님은 왜 좋아해요? 밤마다 들으면서 잘 정도로 좋아한다면서요. 상사와 법륜 스님 단 둘이 놓고 비교해보면 분명히 그 사람의 말버릇이 더 나을 거예요. 그 사람보다 더 나쁜 법륜 스님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nbsp아무에게나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악의는 없다는 걸 우선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상사가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저도 제 말투를 변명하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만 그 사람이 그렇게 생긴 걸 질문자가 어떡하겠어요. 고칠 수가 없잖아요. 그 사람의 말투가 그럴 뿐이고 꼭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아까 이야기한 대로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약간 거부반응이 있다 보니 그게 자기도 모르게 연상되면서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그걸 자기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합니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다고 좋게 해석하세요.nbsp그러면 ‘그런 관심은 싫으니 꺼 다오’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죠. 그런데 그 사람은 관심이 있으니 그걸 또 어떡하겠어요? 앞으로 그 사람을 법륜 스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야기해보니까 법륜 스님보다 낫잖아요.”nbspnbsp“예. 세뇌를 해보겠습니다.”nbsp“세뇌할 필요 없어요. 세뇌를 한다는 건 앞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잖아요. 지금 질문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별 일 아니네’ 하고 아는 거예요. ‘별 일 아닌데 내가 좀 민감하구나. 왜 민감할까? 아, 내가 어릴 때 이러저러한 경험이 있어서 민감하구나.’ 하고 알아야 해요. 세뇌한다는 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데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려고 억지로 노력한다는 뜻이잖아요. 나쁜 걸 어떻게 좋다고 해요?nbspnbsp그 사람은 그냥 자기 식대로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자기 생각, 자기 말버릇대로 자기 인생을 사는 것뿐이에요. 질문자는 산에 가서 다람쥐를 보고 ‘천천히 다니지, 뭘 저리 급하게 돌아다니냐’라고 시비하는 것과 같아요. 다람쥐는 그냥 자기 식대로 사는 거예요. 다람쥐가 보기 싫으면 산에 안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산에는 가야 하고, 다람쥐더러 ‘뛰지 마라’ 한다고 다람쥐가 고쳐지지도 않아요. 그래서 산에 다녀올 때마다 다람쥐 때문에 산에 못 가겠다고 화내는 꼴이에요. nbspnbspnbsp그냥 다람쥐는 자기 나름대로 살도록 두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상사를 다람쥐 보듯 하고, 말을 하면 그냥 받아주세요. ‘확실하게 좀 해라’ 하면 ‘네’ 하고 대답하면 돼요. ‘확실하게 한다 해놓고 왜 안 했냐?’ 이러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잘 할게요’ 하고, ‘잘 한다고 말만 해놓고 왜 자꾸 그러냐?’ 하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잘 할게요’ 이러면 돼요. 제가 보기에는 ‘확실하게 해라’라고 하는 말은 그 사람의 말투에요. 확실하게 해도 확실하게 하라고 할 거고, 안 해도 확실하게 하라고 할 거예요. ‘이것도 모르냐’ 이 말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알겠습니다’라고 해주면 돼요.”nbsp“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저도 오늘 깨달은 게 굉장히 많아요. 지금 저와 함께 사는 공동체 식구들이 다른 데 가서 제 문제로 이렇게 상담을 하지 않겠어요? ‘밖에서는 존경받는 스님인데 이런 사람인 줄은 다들 모릅니다. 자기는 실컷 자놓고 밤새 한숨도 안자고 열심히 운전해서 온 제게 수고했다는 말은커녕 진작 잘 하지 그랬냐는 소리나 하니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이럴 거예요. 질문자가 저를 깨우쳐주려고 화현해서 온 보살 같아요.” nbspnbsp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정말 계속 웃음을 터뜨리느라 배꼽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비유에 스님의 답변이 가슴에 콕콕 와닿았습니다. 상대를 고치려고 하지 말고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면 나에게 좋다는 말씀을 비현실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 방법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비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늘 강연은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의 대화 내용을 갈무리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도 잘 살펴보면 문제가 아닌 것을 계속 문제 삼아서 그런 것일 수 있다며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예”nbspnbsp“ 아까는 죽는다더니 ‘예’ 하고 웃네요. 서두에 이야기했다시피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은 잘 살펴보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 아닌 걸 자꾸 문제 삼아서 해결하려 드니 힘든 거예요. 문제 아닌 줄을 알면 사실은 아무 힘들 게 없어요. 상사가 뭐라고 하면 ‘별 것 아니다, 말버릇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한 방법입니다.nbspnbsp또 다른 방법은 남이 나에게 한 말은 그 사람의 스트레스가 담긴 쓰레기와 같은 말이니 받는 즉시 버려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엄마가 버린 쓰레기봉지, 아빠가 버린 쓰레기봉지, 상사가 버린 쓰레기봉지, 선생님이 버린 쓰레기봉지를 끌어안고 삽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쓰레기봉지를 던져줄 때도 있어요. 받자마자 그냥 버리면 될 텐데 그걸 다 끌어 모아 안고 다니면서 ‘아빠는 이런 쓰레기를 주었고, 엄마는 이런 쓰레기를 주었고, 선생님은 이런 걸 주었잖아’ 하고 우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참 똑똑하죠? nbspnbspnbsp그러니 남이 과거에 준 쓰레기봉지를 안고 다니지 마세요. 물론 과자봉지를 주면 좋겠지만 좋은 건 자기가 가지게 마련이에요. 더러운 것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버려버리면 되지, 그걸 갖고 ‘왜 이걸 주었냐’고 시비할 필요는 없어요. 시비하면 내 인생이 그 사람의 쓰레기통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 좀 현명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청중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준 쓰레기봉지를 계속 안고 살고 있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삼수 성공 후 사수를 준비한다는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굉장히 만족스럽다”며 밝은 표정으로 답해주었습니다. 이 분은 사수하는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강연장을 찾았는데, 아버지에게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께서 제가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다 해주셨다”며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곧 이어 스님의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청년은 “스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무척 설레어 하면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 뒤에 서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면서 스님께 감사 인사도 빼놓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어떤 청년은 사인을 해주는 스님에게 “제 이름도 써주면 안 되요?” 라고 요청했는데, 스님은 “니 이름은 니가 써야지” 라며 웃으셨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늙은 청년 중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려고 한다며 스님책 여러 권을 손에 쥐고 있는 분들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가 끝난 후 스님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 많았다며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함께하는 사진 촬영에도 환한 웃음으로 응해주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부산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청년 희망강연이여서 봉사자들도 모두 청년들이였고, 그래서 그런지 젊은 청춘의 패기와 열정이 가득했던 강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청년 자원봉사자들도 그리고 청중들도 모두 가슴에 행복 씨앗 하나씩을 품고 강연장을 나설 수 있었던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부산일보사에서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밤 11시가 넘어서 두북에 도착해서는 오전에 선물 포장한 김장 김치 박스 중에서 플라스틱 통에 담겨서 택배가 안 되는 것들만 따로 모아서 봉고차에 싣는 일을 했습니다. 차에 실린 선물용 김치통들은 행자원에서 온 행자님 두 분이 내일 새벽부터 가가호호 방문해서 직접 배달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선물용 김치 박스들을 직접 배달하기 위해 봉고차에 실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랜 만에 강연이 없는 날입니다. 이제 2015년 즉문즉설 강연도 단 두 번만을 남겨놓고 있네요. 내일은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 부부가 두북을 찾아와서 경주 남산 산행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스님도 강연이 없는 틈을 타 오랜만에 여유 시간을 보내며 산책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 (밤)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기도 중 100일째 기도
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에 이어서 밤 11시 30분부터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 중 100일째 기도일을 맞이하여 서울 정토회관에서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먼저 지난 100일 동안 기도에 동참해 준 대중들을 격려하면서 기도의 목표와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후 100일째인 4일 0시부터 30분 간 첫 번째 릴레이 기도를 했습니다.nbsp지난 100일 동안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서 1시간씩 매일 24명이 릴레이로 기도를 이어왔습니다. 기념 법회가 열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정진실에서는 목탁 소리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서울 정토회관에는 200여 명의 대중들이 모여 천일 통일기도 100일을 함께 기념했습니다. 대부분 지난 100일 동안 한번 이상 기도에 동참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기념법문도 아주 집중해서 마음에 새기며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이 천일 통일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라 단체 기도이기 때문에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정토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10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한 시간도 쉬지 않고 1초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하자고 원을 세우고 시작한 지가 이제 100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100일 동안 기도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먼저 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nbsp한 시간씩 하루에 24명이 100일 동안 쉬지 않고 기도를 해왔기 때문에 연인원으로 헤아리면 2400명이 릴레이로 기도를 한 셈입니다. 우리가 어느날 함께 모여 기도를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은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하기도 하죠. 개인 기도의 경우는, 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도한 만큼 공덕이 생길 것이고, 또 중간에 정성이 적거나 졸거나 망상을 피운 사람은 그만큼 공덕이 적을 것이고, 법성게에 나오듯이 하늘에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근기와 인연 따라 받아간다는 말처럼 모두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nbspnbsp그런데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는 이 기도는 개인 기도가 아니고 단체 기도입니다. 일반적인 달리기 시합은 여러 명이 출발해서 뛰다가 한 사람이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늦게 들어오게 되니까 그 사람만 책임지면 되는데, 400미터 계주를 할 때는 한 사람이 실수해서 바톤을 놓치거나 넘어지면 자기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뛴 나머지 사람들의 공이 다 없어집니다. 연대로 책임을 지게 됩니다.nbspnbsp그래서 통일 릴레이 정진에 참여하신 분들은 이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기도하다가 졸거나, 기도하다가 망상을 피우거나, 기도 시간에 늦거나 하게 되면, 다른 기도는 본인이 부족한 만큼 본인이 공덕을 적게 받으면 되는데, 이 기도는 우리 전체의 원이 훼손됩니다. 1초도 쉬지 않고 통일을 발원하자고 원을 세웠는데 한 사람이 늦게 와서 5분이 끊어졌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 중에 졸다가 1분이 끊겼다, 아니면 목탁은 치지만 망상을 피워서 1초도 쉬지 않고 염원하기로 한 것이 훼손되었다고 한다면, 전체의 기도가 다 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1000일 기도를 다시 시작하든지 해야 합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정성으로 기도한 것도 나로 인해 다 훼손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 통일 릴레이 기도에 참여할 때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도 시간에 대중들의 염원을 담아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하게 되면 첫째, 염원이 계속 이어지지가 않게 되고, 둘째, 기도를 빠트리기가 쉽고, 셋째, 졸기가 쉽고, 넷째, 망상 피우기가 쉽습니다. 기도는 정성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응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우리의 안전과 희망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 이렇게 천지신명과 불보살님께 지극 정성을 기울이는 것입니다.”nbsp지극 정성을 기울여 마음을 모아나가자는 말씀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뜻을 가슴에 새겼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왜 정토회가 1000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하기로 했는지 그 취지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우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가 최근 시리아 사태에서 보듯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목숨만이 아니라 재물도 잃고, 가족도 흩어져서 고향을 떠나 떠돌아야 하고, 외국에서 천대 받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고통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질이 나서 ‘까짓껏 뭐 한판 붙지 뭐. 며칠만 참으면 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불장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정말 정성을 기울여서 염원을 해야 합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서 폭격을 받고, 저항을 하고, 집을 떠나 피난을 가고, 이웃 나라에 가서 온갖 괄시와 수모를 겪고, 어린 자식을 잃는 고통에 처했을 때, 정말로 이 고통이 끝나기를 그 사람들은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겠어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염원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지난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았듯이 그 애끓는 마음을 부여잡고 지난 60여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그 한이 어떻겠습니까. 기존에 있던 한도 풀어야 하는데 또 새로운 한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데서 관세음보살이 어리석은 중생을 대신해서 그 아픈 중생을 쓰다듬듯이 우리는 분노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것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대신 사과하기도 하고, 대신 참회하기도 하면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는 꽉 막힌 틀 속에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북한주민들에게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만나듯이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통일입니다.nbspnbsp오늘날 남한은 옛날에 비해서는 잘 산다고 하지만 지금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꽉 막힌 절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부모에게 기대어서 살고, 얼마나 답답하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살거나, 방황하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합니다. 먹고 살만 하긴 하지만 미래가 불안하고, 뭔가 돌파구가 있어야 될 것 같고, 이대로는 정말 질식할 것 같은, 이렇게 정체된 남한 사회가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열려면 현재로서는 통일 밖에 대안이 없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놓은 재산과 기술,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안전과 평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나아가서 미래의 희망을 갖고 더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통일만이 희망입니다.nbspnbspnbsp위험을 제거하고 안전을 담보한 위에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5천만 남한 동포들과 2천 3백만 북한 동포들, 해외에 살고 있는 7백만 동포들, 이렇게 8천만 우리 민족 모든 이들의 염원을 담아서 1초도 잠들지 않고 깨어있으면서 이 염원을 이어가자고 해서 지금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를 듣고 있노라니 다시 한번 가슴이 숙연해지고 간절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우리가 기도를 해온 지난 100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본 후 앞으로 100일 동안은 또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해나가면 좋을지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제 100일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는 남북 관계가 긴장이 되고,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준비하고 기도가 시작된 이후에 첫 번째 드러난 현상은 남북 간의 아픔을 씻어준 이산 가족의 상봉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이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불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남북의 당국자가 회담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전쟁 위기까지 간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다음 100일 동안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 남북 간의 인적 왕래가 이뤄지면서 긴장은 줄어들고 교류는 늘어나도록,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할 때 한반도에도 얼음이 녹는 봄기운이 오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nbspnbsp기도를 할 때는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느냐? 첫째,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하려면 내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이 내 일이 되어야 하고,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이 내 일이 되어야 하고, 피난다니는 일이 내 일이 되어야 하고, 이렇게 내 일이 되어야 간절해지지 내 일이 안 되면 간절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다른 건 못하더라도 기도라도 해서 정성을 기울이겠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 모든 아픔을 사라지게 해달라는 염원이라도 하겠다, 이런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nbspnbsp둘째, 그런 간절한 마음의 표현으로 목탁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5분 전에 와서 마음 가짐을 바르게 해서 앞 사람과 함께 기도를 하면서 바톤을 넘겨받아 정성을 이어가고, 다음 사람이 오면 또 5분 간 함께 기도를 하면서 바톤을 이어줘야 합니다. 새로 온 사람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에 5분간 정성을 쏟아야 진정으로 연결이 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를 면면히 이어가야 합니다.”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앞으로 1000일 동안 남북 관계가 사실상의 통일 단계까지 나아가도록 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1000일 기도 전체의 목표를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남북 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적대적인 긴장이 전쟁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하는 ‘평화 정착’입니다. 이것이 첫째이고, 둘째로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좀 덜어줘야 합니다. 우선 북한의 굶주리는 사람들의 배고픔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도적인 지원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추진해야 합니다. 굶는 것은 아니지만 굶는 것보다 더한 고통일 수 있는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 확인과 만남을 정례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해서 이들의 눈물을 좀 닦아줘야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도록 해줘서 교류가 늘어나야 합니다.nbspnbsp그런 교류가 늘어나는 가운데 상호 협력할 일이 있으면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농사가 잘 안되었다면 좋은 종자를 보내주든지 비료를 보내든지 비닐을 보내든지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지원도 하고, 또 그에 합당한 적절한 대가도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출입을 원활하게 한다든지,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든지, 지원한 것들이 지원한 사람들의 목표에 맞게 제대로 지원이 되었는지 서로 확인을 할 수 있게 해준다든지, 이렇게 해서 점점 신뢰가 깊어져가야 합니다.nbspnbsp이런 고비를 넘으면 이제는 협력을 해야 합니다.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공동 사업을 해나가면서 남쪽에도 이득이 되고 북쪽에도 이득이 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나가면서 평화는 점점 더 굳어지고, 통일의 가능성은 점점 커져나가도록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한발 한발 진전이 되도록 해서 우리가 이 1000일 기도를 회향할 때는 ‘적어도 통일은 해야되겠다’ 내지는 ‘통일하자’ 하고 남북 상호 간에 결정은 되어야 합니다. 통일을 하기로 결정을 하면 아직 통일이 안 되었더라도 통일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지금부터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 나무를 심는 일은 선투자가 됩니다. 북한 아이들의 영양 실조 문제를 해결해놓는 일은 미래의 사회복지 비용을 줄이는 일이 됩니다. 북한에 철도를 지금 놓는 일은 미래에 물류 혁명이 일어나게 해서 서로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옵니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 함께 출전을 하면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높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실 상의 통일 시대로 만들어가면 됩니다.nbspnbsp정치적이고 군사적인 통일은 지금 당장 되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생활에 그렇게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남북한 주민들이 민간적인 차원에서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먼저 해나가자는 겁니다. 아직 이웃 나라이지만 서로 협력하는데 장애가 없는 분위기로 먼저 나아간다면 그것은 이미 통일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렇게 통일의 방침이 정해져서 국가와 국민이 통일을 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이 방침이 다시는 뒤집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도까지 가는 것이 이번 1000일 기도의 목표입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를 해주시기 바라고, 특히 이 기도 기간 안에 남쪽 정부와 북쪽 정부도 우리의 기도 공덕으로 생각이 확 바뀌든지, 안 그러면 그런 정부가 그 기간 동안 들어서든지, 그래서 우리의 염원이 희망의 불꽃을 피울 수 있도록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기도이고, 두 번째는 그 정성에 걸맞는 우리들의 노력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은혜만을 바라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우리 스스로 먼저 노력하고, 그렇지만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은 조상신, 천신, 불보살의 가호지묘력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나부터 먼저 노력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1000일을 해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지난 100일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런 통일 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광이고 복이라고 생각하시고, 비록 작은 힘이지만 천지를 감동시킬 정도의 정성을 모아서 해나가 봅시다.”nbsp꼭 정치 군사적으로 통일되는 것만이 통일이 아니라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면 그것이 곧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말씀이 가장 가슴에 남았습니다. 보통 ‘통일’을 생각하면 어렵고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통일’ 에 대한 이미지가 가볍고 편안하게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교류와 왕래를 조금씩 늘여가는 것은 지금부터라도 당장 해볼 수 있지 않나’, ‘나무 심는 것도 지금 할 수 있는데’, ‘영양식 지원도 지금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통일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도 한껏 부풀어 오르는 느낌입니다. nbspnbsp이렇게 간곡한 어조로 천일 통일 기도 100일째 기념 법문을 마친 후 0시가 되자 스님이 목탁을 직접 잡고 100일째 0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nbspnbsp스님의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가 간절한 마음을 타고 정토법당 전체를 감싸 안았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도 스님과 함께 염불을 하며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nbspnbspnbsp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길,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이 하루 빨리 없어지기를, 이산가족의 아픔이 하루 빨리 해소되기를,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통일 한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게 되기를... nbspnbspnbsp밤 0시 30분까지 기도를 한 후 유수 스님에게 목탁을 넘겨주고 스님은 법당을 나왔습니다. 새벽 1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새벽 5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두북 정토수련원에 머물며 김장을 마친 김치를 선물 포장하고, 그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배달을 해줄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 7시부터는 부산일보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 (저녁) 통일열린마당 인사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천일 동안 진행되는 통일열린마당의 제1강에 참석해 인사말을 한 후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 특강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nbspnbsp회의를 마치고 오후 3시에는 문인협회가 수여하는 ‘한국 문학상’을 김홍신 작가님이 받게 되어 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시상식이 열리는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통일의병의 고문이시며, 매일 아침 천일결사 정진도 하고 있는 정토행자입니다. 평소에 스님의 다양한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셔서 특별히 시간을 낸 것입니다.nbspnbsp▲ 2015년 한국 문학상을 수상한 김홍신 작가님nbsp스님은 김홍신 작가님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습니다. 이에 김 작가님은 “그동안 살펴주시고 성원해주신 덕으로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세세생생 곱게 보답하기 위해 더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시상식에 다녀와서는 서울 정토회관에 머물며 원고 교정을 하다가 저녁 7시 30분부터 정토회관에서 열린 ‘통일열린마당’의 제1강에 참석해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지난 8월 27일에 평화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합의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0일 동안 남북 관계가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쪽으로는 실천적인 행동을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천지신명과 불보살이 감응하도록 정성을 기울여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와 더불어 오늘을 제1강으로 해서 1000일 동안 매주 한번씩 ‘통일열린마당’을 열기로 했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nbsp▲ 통일열린마당 제1강을 듣기 위해 서울 정토회관을 찾은 시민들nbsp그래서 오늘은 1000일 동안 진행되는 ‘통일열린마당’의 그 첫 번재 시간입니다. 첫 번째 시간의 강사로는 중용의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고, 평화재단의 통일 정책 연구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최상용 교수님이 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박사님이 맡아 주었습니다.nbspnbsp최상용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학자를 넘어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장기간 교수직을 역임했지만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석좌교수를 지냈고, 주일대사도 지냈습니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유명다는 동경대학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연구를 했기 때문에 연구한 논문들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 학계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1월 초에는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도 합니다.nbspnbsp조한범 박사님은 평화재단에서 많은 통일담론을 주재하고 계신 분인데 이번 통일열린마당의 사회자 역할도 기꺼이 맡아 주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시간이다 보니 많은 대중들이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정토회관을 찾았습니다. 약 20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평화 명상과 함께 통일열린마당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1000일 연속 통일열린마당 중 그 첫번째 시간nbsp오늘이 첫 시간인데다 저명하신 최상용 교수님이 그 강사로 나와주셨기에 특별히 스님이 인사 말씀과 함께 강사 소개도 직접 해주었습니다.nbspnbsp“궂은 날씨에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식사들은 하셨어요? 그 동안 육신을 위한 저녁은 많이 먹었으니까 오늘 하루는 굶으면 건강에도 좋아요. 그리고 그 동안 굶었던 마음의 양식을 오늘 교수님으로부터 듬뿍 받아 먹어서 균형을 잡아 가시길 바랍니다. nbspnbsp최상용 교수님은 첫째, 평화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 대표적으로 연구한 게 중용입니다. 즉 평화로 가는 길은 중용의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용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갖되 이웃 민족과 함께 하는 열린 민족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은 다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렇게 인류적인 보편성 위에 평화사상이나 중용 같은 사상을 연구해 확산시키고 계십니다. 특히 중용에 대해서라면 공자의 중용 사상만 연구하거나 플라톤의 중용 사상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중도 사상까지 포함해서 중도의 정신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nbsp우리 불교에서는 중도를 수행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최교수님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의미에서의 중용을 특히 잘 설명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정, 즉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 중도적인 수행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적 평화도 중용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저로서는 매우 유사한 관점이어서 이해하기도 쉬웠습니다. 이런 최교수님을 모셔서 수준 높고 품격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nbspnbsp오늘 여러분께 인사도 드릴 겸, 또 첫 강의이기도 해서 이렇게 제가 아는 수준에서 소개를 간단히 드렸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대중들은 첫시간부터 품격 있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며 오늘 강연을 주재한 스님에게 기쁜 표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최 교수님과 조 박사님이 테이블 위로 걸어나오자 스님은 기립박수로 정중히 두 분을 환영했습니다.nbspnbsp▲ 최상용 교수님과 조한범 박사님을 기립박수로 환영해주고 있는 스님과 청중들.nbspnbsp본격적으로 대화마당이 시작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스님은 법당을 나왔습니다.nbspnbsp▲ 조한범 박사님과 최상용 교수님nbsp이어서 저녁 8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에 참가해 졸업생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지난 9월 17일에 개강해서 오늘 12월 3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총 12주 간의 일정으로 사회 저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으며, 또 입학워크샵과 경주워크샵 등 주말 숙박프로그램을 가지며 통일 한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인데요. 먼저 졸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평화연구원 조민 원장님이 모든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해 주었고, 이어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다 들은 사람들에게는 스님이 직접 개근상과 함께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주었습니다.nbspnbsp▲ 개근상을 수여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개근상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른 졸업생들은 축하의 박수를 쳐주면서도 모두 너무나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nbspnbsp▲ 개근상을 받은 분들을 위해 스님은 기념사진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개근상을 받은 한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아카데미를 듣기 전에는 나 자신의 사익 추구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나서는 공공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게 되었다” 면서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일절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남은 여생은 평화 통일과 같은 공익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 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nbsp이어서 스님은 졸업 축하 메시지와 더불어 졸업 이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합리적인 판단을 하가 위해서 최소한 6가지 종류의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 융합의 시대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창조력이 생길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졸업을 축하드립니다. 3개월간 다니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선 여러분들은 지난 3개월간 여기를 다니면서 대학 졸업 이후에 잊어버리고 있던 공부하는 재미를 누렸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의사 선생님은 치료만 생각하고 변호사 선생님은 법률만 생각하는 것처럼 그 동안에는 자기 전공분야밖에 생각을 안 하다가 노동, 정치, 경제, 문화, 역사, 통일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문가들로부터 들을 수 있어서 식견이 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nbspnbsp지난번에 제가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강의를 갔더니 공부하기 힘들다고 해요. 공부하기 힘들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꼭 대학 가거나 1등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삶을 살아보니까 앞으로 직업이 뭐든, 예컨대 종교인이 되든, 농부가 되든, 누구나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과정 정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시간이 있다면 어떤 책을 더 읽으면 좋겠느냐’고 질문하기에, 제가 6가지 종류의 책은 꼭 읽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nbspnbsp첫째,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다룬 책, 즉 우주의 시원과 물질의 시원을 다룬 책을 읽어야 합니다. 우주의 시원과 물질의 시원은 동일합니다.nbspnbsp둘째, 생명의 시원과 생물의 구조, 즉 ‘무엇이 생명이냐’라는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 해요. 우주의 시원에서 지금까지 오는 물질의 변화 과정을 알아야 하듯이, 그 물질을 기초로 해서 형성된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고 무엇을 생명이라고 하며 그 생명이 여기까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아야 해요.nbspnbsp셋째, 인간의 진화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생명 가운데 인간 종이 언제 어떻게 출현했는지, 생명을 기초로 소위 정신 작용이라는 게 형성됐는데 그 정신 작용이 어떻게 다시 진화해오게 됐는지 인간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 해요.nbspnbspnbsp넷째, 문명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집트 문명이 쇠락하면서 에게 문명으로, 에게 문명이 쇠락하면서 그리스 문명으로, 그리스 문명이 쇠락하면서 로마 문명으로, 로마 문명이 쇠락하면서 오늘의 유럽 문명으로 이동하고, 또 유럽 안에서도 문명이 또 어떻게 변방으로 이동해가게 되는가? 왜 앞섰던 문명이 정체되어 쇠락하고 그 변방에서 다시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가? 역사를 문명사적인 단위, 즉 민족을 넘어서서 한 문명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문명의 충돌’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이런 인류 문화사를 알아야 합니다.nbspnbsp다섯째, 우리 민족사를 알아야 해요. 인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nbspnbsp여섯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특히 나의 정신 작용, 즉 정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정신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며, 정신 작용 중 생각과 마음의 차이가 무엇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어떤가? 우리의 행복과 자유라는 문제는 이 정신 작용 현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정신 작용 현상을 알아야 해요.nbspnbsp굉장히 전문적인 책이 아니라 고등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책, 즉 기본서를 통해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정도는 알아야 자기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해서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를 하든 종교를 하든 어떤 주장을 하든 편협하게 되지 않는다는 거죠. 정신만 연구하다 보면 물질을 무시한다든지, 육신만 연구하다 보니 정신현상까지도 물질로만 규정하려 한다든지 이런 문제로 인해 편협될 수 있는 걸 극복해야 하거든요.nbspnbspnbsp미래 학문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마치 우리의 육신이 진화해 오다가 정신작용이 급속도로 발전해온 것과 같습니다. 최근의 만년 동안은 육신이 진화해 온 시기가 아니에요.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그 시간에 정신작용이 급속도로 변화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변화발전이 일어났듯이 지금 우리의 정신작용도 이제는 신체 내부에 정보를 축적하는 것을 넘어서 신체 밖 컴퓨터에 정보를 축적하는 시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시대에 진입해 있습니다. 기존의 물질 속에서 새로운 물질을 융합해서 만들 수 있고, 종도 유전자를 조작해 없는 종을 생성시킬 수 있고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정신작용을 변형시킬 수도 있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들어와 있어요. 융합은 이처럼 획기적인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입니다.nbspnbsp이런 융합의 시대에는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종교도 불교만 본다거나 불교 안에서도 한 종파밖에 모른다거나 하면 안 돼요. 불교와 기독교가 융합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종교와 과학이 융합해야 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융합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한국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융합하고, 한국과 중국이 융합하고, 동양과 서양이 융합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융합하는 거예요. 중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사회주의는 계획경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인데 사회주의 시스템에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융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잡스가 만든 아이폰도 융합의 산물이에요. 아예 없던 기술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있던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켰어요. 이런 새로운 시대의 창조적 인간이 되려면 아까 이야기한 기본 학습이 필요해요. 그런 기본 정보가 없으면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꼭 무슨 대학 가서 전공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공부는 필요합니다.nbspnbsp그렇게 생각해보면 현재의 남북문제도 ‘대결’로 보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융합해서 보는 눈이 필요해요. 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사상으로 표현하면 ‘공’ 혹은 ‘중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교수님이 이야기하신 중용도 마찬가지예요. 반대되는 두 가지를 융합하려면 중용적 관점을 기본으로 취해야 하거든요. 정치도 반대되는 정치인 둘이 대결해서 어느 하나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반대되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nbspnbsp‘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한 리콜라스 베르그루엔 아시죠? 지난번에 내한 했을 때는 여기 평화재단에서 3시간에 걸쳐 저와 대담을 했습니다. 그 분의 관심은 정치 문제에 있어서 동서양의 융합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중국의 왕도정치의 융합이에요. 미국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는 장점도 있지만 포퓰리즘이라는 문제도 있어요. 중국의 관료제, 다시 말해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왕도정치는 전문성을 갖지만 부정부패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 둘을 융합해 장점만을 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시스템에서의 문제는 대통령이 전문성이 없다는 거예요. 포퓰리즘이 만연하다 보니 영화배우 하다가도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면 중국의 정치 지도자는 아주 바닥에서부터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서 올라옵니다. 대신 여기는 관료주의다 보니까 부정부패를 막을 길이 없어요. 미국은 포퓰리즘을 막을 길이 없고요.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해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 거냐는 문제입니다.nbspnbsp이런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남북통일을 분단된 나라가 하나 되는 정도로 생각하면 1920세기의 통일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해서 그 융합을 더 큰 융합으로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해요. 남북의 융합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쌓는 한편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주변국가와 다시 연대하고, 다시 동서양을 뛰어넘어 동서양이 융합한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 꽃이 어디서 피겠어요? 미국은 서양 중심이어서 동서양의 융합을 이룰 곳은 못 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를 이야기하는 거예요.nbspnbspnbsp우리나라는 대립되는 온갖 것들이 다 있지만 융합을 이룬 사례도 많습니다. 기독교도 그래요. 자기 전통을 굳건히 갖고 있는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주류 사회가 된 나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인도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300년이 됐는데도 기독교인은 전체의 2,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400년이 됐는데도 기독교인은 1 미만이에요. 구교와 신교를 모두 합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 개신교가 들어온 지는 100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종교인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에요. 사회적 영향력은 종교들 중에서는 기독교가 주류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북한은 사회주의가 들어와서 지구상에서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라에요. 마치 중국에서 주자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뿌리를 내려서 독특한 조선시대 정치를 이룬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기형이죠. 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그런 외래의 것을 들여왔는데도 그 핵심 내용은 또 가족주의에 의해 세습을 합니다. 남한도 그래요. 교회마저도 가족세습제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끌고 가는 핵심세력이 재벌입니다. 한국 기업 중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는 게 삼성, 현대 같은 재벌인데 이것도 살펴보면 가족주의이고 세습이에요. 정치 역시 세습이 되어서 지금은 남북 모두가 세습제처럼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급속도로 발전한 측면도 있지만, 급속도로 기형적으로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런 것도 융합하면 창조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창조까지는 못 가고 모방만 하다 보니 좀 기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정상화시킬지가 과제예요.nbsp우리가 이런 한국의 문제를 푼다면 세계 문제도 풀 수 있습니다. 빈부 격차 문제, 평화 문제, 종교 갈등 문제 등 전 세계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한국은 거의 다 가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는 일부만 가지고 있는 문제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환경문제를 푼다고 하면, 중국은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한데 우리의 답이 중국의 답이 된다면 중국은 공짜로 해법을 취할 수 있잖아요. 대신 우리의 문명이 앞서간다는 이야기죠. 중국은 따라배우게 되는 거고요. 이런 것들에 대한 과제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과제들을 푸는 핵심 키가 바로 통일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나쁘게 보면 ‘지금 우리가 너무 모순이 많다, 쓰레기더미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더미를 잘 발효시키면 가장 좋은 거름이 됩니다. 필요 없는 게 쓰레기이고 필요한 게 거름인데 그게 사실은 양면의 모습입니다. 이걸 철학적으로 말하면 ‘번뇌가 곧 보리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오늘날 남북 갈등, 한국 안의 양극화, 지역주의 같은 온갖 것들을 괴로움의 원인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어떻게 양질의 비료를 생산하느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통일의 문제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한국의 통일은 세계의 통일이고 한국 문제의 극복은 세계 문제 극복의 실마리를 마련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nbspnbspnbsp우리는 6천년의 역사 중에서 지난 1000년 동안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특히 최근 100년 동안은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지난 50년 동안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1000년의 한을 풀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 기초를 잘 살려 지금의 기회를 잡는다면 지난 1000년의 한을 풀고 과거 인류 문명의 선두에 섰던 선조들의 유산을 계승해 미래에 다가올 아시아 시대에 새로운 등불로 우리가 일어설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분단이 지속화되어 과거 100년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의 전공을 버리지 말고 잘 살리십시오. 그러나 개인의 삶이나 자기 전공에만 빠지면 안 됩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갖되 배타적 민족주의는 피해야 하듯이, 동양의 정체성을 갖되 배타적 동양주의만 가지면 안 됩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서양을 모방만 한다거나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4대 강국을 추종한다면 이건 모방에 불과할 뿐, 거기에서 창조와 융합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바깥 것을 배타해도 안 되고, 자기 것을 버려도 안 되고, 그 둘을 주체적으로 융합해나가야 합니다.nbsp이렇게 볼 때 졸업은 끝이 아니에요. 이제 겨우 한 발 뗀 것에 불과합니다. 한 발 겨우 뗐으니 이제는 걸어야죠. 좀 걷다가 다음으로는 달려야 해요. 졸업은 그런 출발이니까 공부 다 했다며 집에 졸업장만 걸어놓지 말고 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nbspnbspnbsp여기 계신 분들이 통일의병에 다 100 동의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곳은 통일의병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제 여기에서 좀 더 시각을 넓혀 큰 문제들을 내다보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통일의병 운동입니다. 통일의병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동문회에 참여하셔서 다른 방식으로도 활동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통일문제를 이렇게 의논해서 극복해 나가듯이 다른 분야에도 우리가 극복하고 창조해야 될 과제가 많습니다.nbspnbsp저는 저대로 제 선에서 일을 해나가는 거고, 여러분들은 통일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맡아주세요. 이런 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도 자기 직분을 안 하니까 제가 약간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걸 저더러 자꾸 하라고 하면 안 돼요. nbspnbspnbsp저는 융합은 하지만, 그건 제 전공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사는 세상을 여러분들이 좀 적극적으로, 주인이자 책임자의 자세를 갖고 가꾸어나가시기 바랍니다. 방관자가 되어 비판하고 비난만 하지 말고 내가 이 사회의 실질적 주인으로서, 즉 헌법에 보장된 나라의 주인으로서 책임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오늘 마지막으로 얼굴 비추지 말고 또 오세요. 눈도장 다 찍어놨으니 스님 눈도장을 벗어나면 극락에 못 간다고 생각하시고 계속 활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동문회에서 또 만납시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nbsp스님이 이야기 하는 내내 졸업생들은 볼펜으로 메모를 해가며 집중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주옥 같은 격려 말씀에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무엇보다 스님이 자주 강조하시곤 하는 6가지 종류의 책에 대해서는 정말 꼭 시간을 내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융합의 시대에 남북의 융합을 더 큰 융합으로 만들어내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자는 말씀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생들은 그동안 소중한 가르침을 준 법륜 스님과 조민 평화교육원장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스님에게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시라고 회색 내의를 선물해 스님도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스님은 선물을 받고 나서 “왜 빨간색으로 된 걸 안 줘요?” 하면서 농담을 던져 모두를 웃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졸업생들로부터 회색 내의를 선물 받은 스님nbsp졸업 특강을 마친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13기 파이팅”을 외치며 통일 운동에 대한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을 마치고 이어서 밤 11시 30분부터는 서울 정토회관에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시작한 1000일 기도 중 100일째 날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와 정진이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 성남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성남시 수정청소년수련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은 여느 때와 같이 새벽 예불과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정진을 마치고 나서는 하루 종일 집무실에 머물며 새책 원고 집필 작업과 각종 보고서를 체크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잇몸에 통증이 계속 있었지만 강연 일정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오늘은 치과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이비인후과에도 들러 목 치료도 받았습니다. 스님은 “치과 치료를 받을 때는 수행자 품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서 웃으셨습니다.nbspnbsp비갠 오후의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수정청소년수련관은8232 산자락에 둘러 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수정청소년수련관nbsp일찌감치 모인 50여 명의 봉사자들은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며 시민들을 맞을 준비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봉사자 모두가 모여 주의 사항을 듣습니다. 세상에는 예비의병과 통일의병만이 있으니 의병이라는 호칭으로 통일하시면 됩니다. nbsp지금 이 순간이 통일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방긋 웃으며 임하시기 바랍니다.nbsp이미 어두워진 오후 6시가 되자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또렷한 눈망울의 작은 여자 아이 손을 잡고 어쩐지 서두르는 느낌의 여자분이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질문할 수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급하게 꼭 묻고 싶은 nbsp질문이 있으신 모양입니다.nbspnbsp통일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는 강연장에는 딸아이 둘과 함께 온 남자분이 봉사자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여쭤보니 본인은 육남매의 아버지이고, 오늘은 큰딸과 작은딸을 데리고 참석했고, 스님의 팬이라며 기분좋아했습니다. 또 아내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한 시민은 홍보가 잘 안 된 것 같다며 시민들이 잘 몰라서 많이 참석하지 못한 상황을 아쉬워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강연 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6시부터 은수미 의원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은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노동문제와 관련해 많은 활동을 해온 노동전문가인데, 최근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스님은 편안하게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 은수미 국회의원nbsp이어서 6시 30분부터는 성남시 지역 인사들과 사전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성남시의회 의원, 성남외국인주민복지센터장, 민주시민교육추진위원회 대표, 청소년지도위원장, 기업인 등 총 13명이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 성남시 지역인사 사전 간담회nbsp스님은 왜 지금 통일의병 운동을 하고자 하는지 개괄적인 설명을 한 후 통일 문제와 관련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40여 분간 이어진 대화 도중 한 분은 통일정책이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하면 통일정책이 정치적 논쟁에 이용당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는지 그동안의 남북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부, 전문가들, 스님, 사회단체에서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조금씩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문제도 함께 공유해서 일관성 있는 방향을 형성한다면 통일로 나아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bsp“옳은 말씀입니다. 통일을 보는 관점은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다르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예컨대 6070년대의 통일운동세력은 북쪽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북쪽이 남쪽보다 잘 살았고 경제 외 여러 면에서도 긍정적 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7080년대로 넘어오면서 북은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남쪽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어서 통일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어요. 남북 중 어느 누구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할 만한 상황이 안 되었기에 남북이 대등한 입장으로 만나서 통일문제를 다루자는 식이 되었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는 통일문제를 북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에 남쪽에서도 동조한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때는 그게 옳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정세에서는 맞지 않다 보니 지금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종북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에는 합당했던 관점도 지금 상황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한 거예요.nbspnbsp김대중 대통령은 남쪽이 우위에 서긴 했어도 통일문제에서는 남북이 서로 대등하게 접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체면을 세웠고, 남쪽은 전에 수세로 몰렸다가 거꾸로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북쪽에서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안과 남쪽에서 주장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합의점을 찾은 것이지요. 전자는 연방제이고 후자는 국가연합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국가연합과 내용이 비슷하다고 해서 양쪽이 통일의 1단계 방안에 대해서 합의점을 잡았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마치 우리의 통일정책을 양보한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오히려 북한이 약간 양보를 해서 최소 합의점을 잡은 겁니다. 북한이 애국적이라 그렇게 잡은 게 아니라 북한이 약간 열세에 처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남쪽의 통일방안은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되 협력하자, 즉 한 개의 국가와 두 개의 독립된 정부를 가지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북쪽이 거기에 동의했다는 것은 북쪽이 세력이 약화되면서 자기 체제를 지켜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nbsp거기서 다시 15년이 지난 지금은 국제적 위상을 보나 국력을 보나 남북이 공히 동등하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지금에 와서 가장 현실적인 통일론은 남쪽이 중심이 되어 북쪽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보수세력이 더 통일을 주장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보수세력의 입장은 북쪽을 포용하는 게 아니라 북쪽을 붕괴시키고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어서, 전쟁을 유발하거나 실현불가능한 통일론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남북이 동등하게 결합하는 통일방안을 적용하려니 그때와는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맞지 않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는 또다시 지금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통일문제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는 남쪽의 진보와 북쪽이 대화하면 남북대화가 아닌 좌파끼리의 대화라고 보는 겁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관점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남한의 보수와 북한이 대화를 해야 진정한 남북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이상은 남한 안의 좌우 대립이 끝나지 않아요.nbspnbsp그러므로 남한에서 진보가 정권을 잡아서 북한과 대화하려면 남한의 보수와 합의한 만큼만 남북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남한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남한의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요. 진보는 북한과의 대화를 반대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면 저절로 남한의 여론이 통합됩니다. 그런데 과거 김대중 정부는 남북대화의 물꼬는 텄지만 남쪽의 보수와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좀 부족했어요. 그것이 결국 남한 안에서 남남갈등으로 이어져 지금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남한의 야권이나 보수세력과 더 긴밀한 합의를 했어야 하는데 남북관계를 푸는 데만 너무 집중한 거 아니냐는 거예요. 그리고 보수는 정권이 바뀌었을 때 진보세력이 풀어놓은 남북관계와 그 정책을 계승해줘야 하는데 계승은커녕 뒤엎어버리니까 남북관계가 파탄났어요. 이런 것들을 서로 대화하면서 국민합의를 해가야 해요.nbspnbspnbsp남한의 보수세력을 제외시켜버린 상태에서는 남북대화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론이 반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수가 조금 더 많고, 미국이라는 배후가 있기 때문에 남한의 진보세력만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남북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현실을 인식해야 해요. 통일을 하려면 남한의 보수세력이 어느 정도 동의하는 통일론이어야 합니다. 극보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도보수까지는 동의를 얻어야 해요. 그런 합리적인 안들을 만들어서 실제로 어떻게 대화를 해나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남북대화만 할 게 아니라 남남대화도 같이 해나가야 해요.nbspnbsp과거에 통일을 주장할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과거의 이념적 지향으로만 접근하면 아무리 통일을 주장해도 통일의 가능성은 없어요. 남한 안에서 70 정도까지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통일이 실제로 추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북한에 더 비중을 두는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남한 안에서는 세력이 약해져서 소수가 되었습니다. 통일을 하려면 그런 주장도 다 허용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걸 다 척결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통일 정책도 합의 통일을 하자는 게 아니라 힘으로 밀어붙여 통일하겠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65년 전 북한이 저질렀던 과오를 지금 남한이 저지를 위험이 있어요. 그때는 힘이 있는 북한 쪽에서 힘으로 밀어붙여서 통일을 하려 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남한이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섰으니까 또 힘으로 밀어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시각입니다. 북한도 그때 한 달 만에 다 밀어붙였어요. 그런데 미국의 개입이라는 변수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북한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즉각 개입하리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대통령님이 중국 가서 이야기해 보니 개입 안 할 것 같다고 하지만 턱도 없는 소리예요. 중국의 정책 자체가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휴전선을 넘어오면 이미 침공이라고 보고, 압록강으로부터 200km 안으로 들어오면 중국에 대한 침공이라고 봐서 즉각 군사적으로 개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국과 싸우면 이기기가 어렵고,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북한의 화력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어요. 전후복구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중국 경제가 바로 우리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왔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공업 시설이 파괴되면 그걸 복구하는 사이 중국에 뒤처집니다. 무력 통일도 하나의 방식이긴 하지만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습니다.nbspnbspnbsp평화적으로 통일하려면 합의를 해야 하고, 합의를 하려면 상대가 아무리 약해도 상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수용해줘야 합니다. 그걸 포용이라고 하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의 좋은 점은 그런 포용정책을 썼다는 겁니다. 북한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포용해주면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갔어요. 다만 남북관계를 풀 때 남한의 당시 야당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했어야 하는데 그걸 좀 못했기에 야당 측에서 ‘이것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북한과의 야합이다’라고 몰아버린 겁니다. 처음에는 다들 통일의 발목을 잡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희한하게도 ‘북한에게 끌려다닌다’는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습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 문제도 그렇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사람들이 굶어죽기 때문에 식량을 지원했으니, 굶어죽는 사태가 막아지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해요. 그런데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원했는데 왜 저놈들은 미사일 만들고 핵 개발하느냐’ 이렇게 몰고 가요. 그건 사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걸 방어해내지 못했어요. ‘저놈들은 지원 받으면서도 큰소리치는데 우리는 도와주면서 굽실거린다. 또 우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해줬는데 저놈들은 핵무장한다’ 이런 선전이 우리 국민들에게 먹혀들어서 북한에 대한 저항감이 커진 거예요.nbsp그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25세 이하 젊은이들은 반북적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 청년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둥 하며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정권을 3대째 세습하는 모습을 보고 해서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머리에 각인되어서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이걸 두고 종편이 선전을 잘못했다고 비난해본들 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걸 어떻게 극복할 거냐’인데 자꾸 진영 논리로만 접근하면 해결점이 없습니다. 말로 주장한다고 통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nbspnbsp어떻게 국민의 다수지지, 즉 50 이상, 적어도 60의 지지를 얻어서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진보세력끼리 아무리 모여 봐야 50를 못 넘어요. 그 정책으로는 통일을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합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정책에서 정당한 부분은 우리가 계승하고, 국민 통합의 문제에 소홀했던 것은 보완을 해야죠. 독일은 그랬습니다. 사회당 정부가 동독과의 관계를 풀어놓은 상태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섰는데, 국내 정책은 다 보수로 바꿨지만 대동독 정책은 진보정권이 해놓은 것을 그대로 인수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이 된 거예요. 보수정권 때 통일이 이루어졌고, 지원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남북 좌파들이 야합했다’ 해서 모든 합의를 다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남북 불신이 극도로 증폭된 것은 물론 남남갈등도 극심해져 버렸습니다.nbspnbsp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통일로 나아갈 것인지를 해결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투표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데서 새롭게 좀 접근해보면 좋겠습니다. 한국 안의 정치문제에 통일문제를 자꾸 개입시키면 또 정치싸움밖에 안 돼요. 통일정책은 한국 내 정치적 투쟁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수립해서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계승해갈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은 반드시 여야 합의를 거치도록 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그 정책이 안 바뀝니다. 한쪽에서만 추진하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 바로 뒤집어버리거든요.”nbsp스님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들으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가져온 성과와 한계, 이를 계승하여 앞으로는 어떻게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뜻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전 간담회를 마치고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nbspnbsp▲ 성남시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nbsp빈자리가 곳곳에 보이는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한 후 “저녁 못 드신 분은 집에 가서 드시라”고 스님이 특유의 위트를 던지자 청중들의 얼굴도 순간 환해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늘 강연의 취지와 성격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이번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최한 것이니 개인 질문은 적게 다루고 공동체와 nbsp민족,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청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과 사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아 이혼하고 싶은데, 남편은 아이를 절대 줄 수가 없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고, 두번째 질문자는 nbsp본인이 납북자 가족인데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해보고 싶지만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요즘은 통일정책이 예전보다 통일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 보시는 통일의 전망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또 국민들의 안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은 비가 와서 그런지 조용하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고 시민들도 한껏 진중하고 집중된 모습으로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두 번째 질문인 납북자 가족 문제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질문자와의 문답 속에서 분단이 한 개인의 내면과 가족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분단은 사회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 깊숙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지금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 문제를 고민하다가 가족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어요. 저희는 납북자가족으로 아버지가 외아들이셨어요. 저는 이혼을 했는데 ‘가족이 다 겪은 외상으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고통 받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올라가면서 이 주제를 연구해보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납북자에 대한 관심을 사실 많은 분들이 갖고 있진 않아요. 또 이런 연구는 돈도 명예도 되지 않으니 다른 분들이 나서서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은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아버지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음을 좀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느라 힘들고 제 그릇이 작다 보니 진척을 잘 못했습니다. 스님의 통일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뒤로 미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과 관련된 많은 혜안을 가진 스님께서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제 연구에 대한 자세와 태도와 생각을 정비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여쭙습니다.”nbsp“어떻게 납북이 되셨어요?”nbsp“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납북되셔서 할머니께서 혼자 아버지를 낳아 키우셨어요. 할머니가 13형제 중 장녀였기에 굉장히 힘들게 살다 18살에 시집갔는데 19살에 남편이 납북되는 일을 당하신 거예요. 아들을 혼자 낳아 키우느라 너무 힘들게 키우셨고, 그런 어려움들 때문에 저희 부모님이 갈등을 겪고, 그러다보니 저도 자라서 부모님을 미워하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nbsp“할아버지가 6.25 때 납북됐어요, 그 뒤에 납북됐어요?”nbsp“6.25 때로 알고 있습니다.”nbspnbsp“전쟁 중에 그리 되셨다는 이야기네요. 그냥 납북이 된 거예요, 전쟁에 나갔다가 실종이 된 거예요?”nbspnbsp“할아버지가 공무원이셨대요. 그런데 성정이 올곧아서 바른 말씀을 잘 하시다 보니 평소 마을에서 좀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점심 식사를 하다가 ‘잠깐 가자’는 호출을 받고 ‘죄 지은 것도 없으니 금방 다녀오겠다’ 하고 가셨는데 그 길로 이제...”nbsp“납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당시 남쪽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거나, 과학자거나, 문학가거나, 예컨대 쓸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데려가서 자기들 정부에 요직으로 앉히거나 중요한 기술자로 쓰기 위해 납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가는 월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해방 전후의 그 당시에는 지성인 혹은 지식인 소리 듣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가 그랬어요. 게다가 당시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친일 관료들을 다시 데려다 썼습니다. 경찰을 만들려니 일제시대 때 경찰하던 사람들을 데려다 쓰고, 행정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관리 했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재판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판사 하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군대를 만들려니 일제시대에 일본군인 하다 온 사람을 쓰게 된 거예요. 이렇게 친일파를 전문가라고 해서 복권시켜 등용하니 친일청산을 제대로 못한 겁니다.nbspnbsp그런데 미국이 볼 때는 어쨌든 국가 재건을 하려면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니까 일제 강점기 때 그런 기술을 갖고 일한 사람들을 재등용한 거예요. 미국이 한국의 독립과 자주성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요즘도 일본 재무장과 관련해 우리한테 ‘위안부니 뭐니 지나간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하라’ 이렇게 압력을 가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뼈에 사무친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서로 견해가 다른 거예요. 미국은 기술적인 면만 생각해서 등용했고, 우리가 보면 친일파가 죄다 재등용된 거예요. 해방될 때 다 죽을 줄 알고 숨어있던 친일파가 이렇게 등용되고, 또 당시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자다 보니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반공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독립운동 한 사람을 거꾸로 공산주의자로 몰아 척결했어요. 이게 한국사회를 지금까지도 괴롭히는 갈등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nbsp제가 물어보려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으로서 약간의 자발성을 갖고 북으로 갔는지, 즉 월북인지, 아니면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것인지 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또 평가가 다를 수 있어서 물어보는 겁니다.”nbsp“후자였던 것 같고요. 그때 굉장히 젊으셨기 때문에...”nbsp“북쪽에 간 뒤에는 어떻게 됐는지 연락이 일체 없고요?”nbsp“수년 전 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 아버지께서 찾으려고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찾았다고 했는데, 행사 전날 동명이인이라고 통보받아 만남이 무산되고 굉장히 실망하셨어요. 그때까지는 할머니도 살아 계셨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데 놓쳐서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어요.”nbsp“알았어요. 그러면 어쨌든 납북인 걸 확인했습니다. 6.25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노근리 학살 사건이나 4.3 사건 등이 그렇죠. 그걸 지금까지는 ‘4.3 제주 반란’이나 ‘여수 순천 반란’으로 부르면서 죄다 일방적으로 매도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을 모함과 오해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억울한 사람들이 수십 년을 꾸준히 노력한 끝에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들어와서 ‘제주도 양민 학살 사건’이라고 복권되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도 처음에는 폭동이라고 했지만 수십 년간 민주화 투쟁을 거친 끝에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복권되었고, 망월동 묘지도 국립묘지가 되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밝혀진 사건들은 가족이든 동지든 목격자든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누군가가 온갖 모함과 핍박을 겪고 오해를 사면서도 남아서 줄기차게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채취했기 때문에 밝혀진 거예요. 이보다 더 많은 사건들은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습니다. 나서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때는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해서 이런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재조사하고 재판도 다시 하도록 도와주는 국가 부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 와서 다 없애버렸죠.nbspnbspnbsp질문자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니 납북자 가족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밥벌이는 청소를 하든 심리학 강의를 하든 질문자의 책임이고 자유예요. 밥벌이를 해결한 나머지 시간에는 틈나는 대로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도 듣고 심리를 연구해보세요. 그러면 질문자의 연구는 단순히 납북자 가족에서 그치지 않고 이산가족의 문제가 되고, 분단의 문제가 됩니다.nbspnbsp또 질문자는 이산가족이 됨으로 해서 한 가정 안에 이 분단이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험했어요. 할머니가 남편 없이 혼자 사느라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아서 아버지를 키웠어요. 할머니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힘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당연히 불안과 억압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성장해 어머니와 결혼하니 자기의 그 업식이 아내를 상대로 폭발했어요. 어머니는 이런 남편을 만난 게 억울하니까 또 힘들어하며 질문자를 키웠고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이 생겼고, 남편을 만나 살다가 남편의 행동이나 어떤 부분이 계기가 되어 질문자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상처가 덧나서 자기도 모르게 저항하게 되고, 그래서 이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런 가정의 불화를 잘 살펴보세요. 분단이 됨으로 해서 우리가 말하는 여러 가지 국가적 불행만 발생한 게 게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 까르마가 쭉 이어집니다. 한 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겉보기에는 멀쩡히 먹고 살지만 내재되어 계속 흘러내려가요. 질문자의 아이에게도, 손자에게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nbspnbsp질문자는 이런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연구해보세요. 자기 가계니까 조사하기 쉽잖아요. 돌아가시긴 했지만 할머니가 어땠는지 아버지한테 이야기 들어서 조사하고 그것이 아버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고요. 아버지의 그런 까르마를 어머니가 이해하고 수용해줬다면 질문자에게 전이가 안 됐을 텐데, 어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억울하다고 대응하다 보니 까르마와 상처가 질문자에게 내려왔어요. 남편이 질문자를 수용해주든 질문자가 남편을 수용해줬다면 아이에게는 전이가 안 될 텐데 질문자도 상처를 어쩌지 못해 그게 아이에게 또 전이 되었어요. 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애한테 무슨 피해를 주는지 모를 뿐이에요. 조금 전에 스님이 이혼하겠다는 아이 엄마에게 엄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남자라서 저런 소리 하지’ 이런 생각하면서 억울하게만 여기지, 도대체 이 까르마의 흐름을 모릅니다.nbspnbspnbsp분단으로 인해서 납치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상처가 한 대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문제예요. 이것이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입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져서 돌아온 것만 치료를 했지, 사람을 죽이면서 느꼈던 마음의 충격이나 아픔은 치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 못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육체의 상처처럼 정신에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생기면 몸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다 마음의 치료를 병행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몸뚱이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놀람병을 치료해야 해요. 운전하다가 한번 사고를 당하면 다음에 운전대를 못 잡거나 차가 덜컹거리기만 해도 놀라는 것은 트라우마, 즉 정신적인 상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컨트롤이 잘 안되는 거예요. 이런 점을 알아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게 우리의 마음 공부입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경험한 자기 가계부터 연구해보고 예컨대 다른 가계 열 가족을 더 연구해보세요. 이 전체의 공통점은 뭐고 차이점은 뭔지, 열 가계 중 한 가계라도 이걸 극복한 사례가 있다면 그걸 어느 어에서 누가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나머지는 대부분 극복을 못 하고 유전인자 처럼 상처가 대를 이허 흘러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구해보세요.nbspnbsp그 까르마와 상처가 지금 우리 민족 전체 공동체에도 흘러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일제시대 판사를 했던 사람의 예를 들어볼게요. 광복된 뒤에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더니 ‘친일 청산’이라고 해서 아버지를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해버렸어요. 아이 혼자 살아남아서 남쪽으로 도망왔습니다. 그러면 이 상처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때려죽일 놈, 철천지원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비상식적인 극보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의 지배와 분단, 좌우 대립으로 인한 전쟁, 그 이후 남과 북 모두에 들어선 독재 정권들, 이런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 돼야 역사도 바로잡히고 이 상처도 치유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 해봤자 동조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도 요즘은 통일 되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라는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실제로는 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엄청납니다. 통일은 이걸 청산할 수 있어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가족의 입장에서 이것을 연구하는 것은 통일에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남북의 정치문제 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질문자는 자기 문제, 즉 나의 상처로부터 출발해보세요. ‘이 상처가 결국은 민족의 상처로부터 왔다. 사회로부터 나에게 오고, 이런 우리들이 모여서 또 사회의 상처를 온존시켜간다’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연구로 박사 학위 따겠다거나 돈 벌 생각은 하지 마세요. 꾸준히 30년 연구해서 나이가 60, 70 쯤 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아무도 안 알아줘도 통일된 뒤에는 ‘아, 그 분이 이런 아픔을 연구해서 이렇게 정리해 놓았구나’ 하고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걸 해서 밥벌이로 삼겠다고 하면 관심없는 정부에 대해 실망하여 불평하고 자신을 한탄하게 돼요.nbspnbsp소재는 아주 좋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예요. ‘그런 거 연구해서 뭐하나. 그건 밥이 안 된다’ 해서 자기 밥벌이만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한국 사회가 그래도 살 만한 사회니까 통일부 같은 곳에 프로젝트를 제출해 볼수도 있어요. 나의 아픔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이 가져온 우리의 아픔을 살펴보고, 앞으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이 사람들의 치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우를 수 있잖아요. 통일부나 통일 관련 단체에 그런 프로젝트가 선정되면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고 연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를 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니 먹고 사는 건 질문자가 해결하고, 프로젝트 제출은 nbsp계속하고, 연구도 꾸준히 계속하라는 겁니다. 스님도 이런 통일 강연을 누가 돈 대줘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nbspnbsp“맞는 말씀인데요. 제가 그릇이 좀 작고 불안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어서 아직은 어렵습니다.”nbsp“그릇이 작으면 안 하면 되죠. 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 연구를 하려면 그런 방향으로 해나가면 되고, 못 하겠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핵심은 이거예요. ‘내 괴로움이 이산가족 때문에 생겼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출발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든, 이산가족 집안에서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과거는 다 지나간 이야기예요. 지금 나는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어요. 수행자라면 이렇게 해탈을 해야 해요. 내가 먼저 행복해진 뒤에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나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라고 자기의 괴로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연구를 맨날 해봐야 나한테 하나도 득이 안 됩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고문당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든 지금의 나는 행복해야 합니다. 과거는 너무 따질 필요가 없어요.”nbspnbsp“네, 그런 차원에서 그 연구를 하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길게 보려 하고, 이걸로 돈을 벌거나 하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고요. 스님께서 방금 해주신 말씀도 잘 이해했습니다. 재미있게 연구해 보겠습니다.” nbsp환하게 웃는 질문자를 향해 청중들은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통일 문제를 심리적인 측면과 가족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 참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세 명의 질문 밖에 받지 못했는데 벌써 약속한 2시간이 모두 흘렀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코리아 리스크’와 ‘코리아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왜 지금 이 시기에 통일의병 운동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국제사회에서는 ‘코리아 리스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괜찮은 나라임에도 국제사회에는 저평가가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투자했다가 한반도에 전쟁이 났다 하면 완전히 죽이 되니까요. 남북 갈등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통일이 되면 코리아 브랜드가 굉장히 올라갑니다. 삼성, 현대 이런 대기업들은 자기들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지 코리아 브랜드로 세계에 알려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코리아 브랜드가 높아지면 우리가 독일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듯이 세계 사람들이 한국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있는 모든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은 삼성과 현대와 같은 특정한 재벌 기업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 중소기업은 자기 브랜들를 만들 수 없어요.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어야 전체 산업이 다 살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이런 희망적인 미래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럴려면 통일을 강력히 추진할 정부를 국민의 힘으로 구성해내야 합니다. 민간이 어떻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통일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딱 통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 군사적으로 완전히 통일되는 것은 지금 당장 급한 것이 아니에요. 통일을 하겠다고 정부가 방침을 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렇게 되면 바로 교류 협력을 시작할 수 있어요.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는 중국을 보고 좀 배워야 해요. 중국은 대만이 독립만 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풀어주고 30년이고 50년이고 기다려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된 것과 똑같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사실상의 통일을 먼저 하고,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시간 여유를 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통합입니다. 남북 경제통합을 해야 남한도 빨리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nbsp정치적으로는 너무 빨리 통합을 하려고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합니다. 하자고 해도 안 할 판입니다. 우선 경제 통합을 해야 됩니다. 경제 통합만 되어도 엄청난 이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일당을 하루 5만원은 줘야 하는데, 지금은 일당이 하루 천원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북한 전역에 나무를 심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선투자라고 합니다. 통일이 당장 안 되더라도 이렇게 나무 심는 것과 같은 비군사적인 분야에서의 투자는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돈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데는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런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우리 민족을 이끌도록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국민들이 가지고 강력하게 요구하면 모든 정치세력들이 통일 방안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정치 세력의 하수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은 주민이 지도자를 선택할 권한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국민이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로 국민이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겁니다.nbspnbspnbsp이제는 평화 통일 정책이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야가 다 평화 통일 정책을 갖고 경쟁을 하게 되어서 그 내용이 비슷해지면 이제는 누가 당선이 되어도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비슷하게 되어야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고 국회에서 합의를 해주게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쪽이 추진해도 다른 한쪽이 반대해서 국론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국민이 각성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통일의병 만들기 운동을 하는 거예요. 국민이 일어나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자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 모두 통일의병에 참여해야 되겠죠? 강연장 나갈 때 다 등록하셔서 성남에서부터 통일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알았죠?”nbsp“네” 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참석한 청중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nbsp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엄마와 nbsp대학생인 듯한 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합창nbsp강연장을 나가는 시민 한 분은 nbsp밝고 기분 좋은 얼굴로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강연은 잘 들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면서 책임감을 느끼는 표정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책 사인회가 별도로 없어서 곧바로 무대 앞에서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에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좋은 강연에 빈 자리가 많이 보여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nbsp수정청소년수련관을 나온 스님은 통일의병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준 후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난 덕분에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질 예정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 행사에 참여해 축하 강연을 해준 후 밤 11시 30분부터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시작한 천일 기도 중 100일째 기도일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를 한 후 릴레이 기도에 함께 동참할 예정입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