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들도 우리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모른다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지옥을 가는지 안가는지 모른다는 말은 갈 수도 있고 안 갈수도 있는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지, 이치를 알게 되고 두려움이 사라져서 그런 의문이 무의미하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요컨대 스님 워딩이 달라짐으로써 그 의미까지 달라진것으로 보입니다.
2022-12-09 11:05:31
김미화
인간의 두려움으로 인해 생긴 의문인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 '간다 안간다 모른다' 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 일입니다. 그러니까 스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지옥을 가고 안가고 할 수 없고"라고 부정어로 끝난 것 아닐까요? 또한 실제로 안 죽어봐서 모른다고 한다면, 우주의 형성과 변화 과정, 생물의 탄생과 인류의 탄생 등
2022-12-09 09:48:49
김미화
오류2) 문맥상 지옥에 간다 안간다는 것은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모를 때 죽어서 어디가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이치를 알면 그런 질문이 무의미해지므로 말할 것도 없다는 것으로 압니다. '실제로 가는지 안가는지 모른다'는 말은 '죽어봐야 알지'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죽어봐야 안다는 것은 그 질문을 인정한 채로 지금은 결론내릴 수 없다는 뜻 아닌가요?
2022-12-09 09:28:27
김미화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스님의 즉설을 5번정도 듣고, 한번은 다 받아썼습니다. 오류1)은 제 말이 100% 맞습니다. 스님 말씀 갈색글씨 단락 아래에서부터 9번째 문단에 같은 내용이 그대로 있습니다. 문맥상 시작과 끝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지요.
2022-12-09 09:16:38
보문성
경전대 생 들의 질문 수준이 핵심을 찌르듯이 예리해서 덕분에 잘 들었습니다.
풀은 왜 썩니?
원숭이는 죽어서 어디가나?
궁굼해 봤나 하는 대목은 처음 듣는 법문이고 이 관점을 인간에게 대입하니 이해가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2-09 06:20:47
김힂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2022-12-09 04:32:58
김미화님
본문의 전체 문맥을 생각하며 읽고 질문을 다시 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의하루는 육성을 녹취한 글이 아닙니다.
2022-12-08 21:36:15
김미화
오류 2)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제로 지옥에 가는지 안가는지는 몰라요"에서, 실제 워딩은 "그렇다고 지옥을 가고 안가고 그렇다고 할 순 없고" 였습니다. 모른다는 것도 간다 안간다와 같은 차원의 말 아닌가요? '실제로 간다 안간다 모른다'는 말 모두 사후세계를 전제하고 말하는 차원인 것 같습니다.
2022-12-08 17:21:15
김미화
경전반 학생입니다. 본문 내용 중에 오류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1)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건 시작과 끝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에서, 시작과 끝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게 아니라, 본래 워딩은 "그것처럼,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전생 이야기도 나오고...." 였습니다. '그것처럼'은 시작/끝과 창조/종말의 관계처럼을 뜻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