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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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3 세계 100회 강연(29) 아일랜드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열린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에서의 마지막 강연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매일 1개 도시를 방문하여 드디어 29일째인 오늘,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모두 마무리하게 됩니다.nbsp▲ 에든버러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nbsp새벽6시30분 숙소를 나와서 아침8시 에든버러 공항을 출발한 스님 일행은 9시에 더블린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오늘 강연 담당자인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가 함께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오민씨는 프랑스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다가 아일랜드인 남편을 만나서 자녀 둘을 낳고 이곳 더블린에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듣고 삶이 행복해져서 지난번 한국에 와서는 정토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한달 동안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신 분입니다. 오늘은 더블린에서 봉사자 38명을 모집하여 강연 준비를 담당해 주었습니다. 허윤진씨 부부는 아일랜드에 있는 유일한 천일결사자 부부입니다. 깨달음의 장을 한 후 지난 8차 천일결사 때부터 남편과 함께 매일 아침 108배를 하며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 공항 마중을 나와 준 오민씨 부부와 허윤진씨 부부.nbsp오늘 숙소인 오민씨 부부의 집에 짐을 모두 풀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부엌 한 켠에서는 저녁에 먹을 김밥을 부지런히 싸고 있는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곳 더블린 강연 준비팀은 봉사자가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각 팀별로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nbsp전날 저녁부터 바라지팀 자원봉사자들과 더불어 파리지회 정토회 분들이 결합하셔서 나물과 김밥 재료 셋팅 등 거의 밤새다시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nbspnbsp▲ 하루 종일 봉사자 38인분의 김밥을 싸 준 봉사자들.nbsp스님께서는 어젯 밤에도 공항에서, 오민씨 집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편두통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점심만 드시고 휴식을 취했지만 통증이 멈추지 않아 마침 오민씨 남편인 가빈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해서 가빈씨를 통해 스님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민씨의 간절한 요청과 의사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진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nbsp오후6시에는 주 더블린 한국대사관에서 박해윤 대사님 부부와 김보연 한인회장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목헌 트리니티 대학 교수님을 비롯한 교민 여러분들이 함께 찾아오셔서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오른쪽부터 트리니티 대학 목헌 교수님, 손학순 한글학교 교장선생님, 박해윤 주 더블린 한국대사님 부부, 김보연 한인회장님, 김경희님 외 교민 1명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더블린 교민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 행사에는 교민이 안 오고, 교민들 행사에는 학생들이 안 오고 그랬는데, 오늘 강연은 학생들과 교민들이 함께 하는 뜻 깊은 시간이라면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목헌 교수님은 더블린의 명문대학인 트리니티 대학 최초의 한국인 남성 교수님이라고 합니다. 특히 오늘 강연을 위해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대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편두통이 계속 있으셨지만 통증을 그대로 감내하시면서 저녁 7시에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Trinity College Dublin Arts Building의 인문사회관을 가득 메운 300명의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영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자리를 모두 메우고도 부족해 측면 계단에도 빼곡이 앉아서 스님의 강의를 경청했습니다.nbsp봉사자들은 오늘이 유럽 29개 강연의 마지막 강연이 더블린이라는 점을 의미있게 생각하며 ‘나에게 희망세상이란 무엇인지’를 인터뷰한 특별영상을 준비해서 보여주었습니다.nbsp ▲ 더블린 강연 봉사자들이 만든 특별 영상. nbsp봉사자들은 처음에 스님께 희망세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미의 영상을 제작하려 했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희망세상은 누구에게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번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를 깨닫게 되어 영상 내용도 우리가 희망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봉사자들은 스님께서 유럽 29회 강연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내가 만들고자 하는 희망세상’을 한지로 덧붙여 만든 연등과 신문지를 재활용해 만든 소망 노트를 선물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장은 유럽 강연 중 가장 많은 수가 모였을 뿐만 아니라 열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도 “예상 밖의 환영에 감사드린다” 며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곁에서 편하게 지내라고 요구하지만 본인은 고생을 통해 내공을 얻고자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인 분,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의 청혼과 새롭게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겨 두 사람 사이에서 결혼을 고민하는 분, 아일랜드에 공부하러 왔는데 학원에서 사기를 당해서 화가 난다는 분,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아도 자기 비하를 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묻는 분, 우리는 폭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지 묻는 분, 외국 생활하며 만나는 한국 사람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을 여행하며 종교 전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지금 더블린에 여행하러 와 있습니다. 종교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지금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란과 터키, 로마를 거쳐 지금 더블린에 와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3가지 종교를 만났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불교를 만났고, 이란과 터키에서 이슬람을 만났고, 서유럽에서 카톨릭을 만났습니다.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도 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 전쟁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nbsp“종교는 자연발생적인 원시적인 종교가 있고, 깨달은 이가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종교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는 기본 원리가 인과응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것은 좋게 말하면 좋게 들리지만, 법률로 따지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얘기입니다. 나쁜 짓 하면 징벌을 당하는 겁니다.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도 결국 나쁜 짓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 유대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면 소돔과 고모라에서처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렇게 다 징벌을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예요. 이런 인과응보적 사고가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nbsp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가르치는 종교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그런 인과응보적인 것이 아니에요. 즉,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아 죽였으면 그 사람은 당연히 인과응보적으로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했나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그랬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구약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라면,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nbsp그런데 오늘날 크리스트교는 원시 종교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안 믿거나 하면 징벌을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징벌을 하든 질문자가 징벌을 하든 징벌을 합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경우를 보면 다 보복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종교의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그 종교를 창시한 성인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전교에서 1등하는 아이는 서울대 의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 충분히 합격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 서울대 넣어달라’고 하루에 천배씩 기도할까요? 안할까요? 안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의 성적으로는 서울대 들어가기가 좀 어려운데도 서울대를 가고 싶으면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만약 기도를 해서 들어갔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실력이 안 되는 아이를 넣었다는 것은 실력 되는 아이 하나를 빼고 넣어줬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하는 역할이 입시 브로커 역할이잖아요. 성인으로서의 하나님과 부처님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종교는 다 이런 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종교는 원시 종교입니다 종교의 이름이 어떻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래서 오늘날 종교 간의 갈등 이런 것들은 예수님과 부처님, 마호메트와는 관계가 없는 그냥 세속적인 이해의 충돌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세속적 이익을 종교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특히 갈등이 심한 이유는 자기만이 옳다는 믿음이 강조되는 것이 종교의 성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보통 자기가 옳다 하지만 틀릴 수가 있는데, 진리라는 이름으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앙이다 보니까 종교는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종교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점점 풀리어 가지 않겠나 싶고, 종교 간의 전쟁은 과거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nbsp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즉 ‘원수를 사랑하라’ 는 것은 기독교 안에는 없고 오히려 세속에 있습니다. 세속은 지금 법률적으로 다 남녀 평등 실현하고, 인종 평등, 민족 평등을 실현하고 요즘은 성적 지향까지 다 개방하고 있잖아요. 신체장애자도 차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종교는 아직도 신체장애가 되면 하나님의 벌이라든지 전생의 업보라든지 이렇게 설명하잖아요. 이것은 신체장애가 무슨 죄라는 얘기 아닙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든지, 성적 지향이 다른 것이 죄라든지, 그러니까 이것은 아직도 옛날의 원시적인 인간의 사고를 못 벗어난 현상입니다.nbsp옛날에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군 중에 부상당한 사람도 다 죽이고, 성을 점령하면 어린 애까지 다 죽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적병이라 하더라도 공격력이 없는 부상자는 치료해주고 포로는 보호해서 나중에 송환해주고 전쟁에 상관없는 민간인은 다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이렇게 세속이 훨씬 더 원래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접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종교는 아직도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 전쟁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냥 종교라는 이름의 세속적인 이익 충돌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nbsp종교가 무엇 때문에 거대한 탑이 필요하고 거대한 성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궁전과 성당들을 다 누가 지은 것입니까? 황제가 지었잖아요.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공인을 받으면서 황제가 바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잖아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가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속적인 문제를 갖고 자꾸 종교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현실의 종교의 공허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nbsp중세에서는 신이 다 세상을 움직였잖아요. 천체의 움직임도 신이 한다고 했는데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발견되면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났죠. 모든 생명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했는데,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창조할 필요가 없어졌잖아요. 인간의 선한 소리 악한 소리를 신의 소리 악마의 소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무의식의 세계라고 다 밝혀졌잖아요. 이렇게 엄청난 기성 사회의 벽을 뚫고 새로운 세상으로 왔기 때문에 세속이 더 진리에 가깝고 진보적이 되었고, 종교가 더 기득권화되어 있고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세상은 지금 부정입학이 다 없어졌잖아요. 있더라도 다 몰래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종교는 공공연히 하잖아요. 교회나 사찰 앞에서 ‘기도해서 유명대학에 들어갔다’ 선전하는데, 이건 부정입학 했다는 얘기거든요. 이것을 공공연히 하잖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 간의 전쟁이라 하지만 그냥 세상의 이념 전쟁, 즉 세속적 이익 다툼의 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종교 자체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nbsp질문한 친구는 명쾌한 답을 얻었다는 듯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지난 29일 동안 순회 강연을 하며 유럽 곳곳에 세워진 성당과 모스크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종교란 무엇인지 느끼신 바가 크셨나 봅니다. 종교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성찰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으로는 ‘지금 행복’ 할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 살아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유학생활은 괴롭게 보내고 유학생활이 끝나면 행복할거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자세로, 직장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젊을 때가 가장 행복한 자세로 임하세요.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일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 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되는 대로 살아라’ 이런 얘기도 아닙니다.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되는 때가 인생에서 몇 년 되겠습니까? 그런 시기를 즐기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공부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다면, 애인과 같이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도 하고 술도 먹고 싶다면, 술집에서 공부 토론을 하면 됩니다. 자꾸 분리하지 마세요. 왜 우리는 연애를 하면 공부는 포기해야 하고, 술을 먹으면서 공부 얘기를 하면 안 될까요? 공부를 하는 유학생은 공부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한 것은 곁들어서 같이 하면 됩니다.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런 자세로 자기 삶을 항상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지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nbsp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떨까요? 지금 내가 욕심 부리는 것을 도와줄까요? 가난한 나라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할까요?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계신다면 다른 곳에 할 일이 많겠지요.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고, 부처님. 저는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저 사람들 좀 도와주세요” 이런 자세가 신앙입니다. 욕심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난에 처할 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nbsp부처님께서도 이렇게 말했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또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진리 속에서 자유를 얻고 행복을 얻어 나가기 바랍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봉사자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어서 봉사자들과 다같이 소감나누기는 하지 못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만 찍었습니다.nbsp특히 오늘 강연 장소인 트리니티 대학의 인문사회관을 무료로 빌리는 등 목헌 교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목헌 교수님을 비롯하여 38명이나 되는 자워봉사자가 함께 뜻을 모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로 주고 목헌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셨습니다.nbsp▲ 오늘 더블린 강연 총괄을 맡아준 오민씨 부부nbsp오민씨네 집으로 돌아와서는 유럽 29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독일, 영국, 파리에서 각각 강연 책임을 맡았던 분들이 오셔서 함께 평가회 겸 소감 나누기를 하였습니다.nbsp▲ 유럽 29개 도시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며 평가회 및 소감나누기nbsp유럽 강연 전체를 총괄한 김선희 유럽지구장은 “준비과정이 더 재미있었다”며 보람있어 했고, 직장을 한달 휴가 내고 강연 전체를 담당한 이희정님은 “바로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은 가볍다”며 기뻐했고, 파리 강연을 담당한 박지현님은 “스님이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아직 70일이나 남은 100회 강연 일정을 걱정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을 담당한 신재숙님은 “프랑크푸르트는 매년 해왔지만, 런던, 더블린은 정토회를 처음 알게된 봉사자가 많았음에도 새로운 방식의 진행으로 봉사자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 기뻐했고, 추희숙님은 “유럽 강연은 참석자가 10명 남짓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씨앗을 심는 것임을 깨닫고 1명을 위해서도 마음을 열어주는 단체가 꼭 필요하구나”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nbspnbsp평가회 겸 나누기를 모두 마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달 동안 수고한 책임자들을 위해 거듭 격려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도시별로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거든요. 많은 분들의 정성으로 원만히 잘 진행되었습니다. 교민들이나 학생들이 해외에 살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격려를 받거나 자극을 받은 것들이 그 분들의 인생에는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모두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은 스텝진들도 모두 공항으로 가서 각자의 생활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유럽 순회 강연 소식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nbsp스님께서는 오전11시50분 비행기로 보스톤으로 가십니다. 보스톤을 시작으로 세계 100회 강연 중 미주 순회 강연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고민과 스님의 법문이 다시 펼쳐집니다. nbsp스님의 건강과 세계 100회 강연의 원만 성취를 기원해 주세요.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4. 42,708 읽음 댓글 79개

2014.9.22 세계 100회 강연(28)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8번째 강연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스님께서는 그저께부터 편두통이 심해져서 밤새 끙끙 앓으셨습니다. 새벽 5시에 전영진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6시에 런던 Kings Cross 역으로 향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기차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로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nbsp▲ 새벽녘부터 박인화 거사님이 차를 가져오셔서 안전하게 스님 일행을 기차역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기차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 런던 Kings Cross 역을 7시50분에 출발한 기차는 에든버러 역에 12시1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에든버러 역에는 선효정님이 마중을 나와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효정님은 이곳 에든버러에 과학기술혁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딸과 함께 유학을 오신 분인데,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고 합니다.숙소인 민박집에 도착하니 오늘 강연 담당자인 이정재님이 스님의 편두통 소식을 듣고 약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정재님은 이곳 에든버러에서 간호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해준 분이기도 합니다.nbsp민박집에 짐을 풀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이정재 학생이 구해 준 약을 드시고 저녁 강연을 위해 오후 내내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습니다.nbsp선효정님은 스님 일행의 점심 식사를 위해 손수 김밥과 샌드위치를 만들어와 주셨습니다. 스텝진들은 그 정성에 감동하며 감사히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기차역 마중을 나오고 점심 식사를 준비해준 선효정님과 오늘 강연 담당을 맡은 이정재 학생.nbsp스님께서는 스코틀랜드에 처음 와 보셨는데 휴식이 너무나 필요한 상태라 오후에 예정된 유적지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계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편두통을 앓은지 3일째가 되었는데 통증이 몇 초 간격으로 계속 있으십니다.nbsp▲ 로얄 마일.nbsp에든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으로 연결된 에든버러의 역사를 말해주는 가장 오래된 길.nbsp▲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 킬트를 입고 전통 악기인 백파이프를 불고 있는 연주자.nbsp오늘 강연은 저녁7시에 애든버러의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Augustine United Church’ 라고 불리우는 교회 건물에서 열렸습니다. 총 50명이 참석하여 스님께 자신의 고민을 묻고 지혜로운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른쪽에 높게 솟은 첨탑 건물이 오늘 강연장인 Augustine United Church스님께서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선 채로 강연을 하시는데, 오늘은 통증이 너무 심하셔서 앉은 채로 강연을 하시면서도 얼굴이 자주 찌푸려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청중들의 마음에 응답하고자 2시간 20분 동안이나 열강을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는 특히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이곳 에든버러 대학에서nbsp공부했다는 사실과 얼마 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힉스 교수가 에든버러 대학교 교수라는 사실을 듣고선 “제가 중요한 도시에 왔네요.” 하시며 무척 반가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관련해서도 짧은 소회를 말씀하셨습니다.nbsp“스코틀랜드의 독립 문제는 우리야 국외인이니까 독립이 되거나, 안 되거나 상관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 문화가 다르면 독립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약소 민족으로 살아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이준 열사가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우리나라가 독립해야 한다고 했을 때 세계 열강들이 다 외면했지 않았습니까.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국이 중국의 일부라고 해도 받아들이고, 한국이 일본의 일부라고 해도 받아들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 유럽에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 독립을 했고, 유고슬라비아도 6개의 나라로 분리 독립을 했고, 코소보는 EU에서 인정을 안 해줘서 독립을 못하지 않았습니까.nbsp그런데 EU가 없으면 독립을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각각이 독립을 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EU가 발전하면 앞으로 유럽합중국처럼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나라라는 것은 주 정도 밖에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치권을 확대해서 활동하는 것도 큰 무리는 없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유럽의 나라들, 특히 스코틀랜드 같은 경우는 독립을 해서 자기 전통을 지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nbsp민주주의의 심화는 권력이 국가에서 주민에게로 이양되는 과정입니다. 이양되는 절차가 지방자치가 확대되고 다시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확대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권력의 일부가 국제기구로, 유럽 같으면 유럽 연합으로 확대되고, 그래서 절대적 국가 권력이라는 것이 축소되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 심화 과정의 한 추세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공동체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전통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본받을 만 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이민사회에서 만들어진 미국 민주주의는 압축 성장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는데 이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한국사회에 딱 맞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유럽에 나와 있는 여러분들이 한국의 다음 사회를 만드는데 좀 더 많은 기여를 했으면 좋겠어요.”nbsp오늘 참석자들은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최근에 있었던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스님의 고견도 들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nbspnbsp nbsp오늘 강연에는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에든버러에 와서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고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 지금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 하는 분, 의료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 진리는 신과 통한다고 믿는데 불교에서는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예수님의 피가 아닌 순전한 저의 노력만으로도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지 묻는 분, 결혼하기 전에 다양한 사람과의 경험을 가져보면 좋다고 하는데 아직 7년 동안 여자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분, 스님께서는 대중들의 고민을 들어주시기만 하는데 스님의 고민은 무엇인지 묻는 분, 친한 친구가 얼마 전 동성애자로 커밍아웃을 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유럽에서 배운 가치관을 갖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생길 충돌을 염려하는 유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인류학과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기 위해 에든버러에 4년째 살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이곳의 자유롭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스스로 가치관의 변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내년에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이곳에서 가진 가치관의 변화들이 한국 사회의 권위적인 문화와 많이 충돌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한국 분들과 레스토랑에 갔을 때 어른도 있는데 제가 먼저 앉았다며 굉장히 화를 내셔서 그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교수님들도 그런 권위적인 문화가 없거든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nbsp한국 사람이 볼 때 외국에 가서 4년 살다 와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저게 외국 물이 잘못 들어서 영국 사람도 아닌 것이 영국 사람을 흉내 낸다’ 이렇게 말합니다.nbsp만약 한국사회로 돌아가서 선생님을 한다면, 한국은 주입식으로 달달 외우게 해서 시험을 치도록 그렇게 가르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창조적으로 어릴 때부터 훈련을 하려면, 아이들을 테이블에 앉혀놓고 주제를 제시해서 아이들에게 답을 하게 할 때 정답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대답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것도 일리가 있는 얘기야’,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도 해봤니?’ 이렇게 얘기해 줘야 합니다. 자기가 한 말의 앞뒤 모순은 지적해 주지만 이 생각이 “틀렸다. 맞다”는 말하면 안 됩니다. 틀렸다 맞다 하는 정답 쓰기 훈련이 안되도록 해야 사고가 창조적이 됩니다. 그래야 사고가 모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는 어떤 생각을 말하면 “그것은 틀린거야” 라고 하거나 “너는 빨갱이야”, “너는 이단이야” 이렇게 짤라 버립니다. 그런 속에서는 인간의 사고가 창조적이 될 수 없습니다.nbsp한국 사회처럼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이 있는, 즉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를 금기시하는 이런 사회 속에서는 철학 사상적인 창조성이 나오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되어 이런 것들이 한꺼풀 걷어져야 한국 사회도 유럽처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이뤄집니다. 서양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 어긋난다고 하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종교 재판에 회부되는 그런 어려움을 뚫고 이 자유를 얻은 것이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nbsp그러기 때문에 질문자가 한국에 가서 살려면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중요한 게 아닌 것은 그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좋아요. 별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을 갖고 따지는 것은 별로 안 좋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들어와서 제사 지내지 않는 것을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효과만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적인 것은 그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nbsp둘째, 정말 내용적으로 중요한 것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앞서 얘기한 아이들의 교육 훈련은 양보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계속 부딪히고 왕따 당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겪는 불이익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 이후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믿음으로 해서 이익이 되었어요? 불이익이 되었어요? 불이익이 되었습니다. 죽기까지 했습니다. 신앙을 통해서 이익을 얻으면, 즉 돈을 더 벌고 입학시험에도 걸리고 출세하기 위해 신앙을 가진다면 그것은 이미 세속화입니다. 그것은 신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든 불교 신앙이든 그 본질은 세속적 불이익을 보면서도 그 신앙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nbsp왜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빌어서 돈을 벌려고 해요?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인데... 스스로가 노력해서 벌어야지요. 기도해서 돈 벌겠다는 것은 노력도 안하고 공짜로 먹겠다는 것 아닙니까. 자신을 믿는다고 공짜를 바라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브로커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전혀 신앙이 아니에요. 그것은 이미 신앙성이 없는 세속 권력 집단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과 예수님도 “기득권을 버려라” 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길은 기득권과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손해를 보면서도 따르는 길입니다. 손해를 보면서 거기서 행복을 얻고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nbsp그래서 첫째, 질문자가 만약 이곳에서 배운 장점이 있더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의 전통문화는 일단 받아들이시면 좋겠어요. 내용상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가지고 ‘기득권 사회다’ 라고까지 비난할 것은 없어요. 즉 노인들이 의자에 좀 먼저 앉으면 어때요? 이런 문화는 때가 되면 저절로 고쳐지는 것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nbsp그러나, 내용적으로 중요한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질서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항한다는 것은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니까 저항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손실을 감내할 자세만 딱 가지면 됩니다. 손해 보기 싫으면 그냥 묻혀 살고, 그것을 개선하려면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nbsp가장 중요한 것은 손실을 감수할 거냐 이겁니다. 손실 중에서 가장 마지막 손실은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느냐 입니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목숨을 버려야 해요. 민주화 운동을 하려면 감옥에 가야 해요. 그런데 요즘은 한국사회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선하려면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어요. 약간의 경제적 손실과 출세 손해만 감수하면 됩니다. 남보다 앞에 가려는 승진이나 월급 같은 몇 가지만 조금 포기하면, 무엇이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있죠. 예를 들어 검사나 판사가 되어서 약간 민주적인 시각을 가지면 그 사회 안에서 승진을 누락시킬 수 있겠죠. 약간 좌천시키거나 왕따를 좀 시키겠죠. 죽는 것도 아니고 감옥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nbsp한국 사회에 돌아가서 새로움을 시도하려면 두 가지를 유의하세요. 첫째, 지켜야 할 것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지켜낼 것. 둘째, 중요하지 않은 문화적 차이를 갖고 너무 싸우면 안 됩니다. 문화는 그냥 수용하는 것이 낫습니다.nbsp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이 더 있었지만, 스님께서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며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대신에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에게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nbsp▲ 오늘 에든버러 강연에는 유학생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에든버러 한인 학생회 이상준 회장과 김낙평 부회장을 비롯한 에든버러 학부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봉사자들과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곧바로 숙소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점점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건강을 기도하며 잠자리에 듭니다.nbsp▲ 오늘 강연을 책임지고 준비해 준 이정재 학생. 간호학 박사 과정에 있는데 통일에 관심이 많아 북한 의료 지원 문제에 기여를 하고 싶은 꿈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스님께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 받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내일은 세계 100회 강연 중 유럽 29개 도시 순회강연의 마지막 날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가서 유럽 강연의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3. 37,838 읽음 댓글 71개

2014.9.21 세계 100회 강연(27) 영국 런던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7번째 강연이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 5시30분, 포르투갈 리스본의 민박집 숙소를 나와 리스본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김윤정, 세르지오 부부는 새벽녘 공항까지 나와서 스님 일행을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김윤정씨가 아기를 갖고 있어서 두 부부에게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가 건강해진다는 것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두 부부도 스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준 김윤정, 세르지오 부부리스본에서 8시2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을 비행하여 11시20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런던의 한국 사찰인 연화사에서 나오신 박인화 거사님이 짐을 실을 수 있는 벤을 몰고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거사님은 1996년부터 한국 기업의 주재원 생활을 영국에서 하다가 그만두시고, 2005년부터는 현지 교민이 되어 이곳 런던에 정착해 살고 계십니다. 하루 종일 운전을 너무 편안하게 잘해주셔서 스님께서는 칭찬과 더불어 감사해 하셨습니다. nbsp▲ 스님 일행의 런던 일정을 차량 운전해주신 박인화 거사님.nbsp거사님의 차량 운전 덕분에 오전 12시 무렵, 편안하게 오늘 숙소인 전영진 보살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스님 일행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보살님의 정성스런 준비를 보시곤 밥 한그릇을 모두 드셨습니다.nbsp▲ 점심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주신 전영진 보살님과 딸nbsp오후에는 원래 런던 시내 유적지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님께서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방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3일째 목이 계속 잠겨 있으시고, 감기 기운이 심하며, 편두통까지 있으셔서 몸을 가누는 것도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nbsp오후 내내 휴식을 취하신 스님은 전영진 보살님이 차려주신 호박죽을 간단히 드신 후 저녁5시30분 강연장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강연장으로 향하는 길에 영국의 국회의사당과 Big ben이라 불리는 시계탑이 보였습니다.nbsp영국에는 한국 교민이 현재 4만5천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런던과 한인거주밀집지역인 뉴멀던 사이에 약 40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런던에는 대략 1만 5천명 정도가 살고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고 합니다. 주로 유학생들이 많고 현지 교민은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New Large Lecture Theatre.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1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교민들.nbsp오늘 런던 강연은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New Large Lecture Theatre에서 오후6시에 열렸습니다. 총 240명이 참석하여 지금까지 27번의 유럽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뜨거운 박수와 환영 속에서 열렸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권금영님이 주축이 되어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권금영님은 영국에 사신지 7년 되셨고, 예술을 하시는 분입니다. 이번에 스님께서 런던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자워봉사를 신청하셔서 이번에 총괄까지 맡게 되셨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간단히 사진도 함께 찍으셨습니다.nbsp▲ 오늘 강연 총괄을 맡아주신 권금영님.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아픔을 상기하면서 종교인으로서 화합된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묵념을 1분간 한 후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에는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유학을 와 있는데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서 전화 통화하기가 불편하다는 분,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경제적 지원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갈팡질팡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럽다는 분, 만족하는 삶을 살면 자기 발전은 없어지지 않는지 묻는 분, 실험관으로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 고민이 된다는 분,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절망 속에서도 국민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부모님과의 불편한 관계로 고민하는 한 유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nbsp“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부모님한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아도 불편하고, 전화를 안 받아도 불편합니다. 전화를 받으면 대화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자기 얘기만 하고 끊으세요.”nbsp“스무살 넘어서 지원을 좀 받았어요?”nbsp“대학 등록금 지원을 받았습니다.”nbsp“스무살까지는 미성년자이고, 스무살 넘어서는 성년이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원을 좀 받았잖아요. 그래서 지원받은 것을 다 갚았어요?”nbsp“금전적으로는 안 갚았습니다”“안 갚았으니까 아직 간섭을 좀 받아야 됩니다. 잔소리를 들을 때 그것을 화폐로 계산해서 다 갚으세요. 여기서 한 시간 아르바이트 하면 6파운드 정도 벌 수 있죠? 그러면 아르바이트 하는 것이 나아요? 전화기를 귀에 대고 말 듣는 것이 나아요?nbsp그러니까 한 시간에 6파운드씩 계산해서 엄마의 전화통화를 20분 들어주었다면 2파운드씩 빼면 돼요. 그렇게 해서 10년, 20년 모아서 대충 갚았다 하면 그때부터는 이제 전화를 안 받아도 돼요.nbsp그런데, 듣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대화 하는 것이 오히려 힘들지 듣는 것은 “네네, 네네” 하기만 하고 끊으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엄마한테 할 이야기가 많아요? 엄마가 일방적으로 얘기만 하고 질문자가 엄마한테 얘기 할 기회는 안 준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질문자가 지금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네요. 엄마로부터 독립하려면 할 얘기가 없어야지요. 그런데, 부탁이든 하소연이든 할 얘기가 있다는 거네요. 질문자가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은 질문자가 아직 엄마로부터 완전히 독립이 안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엄마한테 할 얘기가 뭐가 있어요?nbsp엄마는 자식한테 투자한 것이 많으니까 할 얘기가 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투자를 했다 하더라도 스무살 밑으로 투자한 것은 감사하기는 하지만 안 갚아도 됩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져야 할 책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무살 넘어서는 부모가 자식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없습니다. 스무살 넘어서 받은 지원은 다 빚이 됩니다. 지원받은 만큼 나중에 갚아야 해요. 잔소리를 듣는 것으로 갚던지, 돈을 벌어서 갚던지 해야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돈을 벌어서 갚을 능력은 안 되니까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은 해야 됩니다. 어머니는 질문자에게 이미 선금을 지불했단 말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어머니한테 얘기할 기회가 안 주어진다고 불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어머니를 미워할 자격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내 얘기를 들어주신다면 다행이지만, 안 들어준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nbsp어머니가 내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몸은 32살이 되었음에도 아직 스무살 이전의 미성년자일 때의 사고를 움켜쥐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엄마와 만나면 어릴 때의 사고를 못 버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이제 성년이 된 독립된 인간입니다. 다만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서 엄마로부터 스무살 넘어서도 후원을 받았잖아요. 부모님이 지원 안 해주었다면 등록금을 은행에 빌려서 다 갚았어야 했잖아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것을 부모님한테 빚을 내어서 갚는 것이란 말이예요. 그러니 돈을 안 갚는 대신에 그 정도 서비스는 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꺼이 “네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좀 들어주세요.nbsp전화가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되요. 그런데 안 받으면 질문자의 마음이 불편할 거예요. 왜냐하면 빚을 지고 안 갚으면, 돈은 안 나가지만 심리적으로 늘 빚진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주고 어머니에게 위로를 해주는 게 내가 빚진 것의 일부를 갚는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조금 더 들어주면 조금 더 갚게 되는 것이니까, 식당에서 서빙 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편할 것입니다. “어머니, 더 할 말 없어요? 시간 있는데 조금 더 얘기하세요.” 이렇게 됩니다.nbsp이것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5리를 가자고하면 10리를 가주라.” 누가 5리를 나보고 가자고 하면, 가자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내가 종이 됩니다. 가자는 사람이 갑이고 내가 을이 되는데, ‘내가 10리를 가줄게’ 라고 마음을 내어버리면 내가 갑이 됩니다. 이것이 내가 종으로 살지 않고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여기에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주라” 구절을 추가해서 이렇게 3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을’로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갑’의 위치로 전환할 것인가, 즉 어떻게 내 인생의 주인으로 전환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nbsp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전화가 와서 듣고 있으면 어머니가 주인이고 내가 종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고 내가 전화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 빚을 갚아야 하는데, 전화 받는 것으로 빚을 갚는다’ 이렇게 생각해서, 어머니가 평소에 20분을 얘기 한다면 이제는 1시간을 들어줄 마음을 내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버리면 “벌써 끊어요? 조금 더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전화인데 내가 듣기 좋아한다고 통화시간이 더 길어지고, 내가 듣기 싫어 한다고 통화시간이 더 짧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내가 듣기 싫다고 해도 자신의 할 말을 다 할 것이고, 내가 더 얘기 하시라고 해도 본인의 할 말을 다하면 끊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었다고 해서 통화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뿐이지 많이는 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괴롭지가 않아집니다. 어머니로부터 속박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nbsp어떤 날은 시간이 있을 때 어머니 얘기를 많이 들어드리면, 어떤 날은 바빠서 얘기를 안 들어드려도 내가 죄책감이 안 들어요. 전화를 받아도 괜찮고 안 받아도 괜찮아 집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아서 얘기를 듣기 싫어하면 시간이 아깝고, 안 받으면 죄의식도 생기고, 이래도 저래도 내가 어머니에게 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마음을 탁 내어버리면, 받아도 별로 구애 안 받고, 안 받아도 마음이 편안합니다.”질문자는 활짝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주어진 상황에서 주인이 되는 방법을 일러 주십니다.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더 이상 괴롭지 않아지는 이치를 듣고, 청중들도 모두 기쁜 마음에 스님께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통증이 계속 있으셔서 몸을 가누기가 힘드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 분 한 분에게 활짝 웃으시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봉사자들과 소감 나누기를 매번 챙겨서 하셨는데, 오늘은 기념촬영만 간단히 하시고 소감나누기는 함께하지 못하시고 곧장 숙소로 이동하셔서 휴식을 하셨습니다.nbsp내일은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르로 이동합니다. 에딘버르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8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2. 42,512 읽음 댓글 62개

2014.9.20 세계 100회 강연(26) 포르투갈 리스본

nbsp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6번째 강연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 5시30분 숙소를 출발한 스님 일행은 이인철 한인회 회장님과 이장호 부회장님의 차량 배웅으로 무사히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녘에도 배웅을 나와 준 두 분께 감사인사를 한 후,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을 보셨습니다.nbsp▲ 새벽녘에 공항 배웅을 나와 주신 마드리드 한인회 회장님과 부회장님오전 9시50분에 스페인 마드리드를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40분이 걸려 10시30분에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본 공항에는 김윤정씨 부부가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김윤정씨는 포르투갈어를 전공하여 이곳에 유학을 왔다가, 현지의 한국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고 포르투갈인 남편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분입니다. 김윤정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박선숙 과장님이 윗분의 승인을 얻어 차량도 보내주셔서 스님 일행은 오늘 하루 편안하게 시내 곳곳의 유적지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nbsp▲ 리스본 시내 유적지 안내와 운전 지원을 해주신 김윤정씨 부부.nbsp김윤정씨의 안내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렝 탑’입니다. 벨렝 탑은 대항해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1515년 리스본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된 해양경찰대 탑입니다. 마누엘 양식으로 유명한 건축물인데, 마누엘 양식은 16세기 초 해상무역으로 부를 누렸던 포르투갈 고유의 바다와 연관된 화려한 건축 양식입니다.nbsp▲ 벨렝 탑특히 이곳은 우리에게 세계사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출발한 장소이기도 하다고 합니다.nbsp벨링 탑에서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거대한 ‘발견 기념비’가 나타났습니다. 해양 국가 포르투갈의 기초를 쌓는데 공헌한 ‘엔리크 왕자’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에 건립된 이 기념비는 높이가 무려 52m가 된다고 합니다.nbsp▲ 발견 기념비기념비에는 15세기 범선의 선머리 형상에 여기에 기여한 역사적 인물을 조각해 놓았는데, 맨 선두에 있는 인물이 ‘엔리크 왕자’, 두 번째가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 세 번째가 브라질을 발견한 ‘빼드루 알바르시 까브랄’ 이라고 합니다.nbsp기념비 앞 광장 바닥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년도가 표기되어 있는 세계 전도와 풍랑판이 있어 언제 어느 대륙에 도착했는지 연도 비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 광장 바닥에 그려진 신항로를 발견한 연도가 표기되어 있는 세계 전도nbsp기념비를 지나 조금 더 걸어 화려한 벽채 조각을 한 ‘제로니모스 수도원’에 들렀습니다. 대항해 시대의 선구자인 ‘엔리크 왕자’가 세운 성당 부지에 ‘마누엘 1세’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여 건립한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 발견 후 향신료 무역으로 얻어진 수익금 전부를 봉헌하여 건축되었다고 합니다.nbsp▲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1833년까지 성 제로니무스의 수도사들이 거주하였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였습니다. 이 건물 역시 포르투갈 고유의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화려한 문양이 인상적이었습니다.nbsp수도원 안의 회랑에는 예수 탄생과 동방 박사의 경배에 관한 조각이 풍요로운 장식의 마누엘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nbsp수도원 내 서쪽에는 산타마리아 성당이 크고 웅장하게 서 있었는데, 이곳에는 마누엘 1세와 바스코 다 가마의 묘지가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마침 성당 안에서는 휴일을 맞아 결혼식이 치러지고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도원 관람을 마치고 나와, 이곳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하여 유명해진 ‘에그 타르트’를 맛보러 식당에 들렀습니다.nbsp▲ 포르투갈의 7대 진미 중에 하나인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파스테이스 드 나타포르투갈어로 ‘파스테이스 드 나타’ 라고 불리우는 이 디저트는 1820년대 포르투갈 정부의 재정 지원 중단에 따라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재정 유지를 위해 1837년에 설립한 파이 가게에서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조리법이 외부에 공개되어 있지 않으며 ‘비법’이 5대 째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홍콩을 통해 세계 전역으로 전파된 ‘에그타르트’의 원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nbsp강연 시간이 다 되어 유적지 방문은 여기까지 하고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재 포르투갈 한인회 박형례 회장님의 주관으로 열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은 강병호 목사님의 도움으로 한국어 학교가 열리는 학교 건물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한인회장님과 목사님은 강연장에 도착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nbsp▲ 오늘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박형례 한인회 회장님과 강연장을 마련해 주신 강병호 목사님강연장에 들어서니 이곳 한국기업에서 일하고 계신 박선숙님의 남편 되시는 텔무씨가 정성껏 점심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텔무씨는 스님 일행을 위해 한달 전부터 오이소박이와 김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7시부터 하루종일 정성을 기울여 잡채 요리와 밑반찬들을 준비했다고 합니다.nbsp▲ 텔무 씨가 정성껏 요리한 점심 식사스님께서는 “포르투갈에는 한국 식당이 전혀 없고 식재료를 구할 수가 없는 곳인데 이런 음식을 준비한 것은 정말 정성을 기울인 것” 이라 하시며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셨습니다. nbsp오후 3시부터 시작된 오늘 강연에는 총 14명이 참석했습니다. 저 멀리 북쪽에 있는 ‘포르투’라는 도시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오신 분도 2명이나 있었고, 배낭여행을 하다가 카카오스토리에서 강연 소식을 접하고 온 학생 3명도 있었습니다. 한인회장님은 “포르투갈 전체에 한국인 교민이 100명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10명 넘게 온 것은 정말 많이 온 것” 이라 하시며 혹시나 스텝진들이 참석 인원이 적은 것을 염려할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 직전까지 목이 계속 잠겨 있으시고 감기 기운이 심하셔서 강연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강연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교민들의 10나 왔으니 정말 많이 왔네요” 하시며 활짝 웃으면서 청중들과의 즉문즉설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2시간 30분 동안 총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화를 다스릴 수 있는지,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면 아이를 혼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부모님이 직설적인 표현을 많이 하셔서 그것을 피하려고 외국 생활도 많이 하게 되었고 이제 곧 아이를 낳게 될 예정인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묻는 분,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희망세상을 만들고자 하시는지, 해외에 다니시면서 교민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는 분, 외국에 오래 살게 되다 보니 가족들이 그립고 최근에는 혼자서 가족들을 짝사랑하는 기분이 들고 이번 추석연휴에는 카톡 인사도 안와서 슬프다는 분, 마음 표현을 해도 불편하고 표현을 안 해도 불편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직장도 안 구하고 민폐를 끼치는 시동생이 있는데 받아줘야 할지 혹독하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외국에서 오래 살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이 느껴진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포르투갈에 온지 25년이 넘었습니다. 저희 집은 대가족이고 제가 팔남매 중에 막내인데 어렸을 때부터 명절 때 서로 연락도 하고 잘 챙기는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 이모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그러다보니 저는 조카들 생일도 챙기고 조카들에게 굉장히 얽매이는 이모가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많아서 가족들도 더욱 챙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저 혼자 가족들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명절 때마다 언니들에게 자주 연락을 했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는 연락을 안 해봤는데 아무도 저한테 연락을 안 하는 겁니다. 카톡은 사용이 무료인데도 카톡 메시지도 안 보내는 겁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점점 옹졸해져 가는 것 같고 서러움도 생겨서 요즘 잠도 제대로 못자고 있습니다.”nbsp“말씀을 들어보니 한마디로 ‘본전 생각이 난다’ 이거네요. 그동안 투자한 본전이 아깝다. 맞죠? 한번 자신을 돌아보세요. ‘내가 요즘 본전 생각이 간절하구나’. 그동안 투자한 것에 대해서 이익이 회수가 안 되고 있어서 투자를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에 빠져 있네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 할거냐, 까짓것 회수도 안 되는데 투자를 끊을 거냐, 이런 고민인 것 같습니다. 투자를 했는데 이익이 회수가 안 되면 투자를 끊는 것처럼 사랑을 줬는데도 그 사랑이 안 돌아오면 미움으로 바뀌는 겁니다. 한국에서 어떤 산을 좋아하세요?”nbsp“설악산이요.”nbsp“설악산에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면, 가면 갈수록 설악산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설악산을 좋아한다고 설악산이 질문자가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해 준 적이 있어요?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놈의 산은 내가 세 번이나 찾아와도 인사도 없네’ 이러면서 더 이상 안갑니까? 설악산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설악산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겁니다. 즉, 우리가 설악산을 좋아한다는 것은 짝사랑이에요. 우리가 꽃을 좋아해서 “아이고, 장미가 참 예쁘다” 하면, 장미한테서 “아이고, 칭찬해줘서 고마워” 이런 얘기 들은 적이 있습니까? 없지요.nbsp‘아이고, 이 꽃 참 예쁘다’ 하면 꽃이 기분이 좋아요? 내가 기분이 좋아요? 내가 기분이 좋지요. 리스본에 와서 대서양 바다를 보고 “와, 바다다” 하면서 좋아하면, 바다가 기분 좋을까요? 내가 기분이 좋을까요?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좋지 상대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nbsp우리는 바다나 산이나 들이나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는 내가 좋아한다고 상대도 응답해야 한다는 기대를 안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에는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바랍니다. ‘내가 열 번 좋아하면 매번 좋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한번쯤은 답을 줘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요구가 지금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지 언니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의 기대가 지금 질문자를 괴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너희들 이렇게 계속 원금을 안 돌려주면 이제 더 이상 투자 안 할거야” 이렇게 눈치를 줘도 가족들이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으니 질문자가 지금 많이 답답한 것 같네요. nbsp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할 때 “내가 뭐 도와줄까?” 이런 전화를 하기 쉬워요? “이것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내 요구가 있을 때 전화하기가 쉬워요? 내가 뭔가 필요해서 그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 전화할 때가 많죠. 모든 전화의 90가 내가 필요한 게 있을 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화라는 것 자체가 부탁이 있을 때 사용하라고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자기가 아쉬울 때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죠. 소식이 없으면 잘 있다는 얘기입니다. 소식이 있다면 그것은 부탁 소식이다 이말입니다.nbsp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은 그 안에서 친구도 많고 할 일도 많잖아요. 형제가 8명이면 1명 빼고 7명은 서로 소통을 많이 할 것 아닙니까? 질문자는 외국에 혼자 와 있으니까 아쉽지만 형제들끼리는 서로 아쉽지 않아요. 그러니 아쉬운 질문자가 전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맨날 자기가 필요할 때만 전화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심리 흐름이라는 겁니다. 나는 혼자이니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니 전화를 하는 것이고, 형제들은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으니까 전화할 필요성을 안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동생한테 자주 전화가 오는데 무엇 때문에 전화를 따로 하겠어요?nbsp그러니까 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언니가 전화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요. ‘나는 전화를 하는데 너는 왜 전화를 안 하니?’ 이렇게 일대일 대응논리로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만약 한국에 전화를 안 하면 그것으로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들은 질문자에게 별로 전화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필요에 의해서 전화하는 것이지 언니한테 좋으라고 전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 착각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좋아서 설악산에 가는데 마치 설악산한테 좋으라고 가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설악산에 가려다가 설악산이 나를 안 좋아한다고 ‘까짓것 안 간다’ 이렇게 미워져서 문을 닫으니, 이제 갈 데가 없어져서 지금 저한테 묻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감옥을 만든 것입니다.nbsp자신은 본전만 생각하는 속물 수준인데 행동은 성인처럼 하려고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지요. 성질이 나면 성질이 나는 대로 ‘언니가 전화를 안하니까 힘들다’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 됩니다. 만약 길거리에 통을 놔두고 동전을 달라고 동냥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고 싶으면 주고 안주고 싶으면 안주면 되지 ‘왜 저기 앉아 있느냐?’ 이렇게 시비할 필요는 없잖아요. 주려고 하다가 안주면 내 마음이 찝찝하지 그 사람은 ‘저 인간은 왜 안주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nbsp그러니 언니에게 전화를 안 한다고 도덕적으로 아무런 나쁜 것이 아니고, 부모에게 전화를 안 한다고 아무런 나쁜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됩니다. 다만 거래 관계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물질적인 거래를 안 할 뿐이지 심리적으로는 거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하고 싶으면 계속 해도 되지만, 그러나 대가를 바라면 상대와 원수가 됩니다. 언니가 나쁜 사람이 아니고 조카들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냥 일반 사람들입니다. 산은 그냥 산일뿐인데 내가 산을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저 산도 좋아하고 저 바다도 좋아하고 저 꽃도 좋아하면 내가 좋은 겁니다. 어떻게 할래요? 질문자는 언니한테 전화를 하는 게 좋아요? 안 하는 게 좋아요?”“전화하는 게 좋지요.”nbsp“그러면 내가 전화를 하면 됩니다. ‘내가 전화 세 번 하면 너도 한 번 해라’ 이렇게 계속 본전 생각하고 상거래를 할래요? 형제 간에 상거래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이러고 있습니다. 사랑을 돈 거래 하듯이 거래하고 있습니다. 이제 상거래는 그만 하세요. 그래서 제가 늘 그러죠. ”사랑 좋아하시네” 라고요. nbsp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면 연락하세요. 질문자가 해외에 있으니까 아마도 가족이 더 그리우니 연락을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지요. 형제들은 어릴 때는 언니 동생 하지만 결혼해서 자식이 있으면 자기 자식 챙기는데 급급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이민을 와서 사고가 그 때 상황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우애가 있었던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에 사는 형제들은 이미 다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전화 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하면 안 하면 되는 것입니다. 본전 생각 이제 그만 하시지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언니한테 카톡 보낼 거예요? 계속 기다릴 거예요?”nbsp“네, 보내겠습니다.”nbsp스님과의 긴 문답 끝에 굳어있던 질문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하신 후, 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 한 번 청중들을 위해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해 행복을 놓치지 말라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nbsp“우리는 괴로워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살지만, 다 살고 나서 눈 감을 때 돌아보면, 괴로워했던 것이 별로 괴로워할 가치가 없고, 화내고 짜증냈던 것도 별로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요. 그 때는 난리나는 일인데 지나놓고 보면 별일 아니예요.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냥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것이지요.nbsp그 시점에서는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았는데 지나놓고 돌아보면 별 의미가 없고, 이 시점에서 하찮게 생각한 것이 지나놓고 보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현재에 집착해서 ‘카톡을 보낼까, 말까?’ 하는 것은 그거야 말로 죽을 때 돌아보면 웃기는 행동입니다. 그런 작은 것에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그렇게 자유롭게 사세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 마세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오늘은 준비한 봉사자 숫자가 적어서 강연을 마치고 참석한 청중들 모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리스본에도 책이 도착하지 않아 책 판매를 하지 못해 사진 촬영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nbsp뒷정리까지 모두 끝내니 오후6시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시간 여유가 생겨서 대서양의 일몰을 볼 수 있는 조르지 성을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조르지 성으로 가는 길에 ‘품발 후작 광장’을 지났습니다.nbsp▲ 품발 후작 광장nbsp품발 후작 광장은 1755년 리스본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고 도시를 부흥 시킨 사람이 품발 후작인데 이를 기념한 광장입니다. 계획 도시라는 개념이 없었던 그 당시에 도심 한 가운데에 대로를 놓았던 선구자적인 업적을 행한 사람이라고 포르투갈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nbsp해질 무렵 도착한 조르지 성은 리스본의 7개 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성입니다. 9세기에 완성된 성으로 15세기까지 포르투갈의 왕족들이 거주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벽 위에 오르니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nbsp▲ 조르지 성의 성벽 위에서 본 리스본 전경5세기 경 로마인들이 축성을 시작해서, 9세기경 이슬람 쪽에서 넘어온 무어인이 완성시켰다고 하는데 대지진을 겪고 1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게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아마도 암반 위에 성을 지었기 때문에 지진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지 않았나 싶다” 하시면서 성벽의 이곳 저곳을 유심히 살펴보셨습니다. 포르투갈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느껴보며 1시간 정도의 산책을 한 후, 오늘 숙소인 아파트 민박집으로 내려 왔습니다.nbsp아파트의 방 2개를 예약했는데, 직원의 착오로 방을 1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침낭을 덮고 옹기종기 모여 거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주변에 디스코텍과 클럽들이 많아서 토요일 밤이라 밤새 노래하고 춤추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텝진 모두가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스님께서도 아침에 일어나셔서 “숙소 참 잘 잡았네” 하며 웃으셨습니다. 이렇게 포루투칼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nbsp내일은 영국 런던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7번째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1. 46,282 읽음 댓글 46개

2014.9.19 세계 100회 강연(25) 스페인 마드리드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5번째 강연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그리스 아테네의 Best Western Fenix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 6시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그리스 강연을 준비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운전을 직접 해주셔서 무사히 아테네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 아테네 공항까지 무사히 차량 운전을 해주신 한종엽 사장님과 김근찬 선생님nbsp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위해 대기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전 8시30분에 아테네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날아 12시30분에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 AEGEAN 항공을 타고 출발하며nbsp공항에는 재 스페인 마드리드 한인회에서 이인철 회장님과 이장훈 부회장님, 정재현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고문님이 함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 스페인 강연을 준비하고 운영해주신 분들. 이인철 한인회 회장님, 이장훈 한인회 부회장님, 정재현 고문님nbsp이인철 회장님은 1989년에 스페인에 오셔서 지금까지 25년 동안 스페인에 거주하신 분입니다. 원래는 회장님의 부인인 오인숙님이 강연 담당을 맡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회장님께서 발 벗고 나서서 오늘 강연이 준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장훈 부회장님은 부모님을 따라 12살에 스페인으로 오셨다가 지금은 마드리드에 주재한 한국 기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재현님은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마드리드 지부 회장을 하셨고, 지금은 고문 역할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남편 분이 스페인에 처음으로 태권도를 알리신 분이시고, 본인은 40년 전에 라스팔마스라는 곳에 이주해 오셔서 동양의학 전문의로 일하시다가 최근에 마드리드에 오신 분입니다. 이 세 분이서 함께 이번 스페인 마드리드 즉문즉설 강연과 유적지 안내, 차량운전 등을 지원해 주셨습니다.nbsp공항 근교에 예약해 둔 민박집에 짐을 먼저 풀고, 한인회 회장님과 함께 한국식당 ‘한강’에서 nbsp점심 식사로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원래는 ‘똘레도’라는 곳에서 식당업을 하고 계신 전덕희님이 점심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 가기에는 도저히 시간 여유가 없어서 전덕희님께서 오늘 점식식사비를 보시해주셔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차와 다과는 한국식당 한강의 사장님이 무료로 서비스해 주셨습니다. nbspnbsp오후2시부터 시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마드리드 왕궁입니다. 16세기에 건립한 군사 요새 알카사르를 1734년 크리스마스 전날 화재로 소실한 이후 필리페 5세가 그 부지 위에 새 궁전을 짓도록 지시하여 1755년 호화로운 마드리드 왕궁이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중요 국가 행사 때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nbsp▲ 마드리드 왕궁왕궁 앞에는 큰 성당이 있었습니다. 유럽 강연을 다니면서 도시별로 성당을 한곳 이상은 꼭 들러보고 있는데, 스페인은 어떤 느낌의 성당을 지었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 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착공 이후 1세기가 지난 1992년 완공했다고 합니다.nbsp▲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nbsp널찍한 실내에 밝은 느낌의 벽채와 깔끔한 장식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럽 성당들이 어둡고 엄숙한 느낌이 많았는데, 스페인은 밝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짧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성당 안을 둘러보셨습니다.nbsp마지막으로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원래는 세계 3대 미술관 중에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이 이곳 마드리드에 있어서 그곳을 가보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았지만, 스님께서는 역사에 더 관심이 있으셔서 고고학 박물관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nbsp전시실 제1실에서 제20실까지는 고대문화와 관계된 유물, 즉 구석기 시대의 원주민부터 아프리카 계통의 이베로족과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의 고고학적 발자취를 담고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고, 제21실에서 26실까지는 로마가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유물, 즉 스페인 각지에서 발굴된 로마인의 대리석상, 모자이크, 장식품, 로마시대 그리스도교의 고고학적 유물들을 관람했습니다. 제27실에서 29실까지는 서고트족의 문화유산, 제30실에서 31실은 이슬람문화의 유산, 제31실에서 35실까지는 기독교 문화의 전성기에 관련된 유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방문해 본 유럽의 박물관 중에서 비교적 연대순으로 깔끔하게 잘 배열된 점이 참 좋았습니다.nbsp▲ 페르니난드 앤드 산차의 십자가. 상아에 조각한 것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 nbsp▲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왕비 ‘리비아’를 조각한 상. 팔이나 코가 부서진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에 불상이 부서져 있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박물관 지하실에 모사로 복원되어 있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대략 18,50014,000년 전 정도로 추정되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채가 나타난 천정이 가장 유명한데 두 마리의 말과 큰 사슴, 수퇘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실제 알타미라 동굴을 방문하려면 예약하고 최소 1년을nbsp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nbsp▲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복제품nbsp유적지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동상을 보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사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중에 한명이라고 합니다. 그의 신항로 발견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고, 스페인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합니다.nbsp▲ 콜럼버스 동상nbsp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동상 앞은 마드리드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마다 모이는 광장이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화문 앞 광장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nbsp강연장으로 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장인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을 보았습니다. 8만4천명이 수용되는 이 경기장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시내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축구에 대한 마드리드 사람들의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도 레알 마드리드 소속의 선수입니다.nbsp▲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장.nbsp오늘 강연장은 ‘한마당 마드리드’ 라고 하는 이인철 한인회장님이 얼마 전 오픈한 문화공간입니다. 한인회 회장님은 이곳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음식과 문화에 대한 강습을 열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인 오인숙님이 직접 만든 공예품들도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 ‘한마당 마드리드’ nbspnbsp한인회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는 총 4천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마드리드에 1300여명, 바르셀로나에 700여명, 원양어업기지로 많은 한국인들이 이주했던 라스팔마스에 12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nbsp저녁 7시30분에 시작된 오늘 강연에는 총 40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마드리드에서 600km 떨어진 바르셀로나에서 4명이 오셨고, 빌바오에서 1명, 아스토리아에서 1명이 nbsp오시는 등 스페인 전역에서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오셔서 더욱 값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질문은 총 5명이 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서 딸아이의 꿈에 아빠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묻는 분, 딸이 어떻게 하면 서로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자식들이 런던, 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묻는 분, 세월호 사고의 처리과정을 보면서 해외에서도 많이 안타까웠는데 해외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반야심경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설명해 달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여전히 스님의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목이 계속 잠겨 있으셔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30분 동안 열강을 하셨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남편을 잃고 혼자 산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딸이 2명 있는데 결혼할 때가 되었어요. 제가 어떤 마음을 가지면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저도 결혼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하는 게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되겠어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가 다니면서 남자를 구해서 가져다 줄 겁니까? 질문자와 아무 관계 없는 일에 왜 신경을 써요? 그것은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딸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 부모의 그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nbsp질문자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면, 질문자는 자기 남편도 제대로 못 구했잖아요. 그런데 그런 안목을 가지고 딸의 남편까지 구해줄 능력이 됩니까?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하는 형국입니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못 구했는데 어떻게 남의 것을 구해줄 생각을 합니까? 그러니까 질문자는 신경을 뚝 끊으세요.nbsp요즘 세상에는 ‘결혼하는 것이 꼭 좋다’ 이렇게 말할 게 없습니다. 사물이라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도 유럽에 사는 여러분들이라면, 첫째, 이제는 결혼을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놓아야 합니다. 둘째, 누구하고 결혼하느냐, 이것도 흑인하고 하든, 백인하고 하든, 어느 나라 사람과 하든, 이런 생각도 놓아야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지 않고 계약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절반 정도 된다고 합니다.nbsp그래서 자식들이 스무살이 넘었으면 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기 때문에 부모가 내 자식을 믿어줘야 합니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 니가 혼자 살든 결혼을 하든 어떻게 살든 너의 선택을 엄마는 믿는다” 라고 얘기해 주세요. 아이가 “엄마, 나 어떻게 해?” 물어도 “너는 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너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어. 괜찮아” 이렇게 격려를 해주세요.nbsp딸이 남자를 하나 사귀어와서 “엄마, 이 남자 어때?” 하면 “아이고, 어리석은 내가 어떻게 아니? 똑똑은 너가 더 잘 알지. 너가 판단해라”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래도 딸이 “한번만 봐죠” 요청하면, “바보 같은 내가 뭘 알아? 공부를 해도 너가 더 많이 했고”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두 번 세 번 요청을 하면, “내가 그렇게 남자 잘 볼 줄 알면 내가 너희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났겠니?”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nbsp그렇게 봐달라고 요청을 해도 엄마가 딱 짤라서 “엄마는 너가 어떤 결정을 하든 너를 지지하고 너를 믿는다” 이렇게 격려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문제는 아닙니다.nbsp질문자가 부처님께 빌면서 “우리 딸 좋은 남자 만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면, 반드시 딸은 결혼을 질문자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하게 됩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러느냐?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실제로는 어지간히 좋아도 내 기대치보다는 못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내 마음에 안 들게 됩니다. “조금 더 기다려봐라”, “다른 남자는 없나” 이렇게 해서 결혼을 방해하게 됩니다. nbsp“다른 건 안 바랍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nbsp“다른 건 안 바라고 서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는데 그게 가장 어려운 겁니다. 숫제 돈이 많은 사람을 찾으면 딱 부러지게 찾을 수가 있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은 컴퓨터에 넣어 돌려도 하나도 안 나옵니다. 서로 마음이 맞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거야 말로 욕심입니다. 질문자도 이런 걸 남편에게 요구하니까 결혼 생활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마음을 맞춰가는 것이지 마음이 맞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지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딸이 남자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니까 남자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너가 그 남자를 이해할 수 있으면 결혼하고, 이해 못하거든 결혼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해 주면 됩니다.nbsp나를 이해해 줄 사람,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나와 마음이 맞을 사람을 찾고 싶다는 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런 요구를 하면 결혼은 이뤄질 수가 없고, 결혼을 해도 오래 유지될 수가 없어요. 당연히 같이 살면 안 맞지요. 음식 맛도 서로 안 맞고, 방안의 온도도 원하는 게 서로 안 맞고, 운전하는 방식도 서로 안 맞고, 뭐든지 안 맞습니다. 안 맞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 겁니다. 혼자 살면 안 맞춰도 되는데 둘이 살면 서로 맞춰야 하는 겁니다. 회사 생활은 큰 것만 맞추면 되고 자질구레한 것들은 안 맞춰도 되는데, 같이 살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맞춰야 합니다. 세수하고 수건을 빨래 통에 담느냐, 걸어두느냐 이런 것 갖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천 가지 만 가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산에 어디를 둘러봐도 기둥하기 좋은 나무가 어디 있습니까? 다 다듬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다듬으면 누구하고도 살 수 있고, 딱 맞는 사람을 찾으면 천하에 아무하고도 같이 못 삽니다.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자기 딸을 결혼 안 시키려고 하는 겁니다.nbsp그러니까 오늘부터 딱 마음 놓고 자기 인생을 사세요. 자식이 스무살 넘었으면 신경을 딱 끄세요. 신경을 딱 끊어줘야 자식이 잘 삽니다.”질문한 어머니는 활짝 밝아진 얼굴로 “스님, 감사합니다” 하며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길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천주교인들이 많은 마드리드 교민들을 위해 종교를 떠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며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몫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가 내 행복을 찾아가는 마음을 낼 때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예수님을 믿어서 이익을 본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출세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었습니까?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죽어도 그 길이 더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잖아요. 자꾸 출세하고 돈 벌고 하는 데에 하나님이 작용하는 것 같으면 그것은 신앙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조건 속에서도 내가 행복을 찾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길입니다.nbsp종교를 떠나서 어쨌든 자기 인생은 자기가 행복하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남의 몫으로, 남편 몫으로, 자식 몫으로, 부모 몫으로, 세상 몫으로 하지 마세요. 자기 문제로 바라보세요. 내가 어제 무슨 일을 당했든, 어떤 불행을 겪었더라도 나는 오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야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살아 있는 한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오늘은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정토회 해외포교팀에서 책을 붙여주었는데 마드리드 지역에만 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발송 업체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합니다.nbsp모두들 아쉬워 하셔서, 스님께서는 대신 참석자들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많이 찍어 드리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정재현님으로부터 감사의 꽃다발 선물을 받았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한인식당인 ‘강남식당’으로 갔습니다. 스님께서 “이 늦은 밤에 웬 식사입니까?” 하니, 스페인은 원래 저녁 식사 시간이 밤10시라고 합니다. 유적지를 둘러본 후 바로 강연에 들어오느라 저녁을 못 드셨는데,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해 주신 한인회 회장님, 한인회 부회장님, 고문님 한분 한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악수를 한 후, 오늘 숙소인 민박집으로 밤12시가 다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께서 오늘 하루만 짧게 스페인을 방문한 것을 많이 아쉬워 했습니다. 내년에는 23일 정도 여유를 갖고 오셔서 바르셀로나와 라스팔마스 등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꼭 강연을 해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nbsp내일은 포루투갈 리스본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스물여섯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포루투갈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20. 37,852 읽음 댓글 47개

2014.9.18 세계 100회 강연(24) 그리스 아테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4번째 강연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6시에 윤혜숙님, 김연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신중애, 에르한씨 부부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6시30분에 이스탄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연옥님과 신중애님 부부는 새벽녘에 공항까지 손수 나오셔서 스님 일행이 무사히 출국절차를 밟을 때까지 도움을 주셨습니다.nbsp▲ 이스탄불의 윤혜숙님 민박집에서 차려주신 아침식사 nbsp스님께서는 어제 이스탄불 강연에서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무려 3시간 동안 열강을 하시는 바람에 아예 목이 잠기셨습니다. 그저께부터 목에서 피가 나오기도 해서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의사선생님이 주신 항생제를 계속 복용하고 계셨는데, 어제 강연으로 목에 더 무리가 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과연 오늘 강연을 제대로 하실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nbsp에게 항공을 타고 오전9시30분에 출발하여 11시30분에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nbsp곧바로 오늘 강연 장소이면서 숙박 장소이기도 한 Fenix 호텔을 찾아갔습니다. 짐을 풀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오후1시부터는 주 그리스 한국대사님이 점심 식사 초대를 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 왼쪽부터 주 그리스 한국대사관 김유철 참사관님, 신길수 대사님, 정효민 영사님대사님은 교민들의 현황과 그리스의 현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현재 그리스 아테네에는 교민들이 350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데, 주로 관광 업종이나 여행사, 여행 가이드, 식당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며 절반 이상이 20년 이상 거주하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삼성, LG를 비롯하여 해운업도 진출해서 주재원들도 나와 있다고 합니다.대사님은 스님께서 115회 연속으로 하루 1개 도시를 방문하는 강연 스케쥴을 보시며 스님의 건강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참사관님이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해법”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께서는 “통일이 해법”이라며 한반도 주변 정세와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이 “유럽사회 모델과 미국사회 모델을 반면 교사로 삼아서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자, 스님께서도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시면서 “유럽은 여기까지 오는데 400년이나 걸렸습니다. 수없는 실패와 반성을 통해 지금의 복지사회를 이뤘는데, 한국은 시간이 아직 짧고, 제도를 넘어서서 관습까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라며 너무 조급하게 바라보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또, 스님께서는 최근 세월호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갈등 문제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하고 타협을 하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하셨는데, 대사님도 공감을 표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1시간 30분 동안 그리스 사회와 한국 사회에 대해 대사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오후3시에는 크렘을 타고 도심으로 가서 고대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미케네 시대에 아테네 여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최초의 사원입니다. BC 6세기 후반까지 아크로폴리스에는 사람들이 살았지만, BC 510년에는 이곳이 신들만이 존재하는 지역이라는 델피 신약이 공포되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BC 480년 살라미나 전투 직전에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의 모든 건물들을 불태워 버렸는데, 페리클레스가 순수한 신전의 도시로 재건했다고 합니다.nbsp▲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입구를 지나니 BC 2세기에 세워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보였습니다. 로마 집정관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세운 이 극장은 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그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BC 161년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했는데, 5천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7월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과 콘서트, 오페라 등의 음악회도 열린다고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 위에 우뚝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기념비적 건축물입니다. BC 438년 완성된 이 건축물은 무척이나 우아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기둥은 완벽한 조형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고 있고, 하단부는 끝으로 갈수록 약간 위를 향해 휘어져 있어 마치 직선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기둥 위에도 장식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nbsp1687년 터키인과 싸우던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파르테논 신전은 바닥과 기둥, 지붕 일부만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답니다.▲ 멀리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nbsp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위대한 신상들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새로운 보물들의 보관 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AD 426년에는 약 12m 높이의 도금된 동상이 콘스탄티노플로 수탈되어 갔고, 결국 거기서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nbsp파르테논 신전에서 저 밑을 내려다보니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장인·공예가·조각가·금속·야금·불의 신인데, 특히 아테네에서는 제조, 산업 종사자들에게 많이 숭배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대장장이에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어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nbsp▲ 헤파이스토스 신전.nbsp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이 보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제우스 신에게 봉헌된 이 신전은 BC 515년에 착공했으나 BC 124년경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됩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던 17m 높이에 10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던 이 거대한 신전은 4세기 고트족에게 파괴당하고 지금 15개의 코린트식 기둥들만 남아 있습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신이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수호신으로 아테나 여신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자리 잡지 못했는데, 대신 아테네 시민들은 제우스 신전을 더 크게 지어 바침으로 대접을 해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nbsp▲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스님께서는 아크로폴리스를 모두 둘러보신 후 “예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 이라며 오늘 이렇게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택시를 타고 강연장으로 돌아왔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아테네 도심에서 약간 외곽의 바닷가에 위치한 Best Western Fenix Hotel에서 열렸습니다.nbsp▲ 강연 담당자인 한종엽 선생님이 직접 제작하셨다는 포스터입니다. 멋있죠?nbsp현지 교민수가 많지 않다보니 많은 분들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22명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이차돈의 피가 정말 하얗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분, 사리가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아테네에 계속 살고 있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불효로 느껴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주위에서 받은 사랑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이 서툴러 고민인 분, 템플스테이에서 고민을 적어서 의식을 한 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했는데 심리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생활 속에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는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고, 예상치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고 나서는 후회를 하고요. 평상시에 생활 속에서 쉽게 화를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오다가 신호등을 안 지키는 모습을 볼 때 화가 많이 납니다.nbsp“매일 아침에 108배 절을 하면서 “화 낼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지 화낼 일은 아니거든요. 내가 화를 내는 것이지요.nbsp화 낼 일이 없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이니까 정신적으로는 약간 미친 증상이지요. ‘너 또 미치고 있다’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주면 도움이 됩니다. 화는 미친 증상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 일어납니다. 보통은 사람이 칼을 들고 찌르겠다고 협박하면 도망을 가는데, 화가 나면 미쳐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다가가서 옷을 걷어 올려 배를 내놓고 ”찔러라, 찔러” 이렇게 나오거든요. 제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nbsp첫째, 화가 난다고 화를 다 내어버리면 상대도 덩달아 화를 내기 때문에 화를 확대 생산하게 되니까 이 방법은 제일 하수가 됩니다. 둘째, 화를 참는 것은 확대 생산은 안하는데 자기가 병이 드니까 역시 하수에 속합니다. 참으면 화병이 됩니다.nbsp예전에 어머니 세대는 여자들이 주로 참기 때문에 대부분 화병을 가지고 있었죠. 화를 참아서 화병이 난 사람의 경우는 응급치료를 위해서 화를 내도록 치료를 하기도 합니다.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참지 말고 감정 표현을 하라고 인도를 해줍니다. 그러면 압력이 좀 줄어드니까 병이 좀 낫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늘 참아서 화병 수준까지 갔다면, 헝겊으로 인형을 만들어서 남편 사진을 붙여 놓고 막 욕하면서 두들겨 패면 스트레스가 조금 풀릴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의 화병을 치료하는 데는 빨래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끼리 마주 앉아서 시어머니와 남편 욕을 하면서 빨래를 두드리면 심리적으로 스트레스 해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 치료책은 아닙니다. 응급치료책입니다. 물이 끓어 넘칠 때 찬물을 한 바가지씩 붓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끓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조금 있으면 또 끓어 넘칩니다.nbsp참는 사람은 화를 안내니까 윤리적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괴롭지 않아야 수행이라고 합니다. 수행은 ‘화를 냈냐, 안냈냐’ 이것이 기준이 아니고 ‘너가 괴롭냐, 안괴롭냐’ 이것이 기준입니다. 참을 것이 없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바라밀입니다.nbsp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화내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너 또 화나는 구나’, ‘너 또 미치는 구나’ 이렇게 알아차립니다. 왜 미쳤다고 하느냐? 사람은 서로 생각이 다르고 행위도 다릅니다.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인식합니다. 자기와 다른데 자기를 기준으로 잡아버리니까 자기와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와 다를 뿐인 것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되어 버립니다. ‘그르다’는 것은 고쳐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안 고칩니다. 그래서 미치는 겁니다.nbsp이치적으로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어집니다.nbsp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중심에 둡니다. 그 때 ‘너 또 너 중심으로 생각하는 구나’ 이렇게 지적하거나 ‘너 또 미친다’ 이렇게 자신의 화 난 상태를 직시해야 합니다.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서 고쳐가는 것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너 또 미친다’, ‘너 또 니 성질 부린다’, ‘너 또 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자각시켜 보세요. 이것이 되면 화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열번 내던 화를 아홉번만 내게 되고, 아홉번 내다가 일곱번 내고 이렇게 줄어듭니다. 화가 일어났을 때 전에는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분이 한 시간씩 간다면, ‘아, 내가 또 미쳤구나’ 자각하면 10분 만에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빠르게 개선이 될 수 있습니다.nbsp화가 날 때마다 ‘너 또 미치는구나’, ‘너 또 너가 옳다고 주장하는구나’ 이렇게 자기에게 주의를 주세요. 밖을 보지 말고 자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명상은 자기 상태에 자기가 깨어있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질문한 거사님은 한국에 가려는 일정도 취소하고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질문한 만큼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 것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삶의 변화가 와야 그 가르침의 전파력이 생깁니다. 절에는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깊다고 해도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고지식하면 전파력이 전혀 없습니다. 불법을 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어떻게 내가 행복할거냐,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질거냐, 그게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이거 한번 해보니까 괜찮더라”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전파력이 생기는 겁니다.nbsp교회를 다니느냐, 절에 다니느냐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인종, 민족, 종교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해질거냐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곳에 멀리 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를 찾으러 온 천지를 찾아 다녔지만 집에 돌아오니 처마 밑에 있더라 이런 얘기가 있죠. 행복은 아무리 밖을 찾아 헤매어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행복은 바로 여기에 있어요.nbsp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여러분들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자기 책임입니다. 누구 탓할 것 없습니다. 환경은 안 바꾸어도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면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남 탓하고 욕하기만 하기 보다는 나의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스님께서는 목이 아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건강이 많이 염려되었지만, 참석자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모두들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22명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은 봉사자가 담당자 한분 밖에 없어 참석자들이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nbsp오늘 강연을 담당해 주신 분은 아테네에서 무역업을 하고 계신 한종엽 사장님입니다. 스님께서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피로회복에 좋은 올리브 오일을 선물해 주셨습니다.nbsp▲ 오늘 아테네 강연 책임을 맡아주신 현지 교민 한종엽 사장님그리고 여행사를 하고 계신 김리자 선생님께서는 오늘 강연장과 스님 일행이 머무를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공항으로 갈 때는 한종엽 사장님과 아테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근찬 선생님이 차량 지원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아테네에서도 여러 교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한분 한분과 기념사진을 찍고 책을 선물해 드리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 섭외와 숙소 예약에 도움을 주신 김리자 선생님nbsp내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5회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19. 33,866 읽음 댓글 38개

2014.9.17 세계 100회 강연 (23) 터키 이스탄불

▲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3번째 강연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뒤셀도르프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2시 비행기로 독일 쾰른 공항을 출발하여 새벽6시에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오늘 일정을 시작합니다.nbsp공항에 도착하니, 신중애님과 남편 되시는 에르한, 그리고 박남희씨 부부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주셨습니다. 모두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소식을 접하고 자원봉사를 해주시기로 한 분들입니다. 스님께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이분들이 렌트해 주신 차를 타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민박집 ‘다온’에 도착했습니다.nbsp▲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신 박남희씨 부부민박집 ‘다온’은 큰 아파트를 민박처럼 운영하는 곳인데 윤혜숙님이 오늘 스님 일행을 위해서 손님도 받지 않고 특별히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오전 8시, 윤혜숙님이 아침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셔서 감사히 먹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온 피로를 풀기 위해 11시30분까지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오늘 강연 준비와 유적지 안내를 도와주실 봉사자 분들. 왼쪽부터 김연옥님, 윤혜숙님, 신중애님, 에르한씨.nbsp12시부터 이스탄불의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스탄불에 온지 11년이 되었고 현지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 윤혜숙님의 안내로 터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풍부한 설명과 안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nbsp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족입니다. 그래서 어순도 같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말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에 걸쳐져 있습니다.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마르마라해가 연결된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의 경계입니다. 이스탄불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 도시로 옮겨와 ‘콘스탄티노플리스’ 라 칭해졌었습니다. 로마는 동서로 분열하여 서로마는 멸망하였으나 동쪽은 번영하여 1000년 이상에 걸쳐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비잔틴’ 혹은 ‘동로마’ 라 불리는 제국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6세기에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과 이탈리아 반도까지 영토를 회복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 지하 저수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등은 모두 이 시대의 구조물입니다.nbsp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거하면서 도시는 황폐화되었다가, 셀주크 투르크에 이어 아나톨리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멧 2세가 이 도시를 포위하면서 비잔틴의 영토는 현재의 이스탄불 구시가와 성벽 내의 아주 미미한 주변지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1453년 간절히 원하던 콘스탄티노플을 빼앗은 메흐멧 2세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 ‘이스탄불’ 이라 불렀습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인 1923년에 수립된 터키 공화국의 새로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기 전까지 이스탄불은 1000년 이상 이곳의 수도로 존립했습니다. 그런 역사 깊은 도시를 오늘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그 당시까지의 성벽을 새로 늘리면서 지어진 성벽인데, 높이10m, 두께5m의 3중으로 지어져 난공불락을 자랑했습니다.nbsp▲ 난공불락의 요새, 테오도시우스의 성벽비슷한 시기의 우리나라 고구려 성벽의 특징인 ‘치’의 모양도 그대로 갖추고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치’는 고구려 성벽만의 고유한 특징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실제로 이 성벽은 78세기의 페르시아군과 아랍군, 9세기의 불가리아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을 견뎌내었다고 합니다. 1600년 전에 만들어진 성벽 치고는 보존상태가 굉장히 양호해서 놀라웠습니다. nbsp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인 ‘성 소피아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님께서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360년 비잔틴의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나 그후 심한 화재를 입었고, 532년에는 ‘니카의 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세운 성당이 불타 무너져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바로 재건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만에 제국 각지에서 운반해 온 석재로 어마어마한 인력을 동원하여 537년에 비잔틴 미술의 최대 규모로 꼽히는 대성당을 완성합니다.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은 성 소피아 성당보다 크지만 지어진 시기는 약 천년의 차이가 납니다.nbsp▲ 성 소피아 대성당성당 내의 녹색 기둥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붉은 얼룩이 있는 기둥은 레바논에 있는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거대한 돔은 높이가 54m나 된다고 합니다.nbsp▲ 54m 높이의 돔.nbsp오스만투르크의 정복으로 한때는 모스크가 되었고, 화려한 모자이크 성화들이 모두 회칠이 되어 가려졌고, 건물과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있는데, 이는 원래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진 제대를 모스크로 개조하면서 메카 방향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 가운데 제대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nbsp입구의 왼쪽 안에 있는 나선 통로를 올라가니 2층에 테라스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화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황제상, 성모자상 등으로 상당 부분 손상이 됐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습니다.nbsp▲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nbsp이 모자이크 화의 특징은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예수님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nbsp9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 파괴가 행해져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화도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9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nbsp성 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후에는 대부분 ‘블루 모스크’를 방문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이곳 터키 땅은 세계 최고의 신석기 문명의 발상지인 곳”이라며 ‘고고학 박물관’을 가자고 하셔서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반 관광객들과는 다른 역사에 대한 스님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고고학 박물관은 3개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고대 오리엔트 관에서는 초기 아나톨리아 문명의 유물과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관한 유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히타이트의 수도 핫투샤에서 출토된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최근에도 몇 가지 조약들의 문항 작성에 많은 참고가 되는 유물이라고 합니다.nbsp▲ 히타이트와 이집트 간의 평화조약을 기록한 타블렛, Kadesh Treatynbsp고고학 관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상, 묘비, 석관 등 광대한 수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이 인상적이었는데, 안내하시는 유혜숙 보살님이 “자신의 무덤을 이렇게 파헤쳐 전시해 놓은 걸 알면 마음이 어떨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관을 이렇게 화려하게 해 놓으니 파헤쳐 지는 것”이라며 “다 자기들이 지은 과보로 생긴 일” 이라며 권력자들의 사치에 대해 일갈을 해주셨습니다.nbsp도자기 관에서는 12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셀주크, 오스만 투르크의 도자기가 연대순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nbsp강연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지막으로 이스탄불 시내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갈라탑으로 향했습니다.nbsp▲ 갈라타 탑1348년에 지어진 이 탑은 제노바인들이 거주하던 요새라고 합니다. 수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19세기 중반 제노바의 성벽을 모두 철거할 때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사방이 탁 트인 발코니에 서니 시원한 전망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저 멀리 성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도 보였습니다.nbsp▲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보스포루스 해협▲ 저 멀리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는 구시가지가 보입니다.nbsp이스탄불의 조망을 보고 내려와, 거리를 달리는 전차로 유명한 이스틱클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오늘의 강연장이 나왔습니다. 오늘 강연은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라는 수도원에서 열렸습니다.nbsp▲ 오늘 강연장인 Convento Santa Maria Draperis 수도원. 이스탄불의 메인 스트리트인 이스틱클랄 거리에 있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 장소는 주 이스탄불 한인공동체의 도미니코 신부님께서 섭외해 주셨는데, 신부님께서는 지난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오늘 강연에는 참석하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께서는 사전에 한인 분들에게 많은 홍보를 해주셔서 오늘 강연에는 한인 성당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nbsp수도원에 도착하니 수도원장님이신 루벤 신부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이 직접 수도원 전체를 안내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예배당에서 정성껏 기도를 한 후 루벤 원장님의 안내를 받아 수도원을 둘러보셨습니다. 루벤 원장님은 종교를 뛰어넘어 대중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스님의 활동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강연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신 루벤 수도원장님께 The Freedom 이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nbsp▲ 스님을 정성껏 맞이해준 마르셀로 신부님과 루벤 수도원장님 nbsp오늘 이스탄불 강연은 총 10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강연준비팀에서는 50명 정도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장소를 좁은 공간을 빌렸는데, 100명이 넘게 오는 바람에 앉을 의자가 부족해 앞부분 무대 쪽에 쪼그려 앉거나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참석인원을 예상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을 묻는 분, 뜻대로 안될 때 좌절감이 드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종교가 카톨릭인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어 갈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는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분, 이곳 이스탄불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외로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분,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는데 어떻게 어머니와 화해를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어머니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난 뒤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이스탄불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후회 없이 살았습니다. 딱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어머니가 사업으로 힘드실 때 상처 되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께 어떤 분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 분을 믿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다시는 엄마를 보지 않겠다” 고 막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상처가 분명히 있으실 텐데... 그 상처를 회복시켜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머니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괜히 어머니 핑계를 댑니까? 자기라는 존재는 완벽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런 미숙한 행위를 한 자기를 지금 자기가 용서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는 다 잘났는데 그것 하나만 인생의 오점이 생긴 겁니다. 어머니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nbsp질문자 스스로가 이런 오점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무오류성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교의 무오류성, 교황의 무오류성, 공산당의 무오류성, 수령님의 무오류성, 이것이 모든 세상의 악을 만드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질문자도 부족한 존재이니까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런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럽니까. 질문자는 엄마가 자기 말 안 들으면 성질이 나서 “엄마 안 본다” 하는 수준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에요.nbsp그러니까 앞으로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항상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해 보세요. 질문자의 성질은 앞으로 결혼을 해서도 내 마음에 안들면 남편한테 “너하고 다시는 안 산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나중에 아이도 말 안 들으면 “모자 관계를 끊자” 이렇게 말할 성질이고, 회사 다니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사표를 확 던지면서 “다시는 안보겠다” 이럴 수 있는 성질입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독한 말을 했는데 누구한테 못하겠어요?nbsp그러니까 ‘아, 나한테도 이런 미숙함이 있구나’ 이것을 내가 발견한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내가 알게 된 것입니다. 부족함을 알게 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가 다 내 부족함을 아는데 나만 그 부족함을 모르고 있으면 얼마나 웃음거리입니까? 아직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족함을 잘 눈치 채지 못하는데 나는 이것을 미리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착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아니야, 나도 독한 구석이 있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성질 좋다고 해도 ‘아니야, 나는 성질 안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내 성질대로 계속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겠구나. 어머니 한 분으로 족하다’ 이렇게 학습비라고 생각하셔야 돼요.nbsp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했으니까 부작용이 적지, 남한테 그렇게 했으면 부작용이 아주 많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나한테 이런 부족함이 있구나’, ‘내가 성질이 받칠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유의를 해야겠구나’, ‘화가 날 때는 호흡을 한 번 더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자’, ‘절대로 극단적인 단정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nbsp그래서 엄마한테 절하면서 “엄마, 감사합니다. 저의 이런 부족한 점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면 자기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의 상처를 붙들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무오류성에 흠집이 생겨서 자기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하얗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흙탕물이 한 방물만 튀겨도 옷 버렸다 이렇게 되는데, 검은 옷을 입고 가면 열 방울을 떨어뜨려도 표시가 별로 안 납니다. 그것처럼 너무 깨끗한 척 하면 세상 살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nbsp벌써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다” 이런 얘기를 할 정도면 얌전하게 생겼어도 질문자는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부족하구나’ 자각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착실해도 속으로는 ‘부족하구나’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견하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 이러지도 말고, 또 ‘내가 잘못했다’ 이러지도 말고, 그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내 속에 있는 극단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께 “앞으로 화를 자초할 것을 미리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세요.nbsp어머니에게 “어머니 그 때 제가 막말을 해서 미안해요” 말하고, 어머니가 ”괜찮다” 그러면 ”어머니, 그때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막말이 나왔는데, 저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며 지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세요.nbsp어머니가 “그래, 너가 그래서 엄마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딸이 좋아졌다니까 엄마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엄마, 죽을 죄를 지었어” 자꾸 이러면 오히려 안 풀려요. 딸이 자꾸 잘못했다고 하면 오히려 엄마는 자신의 속심을 안 내어놓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 덕분에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엄마가 “아이고, 내가 너를 낳았지만 너 진짜 독하더라. 어째 내 자식이 저렇게 독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속심을 내어놓게 됩니다. 속심을 내어놓는 것이 엄마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입니다. 엄마가 “괜찮다, 괜찮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nbsp nbsp nbsp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냐? 나는 다 잊었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 엄마가 그 때 상처가 안 되었구나’ 알 수 있어요. 만약 엄마가 상처가 되었다면 “미안해” 그러지 말고 대화를 걸면, 엄마는 “내가 상처를 입었지만, 너가 좋아졌다니까 엄마는 괜찮다” 그럽니다. 부모란 그렇습니다. 질문자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nbsp그러니 엄마의 상처는 질문자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그런 말을 했다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의 인생입니다. 엄마는 자식을 감싸 안고 살아야 하니까 엄마는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꽁 하고 있지 말고 ‘내 결벽증에 내가 지금 못 견뎌 하는 구나’ 이렇게 자기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이 이렇게 안 꼬집어 줘도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nbsp모든 상처는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남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화가 나서 “주여,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버리세요” 했다면, 예수님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가 없지요. 그분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자기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내 상처를 먼저 치유해야 우리는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고, 타인의 상처를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엄마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으면 좋겠습니다.”nbsp질문한 여성분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엄마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구나 알게 되어 개운한 느낌입니다” 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nbsp오늘 강연은 무려 3시간 동안 열기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삶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와 같다고 생각하면 사는 것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았네’ 한 번씩만 외쳐 보세요. 살았다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세요.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현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호흡관을 하는 이유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 늘 행복해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자식이 있어도 행복한 것이고, 이혼을 해도 결혼 한 번 더 할 수 있으니까 행복한 것이고, 신체 장애라도 살아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며 불행한 이유들을 자기가 만들어서 확고부동하게 움켜쥐고 있어요. 그것을 놓아버리세요. 나이가 들면 들어서 좋고, 젊으면 젊어서 좋고, 혼자라면 혼자여서 좋고, 결혼했으면 결혼해서 좋고, 터키에 살면 터키에 살아서 좋고, 한국에 가면 한국에 가서 좋고,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삶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장사를 하면 조금 더 나아져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김연옥 보살님이 주축이 되어 담당해 주셨습니다. 93년 모스크바에 유학을 오셨다가 터키인 남편을 만나서 2004년부터 이곳 이스탄불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남편과 살면서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가족 모두가 나와서 함께 봉사를 했습니다.nbsp▲ 오늘 강연 담당을 맡아주신 김연옥님 가족nbsp그리고 윤혜숙님은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안내를 명품 가이드 수준으로 해주시고, 식사와 숙소도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신중애님은 남편인 에르한씨와 함께 공항 마중을 나오셔서 운전도 해주시고, 스님 일행이 시내로 이동할 때와 돌아올 때 하루 종일 운전 지원과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준비도 함께 해주셨고요.nbsp이 외에도 파카유로 온형일 이사님이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을 맞이하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보시해 주셨고, 한인회 회장님께서는 스님을 환영하는 꽃바구니를 보내주셨습니다.nbsp또 오늘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단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도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오늘 숙소인 윤혜숙님이 운영하는 ‘다온’ 민박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밤10시반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과 스텝진 모두 강연을 준비하느라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는데, 보살님께서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감사히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nbsp내일은 오전에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갑니다. 아테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nbsp

2014.09.18. 41,675 읽음 댓글 43개

2014.9.16 세계 100회 강연(22) 뒤셀도르프

▲ 뒤셀도르프 즉문즉설 강연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어제는 밤12시에 프랑스 파리를 출발하여 밤새 차를 타고 새벽5시30분에 독일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차를 타고 오느라 휴식을 취하지 못해 6시부터 스텝진 모두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9시에 최말순 보살님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10시에 아헨을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12시에 뒤셀도르프의 박삼순 보살님 집에 도착해 보살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주신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독일정토회 회원 분들.nbsp스님께서는 연일 계속된 강행군으로 목이 많이 편찮으시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도착하시자마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오후 1시부터는 독일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열렸습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푸랑크푸르트, 베를린, 뒤셀도르프 3곳에서 정토법회가 열리고 있고, 뮌헨, 함부르크 2곳에서 열린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독일정토회인데, 이제는 독일정토회도 회원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총회를 통해 이사를 뽑고, 선출된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뽑고, 1년 한번 회계 감사도 하고, 이사회의 회의 결과도 회원들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갖춘 법인을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총회를 소집해 이와 같은 내용들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 총회 모습. nbsp먼저 총회 구성원 28명을 확정하고, 이사회의 이사로 송임덕 보살님을 대표로하는 임원 7명을 선출했습니다. 이사장으로 법륜스님을, 행정업무를 보는 총무로 이희정 보살님을, 회계 담당자로 김선희 보살님을 선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법회 홍보를 위한 신문 광고료 지불 여부, 인도성지순례 참가자 모집 방법 등 몇 가지 안건들을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nbspnbsp▲ 독일정토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nbsp정토회의 1차 만일결사는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2차 만일결사는 해외활동이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해외 정토회의 사업 내용과 회계가 항상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총회를 마치고 잠깐 시간을 내어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상호 거사님은 1965년 33살의 젊은 나이에 광부로 독일에 오셨습니다. 독일 교민의 역사에서 가장 초창기에 오신 분입니다. 최근에는 ‘독일 광부 30년사’를 직접 책으로 집필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거사님의 사모님도 남편을 따라 1966년에 간호사로 오셨는데, 두 분은 이곳 독일에서 무려 49년을 살아오신 셈입니다. 거사님께 그동안의 독일에서 살아온 삶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해 주십니다.nbsp▲ 독일 교민 역사의 산 증인이신 이상호 거사님과 박삼순 보살님 부부.nbsp“사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삶에 있어서 부딪치는 어려움은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한국에서도 똑같은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독일 사회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도 크지 않았습니다. 한국처럼 광부라 하면 천한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광산에서, 제철공장에서 일하면서 보람되게 잘 지냈습니다. 다만 이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몸은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nbsp낯선 나라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냐?”는 질문에 그냥 웃기만 하시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며 마음 한켠이 숙연해졌습니다.nbsp오후 4시에는 스님께서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셔서 원래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북유럽에서 강연을 하는 동안 마이크 시설 없이 휴대용 스피커로 강연을 하셨는데, 목을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편도선이 붓고 목에서 피가 나오고 온몸에 근육통이 있으셔서, 배길야 보살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 근교에 있는 박영옥 선생님의 개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 병원 진료를 해주신 박영옥 선생님nbsp박영옥 선생님은 “오늘도 강연이 있으시냐?” 며 스님의 계속된 강행군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항생제 처방을 받고, 인근 약국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드시고 곧장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Freizeitstatte Garath 라고 불리우는 문화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총 120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이 열린 Freizeitstatte Garathnbsp총 6명이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부모 형제들에게 협박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친오빠를 미워하고 증오해서 고민인 분, 불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 50년 전에 노동자로 독일에 왔지만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성 때문인지 압축 성장으로 인한 것인지 스님의 견해를 묻는 분,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더 의젓해지겠지 기대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니 달라진 것은 없고 좌절이 된다는 분, 결혼한지 5년이 되었지만 아내와 종교가 달라 지금까지 고민이라는 분,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참 좋은데 회사에 출근하면 10번 중에 1번 꼭 걸려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분 등 각각이 질문에 스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아내와 종교가 달라 갈등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고요. 아내는 어렸을 때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라서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학교를 다녔다면 아내는 불교학교를 다녔습니다. 결혼할 때는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라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괜찮겠지 했는데, 제 가족들도 모두 기독교여서 아내가 혼자 외롭게 떠다니는 섬처럼 되고 있어요. 저는 종교를 바꾸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분위기가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으로 압박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말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종교를 지키면 된다고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아내가 종교를 바꿔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결혼 한지 5년이 되었지만 갈등은 늘 제자리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nbsp“아이들이 있어요?”nbsp“네, 있습니다.”nbsp“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문제는 평등합니다. 이 문제를 갖고 각각 고집해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제도가 아이는 주로 엄마 품에 많이 있게 되지요. 엄마라는 말은 ‘기룬 자’라는 뜻이에요. 주로 여자가 아이를 기루니까 주로 여자가 엄마가 되는데, 만약에 아빠가 아이를 기루면 아빠가 엄마가 됩니다.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는데, 정신적으로는 품에 안아서 기룬 자를 80 이상 닮습니다. 엄마의 심리적 프로그램을 아이가 다운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하려면 내가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편안하고 심리가 좋아야 아이도 좋아집니다.nbsp시어머니가 손자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며느리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아빠가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아기 엄마’인 아내에게 잘해주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입장에서 아내에게 잘해주라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에서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성인끼리는 둘이서 싸우든 말든 자기들 문제인데, 아기가 있을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nbsp종교적인 문제로 아기 엄마에게 갈등이 있으면 부부 지간에는 괜찮지만 아기에게는 나쁘다는 것을 질문자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아기가 세 살 때까지는 100 영향을 줍니다. 유치원 때는 70, 초등학교까지는 50, 사춘기 때는 30 정도 영향을 주고, 성인이 되면 거의 영향을 안 줍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아기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합니다. 종교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면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좋냐 기독교가 좋냐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nbsp그렇다고 가족들에게 “그러지 마라” 자꾸 그러면 질문자가 가족들과 또 갈등이 생기거든요. 특히 기독교는 가족들을 전도하지 못하면 교회에서 체면이 안섭니다. “너 가족도 전도하지 못하니?” 이렇게 되기 때문에. 권사나 집사가 되려면 가족을 전도해야 올라갈 수 있거든요. 기독교 집안에 시집을 왔기 때문에 가족들이 그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내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는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은 질문자만이라도 항상 아내에게 “아이고 여보, 종교 문제 때문에 힘들었지? 괜찮아” 이렇게 위로해 주고 오히려 자기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nbspnbsp남편이 좋으면 남편의 종교도 좋게 보이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 갖고 시비를 못하고 자기 정체성으로 종교를 지키려고 합니다. ‘기독교로 바꾸는 것은 내가 남편에게 굴복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더 불교를 움켜쥐게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라는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종교로 건드리면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질문자가 아내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하더라도 종교로 접근하면 절대로 승산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나쁜 영향을 주고요.nbsp오히려 질문자가 아내에게 잘해주고 최선을 다해주고 아내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질문자가 수행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신뢰가 되고 좋아지면 종교는 부차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때는 가만히 놓아두어도 아내가 교회로 따라오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면 부정적인 것은 다 상쇄돼요.nbsp아이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고 싶으면, 엄마 아빠가 다투는데 아이들이 듣기에 엄마가 더 합리적이다 싶으면 아이들이 엄마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엄마가 좀 문제고 아빠가 더 낫다 싶으면 아빠 쪽 종교를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를 믿어라 하는 방식의 선교는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nbsp첫째,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를 잘 보살펴주어야 하고, 둘째, 아내를 장기적으로 기독교로 오게 하기 위해서도 질문자가 아내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고, 셋째, 자녀들이 기독교로 오도록 하는 데에도 질문자의 삶이 얼마나 사랑으로 바뀌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로 강제로 오게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아요. 시어머니가 아무리 절에 열심히 다녀도 집안에서는 며느리한테 고지식하게 대하고 자기 고집이 세서 며느리한테 신뢰를 못 얻으면 며느리는 절대로 불교 신앙을 안 가집니다. 형식적으로만 따라가지 교회로 갈 확률이 높아요. 시어머니가 싫으니까 시어머니가 믿는 종교도 싫어지는 것입니다.nbsp그래서 질문자는 종교는 잊어버리고 우선 ‘아이의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먼저 되세요. 외로움 속에서 남편 하나 믿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라도 방패막이가 딱 되어 주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오히려 위로해주세요. 그렇게 해줘야 아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nbsp질문한 남성분은 활짝 웃으며 “예, 감사합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2시간 20분 동안 쉬지 않고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하시면서 함께 행복한 삶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nbsp“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인생은 대성공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구걸하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됐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해 걱정들도 많이 하시는데, 대한민국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지금까지 잘 굴러왔고 앞으로도 잘 굴러갈 거예요. 그런 긍정 위에서 그래도 더 잘 되려면 ‘내가 힘을 좀 보태야겠다’ 이렇게 해서 긍정적인 측면에서 비판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스님, 건강하세요”, “100회 강연, 무사히 잘 마치세요” 하며 인사를 건냈습니다.nbsp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은 최순진 총무님을 중심으로 뒤셀도르프 정토법회 회원들의 자원봉사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최순진 총무님의 아들 동찬군도 함께 자원봉사를 해서 모자 지간의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 뒈쉘도르프 정토법회 최순진 총무님과 아들 동찬군.nbsp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 오늘 뒤셀도르프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봉사자분들.nbsp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봉사자들과의 소감나누기는 함께 하지 못하시고 곧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독일 쾰른 공항에서 새벽 2시에 비행기를 타고 밤새 이동해 터키 이스탄불에는 아침 6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터키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17. 46,288 읽음 댓글 58개

2014.9.15 세계 100회 강연(21) 프랑스 파리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21번째 강연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역사적인 건축물, 장엄한 갤러리, 풍부한 문화재들로 가득한 도시 ‘파리’를 향해 달려갑니다.nbsp독일 아헨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519km를 달려가야 해서 오늘은 출발을 서둘렀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에서 출발해 6시30분 무렵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유명한 룩셈부르크를 경유하여 6시간30분 만인 오전 11시에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어제 브뤼셀에서 신인숙 보살님이 싸주신 남은 김밥으로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 도시락으로 싸주셔서, 휴게소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습니다.nbsp센느강을 가로 질러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17세기 중반 루이 14세가 아버지의 사냥 별장을 20년 간 공들여 궁전으로 증축해 지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하고 웅장한 왕궁입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1682년 완공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 측근들이 학살당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파리로 끌려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던 1789년까지 궁정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입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장인들을 고용해 역사상 가장 사치스런 왕궁을 건설했습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궁전 내부 관람은 오늘이 휴간일이라 들어가 보지 못하고, 궁전 앞의 정원을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정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대부분 전기자동차를 이용해서 다니는데, 스님께서 “운동 삼아 걷자” 고 하셔서 스님 일행은 걸으면서 잠시나마 평온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원의 규모를 보니 건물은 따라 지을 수 있어도 정원만큼은 세계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가 없겠구나 싶었습니다.nbsp▲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베르사유 궁전을 나와 파리의 상징물인 에펠탑으로 향했습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당시 에펠탑은 파리의 예술 및 문화계 엘리트들의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쳤고, 일부 파리 시민들에게 ‘금속 아스파라거스’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면서 1909년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선전신이라는 최신식 과학에 필요한 안테나 전송에 이상적인 플랫폼으로 증명되어 간신히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에펠탑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고 하는 사이요 궁 앞에 올라가니 전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 파리 에펠탑다음은 에펠탑에 필적할 만한 파리의 상징물인 ‘개선문’을 보았습니다. 1805년 나폴레옹 황제가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36년에 제작한 이 개선문은 높이 50m의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아치에서 퍼져 나가는 12개의 대로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아치 아래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130만 명의 프랑스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무명 용사의 묘가 있으며, 매일 630pm이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차에서 내려 잠깐 둘러본 후, 전쟁으로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천도하기 위해 잠시 기도해 보았습니다.▲ 파리의 개선문다음은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몽마르뜨 언덕 위에는 1876년에 짓기 시작해 1919년에야 축성된 사크레 쾨르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nbsp▲ 사크레 쾨르 대성당nbsp대성당 앞 계단에서 보니 파리 시내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nbsp▲ 몽마르뜨 언덕 위에서nbsp마침 대성당 앞에서 오늘 스님 강연을 듣기 위해 파리로 왔다는 여성 두 명을 만났습니다. 한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고, 한분은 함께 오신 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스님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좋아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를 건네니, 강연장에서 전달하려고 미리 써왔다는 카드를 건냈습니다. 휠체어를 타신 분은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 분은 저녁 강의 때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몽마르뜨 언덕에서 만난 스님 강연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는 분어느덧 시간이 3시가 다 되어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적지 관람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수십 개의 전시실과 계단이 3개의 전시관과 4개 층에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떤 순서로 어떻게 관람해야 전체를 다 볼 수 있을지 한 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대 오리엔트, 이집트, 그리스, 로마 순서로 조각, 회화 등의 작품들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살펴보셨습니다.nbsp▲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원칙으로 유명한 법전.nbsp▲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비너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묘사.nbsp▲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초상화. 황금비율인 11.618의 비율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어 균형잡힌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nbsp오후 5시에는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정말 초스피드로 전체를 둘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2층까지만 관람을 하셨고 3층은 둘러보지 못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집트 유물을 보시면서 “이집트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 유물을 본다면 마음이 어떨까?” 하시기도 했는데, 관람을 마치고 저녁 강연 중에 짧게 소회를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nbsp“서구의 이런 물질적 풍요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엄청난 착취 위에 이뤄진 것이에요. 사람들은 웅장한 건물 앞에서 ‘우와’ 탄성을 지르지만, 역사를 알고 있는 저로서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루브르 박물관nbsp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5시에 마치고 5시3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릴 MAS Paris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흰색 브라우스에 주황색 어깨띠를 깔끔하게 맞춰 입은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nbsp▲ 오늘 강연장인 MAS Parisnbsp파리 강연은 봉사자들이 튼튼하게 역할분담이 잘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사전에 봉사자 모임을 통해 ‘봉사자의 자세’에 대한 스님 법문도 함께 보고 계획도 함께 세우는 준비과정이 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은 26명의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로비팀, 외부안내팀, 강당내부팀 3팀으로 나뉘어져 일사 분란한 진행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nbsp오후6시30분, 총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 무대에 나타나시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하루종일 걸음을 많이 걸었더니 다리에 무리가 간 것 같다” 하시며 청중들께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 앉아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총 10명이 스님께 다양한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저는 불자이고 아버지도 불자로 돌아가셨는데 동생들이 다 교회를 다니고 어머니까지 전도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불편해졌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묻는 분, 최근 세월호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아파하고 있는데 기도만 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지 묻는 분,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 스님 강연을 듣고 불살생 계율을 지켜보고자 육식을 안 하고 있는데 주위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아 고민인 분, 프랑스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는데 스님 말씀 중에 “뜨거우면 손을 놓아라”는 법문의 의미가 궁금한 분, 한국 친구들은 파리에 사는걸 부러워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 분, 4대강 사업을 한 이명박 정부를 욕하면서 자신은 농약 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는 게 모순처럼 느껴진다는 분,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는데 강물처럼 살아야 할지 바다처럼 살아야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지 묻는 분, 미술을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해서 속박 받는 생활 패턴에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배려에 대해 물었던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살면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공감이 안 가도 그 사람의 기분에 맞춰서 ‘그랬구나’ 계속 공감해주면, 상대는 좋아하는데 남탓하는 습관이라든지 늦는 습관이라든지 이런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합리화하는 문제가 불거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정말 이 사람을 배려했는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만약 공감해주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정말 상처를 받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공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더 나쁜 길로 간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한 배려는 무엇일까요?”nbsp“진정한 배려는 없습니다. 들어도 줘보고 비판도 해보고 이래저래 해보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경험상 이 친구는 약간 비판해주는 것이 긍정적 효과가 나는지, 이 친구는 비판해주면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더 심해져서 부정적 효과가 생기는지, 거기에 맞춰서 해주면 됩니다. 스님도 여러분이 질문하면 어떤 질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용해주기도 하고, 어떤 질문은 눈에 눈물이 나도록 야단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다 효과가 있느냐? 아니에요. 부작용도 생기고 그럽니다. 그러면 욕 좀 얻어먹으면 되는 겁니다.nbsp그래서 저는 강의하고 돈을 안 받습니다. 돈 받고 하면 돈 때문에 내 할 말도 못하고 효과가 반감됩니다. 돈을 안 받고 하면 효과가 안 난 것은 그만이고, 효과가 난 것은 ‘와, 좋더라’ 하면서 주위에 선전도 많이 해주고 그러거든요. 돈만 조금 양보하면 됩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래서 상담하는 사람은 손님 떨어질까 겁을 내서 더 조심하니까 상담이 잘 안 되지요. 저는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달래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야단도 칩니다. 그러면 다 좋아졌느냐? 아니에요. 상처 입은 사람도 있는데, 공짜로 해서 좋아진 사람은 선전을 많이 하고, 공짜로 해서 효과가 없는 사람은 말이 없고, 그래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돈을 받고 하면 어떠냐? 효과가 난 사람은 별로 말이 없고, 효과가 안 난 사람은 말이 많고, 그래서 악명이 높아지는 겁니다.친구 지간에 관계는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는 겁니다.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는 게 딱 효과적인데, 옆 사람한테 똑같이 하면 부작용이 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하는 게 효과적인데, 다음번에 그렇게 하면 부작용이 나올 때가 있죠. 그것을 적절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수도 없이 실험을 해보면서 확률을 높여가는 겁니다. ‘100 정확하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무오류성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nbsp그러나 오랜 경험이 쌓이면 어떠냐? 날카롭게 꼬집어 줘야 할 경우, 자비롭게 쓰다듬어 주어야 할 경우,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확률이 처음에는 절반 타작도 안 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도움이 될 확률이 40에서 60, 70, 90로 점점 올라갑니다. 딱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도 시기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정할 수가 없습니다.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이 없듯이, 사람 입맛 따라 다르고, 음식 따라 다르고, 음식도 짠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지만 싱거운 것이 맛있는 사람도 있고, 술안주로 먹을 때 다르고, 밥반찬으로 먹을 때 다르고, 그냥 먹을 때 다르고, 간 하나만 갖고도 수십 가지 방법이 유동적인데, 간을 어떻게 맞춰야 된다 이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nbsp질문자는 그 친구에 대해서 실험을 계속 해보세요. 그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 이래도 해보고 저래도 해보고 꾸준히 해보세요. 한번 부작용 났다고 안 하지 말고요. 시기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끝없는 실험을 통해서 효과가 높은 쪽으로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약도 100 낫는 약은 없어요. 치료율을 높여주는 약이지요.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된 듯 활짝 웃으며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2시간 10분 동안의 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청중들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를 기원해 주셨습니다.nbsp“인생을 너무 고귀하게 생각하면 저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생은 그냥 풀 한포기가 나서 사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삶이 훨씬 더 활기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청중들 한분 한분과 인사를 나눈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nbsp그리고 26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강연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봉사자 중에서 어떤 분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으로 힘들게 보내는 날이 많은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며 활짝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강연을 들은 소감을 나눠주었고, 어떤 분은 “해외에 살면서 힘들 때마다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들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오늘 봉사를 하면서 스님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다” 며 봉사를 통해 느낀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 이렇게 격려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봉사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자유로 나아가는 징표입니다. 꼭 정토회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습관을 바꾸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의식이 무의식을 컨트롤하려면 꾸준히 해서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리고 충격요법으로 깨달음의장 같은 4박5일 수련을 하셔야 합니다. 유튜브로 법문만 들으면 알음알이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진을 꼭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nbsp오늘 강연은 평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파리에 오신 박지현 보살님이 총괄을 하여 모든 과정이 원만히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파리에서는 매월 1회 열린법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고 합니다. 정토불교대학도 개설하여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왕성한 활동이 이뤄지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아마 그런 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 강연도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잘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그리고, 강연 시작 전에 고영자 보살님이 나물 비빔밥을 스님의 저녁 도식락으로 싸오셨습니다. 그리고 강연팀에서 스텝진들과 봉사자들을 위해 바게뜨 샐러드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히 먹었습니다. nbsp▲ 오늘 강연 총괄을 맡으신 박지현 보살님과 저녁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고영자 보살님.그리고 강창진 거사님이 스님 일행을 위해 오늘 파리 시내 유적지 안내를 준비하셨는데, 안내를 받으며 여유 있게 둘러볼 시간이 나지 않아 거사님의 정성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거사님이 강당 임대료 중 300유로를 보시하시고 이사빈 한국불란서교류협회 회장님이 도움을 주셔서 강당 임대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앙굴렘에 사시는 이금자 보살님은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 연락을 주셔서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한위클리에 스님의 강연 광고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영애 보살님도 후원을 해주셨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도움 주신 거사님과 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분들께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nbsp▲ 강당 임대하는 것을 도와주신 강창진 거사님nbsp모든 일정이 끝나고 스님 일행은 박지현 보살님 집으로 가서 두어시간 차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밤12시에 아헨의 김선희 법우님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아프셔서 차담 시간에도 쉬시고 밤새 오는 차량 안에서도 계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밤새 차를 타고 이동하면 새벽 6시 무렵에 아헨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22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nbsp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

2014.09.17. 39,181 읽음 댓글 4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