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 수행과 실천
  • 스님의하루

2014.9.5 세계 100회 강연(11) 독일 베를린

▲ 베를린 장벽 앞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한번째 강연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5시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인 회장님 댁에서 정성껏 차려준 아침을 감사히 먹고, 새벽6시에 차량에 탑승하여 독일 베를린을 항해 출발합니다.nbsp시원하게 뚫린 폴란드의 고속도로를 따라 5시간을 달려 11시쯤 베를린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nbsp저녁6시에 강연이여서 시간 여유가 있어 독일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 몇 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통일 전 냉전이 최고조로 달했던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입니다. 동서 벨를린 국경 검문소는 체크포인트 알파, 체크포인트 브라보, 체크포인트 찰리 3곳이 있었는데, 각각 프랑수군, 영국군, 미국군 통제 아래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미군이 관할하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입니다.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다시 설치된 이곳은 베를린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때 냉전의 중심이였고 금방이라도 불을 뽑을 것 같은 미국과 소련의 탱크가 마주했다는 장소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군복을 입고 검문소를 지키는 흉내를 내고 있는 군인 2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냉전의 상징적 장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nbsp다음은 베를린 장벽 추모관으로 갔습니다. 장벽이 있던 자리와 그 부근을 보전하여 분단의 비극을 후대에도 전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곳입니다. 장벽의 모습을 유지한 것이 있는가 하면 철골만 남은 것도 보였습니다. 장벽을 넘다가 사살된 이들의 사진도 간간히 보여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장벽 주위를 빙 둘러보신 후 조용히 장벽 앞에 서서 간절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그리고, 희망편지 카카오스토리에 전해줄 스님의 인사말을 동영상으로 전하기 위해 촬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베를린 장벽 앞에서 전하는 말씀입니다.“잘 지내시죠? 저는 세계 100회 강연을 출발해서 이제 11일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독일 베를린에서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바르샤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베를린에 도착해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이곳 베를린 장벽이 있는 곳입니다.nbsp독일은 이미 20년 전에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 독일을 이루고 유럽 연합의 중심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단 70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 간의 평화와 교류 협력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장벽 앞에 서서 우리도 하루 속히 통일의 꿈을 키워나가길 기원해 봅니다.nbsp이 장벽이 무너지듯이 우리의 휴전선도 무너지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서 통일 한국의 완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이뤄서 21세기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여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nbsp여러분께 통일을 염원하며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염원합시다.”다음은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유대인 대학살을 잊지 않고 그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워진 공간으로, 다양한 높이의 2711개의 시멘트 기둥이 둘쭉날쭉 세워져 있어 마치 희생된 유대인들의 묘지를 연상하게 해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조용히 이곳을 둘러보시고 “반성을 하게 되면 반성을 하는 쪽한테 이익이 된다” 하시며 독일이 비록 전범 국가이지만 자신들의 만행을 반성하고 어떻게 피해국가들과 관계를 회복시켜 갔는지 상기 시켜 주셨습니다. 또 일본이 아직도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이 부족함도 지적하셨습니다. nbsp▲ 유대인 학살 기억 조형물다음은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 앞 공원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어제밤 전기 밥솥으로 해놓은 따뜻한 밥과 김치 등 몇 가지 반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nbsp▲ 국회의사당 앞 공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식사 후 오후에는 통일 독일의 상징적인 건물 국회의사당과 브라덴부르크 성문, 그리고 1953년 동베를린 시민들이 “우리는 같은 민족” 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궐기했던 역사적인 현장인 6월17일의 거리와 전승 기념탑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이번 가을 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한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촬영했고, 브란덴부르크 성문 앞에서는 경전반 입학생들을 위한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햇빛이 너무 강해서 촬영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서, 아마 모레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넘어가서 다시 촬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nbsp▲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의 옥상은 유리로 된 돔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방문객들이 이곳에 올라 유리 바닥 아래로 국회의원들이 회의하는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nbsp▲ 브란덴부르크 성문. nbsp1788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령으로 지어졌고, 문 위에는 사두마차를 끄는 승리의 여신상이 그 위엄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광화문 광장처럼 독일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구심점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nbsp오후4시에는 베를린정토회 장서희 보살님 댁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된장국과 반찬들을 먹고 오늘 강연이 열릴 베를린 자유대학 강당으로 향했습니다.nbsp강연은 오후6시에 시작하였습니다. 총 180명이 참석하여 지금까지 진행된 유럽 강연 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습니다. 베를린정토회 회원 분들이 곳곳에서 역할분담하여 매끄럽게 행사가 잘 진행되었습니다.nbsp총 7명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유학을 왔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계속 받고 싶은데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민인 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유학을 왔는데 지금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잘 서지 않아 고민인 분, 하루에도 수차례 마음이 들쑥날쑥 하는데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방법을 묻는 분, 오늘 강연장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그 의미를 스님께 묻는 분, 딸아이와 불편한 관계 때문에 힘들다는 분 등 많은 질문들에 대해 스님께서는 쉽고 편안하게 질문자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첫 번째로 나왔던 질문인 독일인이 스님께 한 질문과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신 후 성인이 된 지금 다시 어머니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독일인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입니다. 통역은 질문한 독일인의 부인인 한국 여성분이 즉석에서 해주면서 문답이 진행되었습니다.nbsp“안녕하세요. 저희는 하노버에서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열세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셨어요. 그 이후로 어머니가 연락을 두절하셔서 지금 20년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됩니다. 지금 어머니가 어디 사시는지도 알고 있고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것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찾아서 만난다고 해도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어머니와 관계를 엮어 나가야 할지 궁금합니다.”nbsp“첫째, 이미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설령 부모님이 계셔서 나를 키워주고 돌봐주고 했더라도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 헤어져서 지금 보고 싶고 아쉽고 하지만, 이미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nbsp부모님이 나를 낳고 키워주고 지금 다 살아계셔도 스무살이 넘어서 성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해요. 독립을 한다는 것은 관계를 끊고 지내도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스님들이 스무살이 넘어서 출가를 하게 되면 집안과 관계를 완전히 끊고 아예 만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효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가 스무살 이하라면 달라요. 그런데 질문자는 스무살이 넘었기 때문에 어릴 때 부모와 헤어졌던 안 헤어졌던 관계없이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합니다.nbsp둘째, 그런데도 어머니가 계속 보고 싶다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줄 일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잘 계시냐고 하면서 제가 어머니가 보고 싶으니까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청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는 보기 싫다” 하면 “어머니께 제가 인사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저를 낳아주시고 열 살까지 저를 키워주셨는데 제가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드렀습니다. 전화로라도 감사인사 드리겠습니다.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관계를 끝맺음하면 됩니다.그런데 어머니가 “그래 한번 보자” 하고 연락이 오면 만나면 됩니다. 만나서 아무 다른 얘기는 하지 말고, “어머니께서 저를 낳아주시고 열 살까지 잘 키워주셔서 지금 제가 성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도 못드려서 그래서 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하고 그 자리에서 절을 하면서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 됩니다. nbspnbsp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또 보자” 고 하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만나자고 요구하지는 마세요. 왜냐하면 어머니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자식인 내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질문한 독일인과 한국인 부부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밝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 강연은 3시간 동안 진행되어 스님께서 많은 이야기들을 애정 있게 들려주어 베를린 교민들 모두 감사해하고 기뻐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한 교민 분들과 인사를 나누신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마음나누기도 함께 하였습니다.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베를린정토회 회원 분들은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서 잘 쓰일 수 있어 즐거웠다” 며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nbsp내일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밤12시30분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가는 일정입니다. 강연장을 뒷정리하고 비행기에 실을 짐 정리를 간단히 한 후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못해 계속 어려움을 겼었으나, 스님께서 아이패드로 지도를 보시더니 가장 빠른 길을 바로 찾아내어 주셔서 무사히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지난 12일간 사용했던 렌트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출발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원고 교정을 보신 후 비행기에 탑승하셨습니다. 내일은 모스크바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4.09.08. 22,199 읽음 댓글 34개

2014.9.4 세계 100회 강연(10) 폴란드 바르샤바

▲ 폴란드 바르샤바, 문화과학궁전 앞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열 번째 강연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체코 프라하에서 하룻밤을 묶고 새벽5시에 폴란드 바르샤바로 출발합니다. 오늘은 700km를 달려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중 150km 이상을 국도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일찍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체코를 벗어나 폴란드 국경을 지나니 일직선의 고속도로가 계속 펼쳐졌습니다. 도로도 깔금하게 새로 잘 닦여져 있어서 덜컹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계속 달릴 수 있었습니다.nbsp오전10시30분 무렵, 휴게소에 내려 일찍 점심을 먹었습니다. 날씨도 화창하고, 새벽에 전기 밥솥으로 해놓은 따뜻한 밥과 김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또 작은 도시를 지나갈 때 스님께서 손수 빵집에 들러 빵을 사오셔서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nbsp▲ 이동 중 휴게소에서 먹는 점심 식사2차선 국도가 계속 막혀 오후3시가 다 되어서야 바르샤바 시내로 접어들 수 있었습니다. 고전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중심가에 자리 잡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곳곳에서 최신식 빌딩들이 건축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나치 군에 의해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전후 폐허 위에 재건한 도시라고 하니 높은 빌딩들 속에 보이지 않은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nbsp오후5시까지는 강연장에 도착해야 해서 유적지를 둘러볼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바르샤바의 상징적인 건물인 문화과학궁전과 민중봉기박물관 2곳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문화과학궁전은 1955년 전후 폐허 위에 가장 먼저 상징적으로 건축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도시 전체가 나치군에 의해 파괴되고 성한 건물이 없었는데, 구소련 연방이 폴란드 국민들에게 주는 선물 형식으로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nbsp▲ 문화과학궁전nbsp바르샤바의 역사적 아픔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민중봉기박물관을 찾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무참히 파괴되었던 바르샤바의 당시 상황을 3D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박물관을 모두 둘러보시고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이런 비극을 가져오게 하는 것” 이라 하시며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없어야 하고,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다” 며 짧게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바르샤바의 모습을 보여주는 민중봉기박물관nbsp오후 5시가 다 되어서 겨우 겨우 길을 찾아 폴란드 한국문화원에 도착했습니다. 문화원 앞에는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 회장님과 김현준 한국문화원장님이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문화원에서 준비해 준 저녁 도시락과 한인회 불자모임에서 준비한 떡을 감사히 먹고 곧바로 강연 준비를 하였습니다. 폴란드 한인회 불자모임에서 7명이 나오셨는데, 매월 1회 정기법회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할 때도 많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nbsp오후 6시30분에는 재 폴란드 한국대사님 부부가 강연장을 찾아오셔서 스님과 함께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특히 대사님의 사모님은 평소에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을 자주 듣는 열성펜이라 하시며 스님을 만나뵙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nbsp▲ 폴란드 대사님 부부nbsp대사님은 스님께서 매일 1개 도시를 이동하며 세계 100회 강연을 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하면서 스님의 건강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폴란드 교민들을 위해 행복을 나누어 주심에 무척 감사하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대사님 부부는 강연이 끝날 때까지 맨 앞자리에서 스님의 설법을 함께 경청하셨습니다.nbsp한국과 폴란드는 1989년에 수교해서 올해로 수교 25년째를 맞는데, 현재 폴란드에 거주하는 교민은 1800여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중 바르샤바에 500여명이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LG 공장이 있는 지방 도시를 비롯한 여러 곳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한국 대기업에서 나온 주재원 가족들이 절반을 이루고 있고, 그 외 대사관 공무원들과 개인사업자들, 유학생들이 거주해 있다고 합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교민들은 주로 식당업을 많이 하시는데 한류의 영향으로 한식과 일식이 호응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잠시 머물렀다 가는 주재원 가족들이 많다 보니 교민 사회의 전체적인 안정성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싶었습니다.nbsp▲ nbsp강연 시작 전 인사말을 해주시는 폴란드 대사님nbsp저녁7시부터 시작된 강연은 총 79명이 참석하여 빈자리 없이 꽉 찬 상태에서 활기차게 진행되었습니다.nbsp아이가 한국에서 일어난 윤일병 사건을 보고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기 싫어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결혼 10년 차인 가정 주부인데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일도 좀 하라고 해서 고민인 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남편과 성향이 맞지 않아 짜증이 자주 일어나서 고민인 분, 기독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는데 불교 신앙을 갖고 있는 아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연 희망이 있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특히 7살 아이가 번쩍 손을 들고 “빙하가 녹고 있어 지구 환경이 걱정돼요” 라고 질문에 대중들의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에게 왜 빙하가 녹고 있고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어떤 환경실천을 해야 하는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상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오늘은 그 중에서 폴란드에서 자란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 질문한 한 어머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폴란드 남편과 살고 있어요. 폴란드 식으로 아이들이 배우고 있어요. 한국의 문화에 대해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데, 한국말도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 어렸을 때 한국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좋을지, 나중에 대학 다니고 커서 관심을 가지게 할지, 그냥 놔두는 게 좋을지요?”nbsp“애국적인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아이가 폴란드어 밖에 모른다던지, 폴란드어와 영어 밖에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이 아이의 미래에 훨씬 활동 영역을 넓혀줄까요? 한국어까지 자유롭게 할 줄 아는 것이 이 아이의 미래에 선택의 폭을 넓혀줄까요?예전에는 미국에 있는 교민 2세들이 한국말을 거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30년 전에 교민 1세대가 미국에 갔을 때는 한국이 굉장히 가난했지 않습니까. 첫째는 1세대가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들 관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둘째는 한국에 태어나서 살던 부모도 미국이 좋다고 미국으로 왔는데 미국에 태어난 아이가 미국에서 살지 한국으로 갈 일은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한국말을 안 가르치고 한국 문화도 안 가르쳤습니다. nbsp그런데 지금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교민 아이들은 거의 다 한국말을 잘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그것은 미국에 사는 교민 아이들이 한국말까지 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의 직업 선택과 활동에 유리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한국말을 할 줄 앎으로 해서 삼성, 엘지, 현대 등 한국 기업에 취직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해졌습니다.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짐으로 해서 교민들의 문화가 바뀐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통일이 되면 더 크게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통일이 안 되어도 한국의 국가적 위상은 지금 세계 14위 정도인데, 아마 통일이 되면 10위권 안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되거든요. 그리고 군대에서 일어난 폭력이나 세월호 사고 등 여러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류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도 굉장히 많거든요.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습니다.nbsp그런 면에서 아빠는 폴란드를 이야기하고 엄마는 한국을 이야기하는 갈등 구조가 아니고, 오히려 어릴 때부터 폴란드인으로 살면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에 훨씬 유리합니다. 그리고 한국문화나 글을 배우게 할 때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엄마가 조금 더 지혜롭다면 자연스럽게 1,2년 만에 한 번씩 한국에 데려가서 한국 여행도 하고 한국 문화도 체험하게 하면 좋습니다. 본인이 관심을 가지면 한글학교도 다니게 하고, 폴란드에서 대학을 다니더라도 한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오게도 하고, 이것이 이 아이가 폴란드인으로 성장하는데도 훨씬 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nbsp대신 강요를 하면 안 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이하고 얘기할 때 한국말로 얘기하면 세 살 때까지는 각인 작용이 일어납니다. 또 어린이 때는 각인에 준할 만큼 기억이 오래 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엄마가 한국말을 씀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엄마가 몰라서 그렇게 안 하고 폴란드식으로 키웠다면, 그래도 엄마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의 무의식에는 한국의 까르마가 깔려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자연스럽게 접근하면 도움이 됩니다.nbsp그런데 나이 들어서 갑자기 접근하면 아이가 당연히 거부 반응을 일으키죠. 그래서 돈이 조금 들더라도 한국에 여행을 가서, 설악산도 구경하고, 경주도 다녀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도 보고, 이렇게 하면서 아이에게 한국에 대해 조금 호기심을 유발시키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도 엄마가 한국말을 쓰거나 한국 얘기를 하거나 해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호기심을 먼저 불러일으킨 후에, 본인이 스스로 한국말을 한번 배워볼까 할 수 있도록 자발성을 일으키는 것이 학습 효과가 높습니다. 그래서 동기유발을 자꾸 해주세요. 아이와 대화하면서 엄마가 지혜롭게 기회 제공을 해줘야 합니다.nbsp요즘 한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폴란드 사람들도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배우잖아요. 그런데 왜 엄마가 한국 사람인데 그런 기회를 제공 못할까요? 만약에 엄마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가 더 한국에 거부 반응이 있다면, 엄마에 대한 거부 반응 때문에 그래요. 엄마를 싫어하는 감정을 아이가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면 한국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만약에 그런 문제라면 엄마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nbsp그러니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여행을 한번 다녀오세요. 너무 한꺼번에 많이 가르칠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한국에서 좋아할 만한 역사 유적이나, 문화체험을 하게 하면서 아이에게 호기심을 유발시켜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시간될 때 아이를 여기 폴란드 한국문화원에 데리고 나와서 차도 마시고 놀고 하면 좋겠다 싶어요.”nbsp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도 밝게 웃었습니다. 외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루게 되면 아이 교육 문제가 늘 고민이 되기 쉬운데, 스님께서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셔서 참석한 교민들도 모두 공감하며 기뻐했습니다. nbsp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강연 준비를 위해 수고한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폴란드 대사님 부부도 끝까지 남으셔서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nbsp오늘 숙소는 권영관 한인회장님 댁입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 짐을 풀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한인회 회장님 부부는 스님을 극진히 모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데도 꼭 아침을 먹고 떠나시라고 밤을 세워 식사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nbsp▲ 권영관 폴란드 한인회장님 댁 가족들nbsp스님께서는 늦게까지 한국에서 메일로 보내 온 보고서와 원고들을 점검하시며 업무를 보시다가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은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한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베를린에서 계속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2014.09.06. 23,233 읽음 댓글 31개

2014.9.3. 세계 100회 강연(9) 체코 프라하

▲nbsp소련의 침략에 대한 저항하는 뜻으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하여 목숨을 끊은nbsp얀 팔라흐 학생의 추모비.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아홉 번째 강연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헝가리 주재원 가족인 이송혜 보살님 댁에서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렌트카에 몸을 싣고 먼길을 달립니다. 오늘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뒤로 하고 체코 국경을 넘어 프라하로 갑니다.nbsp도로 포장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덜컹거리는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려 오전11시쯤 프라하에 거의 다 와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도심에서 곧바로 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여서 점심식사를 휴게소에서 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최말순 보살님이 어젯밤 전기밥솥으로 준비한 밥에 현지 교민들이 주신 김치, 김, 명이 나물을 반찬으로 뚝딱 한그릇씩 하고 프라하 시내로 들어섰습니다.nbsp먼저 오늘 스님 일행이 묵을 숙소인 Euro Wings 호텔에 짐을 풀고, 유적지 방문을 위해 시내로 나왔습니다. Euro Wings 호텔은 현지 교민인 김형수 거사님이 운영해 오고 있는 곳입니다.nbsp▲ 프라하 강연을 준비하고, 유적지 안내를 해주신 교민 네 분. 왼쪽부터 김형수님, 박미영님, 고주영님, 백승구님. nbsp오늘 프라하 유적지 방문 일정은 현지 교민 분들의 정성스런 준비 덕분에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에서 여행 가이드업과 락 밴드 생활을 병행하며 살고 있는 백승구씨의 안내로 프라하의 핵심 유적지만 콕 짚어서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여행 위주의 설명이 아니라 역사적인 의미와 맥락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먼저 체코의 민족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시민회관에 들렀습니다. 체코는 400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는데, 1880년에 이르러 도서관 사서들이 주축이 되어 민족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은 역사서들이 슬라브족의 관점이 아닌 게르만족의 관점에서 채택되고 쓰여졌는데, 도서관 사서들이 역사자료를 새롭게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소설, 오페라 등이 만들어지면서 문화부흥운동이 일어나고, 그런 문화운동의 필요성으로 이 시민회관이 1912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체코 독립선언문이 맨 처음 낭독된 곳으로도 유명한 장소라고 합니다. nbspnbsp▲ 체코 민족문화운동의 부흥지인 시민회관 앞에서.nbsp쇼핑거리를 따라 주욱 걸어, 바츨라프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수백년 동안 체코인들은 합스부르크, 나치, 소련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장식한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길게 경사를 지며 이어진 광장의 중앙에는 성 바츨라프 동상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성 바츨라프 왕이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역사적인 활동이 많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nbsp▲ ‘프라하의 봄’으로 세계에 알려진 체코의 역사적인 광장. 바츨라프 광장.nbsp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독립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1938년 9월 뮌헨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나치 독일이 슈덴텐란트를 병합하게 되고 수많은 체코 지식인들과 8만명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1968년에는 공산당 서기장 두브체크가 ‘인본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후일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개혁정책들을 도입하면서 소련군 및 바르샤바 조약군들이 수많은 탱크를 몰고 프라하를 점령하게 됩니다. 1989년에는 고르바쵸프가 페레스트로이커 정책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9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체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11월17일 프라하에서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경찰들에게 폭력진압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이후 매일 같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11월 27일에는 총파업이 실시되면서 12월3일 공상당 정부와 정권 이양 협상을 벌여, 국민적 합의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릅니다. 이런 평화적 정권 이양을 역사는 ‘벨벳 혁명’이라 부르며 자유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의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체코인들은 인구 1천만명의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불굴의 정신으로 이어오고 있었습니다.nbsp그 역사적인 현장이 이곳 바츨라프 광장이었다고 상상하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지금 젊은 청년들은 아무렇지 않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지만, 오늘이 있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니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숙연해집니다.nbspnbsp바츨라프 광장을 뒤로하고 구시가 광장으로 갔습니다. 구시가 광장에는 시계탑이 유명했습니다. 매시 정각이 되면 천문 시계에서 12사도들의 모형과 종을 울리는 해골 모형이 펼치는 이색적인 쇼를 볼 수 있습니다. 정각 5분 전이 되자 갑자기 인파들이 몰리는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nbsp▲ 프라하의 랜드마크인 천문시계.nbsp광장 중심부에는 유럽 종교 개혁의 시조에 해당하는 걸출한 종교개혁가였던 얀 후스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1415년 카를 대학교의 학장이었던 얀 후스가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졌는데 이로 인해 민중 봉기가 들불처럼 일어났으며 보헤미아는 1419년34년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100년 후에는 마르틴 루터에 의해 본격적인 종교 개혁 운동이 진행되게 됩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시발점이 바로 얀 후스 라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기념비는 체코인들에게 있어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nbsp▲ 종교개혁가 얀 후스 기념비가 세워진 구시가 광장. 내년에는 얀 후스가 죽은 지 6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곳에서 많은 기념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nbsp이 기념비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 제국 시대에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고, 2차대전 기간에는 나치 침략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고, 공산정권 기간에는 타락한 공산당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동상 앞에는 “진실만을 사랑하고, 진실만을 섬기고,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행하라” 라는 얀 후스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네가지 문장이 축약되어서 현재 체코의 국훈은 “진실은 드러난다”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nbsp다음은 카를 교로 향했습니다. 18세기에 제작된 30개의 조각상들이 돋보이는 이 다리는 1841년까지만 해도 프라하에 하나 밖에 없는 다리였다고 합니다. 다리 중앙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이 자리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는 바츨라프 4세의 요구를 묵살한 후 카를 교에서 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머리 주위에 별 5개가 금색으로 반짝이는 것이 여러 동상들 중에 가장 눈길을 끌게 했습니다.nbsp▲ 각각의 사연을 가진 조각상들이 아름다운 카를 교.nbsp이렇게 몇몇 상징적인 유적지를 둘러 본 후 체코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유명한 ‘트렘’과 ‘지하철’을 타고 다시 바츨라프 광장을 찾았습니다.nbsp1969년 소련 침공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한 얀 팔라흐, 얀 자이츠를 비롯한 공산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성소가 있는데, 스님께서 직접 추모를 하고 가자 하셔서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하고 조용히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 프라하의 봄, 체코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던진 두 청년을 추모하며.nbspnbsp얀 팔라흐의 죽음은 계속되는 점령에 대한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약 한 달 후인 1969년 2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학생 얀 자이츠가 자신을 불살랐고 1969년 4월 에브젠 플로첵이 뒤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저항이 여론을 뒤흔들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 상황에 충격을 주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20년 뒤 1989년 벨벳 혁명의 토대가 됩니다.nbsp체코의 역사를 들으니 한국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놓여 있어서 이런저런 침공을 받았지만 그속에서 희망의 싹을 튀워나가는 민족의 저력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한국과 흡사하게 느껴졌습니다. nbspnbspnbsp오후 5시에는 체코 교민 분이 운영하는 도쿄식당에 식사 초대를 받아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오후 6시 무렵 강연장인 Vojtecha 성당에 도착하니 체코 교민 분들과 자녀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스님을 무척 반가워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체코 프라하 즉문즉설 강연에는 총 55명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주 체코 한인경제인연합회 고주영 회장님의 후원과 이곳 한인 성당 박규남 신부님의 적극적인 홍보로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이 있기까지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오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총 7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60대 남성 분이 강연 맨 마지막에 불평등과 종교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불평등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왜 막내로 태어났는지, 키가 왜 170밖에 안되는지, 다른 사람들은 180이 넘는데... 나는 왜 못 생겼는지, 그리고 세상에는 많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들이 있고,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고, 이게 과연 세상의 법칙인지요? 하나님과 부처님이 얘기한 세상이 이런 세상인지요?”nbsp“남자에게는 특권이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억압이 주어진 세상에서 만약 여자로 태어난다면, ‘왜 내가 여자로 태어났나’ 하면서 억울해하겠죠. 그런데 ‘왜 나는 여자로 태어났나’ 이런 생각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에요. 여자로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는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여자로 태어났고 남자로 태어났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 세상이 남자에게는 특권이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억압이 주어지니까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특권을 갖고 싶은데 못 가지니까 말이죠.nbsp남자, 여자의 차이를 없애버리면, 즉 남자라고 주어지는 아무런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이런 질문 자체가 필요 없어져버립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전생에 죄이거나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남녀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생긴 의문이라는 것입니다.nbsp신체가 장애인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차별을 주니까 ‘나는 왜 장애로 태어났는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렇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고 하며 이런 잘못된 현실을 합리화시키는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 점이 잘못된 것입니다.nbsp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은 남자, 여자의 차별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체 장애에 의해서 인간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피부 빛깔에 의해서 인간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가 큰 것이 좋고, 키가 작은 것이 나쁘다’ 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키가 큰 것은 큰 데로, 키가 작은 것은 작은 데로 의미가 있습니다. 코끼리는 복이 많아서 코끼리로 태어나고 쥐는 죄가 많아서 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이 다를 뿐이에요. 얼굴 생김새가 다르지, 저 사람은 더 잘 생겼다 저 사람은 못생겼다가 아니라 그냥 다르게 생겼을 뿐입니다. 진리는 ‘다르게 생겼다’라는 것이지, 누구는 잘생겼다 하는 건 그때 그때 사람들의 관념에 따라 이뤄지는 것입니다.nbsp양반과 쌍놈의 차별이 없어지니까 ‘나는 왜 쌍놈으로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없어지잖아요. 이런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불평등이 없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는다고 개구리는 잘 못 태어났고 뱀이 더 좋게 태어난 게 아니에요. 그냥 종이 다를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피부 빛깔이나 남녀와 같이 자연적인 것을 갖고 차별하면 안된다는 겁니다.nbsp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의 행복도가 개선되지 않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지게 되면 행복도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국민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 작용에 대한 수련도 해야 하지만, 빈부격차도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민주화죠.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첫째 경쟁이 공정해야 해요. 그래서 부의 집중을 막고 격차를 줄여야 해요. 둘째, 경쟁 자체도 못하는 사람들, 어린아이, 노인, 장애인 등에게는 기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것을 복지사회라고 하죠. 그런 면에서 유럽의 시스템을 잘 연구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nbsp이곳 유럽에 나와 있으시면서, 우리보다 잘 산다 못 산다 이런 관점에서만 보지 마시고, 이 사회가 갖는 좋은 점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 사회보다 좋지 않은 점은 무엇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합니다.nbsp부자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부를 합리화하는 지배자의 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하나님의 복을 못 받아서 그렇다는 것도 지배자의 이데올리기입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많이 복무해 왔습니다.이런데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도대체 키가 작은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환경적으로 얼마나 좋아요? 옷감도 적게 쓰고 침대도 적어도 되고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되고요. 선악의 개념이나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닌 “다름”의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이런 철학적 정리가 우선 필요합니다.”질문하신 분도 스님의 답변을 듣고 밝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정리해주셔서 참 명쾌했습니다. 유럽에서 살다보면 성당과 교회 등 종교생활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데,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배낭 여행 중에 스님 강연 소식을 듣고 들렀다며 주머니의 돈을 털털 털어서 ‘새로운 백년’ 책을 구입하는 청년들,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왔다는 주부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음을 사인회를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같이 기념 사진도 촬영해 주셨습니다.nbsp밤11시가 넘어 Euro Wings 호텔로 돌아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700km를 차로 달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열 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내일은 폴란드에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4.09.05. 24,003 읽음 댓글 35개

2014.9.2 세계 100회 강연(8) 헝가리 부다페스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여덟 번째 강연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헝가리는 한국과 같은 우랄알타이어계 민족으로 왠지 모르게 친숙감이 드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도 말씀하시길 이번 세계 100회 강연 일정을 잡으면서도 이런 문화적 유사성 때문에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나라였다고 합니다.nbsp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고 5시에 오스트리아 교민 김혜원 보살님이 해주신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6시반에 헝가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1시간 정도를 차로 달리자 슬로바키아 국경이 나타났고,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시내를 조망하는 성이 보여 잠시 올랐습니다. 비바람이 너무 강해 오래 둘러보지 못하고 바로 헝가리 국경으로 nbsp넘어왔습니다. 대평원을 지나며 2시간 정도를 달려 오전 11시 무렵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습니다.nbsp오늘 강연이 열릴 장소인 한국문화원에서 강연 준비를 맡아주신 장정숙 보살님과 몇몇 봉사자분들, 그리고 한국문화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을 모두 만났습니다. 장정숙 보살님은 헝가리에 주재원 가족으로 이곳에 와 있는 분입니다. 헝가리에 온 지는 2년 되었고 23년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살님과 친분이 있는 주재원 가족 몇몇 분들이 함께 이번 헝가리 강연을 모두 준비해 주셨습니다.nbsp한국문화원에서 남은 밥, 김치, 김으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장정숙 보살님과 주재원 가족 두 분의 안내로 부다페스트의 상징적인 유적지 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부다페스트는 1873년 도나우 강의 서쪽의 ‘부다’라는 도시와, 동쪽의 ‘페스트’라는 도시가 행정적으로 합쳐져 이뤄진 도시입니다. 부다는 왕궁이 있던 곳으로 귀족들이 주로 거주하였고, 페스트는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였던 곳이라 합니다. 우선 왕궁과 화려한 중세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부다성을 먼저 가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지붕이 형형색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눈길을 끄는 마치시 교회와 어부의 요새였습니다. 마치시 교회는 헝가리 왕의 대관식 미사가 열렸던 곳이라고 합니다.nbsp▲ 부다성 안의 대표적인 명소, 마치시 교회.nbsp▲nbsp어부 요새에서 바라본 도나우 강과 국회의사당과 전경.nbsp부다페스트 유적지를 자세히 안내해주고, 강연 준비까지 도맡아 주신 주재원 가족분들. 어제밤 벼락치기로 헝가리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셨다고 합니다.nbspnbsp마치시 교회 앞에는 성벽 위에 어부의 요새라는 신고딕풍의 회랑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나우 강과 그 너머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nbsp부다성의 왕궁의 언덕 맨 끝자락에 이르니 거대한 왕궁이 나타났습니다. 왕궁 내부에는 헝가리 국립미술관과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는데, 스님께서는 역사박물관을 잠시 관람하셨습니다.nbsp▲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부다페스트의 역사는 마자르족이 정착하기 이전부터 BC 3세기 켈트족이 점령했다가 로마 군대가 이를 점령하고, 이후에는 유목민족인 훈족이 물밀 듯이 들어왔는데, 헝가리라는 오늘날의 국명은 훈족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마자르족은 896년경에 이 지역에 유입되었는데, 1500년대에 투르크족이 침입하여 거의 150년 간 머물렀다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원으로 이들이 퇴각하고 약 200년 동안 이 왕조가 부다페스트를 점령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하에서 있었는데, 이 때 유명한 건축물들이 붐을 이루며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패전국의 편에 서서 잔혹한 전투를 치루게 되면서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고 구 소련의 지배에 들어갑니다. 암울한 시기가 끝나고 EU 회원국이 되면서 독특한 전통유산이 가득한 도시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습니다.nbsp부다성을 둘러본 후 세체니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역으로 넘어갔습니다. 페스트 지역의 중심가로 가니 크고 웅장한 이슈트반 대성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경건히 기도한 다음 조용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nbsp▲nbsp이슈트반 대성당.nbsp다음은 영웅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1896년 마자르족의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 10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기념비들이 서 있었습니다.nbsp▲ 영웅 광장영웅광장 건너편에 있는 시민공원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추모 동상이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헝가리 리스트 음대에서 음악 활동과 공부를 하셨는데 원래 음대 안에 있던 추모 동상을 이곳 시민공원에 옮겼다고 합니다. nbsp▲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 추모 동상.nbsp마지막으로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을 찾았습니다. 워낙 크게 지어서 지금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많다고 하는데, 아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당시에 지었으니 제국의 경영을 고려하여 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국회의사당은 야경이 가장 유명한데, 시간 여유가 없어 보지는 못했습니다.nbsp▲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 전경.nbsp앞서 스님 일행을 맞이해주신 김재환 한국 문화원장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헝가리 민족은 흥겨움을 가진 민족으로 한국과 유사한 점이 많으며, “아빠”, “언니”라는 단어는 발음도 같고 그 의미도 같다고 합니다. 부다페스트에는 현재 1300명 정도의 한국 교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기업에서 온 주재원 가족들이 많고, 그 중 유학생들이 40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 의대생들이 많다고 합니다. 인건비가 싸서 기업들은 한국타이어, 제일모직, 삼성전자 등 제조업 위주로 많이 진출해 있습니다. 예전에 북한 유학생들이 와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고, 한국의 제조업 공장에 헝가리 사람들이 많이 취업해 있어, 헝가리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nbsp오후 4시30분에는 헝가리 필리스 산에 원광사라는 절을 짓고 유럽 포교를 하고 계신 청안스님이 강연이 열릴 예정인 한국문화원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청안스님은 한국에서 6년간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한 후, 지금은 헝가리에서 월1회 법회와 10일 명상을 지도하며 유럽인들에게 불교를 전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nbsp스님께서는 청안스님과 함께 주 헝가리 한국대사님으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으셔서 대사관 관저로 함께 이동해 남관표 대사님 부부와 저녁식사를 가지셨습니다. 대사님은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직접 보셨는지 “스님께서 대중들의 고민에 대해 거리낌 없이 속시원히 답을 해주시는 걸 보았다” 며 “헝가리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번 설법을 해주시면 좋겠다” 는 요청을 했습니다. 대사님의 요청에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청안스님이 오늘 저녁에 있는 즉문즉설 강연을 한번 들어보시고 과연 헝가리 사람들에게도 이런 설법 방식이 효과가 있겠는지 체크해 달라” 며 부탁하셨습니다. 청안스님도 흔쾌히 동의하셔서 저녁 즉문즉설 강연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nbsp▲ 주 헝가리 대사님과 함께 저녁식사.nbsp대사님은 스님께 헝가리와 한국 양국 간의 외교 관계와 유럽에서 헝가리가 갖고 있는 위상, 경제수준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사님이 헝가리와 한국 양국 간의 관계에 참 많은 애정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시며 방명록에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는 메시지를 남기시고 저녁 강연을 위해 한국문화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nbsp▲ 오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헝가리 한국문화원 입구. nbsp저녁7시에 시작한 강연은 헝가리 교민 77명이 참석하여 안정감 있고 여유있게 진행되었습니다. 김재환 한국문화원장님은 “헝가리에 문화원이 생긴 이후 가장 많은 교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며 스님의 법문에 대한 교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총 7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 헝가리에서 한국 기업을 다니고 있는 30대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저는 헝가리에서 한국 기업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현지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보니까 이분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떨어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러다보니까 짜증을 낼 일이 아닌데도 순간순간 짜증을 낼 때가 많고, 짜증을 내고 나면 돌아서서 후회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nbsp“한마디로 성질이 더럽다 이런 얘기네요. 성질이 더러우면 더러운 데로 그냥 살던지, 개선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성질이 더러운 데로 그냥 살면 사람들이 질문자를 멀리하게 되겠죠.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됩니다. 성질대로 살고 싶으면 손해를 감수하던지, 손해를 덜 보려면 어렵더라도 성질을 고쳐야 합니다.nbsp그런데 성질이라는 것은 무의식에서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안 고쳐집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면 금방 고칠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단 말이죠. 성질 안내겠다고 결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첫째, 고치려고 해도 안 고쳐지기 때문에 성질대로 살고 그냥 손해를 보는 길이 있습니다.둘째, 고치려고 하면 굉장한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성질을 낼 때마다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주면 무의식에서 겁을 내서 고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질을 한번 낼 때마다 전기 충격기로 자신의 다리를 한 번씩 지지는 겁니다. 세 번만 지지면 성질이 나올 때마다 몸이 벌벌 떨릴 겁니다. 이렇게 무의식에 자극을 주면 고쳐집니다. 이렇게 하기가 좀 힘들다면, 성질을 낼 때마다 삼천배를 해보세요. 그렇게 세 번만 삼천배를 하면 절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다가 성질이 올라오다가 딱 멈춥니다.nbsp셋째, 지속적으로 꾸준히 연습을 해서 고치는 길이 있습니다. 성질 안내는 연습을 꾸준히 오랫동안 해서 성질을 안내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면 자기 통제를 할 수 있습니다.nbsp어느 쪽으로 할래요? 천천히 고치려면 매일 108배씩 천일을 하던지, 빨리 고치려면 전기 충격기로 지져버리던지, 어느 쪽으로 할래요?“nbsp“매일 108배를 하겠습니다.”nbsp“좋아요. 그렇다면 매일 108배를 하면서 자신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저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내이면서 자기 암시를 주세요. ‘나는 화를 안내겠습니다’ 하는 의지와 각오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화를 안내겠습니다’ 매일 결심했는데 나도 모르게 화가 나니까 결심한 것이 계속 안 지켜져서 자신에게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꾸 되내이세요. 화가 나는 데도 ‘나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를 낼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화를 내려고 할 때 다른 한쪽에서 화를 내려고 하는 자기를 딱 알아차려 보세요. ‘아이고, 너 또 미치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자꾸 자각을 하면 화가 일어나려다가 쑥 내려갑니다.nbspnbsp이 성질을 못 고치면 회사에서만 힘든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해도 사는 게 힘들어집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까지 엄마의 성질을 닮아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매일 108배를 하면서 ‘화 낼 일이 없습니다’ 자꾸 되내이면서 절을 하면 실제로 화를 낼 일이 없어집니다.nbsp그러니까, 헝가리 직원들이 내가 시키는 데로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헝가리 직원들이 질문자가 시키는 데로 척척 일을 잘하면 질문자는 직업이 없어집니다. 현지 직원이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한국 직원이 필요한 겁니다. 그 사람들이 한번 가르쳐주면 한 번에 척척 잘하면 회사에서 한국 직원을 비싼 월급 주고 데려올 필요가 있을까요? 현지 직원은 한국 사람보다 월급이 2분1 밖에 안 되는데, 이 사람들은 시키는 데로 한 번에 딱 못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다시 뒷정리해줄 한국 직원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키는 데로 척척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질문자가 지금 밥 먹고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일을 못할 때 화를 내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고, 당신들 덕분에 제가 밥 먹고 삽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할까요?nbsp헝가리 사람들이 한번 알려주면 한 번 만에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손해입니다. 한번 가르쳐줘서 한 번에 알아버리면 5년만 지나면 한국 사람들은 곧 철수해야 합니다. 금방 익혀서 자기들 것으로 습득하면, 굳이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니 조금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좋은 겁니다. 현지 사람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여기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짜증날 일이 없습니다. 화 낼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내이면서 매일 108배를 해보세요. 108배를 하기 힘들면 언제든지 전파상에 가서 전기 충격기를 구입하세요“nbsp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헝가리 직원들 덕분에 지금 자신이 밥 먹고 산다는 말에 질문자도 활짝 웃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한쪽 측면만 바라보는 저희들에게 다른쪽 측면도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아무 문제가 없음을 일깨워 주십니다.nbsp▲ 헝가리 원광사 주지 청안스님. 법륜 스님의 강의를 듣고 청안 스님은 “모든 스님들의 설법이 일방적인 강연 형식이 많은데, 법륜 스님은 대중들의 고민 속으로 바로 들어가셔서 대화하기 때문에 이런 설법 방식은 헝가리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소감을 들려주었습니다.nbsp이 외에도 주재원 가족들이 많이 참석한 관계로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질문들도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짚으시면서 창의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유를 들어가며 자세히 얘기해 주셨습니다. 참석한 교민들도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기쁜 마음으로 강연을 듣고 돌아갔습니다.nbsp▲ 오늘 강연 준비를 맡아 준 장정숙 보살님과 두 딸, 그리고 주재원 가족분들.nbsp강연을 마친 후 책 사인회와 더불어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밤11시가 다 되어 오늘 숙소인 이송혜 보살님 댁에 들어왔습니다. 보살님 댁 거실과 방에서 하룻밤 묶고 아침식사를 한 후, 내일은 부다페스트에서 500km를 달려 체코 프라하로 갑니다. 내일은 체코에서 또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4.09.04. 24,835 읽음 댓글 55개

2014.9.1 세계 100회 강연(7) 오스트리아 빈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뮌헨의 김현정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잘 자고, 새벽 5시에 보살님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 식사를 먹은 후 6시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비가 오는 날씨 속에 오전 11시경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습니다. 도심 속에 들어서자 크고 웅장한 왕궁들과 화려한 인테리어, 장엄한 광장을 옆에 두고 있는 박물관들 등이 유서 깊은 도시의 화려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nbsp빈에서는 배우 박진희씨의 소개로 정토회를 알게 된 김혜원씨가 강연 준비 책임을 맡고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강연이 저녁에 있어서 시간 여유가 생겨 도심 곳곳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먼저 남편이 쇤브론 궁전에서 일하고 있다는 하태영씨의 소개로 쇤브론 궁전을 둘러보았습니다. 안내는 지금 오스트리아 빈에 뇌과학을 연구하기 위해 와 있는 정강수씨가 해주었습니다.nbsp쉰브론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한 여름궁전으로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1441개의 방 중에 40개가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어 짧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양식으로 지어진 안뜰에는 저 멀리서 분수가 춤을 추고 있어 그 앞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 오스트리아 빈의 대표적인 명소, 쉰브론 궁전.nbsp다음으로 오스트리아의 문화와 전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인 호프부르크 왕궁에 들렀습니다.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첫 번째 황제부터 마지막 황제까지 600년간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곳 난간에서 연설을 했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일부 건물에는 대통령이 출근하여 집무하는 오피스가 있었습니다.nbsp▲ 호프부르크 왕궁.nbsp왕궁을 지나 메인 스트리트로 걸어들어오자, 페스트가 끝나고 이를 기념하여 지은 높은 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페스트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의 4분의1이 죽었고, 마냐 사냥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nbsp▲ 페스트가 끝난 것을 기념해 세운 탑.nbsp비극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빈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슈테판 대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이 대성당은 2차 대전 말기 “항복하지 않으면 이 성당을 폭격해버리겠다”는 선전포고를 듣자 곧바로 항복해 버렸다 할 정도로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가장 아끼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12세기에 지어진 이 대성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고딕 양식인데, 모든 디자인에 뽀족함을 강조하여 더 높고 경건함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지금은 일부 공사 중이었지만, 뽀족하게 솟은 136.7미터의 남팝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nbsp▲ 오스트리아의 가장 유명한 명소, 슈테판 대성당.nbsp이어서 차를 타고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스님께서는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프로이트가 유럽 문명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큰 틀에서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유럽 문명이 신 중심에서 벗어나게 된 분기점으로 세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째, 물질 세계에 있어서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고, 둘째, 생명 세계에 있어서는 다윈의 진화론이며, 셋째, 정신세계에 있어서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몽입니다. 그동안 신의 소리, 악마의 유혹이라 하는 것들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한 분석으로 밝혀 나갔습니다. 이것은 정신세계도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nbsp프로이트가 남긴 업적이 큰 의미가 있음을 알고 박물관에 들르니 그 의미가 더 남달랐습니다. 이곳에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역사적인 의미 때문에 이곳에 들러보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프로이트가 당시 빈에서 진료활동을 하던 그의 집무실이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그의 개인 소장품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방을 조용히 둘러보셨습니다.nbsp▲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물관nbsp시내 구경을 마치고 오후 4시 무렵, 오늘 빈 강연이 열릴 오스트리아 한인 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인 문화회관은 한적한 숲과 호수가 드리워진 도나우 파크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 호수 레스토랑으로 이용되다가 최근 몇 년간 비어 있던 것을 2010년에 한인문화회관 설립위원회에서 재 오스트리아 한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건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리면으로 엑센트를 준 직육면체 건물이 2개층으로 길게 누운 형태로 아래층 바닥을 호수면 보다 더 아래 둠으로써 호수에 정박해 있는 보트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nbsp▲ 오늘 강연이 열린 오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nbsp오후 5시에 한인회에서 봉사자들이 차려준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저녁 7시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40여명이 참석하여 강연장은 빈자리 없이 꽉 찬 상태로 열기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다들 스님이nbsp먼 곳에서 오셨다며 너무나 반가워하셨습니다.nbsp총 5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순수함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20대 여성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27살 여성입니다. 어릴 적 갖고 있었던 순수함과 희망, 인간에 대한 믿음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눈을 떠 보니 현실의 세상은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동안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다가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을 겪을 때 순수한 시각이 반 부정적 시각이 반인 것 같습니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은 순수함을 추구하다보니 사회생활에서 현실을 직면할 때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항상 평온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nbsp“질문자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존재가 아니고, 지금 이미 어른이에요. 지금 질문자의 심리 상태는 어른이 아니고 유아입니다. 질문자의 고민은 아직도 유아적인 사고방식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입니다.nbsp내가 좋든지 싫든지 스무 살이 넘으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애를 낳아도 네 명은 낳았을 나이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질문자는 이미 어른입니다. ‘나는 어른이다’ 이것을 먼저 자각해야 합니다. 어른으로서 질문자가 지금 부딪히는 문제가 무엇인가요?”“사람을 대할 때나 사회생활을 할 때 계산적이여야 할 때 힘들어요.”“계산도 해야 해요. 계산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중국이 저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일본이 군사 대국화의 길로 간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될까, 이렇게 계산을 해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자기감정대로 행하지만, 어른은 이런 계산도 해야 합니다. 어른은 싫다고 다 안할 수도 없고 좋다고 다 할 수도 없습니다. 좋아도 손해가 나면 안해야 하고, 싫어도 이익이 나면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상사가 싫다고 자꾸 그만두려고 하면 살기가 힘들어지지요. 이제는 어느 정도 계산을 해야 합니다.nbsp이기주의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지나친 이기주의가 나쁜 것입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행위의 원동력은 욕구입니다. 욕구가 있어서 움직이게 되는데, 배고플 때 먹고 싶다, 피곤할 때 자고 싶다 이것을 생존적 욕구라고 합니다. 생물은 누구나 다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상대적 욕구인 욕망이 있습니다. 더 좋은 집에 자고 싶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싶다, 남보다 내가 더 위에 있고 싶다 이런 욕구들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는 잠을 어느 정도 자면 한계가 있는데, 상대적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1만 유로를 갖고 싶다 해서 1만 유로를 가져보면 옆에서 100만 유로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100만 유로를 갖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끝이 안납니다. 이것을 욕망이라고 합니다. 세번째는 과욕이 있습니다. 과욕은 술을 많이 먹어 토한다, 이렇게 손해가 나도 계속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욕은 버려야 합니다. 상대적 욕구는 절제를 해야 합니다. 기본적 욕구는 충족을 시켜줘야 합니다.nbsp사회 제도적으로는 인간의 기본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하고, 인간의 과욕은 규제를 해줘야 합니다.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조절을 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분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하면서 100유로를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고마워하죠.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가 옆 사람에게 1000유로를 주면, 100유로를 받은 분은 갑자기 기분이 팍 나빠집니다. “사람 차별하나” 이렇게 되죠. 자기가 손해 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기분이 나빠집니다. 이것은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GDP가 3만불, 10만불이 되어도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려면 빈부격차가 지나치게 나도록 하면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을 제도적으로 합의해서 기본적 욕구는 보장을 해주고, 상대적 욕구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절제를 하게하고, 과욕은 아주 엄격하게 규제를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는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권리는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줘야 합니다.nbsp이런데서 이기적인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도 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비싼 자동차 타고 낭비하면서 사는 친구가 찾아와서 돈 떨어졌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이럴 때는 돈을 안 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리다는 말의 뜻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뜨거운 물에 손을 집어넣어 데였다는 것은 순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어리석다는 것을 순수함으로 미화하면 안됩니다. 질문자가 좀 더 지혜로워졌으면 합니다.” nbsp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도 얼굴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함께 강연을 들으시던 분들도 밝게 웃으며 함께 스님의 답변을 들었습니다.nbsp강연은 3시간 동안 진행되어 10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해주며 교민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눈 후, 강연 준비를 맡아준 봉사자들과는 가볍게 마음나누기를 함께 하셨습니다.nbsp봉사자들을 운영하는 역할을 맡은 김혜원씨는 “스님 덕분에 강연 준비를 하면서 평소 만나지 못했던 분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며 준비 과정도 보람 있고 즐거웠다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전했습니다. 봉사자 중에는 구미 법당에 다니시는 김진석 거사님도 있어서 눈에 띄었는데, 깜짝 놀라 경황을 물으니 “오스트리아에 출장을 왔다가 스님 강연에 시간을 내어 들렀다” 하시며 손수 의자를 나르며 보이지 않게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셨습니다.nbsp밤11시가 다 되어서 오늘 하룻밤을 묶을 속소인 김혜원씨 댁에 들어왔습니다. 김혜원씨는 오스트리아인 남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습니다. 스님 일행에게 빈 방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셔서 편히 하룻밤을 머물 수 있었습니다.nbsp▲ 오스트리아 빈에서 하룻밤 숙소로 집을 제공해 주신 김혜원씨 가족.nbsp내일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여덟 번째 강연이 열립니다. 헝가리에서 계속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nbsp

2014.09.03. 24,112 읽음 댓글 31개

2014.8.31 세계 100회 강연(6) 독일 뮌헨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여섯 번째 강연이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로마에서 뮌헨까지 1000km를 차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여서 새벽 3시에 기상하여 3시30분에 로마 Villa Benedetta 수도원을 빠져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15시간을 부지런히 달려야 겨우 강연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는 일정입니다. 운전을 담당하고 있는 김경희 법우님이 무사히 우리들을 인도해주길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nbsp4시간을 달려 오전 7시 무렵, 휴게소에 도착해 어제밤 미리 준비해둔 도시락을 펼쳐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은 점심을 먹을 여유가 없으니까 각자 알아서 챙겨 먹으세요” 하시며 식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전기밥솥을 차량에 싣고 다니고 있는데, 최말순 보살님이 밥을 항상 맛있게 해주셔서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꿀맛입니다. 여기다 김치와 김을 비롯해 각 도시에서 교민들이 주신 밑반찬 몇 가지들을 보태어 한상 차리면 최고의 밥상이 됩니다.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뮌헨을 향해 달리고 달렸습니다. nbsp▲ 휴게소에 들러 챙겨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nbsp차창 밖을 계속 구경하며 달리다가 오전 10시 무렵 산마리노 공화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산마리노는 티타노 산에 자리잡은 인구 3만명의 작은 나라인데, 티타노 산 정상부에 비탈을 따라 아름답고 웅장한 요새와 성벽,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곳입니다. 뮌헨까지 가려면 시간이 부족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30분이라도 둘러보려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절벽 위에 골목골목마다 차량이 모두 들어갈 수 있게 아기자기하게 도로와 건물이 축조되어 있어 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nbsp▲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성곽 도시를 조성한 산마리노 공화국.nbsp▲ 산마리노 공화국의 성곽 위에서 바라본 풍경.nbsp스님께서는 성곽을 둘러보신 후 “아무 것도 없는 산꼭대기에도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힘과 정성을 모으니 이런 멋진 나라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라며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라도 서로 협력하고 정성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배울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갈 길이 멀어 쓰윽 보고 후다닥 뛰어내려와 다시 차에 탑승했습니다.nbsp점심식사는 차량 안에 남아있는 빵조각으로 대충 때우고 뮌헨을 향해 달리고 달리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8월 마지막 주말이라 휴가 끝나고 돌아오는 차량이 늘어나 이탈리아부터 계속 길이 막혔습니다. 강의 시간 안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을 졸이기도 했지만 결국 이탈리아 국경을 넘고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독일 국경을 넘었습니다. 독일로 넘어오니 또 폭우가 쏟아지고 교통이 많이 정체되었습니다. 오늘은 새벽 3시에 일찍 출발했지만, 교통이 계속 정체되어 늦을 것 같아 뮌헨 강연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강연 시작 시간은 저녁6시였는데, 6시30분에 강연장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nbsp▲ 뮌헨에서 정기법회가 열리고 있는 곳, ASZ 센터. 오늘 뮌헨 강연도 이곳에서 열렸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시간을 가졌습니다. 뮌헨에서는 임해지 박사님을 중심으로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던 터라, 오늘 강연장에도 한쪽 구석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nbsp뮌헨 강연에는 총 120여명이 참석하여 빈자리 없이 꽉 차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뮌헨은 송혜련 보살님을 중심으로 정토열린법회를 해 온지 10여년이 된 곳으로 매년 스님이 오실 때마다 불교를 넘어서서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처럼 좋은 분위기에서 법회를 해오고 계십니다.nbsp강연에는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결혼한 후 독일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로 고민인 32살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립니다.nbsp“결혼을 하고 독일에서 살게된지 3년차 되었습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각자 주말에 집에 전화를 드리거든요. 전화를 끊고 나서 맨날 하게 되는 말이 ‘왜 우리 부모님은 자주 싸우실까’ 입니다. 저는 엄마랑 자주 통화를 하는데, 맨날 엄마가 아빠 흉을 보는 것으로 전화를 끊게 됩니다. 멀리 떨어져서 살다보니 엄마가 속상해하셔도 옆에서 위로해 드릴 수도 없고, 항상 별로 나아지지도 않는 것 같아 저도 속상하고 전화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nbsp“질문자는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싸우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네요. 그렇다면 이 두 분은 지난 20년간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싸우면서 살아오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성질이 과연 고쳐질까요? 부모도 자식의 성질을 못 고치는데, 어떻게 자식이 부모의 성질을 고칠 수가 있을까요? nbsp첫째, 애초에 안 되는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지금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안 싸우면 좋겠지요.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되나요? 노력해서 될 것이 있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성질을 바꾸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nbsp둘째, 부모님이 그렇게 싸우면서도 아직까지 함께 살아오셨다면 질문자의 판단으로 보면 같이 안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20년 간 계속 같이 살고 있으시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문제이지 두 부부 사이에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부부란 것은 그렇게 싸우면서 사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그러니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됩니다.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전화해서 “니 아빠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네, 네” 하세요. 엄마 이야기만 듣고 ‘아빠는 왜 저러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아빠가 왜 저러지’ 하는 것은 아빠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아빠를 미워하게 되요.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면 안 되잖아요. ‘지금 엄마가 힘들어 하구나’ 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래서 아빠가 문제 있다고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엄마 이야기만 듣고 아빠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아빠가 나쁘다고 받아들입니다.nbsp또 중재를 선다고 ‘엄마가 자꾸 그러니까 아빠가 그러지’ 해서도 안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해라” 해도 자식이 말을 안 듣는데, 자식이 어떻게 부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어머니는 남편과 대화가 안 되어서 딸한테 전화하는 건데, 딸까지도 남편처럼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 ‘아이고 쟤도 제 아빠 닮아서 저러나’ 이렇게 됩니다. 엄마는 딸 한테도 성질이 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어머니를 위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위로하는 방법은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이고, 어머니 힘드셨군요”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어머니의 감정 상태에 빠져서 아버지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머니 힘드셨군요”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nbsp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부부 싸움에는 끼어 들면 안 됩니다. 내버려 둬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이혼해서 살더라도 그들은 이미 성년이니까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들 인생은 자기들이 알아서 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내가 교훈으로 삼아서 ‘부부는 누구나 이렇게 싸우고 살긴 하는데, 나도 남편과 이렇게 싸우면 우리 아이들이 참 힘들겠구나‘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른끼리는 싸울 수 있지만, 애들을 위해서는 안 싸우는 게 좋겠구나‘ 이렇게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만 교훈으로 얻어야지 두 부부의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질문자가 능력이 있어서 부모님의 성질을 고칠 수 있다면, 문제 있는 정치인들도 좀 고쳐주지 그래요? 정치인들이 저렇게 싸우는 것도 놔놓고 살면서 엄마 아빠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그것을 고치려고 그래요? 별 문제 없어요. 사는 게 다 그렇게 사는 거예요.nbsp부모님이 저렇게 싸우면서도 그동안 나를 안 버리고 키워준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나게 고마운 일이예요. 그러니 두 분에 대해서는 항상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내가 관여할 일과 관여하지 않을 일이 있는데, 질문자는 관여하지 않을 일에 관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화가 오면 ‘네네, 알았어요. 오늘도 싸웠어요? 이번엔 누가 이겼어요?“ 이렇게 웃으면서 받아주고 즐겁게 마음을 가지세요. 그러면 어머니도 처음에는 성질을 내다가 나중에는 웃고 말아요.nbsp그런데 질문자가 중재를 선다고 엄마편이 되어서 아빠에게 이야기해주려 하거나, 아빠편이 되어 엄마에게 이야기해주려 해도 안 됩니다. 항상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끌려 들어가면 안됩니다. 만약 자기 통제가 안 되면 귀에다 음악을 틀어놓고 “네네” 듣는 척 하면서 안 들어도 됩니다. 엄마의 이야기에 내 감정이 자꾸 빠져 들어간다면,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귀에다 먼저 이오폰을 꽂아 놓고 계속 입으로만 ’네네, 어머니 그러셨군요‘ 해도 죄가 안 됩니다. 어머니는 답답하니까 하소연 할 데가 없어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만 줘도 됩니다.”nbsp질문한 여성은 스님의 답변을 금새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은 받아주면서 부모님 사이의 문제에 관여하지는 않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독일로 간호사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서 부모님이 편찮으신데 계속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힘들다는 분, 이스라엘에 파견 근무를 와 있는데 대부분 기독교를 가지고 있어서 이 사람들과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분, 스님께서는 왜 세계 100회 강연을 하시는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에게 자상하게 답변해 주셨고, 강연은 무려 2시간 30분 동안이나 진행되었습니다. nbsp강연을 마치고 뮌헨에서 얼마전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실천활동을 해오고 계신 임혜지 보살님을 인터뷰 했습니다. 뮌헨에 살고 있는 교포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꼐 영상으로 소개합니다.nbsp 강연 시작 시간이 늦어져서 강연을 마치고 봉사자들과 소감 나누기는 함께하지 못하고 책 사인회만 함께 한 후, 밤 11시가 다 되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nbsp오늘은 뮌헨에서 독일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살고 계신 김현정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습니다. 보살님은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인생이 많이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스님께 식사 대접을 꼭 해드리고 싶다고 하셔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습니다.nbsp▲ 뮌헨에서 하룻밤을 머물수 있게 집을 제공해 주신 김현정 보살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주신 박수미 보살님, 이스라엘에서 스님 강연을 듣기 위해서 휴가를 내어 온 강철민씨.nbsp스님께서는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한국에서 요청 들어온 원고들에 대해 교정을 보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비엔나에서 계속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2014.09.02. 24,592 읽음 댓글 44개

2014.8.30. 세계 100회 강연(5) 로마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8월30일까지 이동 경로.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다섯 번째 강연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날입니다.nbsp오전6시 피렌체 수도원에서 제공해준 빵과 우유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위험해서 차량을 길가에 주차할 수 없어 주차장을 이용했는데, 7시에 문을 열어 어쩔 수 없이 출발시간을 7시로 늦춰야 했습니다. 피렌체에서 로마로 이동하는 도중 휴게소에 잠시 들러 스님의 하루 원고를 출력하고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휴게소에 핀 예쁜 꽃을 보시곤 스님께서 무척 반가워하셔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는 길, 휴게소 앞에서.nbsp▲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작성되고 출력되고 있는 스님의 하루.nbsp피렌체에서 로마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로마와 유럽의 역사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스님께서 해주셨습니다.nbsp“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고 그리스와 에게해를 속주로 편입하고 커지기 시작한 것은 BC 2세기 정도 됩니다. 그리스 문명은 BC 56세기 경에 절정을 이루다가 BC 3세기 알렉산더 대왕 무렵에는 이미 쇠퇴하였고, 그리스 북쪽에 있던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점령 되었으며,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폐르시아까지 점령하고 인도 서쪽까지 점령하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그 영향으로 인도에는 간다라 미술이 탄생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리스 문명이 급속도로 쇠퇴할 때 로마는 점점 더 커져서 지금 중동 지역까지 다 점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예수가 태어날 때는 이미 로마 지배하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로마는 공화정에서 황제 제도로 가기 시작하는데, 시저,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등에 의해 맺어진 삼두정치에서 옥타비아누스를 분기점으로 황제 시대로 가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도 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죠.nbsp이렇게 로마는 제국을 형성하고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 남부까지 점령하고 에스파니아, 포루투갈,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까지 다 점령을 해서 대제국을 형성하죠. 이 시기가 기원 전후가 됩니다. 이 당시에 중국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곧이어 한나라가 형성이 됩니다. 이 진한시대와 로마시대의 시기가 비슷합니다.nbsp그렇게 되면서 기독교가 로마 안에 들어와서 박해를 받다가 4세기에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392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황제가 기독교의 수장이 됩니다. 이러면서 로마는 점점 분열이 되기 시작해서 동서 로마로 나뉘게 됩니다. 로마를 경계로 해서 서쪽 로마와 동쪽 로마로 나뉘어서 두 사람의 황제가 따로 통치를 합니다. nbsp동로마제국은 지금의 이스탄불인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고, 서로마는 주로 이민족을 군대의 용병으로 쓰다가 그 용병 중에 한 사람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476년에 멸망됩니다. 동로마는 그 이후에도 1000년간 지속되어 1453년에 멸망합니다. 유럽은 지금 프랑스 지역에서 5세기 말엽에 프랑크 제국이 일어나고 이 프랑크 제국이 3개로 분열되어 지금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발전합니다. 독일 쪽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이 형성 되어 오랫동안 지속이 되지요.nbsp그런 과정에서 중세가 시작이 되고 모두 봉건 제후로 분열이 되는데, 12세기부터 이탈리아 로마의 변방인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이런 자유도시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베네치아가 가장 먼저 자유도시가 되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그 다음에 과학기술이 나오고 예술이 나오면서,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이제까지 신 중심의 중세 봉건에서 휴머니즘, 즉 인간 중심의 여러 가지 문화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문학, 미술, 음악, 과학 등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죠.nbsp1416세기에 들어가면서 밀리노, 피렌체, 배네치아, 볼로냐 등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르네상스의 가장 핵심지역이 됩니다. 이 도시들이 서구의 과학, 예술, 문학 등의 발전에 영향을 줍니다. 그 다음에 14세기에서 16세기로 가면서 르네상스 운동이 꽃필 무렵 포루투갈이 제일 먼저 식민지 개척을 위해 진출을 하고, 그 다음에 에스파니아가 진출을 하고, 그래서 포루투갈과 에스파니아가 한 때 세계 식민지를 양분합니다. 그 뒤를 이어서 네덜란드가 무적함대를 이뤄 진출을 하고, 뒤이어서 영국이, 거기에 도전하는 것이 프랑스였고, 다시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를 두고 쟁패를 하는 것이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죠. 여기에 뒤늦게 참석한 것이 독일이고, 20세기 들어와서 세계 1,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러시아도 15세기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상패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17세기에 더욱 발달하게 됩니다.nbsp문예 부흥이라고 부르는 ‘르네상스’는 문명의 암흑시대라고 하는 중세 문명을, 즉 거의 천년에 가까운 신 중심의 문명을 인간 중심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큰 계기가 된 것입니다. nbspnbspnbsp하나의 문명이 절대 빈곤이나 낙후된 상태에서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서 비슷하게 되는 데는 잘하면 100년200년 걸리는 것 같고요. 주도세력이 완전히 바뀌는 데는 200년300년이 걸리는 것 같아요. 하나의 문명이 발생하고 몰락하는 데는 한 1000년 정도 걸리고요.nbsp유럽의 역사를 문명적으로 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4천년5천년 전에 일어났던 문명이고, 그것이 3천년 전에 와서는 에게 문명으로, 그리스 문명으로, 로마 문명으로 발전해 옵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그리스로마 문명이라고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주도 세력은 다릅니다.nbsp로마가 멸망하고 분열되면서 유럽은 중세시대로 접어들고, 중세 문명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고 봉건 영주가 지배하는 그리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문명이었습니다.nbsp그래서 오늘 우리가 말하는 유럽 현대 문명의 태동은 첫째, 르네상스라고 볼 수 있죠. 둘째,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 항해술입니다. 셋째,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우는 종교 혁명으로, 넷째,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 영국의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가 현대 문명입니다. 이것도 14세기부터 르네상스라고 보면 지금 800년 정도 지났거든요. 그러니까 이 문명은 앞으로 100200년 정도 내다보면 이미 마지막 부분에 와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nbspnbsp어떤 이유로 현대 문명이 몰락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첫째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어서 순식간에 몰락할지, 아니면 변형 바이러스 때문에 순식간에 인구가 줄면서 몰락의 길로 갈지, 아니면 자연환경 파괴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몰락할지, 아니면 서로 싸워서 핵폭탄을 무차별로 터뜨려서 방사능 오염으로 몰락의 길을 갈지... “nbsp스님께서 안내해주시는 로마와 유럽의 역사를 듣고나니 보다 더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로마에 대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로마에 도착하니 오전 10시가 되었습니다. 희망세상만들기 로마 즉문즉설 강연은 오후 4시에 예정되어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만 잠깐이라도 둘러볼 수 있는 곳을 살펴보다가, 스님께서 “유럽 문명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는 기독교 문명을 살펴봐야 하고, 다른 하나는 로마 문명을 살펴보면 좋다” 고 하셔서 기독교 문명의 뿌리를 알기 위해 카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고, 로마 문명의 뿌리를 nbsp살펴보기 위해 예전 로마공화국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와 그 옆의 콜로세움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nbsp바티칸 박물관은 고대 조각상들과 고대 지도들, 라파엘이 그린 프레스코화를 비롯 ‘아테네의 학당’ 등 대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특히 박물관 안에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있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라는 천장화와 ‘마지막 심판’ 이라는 작품을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 여행객들은 이틀에 걸쳐 둘러본다는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으셔서 아주 빠른 속도로 2시간 만에 다 둘러보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각종 조각상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시고선 “이것을 보는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시며 안타까움을 비치셨습니다. nbsp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카톨릭의 총본산인 성베드로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 성당은 1503년에 설계되어 완성까지 15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일을 맡아 제단에서 120미터 높이에 있는 그랜드 돔을 설계했으며,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서명이 남아 있는 ‘피에타’ 등 많은 보물들을 성당 안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nbsp▲ 바티칸 시국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nbsp엄청난 규모와 높이의 대성당 건물을 보며 그 위용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스님께서는 “이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있었을까” 하시며 건물이 완성되기까지의 당시 상황을 헤아려 보시기도 하셨습니다.nbsp12시가 다 되었지만 유적지를 더 둘러보려하니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점심은 그냥 안먹기로 하고, 콜로세움으로 향했습니다. 콜로세움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니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는 그 규모가 더 크고 웅장해 보였습니다. 검투사들이 싸움을 벌이는 경기장이었던 이곳은 로마의 상징적인 기념물이 되었지만, 웅장함의 뒷면에 노예제 사회였던 당시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nbsp▲ 로마의 상징 기념물인 콜로세움.nbsp콜로세움 바로 옆에는 ‘포로 로마노’라고 불리우는 고대 로마제국의 사회,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던 곳이 유적으로 발굴되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동시에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하고 목초지와 대리석 채굴장으로 사용되다가 최근에 다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로마 문명의 흔적을 잠시 둘러본 후, 오늘 강연이 예정된 Villa Benedetta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nbsp오후4시부터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최소 강연 참가자 기록을 세웠습니다.nbsp▲ 희망세상만들기 로마 강연에 참석한 한 분.nbsp원래 로마는 강연을 주최할 담당자가 없어 100회 강연 일정에 넣지 않으려고 했던 곳인데, 그래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잡은 강연이었습니다. 참석자가 없는 원인을 찾아보니, 강연 담당자가 없어 이 지역에 전혀 홍보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는 점, 로마는 관광 사업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관광객이 몰려드는 토요일 낮 시간에 강연 시간을 잡은 점 등이 살펴졌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강연 대신 찾아와 주신 한 분에게 개인 상담을 1시간 동안 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일 텐데, 이 분은 어떤 복을 지었길래 참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한명이 찾아왔지만 스님께서 정성을 다해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님의 지혜를 들려주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숙연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상담을 마치시고 이 분에게 유튜브 즉문즉설과 정토회 홈페이지, 희망편지 앱을 자세히 알려주시면서, 해외에서도 꾸준히 수행 정진하는 끈을 놓지 말고 마음 공부를 열심히 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단 한명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포교의 원력임을 되새겨 봅니다.nbsp저녁6시 무렵 다시 로마 시내의 몇몇 유적지들을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먼저, 2천년이 된 고대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 가 보았습니다. 서기 120년 아드리안 황제 때 지어져서 2천년 가까이 된 건물이지만, 지금까지도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nbsp▲ 2천년 전에 세워진 판테온 신전.nbsp스님께서는 “어떻게 2천년 전에 중앙에 기둥없이 이렇게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하시며 그 당시의 문명 수준을 가늠해 보셨습니다. 초기에 이 건물의 사용 용도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돔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동그란 창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태양신을 섬기는 사원이었을 것” 이라 하시며 이집트 피라미드나 바미얀 석불 등과 그 규모를 비교해 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템피오 아드리아노 신전과 트레비 분수를 비롯 걸어서 갈 수 있는 몇몇 유적지를 더 둘러보신 후, 판테온 신전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였습니다.nbsp▲ 건물 기둥이 선명히 남아 있는 템피오 아드리아노 신전.▲ 콜로나 광장에 있는 마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 앞에서.식사할 시간이 없었던 일정이었기에 일행 모두가 하루 종일 밥을 졸졸 굶었는데, 밤 9시가 되어서야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스님께서는 스님의 하루를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볼거리를 보여주시고자 사진사를 대동하셔서 로마의 골목 골목을 빠른 속도로 걸음을 옮기시며 발품을 파셨습니다. 그 덕에 오늘 스텝들은 체력이 모두 소진된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하루를 통해 대중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임했던 것 같습니다.nbsp내일은 로마에서 뮌헨까지 1000km를 차를 타고 달려가는 일정입니다. 새벽 3시에 기상하여 3시30분에 로마를 출발하여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해야 오후6시 무렵 뮌헨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뮌헨에서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4.09.01. 23,721 읽음 댓글 45개

2014.8.29 세계 100회 강연(4) 피렌체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네 번째 강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새벽 3시반에 기상, 기도를 마치고 6시에 렌트카를 타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밀라노에 늦게 도착을 하는 바람에 곧바로 강연 준비를 하느라 밀라노 시내에 있는 유적지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출발할 때 밀라노 시내 유적지 몇 곳을 먼저 관람하고 피렌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nbsp오전 7시,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두오모 대성당에 들렀습니다. 두오모 대성당은 4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유럽에서는 규모 면에서 세 번째로 큰 교회입니다. 1386년에 설계되어 600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대성당 앞 광장에 들어서자, 크고 웅장함 앞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원래 낮에 방문할 경우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줄도 많이 서야 하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었는데, 스님 일행은 오전 7시에 성당 문이 열리자마자 아침 일찍 방문했기에 여유 있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합장을 한 채 성당에 들어가셔서 묵언으로 조용히 둘러보신 후, 예배당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하셨습니다.nbsp▲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nbsp두오모 대성당 옆에는 ‘빅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쇼핑 센터가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과 함께 명품 상점들로 골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옛날 건물들 사이를 돔 모양의 지붕으로 연결한 것이 특이했습니다. 사진 몇 컷을 남기고,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이동했습니다.nbsp스포르체스코 성은 밀라노의 도심 중앙에 공원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 15세기 성으로 스포르차 왕조가 거주한 르네상스 건축물입니다. 외벽을 붉은 벽돌로 쌓아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파고 침입을 막았으며, 모서리에는 망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본에 있는 오사카성처럼 이렇게 성 전체가 잘 복원되어 있는 곳은 많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는 산성의 경우 일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스포르체스코 성아침을 먹지 못해 이동하는 중 빵집을 찾아 빵 몇 개를 구입해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오전 9시 밀라노를 출발하여, 12시가 다 되어서 피렌체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밀라노에서 강연에 참석했던 이창인 거사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피렌체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하는 곳 4군데를 안내 받았습니다. 조망이 좋은 카페, 우피치 미술관, 베끼오 다리, 피렌체 nbsp대성당, 이렇게 안내 받은 순서대로 4곳을 둘러본 후 강연장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nbsp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피렌체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레지아 레스토랑 앞 벤치입니다. 구불 구불한 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언덕 꼭대기에 레스토랑 한 곳이 있었는데, 카페 앞에 돌로 된 벤치가 있고 벤치에 앉으니 피렌체 전체 풍경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피렌체 시내를 조망하기 위해 미렐란젤로 언덕을 많이 가는데 저희는 거사님의 추천으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 피렌체 조망이 한눈에 보이는 레지아 카페 앞.nbsp피렌체 시내의 조망을 본 후 다시 시내로 들어가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였습니다. 보티챌리의 ‘봄의 알레고리’,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티티안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었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빠른 걸음으로 속도감 있게 전체를 둘러보았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일대기를 묘사한 그림과 조각상들이 많아서 중세시대까지 유럽 전역에 기독교의 신앙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 앞부분 전시실에는 성화를 중심으로 한 신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스님께 간단한 소감을 여쭤보았으나, 스님께서는 그냥 웃음을 보이셨습니다.nbsp▲ 르네상스 시대 미술품들이 총 망라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nbsp우피치 미술관을 둘러본 후, 바로 옆 강가에 있는 베끼오 다리에 가보았다가, 피렌체 대성당을 찾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도 대성당에 들어가셔서 조용히 기도를 잠시 하신 후 나오셨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처럼 건물 외벽에 새겨진 조각상, 실내를 떠받치는 높은 기둥 등 그 세밀함과 웅장함을 보면서 과연 중세 시대 유럽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피렌체 대성당에서 걸어서 5분 거리, 비좁은 골목 사이에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 건물이 있었는데, 오늘 저녁 강연 장소와 숙소는 이곳 수도원으로 잡혀 있었습니다. 강연장이 1층이고 숙소가 2층이여서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강연을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이곳 수도원을 빌리기 위해 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수도원 원장 수녀님이 스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소개를 읽고 감명을 받고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셨다고 합니다. nbsp피렌체는 원래 강연을 할 계획이 없는 도시였으나, 작년에 밀라노에서 강연을 할 때 오신 이창인 거사님이 “르네상스 문명의 꽃이 피렌체이니까 스님께서 피렌체를 꼭 가보셔야 한다” 고 계속 얘기를 하셔서, 스님께서 그냥 듣고 흘렸는데, 이번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을 잡으면서 교민들이 적게 있든 많이 있든 가보자 하는 취지가 있어서 오늘 강연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유럽에서는 교민들이 1000명 이상 되는 곳을 찾아가보는데 피렌체는 교민 수가 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아마 전체 강연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인원이 모여 강연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몇 명이나 올까 내기를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0명을 예측하셨고, 스텝들은 대부분 15명을 예측했고, 최말순 보살님은 20명을 예측했는데, 결국 누가 내기에서 이겼을까요? 정답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몇 명이 왔는지 한번 세어 보세요.nbsp▲ 피렌체 강연이 열린 ‘Suore Oblate dellAssunzione 수도원그리고 피렌체에는 아직 정토회와 인연이 된 분이 아무도 없어, 강연 신청자 한분이 일찍 오셔서 강연 준비를 도와주시고, 스님 일행과 스텝들이 강연을 모두 준비했습니다.nbsp저녁 7시, 강연이 시작되자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정말 궁금할 정도로 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이탈리아 한인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강연 소식을 접하고 베네치아에서 2시간 걸려 이곳까지 왔다는 학생 2명도 있었고, 유학 온 학생 몇분, 기업에서 사업차 파견 나와 계신 분 몇분, 현지에서 의류업을 하고 계신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오늘 강연을 함께 했습니다.nbsp총 5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베네치아에서 온 조선족 학생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조선족 학생은 nbsp통일한국의 희망과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지 묻기도 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외국인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nbsp“혼자서 이곳 이탈리아에 유학을 와서 이탈리아 친구와 일본 친구와 함께 집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친구는 굉장히 캐릭터가 강합니다.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언어가 딸리니까 참고 넘어가는 것이 많은데, 울컥울컥 할 때가 있어 괴롭습니다.”nbspnbsp“사물에는 두 가지 성질이 있어요. 첫째,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둘째, 다른 면이 있습니다. 즉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고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쉽게 얘기하면 콩을 100개 정도 한움큼 쥐었어요. 이 100개의 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와 빛깔, 모양이 조금씩 다 달라요. 얼른 보면 다 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다릅니다. 그런데 그 콩을 팥과 비교하면 어때요? 콩 사이에 서로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팥과 비교했을 때는 모두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크기와 모양, 빛깔이 다른 데도 같은 콩이라고 말하죠. 콩끼리 비교할 때는 서로 다른 콩이라고 말하지만, 팥과 비교할 때는 같은 콩이라고 말합니다. 또 콩과 팥은 서로 다르지만 채소와 비교할 때는 같은 곡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콩과 팥, 채소를 돌멩이와 비교할 때는 어때요? 같은 식품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콩이라고 말하는 속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콩이에요. 사물에는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동시에 두 가지 성질이 함께 있어요. 다르다 해도 같은 점이 있고, 같다 해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nbsp그런데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같은 점도 없고 다른 점도 없습니다. 즉,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인식을 떠나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것이 진리입니다.nbsp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같다고 인식할 때도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 같다, 다르다 하는 것은 우리들의 인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동시에 상대적입니다. 즉,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는 다만 그 존재일 뿐인데 그 사물을 인식을 할 때 같다고 인식할 때고 있고 다르다고 인식할 때도 있습니다.nbsp수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취미도 같고, 이상도 같고, 종교도 같고, 이렇게 같은 것이 4,5가지 발견이 되면 굉장히 기뻐지고 친해집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서로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보니까 같은 점이 발견되면 호의적 반응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해서 살 때는 너와 나는 같은 점이 많다는 점이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에는 같은 점이 발견되니까 친해졌지만, 애인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계속 다른 점이 발견되니까 싫어지는 마음이 일어나는 겁니다.nbsp이것은 그 이탈리아 친구와 살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고민도 자기 반의 한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서 저 아이만 없으면 살만하다 생각하지만 그 아이가 없어지면 해결될까요? 아니에요. 결혼해서 살면서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할 때도 이혼을 하면 해결 될까요? 아니에요. 더 큰 문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일어납니다.nbsp이태리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살 때는 당연히 한국 사람과 이태리 사람이니까 서로 다르죠. 그 다른 것을 ‘저렇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저 친구는 수건을 저렇게 침대에 던져두는구나’ 하고 바라보세요. 그것은 그 사람의 습관입니다. 그것은 쉽게 안 고쳐집니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거의 못 고칩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는 그 사람의 삶입니다. 양은 양대로, 소는 소대로, 돼지는 돼지대로 각자의 자기 삶을 사는 겁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니까 옳다 그르다 하는 인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nbsp그런데 이게 항상 잘 안되죠. 인간은 항상 자기 기준으로 바라보니까요. 그런데 이 이탈리아 친구를 통해서 그런 나를 극복해 버리면 앞으로 회사에 취직하는데 있어서도 굉장히 자기 단련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이 친구보다는 덜할 테니까요.nbsp이탈리아 친구와 살면서 그것을 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갈등이 생기고, 이것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 결혼을 해도 옛날의 상처가 덧나서 남편과의 관계도 힘들어집니다. 억지로 참았던 습관은 나중에 결혼생활과 직장생활에 모두 장애가 됩니다. 참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움켜쥐고 있다는 겁니다. 존재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용서해줄 것도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기 때문에. ‘내가 내 기준을 굉장히 고집하는구나’, ‘나를 움켜쥐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면 됩니다.nbsp모든 걸 다 극복해야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너무 안 맞으면 같이 안 살면 됩니다. 결혼을 해도 서로 안 맞으면 이혼을 하는데, 룸메이트가 서로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결혼도 다 맞아야 사는 게 아닙니다. 안 맞아도 같이 사는 이유는 헤어질 때 오게 되는 과보가 크기 때문에 안 맞아도 같이 사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하고 싫은 것은 다 안하려고 하는데, 현실의 삶은 좋다고 다 할 수도 없고, 싫다고 다 안할 수도 없습니다. 좋고 싫고 하는 그 자체가 자기 삶의 습관에서 오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nbsp이탈리아 친구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낄 겁니다. 내가 시비를 하는 거죠. 그래서 저 친구한테 맞추는 게 어렵겠다 싶으면 같이 안 살면 되고, 그렇게 되면 방값을 내가 더 많이 부담해야 되겠죠. 이런 이해 관계가 걸린 겁니다. 이해 관계가 걸렸으면 싫어도 참으면 안 됩니다. 참으면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참지 말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렇구나’ 하면서 좋다 나쁘다로 보지 말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살던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업이 그와 부딪히는 걸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면 내가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더 벌더라도 생활 문제는 혼자 살아야겠다 이렇게 바꾸던지, 그것은 내 선택입니다.nbsp이탈리아 친구를 시비할 때는 참거나 욕하거나 하는 것 빼고는 해결책이 없었데, 이것을 내 문제로 보면 그냥 살아도 되고, 수입을 조금 더 늘여서 환경을 바꿔도 됩니다.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의 문제이지 이태리 친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태리 사람 중에서도 이 아이는 특별하다” 이렇게 가져다 붙이지 마세요. 이태리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늘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여기는 그렇구나’ 하면서 여기에 맞추면 됩니다. 엄격하게는 서로 다를 뿐이에요. 이것을 예수님은 뭐라 그랬습니까? 남의 눈에 티끌은 보고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본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으로 삼아 보세요 그 사람과 같이 살면서도 웃을 수 있다면 질문자의 포용력도 넓어지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질문한 여성 분의 얼굴이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활짝 밝아졌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자 분을 찾아가 오늘 강연 참가 소감을 물었더니, 혼자서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그 누구에게 상담받기가 참 어려운데, 오늘 이 자리가 정말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먼 곳까지 손수 찾아와주신 스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에 참석해준 분들을 위해 책 사인과 기념사진 촬영을 해주셨습니다. 강연을 마치니 밤10시가 다 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 붙여진 강연 포스터를 떼는 일을 함께 했는데, 스님께서도 함께 도와주셨습니다.nbsp오늘은 현지에서 강연 담당자가 없어 스텝들이 강연준비까지 모두 하다 보니 스님과 스텝들 모두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뒷정리를 마친 후 수도원 인근 카페에 가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8월30일, 새벽 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원고들을 검토하시다가 수도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수도원 원장 수녀님께 하룻밤 재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수녀님도 Thank you very much” 하시며 감사 인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셨습니다.nbsp이제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강연장인 로마로 갑니다. 세계 100회 강연 중 다섯 번째 강연이 로마 Villa Benedetta 수도원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로마 강연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4.08.31. 24,153 읽음 댓글 44개

2014.8.30. 세계 100회 강연(3) 밀라노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세 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위스 베른시 근교 ‘툰’이라는 곳에 위치한 박향숙 보살님 댁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보살님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고 6시에 오늘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nbsp오늘은 스위스 제네바를 지나 국경을 넘어 프랑스를 경유했다가 몽블랑 터널을 지나 다시 이탈리아 국경으로 넘어가는 일정입니다. 스님께서는 어제밤 구글 지도를 보시며 이동 경로를 연구하셨는데, 제네바까지 원래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으나 국도가 왠지 더 괜찮을 것 같다 하시며 국도를 선택해서 갔습니다. 스님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스위스 시골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스위스는 도시도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지만, 시골도 이렇게 잘 가꾸어져 있다” 하시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도시는 잘 살아도 시골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는 그만큼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 수준이 높은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고 하셨습니다. 또 이어서 도착한 제네바 시의 잘 정돈된 도시 구역들을 보시면서도 “우리 나라도 조금만 정신 차리고 서로 협력하면 통일도 하고 이 정도로 발전시킬 수가 있는데, 맨날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으니...” 하시며 약간의 안타까움을 보이셨습니다.nbsp2시간을 달려 오전 8시 무렵 스위스 ‘로잔’에 들렀습니다. 로잔에는 작년에 정토회와 인연이 되어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스님 강연을 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준 김이화씨가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어제 베른 강연에는 오시지 못했는데, 스님께서 “마침 제네바로 가는 길에 로잔에 들러 김이화씨 얼굴을 잠깐 보고 가자” 하셔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이화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주자장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김이화씨는 “스님께서 직접 찾아오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며 다니면서 차안에서 먹을 빵과 음료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스위스에 처음으로 스님 강연의 인연을 맺어준 김이화씨.nbsp제네바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스님의 하루를 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다시 1시간을 달려 오전 10시 무렵 스위스 제네바를 경유했습니다. 제네바에서는 시내 중심을 지나가다 호수 남쪽 끝부분에 있는 140m 높이의 제트 분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힘으로 하늘에 거대한 물기둥을 만든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러서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nbsp▲ 스위스 제네바. 남쪽 호수가에 위치한 제트 분수 앞에서.nbsp다시 1시간을 달리니 몽블랑 터널이 나왔습니다. 터널에 들어가기 전, 정상 부위에 눈이 녹지 않은 아름다운 몽블랑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휴게소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박향숙 보살님과 김이화 보살님이 싸준 도시락도 먹고 사진도 몇 장 찍고 가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몽블랑 산은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4735미터나 됩니다. 날씨가 화창해 몽블랑의 아름다운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nbsp몽블랑의 설경을 배경으로 휴게소 벤치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다니면서 제때에 챙겨먹지 못했던 남은 음식물들을 모아보니 꽤 많은 양이 되어, 오늘 점심은 남은 음식물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김치만 먹는 데도 꿀맛처럼 맛있었습니다.nbsp▲ 뒤에 보이는 설경이 바로 알프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몽블랑.nbsp길고긴 몽블랑 터널을 지나 이탈리아로 넘어왔습니다. 국경을 넘어오니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차이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탈리아의 시골 풍경은 그렇게 잘 가꾸어져 있지 않아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이 많이 비교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밀라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 교민 분의 소개로 아파트 빈집을 빌려 숙소로 삼고 짐을 먼저 풀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숙소에서 간단히 밥과 김치로 식사를 하신 후 저녁 강연장으로 향하셨습니다. 오후 6시 45분쯤, 오늘 강연 장소인 베스트윈스턴 호텔에 도착해 일찍 도착한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밀라노 강연에는 현지 교민들 총 30여명이 참석해 조촐하게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을 주최한 밀라노 현지 교민 한 분이 “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괜찮아요. 준비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상관하지 않는 것이예요” 하시며 따뜻하게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nbsp▲ 밀라노 강연이 열린 베스트윈스턴 호텔.nbsp밀라노 강연에는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이태리에 거주하면서 갖게 된 한국 사람과의 이질감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법문을 소개합니다.nbsp“밀라노라는 지역의 특성 상 이민을 온 사람보다는 유학을 왔거나 사업을 하기위해 정착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여기서 10년 넘게 살면서 오랫동안 한국을 지켜봤을 때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내 가족이 살고 있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과 사랑보다는 한국에 대한 이질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 마음 이면에는 오히려 기대나 관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멀리 살고 있으면서 계속 동질감을 갖게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조국을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nbsp“지금 이태리에 살고 있고 이태리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왜 자꾸 한국 사람들과 동질감을 가지려고 그래요? 한국말을 이미 할 줄 아는 것도 동질감이고, 얼굴이 노란 것도 동질감이고, 한국 역사를 아는 것도 동질감이고, 이미 동질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이태리에서 오래 살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이질감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예요? 왜 자꾸 자연스러움을 이상하게 보려고 할까요?nbsp형제도 멀리 떨어져 살면 자연히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부도 한집에 안 살고 오랫동안 해외 출장을 가서 떨어져 살다가 다시 같이 살게 되면 불편해지기 마련입니다. 무엇이든지 오랫동안 지속되면 습관이 됩니다. 생명의 종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적으로 분화되고 달라집니다. 나눠져 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안 달라져야 된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nbsp이태리에 살면서 나는 한국 사람과는 인연을 끊겠다 이럴 필요도 없고, 몸은 늘 이태리에 살면서 머리는 늘 한국만 생각한다 이럴 필요도 없습니다. 늘 한국 생각만 해서, 맨날 한국 신문 복사해서 나눠보고 그러는데, 이태리 시민권을 얻었으면 이태리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지 지나치게 한국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나의 출신이 한국이니까 한국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이 봤을 때 한국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일까요?nbsp많은 외국 사람들이 묻기를 “혹시 한반도에 전쟁 나는 것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아직도 전쟁 우려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 이것이 확고부동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싸우는 것을 보세요.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nbsp첫째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전쟁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nbsp둘째,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도 굶어죽으면 돕는데... 굶어죽는 문제는 더 이상 자기 나라 문제도 아니고 인류의 문제입니다. 나라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기아 문제는 이제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북한 사람들의 영양실조가 심각하다고 하면,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남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민족이라면 더더욱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서 이것을 외면한다면 현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세계시민의식 수준에 한참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보복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징벌적 사고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좀 더 고상해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문제는 한국 사람으로서 창피한 일에 속합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나머지 문제들은 어느 나라이든지 있는 문제입니다. nbsp여러분들이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난리 나는 그런 일 말고, 이곳에 사는데 이태리 사람들도 한국을 걱정하는 그런 문제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의 수준에 못미친다 하는 문제들, 즉 평화문제, 인도적지원, 인권문제 이런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nbsp이런 문제들이 근원적으로 해결되려면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다 임시방편적인 해결책들입니다. 통일이 되면 80 이상이 대부분 해결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는 일은 없어집니다. 북한 자체가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10년 20년 걸릴지 몰라도, 통일이 된다면 인권 문제의 개선이 가장 빠른 과정을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내부 갈등도 있겠지만 평화문제도 근원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통일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nbsp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는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인 관점에서도 부족한 것에 일차적으로 먼저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심에 대해서는 선택사항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살면서 자꾸 한국만 잘났다고 하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한국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 앞서가는 세계 시민의식을 가질 때 한국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행사를 해도 한국 사람들은 분리수거를 정말 잘한다더라,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들이 열성적이다, 이런 식으로 인류가 갖는 보편적인 문제에 앞서갈 때 우리 한국이 빛날 수 있다고 봅니다.물론 해외에서도 한국 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요소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거나 편지도 보내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못지않게 우리가 인류로서 나아가야 할 길에 더 많은 기여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물질 수준에서는 유럽에 비해 조금 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만, 정신적인 힘은 너희들보다 더 있다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굉장한 자긍심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물질적인 것에 치중되지 않았으면 해요.”스님께서는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보다 인류 보편적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질문자도 청중들도 모두 스님이 제시해주시는 더 큰 방향에 깊은 감명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조촐하게 진행된 강연이었지만, 내용은 깊고 폭넓은 이야기가 오가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참석한 교민들을 위해 책 사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수고한 봉사자들과 소감 나누기를 함께 하셨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서 밀라노에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설레였다”고 하면서 “스님을 바로 앞에 두고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며 감격스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봉사자들 한분 한분의 소감을 모두 듣고 단주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기를” 하고 기도하셨습니다.nbsp숙소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은 유럽 강연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선희 법우님이 구토를 하고 몸이 계속 안좋았습니다. 장시간의 차량 이동으로 스텝들이 좀 지쳐있어서 최말순 보살님이 시장을 보셔서 간단한 상을 차려주셔서 조촐하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몸이 지친 스텝들을 보시고 조금이라도 강연을 일찍 마치려고 하셨으나 여의치 않았다고 하시며 스텝들의 건강을 살피셨습니다. 기운을 내어서 다시 내일 일정을 시작해 봅니다. 내일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세계 100회 강연 중 4번째 강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4.08.29. 25,693 읽음 댓글 4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