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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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18. 파주운정강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서울JC특우회 강연

아침 7시30분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기자회견을 위한 최종 마무리 회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된 것을 점검하고 내일 행사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10시30분부터는 파주 운정행복센터에서 올 상반기 마지막 강연으로 730여명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마무리 했습니다.nbsp운정행복센터는 이번에 지은 새건물이다 보니 무대위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무대앞 맨 앞자리에만 자리를 깔고 앉는 것이 허락되어서 일부는 바닥에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nbsp 스님을 직접 뵙고 싶어 왔다는 분, 5학년인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언어습관도 좋지 못한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을 구하는 분,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인데 태교를 잘하는 방법과 어떻게 아이를 잘 키울수 있는지를 묻는 분, 6살 아이가 예민한데 내가 잘 되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아이와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인 분, 잠에서 일어나는 고통, 일하는 것이 두렵고, 자신을 책임지려하지 않으며 항상 몽롱하고,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 중3아들이 있는데,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면서 이제 고등학교도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제주 4·3항쟁에 대한 상처가 있는데, 이런 경우 학살한 사람이 과보를 받는지, 명령한 사람이 받는 것인지, 국가가 지시를 했는데, 누가 과보를 받는지 묻는등 다양한 분들이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오늘은 2013년 희망세상만들기 100강 중 상반기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오늘 행사를 준비한 활동가들은 상반기 50강을 무사히 마침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간단한 케익 커팅식 후 스님께서는 그동안 수고해준 활동가들을 격려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와서 2시간 강연을 하면 되는데, 그 2시간 강연을 위해 며칠동안 홍보를 하고 당일에도 미리 와서 준비하고 마치고 나서도 뒷정리하신다고 수고하셨다면서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파주지역 활동가들은 이 지역이 통일된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서 올 상반기 강연을 무사히 마무리 함을 자축하였습니다.nbspnbsp 파주 강연을 마치고 바로 홍릉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연구인의 날을 맞아 스님께서 ‘과학자들, 법륜스님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약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과학도들에게 “한면만을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하고 전모를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하고 이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지식, 사상을 내려놓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면을 움켜잡고 있으면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nbspnbsp 불자가 불법에 사로잡혀도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스승의 말이나 경전의 말에만 사로잡혀도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갖는 본래 의미를 봐야 하는데 그림자만 쫓느라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것이 편견이고, 착각이죠. 내가 지구에 머무르고 있고 지구가 돌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에 놓고 보니 바깥이 도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눈으로 봤다고 하는데 이렇게 본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nbsp 경험의 세계가 중요하면서도 경험이 갖는 한계가 있는 거예요. 창조의 핵심은 탐구예요. 탐구해야 창조가 일어나지, 모방·답습, 여기엔 창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창조하기가 좀 어려운 시스템이예요. 지난 백년간 사회의 모든 부문이 모방을 해왔잖아요. 우리가 닮아야 할 모델이 있어서 따라 배워 압축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정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건데, 아직도 과거처럼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는 얘기입니다.nbspnbsp 일본은 이런 한계점에 이미 20년 전에 도달했는데 창조를 못하니 그 장벽에 막혀 정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장벽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뛰어 넘으려면 창조를 해야 합니다. 새로움을 연구해야 하는데 우린 그런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아무 훈련과 준비가 안 되어 있는거죠. 모방의 최첨단에 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방에서 질을 좀 개선한 것이지 창조해 낸 것은 아니예요. 싸이 같은 경우가 창조에 해당합니다. 흉내내서 이른 게 아닙니다. 이런 것이 대중문화에서 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류에서는 창조가 안 일어납니다. 싸이는 가수 중에 이류였어요. 이류니까 몸부림을 치고, 엄청난 고통, 고생,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터진 거예요. 대중문화는 다른 부문에 비해 기존질서의 억압이 덜합니다. 그래서 가능한거예요.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 법률, 사회제도등은 아직 어림도 없습니다. 오직 모방시스템이예요. nbsp 창조로 가려면 아이들 교육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창조를 해야 합니다. 뭘 창조하던지. 모든 분야에 창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과학기술은 좋은 말이에요. 근데 정말 그렇게 가겠느냐는 문제예요. 창조는 일이년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방은 실패가 용납 되지 않지만 창조는 열 개중 9개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 입니다. 창조가 일어나려면 사고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이 또하나 과제입니다.nbspnbsp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사실을 알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느냐입니다. 근데 우리의 학문은 죽은 학문입니다. 지적 축적만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제 더 이상 주입식으로만 교육해서는 안됩니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시험칠때 아이패드 들고 가서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은 찾아서 하면 됩니다. 지난 100년은 지식이 유용했지만 미래 백년은 지식만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직업의 문제도 많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여러분의 과학기술자로서의 상상력을 높이는 데에도 정신적 자유가 없으면 여러분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기술자는 수행 할 여가가 없다가 아니라, 정말 이제는 모두 그런 걸 다 열어놓고 연구대상으로 봐야 합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정신이든. 공통점이 있으면 공통점을 찾고, 다른 것이 있으면 다른 것을 찾고. 우리가 그렇게 가야 새로운 기술, 새로운 아이디어 얻을 수 있습니다. 늘 생각이 갇혀 있다면 더 이상 진보는 없습니다. 이제 모방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니 상상력을 더 높이셔서 연구해나가시기 바랍니다. nbsp저녁 7시부터는 서울 JC 특우회에서 진행하는 리더스 클럽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약 6개월 과정으로 리더 교육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약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이곳에서도 무엇보다도 개인이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nbsp 오늘 아침 7시 30분 조찬모임부터 해서 4개의 일정을 소화한 후 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내일 행사를 점검하셨습니다.nbsp 내일은 프레스 센터에서 ‘평화와 통일를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발표가 있고 평화연구원에서는 ‘한반도 핵 위험 시대와 평화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있습니다.

2013.06.20. 12,397 읽음 댓글 2개

2013.6.17 양천구 강연 및 통일의병 창립대회

강연전에 구청장권한대행인 부구청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오늘 양천구 강연에는 약 약720여명이 참석하여 각자의 고민들을 내어 놓았습니다. nbsp 1살된 아이가 있고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겨서 별거를 하고 있는데 이혼을 하는 것이 좋은지, 같이 살아야 하는지 고민인 분, 직장을 옮기면서 기존에 있던 직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계속 이 직장에 있어야 하는지 옮기는 것이 좋은지 고민인 분, 남편이 목에 생긴 혹을 4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아들이 장가를 못가서 걱정인데, 죽기전에 아들을 장가보낼 걱정이신 분, 과학자가 꿈이며 이번에 대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연구실이 쥐 실험을 하는 곳인데, 불교신자로서 불살생에 어긋나는 것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고1딸이 작년부터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아이가 병도 있는데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인 분, 초등학생때부터 비만인데, 작년에 108배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는데 올해 초에 살이 찌는데, 다이어트 하는 기도문을 받고 싶다는 분, 고부갈등으로 힘들어 하는 여성분등이 고민을 내어 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nbsp 그 중에서 한 젊은 여성분은 36개월, 5개월 된 2명의 아이가 있는데, 고부 갈등으로 힘든 자신의 상황을 내어 놓았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남편이 사람이 괜찮아요? 그 괜찮은 아들을 누가 만들었어요? 그 괜찮은 아들을 낳고 온갖 정성들여 키워서 괜찮은 사람을 만들어 놨더니 젊은 여자가 와서 채갔어요. 그러니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질문자도 애를 키우는데, 아들을 키운 엄마가 아들에 대한 소유욕이 강할까요? 결혼한 부인이 더 강할까요?. 내 아들이다고 하는 소유욕이 더 강합니다. 시어머니가 보기에는 잘 키운 내 아들을 뺏긴 것 같은 감정이 있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기분 나쁜 것을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밥 먹을 때 찬밥 남으면 며느리 먹도록 하겠지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경쟁 상태에 있고 질투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머님의 심정을 이해해서 첫째, 남편의 원주인은 시어머니이고 나는 가끔 빌려 쓰고 있다. 빌려 왔으니까 남편이 벌은 수입의 일부를 원주인에게 줘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 집에 원주인이 오면 돌려줘야 합니다. 자리를 양보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시어머니는 주인을 알아보네 하고 시비를 덜 하게 됩니다. 그런 심리를 이해한다면, 시어머니께 잘 키워 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기도를 해야 하고, 내가 뺏어 와서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하고도 대화가 풀리게 됩니다. 남편은 엄마입장에도 서지 못하고 부인에게도 서지 못하고 하다보니 남편은 힘들고 이렇게 중간에 끼어 있으면 단명하기 쉽습니다. 어머님은 자기 바라는 마음에서 아들에게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남편은 아내에게는 아내마음을 받아주고 엄마에게 가서는 엄마마음을 받아줘야 하는데, 중재를 설려고 하니까 싸움만 커집니다. nbsp 누군가가 괜찮게 키워놓은 사람이랑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의 갈등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누구집의 아들로 착실하면, 누구집 남편으로는 착실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어쩔수가 없습니다. 시어머님에게 절을 하면서 내 남편 키워줘서 감사합니다. 뺏어 와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어머님과의 갈등은 괜찮아집니다. 시어머니의 구박이 이정도인 것이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nbspnbsp 지금 시어머니께 숙이면 20년 후에 내 아이들이 나에게 속 썩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렇게 신경쓰고 마음이 불안정하면 안됩니다.” 라고 하시며 스님께서는 질문자 옆의 사람에게 마이크를 줘보라고 합니다.nbspnbsp 마이크를 잡은 남자는 전에 다른 강연장에서 아내의 고부갈등으로 인해 고민이라면서 스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아내를 직접 데리고 와서 스님께 답을 구했던 것입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왜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고생을 시켜요? 남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나를 키웠다고 해도 20살 넘어 결혼을 하면 부모님 집에서 회원탈퇴를 해야 하는데 회원탈퇴를 하지 않고 이중가입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아들이 회원탈퇴를 하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nbsp 결혼생활은 서로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남편은 부모의 가정에서 회원탈퇴를 해야 합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는 둘이 잘 살기만을 바래야 합니다. 지금 두 사람은 스님이 각자에게 한 말만 듣지 남편이나 아내에게 한 말은 신경 쓰지 말아야합니다. 욕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nbsp 이렇게 스님께서는 결혼한 부부가 원만히 살아가려면 시어머니, 남편, 며느리로서 각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nbsp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한겨레 하니 TV에서 ‘나이드는 법’이라는 주제로 지난번에 이어 세 번째 대담이 진행되었습니다. 5시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외부인사와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 7시부터는 ‘새로운 백년을 여는 통일의병’ 창립대회가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약 150여명의 의병이 되기를 희망했고 오늘 창립대회에는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nbsp 통일의병은 오늘 창립이 되기까지의 경과보고를 하며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늘 통일의병 창립대회 격려사에서 “이게 얼마만입니까? 지금부터 적어도 이 삼십년 전에, 어떤 분은 사십년 전 청년 때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이 한몸 바쳐보겠다고 마음을 내어 어떤분은 군대 가서 국가를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했고, 어떤분은 산업화 현장에 가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하면서 건설에 매진했으며, 어떤 분은 우리도 한번 자유롭게 살아보자 해서 독재에 맞서서 목숨 걸고 투쟁도 했습니다. 모두 한 가지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여러 가지 일들을 다방면에서 열의를 가지고 해 왔습니다.nbspnbsp 그런 과정에 나름대로 고생도 하고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고 성공도 해서 이렇게 여기에 이르렀는데 어쩌면 지금 돌아보면 우리는 지위도 얻었고, 명예도 얻었고, 재물도 얻었고, 지식도 얻었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 가졌던 그 열정,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그 열의, 뜨거운 가슴,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산 지가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몸은 이렇게 늙어 가는데 다시 한번 꺼져가는 불꽃이 불타듯이 여러분들이 마치 이십대 청년처럼 시대적 소명을 갖고 시대적 과제인 통일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재능을 마지막으로 한 번 쏟아 넣어 보자고 이렇게 결의를 한 것은 어쩌면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면 재물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러나 잃어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예가 소중한 것 같지만 인기란 것은 한 때 물거품이예요. 우리들이 가졌던 그 정열, 미성숙된 서투르지만 젊을 때 가졌던 그 투지, 정열이야말로 삶의 희망이고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농사짓다 일어나고, 사냥하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어난 의병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 몸 던진 사람은 그 이름이 빛나며, 빼앗긴 나라 되찾기 위해 젊은 나이에 희생한 사람들은 그 이름이 빛납니다. 어쩌면 더 크게 보면 이런 소중한 인생에 이름 따위 남아 뭐하며 빛나면 뭐하겠느냐. 큰 뜻을 품고 사는 사람은 비록 전투에서 죽고, 병들어 죽었다하더라도 그 기개는 누구도 꺾을 수 없습니다. nbsp 그런 면에서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의병에 가입하고 의병의 뜻을 세운 것은 꼭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마음이 뜨거운 청년들은 신분·지위·역할을 논하지 않고 누구나 뜻이 같으면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젊음을 되찾아보라는 것입니다.nbspnbsp 이제 시절인연이 도래했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때가 오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고, 아무리 때가 와도 씨앗을 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바라던 통일의 기운, 천년만에 민족의 운이 트이는 그런 시절인연이 점점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런 준비, 씨앗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꽃 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땅속에서 싹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는 그 기간을 인내할 줄 알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정말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통일이 된 뒤에 어쩌면 오늘 6월 17일이 소중하게 기억될 것입니다. 통일의 물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통일이란 영토의 통일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통일은 마음의 통일입니다. 전라도 사람도 김유신장군 묘에 절하고, 경상도 사람도 계백장군 묘소에 참배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통일된 뒤에 북한의 열사능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존중하고, 북한사람들도 국립묘지 와서 인사하고 다같이 소중한 역사의 유적지인 국립묘지로 남을 것입니다. 바로 원수의 능에 절을 하고 참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단순히 통일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nbspnbsp 그렇게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국가의 통합, 영토의 통합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중생에서 부처로 승화되는 것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통일은 대한민국 통일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의 통합으로 승화되어가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아가 새로운 인류문명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는 그 출발은 통일입니다.nbsp 오늘 우리의 출발은 대한민국의 통일을 향해 가는 출발이지만, 통일 한국은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출발이 됩니다. 이것이 한 세기 백년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통일해서 이 세기 중반에 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이세기 후반에 아시아 시대를 가능케 할 때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런 꿈을 한번 꿔보자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다시한번 가슴뛰는 삶, 대륙의 중심으로 선 대한민국을 가진 자긍심을 일깨워주셨습니다. nbsp 이렇게 창립대회를 마치고 뒷풀이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스님께서는 건배사에서 “통일 해버리자” 라며 간단하지만 단호히 그리고 정열적으로 해주셨고, 참가자들도 다시 한번 소리높였습니다. 오늘 같은 기세라면 정말 통일 해버려질 것 같습니다.nbsp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마무리 하고 내일은 조찬모임부터 해서 파주 강연, kist 강연, 리더스클럽 강연등 4개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3.06.19. 14,515 읽음 댓글 8개

2013.6.16 용성조사 탄생 제149주년 기념식 및 군산 흥천사 법회

그동안 스님의 소식을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에게 미리 공지하지 못하고 며칠 소식을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nbsp 스님께서는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스리랑카 JTS사업장을 방문하고 오면서 싱가폴 법회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사회각계각층의 지도급 인사들과 비공개적으로 만나 지금의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우리사회의 진보·보수, 여·야, 각 종교지도자등 사회각계각층을 모두 아울러서 국민통합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스님께서는 한분한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의견을 나누고 의견을 좁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를 따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궁금해하셨을 분들에게 다시 한번 소식 올리지 못한 점 사과말씀 드립니다.nbspnbsp 그러나 스리랑카 일정은 취소했으나 싱가폴 법회는 미리 홍보가 많이 된 상태라서 어쩔수 없이 지난 14일 밤 비행기로 가셨다가 법회만 마친후 15일 밤에 서울에 도착하셨습니다. 싱가폴 법회는 한국국제학교에서 진행되었는데, 약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쳤다고 합니다. 어제밤 늦게 도착한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에 또다시 죽림정사로 이동했습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죽림정사에서는 약 620여명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석가모니 괘불 점안식 및 용성조사 탄생 제 149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nbsp 석가모니 괘불 점안식은 전통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인간문화재인 구혜스님께서 직접 진행해주셨습니다. 오늘 행사에 참석한 영남권 가을불대생, 중부권 봄, 가을 직능 불대생들은 아마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nbsp 석가모니 괘불은 동국불교미술연구원 박태석 원장님께서 직접 그려서 기증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괘불 점안식이 끝난 후 바로 탄생 기념식이 진행되었습니다.nbsp 오늘 기념식에는 오등선원 조실스님이신 대원 큰 스님등 약 10여분의 스님과 620여명의 대중들이 함께 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인사말에서 “용성조사님께서 태어나고 수행하셨던 젊은 시절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이 못살겠다고 일어난 삼도민중봉기, 국모시해, 동학혁명,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뒤이어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고, 군대가 해산되었으며,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민족이 일제에 식민지 지배를 받는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nbsp 용성조사님께서는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시고, 자라시고, 출가하시고, 도를 이루시고, 또 교화를 하셨습니다. 특히 조선조 500년동안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배불, 척불의 탄압에 의해 불교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불법을 다시 일으키는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운동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한평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러한 공덕으로 나라가 해방되었지만, 강대국에 의해 나라가 분단이 되고 동존상잔의 비극으로 남북은 지금까지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대한민국은 30여년간의 노력으로 산업화에 성공했고, 또, 30여년간의 노력으로 민주화에 성공해서 전세계에서 가장 단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당당한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이런 우리 국력을 기반으로 해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남북을 통일하고,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룩한다면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려, 발해 멸망이후 천여년만에 옛 영광을 되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국운을 예견하시고 유훈 십사목을 내려서 그 십사목을 실현함으로 해서 무한한 복을 지어서 미래 800여년의 국가 대운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땅의 불교를 바로 정립해서 앞으로 올 불교중흥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민중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시고 독립과 통일의 기초를 닦아서 통일코리아의 비젼을 열어주셨습니다. nbsp 내년에 용성진종조사님의 탄생 150주년을 기해서는 미래의 새로운 불교, 새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하면서 조사님의 삶과 사상을 다시 되돌아 보는, 그래서 그 유훈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nbspnbsp 더 나아가서는 대한 민국의 모든 국민과 함께 하는 기념식을 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오늘은 그런 일련의 준비를 시작하는 첫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라며 우리가 용성조사님의 후손으로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받들어서 열심히 활동해 나가자고 격려하셨습니다 기념식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난 후 즉문즉설의 시간이었지만, 오전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스님께서는 용성조사의 일생에 대해 그리고 죽림정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해 주시면서 우리는 용성조사의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의 3대 지표를 이어서 바른 불교를 생활화하고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법륜스님께서는 도문 큰스님과 내년도 기념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고 군산 흥천사로 향했습니다.nbspnbsp 군산 흥천사는 지난 일주일 동안 법화경 사경을 하고 회향을 하면서 스님께 법회를 요청하셔서 진행되었습니다. 법화경 사경을 회향하신 분, 흥천사 신도님들, 일반인들 해서 약 300여명 참석한 가운데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nbsp 먼저 스님께서는 “법화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와 똑같은 중생의 모습으로 와서 부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끌어 주셔서 우리도 꿈에서 깨어 부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주 요지입니다. 법화경 독송을 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법화경에는 여성도 성불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불가촉 천민도 부처가 될 수 있고,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nbsp 불교신자냐 아니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절에 다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년을 기도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깨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몽을 꾸다가 눈을 뜨듯이 이도리를 깨달으면 설령 이세상에서 살생하고 도둑질하는 죄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고, 만약 이 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태산같이 보시하고 청정하게 살고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천상에 이를수는 있어도 해탈열반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근본이 잠에서 깨는nbsp것입니다.nbsp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행복과 불행은 꿈속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법화경을 독송하고 사경 하셨으니 그 공덕이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면 그 공덕이 아무리 크더라도 눈뜨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경은 눈뜨는 소식을 이야기 하는 경입니다. 그것은 나에게만 이익이 아니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라며 법화경 사경을 회향하는 것을 계기로 개인이 어떻게 수행정진해야 하는지를 다시 일러주셨습니다.nbsp 법회를 마치니 10시가 다되었습니다. 내일 아침 7시 30분부터 조찬 모임이 있으셔서 바로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2013.06.17. 16,990 읽음 댓글 16개

2013.6.9 중부권 경전반, 불교대 특강수련, 부산 동아대 북콘서트

오늘은 문경에서 오전 7시 중부권 경전반 특강과 9시30분 불교대 특강이 연달아 있었기 때문에 두북에서 새벽 4시 20분에 출발했습니다. 오전 7시 경전반 특강에는 약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 공부하면서 궁금한 점들을 질문지에 적어서 질문했습니다. nbsp 서울로 가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 삼백배 정진중에 400배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아 분별심이 일어나는데, 염주를 방편삼아 기도해야 하는지, 염주없이 기도해야 하는지 질문하시는 분,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무아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고민이신 분,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 있는데 이것은 시간축의 이동인지 물으시는 분,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불교의 정의가 어떻게 되는지 답을 구하는 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보살행을 하는 정토행자가 꼭 해야 하는 기도문이지 않나 하는데 스님의 의견은 어떤지 동의를 구하는 분,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과보를 신속히 적게 받을 수 있는지 물으시는 분, 어머니가 번 돈으로 정신질환을 낫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있는데 맞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 정진을 하다보니 상대의 마음이 보여서 더 까칠해지고 있는데, 부처님처럼 자비롭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고민이신 분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질문에 모두 답해주시면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오늘 질문은 경전반 수준도 안되는 질문이며, 또 경전반 수준의 질문이라고 하시면서 솔직히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볍게 내어 놓는 것은 경전반 수준의 질문이고, 그러나 그 질문의 내용은 경전반 수준이 안되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솔직히 내어놓고 이야기 하고 나누는 것이라고 계속 함께 나누고 정진해 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 이어서 9시 30분부터는 대수련장에서 2013년 중부권 봄 불교대 약 150여명이 참석해서 특강수련이 진행되었습니다. nbsp 불대생들은 이제 막 정토회에 들어와서 배워가는 중이라 그런지 다들 새로운 얼굴로 스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조그마한 것에도 큰 호기심을 나타내었습니다.nbsp 중도에 대해 일상에서 지킬 수 있도록 설명을 해달라는 사람,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데 더 나은 걸 바라는 욕심도 버려야 하는지, 그럼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사람, 명상할 때 다리가 아프고 호흡이 불편한데, 움직여도 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좋고 싫은 마음에 끄달리지 말라고 하는데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거나 하지 않는 지혜를 가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아버지가 스님이었는데, 그때는 기복불교였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 석가여래부촉법이 어떻게 전해지는지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이어졌습니다.nbsp 저녁 5시에는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강연전에 부산지역 학자이신 황한식 교수님과 만남이 휴고라는 작은 찻집에서 있었습니다. 찻집 주인께서는 스님을 알아보시고 스님 나오실 때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으시면서 스님께 원두커피와 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도 강의후 다시 되돌아 와서 감사의 뜻으로 금강경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nbsp 지금 대학은 시험기간이라 그런지 오늘 북콘서트의 좌석이 많이 비어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젊은 청년들도 많았지만 장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nbsp 강연에 앞서 먼저 울산지역 길거리 밴드인 ‘룸비마틴’의 공연으로 분위기를 흥겹게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기념사진도 찍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약간은 암울해 보이는 우리의 미래를 밝게 가슴뛰는 상상속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남북한은 동시에 UN에 가입한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국가로서의 북한은 존중해야 합니다.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정부가 독재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국가로서 그 나라들을 존중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관행입니다. 그러나 독재정부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 또한 분명해야 합니다. 북한은 현실적으로는 최대의 적이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통일을 해야 하는 상대방입니다. 두가지 성격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nbsp 아무리 일본이 친해도 통일의 상대는 아닙니다. 미국도 통일의 상대는 아닙니다. 통일의 상대는 북한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두가지 성격을 어떻게 통합해서 봐야 하느냐면 멀리 미래를 봐야 합니다. 남북한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고 통일되는 것이 최고의 이익입니다.nbsp 일본과 우리가 침략에 대한 사과문제, 위안부 문제등 아직도 이런 여러 문제가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한·일간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본과 우리가 수교를 안하는 것이 낳았을까요?nbspnbsp 우리가 중국하고 국교 정상화를 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나라의 국익에 어떤 것이 더 좋았을까요? nbsp 36년간 식민통치한 일본하고도 이십년만에 수교를 했고, 625전쟁에 100만 군대를 보낸 중국하고도 이십년전에 국교 정상화를 했는데. 우리 남북은 정전협정이 60년이 되었는데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강력하게 대응을 해야 합니다. 남북은 현실적으로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북한이 열악한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동일하게 볼 수 없고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진보,보수를 떠나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전쟁도 원하지 않고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럴려면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남북관계의 원칙을 정한다면 남한 안에 이견이 줄어들 것이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도 크게 바뀔 것이 없습니다.nbspnbsp 현재 일본의 수준을 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에 서기는 어렵습니다. 일본은 경제력은 뛰어나지만 외교나 문명의 중심이 되기 어렵고,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경제력도 커지고 군사력도 커지만, 민주주의나 소수자에 대한 태도, 인권등을 볼때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에 서서 문명을 이끌어나갈 수는 없습니다.nbspnbsp 현재 남북은 어떤가요? 지금 개성공단을 가지고 하는 것을 보면 애들 싸움도 아니고, 이 수준으로는 동아시아의 중심이 되기도 어렵고 동아시아를 이끌어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한국이 남북간의 적대적인 관계를 넘어서 화해를 하고 통일을 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 생길 것입니다. 통일한국이 남한에는 국립묘지가 있고, 북한에는 열사릉이 있는데nbsp 이것을 국립묘지화 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역사 속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사람이 김유신 장군묘에 와서 인사하고 있고, 경상도 사람이 계백 장군의 묘에 가서 인사합니다. 이는 삼국이 통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nbsp 이처럼 통일한국은 분단과는 차원이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우경화 소리나 행동들을 한국인이 포용해야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일본은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정말 부강해지고 우뚝 선 국가로 올라가려면 경제만으로는 무리입니다. 과거사를 반성해야 하고 정신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nbspnbsp 인류의 과거문명을 네것이다 내것이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이 그곳에 살았다고 다 우리 것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 우리 조상이 그곳에 살았다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폭넓은 시각으로 포용하면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만한 나라가 한·중·일 세 나라로 보면 한국 밖에 없어 보이는데 지금의 한국으로는 어렵습니다. 통일한국의 정신 수준이면 가능합니다. 통일한국은 새로운 백년의 첫 출발이지 비전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때 한국의 위상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nbspnbsp 이것은 이루어지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한 번 꿈 꿔 볼 수 있는 미래 아닙니까? nbsp 분단된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도 더 이상 비전이 없습니다. 일본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으로 서려면 주변국에게 이익을 주고 공동번영을 추구해야하며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일본은 정체되고 왕따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일본의 미래는 없습니다.nbspnbsp 중국도 패권 행세를 계속해 나가면 소수의 저항으로 인해 언젠가는 쇠망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공동번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분단으로는 절대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 출발점이 통일이라는 것입니다. nbsp 통일은 새로운 백년의 시작이고 고구려,발해 시대의 영광을 다시한번 되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승화시켜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합니다. 국민 통합, 남북통합이 동아시아 통합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원대한 꿈을 꾸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라며 그동안 잔잔해져 있는 우리 청춘들의 피를 다시 뛰게 해주셨습니다.nbsp 이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고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내일 아침 7시부터 8건의 미팅이 있습니다.

2013.06.10. 15,743 읽음 댓글 24개

2013.6.8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오늘 스님께서는 새벽부터 쉴틈없이 바삐 움직였습니다. 텃밭의 열무도 뽑고, 텃밭의 풀도 뽑고, 아침에 먹을 상추도 뜯었습니다.nbspnbsp 상추쌈으로 아침을 먹고 난 후 다시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호박이 넝쿨을 잘 올리게 하기 위해 대나무 줄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 가고 있는 텃밭과 마당에 물을 주고 나서야 오전 일을 마무리 하고 원고 점검등 업무를 하셨습니다.nbsp 오후 1시부터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의 졸업기행이 경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nbsp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 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역사기행과 강연이 있었습니다. nbsp 법흥왕릉에서 모여서 신라의 국가초석을 마련한 법흥왕에 대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신라 법흥왕때 율령을 선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개방개혁정책을 폈으며 가야와 합병을 했습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합은 서로 합의에 의한 통합이었고 그것은 우리가 이루어 내야 할 통일의 모델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태종무열왕릉에서는 무열왕인 김춘추의 활동, 역할. 에피소드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태종무열왕릉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지나가던 한 초등학생이 스님을 보더니 ‘법륜스님인 줄 알았다’라고 하길래 스님께서 ‘법륜스님인데’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초등학생은 엄마가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열심히 본다고 그래서 알고 있다고 하며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nbsp 김유신 장군묘에서는 가야의 왕족으로 신라의 군사책임을 맡으며 삼국통일에 기여한 내용, 김유신에 얽힌 설화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 능지탑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을 화장한 터를 기리며 쌓은 탑입니다. 능지탑을 지나 선덕여왕릉으로 이동하면서 선덕여왕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대중들을 이끄는 리더십이기 보다는 능력있는 사람들을 세워서 이끌고 가는 리더십을 지녔으며, 또 선덕여왕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선덕여왕릉을 거처 호국불교의 상징인 사천왕사지를 거처 동양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황룡사지로 이동했습니다.nbsp 백고자 법회가 진행되었던 황룡사지의 강당터에서 우리는 천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원효스님의 이야기를 스님을 통해서 들으면서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nbsp 저녁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오늘 하루 경주역사기행을 정리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nbspnbsp “신라는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국가로 우리 민족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되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또 역사의식이 부족한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됨으로 해서 우리 민족에게는 어떤 긍정적 요소와 어떤 부정적 요소가 있는가? 이것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의 경주기행의 목적이었습니다.nbsp 첫째, 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는 15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라는 가장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법흥왕 때 개혁개방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가야와 합병을 할 때 합의통합을 했기에 가야의 인적자원을 신라에 모두 유입하게 되었습니다. 11이 2를 넘어서 3이 되고 5가 되는 상승효과을 가져왔습니다. 신라가 나중에 쇠퇴했을 때 무력으로 통합한 백제는 후백제, 고구려도 후고구려를 건국했지만, 가야는 후가야를 건국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가야가 신라의 백성으로서 지도자로서 융화되었고 신라인으로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라가 통일은 했지만 역사의식 부재로 민족 전체로 볼 때는 영토의 축소를 가져왔습니다.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킴으로 우리 역사계승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신라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당시는 명백하게 신라와 발해라는 2국 시대였고 신라가 그런 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신라가 영토를 축소시켰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라는 인문학에 있어 중국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난 사상가를 배출하고 기술 분야에 있어서도 뛰어났고, 신라의 뛰어난 문물이 당나라에 전래되어 당에 신라풍,신라방이라는 신라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이 있었습니다. nbsp 문제는 발해가 멸망하고 후삼국이 고려에 의해서 계승되면서 영토면에서는 신라의 영토와 신라의 국민, 신라의 문화 즉 신라를 그대로 고려로 계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역사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하며 발해유민의 10퍼센트가 고려로 유입되었습니다. 고려는 역사의식이 있었기에 그 이후 거란·여진·몽골의 침입으로 세 민족과 거의 500년을 싸우면서 역사가 이루어졌는데 거기서 고구려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nbspnbsp 발해가 망하고 혼란기에 고려는 신속하게 북진정책을 써서 평양성 이남의 신라영토에서 평안북도까지 점령해서 영토를 압록강유역까지 확대를 했습니다.그러자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는 발해의 옛 땅은 요나라 땅이라며 30만 대군을 몰고 고려를 침략했는데, 이때 서희가 가서 담판을 했어요. 그때 소손녕이 ‘우리는 발해를 계승한 나라다.왜 너희들이 불법 점령하느냐’고 하자 서희가 ‘만약 너희 말이 그렇다면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옛 땅은 절반은 우리 땅이다’라고 하여 단판을 지었습니다. 만약 고려가 고려라는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역사의식이 없었다면 담판은 불가능했겠죠.이것이 우리 외교사의 최대의 성과로 보는 서희의 담판입니다.nbspnbsp 우리는 발해의 역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신라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학이 들어오면서 발해의 역사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이제는 발해의 역사가 민족사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가 남북국시대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nbsp 이런 면에서 보면 결국 환웅천왕께서 이 땅에 신시를 세우고 나라가 시작된 것이 6000년 전, 4300년 전 단군왕검에 의해 조선이 되고, 해모수에 의해 부여가 되고,거기서 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게 고구려고 그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했다 할 수 있습니다.영토와 사람과 문화는 신라를 계승하고 역사의식은 고구려, 발해를 계승한 나라가 고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 그러나 조선에 들어 유생들이 자진 사대의식. 고려는 저항하다 힘에 부쳐 사대를 했지만, 조선은 자발적 사대를 했기에 우리 역사로 본다면 역사의식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일제침략기와 분단시기를 거치고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지원으로 분단된 상황에서도 전쟁의 폐해를 딛고 세계 14위 국가가 될 정도로 발전 해왔습니다. nbsp 그러나 대한민국은 통일에 대한 확실한 입장이 부족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에 대한 입장도 약하고, 민족문화에 대해서도 취약합니다.그러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우리가 가진 장점들개혁적,개방적 입장,민주화, 인권신장, 경제성장등 이런 장점들을 살려가면서 역사의식,통일에 대한 확고한 입장,미래에 대해 국가의 위상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진다면 대한민국이 고구려 멸망이후 천년 만에 동북아에서 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그 분기점에 놓여 있습니다.nbsp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지식을 쌓으려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거기에 필요한 아이디어나 이런 경험을 얻고자 해서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신라역사를 돌아보면서 신라가 국력을 키운 이유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에 있어서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유적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공부를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서 어떻게 통일을 할 것인지가 나올 것입니다.nbspnbsp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라서 세계는 미중의 패권이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지금 이 시간에 시진핑과 오바마가 앉아서 세계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미중은 경쟁적이면서 협력하는 관계로 거기에 한국문제도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nbsp 제가 말하는 통일은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문명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한은 전혀 자신의 이익과 권리에 대해 크게 관심 없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왔는데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그걸 누가 어떻게 해볼 수 있겠어요? 우리가 여기에서 만약 남북한이 조금만 감정적인 경쟁이 아니라 민족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입장에서 서로가 생각한다면 그리고 미국이 북핵이라는 단기적 이해가 아니라 장기적 이해를 생각해본다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한다면 미국의 영향이 큰 상태에서 통일한국을 꿈꿔볼 수도 있습니다.nbsp 북한이 중국이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만 빠른 시간 내에 통일이 가능하고. 만약 영향권에 들어가서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과거 한국정부가 미국영향권 내에 들어선 것과 같아 통일은 상당기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 지난 50년 간 아쉽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역학적으로 통일이 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때 북한이 힘이 세서 밀어붙여 통일을 하려했지만 미국이 용납을 안했잖아요.힘으로 밀어붙이는 통일은 불가능하고 평화적 통일은 북한이 자주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북한이 중국말을 덜 듣도록 해야 하는데 북한이 중국에 고개 숙이도록 우리정부가 말하고 있으니 중국정부로서는 어부지리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nbsp 통일의 기회가 십년정도인데 한국이 아직도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지만 지금은 조금 자유롭습니다. 지금 이 시기가 강대국의 세력이 교차되는 세력교체기에 잘하면 통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지난 5년 기회를 잃어버렸고 앞으로도 또 잃어버린다면 통일의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이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통일의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nbsp 이것은 통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새로운 백년의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문명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문명의 중심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닙니다.  소비에트가 세계의 중심이 되 지 못한 것은 인권, 철학 등이 빈약해서입니다.nbspnbsp 동아시아 시대를 이야기 하지만 현재의 동아시아 각국의 수준으로는 어렵습니다. 일본의 경우 철학이나 도덕성, 역사의식등이 부족하잖아요. 경제만 발달해있고 규모만 크지 일본정치인들의 수준은 반문명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수준입니다.nbsp 중국은 민주주의, 인권, 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면 문명의 중심국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이 세계문명의 중심이었을때는 당나라 시기인데, 당나라는 주변국에 대해 굉장히 개방적이었고, 사상도 중국 전통사상과 인도불교가 융합했고, 신라, 발해, 베트남 서역까지 당나라와는 굉장한 우호관계를 형성하며 각국의 인종, 문화 , 기독교문화까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럴 때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nbsp 한국은 어떠냐면 개성공단만 봐도 한쪽에선 노동자 빼고, 이쪽에선 기업주 빼고, 저쪽에서 이것 하자고 하니 저것하자고 하고 이렇게 일곱 번을 왔다갔다 하는데 트집을 잡고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수준입니다. 이 수준을 갖고 어떻게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동아시아의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별로 없습니다. nbsp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한다는 것은 철천지 원수가 화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국립묘지를 합한다면 나를 죽인 원수에게 가서 참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미워하고 증오하고 적대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그걸 이룬다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도덕성이고 이러한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아픔도 치유할 뿐 아니라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한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끌어갈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nbsp 한국 사람은 작지만 갖고 있는 역동성이 굉장합니다. 문명의 중심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대중문화나 스포츠에서는 벌써 일어나고 있고, 사상, 학문, 기술의 측면에서도 몇 가지를 넘어가면서 통일한국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백년입니다.”라며 리더십 아카데미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오늘 하루를 정리해주셨습니다.nbspnbsp 내일은 문경에서 2012 중부권 경전반 특강과 2013 봄 불교대 특강수련이 있고 저녁에는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2013.06.09. 14,009 읽음 댓글 4개

2013.6.7. 김해시청강연, 대구 경북대 북콘서트

오늘 김해시청 강연전에 김해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김해의 경전철 문제에 대한 이야기, 김해가 처음 불교가 전해진 불교도시라는 것, 김해의 현 행정에 대한 이야기등을 나누었습니다. nbsp 김해시청 대강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오늘 봉사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며 스님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강당에서 모임 대중들도 스님을 박수로 맞이 했습니다. 김해시청은 450석의 의자가 깔렸는데, 약 670여 명이 참석해서 무대위, 무대앞, 복도에도 앉고, 뒤에 서서 듣기도 했습니다. 딸과 싸움을 많이 해서 고민인 엄마, 돈에 대해 집착하는 자신이 세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젊은 분, 딸이 이혼을 했는데, 손자가 고1인데, 딸이 사위와 같이 살아라고 108배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올케가 가출을 하고 엄마가 조카들을 키웠는데, 조카가 엄마에게 공손하지 못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나혼자 수행하다 가는 것은 나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고민인 분, 아들이 발달장애인데,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인 엄마, 스님께서는 절에만 있어도 되는데, 왜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법문을 하는지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두딸을 키우고 있는 한 여성분은 큰딸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이라면서 질문을 하셨습니다. “큰딸을 낳아서 열과 성을 다해서 빡세게 키웠습니다. 기대치에 부흥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는데, 고1이 되면서 생활자체가 전쟁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작은 싸움이 계속 가다보니 방문을 부순 적도 있고, 손찌검도 했습니다. 큰 딸은 그날 엄마한테 맞았던 상처가 응어리가 되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하고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내려놓고 친구같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화를 다스리기 위해 108배를 하고 있는데, 108배를 하면서 어떤 기도를 해야 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nbsp 딸과 매일 싸우는 엄마에게 스님께서는 “하얀 종이를 빨간물에 집어넣으면 빨갛게 되요? 노랗게 되요? 그럼, 노란 물에 넣으면? 그러면 그것이 종이잘못이예요? 집어 넣은사람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흰종이를 빨간물에 집어 넣으면서 노랗게 되라 하면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도 따라 행복해집니다. .엄마가 불안하게 살면 아이도 따라서 불안해집니다. 왜냐면 아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종이와 같고, 엄마는 잉크와 같아서 그대로 닮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악착같이 키워서 아이도 악착같이 엄마와 싸우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남편과 싸우면서 안질려고 하면 거기서 자란 아이도 엄마와 싸우면서 안질려고 악착같이 싸우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빠와 싸우며 엄마를 도와주지만,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엄마와 싸우게 됩니다.nbspnbsp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해지고, 엄가 웃으면 아이가 편해지고, 엄마가 슬프면 아이도 우울해지고, 엄마가 독기를 품으면 아이도 독기를 품게 됩니다. 흰종이가 물감에 물드는 것과 같습니다. nbsp 하인,양반이니 하는것은 인간 존재가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물들이느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평등하게 교육시키면 평등하게 되고, 부모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자식도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아이가 그런것은 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것입니다. 그렇기에 질문자가 남편이 뭐라 하면 ‘예예’하면 아이도 엄마에게 ‘예예’하게 되고, 남편에게 ‘그런게 아니야’ 라고 대들면 아이도 엄마에게 ‘그건 그런게 아니야’하면서 대들게 됩니다.nbspnbsp 자기 성질을 닮아서 그대로 형성되는데, 그 두성질이 만났으니까 보통일이 아닙니다. 어릴때부터 강압해서 공부를 시키면 공부는 좀 할지 몰라도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게 됩니다. 엄마가 강압을 세게 하면 할수록 저항도 강해집니다. 때리면 처음에는 겁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겁내지 않습니다.nbsp 벌을 주더라도 이해를 시키면 교육효과가 있지만, 일방적이면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저항이 커집니다. 아이를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아이가 행복해 질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입니다.nbspnbsp 질문자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어리석었다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부부관계가 안 좋죠? 왜 이렇게 묻냐면 부부관계가 좋으면 자기의 에너지의 팔십프로는 남편을 쳐다보는데 쓰게 됩니다. 관계가 안좋으면 관심의 팔십프로를 아이를 쳐다보는데 쓰게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편이 마음에 안들면 다른 남자를 쳐다봐요. 애를 괴롭히지 말고....nbsp 옛날부터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가 모든 관심을 아들에게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는 여자가 둘이게 됩니다. 결혼하고 보면 뒤에 늙은 여자가 하나 더 있어요. 아버지가 없다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런것처럼 사춘기가 넘어가면 아이에게 쏟는 정성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nbsp 우리아이의 지금을 봐야 합니다. 학교는 다니고 있어요?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꾸 그러면 애가 학교도 안가게 됩니다. 공부도 중간은 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엄마가 자기자식을 긍정적으로 봐줘야 자식이 자존감이 있습니다. 엄마로부터 계속 문제라고 들으면 자존감이 없어지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에라 모르겠다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자기인생을 엄마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를 쳐서 엄마를 괴롭히고 싶어합니다. 여러분도 남편에게 구박받고 화가 나면 내가 없어봐야 내가 귀한 줄 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들어요? 내가 죽어야 니가 내 고마운 줄을 알지하는 마음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nbsp 여러분들이 계속 자녀에게 그러면 자존감이 없어서도 그렇지만, 보복심리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nbsp 애가 공부에 연연해 해도 엄마는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엄마는 뭘 좀 못해도 껴안아 줘야 엄마입니다. 그러니 엄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해야 합니다. 애가 자기에게 대드니까 힘들어요? 안힘들어요? 아마 남편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nbsp 남편에게는 참회를 하고 아이에게는 ‘내가 성질 부린것에 비하면 그만하기 다행이다. 조금만 닮아서 다행이다.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는 엄마다워야 합니다. 아이가 나쁜짓하면 그건 안돼하고 단호히 얘기해야 하고 아이의 성질은 나 때문에 니가 고생한다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편하고 아이도 한이 없어집니다.”nbsp 스님의 답을 들은 질문자는 환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 저녁에는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경북대학교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오연호 대표와 차담을 나눈 후 강연장에 들어갔습니다. 약3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을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nbsp 요즘 청년들에게 통일이 주 관심사는 아닌가 봅니다. 강연장에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참석하셨습니다.nbsp 청년들은 주로 우리나라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가기에는 현 정치의 문제점이 많은 것에 대한 질문,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과 의미는 무엇인지,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중심으로 나서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고등학생에게 역사의식을 어떻게 심어줄수 있을지 고민하는 고등학교 선생님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오늘 북콘서트를 정리하시면서 “세상이 우리 원하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기도하면 다 된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첫째, 우리가 원하는 건 다 될 수가 없고, 두번째, 된다고 반드시 좋다고 말할수도 없어요. 그러면 이 사실을 안다면, 안되었을 때, 훨씬 우리가 여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안되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젊은이들이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되, 실패하는 것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성숙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런저런 세상일에 대해 좀더 폭넓게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런저런 험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외된 자, 소수자 이런사람에 대해서 훨씬 이해도가 높고, 불교계에서 왕따를 당함으로서 친구를 신부, 목사와 함께하다 보니까, 결국 종교간에 폭넓은 사람이 되었고, 한국에서 소외되니까 다른나라에서 놀다보니, 국제 평화상도 받았어요. 나쁜 결과가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는 얘기에요. 이것이 전화위복입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일부러 실패할 필요는 없어요. 최선을 다하되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실패해서 도전할 수 있고 역량을 높일 수 있어요. nbsp 우리 민족이 지금의 난관을 극복하고 통일이 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어요. 극복하면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이고. 우리가 계백장군과 김유신장군묘에 가서 인사하잖아요. 우리 형제를 죽인, 원수의 무덤에 가서 인사할 수 있다면 이것은 종교를 넘어설 만큼 큰 변화입니다. 이것은 문명사적으로 세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것입니다. 단지 이것들을 힘들어 하지 말고, 이 어려움을 극복해서 대한민국의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사를 공부해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지난 1000년의 주변소국의 서러움을 풀 수 있습니다. 한을 뛰어넘어 승화시키고, 통일하고, 용서하고 가해자를 포용하면, 이것은 젊은이들이 이런 시대에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무 움츠러 들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라며 청년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남기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일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소속 분들과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3.06.08. 13,824 읽음 댓글 3개

2013.6.6 새터민과 함께 한 경주역사기행

오늘은 새터민과 함께 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있었습니다. 올 상반기만도 몇번의 경주역사기행이 있었지만 오늘은 우리가 하려는 통일의 당사자라서 더욱 더 뜻 깊었던 것 같습니다.nbsp 아침 8시 50분에 무열왕릉에 도착하자 새터민들이 뛰어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특히 어린이들도 스님을 아는지 뛰어 와서 인사를 하고 꽃을 바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nbsp 새터민 약 350여명과 봉사자 약 150여명 모두 약 500여명이 오늘 역사기행을 함께 했습니다. 서울, 대전을 제외한 지역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지만, 모여서 태종무열왕릉에서부터 역사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님께서는 우리는 과거역사를 거울삼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역사공부를 해야 하다고 하시면서 오늘의 경주역사기행이 왜 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을 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신라의 건국부터 삼국 통일까지의 과정, 특히, 가야와 신라의 통합을 통해 현 남북이 처한 상황과 대비해서 설명해주시니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nbsp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태종무열왕릉을 한바퀴 돌아서 김유신 장군묘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김유신 장군은 가야사람으로 가야와 신라가 통합한 후 신라의 군대를 책임지며 삼 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서는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일화들무열왕과 동생 문희의 만남, 천관에 얽힌 이야기도 함께 설명해 주셨습니다.호국불교의 상징인 사천왕사를 둘러보고 선덕여왕릉에 도착해서 점심부터 먹었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계속 수신기가 혼선이 되는 문제가 발생해서 고장난 수신기를 찾느라 스님께서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정도 많이 늦어졌습니다.nbsp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간단한 노래 자랑이 있었습니다. 노래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소개하고 노래를 했습니다. 사이숲에서 온 아이들도 함께 노래를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nbsp 점심을 먹고 난 후 선덕여왕릉에서 선덕여왕의 업적, 선덕여왕에 얽힌 설화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간단한 오락시간으로 시작했는데, 노래를 하시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시간이 좀 늦어졌습니다.nbsp바로 문무대왕릉으로 이동해서 죽어서도나라를 지키겠다고 하시며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문무대왕릉을 참배하고 동국대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nbsp 오늘은 새터민과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면서 어려운 점등 고민이 있으면 누가 들을까 어려워 말고 함께 내어놓고 답을 구해보고자 했습니다.nbsp그러나 오늘은 개인적인 질문보다는 대부분이 통일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한 새터민은 “남한이 고향인 아버지가 북한으로 와서 북한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형제가 8남매인데 6명이 북한군의 주요직에 있습니다. 남한의 조카들도 장교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계속 분열을 할 때 조카들이 서로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에 와서 일자리에 대한 고민보다 조카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현재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게 되면 군사적 문제 풀 수 있지 않을까요? 평화협정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십시오.”라며 남북이 대척했을 때 서로 싸우게 될 형제, 친척간의 운명이 고민이 되어 스님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북한이 평화협정을 하자고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남한이 받아들일 지 모르겠어요. 남한이 받아들이면 남한은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북한의 의도에 말려든다고 생각해요. 북한도 똑같습니다. 남한이 먼저 제안하면 잘 안받아들여요. 그래서 용어를 바꿔야 해요. 그래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하자는 것을 말을 바꾸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하자고 하면 아마도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nbsp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을 끝내자는 종전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대 관건은 미군철수문제입니다. 북한의 주장은 전쟁이 끝났으니 미군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양해해야 합니다. 미군을 평화를 감시하는 부대로 생각하고 현재의 시스템을 평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한국, 미국, 북한, 중국이 함께해야 합니다. 평화협정은 남북간에 하고 미, 중은 보증을 하는 식으로 해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남북문제가 국내문제로 됩니다. 그것을 북한에게 우리는 설득해야 합니다. nbsp 우리가 화해와 협력의 기초로 남북관계를 설정한다면 설령 북한이 도발을 할 때 단호히 대응을 해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북긴장 국면에서는 도발에 대한 응징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의 큰 손해입니다.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 이것을 복구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며 그 사이에 중국이 우리를 추월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고 남한이 받아들이고 있어서 8.15 되기 전까지 남북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전쟁이 날까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질문자에 답해주셨습니다.nbsp 내일은 김해시청강연과 경북대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2013.06.07. 12,922 읽음 댓글 7개

2013.6.5. 춘천강연, 울산 북콘서트

아침 7시부터 통일운동에 뜻을 모은 분들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갈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조찬모임이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춘천으로 이동했습니다.nbsp 강연시간에 맞춰 춘천교육문화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좋았던 관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인 분, 직업 때문에 엄마와 갈등이 있는 분, 임신중인데 이전에 유산한 경험이 있어서 불안한 분, 스님과 같은 강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묻는 분, 자신이 집안에서 핵폭탄 같은 느낌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엄마와 남동생은 필리핀에 있는데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는 분, 물부족 국가, 전기 부족한데,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잘 전달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는 분, 초등학교3, 5학년을 둔 엄마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을 홈스쿨링을 시키려하는데 불안감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 서른두살의 한 여자분은 부모님과 의견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스님께 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질문자는 엄마 집에서 살아요? 아니면 엄마가 자기 집에서 살아요? 생활비는 누가 내요? 그럼, 이것은 생각할 것도 없어요. 질문자는 얹혀서 사니까 돈 생각을 안해도 되지만 엄마는 살림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가 얹혀서 살면서 돈 안벌고 밥값도 안내고 있는데, 엄마니까 그정도지 딴사람이면 벌써 내보냈을 것입니다.nbspnbsp 서른 두 살이나 되면서 아직도 집에서 부모에게 얹혀 살면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면 질문자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은 남에게 의지하고 자기는 취미생활하듯이 하면 그건 기생생활입니다. nbsp 해결방법은 내일 보따리싸고 집을 나오는 것입니다. 원룸얻고 집에 손 안내밀면 됩니다. 얹혀살려면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해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만 해야 합니다. 두가지 마음을 가지고 거기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아니고 후원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가지중 어느쪽을 택할래요?nbsp .어머니께 죄송합니다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뭐라 해도 항상 ‘죄송합니다’ 기도할때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다 가능한 한 돈을 벌어 자립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에게 의지하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젊은층에게 스님께서는 독립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nbsp 춘천에서 마치자 마자 바로 울산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중에 간단히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오늘 저녁 강연은 7시부터 울산 현대자동차문화회관에서 북콘서트 시즌3 ‘가슴뛰는 상상 새로운 백년’ 북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북콘서트였으나, 울산대학이 강연장소를 취소하는 바람에 강연장이 대학과는 거리가 먼곳에 위치하다보니 중장년층이 더 많이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nbsp 오늘은 오연호 대표가 아닌 남경림 ETC 기업문화 연구원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nbsp 개인적인 고민보다는 사회적 고민, 통일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처음 통일운동을 하게 된 이유, 현재 남북의 상황, 가장 최근의 라오스에서 북한 청소년들이 북송된 사건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nbsp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한 남자분은 통일에 대해 “참 답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통일도 좋고 다 좋은데 사실 우리 주위에 보면 젊으신 분들이나 중장년층을 보면 통일에 대한 의식이 없습니다. 통일을 원하고 있는가하는 자괴감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광복을 이룬 것도 아니고 우리가 독립된 나라라고 느낄 뿐 살펴보면 우리 손으로 직접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 같은 것을 보면 과연 우리 젊은 친구들이 그런면에서 의식이 부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고 당장 그런 부분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질문드립니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자기손으로 통일을 못할 바에는 식민지 지배를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극단적인 사고입니다. 자기 자본과 기술로 독자적인 영업망을 가진 자기 사업을 하면 더 좋지만, 자본, 기술, 영업망이 부족하여 큰회사의 하청을 받아서 운영하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업은 기업입니다.nbspnbsp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에서 하청을 받아 운영하는 기업이라도 그 기업의 CEO는 현대자동차의 임원하고는 다르잖아요? 자신의 능력에 따라 회사가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독립국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도 강대국의 영향권 안에 있어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남한은 아직 미국의 영향권에 있지만 옛날보다는 영향을 덜 받고 있고, 북한은 남한보다는 자주권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지금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인 상태입니다. nbsp 이것은 어느 것이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북한은 지금 아무리 자주적이라도 길게 보면 부도가나서 중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남한은 하청업체의 성격도 있지만, 지금은 재무상태가 튼튼한 회사인것과 같습니다.nbspnbsp 그런데, 북한은 아직 하청업체로 전락되기전 이고 우리는 점점 힘을 가져 독립기업으로 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이 틈새 십년 좌우의 시기가 통일의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년을 이미 까먹어버렸고 남은 5년을 잘 해 나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 보면 상당히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기회를 놓쳐버리면 앞으로 이런 절호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nbsp 그래서 이책을 쓴 이유도 이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통일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말한대로 우리 국민이 통일할 의지가 없으면 설령 기회가 왔더라도 기회를 놓치는 것이므로 스스로 포기할때는 달리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통일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고 통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한이 분단상황에서도 산업화, 민주화를 이정도로 이루어 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nbspnbsp 아직까지는 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 기회를 잡아서 통일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단순히 통일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새로운 백년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찬란했던 배달문명을 천년만에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럴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nbspnbsp 며칠후에 미중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아마 제3의 카스라테프트 협약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제1은 미일이 합의한 것으로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인정하고, 일본은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한 것, 제2는 미소가 합의한 것으로 미국은 남한의 지배권을 가지고 소련이 북한의 지배권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제3은 미중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국이 남한을, 중국이 북한을 각각 자기 관할내로 두는 것을 서로 인정하되 자기 관할권하의 남북한에 비핵화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핵문제는 해결될지 몰라도 통일은 상당기간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 그래서 국민들이 통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면서 그들에게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님께서는 통일을 위해 불철주야로 뛰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새터민과 함께 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3.06.07. 12,232 읽음 댓글 4개

2013.6.4. 용성조사 149주기 기념 심포지엄, 대전 북콘서트 시즌3

오늘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도착해서도 스님께서는 그제 속리산에 갔다 온 후 몸이 너무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잠을 거의 주무시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조찬 모임으로 이동하기 전 INEB 스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nbsp INEB 스님들께서는 발우공양후 그동안 한국에서 법륜스님과 동행하고 다닌 소감에서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을 할 때 어떤 질문에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웃으시며 답변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편안하게 앉아서 듣고 스님은 계속 서서 얘기하는 풍경은 정말 낯설었어요. 저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입니다. 법륜스님이 그렇게 자신을 낮추시는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또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고추가루까지 닦아 먹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신구세대가 함께 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돌아가서 정토회에서 배운 것들을 저희들 사회 전체에 전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오전 10시부터는 한겨레 하니 TV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2번째로 ‘곱게 늙어가는 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nbsp 며칠전부터 계속 몸이 좀 힘들다고 하신 스님께서는 속리산 등반이 무리가 되었는지 결국 오늘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오후 2시부터 진행되는 용성스님의 탄생 149주년을 맞아 용성스님의 사상과 실천 활동을 조명해보는 심포지엄에 참여하셨습니다. 심포지엄은 ‘시대의 스승, 용성조사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천도교 박남수 교령, 불교TV 대표이사 성우스님, 정세균 민주당 국회의원 등 내외빈 인사들을 모시고 불자, 천도교, 정토회 신도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렸습니다. 정토회 중앙사무처에서 많은 분들이 행사를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nbsp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께서는 행사전 차담에서 이 건물은 3.1독립자금을 모은 것으로 이 건물을 지었는데, 독립운동가 중 한분인 백용성 기념 심포지엄을 여기서 하게 되니 역사적인 날이라고 덕담을 해주셨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인사말에서 용성스님의 일생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시며 오늘 행사의 취지에 대해 안내해주셨습니다.nbspnbsp “용성조사님은 젊은 시절에는 오직 깨달음을 위해서 용맹정진을 하셨고, 나라가 일본에 빼앗긴 후에는 산에서 내려오셔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불교의 지성화와 대중화를 위해서 한평생을 몸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탄생 149주년을 맞이해서 용성 조사님의 그 사상과 그 실천 활동을 오늘 우리시대에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0년 전처럼 지금도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또한번 요동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대처하면 우리의 숙원인 통일한국을 이루어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일어설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잘못 대응하면 오랜 기간 분단이 더 지속되고 미중 양국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 대립과 갈등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런 중요한 분기점에 우리가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조선말기에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뜻을 계승한 그리고 3.1독립운동의 골간이 되었던 천도교의 본부 이곳 수운회관에서 용성조사님의 사상과 실천활동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뜻 깊은 일인 것 같습니다.”nbspnbsp 이어서 세 분의 학술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재영 동방불교대학 교수님은 주제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 불교는 입으로 거창하게 내세우는 구습에 길들여져왔다” 며 “용성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불교도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현장 불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임형진 경희대 교수님은 “용성스님의 불교경전 한글화 작업과 불교 대중화를 통한 독립운동은 그 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전형이었다”며 “스님이 여전히 존경받고 탐구되어야할 대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빨리문헌연구소장 마성스님은 “일제 당시 불교지도자들의 개혁안은 오히려 승단의 세속화를 가중시켰지만, 용성스님은 승단의 청정화를 통해 조선불교의 전통을 고수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화활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마성스님께서 “용성스님의 대각교당은 이후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모두 떠나고, 일부 제자는 스승의 원고를 불태우기도 하고, 결국 이것은 대각교의 해체를 뜻하게 되었다 라고 안타깝게 절규하셨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청중들이 아쉬움과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nbsp 발표하신 분들이 다들 “시간 부족으로 발표준비가 미흡했다”고 언급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앞으로 1년 간 시간을 더 드릴테니 1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더욱더 많은 준비와 연구를 부탁드린다”고 해서 청중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 분의 발표를 경청해 들으시고는 닫는 말씀으로 이렇게 정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 “용성조사님께서는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이 3가지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조선시대 이조 5백년 동안 불교는 극심하게 탄압을 받았습니다. 스님들을 다 속퇴 시켜버리고 도시에 있는 절은 다 없애버렸어요. 승려가 되겠다 할 때는 신분을 천민으로 강등을 시켜 8번째 천민으로 스님들을 규정해 버렸어요.nbspnbsp 산속에 있는 큰 절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임진왜란 때 불탔어요. 그 이유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마을이 왜군한테 짓밟히자 주민들이 산속으로 피난왔는데 그들을 절에서 보호해 주었어요. 더 많은 주민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떨 수 없이 스님들이 창칼을 들고 왜군과 싸우게 되었고, 그러다보니까 일본군들이 절을 다 불 질러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속에 있는 절들은 다 임진왜란 때 불타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가 그렇게 불교를 탄압했는데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니까 스님들은 나라를 위해서 싸웠고 민중들을 보호했습니다.nbspnbsp 그리고 조선왕조는 승려들의 도성출입을 금지시켰는데 오히려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도성출입을 해제시켜 줬습니다. 용성 스님이나 한용운 스님 같은 분들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7080는 거기에 휩쓸려 갔던 것이고, 그런 속에서 지조를 지키고 조국을 지키고 조선 불교를 지켰다는 것이 위대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 배경을 알아야 ‘불교의 지성화’ 라는 용어가 왜 나오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nbsp 누구든지 출가하게 되면 천민으로 강등될 위험이 있으니까 출세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불교를 못 믿었습니다. 출세와 관계없는 천민이나 평민이나 여성들만 절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예요. 스님들은 산속에 들어가서 문자를 배워서 불법을 알았지만, 신도들은 문자를 모르니까 오직 기복적 신앙 외에는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법이 없는 불교를 5백년 간 지속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가 짊어진 무거운 전통의 짐입니다.nbsp 법이 없는 불교를 하다보니까 불교가 샤머니즘이나 민속신앙과 별 차이가 없는 게 되어버린것이죠. 그래서 불법의 위대함을 다시 세워야 하는 게 바로 ‘불교의 지성화’입니다. 불법을 알아야 된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이것이 우리 불교가 가지고 있는 큰 과제입니다. 이것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짊어진 큰 무게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정법에 귀의하자, 바른 법을 믿자, 바른 법에 귀의하자 이런 얘기입니다. nbsp 아무리 불교가 바르다 하더라도 대중이 문자를 몰라서 그 불교를 알 수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냥 승려들의 전유물이지요. 그래서 두 번째로 나온 것이 불교의 대중화입니다. 불교의 대중화라는 것은 진리를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가 경전의 번역이죠. 한문을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불법을 공부할 수 있도록 경전을 한글로 번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쉬운 불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용성스님 당시에는 번역해주는 정도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번역 해주는 정도 갖고는 안 됩니다. 다시 생활용어로 정리가 되어서 누구나 다 불법을 알 수 있는 이런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아무리 불교의 진리가 좋고 그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안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상 삶과 유리된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밥 먹고, 똥 누고, 직장 생활하는 거기에 불법이 늘 그대로 작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용성스님이 말씀하신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갖고 있는 삶의 고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여야지 고뇌와 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고뇌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 즉 열반과 해탈이 불교의 최고 이상인데 우리는 지금 열반과 해탈을 이상으로 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목적은 열반과 해탈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의 직장과 가정 속에서 불법을 늘 생활화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용선 진종 조사의 원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려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꽃피우고 어떻게 열매 맺을 것이냐 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성스님께서는 불법을 통해 교화하는 것만이 아니고 불법을 넘어서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당시에 이 땅의 중생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였습니다. 그래서 용성스님은 나라의 독립에 한평생을 바치셨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나라의 독립과 같은 것은 바로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고 북한에 고통 받는 2천만 민중을 구제하는 방법이고, 우리들의 왜곡된 사상, 왜곡된 역사, 일제 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하는 길입니다. 우리 힘으로 통일했을 때만 우리가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미중의 세력 다툼 속에서 통일한국을 건설하지 않고는 우리의 어떤 국가적 비전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용성스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독립운동이 우리에게는 통일운동으로 이어나가야 합니다.”nbsp 스님께서는 심포지엄이 끝나자 곧바로 대전으로 이동하셨습니다.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준비한 새로운 백년 북콘서트가 대전 충남대학교 백마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힘에도 불구하고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은 차안에서 죽으로 해결했습니다.nbsp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와 함께 진행된 오늘 북콘서트는 청년 약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nbsp 오연호 대표는 지난 대선 후 마음의 평정을 찾기 어려웠는데, 스님은 어떠셨는지라는 질문부터 유럽의 복지가 잘된 나라들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하는 고민부터 현재 대한민국에는 전쟁의 위기가 돌았는데, 왜 그럴까, 역사문제등 질문을 던지면서 스님의 답을 구했습니다. nbsp 젊은 청춘들은 통일이 되어서 뭐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통일을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중일의 역사인식이 다른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통일은 112가 아니라 3또는 4가 되도록 해야하지만, 1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등 ‘새로운 백년’의 북콘서트라서 그런지 청년들의 질문도 주로 통일문제, 남한내의 갈등문제가 많았습니다. nbsp 대전의 북콘서트 후 스님께서는 내일도 아침 7시부터 조찬모임부터, 춘천, 울산의 강연이 있기 때문에 서울로 향했습니다.

2013.06.05. 14,611 읽음 댓글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