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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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캄보디아 JTS 사업장 방문)

아침 6시에식사를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에 간밤에 집으로 가셨던 김재성거사님이오셨습니다. 라타나끼리로 7시 출발할 차가 와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짐을 챙겨 나와보니 정철상 거사님이 운영하시는 회사 직원들이 승합차 기사와 함께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정 거사님은 스님 일행의 안전을 위하여 캄보디아인 한 분을 라타나끼리까지 동행하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7시 25분에 숙소를출발한 버스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끝없는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도로 연변에는 민가들이 띄엄띄엄 이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한쪽에서는 어린 벼가 자라고, 한쪽에는 벼를 베어내고 그루터기만 남아있는 빈 논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서너 계절에 걸쳐 볼 수 있는 정경인데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3시간쯤 달렸을 때, 길 양 옆으로 쭉쭉 줄지어 심어진 나무 숲이 지평선을 이룰 정도로nbsp끝도 없이 펼쳐졌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무나무 숲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나무마다 밑동에서 2m 정도 높이까지 상처가 나 있었는데 그 상처 골 사이로 흐르는 진액을 받은 것이 고무원료가 된다고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맘때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박아 가지 끝으로 올라가는 수액을 받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10시40분쯤 휴게소에 자동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겸 휴게소에 멈춰서자 느닷없이 차문이 밖에서 열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손에 구운 옥수수며 예쁘게 썬 과일을 담은 비닐봉지를 든 크고 작은 소녀들이 몰려들어 문을 연 것입니다. 스님께서 드시겠다고 하면 한 번 사보려 했는데 배부르다고 하셔서 맛볼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침공양 때도 그러셨는데 아무리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부를 때는 드시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서 식탐을 부렸던 저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12시20분 메콩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끄라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메콩강은 강가강만큼이나 크고 넓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을 드시면서 메콩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메콩강은 세계 10대 강 중에 하나일 만큼 큰 강이다, 중국 칭하이성 티베트고원에서 발원하여 윈난성 고지대를 거쳐 남쪽으로 흘러 라오스와 타이국경, 미얀마와 라오스 국경 일부를 이루다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 든다, 후일 메콩강의 물 때문에 각국의 이해가 엇갈려 분쟁과 환경에 끼칠 악영향이 예상된다, 중국에서 댐을 막으면 그 아래에는 물 부족이 일어나고 댐 수위가 100m 가량 높아지면 물의 중력으로 인하여 지진이 일어날 수 있고, 잠기기 전에 산이었던 사면에 물이 스며들어 지반이 약해지고 수면 위는 수증기가 끼어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강변에 다가가 수면을 내려다보시며 ‘지금은 건기라 물이 적어 백사장이 많이 드러나 있지만 우기 때는 풀섶이 있는 곳까지 물이 차면 장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시10분 다시 차에 올라 북쪽으로 달리면서 스님께서는 이미 확보되어 있는 JTS공간을 보다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1시간 가량 회의를 주재하시면서 여러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제쳐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도로가 포장이 되어 있다고는 하나 매우 거칠고 군데군데 패어 있어서 요동이 심했습니다. 그런데도 스님은 곤히 주무시는 것 같았습니다. 잠 잘 기회가 주어져도 자리가 바뀌었다는 둥, 옆에서 코를 골아 잠들 수가 없다는 둥, 차 안에서는 자리가 불편하여 도리어 아픈 데만 많아진다는 둥 핑계를 대면서 피곤하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nbsp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프놈펜을 출발한지 9시간 30분 만에 라타나끼리의 주도 반룽에 있는 캄보디아 JTS본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착하자마자 사무실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시고 반팔차림으로 바닥청소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올 때 보니 이 나라는 온천지가 황토 흙으로 덮인데다 건기라서 황토 먼지가 많이 날렸는데 여기 사무실이 맨질맨질한 대리석 바닥이라 깨끗한 줄 알았는데 양말 바닥이 금세 벌겋게 되는 것을 보시고 청소부터 하신 것입니다. 여기 책임자가 어제 청소를 하고 오늘 미처 못했는데 이렇다는군요.저녁 식사는 최보살님께서 멸치다시물을 내어 국수를 말아주셨는데 반찬은 김치 한 가지였지만 스님께서는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이 지방 쌀국수보다 훨씬 맛있다고 하시면서요. 냉장고 김치통에 가지런히 들어있던 포기김치는 무채도 곱고 고춧가루와 간도 적당해서 우리는 전문가가 담근 김치인줄만 알았는데요, 이곳 실무책임자가 손수 담갔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사업현황 서류 검토하시랴, 서울에서 온 전화 받으시랴, 메일 서류 검토하여 다시 보내시랴, 여기서도 매우 바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9시 30분부터 한 시간가량 이 곳 실무책임자와 서울에서 함께 온 JTS대표들과 회의를 하셨습니다. 이 곳의 그간 사업진행 상황에 대하여 궁금하신 점을 꼼꼼히 챙기신 다음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진행하실 일정을 논의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회의가 끝나고도 12시 넘도록메일로 받은 서류를 살펴보시고 다시 서울과 인도에서 온 전화를 받으시고 업무를 협의하셨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이틀째 밤은 이렇게 깊어 갑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2013.03.10. 13,089 읽음 댓글 4개

2013년 3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캄보디아로 출국)

스님께서는 오후 4시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향하셨습니다. 캄보디아 라타나끼리에서 진행되는 JTS사업이 공정률에 맞추어 재정지출이 적절히 되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또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새로운 구호사업 대상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JTS 실무자들을 포함하여 다섯 분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nbsp 오늘은 우선 저녁7시에 출발하는 베트남 호치민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짐을 부치려는 중에 KAL 직원의 안내로 미국국적을 가진 박지나 대표는 베트남 비자가 없어서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영어에 능통한 박 대표가 함께 가지 않으면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베트남에 가도 소용이 없다고 하셔서 집으로 되돌아가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신속하게 6시 30분에 출발하는 프놈펜행 티켓으로 바꾸어 주었답니다.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부치고 프놈펜행 비행기에 탑승해서 현지시간으로 10시37분 프놈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프놈펜의 기온은 31도라 하는데 습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습니다. 캄보디아의 면적은 181,035㎢로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는 작고 인구는 2010년 통계로 천사백만 오천 명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항에는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시는 김재성거사님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중을 나와주신 덕분에공항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12시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거사님께서는 원래 방을 3개 예약해 두었는데 스님께서 남녀 한 방씩 두 개로 줄이셨습니다. 매사에 절약하시는 스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김재성거사님과 이번 일정 마지막에 있을 프놈펜법회 등에 관해서 담소를 나누시고, 가지고 계시던 저서 ’새로운 100년’에 사인을 하여 거사님께 선물하셨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둘러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라타나끼리로 갈 예정입니다.

2013.03.10. 13,143 읽음 댓글 3개

2013년 3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충남도청 명사 특강)

두북정토마을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날이 차가웠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풀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 두북에서 충남 홍성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왜관IC 부근에서 큰 사고가 있어서 이른 아침부터 차량이 정체되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고속도로에 있다가마침 왜관IC부근이라 IC에서 국도로 나와 다시 김천IC에서 고속도로로 올렸습니다. 아침에 여유있게 출발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지체되는 바람에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로 충남도청으로 향했습니다. 충남도청은 거의 허허벌판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새 건물이라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도청 입구에 들어서니 도청 관계자분이 나와 스님을 깎듯이 맞이했습니다. 작년에 충남도지사님이 스님께 도청을 이전하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터라, 원래는 오늘 인도불자대회 때문에 출국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오전에 강의를 하고, 오후에 출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인도일정이 취소가 되어 조금은 더 여유있게 시간을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도청 월례 조례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대강당에 들어가니 충남도지사님이 도청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지사님의 말씀이 끝나자, 단상에서 내려와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도청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셨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금강경을 통해 본 인생의 지혜’였습니다. 스님께서 신해행증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행정관으로서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기조강연을 먼저 하시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군대나 경찰, 공무원 등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들은 위계가 강해서 그런지 쉽게 개인적인 질문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두 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질문에 스님 말씀을 나눠 봅니다. “스님.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주의에서는 적용이 되는데, 그것만 적용을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적절한지 궁금합니다.” “예. 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 체제와 비교해 보면 낫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최고의 형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미국식 민주주의와 중국식 사회주의는 어느 것이 더 효율이 있을지는nbsp역사가 평가를 해 주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경험했을 때는 다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다수결의 원칙의 민주주의가 소수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회주의보다는 단 1점이 많더라도 더 좋다고 말할 수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있죠. 부처님 당시의 승단은 매우 민주주적이었습니다. 승단의 결정 원칙으로 삼의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 결정할 때 다수가 나왔다면 소수에게 ‘당신들의 소수 의견을 철회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때는 백명 중 한 명이 반대를 해도 소수가 되고, 반대자가 13 이하로 떨어져야 소수가 됩니다. 소수의견을 철회하겠느냐고 물었는데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음은 소수에게만 발언의 기회를 줍니다. 자기가 왜 그것을 주장하는지를 충분하게 설명하게 해요. 그리고 다시 투표를 합니다. 이 때 소수의 의견이 13이 넘으면 앞의 결정과 상관없이 새로이 토론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소수가 되면 철회하겠는지 또 묻습니다. 철회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시 소수가 자기 의견을 충분히 발표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3번을 했는데도 소수가 될 때는 소수가 자발적 철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론은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가 됩니다. 보통 만장일치제라고 할 때는 한 명이라도 끝까지 반대를 하면 통과가 되지 않으므로 이것은 소수의 횡포가 됩니다. 다수의 횡포도 막아야 하지만 소수의 횡포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삼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 가면 소수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겠습니까?” “결정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 내세우며 싸워서 결정이 안 나는 것보다는 빠릅니다. 폭력적으로 밀어붙여서 결정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함으로서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를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저희 정토회 대의원회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해서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단체라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쉬울 수 있습니다. 삼의제의 핵심은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데 있습니다. 소수에게 3번까지 발언의 기회를 줍니다. 이렇게 해서 결정해도 어떤 때는 철회한 소수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수의 의견이 맞다고 검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옳든 그르든 삼의제를 거친 다수의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이 나면 소수의견을 낸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전체가 내린 결론이 자신의 의견이 되어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칙이 최고의 가치라고 배워오고 그렇게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수자의 의견을 최대로 수용하는 삼의제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겨울에는 장작 10개를 때지만, 봄에는 5개, 여름에는 안 때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도 3살까지는 엄마가 희생을 하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어릴 때는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하고,사춘기에는 지켜봐 줘야 하고, 성인이 되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겨울에 불을 때던 습관으로 여름에도 장작 10개를 때어서 따뜻한 것이 아니라 뜨거워서 못 사는 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데도 어린아이 돌보듯이 하게 되면 커가는 아이들에게는 결국 과잉보호가 되어 노력은 많이 하고 성과없이 망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부모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창조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충남도지사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nbsp 원래 이전한 새 충남도청 청사를 둘러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희는 서울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3시부터 밤 늦게까지 평화재단에서 여러 업무가 있어서 오늘도 늦은 밤에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3월 8일부터 8일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현지 답사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출국전까지는 평화재단 내부업무를 보실 예정이라 스님의 하루는 당분간 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03.06. 12,581 읽음 댓글 6개

2013년 3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남산답사, 평화재단회의)

오늘은 두북정토마을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어젯밤 논의한대로 경주 남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 오늘 남산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잘 아는 용장골과 삼릉골을 제외하고 탑골, 약수골, 오산골을 답사하기로 했습니다. 탑골은 스님 중심으로, 약사골은 유수스님 중심으로,오산골은 종법행자님 중심으로 78명씩 한조가 되어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과 함께 탑골에서 올라갔습니다. 맨 처음 옥룡암 위쪽에 위치한 부처바위와 마주쳤습니다. 부처바위에는 동서남북 사면에 불, 보살, 스님, 탑 등 34점의 여러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라 여겨지는 탑상도 새겨져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처 바위를 지나 길을 찾아가며 산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워낙 지리적인 감각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길을 따라 가면서도 위치 파악을 하면서 가서, 스님도 처음 가보는 코스인데도 헤매지않고 무사히다함께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이 완만하고 주변 경치도 좋았습니다. 봄이 되면 지천에 진달래가 피어서 참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경주 남산에 이렇게 완만한 길이 있었나? 참 걷기 좋네.”하시며 스님께서 천천히 걸으면서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산행하면서 카카오톡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갔는데, 다른 팀들은 길 입구에서 헤매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해서 10시에 산 정상 부근 헬기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희는 30분 전에 도착하고 다른 팀들은 10시가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 따뜻한 곳으로 저희를 안내하셨습니다. 순환로 옆으로 가니 바람이 없고, 햇살이 따뜻한 곳이 있었습니다. 추운날인데다가 30분을 넘게 앉아 있었는데도 잠이 올 정도 따뜻했습니다. 스님은 바람 방향을 살피고 태양이 비치는 방향을 보면서 위치를 잡으신 것 같았습니다. 스님과 함께 다니면 생활의 지혜를 그 때 그 때 느낄 수가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한참 지나니 우리 팀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봤던 얼굴들인데, 산 위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습니다. nbsp 헬기장에서 3팀이 만나 올라온 코스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너무 가파른지, 많은 대중들이 오르기에 무리가 없는지,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지 하나 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nbsp 산을 내려가면서는 탑골팀은 오산골로, 약수골팀은 탑골로, 오산골팀은 약수골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스님과 함께 오산골로 내려갔습니다. 팔각정과 흔들바위를 지나 지바위를 만났습니다. 지바위 아래 쪽 부분에 마애석불 두 분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저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바로 아래엔 3층 석탑이 늠름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nbsp 처음 내려올 때는 좀 가파르더니, 조금 내려온 후에는 길이 완만하고 좋았습니다. 오산골 입구에 다다르니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습니다. 차를 타고 경주남산순례시 입재식할 장소 답사까지 하고,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목욕을 하고 두북정토마을에 들어와 밤 10시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정리가 덜 되어 있던 것들이 명확히 정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충청남도 도청 이전 명사특강’ 첫 회에 초청되어 오전 9시 30분 충남도청에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새벽에 두북에서 충남도청이 있는 홍성으로 출발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04. 12,208 읽음 댓글 9개

2013년 3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남산순례,PLA워크샵)

어젯밤 밤늦게까지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들의 모임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스님께서도 늦게까지 동문들과 많이 이야기들을 나누셨습니다. 오늘은 아침식사를 7시에 하고, 7시 30분 경주 남산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에 남산 용장골로 올라갔습니다. 날이 상당히 매서웠습니다. 그런데도 봄햇살은 피할 수가 없는지 양지바른 곳에는 자그맣게 새쑥이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기 봐라. 쑥이 올라오네.”하시며 반가워 하셨습니다. nbsp 용장골로 올라가 이영재를 넘어 삼화령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1월달에 왔을 때 온 산이 눈이었는데, 이 곳에도 봄 소식이 벌써 와 있었습니다. 눈이 쌓였던 땅은 얼음이 녹으면서 부풀려져 있어서 밝으면 사그륵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습니다.그런데도 체감되는 온도는 꽃샘추위 때문에 손이 떨어져 나가듯 차가웠습니다. 충담스님께서 매년 삼월 삼짇날이면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삼화령에서 멀리 조그맣게 바라보이는 삼층석탑을 바라보다가 단체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삼화령을 지나 하산하는 길은 삼릉골로 내려왔습니다. 삼릉골로 내려오기전에 전망대에 서서 멀리 한 눈에 들어오는 경주시내를 바라보면 스님께 주변 지역에 대해서 설명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시원하게 경주 전역이 눈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nbsp nbsp 상선암 마애불은 낙석으로 인해 공사중이라 참배를 하지 못했습니다. 상선암에서 삼릉골로 내려오는 길에 여러 부처님들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자주 오던 골짜기였는데, 오랜만에 오니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상선암에서 내려와 계곡 맞은 편 넓은 바위에 선각으로 부처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데 부처님을 찾아보세요.”하니까,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서 고개를 들고 건너편 높은 바위에 있는 선각으로 새겨진 부처님을 눈으로 열심히 찾았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한 분 한 분 부처님을 찾아 참배를 했습니다. 삼릉골 석불좌상은 전에는 코가 없고 광배는 넘어져 있었는데, 새로 광배도 세우고 얼굴 성형도 해서 코도 만들어 넣었는데, 전에 보던 정감있는 부처님이 아니라 약간 어색했습니다. 두툼한 입술과 큰 코를 가진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을 참배하고 내려와 삼릉골 선각 육존불 앞에 섰습니다. 선각 육존불이 원래 선명하게 보이는데, 오늘은 검은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선각들이 뚜렷이 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40년을 넘게 남산을 다니는데, 이렇게 이끼가 많이 낀 것은 처음 보네요.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눈이 많이 와서 그런가?”하며 스님도 의아해 하셨습니다. 저도 이렇게 이끼가 많이 낀 육존불은 처음 봤습니다. 마애 육존불에 참배를 하고, 마애관음보살상과 만났습니다. “이 관음상은 해가 질 때 보면 지는 햇살이 비치면서 더 아름답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입술 붉은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에도 참배를 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매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목없는 석불좌상에 참배를 했습니다. “이 부처님을 보면 꼭 한국 불교를 보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없고 손이 없죠? 머리는 부처님의 지혜이고, 손은 부처님의 자비의 실천이라면 머리가 없고, 손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도 없고, 자비로운 실천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것같아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하시는 스님 말씀을 들으며 함께 안타까워지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nbsp 천천히 솔숲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좋고, 솔숲도 좋고, 함께 걷는 사람들도 좋았습니다. 삼릉 아래 칼국수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목욕도 하고, 다시 두북정토마을로 돌아왔습니다. 20여분의 거리밖에 안되는데도 피곤했는지 눈을 감았다 뜨니까 벌써 두북정토마을 운동장에 차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스님과 일행들은 바로 다시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기여할 것인지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4시간 가량을 자유롭게 토론을 한 후,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해 보자며 통일의병의 결의를 다졌습니다. nbsp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다가 이웃의 그 누군가를 위하여 한 발만이라도 밖으로 내딛일 때 사회는 아름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모이고,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 자체가 참 아름다운 삶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자 가진 일이 있는데도 뭔가 세상에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저녁 식사까지 하고,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회 일행은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경부터는 스님을 모시고 평화재단 실무자 회의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사업과 인사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어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사람들은 10시경에 취침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경주남산순례 답사를 하고, 오후에 다시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4월에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경주남산순례’가 있는데, 현재 10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등산객에게 불편을 줄 수가 있어서, 5군데의 코스로 나눠서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3개 코스를 실무자들이 3팀으로 나눠서 미리 답사를 해 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남산은 언제가도 좋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03. 12,710 읽음 댓글 6개

2013년 3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삼일절 기념행사, PLA워크샵)

오늘은 94번째 삼일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어젯밤 내리던 비는 멎었는데 황사와 꽃샘 추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옷을 단단히 챙겨입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침 일찍 오늘 행사가 있을 전북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죽림정사는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시며 근세 한국 불교의 중흥조이신 용성진종조사의 생가에 조사의 뜻을 기리며 지은 절입니다. 법륜스님께서 죽림정사 주지를 맡고 계십니다. 죽림정사에 도착하니, 어제 하루 먼저 출발했던 정토회 행자님들이 곳곳에서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양간 일도 돕고, 행사장 정리도 하고, 접수 준비도 하고, 중간 중간에 서서 오시는 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사채에서 행사에 오시는 내빈들을 맞이 하셨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전국에서 정토행자님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오늘 삼일절 행사는 94회 삼일절을 맞이하여 삼일절의 의미를 새기고, 조상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민족 통일의 역사적 사명으로 이어가는 통일의병으로서의 발심의 기회를 갖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기독교, 불교, 천도교가 함께 당시의 염원이었던 독립을 준비했던 것처럼, 오늘도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천도교인이 모여 지금 우리의 염원인 민족 통일을 함께 발원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33번의 타종에 이어서 10시 30분, 죽림정사 용성교육관에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울산정토회 대표인 김용주 변호사님이 맡았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어 스님께서 순국선열들께 향공양을 올렸습니다. nbsp 이어 임명진 목사님, 최종수신부님, 이응준 교무님을 비롯한 70여명의 내빈들이 33인의 민족대표에게 꽃 공양을 올렸습니다. 다음으로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총무이사님이 삼일절 경과보고를,광복회 전 전라북도 지부장이신 이풍삼 목사님이 독립선언문 낭독을, 호남 4.19혁명단체 총연합회김영용회장님이 만세삼창을 하신 후에 다같이 삼일절 노래를 제창했습니다. 이풍삼 목사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낭독하는 독립선언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삼일독립운동을 떠올리고, 일제의 압박하에서도 결연히 일어섰던 선조들의 뜻을 다시 기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어진 만세 삼창은 결의에 찬 우렁찬 함성이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김상두 이사장님의 환영사가 있은 후 스님의 내빈소개와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고, 전국 정토회 참가자도 소개를 한 후에 스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nbsp “올 해는 정전협정 60주년이 됩니다. 전쟁이 멈춘 후 6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이 온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전쟁을 온전히 종식시키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뒷걸음질해서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3.1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해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공고히 하고,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을 이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 종교 전 민족이 뜻을 모아서 독립선언을 한 것처럼, 오늘 우리 또한 모든 종교, 사회 단체가 힘을 모아서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구심체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기에 대한민국 안에 분열된 계층과 단체들이 이제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 국민통합을 해야 할 것이고, 힘을 모아 통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은 단지 대한민국의 발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을 통틀어 전 민족의 발전을 위한 길이며, 통일한국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이익을 위한 길이면 나아가 세계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행사를 기념하는 행사에 그치지 말고 이러한 국민의 정신을 계승해서 통일의 위업을 이루는데 다함께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오늘 먼 곳까지 오셔서 참여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nbsp말씀에 이어 인명진 목사님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워낙 편하고 재미있게 말씀을 해 주셔서, 대중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스님과 목사님은 워낙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신 사이인데, 두 분의 민족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nbsp “저는 오늘 새벽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울시내에서 밤에 한 자리에 서서 보면 30개씩 십자가가 보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에세 희망, 부활, 생명을 뜻합니다. 이 수많은 십자가가 보이는 서울에서 어떻게 희망을 보지 못하고 하루 46명이 목숨을 끊는가?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입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하는데 하루에 46명이 죽는 게 폭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상태로 가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인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 천도교 할 것 없이 이 땅에 사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도록 마음을 합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금년이 정전협정 60주년입니다. 6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평화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옛날 3.1운동 때 선조들처럼 불교 스님들, 천도교회 여러분들, 그리고 가톨릭, 기독교 모든 종교인이 평화를 갈구하는 종교인들이 앞서서 분단을 끝내고 이 땅에 평화를 이뤄나가는 새로운 평화운동,새로운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삼일절 기념행사에 이렇게 각계 종교인이 함께 모여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이 민족의 역사를 위해 종교인들의 역할을 다짐하는 이 일이야말로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뜨겁고 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이신 최종수 신부님께서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우리 각 자에게는 하늘이 내려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농부와 노동자의 사명, 교사와 학생의 사명,정치인과 공무원의 사명이 그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명, 스님, 목사, 교무, 신부의 사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사명은 다양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3.1자주독립운동의 정신인 자주독립통일국가의 사명입니다.” 신부님께서 통일에 대한 사명을 힘있게 역설하시고는 온 마음을 모아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축사를 갈음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좋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어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습니다. 이어 영산선학대학교수이신 이응준 원불교 교무님은 노래 두 곡으로 축사를 대신하였습니다. 두 번째 곡이었던 ‘온겨레의 노래’는 용성진종조사께서 쓰신 글에 곡을 붙인 노래로, 3절부터는 전체 대중이 다같이 불렀습니다. 겨레에 대한 큰스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이어서 ‘3.1 만세운동의 독립운동사적 의미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신 임형진 님의 기념 강연과 ‘3.1정신으로 국민통합을’의 제목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결사본부장이신 도법스님의 기념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 유일하게 자리한 천도교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형진 교수님은 천도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3.1운동과 더불어 여러 역사적인 고찰들과 당시의 많은 일화들을 말씀해 주셔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도법스님께서는 당시 불교인이 불교발전보다 우선시 했던 가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발전보다우선시 했던 가치가 바로 독립이었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각기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서 같이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지금은 민족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절실한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생명의 가치이지 않겠는가? 그 속에서 국민통합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의 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청년정토회 회원들이 나와서 신독립군가를 함께 불렀는데, 당장 거리로 뛰어나갈 듯 결의에 차서 신나게 불렀습니다. nbsp 행사를 마치면서 행사에 참가한 내빈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수 죽림정사까지 쉽지 않은 걸음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nbsp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은 요사채에서 공양을 드시고, 정토행자들은 날이 추워서 각 자 타고 온 차 안에서 각 자 싸온 도시락으로 공양을 했습니다. 정토행자님들은 묘수법사님의 안내로 죽림정사 사찰순례를 했습니다. 오늘 삼일절 기념행사는 내용도 있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습니다. 태화관에 모여서 목숨을 내어놓고 결연히 독립선언을 했던 33인의 선조들이 흐뭇한 웃음을 띄며 바라보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런 원이, 우리의 이런 간절한 바람이 남북의 평화와 통일로 이어지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해 봅니다. 장수 죽림정사에서 행사를 마치고 울산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과 내일 1박 2일동안 평화재단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 워크샵이 두북정토마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30여명의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들과 오늘 저녁 우리의 힘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내일 오전에는 같이 경주남산 순례를 하고, 오후에 다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부터 1박 2일간은 평화재단 실무자들과의 회의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nbsp

2013.03.02. 14,387 읽음 댓글 8개

2013년 2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분당, 용인, 수원)

오늘은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34군데 정토법당을 11일동안 돌았습니다. 지난 300강보다 더 틈없이 빡빡하게 돌았습니다. 그래도 새로 생긴 작은 정토법당까지 다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자그마한 법당까지 다 방문을 하니, 다들 정말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지난 300강 동안은 강연 준비에 집중하라고 법당에서는 스님 식사를 따로 준비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식사대접도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 법당을 돌면서 점심, 저녁을 법당에서 먹게 되니까, 열악한 조건에 있는 법당까지도 온 마음을 쏟아 스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스님 피곤하시다고 좋은 음식이나 특산물, 귀한 음식들도 많이 싸 주셔서 저희들도 잘 먹었습니다.마음 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분당, 용인, 수원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경기 동부지역이고 거리가 가까워 조금은 더 수월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도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10시경 평화재단에서 분당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다닌 3개 법당은 모두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좁아서 미어터질 듯이 빽빽하게 앉아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늘 첫 법문이 있었던 분당에서는 간단하고 시원한 답변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나뵈었었습니다. 신랑하고 문제가 있어서 한국에 나와 별거중입니다. 딸이 5월에 대학원을 졸업하는데 안가면 섭섭해 해요. 어떻게 할까요?” “안가도 돼요. 미안할 것도 없어요. 자식이 20살이 넘으면 내 말 안 들어도 괜찮고, 내가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해줘도 괜찮아요.” “딸아이가 섭섭해 할 것 같아 미안해서요.” “섭섭했겠구나 하면서 이해하면 됩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딸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입니다.” “자식이 20살이 넘었으면 부모가 이혼을 하든, 같이 살든 내 좋을대로 하면 됩니다. 자식은 더 이상 고려할 대상이 아니예요. 대신 부모도 자식이 인생을 어떻게 살든 간섭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제 인생 제가 살면 될까요?” “됩니다.” “감사합니다.” nbsp “스님. 저는 형편도 친구들과 비교하면 나쁜 것도 아니고 노후 준비도 조금이나마 되어 있습니다.남편이 돈벌어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저 혼자 자꾸 자격지심이 듭니다.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에 괴롭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많은데 강박적인 생각 때문에 마음의 평안함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벌지 못해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은 강박증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절 하루에 얼마나 할 수 있겠어요?” “108배를 두 달 하다가 그만 뒀어요.” “기도 시작하는 날 1,000배를 하고, 다음 날부터는 매일 200배씩 백일간 하세요. 그 다음부터는 매일 108배를 하세요. 108배가 하기 싫으면 다시 1000배를 하세요. ‘부처님. 저는 복받은 여잡니다.’하며 자꾸 절을 하면 내면의 열등의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여기 정토법당에 나오세요. 법당 관계자분은 저 분에게 빚갚도록 일을 많이 주세요. 일 하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지 마세요.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것이 무한한 복을 짓는 거예요. 복받은 여자니까 복을 나눠 가져야 해요. 봉사하고 기도하시면 되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이어서 계속 질문이 이어지고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좁은 사무실 한 켠에 겨우 앉아 스님께서 점심 공양을 드셨습니다. 싱크대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자그마한 곳에서 스님공양 준비까지 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법회를 마치고 가면서 저희들이 “분당법당은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전해야겠는데요? 너무 작은 것 같아요.”했더니, 묘덕법사님이 “지금 이 곳도 작은 곳에서 그나마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한 건데, 임대료가 만만치 않아요. 얼마나 많이 알아봤는지 몰라요.”하십니다. 지역보다 수도권 정토법당이 좀더 열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도권은 임대료며 관리비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용인정토법당은 분당정토법당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했는데,용인정토법당도 공간이 좁아서 따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스님께서 차안에서 한 시간 가량 휴식을 하신 후, 법회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용인법당이 분당법당보다는nbsp조금 더 넓었습니다. nbsp “좁은 곳에서 법회하니까 좋네요. 가까이서 얼굴도 보고, 눈도 마주치고.”하시면서, 스님께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신년법문을 한 시간 하신 후에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자들은 모두 정토회를 만나서 많이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스님. 저는 남편을 탓하고 원망하고 살다가 정토회를 알게 되면서, 제가 남편을 탓하고 원망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술, 담배도 하고, 가출도 해서 얼러도 보고 협박도 해 보고 때려도 봤습니다. 남편과 밤새도록 딸을 찾으러 다닌 적도 많습니다. 딸의 권고 전학으로 수지에 와서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 해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아들이 21살이 되어서 스님 말씀따라 자립을 시키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우연히 스님 법문 듣고 작년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큰 아이에게 화도 많이 내고 짜증도 많이 냅니다.” “저는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로 있었는데 최근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정토회를 알게 되어 옳고 그른 분별이 없는 것을 알게 되고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많은 평안을 얻었지만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임해야 되는지 많이 헷갈립니다.” 용인 질문자들은 모두 불교대학생이거나 불교대를 졸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불법을 알게 되었는데, 실제 생활 속에서 적용을 하면서 잘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도 더 구체적이고 진솔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생활 속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에게 기도문과 기도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용인법당에서 2시간 넘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후, 다음 법회가 있는 수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좋은벗들 대표를 하셨던 김동균 변호사님이 저녁 식사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두 분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오랜만에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수원법당도 따로 휴식 공간이 없다고 해서 법회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갔습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다리도 펼 수 없이 앉아서 법회를 들었습니다. 입구 사무실 공간까지 꽉 차서 사람들이 더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무실 한 켠에서 법당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2시간 내내 서서 법회를 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원이 정초전국법당 순회 중 마지막 법회였습니다. 법회를 시작하면서 스님께 감사함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 드렸습니다. nbsp 오늘도 법문 시작 후 한 시간동안 불법을 알고 행하고 체험해서 믿음이 강한 불자,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불자의 모습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올 해는 ‘진실한 불자가 되자, 참 불자가 되자’, 그렇게 원을 세워 봅시다. 참 불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 불법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바르게 실천하면 행복과 자유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연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신해행증이라고 합니다. 올 해는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을 해서 행복과 자유를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봅시다.nbsp불교가 열반을 목표로 하는데, 즉 괴로움이 없는 행복을 목표로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면nbsp180개국 중 100위 아래로 떨어집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 가입국가 중에 제일 낮다고 합니다. 불교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에서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한국불교인들이 불교적 가치관을 가지고살아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하면서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참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불법 공부를 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짧은 시간내에 가장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45년을 불법공부한 중에서 ‘적어도 이것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입학해서 공부하면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 현재의 내 까르마가 어디서 어떻게 왔든, 지금은 내 것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2013년도 새해에는 부지런히 수행을 해서 자기 운명을 바꿔 봅시다.” 스님 법문 후,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는데, 수원법당도 마찬가지로 깊이 있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nbsp 수원법당에서 법회를 마치고, 오늘도 스님은 약속이 있어 평화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차 타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서 “오늘 수원이 마지막 법회였네?” 하셔서, 저희가 손뼉을 치며 “스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모든 정토행자님들을 대신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내일은 94돌을 맞는 삼일절입니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셨던 용성조사의 생가인 장수 죽림정사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립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행사 때는 비가 멎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3.03.01. 13,889 읽음 댓글 2개

2013년 2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일산, 서대문, 인천)

서울정토회관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새벽 2시경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스님은 아침 일찍 조찬모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조찬모임이 끝날 즈음에 평화재단으로 가서, 스님을 모시고 일산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일산정토법당은 구할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처음 가봤습니다. 건물 입구에서 거사님 두 분이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7층 법당으로 가니까 입구에서 여러 명의 활동가들이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법당이 넓고 좋았습니다. 공양간도 넓고 복도도 넓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남자분들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왜 스님께서는 항상 여자들만 남편에게 참회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남자분이 스님께 가정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하자, 남자들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저는 가을 야간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불법 만나지 1년된 초심자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와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부모님과 많이 싸워서 이혼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며느리를 굉장히 힘들게 하셨습니다. 현재의 아내도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시댁에 가지 않은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깨달음의 장 다녀와서 아내에게도 잘못했다고 하고, 정토 다니면서 어머니와 아내를 다독거려 주니까 어머니도 아내와 화해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장남입니다. 어떻게 해야 어머니와 아내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단 20살이 넘으면 부모한테서는 독립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도 받지 말고, 복종도 하지 마세요. 특히 결혼을 하면 남자는 어머니의 아들보다 아내의 남편임을 훨씬 더 우선시 해 줘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어물쩍 하면 가정불화의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남자가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부모가 키워준 은혜가 있고, 어머니와 자식간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 간섭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고부관계로 힘들어하는 여자분들에게는 효자 아들을 좋게 봐라, 그것을 싫어하면 자식에게 똑 같은 과보를 받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부인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같은 비중을 가지고 방황하면 안 됩니다. 아내를 80, 어머니를 20 비중을 두고 입장을 정확히 가져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어물쩍 하면 내 가정이 독립하기 어렵습니다. 부모와는 정을 끊어도 되니까 내 가정이 독립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로 삶의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입장이 단호해야 합니다.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놓고, 그 다음에 이웃 노인도 돌볼 이가 없으면 돌봐야 하듯이 내 부모도 돌볼 이가 없으면 돌봐야 합니다. 이것을 섞으면 안 됩니다. 장남이건 차남이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단호한 입장을 안 가져 주면 가정의 불화가 생기게 되고, 아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안좋으면 아이들이 똑 같은 업보를 받기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결혼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남편 하나 보고 시집 갔잖아요? 전혀 낯선 사람을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것을 견뎌내려면 남편이 자기편을 들어줘도 어려운데, 남편이 어정쩡한 태도를 가지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혼할 수도 없고 참으며 고통을 겪고 살면 그 과보가 나중에 자식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좋은 손자나 좋은 아이를 바란다면 그 아이 엄마를 잘 보살펴야 하는 겁니다. 남자는 내 부모, 내 형제까지가 내 가족이 되지만, 아내는 남편과 아이까지가 내 가족이고, 남편의 가족까지는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기는 거예요. 남자라면 이 때 내 가족을 우선적으로 입장을 정해줘야 합니다. 비중을 이 쪽으로 옮겨줘야 합니다.그래야 하나의 가정을 꾸린 가장의 태도가 됩니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것을 어머니에게도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은 불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이 그렇습니다. 그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부모에게 잘 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내 어머니에게 잘 해라고 강요하면 안 됩니다. 내 어머니지 아내의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감당을 해야지 아내에게 강요하면 안 됩니다.” 스님의 말씀이 시원하게 들렸습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각 자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수행을 해야 하고, 상대를 탓하거나 바꿀 것이 아니라 내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면 질문을 하나라도 더 받으시고, 시간이 여유가 없어도 식사시간을 줄여서라도 질문을 더 받으셔서, 마칠 시간쯤이 되면 식사를 하고 가실지, 도시락을 싸야 할지 저희들이 상황을 보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다행히 다음 법문이 서대문구라 그리 멀지 않아서 늦게 법문을 마쳤는데도 식사를 하고 출발할 정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산정토법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고, 다음 법문 장소인 서대문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이면 정초순회법회가 끝나는데, 가만 보니 300강 때보다 더 일정이 빡빡합니다. 가만 보니 하루 네 번 법회를 할 때도 있고, 평균 3번 할 때도 이 도시와 저 도시를 가로질러 달려야 하니까,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다녔는데 벌써 내일이면 전국순회법회가 마무리가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대문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서대문법당에 가니, 아는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1988년 정토법당이 처음 자리 잡았던 홍제법당에서길 건너 맞은 편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대문법당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홍제동으로 오니까 괜히 정겨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부산에서 홍제동 법당으로 와서 대학생 수련을 많이 했었습니다. 주변 환경들이 낯익고 정겨웠습니다. 자그마한 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더 이상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끼여서 앉았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법당에 와서 지금 법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요.”하면 감격해 하던 보살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노보살님이 스님의 서대문법당 방문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노보살님 얼굴 가득 행복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스님께서 2013년은 참불자로, 진실된 불자로 살아보자며 불법을 배우고, 이를 행하며 사는 삶에 대한 법문을 한 시간동안 하셨습니다. 스님 법문 후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중증지체부자유 아이를 행복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는 엄마의 사연, 서울대 출신 여의사인 올케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시누이의 이야기,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많이 맞고 커서 이기고 지는 관계에 집착해서 살아오면서 주변에 많은 피해를 주며 살아왔다는 딸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많았던 자신이 결혼하고 다시 이혼해서 아이들과 싸우며 사는 이야기 등 오늘도 많은 인생의 이야기 보따리들이 풀어 헤쳐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으시고, 하나 하나 갈무리를 해 주셨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서대문법당이 사람들로 꽉 차 더웠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스님은 속옷이 다 젖었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와서 바로 다음 강연 장소인 인천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인천정토법당도 작아서 따로 공양하거나 휴식할 공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대문법당에서 스님 저녁공양으로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일회용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에 음식을 담고, 젓가락까지 다 준비를 해 주었는데, 정말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인천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곤히 주무셨습니다. 인천정토법당에도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인천광역시라 법당도 제법 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자그마한 법당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정토법당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경제적인 지원까지 끊는데, 정토법당에 나와야 살 것 같고,남편과도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여자분,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는데 과연 통일이 당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분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많이 맞으면서 커서 마음에 화가 많고 사람들과 쉽게 교류가 잘 안 된다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21살 여자분은 모든 일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고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했고, 어릴 때 사고로 5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서서 질문한다는 31살 젊은 남자분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만족이 잘 안되고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낀다며 분수를 모르는 자기 처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님께 물었습니다. 세 아이가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해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여자분도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살아가면서 겪는 사연들이 참 많았습니다. 스님께서 사연들을 다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면서도 불자로서, 수행자로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정진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명확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사람들 마음이 시원해졌을 것 같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내 문제해결에 가장 중요한 핵심 키이긴 하지만, 또한 내 문제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어놓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해결점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따로 개인적으로 질문을 받지 않고 대중들 속에서 질문을 받고 바로 답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nbsp 인천에서 법회를 마치고 바로 서울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재단에서 약속을 마치고 정토회관에 늦은 시간에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정토회관에 먼저 들어와 내일을 위한 정비를 했습니다. 내일은 2013년 전국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날입니다. 분당, 용인, 수원정토법당에서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은 법당들이 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시간이 여유가 조금은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2.28. 13,199 읽음 댓글 2개

2013년 2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포항, 안동, 경주)

오늘은 경상북도를 돌았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포항으로 갔습니다. 시간에 맞춰 포항정토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입구에 젊은 청년들 여럿이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스님께서 “포항 청년들이구나?”하며 웃으며 물으시자, 청년들이 “녜”하면서 싱글벙글하며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포항은 작은 정토법당인데도 작년에 청년회가 결성되어서 300강을 할 때도 자원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포항법당도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을 돌면서 법문을 하니까 질문이 정말 많습니다. 활동하면서, 기도하면서 생기는 어려운 점들,개인사들을 질문을 많이 하는데, 포항에서는 5개 질문을 받고 2개는 시간이 부족해서 받질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이 되는데만큼 끝까지 질문을 받으시고, 저희는 시간을 보며 스님 점심식사 상 차린 것을 다시 도시락으로 바꿔서 담고, 스님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nbsp 여러 질문들 중 질문하면서부터 울면서 질문한 젊은 여자분의 사연을 올려 봅니다. “ 제 고민은 신랑이 재작년부터 눈에 복시현상이 생기면서 아프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더니,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명한 병원을 다 다녀봐도 병명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스님께좋은 말씀 들으려고 왔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러나 이런 남편을 둔 아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기 있어요?” “예. 3살이예요.” “엄마가 매일 우는 것이 아기에게 좋을까요?” “아니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내가 웃을 수 있을까요? 남편이 내가 병들어라 해서 병들었나요?” “제가 소홀해서 남편의 병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된 데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남편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돈 아끼려고 치료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또 병원에서는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다잖아요? 그런 남편을 보고 내가 매일 울어야 아기에게 좋을까요, 웃어야 남편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을까요?” “웃어야 좋겠죠.” “남편의 병이 치유가 되고 안 되고, 살고 죽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고, 치료하는 것은 의사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설령 남편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울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섭섭하죠. 그러나 그 정도로 마음이 딱 잡혀야 합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남편 문제를 가지고 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아기를 잘 키우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엄마가 웃어야 아기가 잘 컵니다. 지금처럼 엄마가 자꾸 울면 아기 마음에 슬픔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아기 키우는 엄마는 울면 안됩니다. 생글생글 웃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내와 엄마 중 엄마가 더 중요합니다. 엄마의 책임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기를 보호해야 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겠습니다. 웃는 엄마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래야 남편 병도 더 좋아집니다. 남편의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병원에만 모시고 갔다가 왔다가 하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nbsp 다음 장소가 안동이라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빠듯해서 더 질문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질문이 남은 두 사람은 안동이나 경주로 오시면 어때요? 지금은 도저히 더 받기가 어려운데요. 미안합니다. 명상 중에 먼저 나가겠습니다. 제가 먼저 나가더라도 따라 나오지 마시고, 아직 공지사항과 몇 가지가 남아 있으니 끝까지 듣고 나오세요, 아셨죠?”하면서 명상이 시작되자 조용히 나오셨습니다. 바로 차를 타고 안동으로 향하면서 차에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안동으로 가는 길은 국도로 갔습니다. 매일 고속도로로 다니다가 국도로 가니까 정겹고 좋았습니다. 3시부터 안동정토법당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이며 주변 정리가 말끔히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 오신다고 일요일부터 옥상 청소, 계단 물청소까지 하고, 내내 정리했어요.”하던 안동거사님 이야기처럼, 시설은 다른 법당들보다 덜 되어 있는데, 노력한 손길이 보이는 것 같아 스님을 맞아하는 지역 법당보살님, 거사님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안동에서도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마음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과 교회에서 만나 결혼을 한 후 남편이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뒷바라지를 했는데, 나름대로 성공한 남편으로부터도 무시받고, 시댁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주 가서 일을 도와도 아들을 낳지 못해서 대를 끊는다고 욕을 해서 시댁에도 발을 끊었고, 남편은 처음부터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했기 때문에같이 살기 힘들다고 해서 현재는 별거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잘 해서 남편과도 같이 살고, 시댁에도 다닐 수 있기를 꿈꾸고 있는 여자분이었습니다. “지금 몇 살이예요?” “마흔 여섯 살입니다.” “아이는 있어요? 몇 살이예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스무살입니다.” “직업은요? 밥 먹고 살 수 있어요?”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데 밥 먹고 살만은 합니다.” “남편하고 같이 안 살아요?” “아이 보러 가끔 집에 옵니다. 대화도 안 합니다. 제가 말을 걸면 너와 이야기하기 싫다고 합니다.” “남편 직업은요?” “공무원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 여자분 이야기 들었죠? 이 분 이야기를 100 다 믿으면 안 돼요. 상대편 남자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아셨죠? 이 여자분이 이혼하는 것이 좋겠어요? 안하는 것이 좋겠어요?” “ 이혼하는 것이요.” “자, 그럼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사람들이 이혼하는 쪽에 손을 우루루 들었습니다. “배심원 판결이 이혼하는 것이 좋겠대요.” “저는 이혼 안하고 맞춰서 대화를 해서 풀었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을 잘 몰라서요. 제가 이야기를 잘 해도 남편은 너에게 안 돌아갈 것이라고 하면서 화내서 말합니다.” “남편이 개과천선해서 반성을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그런데 남자가 안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남자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예요? 노예처럼 사는 거예요? 노예처럼 살기 싫으면 이제는 마음에서는 끝을 내세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마세요. 아이가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기때문에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므로 이제은 남편과 일대일로 단판만 하면 돼요. 내가 이 남자가 싫어서헤어지는 것이면 참회를 하고 같이 살면 되지만, 상대가 싫다고 하는 것이라 상대가 변해야 해결이 되는 겁니다. 결혼해서 남편 뒷바라지해서 성공 시켰고 아이도 하나 키워 봤잖아요. 헤어진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뭐가 있어요? 왜? 이혼해 봐야 별 소득이 없어요? 그러면 이혼은 하지 말고, 마음 정리를 하고내 인생 열심히 살면 됩니다. 상대가 변해서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를 고치자는 것이므로 수행이 아니예요. ‘절 열심히 하면 상대가 언제가 돌아오겠지’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 기복이예요.” “사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보지요. 그렇게 살지 말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잖아요? 내가 도와줬다느니, 시댁에 가고 싶다느니 하는 생각을 끊으세요. ‘내 할 일은 다 했다’하고 자기가 먼저 독립을 하면 됩니다. 자기는 지금 하는 태도는 비굴한 것입니다. 남편 환심을 어떻게 사 볼까?하는 거예요. 비굴하게 살기 때문에 억울한 것이 안 없어지는 겁니다. 마음에서 끝을 내야 해요. 그래야 자기가 두 발로 설 수 있어요. 뭐가 좋아서 그래요? 공부시킨 것이 아까워서 그래요? 그 남자가 좋아요?” “아이 아빠니까요. 가정을 깨기 싫으니까요.” “그렇게 비굴하게 구니까 남자에게 천대받는 거예요. 엿처럼 붙어서 안 떨어지니까 천대받는 겁니다. 참고 사는 것이 잘 한 것이 아니예요. 자기 마음 씀씀이가 굉장히 비굴한 것이예요.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예요? 내가 라면을 끓여 먹고 살아도 비굴하게 살 필요없어요. 여기서 마음을 딱 정리해서 그 남자에게 비굴하게 굴지 마세요. 당당해야 합니다. 인생 잘 못 산 것입니다. 나는 이런 남자 만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당당하게 사세요. 지금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노예근성같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여자를 창피주고 있어요. 당당하게 살아보세요.” 사람들 살아가는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은 법당간 간격이 멀어서 이동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안동에서 바로 경주로 이동했습니다.경주법당에서 저녁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놓아서, 스님과 수행팀, 촬영팀, 영남사무국까지 다 같이맛있게 먹었습니다. 경주법당에도 사연이 많았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29살 여자분은 회사와 노조간의 갈등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되었는데, 비정규직 없애라고 하니까 회사가 비정규직 중 대부분을 해고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재미있던 회사생활을 접게 되면서 ‘내가 일회용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허무함에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질문하지 않았으면 자살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법문을 마칠 즈음에 스님께서 그 여자분 얼굴을 보며 “아까 곧 죽을 듯이 축 쳐져 있더니, 이제 환하게 웃네. 괜찮아요.”스님 말씀에 저희도 같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법당 앞에 개소주집이 있어서 왔던 사람이 다시 안 오기도 해서 마음이 위축되기도 한다는 불교대학 담당자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개소주집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요? 개소주집 위에라도 법당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따지면 고마운 것 없이 다 문제입니다. 개소주집 위에라도 법당이 있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해도 고마운 것입니다.” nbsp 경주법당 활동가들은 법당이 시장통 안에 있어 사람들이 찾기가 어려운데다, 이제 문틀도 일어나고화장실도 공사를 해야 하는데, 이 참에 법당 이전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이 곳 저 곳 법당 자리를물색하고 있었나 봅니다. 법회를 마치고, 경주정토회 대표님이 스님을 모시고, 큰 대로변에 있는 물색한 장소 한 곳을 보여주며 이런 저런 경주정토회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일산, 서대문, 인천에서 법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스님은 조찬 모임이 있어서, 오늘 밤새 서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연을 접했던nbsp하루였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2013.02.27. 12,880 읽음 댓글 6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