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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27. 4번의 회의 후 미얀마로 출국
스님께서는 어제 저녁에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7시 종교인 모임부터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9시에는 해외 파견된 실무자와 미팅이 있었고, 10시에는 하반기 일정을 확정하는 평화재단 팀장들, 대중부 책임자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 12시에는nbsp8차 천일을 준비하는 위원들과 다음 3년을 계획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 그리고 회의를 마치자 마자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셔서 미얀마로 출국하셨습니다.nbsp 미얀마에서는 4박 5일동안 머무시면서nbspJTS 사업장에서 2개의 다리nbsp 준공식과 다음 사업예정지 답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그리고nbsp교민들을 위한 법회도 예정되어 있습니다.스님께서는 7월 2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2013.6.26. 밴쿠버 법회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23일 저녁부터 마련된 밴쿠버 총영사 리셉션에서부터 오늘 26일 아침까지 총 2박 3일의 한민족 대회 포럼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이후, 스님께서는 오늘 오후 2시 30분 대한항공 편 귀국 비행기 탑승에 앞서 아침 10시경 밴쿠버 정토법회 회원 분들과의 차담에 참석하셨습니다. nbsp 포럼 일정상 예외적으로 짧게 이루어진 지난 밴쿠버 순회법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대부분의 포럼 참가자들이 이미 단체로 공항으로 출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는 뒤에 남아 특별히 법회 회원 분들을 위해 아침시간을 할애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스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분들을 위해 스님께서는 이번에도 보다 많은 분들이 쉽게 모일 수 있도록 장소 및 시간 선정 등에 세심한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밴쿠버 정토법회의 불교대학에 다니는 분, 문경에서의 백일 출가 후 회향하여 밴쿠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 및 워킹 홀리데이로 캐나다에 약 2년간 단기로 머무는 분등 약 7분의 회원 분들이 모여 스님께 법회 활동 및 외국 생활의 어려운 점 등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중국, 한국, 인도, 동유럽, 아프리카 등 많은 유색인종들이 캐나다에 이민 온 후 기존 백인 중심의 기업에 들어갔을 때 발생하는 문화적인 적응 및 승진의 어려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이는 단지 캐나다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님을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특히나 여러 인종이 한 직장에서 함께 일하다 보니 생기는 문화적인 차이 및 완벽하지 못한 영어 실력 등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직장 내 의사소통의 문제에 대해, 스님께서는 자신의 일은 열심히 하되 다른 문화에 대한 배려를 먼저 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 안에서도 각 조직마다 혹은 지역마다 나름의 문화가 각각 존재하듯이, 더더욱 이민자로서 다른 나라에서 이미 형성된 조직에 진입한 만큼 감수해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함을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약 2시간에 걸친 차담 직후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스님께서는 한재아 법우님의 차량으로 바로 공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님께서는 다가올 9월 강연에서는 넉넉한 장소를 확보하여 강연을 듣기 위해 찾아와 좌석이 없어 되돌아 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며 지난 일요일 강연에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 가야 했던 많은 분들께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덧붙여 행사장이 커졌을 때 발생할 추가 비용 및 행사장 선정 등의 상세한 내용 등에 대해서도 행사장 접근이 용이한지, 주차장은 넉넉한지, 음향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등 여러 확인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세심히 알려주셨습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공항에 약 30여분 만인 오후 12시 30분경 밴쿠버 국제 공항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스님을 알아보시고 여기저기서 사인을 급하게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nbsp 비행기 티켓팅을 마치신 후 불교대학에 다니는 윤해정 보살님께서 준비한 간단한 미역국과 밥으로 점심공양을 하시는 짧은 시간 중에도 스님께서는 탑승 전 이메일로 한국과의 연락 등 업무를 마치신 후 입국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013.6.24-25 한민족 포럼 참석(캐나다 밴쿠버)
스님께서는 6월 23일 밴쿠버 순회강연을 4시까지 마치신 후, 밴쿠버 총영사 초청 환영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오후 5시경 총영사 관저에 도착하셨습니다. 내일 24일 공식일정에 앞서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하루 전날인 오늘 밴쿠버에 도착 후, 단체로 리셉션 장에 도착하셨습니다. 리셉션에는 포럼 참가자 약 60명의 인원이 약 2시간 반 동안 총영사관저 뒤뜰인 야외에서 서로 환영인사 후 식사와 차담을 나누셨습니다.nbspnbsp 이후, 스님께서는 행사주최측에서 마련한 UBC내 숙소로 이동하여 숙소 체크인을 하신 후 밀린 업무를 처리하신 후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24일. 주최측에서 마련한 간단한 아침 식사 이후, 세계한민족포럼 조직위원장이자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인 이창주교수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오전 9시 30분부터 한민족 대회 포럼의 1일째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캐나다의 수교 50주년을 통해 양국의 협력과 우정을 주제로 최연호 밴쿠버 총영사님의 환영사 이후 송희영 건국대학 총장님의 기념사가 있은 후 법륜스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이후,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님의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전개와 통일 한반도라는 주제의 개막연설이후, 한반도 평화와 미래구상을 주제로 한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의 기조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12시까지 이어졌던 첫번째 세션을 마친 직후, 전체 참석자들의 단체사진 촬영에 이어, 점심식사는 포럼행사장이었던 UBC 캠퍼스내의 Allard 룸에서 평화재단 및 정토회 초청으로 점심 오찬이 있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두번째 세션에서는 Evans J.R. Revere 미국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Sachio Nakato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신범식 서울대 러시아 연구소장님등이 참가한 가운데 아태시대의 국제적 정책기조와 전략을 주제로 발표 및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세션이었던 오후 4시 15분부터는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님의 분단 한반도의 과제에 대한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충돌과 경쟁의 국제정치 진실에 대해 역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저녁 7시가 넘어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약간 넘어 전체 포럼 참가자들은 저녁식사를 위해 건국대학 총장의 초청만찬 장소인 UBC학내의 골프클럽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저녁식사 메뉴로 선택된 스테이크 대신 약간의 샐러드와 야채 스프로 저녁공양을 하셨습니다. 문화공연을 포함한 약 2시간 반에 걸친 만찬이후 스님께서는 밤 10시경 숙소로 이동하신 후 어제와 마찬가지로, 업무를 마치신 후 하루를 마감하셨습니다.nbsp 6월 25일 어제와 마찬가지로, 숙소에서 제공된 아침식사를 하신 후 스님께서는 포럼장소인 Allard 홀로 이동하셨습니다. 포럼 이틀째인 오늘의 첫세션은 김성민 건국대학 철학과 교수이자 국제 한민족재단 이사님의 기조발제를 시작으로 G2시대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토론에 Donald Baker, UBC교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대표,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어진 점심식사 이후, 스님께서는 오후에 열린 아시아 태평양 공동체 세션에서 평화 협력 공존의 공동체 모델 구축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아시아 태평양 시대에 있어서 어떻게 공생 공영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가, 그리고 한국은 새로이 도래하는 아태 시대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특히나 이러한 국제정세 및 문명의 큰 변화 속에서 남한만으로는 그 구심점이 되기에는 성장 동력이 바닥나 있음을 지적하시며, 그 해답으로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자 견인차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은 단순히 한국의 성장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강조하셨습니다. 어디에서나 통일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 스님의 간절한 염원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럼의 마지막 세션은 박창수 한민족교육문화연구원장, Ross King UBC 교수, German Kim 카자흐스탄 국립교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화시대 글로벌 코리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세션이후 곧바로 이어 이번 포럼에 대한 전체 회의와 내년 포럼행사에 대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UBC 골프코스에서 환송만찬 및 폐막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한국과의 전화 연락 및 이메일 업무 처리 등을 하신 후 하루를 마치셨습니다. 지난 일요일 밴쿠버 순회강연은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행사장에서 스님을 짧은 시간 뵈었던 아쉬움으로 인해 내일 오전 스님께서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밴쿠버 정토법회 회원분들과의 차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3.6.23. 캐나다 밴쿠버 강연
스님께서는 6월 24일부터 25일까지 국제 한민족 재단 주최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협력과 경쟁” 이라는 주제의 세계한민족포럼에 초청되어 평화 협력 공존의 공동체 모델 구축이라는 주제의 기조발제자로서 참석하십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포럼 참석을 겸하여 매년 9월 한번뿐인 미주 해외순회강연과는 별도로 한번의 강연기회를 더 갖고자 미주서부강연 과 캐나다 밴쿠버 순회강연을 특별히 기획하게 되었습니다.nbsp 지난 20일 스님께서는 미국 LA를 시작으로, 21일 샌프란시스코, 22일 시애틀, 그리고 오늘 마지막 밴쿠버 강연을 마친 후 원래 방문 목적이셨던 세계한민족 대회 포럼을 위해 오후 5시부터 외부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애틀 신수지 총무님의 차량 편으로 아침 일찍 시애틀을 출발하여 오전 10시경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어 오전 11시 20분경 밴쿠버 정토법회의 문영신 대표님 댁에 도착하셨습니다.nbsp 밴쿠버 정토법회 열다섯분 정도가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스님과의 점심 공양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속이 불편하시다며 점심을 많이 드시지 못하셨습니다. 점심식사후 스님께서는 회원분들과 간단히 차담을 하셨습니다. 강연 준비를 위해 아침일찍 강연장으로 바로 이동해야했던 몇몇 실무자들은 점심공양에 참석하지 못한채 강연장에서 스님을 맞게 되었습니다. nbsp 공양에 참석하신 분중 위니펙에서 오신 장형원님께서는 스님의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을 운전하여 밴쿠버에 오셨습니다. 위니펙은 캐나다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비행기로는 3시간이 걸리는 먼거리입니다.nbsp 그외에 비행기로 1시간 반거리의 알버타주의 에드몬튼에서도 일가족이 스님을 뵙기 위해 먼거리를 달려 오기도 했습니다. 위니펙에서 오신 장형원님께서는 강연뒤에 있었던 나누기 자리에서 교민수가 작아 열린법회도 하기 힘든 도시가 아직 캐나다에 매우 많다는 점을 말씀하시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nbsp 더불어, 매주 열리는 수행법회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법륜스님의 해외 순회강연을 접할 수 있는 밴쿠버 교민분들을 부러워하셨습니다. 점심 공양 및 차담을 마친후, 문대표님의 차량으로 스님일행께서는 강연장인 컨페더레이션 센터에 오후1시 반에 도착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5시부터 외부일정이 잡혀있는 관계로 예년보다 1시간이 짧은 2시간의 강연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에 시간을 좀더 잘 활용하기 위해, 책사인회를 강연전에 먼저 마치시고, 이미 만석이 된 강연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엄격한 캐나다의 소방법 관계로 정원 초과된 분들은 서서 조차 들을 수 없어 결국 100여명에 가까운 분들이 되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강연 시작 직전이었음에도 몸소 로비로 나오셔서 강연장으로 들어오지 못한 한분 한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일일이 전하셨습니다. 오는 9월에 있을 정기 순회 강연은 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약 500명 규모의 강연장을 찾아야 함을 절실히 느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높아진 스님의 인지도에 대해 모두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보다 많은 시간을 대중과 함께하기 위해 스님께서는 예정보다 10분 일찍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짧은 시간 관계상 사전 질문자 접수를 통해 이미 7분의 질문자가 선정된 가운데, 주사가 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와서 생각만큼 영어공부가 늘지 않아 고민인분, 유학을 온 후 매일 학교와 집만 반복하는 단조로운 유학 생활이 고민인 여학생, 49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신 중년의 남자분과 외국인을 남편으로 둔 한 여성분께서는 한국말을 못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 그 외국인 남편은 어떻게 하면 한국인 아내와 같이 복잡한 도시 생활 가운데에서도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지 질문하였는데, 스님께 질문하기 전에도 한국인 아내에게 늘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nbspnbsp 이에 대해 아내는 나는 원래 타고난 성격이 차분하여 오히려 남편처럼 복잡하게 산다면 무척 힘들 거라고 남편에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늘 같은 질문을 하는 남편에게 어떻게 좀 더 나은 답변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nbsp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남편의 질문에 대해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본인이 알고 느끼는 것만을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흑인과 백인 중 어느 인종이 더 낫다라고 할 수 없듯이 성격이 단순하고 복잡한 것도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남편의 복잡한 성격이 열등한 것도 아니고, 아내의 단순한 성격이 우월한 것도 아님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남편이 아내와 같은 단순한 성격을 따라가고 싶다면 생각보다는 행동을 먼저하는 연습을 그리고 명상을 하며 호흡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그외에도 귀국을 원하는 남편과 밴쿠버에서 더 공부하기를 원하는 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어느새 예정된 강연 시간이 끝나가는 가운데 스님께서는 단 한 분의 질문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7분 이외에 3분의 질문을 더 받으셨습니다.nbsp 아쉬움을 뒤로 한 가운데 이미 오후4시가 되어 스님께서는 다음 일정인 밴쿠버총영사관 리셉션에 참석 하기 위해 서둘러 강연장을 나가셨습니다. 강연후 늘 있었던 스님과의 사진촬영을 하지 못한 많은 분들께서는 스님을 아쉬운 마음으로 배웅해드려야 했습니다.nbsp 강연에 참석하셨던 많은 분들께서는 9월 강연에는 보다 넓은 강연장과 좀 더 긴 강연시간을 스님과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하셨습니다.또한 스님께서도 앞으로는 강연장이 좁아 되돌아가는 분들이 없도록 하라며 실무자들에게 특별히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가셨습니다. 24일과 25일은 스님께서 포럼에 참석하시는 관계로 스님의 하루는 잠시 쉬고, 스님께서는 26일, 수요일 대한한공을 통해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2013.6.22. 시애틀 강연
오늘은 시애틀의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매년 9월에 오시던 스님께서 올해는 캐나다에서 열리는 한민족 포럼 행사에 오신 김에 저희도 덤으로 6월에도 강연을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nbsp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셔서 시애틀에 8시 35분에 도착하셨습니다. 집에서 간단한 아침 공양을 하시고 비행기 안에서 못 주무셔서 강연이 있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배가 안 고프시다며 점심도 거르시고 오신 분을 위해 강연전에 사인회를 30분 정도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일찍 출발했습니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밀려 30분이 걸려 도착을 했습니다. 10분 정도의 사인회를 마치고 바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300석 규모의 강연장은 280석 정도가 채워졌습니다.nbspnbsp 어떤 미국 보살님은 아드님이 얼마 전에 자살을 해서 가족이나 지인들의 아픔이 너무 크다고 하셨고 이런 상처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리고 저희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 하는 것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이런 일을 겪은 같은 처지의 남겨진 분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또 이 사회나 공동체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nbsp 이 질문에 대한 스님께서는 “자살도 일종의 질환입니다. 이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스스로 너무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즉, 팔 다리가 없는 것, 그리고 신체가 아픈 것은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보살님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보면 그렇게 마음먹은 아이의 마음상태가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를 가졌을 때는 초상집에도 못 가게하고 소나 돼지를 잡는 것도 못 보게 합니다. 엄마의 슬픔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못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식이 잘 자라나게 하려면 아내를 마음이 편하도록 잘 배려를 해야 하고, 시부모 역시 손주가 잘 자라나게 하려면 며느리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진 엄마는 무슨일이 있어도 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엄마가 잘 다스려 아이에게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 얼마전에 중국에서 지진이 난 몇 일뒤에 붕괴된 건물 잔해물을 걷어내고 실종자를 찾았을 때, 엄마는 죽었지만 애기는 살아 있었던 뉴스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엄마는 자기 목숨을 다해 아이를 지켜야 하고 또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nbsp 요즈음 직장을 가진 주부들은 봉급과 유치원비용을 비교해서 어떤 것이 더 이익인가를 생각하는데 잘못 된 생각입니다. 아이를 엄마가 키우지 않고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는 할머니를 엄마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3살 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됩니다. 이때는 각인작용이 일어나므로 엄마의 좋은 모습들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런 것들이 아이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외부의 장애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는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부모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자기가 보고 익힌 학습을 확인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고, 19살 이후가 되면 부모자식 간의 정을 끊고 성인과 성인으로 일대일로 대해야 합니다.nbspnbsp 보살님은 이 일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일이 일어 나지 않도록 상담역활을 한다면 50명 100명의 죽을 목숨을 살리고 결코 죽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오히려 좋은 공덕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안젤리나 졸리가 가슴 절제수술을 했는데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겠냐는 질문, 직장을 다니는데 마음이 힘이 드신다는 보살님, 반야심경이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서 이해하기가 힘들다시는 분, 한국에 있는 언니랑 통화를 자주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 주고 하는게 힘이 들어 지금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계시다는 분 등 많은분들의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nbsp답변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시는지 박수를 많이 치셨습니다. 강연을 3시간 하시고 사인회와 사진찍기를 원하시는 분께 일일이 사진을 다 찍어 주셨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바로 법당으로 가서 보살님들이 마련한 충무김밥으로 저녁 공양을 맛있게 한 후 단체 사진을 찍고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3.6.21 샌프란시스코 버클리대학 강연
법륜스님께서는 오후 2시 30분경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셔서 마중 나온 허성호 총무님과 함께 오클랜드에 있는 한국식당 ‘오가네’로 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체증을 몸소 경험하시면서 1시간 15분 걸려 식당에 도착하셔서 반인규 거사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후 5시 45분경, 버클리 대학 Sutardja Dai Hall, 강연장에 도착하셨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정토회원과 버클리 한인 학생회가 함께 주최한 이번 행사에 모든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둘러보시고 격려 말씀도 해 주시고 책 사인회도 하셨습니다. 청중은 200여명 정도 참석하였고 대학가여서 인지 젊은 학생들이 많았고, 나이 드신 교민분들도 참석하였습니다. 강당 좌석이 150석이어서 많은 분들이 서서 듣거나 계단에 앉아서 듣기도 했습니다. 7시에 사회자의 스님 소개 후, 스님께서는 왜 ‘즉문 즉답’이라 하지 않고 ‘즉문 즉설’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즉답이라 하면 질문에 답한다는 뜻인데, 지식이나 학문에 관한 문제에는 답이 있으나, 인생 문제에는 답이 없고 다만 선택이 있을 뿐이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를 뿐이라고 설명하시며 선택이 어려운 것은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역할은 이런 선택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이런 준비하라고 일러주어 자기 스스로 지혜로운 선택을 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므로 즉설이라고 합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그리고 “이곳에서는 책이나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질문을 하기 보다는 평소 고민, 괴로움, 또는 궁금 한 것이 있다면 대화하면서 문답으로 풀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이곳에 유학하러 온 여대생이었습니다. 이곳에 유학을 와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젊었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공부하며 지내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20대에 연애 못해봤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이 아니고 연애를 해봤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20대에 무엇 무엇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 말은 꼭 맞는 것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공하면 성공해서 좋고, 실패했다고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실패를 해도 연구함으로써 실력이 늘어 실패가 더 이로울 때도 있듯이 또 괴로움을 당해 보면서 같은 괴로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게되고 불행이나 재앙이 복 인줄을 알게 되면 모든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연애 실패로 밤잠 못자고 속 쓰리는 아픔을 겪었다 해도, 긴 인생으로 볼 때 는 하등의 손실이 아니고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산다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nbspnbsp 밥먹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는 학생일 때 밖에 없는 좋은 시절임을 알고 실컷 공부 해 보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연애도 실컷 하고 공부도 실컷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러나 둘 다 함께 할 수 있는 길도 있을 수 있는데,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가, 술 마시며 함께 과제를 토론 하던가하면 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지금 많은 세계의 나라들이 자유와 인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면서 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북한은 3세대 세습, 남한은 박 대통령이 집권을 해서 한국은 세상의 흐름에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요?” 이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세상일은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리비아가 카다피 후 꼭 좋아졌다고 볼 수도 없고, 시리아, 이란, 리비아 등의 세속주의가 붕괴되자 회교도 종교 원리 주의자가 들어서고 있는 이것이 꼭 좋은쪽으로 간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물을 볼 때 역학적인 관계를 잘보고 대처해야 합니다.nbsp 북한의 김정은정권이 무너지고 혼란 상태가 계속 되다가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통일에 유리한지도 검토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울분 토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현실을 수용하면서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번째 질문은 한 남학생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며 풍족히 지내다가 이곳에 유학 와서 공부하며 돈에 쪼들리며 경제적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어렸을 때 꿈은 밀려가는 듯 하고 , 또 며칠전 교통 과속으로 400 티켓을 받고 나니 속상합니다”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스님께서 “티켓 400을 아까워 하지 마세요. 교통사고로 죽을 위험을 벌금 400로 면했으니 죽음의 대가로 ‘너무 싸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두 눈은 이상을 보고 가고, 두 발은 현실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이 다 필요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꿈을 가졌어도 현실의 작은 일부터 쌓아 가야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공부하러 왔는데 돈 버느라 공부를 안 한다면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므로 현실을 받아들이되 꿈을 잃지 마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네번째 질문은 56세 여성이었습니다. 이분은 이혼하셨고, 18세 딸과 함께 있는데,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에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도 남편에게 화가 나서 울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혼한 여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이혼 하기 전에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미 이혼해서 전 남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딸은 18살 대학 갈 나이여서 성인이 된 나이이니 아이 책임은 안져도 되니 내 인생일 뿐입니다. 그사람은 이미 남편이 아닙니다. 이젠 아내가 아니라 이혼한 상태에서 어느 남자를 만나도 괜찮습니다.nbsp 혼자 살면서 딸에게 외로움을 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딸이 독립하기 힘들어집니다. 전 남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참회기도 하면서 내 속의 남편에 대한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내 속의 상처가 남아있으면 이 남편과 다시 만나면 상처가 다시 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 존중 할 수 있어야 딸에게도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은 친한 친구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 질문한 여학생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르면 모르는 것을 받아들이고, 말로 도움을 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방문해서 예전처럼 즐겁게 얘기하고 그냥 들어주고 만나 주세요. 내가 친구를 도울 수 있다고 자기를 과대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못한 자기가 초라해 보입니다. 일상적으로 대해 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좋은 인연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 우유부단할 때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는 “결정을 못 내린다는 것은 사실 어느 것을 선택하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어떤 것을 선택해도 선택 후에는 늘 후회가 따르는데 선택에 따른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 기다리는 것은 오래 기다릴수록 나쁜 사람 만나기가 쉽습니다. 나이 들수록 눈 높이가 올라가 결혼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자랑스런 아들을 가진 시어머니와 관계도 힘들 수 있습니다. 요구 수준, 기대를 낮추면 눈에 보이는 사람도 많아지고 사는 것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큽니다. 기대가 낮으면 만족이 큽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모든 분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마무리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 9시 45분경 법문을 마치시고 책 사인회를 하신 후에는 정토회원과 버클리 봉사자들과 함께 중국집에서 저녁식사 하셨습니다. 새벽 1시경 미타향님 집에 도착한 후, 잠간 휴식하신 다음 새벽 4시 30분 공항으로 출발했고, 5시 비행기로 시애틀로 떠나셨습니다. 꽉 짜여진 스케줄로 인해 쉴 틈도 없는데, 틈틈이 메일을 열어보고 전화를 받으시면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하지만 늘 웃는 얼굴로 뛰어 다니시는 스님을 뵈며 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2013.6.20 LA 부에나팍 강연
오늘은 스님께서 LA 부에나팍에서 즉문즉설을 하시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1시 LA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LA 날씨가 청명하고 시원해 가을처럼 느껴진다고 하시며 코리아타운으로 향하셨습니다. 미리 섭외한 LA 불사 장소를 세심하게 둘러보시고 LA 정토회 김명례 총무님 댁에서 오후 1시에 점심공양을 드시며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점심 공양 후 잠시 휴식을 취하시고 오늘 강연회 장소인 LA 부에나팍의 헐리데이인 호텔에 도착하셨습니다. 강연장에는 행사 시작 1시간 반 전인 5시 반부터 교민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 30분부터 30분 간 책 사인회를 갖고, 교민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청소년부터 대학생, 청년,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왔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이 곳을 찾아 온 관객도 있었습니다. 모두 스님 말씀을 영상과 글로 미리 접하고 직접 지혜의 말씀을 듣고자 행사장을 찾아온 분들입니다. 7시가 되자 행사장이 가득 메워졌습니다. 400여 분이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평일인 목요일 저녁, 더구나 교통체증이 심한 LA에서 저녁 7시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낮은 조명 아래 스님의 활동과 지난 즉문즉설이 포함된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모두 앞에 서셨습니다. 박수로 또는 합장으로 스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985170즉문즉설이란 살아가며 궁금하고 답답한 일, 괴로운 일을 드러내놓고 얘기해보는 강연방식입니다. 많은 분들이 즉문즉설을 즉문즉답이라고 잘못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즉문즉답이라는 건 없어요. 왜냐,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이들을 데리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어디에요? 서울입니다 이런 퀴즈를 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답을 줄 수는 없어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 스스로 지혜로워질 수 있도록, 그 지혜로워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까요라고 물어봐요. 하지만 인생에는 좋은 선택, 나쁜 선택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는데, 그 책임은 안지고 좋은 것만 얻으려고 하니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욕심이지요. 허황된 생각을 품는 거다, 이런 얘기예요.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것은 피하고 싶고 좋은 것만 얻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종교를 찾기 쉽습니다. 하지만 원래 예수님, 부처님의 가르침은 허황된 생각을 하지 마라 눈 뜨고 바르게 살아라는 데에 있어요. 그 가르침을 전하고 돕는 과정이 바로 설교이고 설법인 거지요. 제가 만약 사물의 이치를 원리로 얘기한다면 10분이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추상적이고 어려운 이야기는 이 분야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요. 같은 이치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실례를 갖고 얘기하면 훨씬 대중이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비록 시간은 두 시간, 세 시간이 걸리고 45명의 얘기 밖에 들어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 힘은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것을 하는 자리입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치를 듣는데서 만족하지 말고 이치를 알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과정 즉 수행을 꾸준히 해나가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한 번 들은 좋은 얘기는 그것으로 끝이에요. 부디 오늘 실례를 통해 이치를 듣고 본인의 꾸준한 수행을 통해서 마음 가볍고 행복한 삶을 꾸리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을 받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중년의 여성이 준비된 마이크대 앞으로 나가 섭니다. 스님의 말씀을 유튜브를 통해 접하고,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스님을 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이렇게 스님께서 LA로 와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고, 제가 온 덕분에 비행기값 아꼈네요라는 스님의 농담에 질문자도 관객도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질문자의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제 딸이 발레리나인데 보스턴에 살고 있어요. 딸을 보러 갔는데, 마침 그 날 보스턴 폭발 사고가 났어요. 저는 그 현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내가 죽다 살았구나 싶은 그 찰나에 내가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겠구나. 내 인생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갖 혼돈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은 늘 바쁘고, 애는 반항만 하고, 내 인생이 뭔가 싶었습니다. 그 후로 한 번씩 남편도 보기 싫고 딸도 싫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날 부처님께서 저를 살려주셨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살려주신 이유가 뭘까요. 제가 이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산 것은 부처님이 살려줘서 산 것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만물을 살리거나 죽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만약 본인이 산 것이 부처님이 살려줘 그런 거라면, 그 사고로 사망한 3명은 부처님이 죽인걸까요? 아니죠.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그렇게 선택적으로 누구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그 분들의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본인이 종교에 대해 지금 잘못 알고 있어요. 그 어떤 종교도 누군가를 선택해 죽이거나 살리지 않는다는 설명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집니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순간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는 건 그 동안 본인의 삶이 충만하지 못했다는 얘기에요. 오히려 그런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해 봤으니, 앞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게 아니라 늘 가까이 있는 거구나, 이렇게 깨우치면 돼요. 잘 들으세요, 이 말은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으라는 거예요. 남편과 딸에 치여 본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했는데, 남편 인생, 딸 인생에 간섭 안 하면 이 관계 유지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꼭 집을 뛰쳐나가야지만 본인의 삶을 살 수 있고 집에 남아 있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삶이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그래, 당신도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으니 이렇게 술이라도 마시고 늦어도 집에 돌아오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술 마실 수나 있겠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남편이 자꾸 늦게 집에 오면 아이고 그래, 당신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마음 가는대로 뜻대로 해라 이렇게 놓아줘버리세요. 지금 본인이 아무것도 못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 없어요. 그냥 자기가 식구들을 잡고 못 놓고 있는것이죠. 내가 결혼이라는 선택에 책임을 지라고 한 말은 일단 결혼했으니 절대로 이혼하지 말고 같이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다만, 함께 살기로 선택을 했으니 더불어 살도록 서로 이해하고 맞춰도 줘 보고 그런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한다 이 뜻이에요. 살아보다 영 아니면 다른 사람이 데리고 살게 놔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남에게 주고 떠나는 것도 좋은 말이라는 스님 말씀에 관객이 모두 웃습니다. 질문자도 웃음이 터졌습니다. 웃으면서 아닌게 아니라 제가 다른 사람 찾아 가보라고도 제안을 해 봤는데... 싫다더라구요.라고 대답합니다. 스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거 잘 됐네요. 먼저 이혼 제안해서 득 볼 거 별로 없거든요. 상대방이 이혼하자고 해야 내가 위자료를 받아도 더 받고, 서류 떼러 가는 절차도 내가 안 해도 되고 여러모로 편하고 좋아요. 그러니 가만히 좀 더 내버려두고 아이고 당신도 마음 가는대로 살아봐라, 살아 있어 고맙다 이렇게 마음 먹어 보세요. 그리고 여유가 되면 매일 기도를 해보세요. 이 때 기도는, 부처님 저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야 돼요. 그렇게 매일, 이 살아서 눈 뜨는 하루에 감사하면서 지금부터의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살아요. 네,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는 질문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관객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어,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괴롭다는 20대 여성, 사회 생활이 만만치 않아 적응하기 어렵다는 35세 남성, 그리고 자신은 매번 남들보다 운이 나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것 같다는 20대 남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자 중 한 명은 스님께 질문을 드리고 중간 중간 대답을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네, 목사님이라고 답해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재치 있게 네, 목사스님 이렇게 하면 돼요라고 가르쳐주시며 스님도 웃으셨습니다. 다음으로 장년층 남성분이 마이크 앞에 서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스님. 저는 은퇴한 목사입니다.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먼 길 찾아와 질문을 하시는 목사님께 관객의 감탄사와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동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북한의 미래와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북한이 어떻게 될 지,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이 상황을 바라보아야 할 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라는 목사님의 질문에 스님께서는 현재의 한반도 상황,nbsp복잡한 역학관계와 국제질서를 설명해주셨고,nbsp스님의 말씀에 강연장이 숙연해졌습니다. 막연히 생각해왔던 북한과 통일의 이슈가 400명의 관객들의 귀를 적시는 순간입니다. 나 사는 이야기나 하려고 왔더니 갑자기 북한 얘기하고 통일 얘기해서 놀라셨어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자신이 궁금한 것, 자기가 고민되는 걸 나누다 보면 이렇게 평소에 본인은 관심 없었던 것,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듣게 되고 그런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서 미처 예전에는 생각 못했던 것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고, 그것이 다 즉문즉설의 힘이에요. 매력이에요. 스님이 시간을 물어보십니다. 밤 10시입니다. 7시에 강연이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3시간이나 흐른 셈입니다. 오늘 긴 시간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 하는 이야기 듣느라 다 수고 많으셨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아요. 예전에는 밥이나 넉넉히 먹고 살면 좋겠다, 내일 끼니 걱정 안 하면 좋겠다 하는 것이 큰 과제였지만 여러분들은 이제 물질이 핵심이 아니에요. 먹고 사는 건 거의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그 외의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상처 받거든요. 물질이 문제가 아니니 이제 마음을 바꾸셔야 해요.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자유도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내가 눈 바로 뜨고 내가 딱 땅에 발 제대로 디디면 그 때부터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그 눈 뜨게 하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바로 성현의 가르침이고, 그 말씀을 전달하는게 바로 제가 하는, 계속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이렇게 와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부디 다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닫는 말씀이 끝나자 큰 박수가 쏟아져나옵니다. 강연장을 가득 메운 400명이 미소 띈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강연 후 이어진 30여 분 간의 사인회에 다시 많은 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스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환하게 웃으며 강연장을 빠져 나갑니다. 정성으로 행사를 진행한 LA 정토회와 오렌지카운티 정토회 신도분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스님도 강연장을 떠나셨습니다. 강연회 다음날인 6월 21일 금요일에는 오전 9시 45분에 집을 나와 오렌지카운티 불사 지역 두 군데를 둘러보시고 회원들과 함께 불사에 대해 논의하셨습니다. 오렌지카운티 공항에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하여, 12시50분 출발 항공편으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셨니다. 오늘 저녁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또 다른 수백명의 교민들이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깨우침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남은 미주 강연 일정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며, LA의 정토회 식구들도 스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스님의 하루 자주 찾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3.6.20 미국으로 출국
스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아침부터 모임이 있었습니다. 8시, 10시에 2번의 모임을 가진 후 스님께서는 미국으로 출국하셨습니다.nbsp 10시 모임이 좀 길어져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국수를 드시고, 공항에서 어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nbsp발표 이후에 어떻게 홍보를 계속 해 나갈 것인지 마무리 점검을 하신 후 3시 15분 비행기로 미국 LA로 출발하셨습니다. 스님의 미국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스님의 미국에서의 일정은 소식이 오는대로 올리겠습니다.nbsp 620 LA 홀리데이 인 부에나파크 강연621 샌프란시스코 UC 버클리 수자타 다이 홀 강연622 시애틀 강연623 캐나다 벤쿠버 컨페더레이션 센타 강연62425 제14회 세계 한민족 포럼626 벤쿠버 gt 서울627 서울도착
2013.6.19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발표식, 한반도 핵위험 시대와 평화의 조건
스님께서는 오전부터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발표식‘ 준비로 바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7시 30분에 외부인사와 약 1시간 가량 만남을 가진 후 행사장으로 향하셨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9시30분부터 미리 도착한 정치, 종교, 시민사회 대표 분들을 반갑게 맞이하시며 이야기를 나누셨고, 10시부터는 선언문 발표에 참석하는 분들과 사전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서로 악수를 나누시며 모두들 화기애애한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nbsp 10시30분부터 기자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언문에는 모두 66명이 동참하셨지만, 기자회견장에는 총 33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nbspnbsp선언문 발표에 앞서 다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인명진 목사님의 개회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습니다. nbsp 인명진 목사님은 보수와 진보, 여야를 떠나 뜻을 한데 모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며 오늘 행사의 취지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행사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묵념으로 시작하여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님의 인사말로 이어졌습니다.nbspnbsp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님은 인사말에서 “그동안 남북관계는 정권의 변화와 국내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으며, 올 2월 시작된 박근혜정부는 새롭게 변화하는 동북아 국제질서와 북핵 위기 속에서 꽉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가 일관된 원칙과 입장을 가지고 평화와 통일의 대북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을 요청했습니다.nbsp 이어서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은 “3월 들어 종교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먼저 논의되다가, 이후 정치계, 여야 중진의원, 전 통일부 장관 등을 만나 준비위원 21명이 구성되어 국민통합 선언문 초안을 만들게 되었고, 총 5차례에 걸친 논의를 통해 선언문을 수정 보완한 후, 준비위원 21명이 다시 각 사회지도층을 교섭하여 최종 66명의 동의를 얻어내기에 이르렀다”며 선언문 발표가 있기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보고해 주셨습니다. 덧붙여 여야 정치인들에게 “본 선언의 취지와 원칙을 국회 본회의 결의로 결정하여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해 청중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 lt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발표gt를 이끌어내기 위해 스님께서는 지난 3개월 동안 각계 대표인사 분들을 수없이 만나셨습니다. 기자회견은 짧게 이뤄지지만, 수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오늘의 결실이 맺어진 것입니다.nbspnbsp 선언문에 참여한 66명을 대표해서 박남수 교령님, 도법스님, 김홍진 신부님,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님, 윤장현 사우리민족이사장, 정의화 국회의원, 이미경 국회의원, 손병두 한국선진화포럼 회장, 박정자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님, 총 9분이 릴레이 형식으로 선언문을 낭독해 주셨습니다. 각 분야를 대표하시는 분들이 낭독해 주셔서 선언문의 상징성이 더욱 빛났습니다. nbsp nbsplt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gt nbsp 올해로 우리는 분단 68주년, 정전 60주년을 맞게 되었다. 전쟁이 멎은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통일은커녕 오히려 한반도의 심각한 긴장 고조로 전쟁 위험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보면, 우리를 36년간 식민지배한 일본과도 해방 후 20년 만에 관계를 정상화했고, 6822825전쟁에 참전한 중국과 수교한지도 이미 20년이 지났다. 수교 당시의 많은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과의 정상적 관계수립이 우리의 국가발전에 실보다는 득을 가져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북관계에서도 이렇게 국익을 위해 미래지향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남북간에 상존해온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정상적인 관계로 전환할 때 비로소 민족의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전 6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선도적 자세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구조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데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낸다면, 올해가 미래의 국가발전과 민족의 통일을 향해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해로 기록될 것이다.nbsp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증진하며 민족동질성을 회복하여 그 바탕위에서 정치적 제도적 법적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을 통일정책 추진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실제 1972년 박정희 정부의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공동선언, 2007년 노무현 정부의 10.4선언은 모두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공동번영, 그리고 통일을 향한 남북 공동 의지의 뼈대가 되어 왔다. 우리는 이러한 기본정신과 노력을 존중하고, 동시에 남북관계가 고비마다 북한 핵 문제라는 난관에 부딪쳐왔음을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 원칙을 설정하여, 사회 각계의 동의를 받고 필요한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자 한다.nbsp 첫째, 대한민국의 국가발전과 전 민족의 이익을 위해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여 통일로 나아가는 것을 남북관계의 기본 축으로 삼는다.nbspnbsp 둘째,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종전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도록 한다.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은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제반 조치를 취해 나간다.nbsp 셋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북한은 민족을 공동의 파멸로 몰고 가는 핵무기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 북한은 국제 사회와 맺은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체제의 안전과 경제발전을 보장하는 길임을 직시하고, 우선적 조치로 핵 물질 생산, 핵무기 기술 개발, 그리고 핵물질 이전 등 일체의 핵 활동 중지를 선언해야 한다.nbsp 넷째, 심각하게 우려할 상황에 있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것이 중대하고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하면서, 북한에서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한다.nbspnbsp 다섯째,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간의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다각적인 해결방안을 지체없이 추진한다.nbsp 여섯째, 남북간의 민간 경제교류협력은 민족의 공동번영과 통합기반 조성 차원에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남북 당국이 보장하는 제도적 틀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nbspnbsp 우리는 남북 당국이 위와 같은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고, 민족성원 모두가 평화의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번영된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한다.nbspnbsp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공의를 모으는 데 모두 함께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nbspnbsp 2013. 6. 19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 선언문 참가자 일동nbsp nbsp 이날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이 내용을 국회 결의안으로 추진하기로 결의해 주셨습니다. 특히 국회 외교통일 위원장인 안홍준 의원은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해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 선언문에 참여해주신 각계 대표인사 66명의 명단입니다.nbspnbsp 강대인 강우일 고 건 고 은 김대선 김덕룡 김동호 김명자 김명혁 김민남 김부겸 김성곤 김우창 김원기 김을동 김정숙 김종인 김홍진 남경필 남궁성 도 법 법 륜 박남수 박병석 박상희 박인상 박재규 박정자 박종화 손병두 손봉호 송민순 신낙균 신영균 심상정 심재권 안홍준 오재일 원혜영 윤여준 윤장현 우리민족 이사장, 전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이기헌 이낙연 이만섭 이미경 이배용 이병석 이부영 이시재 이영훈 이우재 인명진 임동원 임옥상 임채정 임태희 자 승 정명훈 정문헌 정병국 정성헌 정세현 정의화 지은희 최상용 황한식 nbsp 명단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스님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는지 대략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선언문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름을 밝히지 못한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선언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이 선언문에 같이 참여하는 분들을 일일이 발로 찾아다니며 취지를 설명해온 과정은 그 자체가 국민통합의 과정이었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 사회적 합의와 소통,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성과 뜻이 잘 전달되어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되길 참석한 분들 모두가 간절히 바랬습니다. 한 정토회 활동가 분은 “100년 전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을 촉발시킨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을 연상케 했어요. 정치권에서 이분들의 뜻을 꼭 받아들여주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라며 감격스런 소회를 전하기도 했습니다.nbsp 이어서 오후2시부터는 lt한반도 핵 위험 시대와 평화의 조건gt을 주제로 한 평화재단 심포지엄이 시작되었습니다. 핵 있는 북한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관리해서 평화와 통일의 새 판을 짤 것인지, 8분의 전문가들이 발표하는 내용들을 열심히 경청하셨습니다. nbsp 정토회에서도 250여명의 대중들이 참석해 주셔서 뜨거운 학습 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4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발표를 경청하는 청중들을 보고 전문가 분들도 다들 놀라워 하셨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 닫는 말을 통해 긴 시간 동안 함께해주신 전문가 분들과 청중들을 힘껏 격려해 주셨습니다. “무려 4시간 동안이나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말 장한 일을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이런 자리에 이렇게 오래 앉아 있었을까요? 또 이런다고 무슨 성과가 나겠느냐 회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또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효과가 아무리 적게 나더라도 이렇게라도 시작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정말 우리의 미래 비전을 위해서, 그리고 당면한 것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이 삶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는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미래는 희망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효과가 아무리 적게 나더라도 이렇게라도 힘을 모으고,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는 실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나간다면 지금은 좀 암담하지만 통일의 때가 오고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잡을 우리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서 다가오는 기회를 움켜쥘 수 있는 그런 준비를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지만요. 참가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말씀 드립니다.nbsp 오늘은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간절한 염원도 가져보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