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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으로 한 후 두북특별위원회 회의를 했습니다. 밤새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두북 수련원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30분에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방송은 5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대중 전체가 4시 30분부터 명상을 하면서 생방송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문경 수련원에 있던 큰 종을 그저께 두북 수련원으로 옮겨왔습니다. 오늘은 유수 스님의 맑은 종성 소리와 함께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종성이 끝나자 스님이 일어나서 오늘 기도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종성을 하는 것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108배 절을 할 때와 명상을 할 때 화면에 제가 절하고 명상하는 모습이 아니라 불상의 모습을 비춰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절을 할 때는 자기에게 집중을 해야 하고, 명상을 할 때는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스님이 뭐 하는지 관심을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님과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는 반응도 있는데,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 절하고 명상하는 건 아니잖아요.
기도를 할 때는 자기에게 집중을 하시고, 기도가 끝나면 잠시 얘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함께 정성을 쏟아서 정진을 해보겠습니다.”
5시 정각에 오분향 예불과 함께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이어서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문을 읽은 후 108배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동안 창밖으로 빗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10분간의 명상을 마치고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비구가 몸에 대해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서도
탐욕·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내지는 몸만이 아니라 감수와 마음,
모든 존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잘 관찰하고 진정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며,
바르게 사념하고 세간에 대해
탐욕과 근심을 초월하여 사는 것,
아난다여!
이것이 비구가 자신을 의지처로 하여
자신에게 귀의하고 타인에게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며,
또한 진리를 의지처로 하여
진리에 귀의하고 다른 것에 귀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니라.”
사홍서원으로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은 법상에 앉아 법문을 하였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내리고 있는 비 소식을 전하면서 농사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었습니다.
“아침 기도 잘하셨습니까? 이제 날씨가 더워서 절을 하면 땀이 납니다. 요즘 가문 날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도시에 살면 잘 모르겠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살다 보니까 최근 가뭄이 아주 심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마당은 사막처럼 흙먼지가 날리고, 개울물도 많이 말라가고, 저수지도 점점 말라가고 있습니다. 밭작물도 말라서 감자는 알이 잘 여물지 않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곳 두북 수련원에도 마침내 어제부터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새벽에는 개울에 물이 다시 흐를 정도로 비가 왔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하니까 아마도 가뭄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살면 더운 날에는 에어컨을 틀면 되고, 추운 날에는 보일러를 틀면 되고, 물이 필요하면 수도꼭지를 틀면 되니까, 자기가 원하면 뭐든지 자기 뜻대로 되는 줄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살아보면 자연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됩니다. 가뭄이 들어서 호스로만 물을 간간히 주다가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이 비가 돈으로 환산하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로 느껴집니다. 더운 날에 바람이 불면 땀이 밴 등이 시원해지면서 그 어떤 에어컨 바람보다도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이어서 오늘 독송한 경전 내용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읽은 경전의 글은 초심자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사념처(四念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는 몸, 느낌, 마음, 진리 이 네 가지에 깨어있으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한문으로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이라고 합니다. 법(法)은 사물, 존재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념처에 의지하면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도 늘 부처님과 함께 있는 일상을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념처는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사념처에 의지해야 한다는 내용은 경전에 두 번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서 열반을 선언하신 뒤에 아난존자가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합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타인을 등불로 삼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
법 아닌 것을 등불로 삼지 말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
이것이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입니다. 여기서 타인은 다른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는 누가 훌륭하다 어떻다 이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에는 네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자기 몸에 깨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몸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있으면 몸이라는 것은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걸 ‘관신부정(觀身不淨)’이라고 합니다.
사념처에 대한 내용만 따로 떼어낸 경전을 대념처경(大念處經)이라고 합니다. ‘염(念)’이라는 말은 알아차림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대념처경입니다. 그중 몸을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 나오는데, 몸을 알아차리는 것 중 첫 번째가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즉,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두 번째는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움직일 때 움직이는 줄 알고, 서 있을 때 서 있는 줄 알고, 앉을 때 앉는 줄 알고, 누울 때 눕는 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말과 행동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몸의 구성에 대해 깨어있는 것입니다. 몸은 지, 수, 화, 풍으로 구성되고,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때문에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숨이 끊어지면 몸의 구성물질이 해체되는데, 시신이 썩어서 해체되고 흙이 되는 과정을 관(觀)하면 몸에는 아무런 집착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 네 번째만을 또 따로 떼어내서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합니다. 부정관을 하게 되면 몸에 대한 집착이 끊어지고,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식관(數息觀)을 하게 되면 산란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몸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실대로 알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감각과 느낌을 알아차리라는 의미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할 때, 즉 우리 몸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바깥에 있는 여섯 가지 경계와 만나면 인식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생기면 바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 느낌은 사람마다 같은 대상을 보고도 달리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각자 지금까지 살아온 업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업식을 바탕으로 첫 번째 일어나는 게 바로 느낌입니다.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 하는 것을 느낌이라고 합니다.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수념처(受念處)입니다.
우리는 늘 기분 좋음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 기분 좋음은 곧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깊이 알아차려보면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에 집착하는 것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것을 관수시고(觀受是苦)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기분에 자꾸 끌려들어 갑니다.
셋째, 우리들의 마음에는 항상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계속 관찰해보면 늘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항상함이 없습니다. 이를 ‘관심무상(觀心無常)’이라고 합니다.
넷째, 법(法)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법은 원리를 말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원리입니다. 여기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법념처(法念處)입니다.
사람의 모양을 보거나 형상을 보고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자신에게 돌이켜서 몸에 깨어있고, 느낌에 깨어있고, 마음 작용에 깨어있고, 법에 깨어있으면 근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성냄이나 욕망에 끌려 다니지도 않게 됩니다. 이 사념처관이 바로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나에게 의지하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이 법(法)이기 때문에 이 말이 곧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무언가를 바깥에서 찾으려고 헤매지 말고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괴로움은 밖을 보고 문제 삼을 때 생기는 것이지 안을 돌이켜 살펴보면 괴로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공부를 했는데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자 슬픔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너무 큰 슬픔이 몰려와서 가슴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천안제일 아니룻다 존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사념처에 의지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념처에 집중합시다.’
그렇게 모두가 호흡을 관찰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한 후 몸을 알아차리고, 느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치를 알아차려서 다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자 부처님의 열반에 대한 모든 슬픔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이 들뜨거나, 슬프거나, 근심이나 걱정이 생기거나, 두려움이 생기거나, 성냄이 일어나거나, 욕망이 치성할 때는 집중해서 먼저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욕망의 회오리가 몰려올 때는 몸의 부정(不淨)함을 깊이 관하고, 어떤 쾌락의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는 느낌이 모든 고(苦)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한 마음이라는 것은 늘 죽 끓듯이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은 그때그때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리저리 일어나고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항상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해나가면 아직은 느낌과 감정에 휩쓸리지만 조금씩 안정이 되어갑니다. 즉, 거센 파도가 치다가 조금씩 파도의 높낮이가 낮아지면서 잔잔한 호수처럼 변해 나갑니다. 부처님처럼 명경(明鏡, 맑은 거울)과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약간 출렁거리는 잔잔한 호수 정도는 될 수 있습니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서 울고 불고 화내고 짜증내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그냥 경계에 팔려서 사는 허깨비 같은 인생이지, 자기의 삶을 자기가 산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천일결사 정진을 통해 아침마다 일어나서 짧은 시간이지만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것을 점검하고, 놓쳤으면 참회하고, 선정을 닦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읽으면서 지혜를 증득해나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나만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이런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하는 말이 있듯이, 설령 나쁜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늘 긍정적으로 하나씩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자 이렇게 매일 아침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울력을 하러 나가기 위해 요기를 했습니다. 간단히 참을 먹으며 오늘 생방송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고성 염불을 해야 신심이 생기는데, 염불 소리가 우렁차지 못하고 자다 깬 목소리였어요.”
“스님, 자다 깬 건 맞는데요.” (웃음)
“자다 깬 건 맞는데, 그래도 방송까지 나가는데 염불을 좀 우렁차게 해야죠.”
“저희 법사님들은 염불 곡조가 다들 특색이 있어서 유수 스님 목소리만 들리게 하려고 일부러 소리를 작게 한 건데요. 오히려 행자님들만 모아 놓으면 고성 염불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주에는 행자님들이 고성 염불을 한 번 해봐요.” (웃음)
웃으면서 간단히 생방송 평가를 한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울력을 하러 나갔습니다. 3시간 동안 울력을 한후 9시에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10시부터는 1시간 동안 LA정토회 임시 이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원래는 스님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사회가 열렸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화상 채팅으로 LA와 두북을 연결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미국은 지금코로나 사태가 어때요? 한국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하루에 50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어서 수도권은 아직도 법당에서 법회를 못하고 온라인으로 법회를 하고 있어요. 어쩌면 연말까지 계속 이렇게 갈 것 같네요.”
“미국에서도 사무실 문 닫은 지 3개월이 넘었습니다. 언제 풀릴지 기약할 수가 없어요.”
“시애틀은 코로나 사태가 지금 어때요?”
“사무실도 절반 정도는 오픈이 되고, 공원에도 차가 들어갈 수 있게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좀 풀리기는 했지만, 환자 수는 다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준비한 안건에 대해 심의를 끝내고 스님은 당부의 말을 전하며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두 가지를 잘해주세요. 첫째, 회계 관리를 잘해주세요. 미국에서는 돈이 잘못 사용되거나 유용이 되거나 탈세가 되어서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 정토회의 모든 활동에 그게 따라다닙니다. 둘째, 이사회 운영에 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관리를 잘해주세요. 정기적으로 이사회를 열어서 회계를 투명하게 보고할 수 있게 잘 감독해 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2차 만일결사부터는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전법을 해야 합니다. 이때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법문이 좋아도 확산은 어렵습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이사회를 운영해 주세요.”
이사회를 마치고 11시부터 두북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 토론 주제는 온라인정토회 분과에서 준비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 것인지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 내용을 듣고 나서 어떤 분은 수업이 전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 법사님들이 과로를 하게 될 것 같다며 우려를 말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면 이제 법사님들이 불교대학과 경전반 수업에 일주일에 네 번 결합해야 될 수도 있겠네요. 주말마다 오프라인 행사에도 결합해야 하고요. 이러다가 법사님들이 과로사하면 어떡해요?”
“그럼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라도 휴식 시간을 가지면 어때요?”
“그때는 수련 준비를 해야 해요.”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일을 놀기 삼아 하면 돼요. 저는 아예 휴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맨날 놀기 때문이에요.” (웃음)
법사님들이 학생들과 서면으로 질의응답을 해보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 취지에 대해서도 스님은 한마디를 했습니다.
“법사님들이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에 결합할 때 서면으로 질의응답을 해주자고 한 핵심 이유는 소통입니다. 이제 법사님들도 온라인 시대에 맞게 답변을 한 줄로 해주는 연습을 해야 해요. 참가자들은 답을 원하기보다는 소통을 원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토론이 오가는 가운데, 결국 온라인 수업을 직접 시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부터 온라인 수업을 한 번 해봅시다.”
묘당 법사님의 안내에 따라 스님과 법사님들 모두가 온라인 교실에 입장했습니다.
“저는 어떤 계정으로 들어가면 돼요?”
“스님은 교사로 들어오세요. 유수 스님은 B반 반장이고, 무변심 법사님은 A반 반장입니다.”
먼저 법문 듣기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스님이 제일 먼저 입장하셨네요. 그럼 법문 듣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법문을 다 보고 나서는 A반과 B반, 각자 자신의 반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A반 1조, 2조, B반 1조, 2조로 각각 들어오세요. 화상 채팅으로 마음 나누기를 해보겠습니다.”
화상 채팅 방에 들어가자 스님의 얼굴이 가장 먼저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스님 콧구멍만 보여요. 핸드폰을 좀 높게 드세요.” (웃음)
“제 얼굴이 왜 이렇게 못 생기게 나와요?”
“스님! 얼굴이 잘 생겨 보이는 각도가 있어요.”
“이렇게 들면 돼요?”
법사님들 모두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느라 바빴습니다.
“다른 법사님들은 왜 입장을 못하고 있어요? 문제 학생들하고 같이 수업 못 하겠어요. 하하하.” (웃음)
다시 묘당 법사님이 다음 단계를 안내했습니다.
“이제는 법사와의 일문일답 시간입니다. 화상채팅 방으로 들어오세요.”
스님과 법사님들은 반별로 화상채팅 방에 입장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교사 계정으로 입장해서 실제 수업을 하는 것처럼 말을 걸었습니다.
“유수 학생, 잘 들려요?”
“스님, 요즘 농사 지으신다면서요?”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스님의하루에 다 나오던데요.” (웃음)
연달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온라인 수업 시연을 모두 끝낸 후 스님이 한마디 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하는 것보다 온라인 수업 방법 익히는 게 더 어렵겠는데요. (웃음) 여러분이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 방법 가르치는 동안에 제가 학생들 다 졸업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온라인 수업을 이렇게 진행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6월 중에 불교대학과 경전반 온라인 전환에 대해 한 번 더 공청회를 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 지역 정토회 별로 입재식에 참가하기 위해 법사님들은 전국 담당 지역으로 출발했습니다. 모처럼 빈 시간이 생긴 스님에게 행자들이 달려왔습니다.
“스님, 산 윗밭에 들깨 모종을 심어야 합니다. 같이 심어요.”
“내가 쉬는 꼴을 못 보네요. 그래요. 오늘 같은 날 들깨 모종을 심기는 딱 좋아요.”
스님은 바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행자들과 밭으로 갔습니다.
비가 그치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일하기는 아주 좋았습니다. 거기다 오늘 밤부터 다시 비 소식이 있기 때문에 들깨를 심고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들깨 모종을 캐서 산 윗밭으로 올라왔습니다. 밭에 오기만 한 것뿐인데 등산을 한 것처럼 다들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엉덩이 방석을 하나씩 차고 들깨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이랑을 덮은 비닐에 깨를 심을 구멍을 빠르게 뚫어주었습니다. 이랑이 넓어서 가운데를 띄우고 두 줄씩 총 네 줄을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구멍을 뚫지 않은 가운데에 앉아서 양쪽으로 들깨를 심었습니다.
행자들은 고랑에 앉아서 들깨를 심었는데 비가 온 뒤라 고랑이 질척했습니다. 스님이 비닐 가운데 앉아서 들깨를 심는 모습을 보고 다들 감탄했습니다.
“땅이 질척해서 불편했는데 스님처럼 하면 되겠네요.!”
행자들은 자리를 옮겨 비닐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결 편안해진 작업환경에 만족하며 집중해서 들깨 모종을 심었습니다.
“스님, 이 밭에는 왜 들깨를 심나요?”
“들깨는 산 짐승들이 안 먹고 벌레를 많이 안 타기 때문이에요. 여기는 자주 오기 어려우니까 관리하기 쉬운 작물을 가꿔야 하잖아요. 콩도 좋아요. 콩은 거름을 많이 안 줘도 되니까요.”
“콩은 영양분이 풍부해서 거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신기하네요.”
“콩과 식물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질소를 스스로 만들어 내거든요. 생물시간에 안 배웠어요?”
행자가 가물가물한 표정으로 웃자 다 같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같이 시작해도 스님은 훨씬 빠르게 모종을 심으며 나아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님은 뭉쳐있는 모종을 미리 떼어놓고 심었습니다. 행자들은 심을 때마다 모종을 떼면서 심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비닐하우스에서 가져온 모종을 다 심었습니다. 이 밭 한 켠에서 키운 들깨 모종을 더 캐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심은 들깨 모종 중에 가장 어리네요. 어릴수록 자리는 잘 잡아요.”
2시간 30분이 지나 밭 끝에 다다랐습니다.
들깨를 다 심고 주변에 풀을 매주었습니다. 영양분이 많은지 소똥 거름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개울에서 도구를 씻어 제자리에 갖다 놓고 울력을 마쳤습니다.
8시가 다 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예불을 드리고 마음나누기를 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대구에서 10차 천일결사 두 번째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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