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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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3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2일째(2) 즉문즉설 개인고민편

nbsp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의 2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동해 바닷가로 가서 ‘대왕암’과 ‘감은사지’를 참배한 참배한 청년대학생들은 마지막으로 불국사 사찰 순례를 끝으로 경주역사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역사기행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2시 30분부터는 약 2시간 동안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는 점심 식사 후 반월성과 첨성대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쉽지만 실내에서 강연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통일과 역사’를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은 ‘개인 고민’을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 전 점심 시간에 질문이 있는 사람은 종이에 미리 질문을 적어 내었습니다. 그 중 스님이 제비 뽑기 방식으로 하나씩 뽑으면서 대화가 오갔습니다.nbspnbsp▲ 질문자 사전 신청 코너nbsp총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두 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질문한 여학생은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오만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을 바탕으로 확신을 가지고 오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습니다. 그 싫어함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여서 고민입니다. 각자가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왔는데 상대방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왜 이해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nbspnbsp“렌즈에 붉은 색을 약간 넣은 안경을 만들어서 쓰고 이 천장을 보면 붉게 보이겠죠. 파란색을 넣어 만든 안경을 쓰고 벽을 보면 파랗게 보이겠죠. 안경을 쓴 사람이 볼 때는 ‘천정이 파랗다’, ‘천정이 붉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렇게 느낄 수 있어요. 붉은 색을 넣은 안경을 낀 사람은 ‘아니, 붉은 걸 저 사람은 어떻게 파랗다고 하느냐’라고 하지만 파란 안경을 낀 사람은 ‘파란 걸 파랗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 해서 갈등을 일으킵니다.nbspnbspnbsp이처럼 붉게 보이거나 파랗게 보이는 것은 붉은 안경이나 파란 안경을 끼고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이 안경과 같은 것이 ‘업식’이에요.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 사람은 확신에 차서 ‘천정이 붉다’ 혹은 ‘천정이 파랗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nbspnbsp지금 질문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하는 것도 자기 확신이에요. 이런 걸 ‘피장파장’이라고 해요. 질문자도 자기 확신에 차서 단죄를 하잖아요. ‘어떻게 네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느냐?’라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nbspnbsp이건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모든 인간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있다는 안경을 끼고 있는 셈이에요. 우리가 볼 때는 ‘어디에 뭐가 있냐? 아무것도 없는데’ 이러지만, 그 사람이 느끼기에는 하느님의 존재가 늘 자기 마음속에 작동을 하니까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너는 왜 이걸 못 느끼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이런 논쟁은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면 ‘아, 저 사람은 저런 확신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그냥 이해하면 돼요. 그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어요. 그냥 ‘저 사람은 저런 믿음을 갖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사상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이 객관적 진실이에요. ‘벽이 파랗다’라고 하면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하고 이해하면 돼요. ‘그건 파란 색깔이야’라고 하면 ‘그게 어떻게 파랗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아,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하고 이해하는 거예요. 이것만이 진실이에요. 빨갛다고 하면 ‘아, 저 사람 눈에는 빨갛게 보이는구나’ 하는 거예요.nbspnbsp그러면 진짜는 어떤 색깔일까요? 진짜가 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를 알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는데, 안경을 벗었을 때 희게 보인다고 ‘하얀 색이 진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어요. 우리 모두가 다 자기의 업식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가 뭐냐?’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 서로 다르구나’ 이것만이 진실이에요. 한 사람은 빨갛다 하고 한 사람은 파랗다 할 때 안경을 벗고 ‘희구나’ 해야 둘이 서로 통하는 게 아니라 ‘아,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그런데 내 눈에는 붉게 보이네’ 하고 아는 게 중요합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이제 ‘아, 네 눈에는 파랗게 보이냐? 그런데 내 눈에는 희게 보이네’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겠죠.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가 안경을 껴서 그런가? 안경을 한번 벗어보자’ 이렇게 함께 벗어보고 ‘아, 하얗구나’ 이렇게 합의를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합의를 안 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화를 벌컥벌컥 잘 낸다면 화를 안 내야만 둘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화를 내도 ‘저 사람 때문에 화가 났다’라고 하면 싸우게 되지만, 화가 벌컥 나도 ‘아이고, 내 까르마가 또 작동하네’ 그러면서 금방 ‘여보. 내가 또 성질냈지? 미안해. 내가 성질이 더럽잖아’ 이렇게만 해줘도 둘이 살 수는 있어요.nbspnbsp화를 내고도 살 수는 있어요. 생각이 달라도 살 수는 있어요. 상대가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그걸 용납 못 한다는 것도 자기 확신이에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만약 ‘우리 남편은 고집이 너무 세’ 라고 말하면 자기도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예요. 이 말 이해하시겠어요?”nbsp“예.”nbsp“상대에게 ‘너는 고집이 너무 세’라고 말할 때는 내가 그 고집을 꺾으려 하기 때문에 상대의 고집이 세다고 내가 느끼는 거예요. 남편이 뭐라고 할 때 ‘응, 그래요, 그래요’ 이렇게 내 고집이 없으면 상대가 고집 있는 게 나에게 아무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고집 세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도 똑같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요.”nbsp질문한 학생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활짝 웃자 청년들도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청년들은 ‘피장파장’ 이라는 표현에 박장대소를 하며 스님의 답변에 공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이번에는 대학생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어제 저녁 강연에서 스님은 대한민국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창조력이 생길 수 있는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학생은 스님의 답변에 아주 만족해 하면서 특별히 대학생 참가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전국에서 대학생들이 함께 온 여행인 만큼 혹시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nbsp“할 이야기가 없어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죠, 하하. 어떤 사람은 일률적으로 ‘대학생은 이래야 한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 라고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다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돼요, 알았죠?”nbsp“네.”nbspnbsp“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세요. 살아 있는 생명이니까 살고 싶은 대로 살되,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돼요. 이익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남에게 손해 끼치면 안 됩니다. 쾌락을 즐기는 건 좋지만 남을 괴롭히면 안 돼요. 남을 괴롭히면서 자기 쾌락을 즐기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말은 뭐든지 해도 좋지만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이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기준이에요.nbspnbsp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훔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안 된다. 욕설과 거짓말은 안 된다, 이것 빼고는 남이 뭐라 그러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또 남이 무슨 짓을 하든 앞서 말한 게 아니거든 관여하지 마세요. 남편이라고 관여하고 자식이라고 관여하고 그러지 마세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어요.nbspnbsp그런 속에서 조율해보면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게 나한테 유리할 수도 있지만 불리할 수도 있어요. 이런 걸 살아가면서 경험해봐야 해요. ‘아, 이건 하고 싶지만 하면 나한테 손해다’ 하면 안 해야 하고, ‘이건 하기 싫지만 하는 게 나한테 유리하다’ 그러면 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린애처럼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해요?’ ‘하고 싶은 걸 왜 못하게 해요?’ 이래요. 그러면 스님이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이러죠. 그러면 자기 손해니까요. 그건 어린애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우리는 감정대로만 살 수 없고 어느 정도 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nbspnbsp이처럼 일정한 자기의 원칙이 있어야 해요.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원칙은 크게는 방금 전 예로 든 다섯 가지예요. 작게는 그 속에서 또 자기의 사회적인 조건과 처지를 좀 고려해야 해요. 그런데 이걸 너무 신경쓰다 보면 노이로제에 걸립니다. 자기 인생이 없고 세상의 눈치만 보며 살게 돼요. 그러니 자유롭게 생활하세요.nbspnbsp다만 대학생들은 지금 하는 공부가 재미있는지를 우선 점검해 보세요. 재미가 없거든 빨리 학교를 그만둬야 해요. 억지로 할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관습이 대학 안 나오면 어디 가서 명함도 도저히 내밀 수가 없다고 한다면 빨리 졸업을 해버려야 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창조력이 생기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안 생겨요. 그런데 간판 때문에 공부가 꼭 필요하다면 대충대충 하고 빨리빨리 졸업해서 간판만 만들고 치우는 게 좋아요. 저는 간판 같은 건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치워버린 거예요.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가 궁금해서 해야 성과가 나지, 억지로 하는 건 성과가 안 나요. 그러면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따는 동안에 너무너무 힘들고 딴 뒤에도 별로 써먹을 일이 없어요. 그러니 어차피 해야 한다면 재미를 찾으세요. 재미있다고 자기한테 자꾸 세뇌를 하세요.nbspnbsp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어느 걸 해야 할지 모르겠죠? 그건 괜찮아요. 공부하는 사람을 사귀어서 술 마시면서 학문 토론하면 세 가지가 다 되잖아요.nbspnbspnbsp그걸 뭐 어렵게만 생각해요? ‘나는 너 좋아, 너는 나 좋아’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연애가 아니에요. 우주의 원리가 어떻고 이런 걸 둘이서 토론하는 것도 연애예요.nbsp정토 건설을 어떻게 할 건지 밤새도록 토론하면 그것도 연애예요.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뭘 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돼요. 농사꾼이 농사짓다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일하는 걸 갖고 ‘술 마셨다’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그 노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술을 마신 거지, 우리처럼 쾌락을 즐기려고 마신 술이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학창생활을 하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해요.nbsp또 연애를 해도 너무 심각하게는 하지 마세요. 심각하게 연애하니 첫사랑을 못 잊어서 죽는다고 난리잖아요. 서로 좋아하면 좋지만 상대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싫다고 상대가 떠나주면 또 다른 남자 다른 여자를 만나면 돼요. 계속 만나면 좋겠지만, 싫다는데 그걸 어떡하겠어요.nbspnbspnbsp방법이 없잖아요. 자기 생각만 자꾸 고집하고 자기 감정에만 너무 집착하면 인생이 피곤하고 괴로워집니다.”nbsp“감사합니다.”nbsp질문한 여학생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점점 무르익어 갈수록 청년대학생들의 마음도 활짝 열려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분위기가 한층 깊어진 모습을 보고선 활짝 웃으면서 “누가 나와서 노래 한번 불러 보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이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 중 세 명이 무대로 나와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nbspnbsp한 남학생은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 한곡 부르고 싶습니다”라며 발라드곡 한 곡을 열창했습니다. 강연장은 순간 열기가 달아올랐고, 앉아 있던 청년대학생들은 법문을 들은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는 친구에게 뜨거운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nbsp▲ 법문을 들은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는 청년nbsp여덟 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더 많은 법문을 듣고 싶어했지만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참가자들도 있어 아쉽지만 강연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들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사회에 유용한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을 덧붙였습니다.nbspnbsp“너무 우울하게 살지 마세요. 공부를 해야 한다면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기 싫으면 집어치워버려요. 알겠죠?”nbsp“네.”nbsp“너무 부모한테 의지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요. 이렇게 조금 가볍고 행복하게 살고, 이것저것 다 별 볼 일 없으면 정토회로 오세요.nbspnbspnbsp정토회에 오면 참 좋아요. 사회 민주화를 위한 운동도 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도 하고, 인도나 필리핀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합니다. 이런 일은 직장생활 하면서 해도 좋고, 공무원 하면서 해도 좋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다 필요해요. 앞으로 새로운 나라가 되려면 국정원도 제대로 돼야 하니까 거기에도 근무해야 하고, 군인도 제대로 돼야 하고, 경찰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공무원들이 있어야 해요. 교수도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 다 버리고 절에 들어오라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해야 해요.nbsp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세요. 정치인보다는 청소부가 더 필요하고, 식당 주방장이 더 필요해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밥도 먹고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 직업을 너무 따지지 말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세요.nbspnbsp그래도 살기 싫다 하면 제발 자살하지 말고, 자살할 목숨을 저한테 주면 어떨까요? 저한테 주면 아주 잘 쓸 수 있어요. 죽고 싶은 사람은 스님한테 와요. ‘오갈 곳 없으면 절로 간다’ 이렇게 조금 가볍게 생각하고,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절로 오세요. nbspnbspnbsp이렇게 한쪽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가볍게 생각하세요. 아까 봤죠?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노래 잘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노래든 그림이든 여러분 누구나 한 가지 재능, 한 가지 기술은 다 가지고 있어요. 그걸 잘 모아서 우리가 잘 쓰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요. ‘꼭 불교 믿어야 된다’ 이런 건 없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으면 그냥 다녀도 상관없고, 종교가 싫으면 종교가 없어도 돼요. 정토회는 종교활동 하자고 모인 건 아니에요. ‘좀 행복하게 살자. 자유롭게 살자. 사회에 좀 유용한 인간이 되자. 우리가 조금 힘을 모아서 유의미한 일들을 해보자’ 이런 취지예요.nbspnbspnbsp이 좋은 봄날에 좀 더 가벼운 마음이 됐으면 합니다. 다음에 이런 모임이 또 있으면 많이 참여하세요.”nbsp“네”nbsp스님의 격려에 청년대학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환호와 박수는 스님이 강연장을 나갈 때까지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오늘은 찾아온 손님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기행 안내 때문에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저녁을 먹고 23 시간 동안만이라도 벚꽃과 진달래가 가득 핀 곳을 찾아가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비가 내리고 있긴 했지만 “산 전체에 진달래가 핀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손님들도 아주 좋아했습니다.nbspnbsp손님들을 떠나보내고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스님의 은법 스승이신 서암대종사님의 열반 13주기 추모제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봉암사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가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6. 70,580 읽음 댓글 36개

2016.4.3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2일째(1) 대왕암, 감은사지, 불국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주역사기행 2일째를 맞이하여 오전에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불국사를 차례로 안내한 후 오후에는 청년대학생들의 개인 고민에 대해 상담해주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6시 30분에 경주에서 문무대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문무대왕릉은 경주시 양북면 앞바다에 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한 청년대학생들은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자 환호를 했습니다. 어제는 벚꽃 구경, 오늘은 바다 구경, 청년대학생들은 연일 자연과 마주하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nbspnbsp▲ 문무대왕릉nbsp어제 하루 종일 스님으로부터 통일과 역사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아침 문무대왕의 무덤 앞에 당도한 청년대학생들은 먼저 눈을 감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nbspnbspnbsp“잠시 헤어진 시간은 70년이지만 우리 핏줄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온 신시 개천 6천 년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웠던 웅대한 그 기상을 민족의 평화와 통일로 되살리고자 합니다. 청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통일코리아로 거듭나게 하소서. 선조들의 민족혼을 등불로 삼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길을 밝혀 한 걸음 한 걸음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nbspnbspnbsp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대학생들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의 무덤 앞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이 문무대왕릉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미리 진행측에서 문무대왕릉을 위에서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공유해 놓아서 대중들은 그 사진을 보며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저기 보이는 강이 대종천입니다. 대종천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에 바위섬이 하나 있는데 이 바위섬에 문무대왕의 유골을 묻었어요. 저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부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저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고, 문무대왕의 수중능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었습니다.nbspnbspnbsp문무대왕은 661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했는데 그때까지는 태종무열왕이 집권을 했고, 백제가 멸망하고 이듬해에 태종무열왕이 죽고, 첫째 아들 법민 태자가 왕위에 올라서 문무왕이 되었습니다. 문무왕은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와 8년 간 전쟁을 한 끝에 676년에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통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681년에 돌아가셨으니까 해수로는 21년 간 왕위에 있었고 실제로는 통일이 되자마자 돌아가신 택이에요. 돌아가실 때 유훈을 이렇게 남겼다고 해요.nbspnbsp‘우리 민족이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해서 백성들이 늘 불안하고 삶이 고달팠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서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도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바다 건너에는 왜구가 있어서 늘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동해바다 용이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그 유골을 동해 바다에 묻어다오. 그리고 장례 절차는 아주 간소하게 해라. 공연히 장례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고 해서 영혼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녹을 낭비하지 말고 장례 절차를 아주 간소하게 하고 무덤 같은 것도 만들지 말고 바다에 유골을 묻어다오.’nbspnbsp문무대왕이 이런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했을 때 도저히 승리가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잖아요. 이것은 사람의 힘보다는 부처님과 호국 선신의 도움으로 막아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후 불교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진 거에요. 그래서 불교식으로 자신을 화장해 달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태풍이 두 번이나 일어나서 당나라 군대가 수장되었기 때문에 용왕에 대한 신앙도 깊어진 거에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용왕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겁니다. nbspnbsp앞에서 보면 바위가 두쪽으로 나뉜 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위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큰 바위를 십자 모양으로 파서 수로를 낸 겁니다. 그래서 물길이 동서남북에서 다 들어갈 수 있게 했고, 가운데에는 다시 연못을 동그랗게 팠어요. 거기에 큰 돌을 하나 얹어서 눌러 놓았습니다.nbspnbspnbsp사진으로 보면 손으로 들 수 있을 것처럼 작아 보이지만 길이가 3.6m 폭이 1.9m, 두께가 0.7m 가 되는 큰 돌입니다. 발굴할 때 그 돌을 기중기로 들어올렸는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요. 원래는 그곳에 유골이나 유골함을 넣어야 맞겠죠. 왜냐하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과 양식이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인도의 사리탑도 사리를 모시는 탑에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 동서남북으로 다 있거든요. 그것처럼 문무대왕의 무덤도 사리탑처럼 물길이 동서남북으로 들어가게 만든 겁니다. nbspnbspnbsp문무왕의 다음 왕이 신문왕입니다. 저기 산이 하나 보이죠? 어느날 신문왕이 저 산 위에서 보니까 움직이는 바위섬이 하나 떠내려오는 거에요. 바위섬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이 되면 두 개가 되었다가 밤이 되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기이하게 생각해서 그 대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만파식적’입니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피리를 불면 파도도 잠자고 모든 세상이 평화로워졌다고 해요. 신문왕이 바위섬을 내려다 보았던 그 자리에 지은 정자가 ‘이견대’입니다.”nbspnbsp nbspnbsp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스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더욱더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nbspnbsp막 출발하려는 찰나 청년대학생들 모두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대왕암을 배경으로 40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대왕암을 출발한 청년대학생들은 대종천을 따라 5분 거리에 있는 ‘감은사지’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저 멀리 높이 솟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nbspnbsp▲ 감은사지nbsp스님은 먼저 도착해 청년대학생들을 기다리다가 모두 도착하자 설명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이곳이 ‘감은사지’입니다. 이곳은 일반 절과 비교해서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법당의 바닥 구조에요. 여러분이 올라온 계단, 그 앞에 연못이 있어요. 연못 앞으로 도로가 나 있는데요, 그 쪽으로 대종천이 흘렀는데 거기서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었어요. 그 연못으로부터 이 법당 밑까지 용이 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이 저 바다에서 대종천을 타고 이 연못으로 들어와서 법당 밑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보통 법당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는 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밑에 물이 있는 것처럼 물 위에 징검다리를 놓고 마루를 걸쳐놓은 격으로 지었어요. 여기 와서 보시면 그렇게 돼 있습니다.nbspnbspnbsp이 절은 682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681년에 문무대왕이 죽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신문왕이 세운 거예요. 감은사지의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 중에 제일 큰 것에 속합니다. 조금 후에 불국사에 가보시면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데 그것보다 이 탑이 규모가 더 큽니다. 꼭대기의 상륜부가 다 부서졌지만 그 철심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이것까지 포함하면 제일 큰 탑에 속합니다. 신라의 탑 중에 큰 규모로 꼽는 탑이 3개 있는데 지금 보고 있는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이 그것입니다.nbspnbspnbsp또 하나는 절이 지어진 계기인데요. 이 감은사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세운 절입니다. 어제 말씀드렸는데 통일을 발원하며 지은 탑이 황룡사 9층탑이라고 했지요? 이 황룡사가 신라에서 제일 큰 절이면서 호국사찰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보려고 했는데 길이 막혀서 못 갔어요. 어제 우리가 갔던 사천왕사는 통일 전쟁 후 당나라를 물리치기 위해서 세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이 절들은 포교를 위해서 세운 절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정신으로 세운 절이기 때문에 호국사찰이라고 합니다. 신라의 3대 호국사찰은 황룡사, 사천왕사, 감은사입니다.”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청년대학생들은 우람한 삼층석탑과 법당 밑까지 용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는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며 사진도 찍고 잠시 자유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 용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든 법당 터nbsp법당 터 뒤쪽에 큰 나무 아래에서는 기타 연주를 하며 흥겨운 마당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만파식적 이야기를 들었으니 세상을 평화롭게 해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가 싶어 잔뜩 기대를 했는데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서로의 웃음에 취해 봄날씨를 즐겼습니다.nbspnbspnbsp감은사지를 출발해 다음은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이 모두 불국사 입구에 도착하자 스님은 ‘불국사 안내도’를 가리키며 불국사의 독특한 가람 배치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정토삼부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여 각각 건물이 지어졌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절의 이름이 불국사인지 알겠고, 각 건물들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불국사에 자주 왔던 청년들도 사진만 찍고 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하게 설명도 할 수 있을 듯 하다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 불국사nbsp불국사에 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인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서 스님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국사가 어떤 사연으로 창건이 되었는지 창건주인 김대성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국사는 751년에 짓기 시작해서 774년에 완공을 했다고 하니까 한 23년 걸린 셈입니다. 절을 완성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현재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부분은 원래 절의 4분의 1 규모입니다. 임진왜란 때 다 불타버린 후 복원한 게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된 겁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처음에 절을 지을 때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에는 정부가 불교를 탄압하던 시기였으니까 국가적 지원을 받지를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나무를 베고 직접 목수가 되어 지어야 하니까 다 복원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nbspnbspnbsp그러면 이 절을 창건한 창건주는 누구일까요? 보통 어느 절이나 창건설화가 있잖아요. 불국사는 재가신자가 창건주입니다. 불국사를 지은 사람은 김대성입니다. 왕족으로서 진골 출신인데, 신라의 재상인 중시, 요즘 말로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에요. 김대성이 출생하게 된 일화는 이렇습니다. 김대성의 아버지도 재상이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없으면 큰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자식 낳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그때 한 고승이 얼마 있으면 자식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정말 얼마 후에 아이가 생겨서 낳게 됐는데 태어난 아이가 한 손을 꼭 쥐고 펴지 않고 있었어요. 아무리 그 손을 펴려고 해도 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을 초청해서 아이를 보였더니 스님이 말하기를 사연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스님이 염불을 하시니 손이 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바닥에는 ‘대성’이라고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사유란 이렇습니다.nbspnbsp경주 건천 모량리에 아주 가난한 종 신분의 모자가 살았어요. 아들은 ‘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와 토굴에 살면서 주인집에 가서 일해 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주인집에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짓는다고 시주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주인은 쌀 몇 섬과 비단 몇 필을 시주했습니다. 종은 ‘주인은 참 좋겠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이생에도 부자이고 또 이생에서 저렇게 복을 지으니 다음 생에도 부자가 되겠구나. 그런데 나는 전생에 지은 복이 없어서 이렇게 가난하고, 또 이생에서도 가난하니 복을 못 짓고 다음 생에도 가난하게 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너무 슬픈 나머지 토굴로 돌아와 어머니께 그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 우리도 복을 좀 지읍시다.’라고 하니 어머니는 ‘네 말은 맞는 말이지만 한 끼 먹을거리도 없는 데 어떻게 복을 짓겠느냐. 정신 차려라.’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다음 날, 주인집에서 시주를 요청했던 그 스님이 자기네 토굴에 와서도 요령을 흔들며 시주를 요청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먹을 양식도 없다며 줄 게 없다고 하니까 아들이 ‘어머니, 우리 시주합시다. 저 강변에 뙈기밭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걸 드립시다.’라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아쉬웠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서 전 재산을 시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시주를 했는데 일주일 만에 아들이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은 ‘그것 봐라. 사람이 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하는데 제 분수도 모르고 허튼 짓을 하니 명대로 못살았다’ 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죽어서 바로 이 재상집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기 손에 ‘대성’이라고 쥐고 태어났다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그런 사유를 재상집에서 들으니까 안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토굴에 사람을 한번 보내봤어요. 그랬더니 정말 그 마을에 그 nbsp젊은이가 1년 전에 죽었고 이름이 대성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 이름을 대성이라고 짓고 그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아이의 유모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김대성은 이생의 부모님과 전생의 부모님을 다 모시고 산 격입니다. 신기하지요?nbspnbspnbsp시간이 흘러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어 토함산에 사냥을 나갔는데 활로 곰을 쏘아 죽였어요. 그런데 꿈에 그 곰이 계속 나타나 쫓아오는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곰의 원혼을 달래려고 이 불국사에 시주를 했습니다. 여기 불국사는 김대성이 처음 지은 절이 아니고 이미 절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김대성이 성장해서 재상까지 지내고 은퇴하자 전 재산을 쏟아서 현생의 부모 은혜를 갚기 위해 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전생의 부모 은혜를 갚기 위해 석굴암을 짓습니다. 그러니 불국사는 효사상과 관계가 깊은 절입니다. 그런데 김대성은 이것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죽게 되자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 감당이 안 되니 국가에 헌납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가에서 완성을 했어요.”nbspnbsp스님이 옛날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주어서 어떤 청년은 입을 헤벌리고 있었는데 스님이 이를 보며 한마디 하자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생의 부모님과 전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습니다.nbspnbsp불국사는 산중에 사찰을 지으면서 평지 사찰처럼 가람 배치를 하기 위해 축대를 많이 쌓았는데 스님은 이 축대를 쌓은 방식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기 보이는 것이 축대입니다. 맨 밑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았어요. 자연석도 큰 것만 사용하지 않고 작은 것도 사용했어요. 언뜻 보기에는 좀 이상하게 쌓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nbspnbspnbsp이 세상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큰 돌도 있고 작은 돌도 있고,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넉넉한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맨 밑에는 ‘세계의 기초는 다양하다’ 즉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똑같이 만들려고 하잖아요. 똑같이 좋게 다듬으려고 해요. 그러면 안 됩니다. 생긴 게 다 다르듯이 서로 다 달라요.nbspnbsp중생의 세계 위에 있는 축대가 보살의 세계입니다. 보살의 세계란 무엇인가요? 저기 가운데에 기둥이 하나씩 있지요. 그 기둥들 사이에 돌들이 주욱 끼어 있어요. 여기서 보면 다듬은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면 자연석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강변에 가보면 네 면이 모두 판판한 돌은 드문데 한 면이 판판한 돌들은 많아요. 그 판판한 쪽 한 면을 밖으로 보이게 쌓은 겁니다. 그러니 자연석인데 인공적인 것처럼 보여요. 저렇게 쌓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핵심은 기둥입니다. 잘 다듬은 기둥이 딱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사이에 끼워 넣는 돌은 아무 돌이나 가능하되 한 면만 딱 맞춰서 끼워 넣으면 저런 모양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바세계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 사바세계가 부처의 세계가 되려면 여러분들이 다 깨달아야 하는 게 아니고 100명 가운데 1명, 1000명 가운데 1명만 딱 중심을 잡아줘도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들은 흐리멍텅하게 살아도 세상이 바르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 모든 사람을 다 똑바르게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100명 가운데 한 명, 1000명 가운데 한 명인 사람이 바로 리더인데, 리더만 이렇게 딱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돌처럼 한 면은 괜찮은 면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측면에서는 괜찮은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친구들을 한번 보세요. 저 친구는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잘한다, 저 친구는 정직하다, 이런 경우가 있지요?”nbsp“예”nbspnbsp“그런 장점들을 모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둥은 수행을 해서 딱 중심을 잡아주는 보살을 뜻하고, 나머지 돌들은 한 가지 측면은 똑바른 일반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이 어우러진 것이 보살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축대를 쌓은 방식을 보면 맨 아래는 중생의 세계를 표현했고, 그 위에 보살의 세계를 표현했고, 또 그 위에 부처의 세계인 불국사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면 살기가 힘들어져요.nbsp그것처럼 우리는 규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규칙을 무조건 강제하면 사람이 숨이 막혀서 못 살아요. 그렇다고 규칙을 풀어놓으면 혼란스러워서 못 삽니다. 그러니 나는 규칙을 지키되 남에 대해서는 조금 열어놓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리더가 된다면, 자기는 모범적으로 규칙을 지키고 살되 다른 사람들은 조금 흐트러져도 봐줘야 된다는 겁니다. 친하다고 봐주라는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다 100 규칙을 지키기가 어렵잖습니까. 그런 자유로움을 ‘중도’라고 합니다. 질서가 있어 강하되 부드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 맘대로 살든지, 아니면 내가 지키면 남도 꼭 지키라고 너무 잔소리를 해서 못살게 하잖아요.nbspnbsp여기는 돌 하나 쌓는 데도 이렇게 다 경전의 내용을 가지고 쌓았어요. 이런 곳을 그저 휙 둘러보고 사진만 찍으면 안 되겠지요.”nbsp축대를 쌓는 방식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청년들은 스님의 설명에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들이 앉아 있는 이곳 청운교·백운교 앞마당에 ‘구품연지’라고 부른 연못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있는 여기는 ‘구품연지’라는 연못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다시 태어날 때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그 때 9등급으로 나눠서 태어난다고 해서 ‘구품’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사람이 다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nbspnbsp▲ 구품연지가 있었던 자리nbsp그러나 수행한 사람은 즉시 태어나는 1등급인 상상품입니다. 이 방에서 문 열고 저 방에 가듯이 이생을 마치면 저 생에 바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죽었다고 울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니 우는 건 우리가 몰라서 우는 거예요. 2등급은 12시간 안에, 3등급은 하루 만에, 4등급은 3일 만에, 5등급은 일주일 만에, 6등급은 21일 만에, 7등급은 49일 만에 다시 태어납니다. 이 7등급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아주 악독한 사람은 아니고, 술도 한 잔 하고 싸움도 하는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7등급까지는 그래도 참회하고 옆에서 도와주면 극락왕생하는 사람들이에요. 지옥까지는 안 갔다 와도 됩니다.nbspnbsp그런데 8등급부터는 조금 다릅니다. 8등급은 스님이 되거나 불교신자이면서도 절에 와서 절 돈을 훔쳐가고 절에 있는 보물도 훔쳐가는 등 나쁜 짓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도 못 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서 뜨거운 맛을 좀 보고 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9등급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부모를 죽인 사람, 불상을 파괴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극악무도하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nbsp“있다는 겁니다.”nbsp“네. 그러나 무조건 가는 건 아니고, 지옥에 가서 3겁 정도 고통을 겪고 난 후에 왕생극락한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해서 9품의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뜻으로 ‘구품연지’ 라고 부른 겁니다.”nbsp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구품연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원이 되지 못하고 그냥 흙으로 덮어져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렇게 설명을 모두 마치고 불국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다보탑을 보고, 자하문을 나와 청운교와 백운교를 내려다 본 후 석가탑을 둘러보고, 대웅전과 무설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 무설전nbsp무설전 뒤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관음전이 나타났습니다. 관음전 담벼락에 서서 다시 무설전 쪽을 바라보는데 그 풍경이 정말 멋스러웠습니다. 스님은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한국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관음전에서 바라본 풍경nbsp관음전을 내려와 비로전을 참배한 후 마지막으로 극락전과 안양문, 연화교와 칠보교를 둘러보고 불국사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가는 곳마다 그곳에 얽힌 설화와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청년들은 “다른 건 몰라도 불국사만큼은 꼭 법륜 스님의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다”며 아주 만족스러워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불국사의 경치를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알려주면서 이곳에서 조별로 사진을 찍으라고 안내한 후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nbsp불국사 사찰순례 후에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후 12시 30분부터 개인 고민에 대해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2시간 남짓 가졌습니다. 어제는 ‘역사와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오늘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즉문즉설 이야기는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5. 46,173 읽음 댓글 20개

2016.4.2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1일째(2) 즉문즉설 사회문제편

nbsp안녕하세요? 하루 종일 계속 되었던 경주역사기행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에 도착하기 전 불국사 공원에 잠시 내려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벚꽃 물결이 일러이는 숲길 사이를 걷는 동안 청년대학생들은 환상적인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nbspnbspnbsp▲ 벚꽃이 활짝 핀 불국사 공원nbsp강연장 앞에서는 미리 질문자 신청을 받았습니다.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질문지함에 넣으면 강연 중에 스님이 질문지를 뽑아서 답변을 해주기로 했습니다.nbspnbsp▲ 질문자 사전신청nbsp대강당을 가득 메운 38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은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큰 박수로 반겼습니다. 저녁 강연은 먼저 스님이 1시간 동안 기조 강연을 한 후 이어서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경주 역사기행을 진행하면서 작은 부족국가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는지 그 원동력은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의식의 부족으로 발해와 나뉘어져 이국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저녁 강연에서는 청년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오늘날의 남북 분단문제로 확장시켜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분단 상황에서 남북 간의 격돌은 우리 사회 전체를 굉장히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최소한 남북 간의 긴장을 풀고 평화협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대통령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해줘야 해요. 그리고 국가가 더 발전하려면 남북 간 협력을 강화해 통일을 지향하면서 북한 개발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nbspnbsp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북한과 통합 관계를 맺으려면 신라가 자기성장의 필요에 의해서 가야와 통합할 때 가야의 요구를 들어주었듯이 북한을 포용해야 해요. 강자가 약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포용이라고 해요. 약자가 강자의 요구를 들으면 굴복이라고 합니다. 굴복한 쪽은 나중에 자기가 힘이 생기면 또 저항을 해요. 그것을 항구적 평화가 아니에요. 그러니 포용을 해야 하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북한에 끌려다닌다느니 북한 좋은 일 시킨다느니 하는 식의 논리는 결국 북한과 적대적으로 지내자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 있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nbspnbsp이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에요. 물론 여기에 크게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걸려 있습니다. 미국은 미·중의 경쟁에서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에 끌어넣으려 하고, 중국은 한국이 거기 못 들어가게 막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한국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분단된 상태다 보니 우리는 북한과의 갈등이 심해지면 우리도 모르게 미·일 군사협력체계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게 되죠. 지금 그렇게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켜서 우리를 한·미·일 군사협력 체계로 몰아가고 있는 거예요. 오늘도 워싱턴에서 그냥 한·미 정상 회동만이 아닌 한·미·일 정상 회동을 했고, 한일 간에는 최근에 군사정보교류협정도 맺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중국이 발끈하는 거예요.nbspnbspnbsp사드 배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드 배치가 순수한 군사적 면에서만 보면 방어적인 측면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어요. 들인 돈만큼 도움이 되느냐 하는 효용성의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쟁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중국까지 고려했을 때는 사드 배치가 과연 안보상 도움이 되느냐는 의문입니다. 첫째, 중국은 사드를 배치하면 원점 타격을 하겠다고까지 나오잖아요. 우리는 북한에 대한 방어라고 하지만 중국은 자기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그리고 중국과의 갈등은 우리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중국과의 갈등 관계가 이어지면 동아시아공동체를 통해서 우리가 구현하려고 하는 우리의 미래 발전 전략에 장애가 됩니다.nbspnbsp이처럼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은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회사에서 월급 10만원 더 주고 덜 주는 게 여러분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게 아니에요. 한반도의 미래 발전 전략이 그 속에 있는 여러분들의 삶을 훨씬 더 좌우하는 큰일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걸 염두에 두고 국가 발전 계획과 맞추어서 자기 인생을 설계를 해야 합니다.nbspnbsp예컨대 투표를 하더라도 정부 정책이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투표를 해야 합니다. 동쪽에 치우친 조그마한 나라였던 신라는 이런 발전 전략을 가지고 가야와 통일을 이루고 그 자원을 함께 활용해서 결국은 삼국의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우리는 동아시아의 한중일 구도에서 밀리지 않는 명실상부한 국가로 등장할 수 있고, 그러면 미·중 사이에서 캐스팅보드를 쥘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생각해볼 때 통일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그 전에 평화 문제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개인문제가 누구나 다 중요하긴 하지만, 자꾸 개인문제만 보지 말고 이렇게 큰 문제를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통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들을 하나 하나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일한국이 되었을 때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비전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궁금한 점을 묻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미리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지를 써내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질문지를 하나씩 고르면서 청년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8명의 청년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통일 이야기에 본인은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집에 돌아가서 보수적인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통일에 대해서 깜깜했던 게 좀 명확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가족은 저랑 약간 의견이 다르고, 특히 아버지께서는 통일에 반대하시고 무척 보수적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좀 열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좋을지 방법을 여쭙고 싶습니다.”nbspnbsp“아버지와 통일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스님이 질문자의 아버지와 대화를 해도 아버지가 스님의 말을 들을까말까 한데, 자기 고정관념이 딱 있는 분이 자기보다 아랫사람인 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꿀까요?”nbsp“안 바꿔요.”nbspnbsp“바꾼다는 건 질문자의 희망사항이지만 그건 에너지 낭비예요. 내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아버지 생각이 잘못됐다 해도 아버지를 설득하기는 어려워요. 아버지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꿔주려면 법륜 스님의 책 중에 ‘새로운 100년’ 같은 걸 사드려서 읽게 해 보든지요. 스님이 가도 바꾸기 어려운데 질문자가 뭐 대단하다고 아버지를 바꾸려 들어요? 그건 불가능해요.nbsp그러니 이런 걸 갖고 어른들과 싸울 필요가 없어요. 젊은 여러분들은 생각을 바꿀수가 있지만, 어른들은 때를 기다려야 해요. 이 ‘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즉 세월이 흘러야 해요.nbspnbspnbsp그 다음 하나는 대세가 기울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사람이란 대세가 기울어지면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 정권이 바뀌고, 바뀐 정권이 좀 포용적인 대북정책을 써서 통일의 희망이 오면 대부분은 따라와요. 그래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극소수는 있겠지만 나머지는 대세에 따라갑니다. 인간이라는 게 그래요.nbspnbsp우리가 지금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통일을 추구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가 없어요. 국민 대다수가 다 통일을 지지할 수가 없어요. 일제 강점기 때도 전 국민이 모두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었어요. 10명 중에 1명도 안 됐습니다. 100명 중 1명, 1000명 중 1명 꼴이었어요.nbspnbsp우리가 지금 노력을 해서 대세가 바뀌면 반대하던 사람들도 저절로 동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세요. 지금은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시면 반론을 제기하지 말고 그냥 들어드리세요. 그러면서 ‘어,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스님은 아빠 이야기하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것 같던데, 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 읽고 아빠 견해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렇게 해보세요. ‘아빠, 이 책 좋아 이 책이 내 생각하고 똑같아.’ 이러면 아버지가 안 읽어요.nbspnbspnbsp그러니 그냥 ‘아빠 이야기 들으니까 법륜스님 책하고 내용이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한번 읽어보세요’ 이렇게 넌지시 권해야 합니다. 이런 걸 영리하다고 해요. ‘아빠, 그거 틀렸어 스님 이야기 들으면 안 그렇지’ 이렇게 막 싸우는 건 정의로운 게 아니라 바보 같은 거예요.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지 않고 악화되도록 하니까요. 그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바보 같은 짓이에요. 알았죠?”nbsp“네.”nbsp“어른들하고는 너무 이런 이념 논쟁, 정치 논쟁 같은 것을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꿀리거나 피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말씀을 하시면 들어드리고, 말 될 만한 것만 슬쩍 꺼내서 한두 마디 해보고, 안 되면 ‘알았어요, 아버지. 네’라고 하세요. 아버지는 나한테 공부할 수 있게 돈 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분이에요.nbspnbspnbsp정치적 견해가 다른 건 너무 따질 필요가 없어요. ‘낳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러고 넘어가는 게 좋아요. 우리 에너지를 안 되는 데다가 너무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스님도 통일처럼 안 되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죠?nbspnbsp그런데 저는 통일이 안 된다는 생각을 안 해요. 막힌 이 물꼬를 조금만 트면 통일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 북한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한국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어요. 북한은 굶어죽는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우리는 성장의 고비가 꺾인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어요. 이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고 오히려 갈수록 나빠질 수 있는 지점에 몰렸기 때문에 누군가가 통일에 대한 길을 조금만 열어서 동조 세력이 모이면 분위기가 변하면서 대세가 확 바뀔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이 마중물 같은 역할을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에요. 국민을 다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물꼬가 딱 트여서 물줄기가 바뀌고 대세가 기울어지면 사람들은 또 대부분 따라옵니다. 그때 질문자의 아버지는 자기가 처음부터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처럼 말할 거예요. ‘내가 뭐라 그랬니? 옛날부터 내가 이렇게 된다고 이야기했잖아’ 그러면 ‘그래요, 아빠 말이 맞아요’ 이렇게 대답해야지, ‘아빠가 언제 그랬어? 전에 반대했잖아’ 이러면 안 돼요. ‘아, 아빠 말이 맞았네요’ 이렇게 해줘야죠.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그래요. 제 말 이해가 돼요?”nbsp“네.”nbsp“안 되는 것에 억지로 매달려서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세요. 완전히 생각이 굳은 어르신들을 진보 세력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안 돼요. 반면 중간에 있는 사람은 끌어오기가 쉬워요. 투표는 51퍼센트의 지지만 받으면 되지 100퍼센트의 지지를 다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더 데려오면 돼요.nbspnbsp지금 우리가 노력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48 대 52입니다. 여기서 2퍼센트만 가져오면 50 대 50이 되고 3퍼센트만 가져오면 51 대 49가 되죠. 다시 말해 10명 중 중간에 있는 1명만 설득하면 되지 다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아이고, 50퍼센트나 반대하는 저걸 언제 다 설득하나’ 이러면 안 돼요. 51퍼센트만 되도록 하면 되지, 꼭 70퍼센트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쉬운 데를 우선 집중해야 해요. 그리고 이미 같은 편인 사람들끼리 맨날 앉아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거 이야기해봐야 자기들끼리 기분만 좋지 아무 도움이 안 돼요.nbspnbspnbsp이렇게 사물을 보는 영리함이 있어야 해요. 옛날 사람 말로 꾀가 좀 있어야 해요. ‘꾀’라는 게 나쁜 뜻이 아니에요. 이런 영특함 혹은 영리함이 있어야 해요. 착하기는 착한데 앞뒤 안 재고 무식하게 덤비면 힘만 많이 빠지지 효과가 안 납니다. 알았어요?”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명쾌하고 재치있는 답변에 청년대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지나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은 여기까지 대화를 하고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 내일 또 만납시다” 하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은 스님의 통일 강연이 너무나 감명 깊었는지 오랜 시간 열렬히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박수갈채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 30분에 경주를 출발해서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를 둘러보고, 다시 경주로 와서 불국사 사찰순례를 한 후 오후에는 개인 고민을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4. 45,843 읽음 댓글 32개

2016.4.2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1일째(1) 역사기행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청년대학생들과 함께 벚꽃이 활짝 핀 경주 시내 곳곳을 거닐며 ‘신라의 삼국통일과 오늘날 남북통일의 교훈’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아침 9시 30분, 태종무열왕릉 앞에 모인 38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은 스님이 걸어나오며 송수신기로 인사를 건내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을 했습니다.nbspnbsp▲ 태종무열왕릉nbsp스님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오늘 역사기행의 취지와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여기는 역사 유적지이니까 옛 역사를 돌아보면서 꽃구경도 하세요. 역사공부를 즐겁게 하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도 살펴보려고 해요.nbspnbsp만약 지금 상황을 천년 뒤에 후손들이 본다면 ‘아, 그때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천 년 전 역사를 보면서 ‘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멸망시켰을까?’ 하는 의문이 들잖아요. 이런 의문은 우리의 지금 생각이지, 그때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 한 거예요. 현재 남북은 대립과 갈등을 하고 있는데, 지금 같아서는 일본, 미국, 중국과 손을 잡아서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고 싶지요? 우리 대통령께서는 그렇게 하고 싶대요.nbspnbspnbsp그런데 그걸 천 년 후에 후손들이 보면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우리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게 백 년 후에 돌아봤을 때는 전혀 정당하지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또 옛날 우리 선조들이 한 것을 두고 ‘이해 못하겠다. 왜 바보같이 그랬던 걸까?’ 하는데, 그 시대로 돌아가서 살아보면 ‘아, 이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구나’ 하는 걸 또 이해하게 될 거예요.nbspnbsp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역사기행을 하는 건 옛날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고, 또 오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될 겁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우리는 간접 인생경험을 쌓자는 겁니다. 직접 경험하는 게 제일 좋은데, 다 경험할 순 없으니까 남이 살았던 삶을 보면서 ‘아, 나도 이래야 되겠다’거나 ‘아, 나는 이러지 말아야 되겠다’는 간접교훈도 얻을 수가 있습니다.nbspnbsp오늘의 목표가 그러하니까, 너무 노는 데만 집중하느라 강의를 안 들어도 안 되고요. 너무 공부에만 집중해서 힘들어도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오늘은 약간 즐기면서 공부를 합시다.”nbspnbsp꽃구경과 역사기행을 함께한다는 이야기에 청년대학생들은 환호를 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오전에는 태종무열왕릉, 진흥왕릉, 김유신장군묘를 둘러보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있어서 정치적인, 외교적인, 경제적인, 군사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관해 얘기를 한 후 오후에는 능지탑,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를 둘러보며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신라인들의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모습은 어떠했는지에 관해 얘기를 했습니다. 또 저녁에는 이것들을 기초로 해서 지금의 남북문제나 국제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강연을 했습니다.nbsp먼저 오늘 역사기행의 첫 출발지인 태종무열왕릉 앞에서는 부족국가에 불과했던 작은 나라 신라가 어떻게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삼국 통일의 과정이 전체적으로 어떠했는지 그 흐름을 주욱 짚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신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가야와의 합의통일입니다. 만약 지금의 남북도 합의통일을 하게 되면, 남북은 일본, 중국과도 친하고, 그래서 동아시아공동체를 이루는 중심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북한을 정벌해서 통일을 하게 된다면, 무엇보다 전쟁 피해가 엄청날 것이고, 중국도 전쟁에 참여할 것이므로 승산도 없고, 설령 승전하더라도 중국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통일이 되더라도 통일 이후에 아무런 실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평화적으로 합의를 통해 통일을 할 때만이 통일도 쉽고, 통일 이후의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신라와 가야의 합의 통일이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역사공부를 이래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신라가 왜 갑자기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지요?”nbspnbsp“예, 없어요.”nbspnbsp“현재의 우리 삶에 교훈이 되는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학교에서는 외우는 공부만 하니까 문제입니다. 가야와의 합의통일로 신라는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삼국의 일원이 됐고, 그러면서 소위 삼국시대가 시작됐습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신라는 가야와의 합병 이후 130년 만에 오히려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가야와의 합병 이후에 신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사람이 누구냐 하면 법흥왕과 진흥왕이에요.nbspnbsp이 넓어진 영토를 잘 관리한 왕이 진평왕이에요. 진흥왕의 작은아들인 진지왕이 재위 4년 만에 폐위되고, 진흥왕의 장손이자 진지왕의 조카인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진평왕은 왕위에 53년을 있었기 때문에 왕위에 꽤 오래 있었죠. 이 시기에는 넓어진 영토를 관리하는 게 어려웠어요.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자기네 땅을 찾겠다고 침공해 왔거든요.nbspnbsp이런 국난의 시기를 이어 받아서 통치했던 왕이 바로 선덕여왕입니다. 그래서 선덕여왕, 진덕여왕이 그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삼국통일을 발원하게 됩니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통일은 아니지요. 고구려의 후예들이 발해를 세웠기 때문에 남북국시대라고 해야 됩니다. 신라는 처음부터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게 아닙니다. 삼국이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중국에 수나라, 당나라가 들어섰고, 한강 유역을 신라가 차지하면서 백제와 신라가 원수가 되고, 그 원수의 원수는 친구이니까, 철천지 원수였던 백제와 고구려가 이번엔 손을 잡아서 여제동맹을 맺게 됩니다. 고구려와 돌궐이 싸우다가 또 중국이 커지니까, 고구려와 돌궐이 동맹을 맺게 되고요. 그러니까 몽골, 고구려, 백제, 왜, 이렇게 4국이 동맹관계를 맺으니까, 신라는 오른쪽에 고립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바다 건너에 있는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어서 결국 국제전쟁이 벌어지게 되지요. 그 국제전쟁의 결과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신라가 역사의 주역이 되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고구려의 옛 땅에는 다시 발해가 들어서지만 신라와 발해는 동족인데도 별로 사이가 안 좋았어요. 발해 입장에서는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사람들이고, 신라 입장에서는 발해의 문화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얕잡아보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했을 뿐 교류가 많이 없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의 큰 불행입니다.nbspnbspnbsp우리는 지금 태종무열왕릉 앞에 와있는데요. 태종무열왕, 즉 김춘추는 오늘날로 치면 외교부장관으로서 역할하면서 선덕여왕 때 대당 외교의 주축을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와 협력해서 우호관계를 유지시켰고, 자기가 왕이 되자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멸망케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삼국통일의 첫 단계를 밟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왕위를 계승한 문무대왕 때 고구려가 멸망하는데, 이때 군사력을 좌지우지한 사람이 가야 마지막 왕의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입니다. 가야인들은 삼국통일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국통일을 말할 때 김춘추, 문무왕, 김유신을 삼국통일의 영웅이라고 합니다.”nbsp막힘없이 줄줄줄 흘러나오는 스님의 역사이야기에 청년대학생들은 금방 몰입되었습니다. 스님은 과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 교훈을 되새기고, 현재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무엇을 더 살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마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태종무열왕릉 뒤로는 태종무열왕릉보다 훨씬 더 큰 네 개의 무덤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데, 청년대학생들은 그 옆을 천천히 오르며 스님의 설명에 계속 집중했습니다. 스님은 이 네 개의 무덤은 누구의 무덤인지 수수께끼를 내었습니다. 무덤이 더 큰 데다가 윗자리에 모셨으니 태종무열왕릉보다 더 큰 영웅이어야 하는데 그런 왕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자 아직 역사적으로도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아직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지지 않은 태종무열왕릉 뒤 네 개의 큰 무덤nbsp봄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가운데 무덤의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하나의 무덤 앞에서 380여 명이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무열왕릉에서 청년대학생들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간절히 소원하며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nbspnbspnbsp조금 더 뒤쪽으로 올라가니 진지왕, 진흥왕의 무덤이 나왔습니다. 길게 행렬을 이루며 무덤 주위를 한 바퀴 돈 후 마을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 진흥왕릉과 진지왕릉nbsp마을 어귀에는 복사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어서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스님이 “저기에 복사꽃을 한번 보세요. 여러분들 얼굴이 더 예뻐요? 복사꽃이 더 예뻐요?” 라고 물으니 청년대학생들은 “우리 얼굴이요”라고 대답하며 웃었습니다. 젊음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또 길가에는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복사꽃nbsp▲ 민들레nbsp태종무열왕릉에서 김유신장군묘까지는 걸어서 이동했는데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은 곳곳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스님도 무척 즐거워하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꽃이 이렇게 피어있는 것을 경상도 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오지게 피었다고 그래.”nbsp▲ 벚꽃 나리는 길. 태종무열왕릉에서 김유신장군묘까지.nbsp경상도에서 온 청년들은 스님 표현대로 “우와, 오지게 피었다” 하면서 활짝 핀 벚꽃을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바람이 간간히 불 때면 벚꽃잎이 흩날리기도 해서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스님이 “노래 한 곡 해봐라”라고 하자 한 청년이 나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감미롭게 불러주었습니다.nbspnbsp“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우우 둘이 걸어요”nbsp스님은 노래를 듣고 나서 왜 하필 둘이서만 걷노? 이 좋은 길을 걸을려면 여럿이 같이 걸어야지 하며 웃었습니다. 역시 스님 다운 특유의 유머에 청년들도 함께 웃었습니다. nbspnbsp▲ 김유신장군묘 앞 벚꽃길nbsp특히 김유신장군묘 앞에는 벚꽃잎이 어찌나 절경을 이루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nbsp또 벚꽃에 흠뻑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김유신 장군묘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개나리꽃이 활짝 핀 한쪽 모통이에 자리잡은 청년대학생들은 다시 스님의 설명에 집중했습니다. 스님은 김유신 장군의 성품에 관련된 여러 일화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는데, 특히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자주의식이 강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 김유신장군묘nbsp“당 태종이 죽은 뒤인 당 고종 때 당나라와 신라가 협력해서 백제를 멸망시켰는데, 그러면 백제는 당연히 신라 것이 될 줄 알았는데, 당나라는 백제의 왕을 잡아가고, 그 왕의 아들을 왕으로 내세운 뒤 실질적 통치를 했습니다. 그래 놓고 자기네를 도와서 고구려 정벌을 같이 하자고 신라에게 제안합니다. 신라는 전쟁을 해서 얻은 게 하나도 없는 상태이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요. 그래서 김유신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여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겁니다. 그런데 당나라는 ‘신라, 너희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663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연개소문한테 패해서 고구려 정벌에 실패합니다.nbspnbsp그러고 있는 중에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그 아들들인 남생, 남건이 권력쟁탈전을 벌입니다. 형이 외출한 사이에 동생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형이 당나라 황제한테 도망가서 ‘군대 좀 빌려달라. 내가 저 나쁜 놈을 좀 치겠다’고 하니까 당나라는 협조를 해 줬습니다. 그래서 형을 앞장세워서 고구려를 침공했는데, 고구려에는 이미 내분이 일어난 상태이니까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고구려가 쉬이 멸망한 겁니다.nbspnbsp그때 신라도 참가했는데, 이번에도 당나라가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서 또 지배하니까 신라는 정말 화가 난 겁니다. 그래서 당나라 군대를 공격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나당전쟁은 무려 8년이나 지속됐습니다. 예를 들어 한미연합군이 북한을 점령한 뒤에 ‘북한을 누가 관할할 거냐?’를 두고 한미 간에 전쟁이 나서 한국과 미국이 8년 전쟁을 했다면, 한국이 승전할 수 있을까요?nbspnbspnbsp통일할 때는 이런 것도 고려를 해서 전략을 짜야 합니다. 지금 남한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 중국, 일본, 미국과 협력을 한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연 중국, 일본, 미국 중에 누가 우리의 적이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거예요.”nbspnbsp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인 것을 가지고 자주성이 약했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나당전쟁을 8년이나 해서 결국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주었습니다.nbspnbsp김유신 장군묘를 내려오면 흥무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맛있게 도시락을 먹는 사이 스님은 벚꽃 나무 아래에서 40여 개가 넘는 조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흥무공원. 조별 기념사진 촬영 시간.nbsp다시 청년대학생들은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한 스님이 먼저 이동해서 답사를 했는데, 경주 시내 곳곳이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도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스님은 “황룡사지로 가려고 하다가 도로에서 시간을 다 보내겠다” 하면서 황룡사지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능지탑으로 버스를 돌렸습니다. nbspnbsp아쉬움이 남기는 했지만, 대신 스님은 능지탑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능지탑 앞에서는 무엇보다 문무대왕의 호국 정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신라는 문무대왕에 와서 삼국 통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신라의 주된 경쟁 상대였던 고구려와 백제는 멸망했지만 그 동맹국이었던 왜는 아직도 건재했기 때문에 문무대왕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나는 죽어서 동해바다의 용이 되겠다. 그러니 내 시신을 동해바다에 묻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스님이 ‘용이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보다는 한 단계 낮은 축생의 무리에 속한다. 그런데 어찌 용이 되겠다는 것인가?’라고 하니까 문무대왕은 ‘내가 축생이 된들 어떠리.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과 비슷한 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우리나라가 독립만 된다면 나는 그 정부청사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 김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지요. 지도자가 솔선수범하는 이런 자세는 오늘날 통일을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nbspnbspnbsp이곳은 문무대왕의 시신을 화장했던 곳입니다. 화장한 곳에다가 화장한 재로 탑을 쌓은 거예요. 탑이란 건 원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건데, 이 탑은 부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탑이지요. 이런 탑을 무덤 대신 세운 탑이라고 해서 능탑이라고 하는데, 옆에 보면 ‘능지탑’이라고도 써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왼쪽을 보시면, 아직 탑의 석재가 많이 남아있죠? 능탑은 신라에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허물어졌으니까 그 정확한 모양을 몰라서 맞추지를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현재 복원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어쨌든 연꽃모양으로 탑을 쌓았다고 해서 연화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이 앞에 있는 동네 이름이 배반이에요. 이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문무대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엎드릴 배’, ‘반석 반’해서 동네 이름이 ‘배반’입니다.”nbsp능지탑 참배를 마치고 다음은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능지탑과 선덕여왕릉은 낭산 자락에 함께 위치하고 있습니다. nbspnbsp▲ 선덕여왕릉nbsp선덕여왕릉 앞에 도착한 스님은 선덕여왕의 총명한 지혜를 보여주는 세 가지 일화를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중 여왕의 무덤이 왜 이곳에 위치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선덕여왕이 재위 16년째 되던 해에 건강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신하들을 불러놓고 ‘내가 4월 며칟날 죽겠다. 그러니 준비를 하라. 그리고 나를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했답니다. 신하들이 듣기에는 뜬금없는 소리잖아요. 신하들이 선덕여왕한테 ‘도리천이 어디입니까?’라고 물으니까 선덕여왕은 다시 ‘낭산의 남쪽 정상에 묻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낭산 남쪽이 바로 우리가 서있는 이곳, 낭산의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주 건강하시던 선덕여왕님이 진짜 4월 며칟날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선덕여왕의 유훈에 따라서 이 정상에 무덤을 쓴 것입니다.nbspnbspnbsp막상 묻긴 했어도 당시 신하들은 이곳이 과연 도리천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이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전쟁이 나게 되는데, 신라 신앙의 여론으로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당나라를 이길 수가 없다. 신의 힘을 빌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국력이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의 힘만으로 싸운다면 신라가 당나라에 백전백패할 게 뻔하니까, 신앙에 의지해서 ‘우리는 신이 보호하는 나라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나라를 막아낼 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신의 힘을 빌리는데 능통한, 아주 도력이 높은 명랑법사라는 분이 계시는데, 그 스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길이 있을 것이라는 여론에 따라, 왕이 명랑법사를 불러서 ‘지금 당나라가 20만 대군을 끌고 신라를 공격해 오는데, 우리 힘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하니까 명랑법사가 ‘신의 힘을 빌려야 된다’고 하면서 ‘신들이 노는 곳, 성스러운 곳’이라는 장소로 안내했는데, 그곳이 바로 이 밑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귀신 신’자에 ‘놀 유’자를 쓴 신유림이라는 숲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천왕사를 지은 겁니다. 인간계가 있고, 그 위에 사왕천이 있고, 그 위에 도리천이 있는데, 요 아래에 사천왕사가 지어진 후에 보니까 그 위인 이곳이 도리천이 된 거죠.nbspnbspnbsp그러니까 선덕여왕은 본인의 죽음을 내다 봤을 때 앞으로 30년 후에는 통일이 되리라는 것도 예측을 했고, 그 통일의 시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맹방인 당나라가 최대의 적이 되리라는 것도 어느 정도 예측을 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지만요. 그러나 이런 것으로 봤을 때 선덕여왕은 매우 영민한 사람으로서 직관력이 뛰어나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nbspnbsp이 외에도 스님은 선덕여왕이 지닌 리더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선덕여왕의 총명한 지혜에 대해 청년대학생들은 모두 감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에 스님이 “지금 우리나라도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우리 대통령도 그런 것 같아요?”라고 묻자 청년대학생들은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nbspnbspnbsp선덕여왕릉을 내려오니 사천왕사가 있었던 터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공터이지만 절과 탑을 세웠던 흔적들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스님은 사천왕사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기가 사천왕사입니다. 이 절은 통일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절입니다. 특정 종교의 건축물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황룡사 9층탑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발원탑이라고 한다면, 이곳 사천왕사지에 복원해야 할 탑은 통일완성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정리하고, 정신적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천왕사지를 복원해야 됩니다. 저희 스승님인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버려져 있던 이 터를 사비를 들여 구입한 후에 다시 정부에 기증해서 발굴하게 한 것입니다.nbspnbspnbsp저 두 군데에 한번 올라가보세요. 삼국유사에 12명의 법사가 문두루비법을 행했다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올라가보면 주춧돌이 딱 12개입니다. 돌에 구멍이 다 뚫려있어요. 원래 주춧돌에는 구멍이 없는데, 어떻게 저랬는지, 무엇 때문에 저랫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신상을 세운 자리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할 뿐입니다. 왼쪽 것은 다 그대로 있는데 하나만 무너졌고, 오른쪽 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똑같은 구멍 12개가 네모지게 딱 갖춰져 있어요. 일반 절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양쪽에 똑같이 돼있어요.”nbspnbsp불심도문 큰스님이 사비를 들여 땅을 구입해서 발굴하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선 모두들 놀라워 했습니다. 큰스님의 그런 투철한 역사의식의 영향을 법륜 스님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사천왕사지를 끝으로 오늘 계획한 역사기행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은 버스에 다시 올라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서는 저녁식사 후 7시 30분부터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강연 이야기는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4. 56,332 읽음 댓글 20개

2016.4.1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 경전반 즉문즉설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용성진종조사의 열반일을 맞이해 조사님의 탄생성지인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정토회 봄경전반 학생들과 함께 기념법회 및 즉문즉설을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서울에서 아침 6시에 출발한 스님은 9시 30분에 죽림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죽림정사는 소백산맥의 산세가 웅장한 전북 장수 장안산 자락 아늑한 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불교의 대선사였던 용성진종조사님의 생가터를 불심도문 큰스님이 복원하여 지은 절입니다.nbspnbsp▲ 전북 장수 죽림정사nbsp그리고 오늘은 조사님이 열반하신지 7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조사님의 탄생성지에서 열반일 기념법회를 하게 된 것을 뜻깊게 여기며 죽림정사 정광 사무국장이 앞에 나와 조사님의 행장을 낭독하였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는 서기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군 번안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으며, 14세시에 교룡산성 덕밀암에 출가하였으며 23세에 오도를 했습니다. 그 뒤 전국 각 사암들을 찾아 다니면서 수도정진 하였으며, 44세시에는 중국불교계의 선지식들과 불법의 진리를 논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용성진종조사 nbsp1910년 경술치욕을 맞이한 용성진종조사는 산중수행을 정리하고 1911년 48세 되던 해에 종로구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해서 수리, 개조하여 대각사 간판을 내걸고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을 발원하여 불교계의 혁신작업과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는 만해 한용운 대사와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4번째 서명하였으며 이로인해 서대문 감옥에서 1년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21년 출옥과 더불어 삼장역회를 조직하여 한문으로 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였으며, 1922년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중국 길림성 안도현 명월촌과 봉녕촌에 대규모의 대각교당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습니다. 1926년에는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던 왜색불교의 폐단을 지적하고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건백서를 2차에 걸쳐 제출하면서 전통불교의 맥을 계승하기도 했습니다. 1927년 64세시에는 창작 찬불가를 작시, 작곡하고 노구에도 불구하고 대각사에 일요학교를 설립하여 오르간을 손수 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함양에 화과원을 만들어 사원경제의 자립을 부르짖는 선농불교를 솔선수범 하였습니다.nbspnbsp이후 20여 종의 경전을 번역하였고, 20여 종의 저술도 남겼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 2월 24일 대각사에서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이고 법랍은 61하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전수한 전등 68대 조사인 동시에 조선불교 중흥율 제6조입니다.nbspnbsp이렇게 행장 낭독에 이어서 용성조사가 작사한 ‘온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 ‘온 겨레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대중들nbsp“백두산이 아빠되어 단군겨레 이루었고♬ 한라산이 엄마되어 단일기백 이루었네.nbsp북녘송화 남녘낙동 젖줄되어 흐르르니♬ 자손만대 이어가며 이강산을 가꿔가세.”nbsp노래를 힘차게 함께 부르는 가운데 북녘을 송화강까지라고 작사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도 고구려 발해 시대의 역사까지 헤아렸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이어서 죽림정사 주지를 맡고 있는 법륜 스님의 기념법문이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400여 명의 정토회 봄경전반 학생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 용성교육관nbsp스님은 용성진종조사님이 주창한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 3대 지침이 현재 정토회를 통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용성진종조사님의 생애를 요약해보면 첫째가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근세불교의 중흥조라고 하는 거예요. 그 첫째가 불법의 참모습을 알리고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라는 것이 미신 마냥 아주 형편없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불교의 참모습은 그렇지 않다. 불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이요, 철학이요, 종교다’ 하는 것을 내세우셨어요. 이것을 ‘불교의 지성화’라고 합니다. 불법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리고 정립하는 작업을 첫 번째로 하신 겁니다. 왜곡된 불교를 바로잡고자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로 등단하신 거예요. 부처님의 정법이 조선조 영조에 이르렀을 때 조정에서는 환성지안조사에게 사약을 내려 돌아가시게 했어요. 즉 순교를 하신 겁니다. 이렇게 환성지안조사가 순교하신 뒤 정법의 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를 복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성진종조사를 ‘환성지안조사의 후신’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게 정법안장이에요. 그러면 환성지안조사는 법을 어디서 받았습니까? 이렇게 해서 계속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성진종조사님의 열반일에 다례재를 지낼 때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우리 해동 조선에 이르기까지 그 분의 모든 뿌리가 되는, 즉 스승이 되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다 모셔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첫 번째로 계승하신 마하가섭 존자, 두 번째로 계승하신 아난다 존자, 세 번째 계승하신 상나화수 존자 등.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대 조사만이 아니라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 신라 5교 9산이 다 예배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담징을 비롯해 그림을 잘 그린 사람이며 조각을 잘 한 사람 양지 등도 여러분들이 절을 올린 대상에 들어 있어요. 우리의 스승이자 뿌리에 해당되는 분들을 다 따지자면 수천, 수만이 되겠죠. 이게 역사성이고 뿌리에요.nbspnbsp그리고 불법은 수행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5대 수행, 즉 참선하고 염불하고 주력하고 간경하고 불사하는 5대 수행을 정립하셨습니다. 이렇게 큰스님은 불교의 지성화를 이끄셨습니다. 정토회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게 ‘바른 불교’입니다. 바른 불교관을 정립한 거예요.nbspnbsp그런데 아무리 바른 불교, 좋은 불교라 하더라도 대중이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 하신 일이 ‘불교의 대중화’예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첫 번째로는 어려운 한문 경전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시고, 인쇄하시고, 유포하셨습니다.nbspnbsp▲ 용성진종조사가 펴낸 조선글 화엄경nbsp그리고 시내에 대각교당이라는 포교당을 내서 산속에 있던 불교를 누구나 다 시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어요. 재가자들에게도 삼귀의 오계를 줘서 그냥 복이나 비는 신자가 아니라 수행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셨어요. 다시 말해 재가수행자가 되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nbspnbsp정토회도 ‘쉬운 불교’를 추구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즉문즉설을 듣든 여기 경전반에 다니든 다른 곳보다는 좀 쉽죠? 여러분들이 옛날에 났으면 죄다 절에 가서 복이나 빌지, 불법이 뭔지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큰스님께서 이런 작업을 시작해주셨습니다. 그런데 70년, 80년, 100년 전 당시에 비해서는 굉장히 쉽게 만들어주셨지만 요즘 우리가 듣기에는 그것도 어려워서 제가 이제 여러분들 수준에 맞도록 더 쉽게 고쳤습니다. 요새 청년들은 이것마저도 어렵다고 난리를 피워서 즉문즉설을 통해 또 더 쉽게 하고 있어요. 이게 불교의 대중화입니다.nbsp세 번째가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아무리 쉬워도 불교 수행 따로 있고 내 생활 따로 있으면 안 돼요. 밥 먹는 게 수행이고, 부부관계가 수행이고, 회사 다니는 게 수행입니다. 그게 수행인 줄은 알아요?”nbsp“예.”nbspnbsp“즉문즉설의 내용은 전부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가질 거냐에 대한 거예요. 수행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있다는 게 불교의 생활화예요. 그래서 큰스님께서 하신 게 선농일치입니다. 화과원을 세우고 선농당을 세운 건 농사짓는 것이 곧 수행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수행자가 그냥 앉아서 참선만 하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곧 수행하도록 하셨어요. 화과원은 백운산에 만든 과수 농장입니다. 깊은 산 속에, 그것도 높은 곳에 과수원을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요? 첫째는 생산불교를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으자는 거예요. 형사들이 그 산꼭대기까지는 안 따라오니까요. 또 다른 하나는 중국에다가 농지를 사서 개간해서 선농당을 만들었어요. 해외에 있으니까 형사들이 일일이 따라갈 수 없었겠죠.nbspnbsp큰스님이 이렇게 하려면 누군가 뒤에서 돈 대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남원의 만석꾼이고 큰스님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임동수 거사님이 전부 돈을 댔습니다. 그분이 바로 여기 불심도문 큰스님의 증조할아버지십니다.nbspnbsp‘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이 세 가지가 포교, 전법의 3대 지침이에요. 이것을 지금의 정토회 식으로 표현하면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입니다. 이렇게 해서 불교를 새로운 불교로 바꾸었습니다. 아예 불교라는 이름까지 대각교로 바꾸고, 한때는 스님도 스님이라 하지 말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럴 만큼 ‘이 전통의 묵은 때 속에서는 안 된다’ 하는 각오가 컸던 겁니다.nbsp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독립운동가로서 3.1독립운동의 막후 기둥이셨고, 3.1독립선언을 할 때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을 하셨어요. 그때 한용운 스님은 나이가 39세 정도였고 용성스님은 56세였으니 한번 생각해봐요. 불교계의 어른인 용성스님이 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불교계가 참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셔서는 일제가 늘 따라다니니까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보내거나 사람을 모아서 보내는 일을 하셨어요.nbspnbsp▲ 3.1독립선언을 할 당시 민족대표 33인nbsp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셨어요. 한반도기를 독립운동 깃발로 쓰자는 주장에 한반도기를 쓰면 우리 땅을 한반도만으로 축약시켜 버리는 셈이 되므로 안 된다고 반대하셨어요. ‘온 겨레의 노래’ 가사에서도 남녘은 낙동, 북녘은 ‘압록, 두만’이라고 하지 않고 ‘송하’라고 했어요. 깃발도 태극기를 쓰도록 했고요. 물론 그 전에도 태극기가 있기는 했지만 독립운동에서 어떤 깃발을 쓸지 논의할 때 태극기로 하자고 정해주셨습니다. 대한제국 부흥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운동을 하자고 하신 분도 큰스님이고요. 그러니 도문 큰스님께서 ‘용성스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부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국호를 정하셨으니까요.nbspnbsp이렇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 노력하셨지만 결국은 독립을 보지 못한채 1940년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오늘이 그 열반일입니다. 열반의 게송은 이렇습니다.nbsp제행지무상이요, 만법지구적이라.nbsp포화천리출이요, 한와마전상이다.nbsp‘제행지무상이요.’ 제행무상이란 말 알죠? 모든 세상의 행이 다 무상하다, 영원한 게 없다, 다 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다’라고 합니다.nbsp‘만법지구적이라.’ 만 가지 법이 다 고요적적하도다. ‘고요하도다’라는 말은 제법무아라는 뜻입니다. 만법이 다 아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요적적한 거예요.nbsp‘포화천리출이요.’ 포화는 박꽃입니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라는 뜻입니다.nbsp‘한와마전상이다.’ ‘한와’는 한가로이 누워 있다는 말이고 ‘마전’은 삼밭입니다. ‘한가로이 누워 있도다’라는 뜻입니다.nbspnbspnbsp왜 이런 열반송을 남기셨을까요? 아도화상이 돌아가실 때 ‘큰스님께서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내년 봄에 칡넝쿨을 따라가보라’라고 했어요. 용성스님이 돌아가실 때도 ‘큰스님께서 가시면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이런 열반송을 남기고 입적하셨습니다.”nbsp용성진종조사님의 업적과 정토회의 바른불교, 쉬운불교, 생활불교의 3대 방향이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말씀에 대중들은 무척 놀라워 하면서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이런 용성진종조사의 삶을 오늘날에 진정으로 계승하는 길은 바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기념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오늘은 용성조사 제 76주기 열반기념일입니다. 용성조사께서 77세를 사셨다는데 77세는 만으로 따지면 76년이에요. 그러니 태어나셔서 사신 해수와 돌아가신 뒤 해수가 올해로 똑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분단 극복, 통일은 고사하고 남북 간의 평화도 제대로 유지 못 하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듯이, 큰스님께서 열반하시고 76년이 지났는데도 나라의 독립과 통일은 물론이고 우리 불교계마저도 큰스님의 그러한 불교운동, 즉 불교가 사회적인 리더십을 갖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하며 사회적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일이 허다하니 후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열반일을 맞아서 우리부터라도 바로 이 두 가지를 실천해야겠습니다. 다시 말해 바른 불교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수행하고 전법하는 것이 하나이고, 큰스님께서 그렇게도 바라셨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해방은 됐지만 분단이 되었으니 우리가 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뤄야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분단됐을 뿐 아니라 아직도 강대국에 휘둘리고 있는 이런 상태는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시의 시대적 과제가 나라의 독립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평화적 통일입니다.nbspnbsp그러니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큰스님께서 바라시던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또 하나의 사명입니다. ‘불자가 복이나 빌면 되지, 뭘 이런 걸 하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은 다른 절에 가세요.nbspnbsp여기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바른 불교를 하고, 그것을 널리 전하는 전법정신이 있고, 역사의식을 갖춰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니 그런 뜻이 있으면 정토회에 다니시고, 그런 뜻이 없으면 그냥 신도가 부족하다고 어서오시라는 주위의 다른 절로 가세요. 공연히 여기 와서 ‘왜 복을 안 빌어주느냐’, ‘극락이 있느냐, 없느냐’ 하지 말고요. 지금 사는 것도 제대로 못 살면서 죽은 뒤를 걱정하고 앉아 있어요.nbspnbspnbsp그리고 ‘불교가 왜 수행이나 하지 않고...’라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수행이나 하면 또 괜찮지만 그 말은 사실 ‘복이나 빌지, 무슨 사회에 관여하느냐’ 라는 뜻이잖아요. 적어도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돼요. 아시겠죠?”nbsp“예.”nbsp스님의 강한 어조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족보를 보고나니 우리는 뿌리가 있는 집안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그런 뿌듯함이 가슴 속에 차올랐습니다. 또 스님이 왜 통일운동에 매진하는지 그 역사적 배경도 함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용성진종조사님과 법륜 스님의 행적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사성에 대해 돌아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기념법문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봄 경전반 학생들은 그동안 영상을 통해서만 스님을 뵈어오다가 가까이서 직접 스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무척이나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스님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며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그 중 한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시어머니가 불평을 늘어놓은 것을 들어주기가 무척 힘이 드는데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결혼한 지 20년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시금치도 안 먹고 시청 앞도 안 지나간다는 분들을 보면 별로 이해가 안 됐고, 시부모님이라고 해서 딱히 싫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시어머니는 예전 분들이 다 그리 살아오셨듯 좀 안 됐다, 애처롭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어머님에게 좀 안 좋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머님 당신이나 아버님이 드시는 걸 잘 챙기지 못하시면서 자식들에게는 챙겨주길 바라는 말씀을 하실 때, 특히 제가 이야기를 잘 들어드리는 편이라서 형제간에 있었던 불편함 같은 것을 제게 자꾸만 이야기하실 때 싫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반까지 다니니까 예전보다 좀 더 이해를 해야 할 텐데도 요즘 오히려 더 마음이 좁아지는 것 같아서 아침에 수행할 때 어떤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nbsp“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불교를 대승불교로 계승해서 그것을 다시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선불교로 계승한 불교예요. ‘절을 얼마 해야 한다, 경을 얼마 읽는다, 주력을 얼마 한다’ 이런 걸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바로 문제의 본질을 탁 꿰뚫어서 해탈하는 길을 추구하는 불교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어머니가 자식들이나 형제간에 있었던 이런저런 불편한 이야기를 나한테 한다고 그게 왜 불편해요?”nbspnbspnbsp“예전에는 제가 별로 싫은 마음 없이 들어드렸는데 요즘에 이상하게 싫은 마음이 들어서요.”nbsp“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하다면 질문자가 자기 마음을 보세요. 어머니가 옛날보다 말을 많이 하니까 불편해요? 노골적으로 하니까 불편해요? 어머니는 옛날에 하던 그대로인데 내가 요즘 그걸 못 받아들여요? 질문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에요?”nbsp“그대로인데 제가 못 받아들입니다.”nbsp“왜 못 받아들이는데요?”nbsp“그걸 잘 모르겠습니다.”nbsp“그럼 지금부터 빨리 시어머니한테 가서 대화를 해보면서 연구를 해보세요.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마음이 안 좋을까?’ 이걸 연구해 봐요. 자기 마음이잖아요.nbspnbsp자기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제가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옛날과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옛날에는 내 마음이 안 불편했는데 지금은 왜 내 마음이 불편할까?’ 이건 자기가 연구해야 할 과제 아니에요? 그걸 제가 말해줘서는 안 되지요. 말해준다면 스님이 점쟁이 취급밖에 더 받겠어요? 그건 스스로 연구해야죠. ‘네가 누고?’ 라고 물었는데 ‘스님, 내가 누구예요?’ 이렇게 물으면 안 되잖아요. 그건 자기가 연구해야 할 과제예요. 자기가 연구해야 될 걸 남한테 물으면 어떡해요?nbspnbsp문제의 핵심은 ‘왜 마음이 불편할까?’입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게 전에는 안 불편했는데 지금은 왜 불편할까요? 그동안은 어머니가 말을 안 해서 내가 안 불편했고 지금은 말을 하니 불편하다면 ‘아, 내가 어머니와의 예전 관계에서는 전혀 공부가 안 됐구나. 어머니가 아무 일도 말씀 안 하시니까 내가 안 불편했는데, 말씀하니까 나도 똑같이 경계에 끄달리고 불편하구나.’ 이렇게 알고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냄으로 해서 내가 불편하지 않은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nbsp어머니는 똑같이 있는데, 어제는 괜찮았던 게 오늘은 불편하다면 이유가 뭘까요? 이유가 어머니한테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러면 나한테 이유가 있는 거니까 ‘내가 왜 그럴까?’ 하고 지금부터 계속 참구를 해봐요. 그걸 참구하려면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겠죠?nbspnbsp그냥 여기 앉아서 ‘왜 내가 마음이 불편할까?’ 생각하는 건 공상에 불과해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걸 내가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할 때 ‘왜 불편하지?’ 이래야 지금 참구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이 욕을 하면 내가 왜 기분 나쁠까’ 이러고 있는 건 혼자서 생각만 하는 거예요. 생각은 수행이 아니라 번뇌예요. 그 사람이 이야기할 때 그걸 듣고 내가 화가 나면 바로 그때 ‘왜 화가 나지?’하고 살펴봐야 진짜 참구입니다. ‘내가 왜 화가 날까?’ 이걸 제대로 참구하려면 남이 나를 욕해서 내가 화나는 것을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습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화만 내다가 놓쳐버려요. 화가 나려고 할 때 화를 낼 게 아니라 바로 그때가 원인을 규명할 시간이에요. 그러니 오늘 빨리 시어머니한테 가서 ‘어머니, 다른 사람 흉 많이 봐주세요’ 이래야 합니다.”nbspnbspnbsp“시어머니께서 다른 형제나 동서, 형님들에 대해서 흉을 보거나 욕을 하시는 게 저는 좀 불편하고 싫어요.”nbsp“그게 왜 불편한데요?”nbsp“다른 사람한테 불만이 있으면 이러저러해서 이렇다고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nbsp“좋은 말이지만 질문자는 실제로 그게 되던가요? 사람이 그리 되나요? 여러분은 스님한테 불만이 있으면 스님한테 와서 이야기하는 게 잘 됩니까? 자기들끼리 ‘법륜 스님 왜 저러지, 왜 정치 이야기 하지’ 이러잖아요.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nbspnbsp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니까 스님이 지적해주잖아요. 어머니가 도사나 부처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일일이 큰며느리한테 직접 이야기하는 게 되겠어요. 속은 답답하고 본인한테는 이야기를 못 하겠으니까 질문자한테 하는 거죠. 나쁘게 이야기하면 질문자가 만만해서 이야기하는 거고, 좋게 이야기하면 믿을 수 있으니까 이야기하는 거예요. ‘답답하니 너한테라도 이야기해야겠다’ 해서 이야기하니까 ‘어머니가 저리 불편하시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걸 ‘큰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나쁘게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질문자가 또 상상하는 거예요. 큰며느리하고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 어머니가 별을 보고 불편하게 생각한다고 그게 별 탓은 아니잖아요. 어머니가 추운 날씨를 불평한다면 그건 날씨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어머니 마음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큰며느리를 나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걸 큰며느리 잘못이라고 보면 안 돼요. ‘어머니가 그걸 보고 지금 불편해하시는구나’ 이렇게 그냥 이해하면 됩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생활 불교’라는 걸 알아야 해요. 밥 먹을 때 무슨 기도를 하고 밥 먹는 게 생활불교가 아니예요. 생활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바로 공부하는 게 생활 불교예요. 지금 시어머니와 대화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보고 그 원인을 찾으면 그게 수행이에요. 무슨 딴 짓을 해야 수행이 아니에요. 그래야 수행이 삶 속에서 딱딱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사는 삶에서, 번뇌가 일어나는 그곳에서 바로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 그러면 다 죽은 수행이고 죽은 불교예요. 경전반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생활에 적용해야 해요. 알았죠?”nbsp“예”nbspnbsp질문자는 스님 말씀대로 수행해 보겠다며 크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앞서 용성진종조사님이 지침으로 제시한 ‘불교의 생활화’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더욱더 생생하게 와 닿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기념식을 마친 후 모두 대웅전 계단에 올라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봄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가운데 곳곳에 피어난 봄꽃처럼 경전반 학생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nbspnbspnbsp▲ 경전반 학생들과 기념사진nbsp삼삼오오 곳곳에 흩어져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 30분부터는 묘수 법사님과 무변심 법사님의 안내로 사찰 순례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님들은 교육관 외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포함하여 경내 곳곳에 담긴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법사님들의 안내로 진행된 사찰순례nbsp죽림정사에서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미팅을 가진 후 내일부터 1박2일 동안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을 안내하기 위해 밤 9시에 다시 경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청년대학생 400여 명과 함께하는 경주역사기행이 아침 9시 30분부터 태종무열왕릉 앞에서 시작됩니다. 벚꽃 내리는 경주에서 삼국통일의 숨결이 서린 곳곳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역사의식과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nbsp

2016.04.03. 121,180 읽음 댓글 35개

2016.3.30 대학생 즉문즉설 강연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홍익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그동안 즉문즉설 강연은 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는데, 오늘은 특별히 대학생들만을 위한 시간이 마련된 것입니다.nbsp nbsp 어제밤 대구 강연을 마치고 밤 11시에 대구를 출발한 스님은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회의 및 미팅을 연이어 가진 후 저녁 6시가 되자 강연이 열리는 홍익대학교로 향했습니다.nbsp nbsp 홍익대학교에 도착하니 세계에서 제일 큰 대학 정문이라고 하는 홍문관 건물 앞에 대학생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이 강연 포스터를 들고 열심히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 nbsp ▲ 홍익대 홍문관 nbsp 수업을 마치고 정문을 나오던 많은 학생들이 강연 포스터를 보고선 강연장인 홍문관 지하 4층 가람홀을 찾았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안내 푯말을 들고 환한 웃음으로 학생들을 맞이하는 대학생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을 다시 만났습니다.nbsp nbsp ▲ 홍문관 가람홀 nbsp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 위에 오르자 자리에 앉은 200여 명의 대학생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 nbsp 스님의 여는 이야기가 끝나자 곧이어 대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nbsp 대학교 4학년 여학생은 내가 한 말이 상대에게 나쁘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서 사람들 만나야하는지 고민이 반복되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고, 이번 달에 대학에 입학한 1학년 여학생은 세상 물정에 대해 관심을 끊고 소신대로 살고 싶은데 자꾸 유혹이 된다며 어떻게 소신대로 살 수 있는지 물었고, 또 1학년이라고 밝힌 여학생은 입학한 후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는데 무엇을 중심 가치관으로 하고 살아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 nbsp 공과대학 3학년에 재학중인 남학생은 조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겉돌고 있는데 외삼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또 욕심이 일어날 때 스님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지,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은 잘된 것이라는 말씀과 좋아하는 일을 해야 창의력이 생긴다는 말씀이 상충되는 것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물었고, 음대에 다니고 있는 여학생은 지금 전공하고 있는 가야금을 하기가 싫고 다른 전공을 새로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습니다.nbsp nbsp 그 중 한 학생은 곧 있을 4.13 총선을 앞두고 투표 독려 이야기가 곳곳에서 흘러 나오는데 정말 투표를 하면 세상이 좋아질 수 있는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이 무엇인지,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총선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TV나 페이스북에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많이 합니다. 저는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자꾸 투표만 하라고 하니까 듣기 싫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투표한다고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건가요? 의문이 듭니다.” nbsp nbsp nbsp “우리에게는 투표를 할 자유도 있지만 안 할 자유도 있어요. 투표를 한다고 칭찬할 필요도 없고, 안 한다고 야단칠 필요도 없어요. 그런데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투표를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을 물립니다. 왜 그럴까요? nbsp nbsp 우리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국가권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 국민은 nbsp대리인을 뽑아서 자신의 권한을 그에게 위임하는 거예요. ‘네가 우리를 대신해서 권한을 위임받아 국가 경영을 좀 해라’ 하는 건데, 이것을 ‘대의 정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한 사람한테만 주면 그가 횡포를 부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삼권분립 정신에 입각해서 입법권은 국회, 집행권은 행정부, 사법권은 사법부로 분산시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 5000년 동안 왕이 통치하는 국가에 살아온 습관 때문에, 지금은 법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명시해 놨는데도, 관습적으로 우리가 채용한 직원인 대통령을 왕인 양 착각합니다.nbsp nbsp 대한민국을 회사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주주, 즉 회사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주주 모두가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는 없으니까 주주총회를 개최해서 대표이사를 선출하고, 그 대표이사한테 회사경영을 위임합니다. 만약 그 대표이사가 회사경영을 신통치 않게 하면 다음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바꿔야하지요. 그런데 소액주주들은 주주 총회에 참석해봐야 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니까 주주총회에 빠져버려요. 그러니까 주식을 조금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 마치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주식의 5퍼센트를 가지고 또 회사를 움직이는 거에요. 또 언론을 장악하여 여론을 주도하면 국민들은 거기에 세뇌되어 주권행사를 하니까 결국 나라가 다수 국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움직이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입니다.nbsp nbsp 예를 들어 지난 20년 동안 부산에서 새누리당이 대선이나 총선에서 60퍼센트 득표하고 반대당들이 합해서 40퍼센트를 득표했다면 열 명 중에 6명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네 명이 반대를 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대한 4명의 의사는 지난 20년 간 한 번도 국정에 제대로 반영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걸 사표라고 하는데, 이는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당에서 지명하면 이미 투표하기 전에 당선은 결정된 것이나 같습니다. 북한 선거와 비슷하지요. 다만 얼마나 지지를 많이 받느냐의 차이만 조금 있을 뿐이에요.nbsp nbsp nbsp 이러니까 특히 젊은 사람들이 투표하러 잘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라고 해도 투표율이 60퍼센트에 득표율이 51퍼센트라면 전체 열 명 중에 3명의 지지를 받았을 뿐인 겁니다. 지금까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현 박근혜 대통령까지 득표율과 관계없이 10명 중에 3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은 아무도 없습니다. 총선은 투표율이 그나마 50퍼센트도 안 되는 곳이 많습니다. 투표율 50퍼센트에서 51퍼센트 혹은 52퍼센트 득표했다면 10명 중에 2.5명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됐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모순입니다. nbsp nbsp 이런 모순을 극복하려면, 첫 번째로 사표를 방지하는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독일의 경우 정당투표율이 40퍼센트면 거의 40퍼센트의 의석이 배정됩니다. 그러니까 사표도 거의 없고,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있고, 석패율이라고 해서 애석하게 떨어진 사람은 비례대표에서 구제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에요. 두 번째는 가능하면 투표에 많이 참여해서 국민의 의사를 반영시켜야 합니다. 80퍼센트가 투표해서 50퍼센트 득표했다면, 그래도 10명 중에 4명은 지지했으니까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10명 중에 2명만 지지해서는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하기가 좀 어렵지요.nbsp nbsp 이런 모순 때문에 정치실망, 정치혐오를 하게 되면, 그래서 투표를 안 하게 되면, 소수의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에 의한 지속적 독재, 다시 말해서 민주시스템에 의해서 실질적인 권력독점이 가능하게 됩니다. 지금 열 명 중에 2혹은 3명의 지지만 받으면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직을 갖고 있거나 언론을 장악한 사람이 조직 관리해서 1명, 언론 관리해서 1명, 돈 풀어서 1명을 잡으면 권력이 그들한테 장악되는 거예요.nbsp nbsp nbsp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가 나뉘기도 하지만 연령에 따라서 나뉘기도 합니다. 50대를 기준으로, 50대 미만은 조금 진보적 입장이라면 50대 이상은 보수적인 입장인데, 50대 이상과 미만의 인구수가 거의 같습니다. 옛날엔 젊은이가 많았는데, 요즘은 젊은이가 점점 줄어서 다음 선거에서는 50대 이상이 더 많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대 이상은 투표율이 거의 70퍼센트이고, 70대 이상은 거의 80퍼센트인데, 20대는 30, 40퍼센트도 안 됩니다. 인구 구성도 그런데다 여론조사에서는 의사표시를 하는데 막상 투표는 안 하니까, 여론조사에서 보수가 뒤져도 막상 개표해 보면 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투표 안 하는 건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이 국가에 제대로 반영 nbsp안 되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불평은 많이 하는데 권리행사는 안 하니까 그런 걸 다 계산해서 정책을 고안하는 겁니다. 특정정당이 왜 노인들을 위한 시책을 많이 내놓겠어요? 노인들은 투표를 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을 위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투표를 해야 합니다. 투표를 안 하면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원하는 사회나 국가를 만들 수 없어요.nbsp nbsp 2015년 연말에 군사전문기관에서 발표한 군사비 관련기사 보셨어요? 세계에서 무기수입을 제일 많이 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랍니다. 전 세계 무기거래액이 718억 달러, 즉 80조가 좀 넘는데, 그 중에 한국이 78억 달러, 즉 9조 원 정도 수입해서 1위입니다. 1년 치 무기구입 계약액이 그렇다는 겁니다. 무기 구입 분야에서는 우리가 매년 2, 3위를 해 왔으니까 1위 했다는 게 크게 놀랄 일도 아니겠지요. 그 78억 달러 중에 70억 달러가 미국 제품 구입액입니다.nbsp nbsp 왜 이렇게 됐을까요? 남북이 충돌해서 긴장이 고조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금방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긴장만 고조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무기 구입은 안 해도 되는 겁니다. 그렇게 군사비에 예산을 많이 쓰면 여러분의 복지를 위한 비용, 즉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예산이나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은 후순위로 밀리거나 적게 배정될 수밖에 없겠지요. nbsp nbsp nbsp 돈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개발하는데 24조원이나 써버렸잖아요. 일부 구간만 먼저 개발해 본다든지, 한두 개 강만 먼저 해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개발을 했다면 반값등록금은 실현됐을 겁니다. 인도처럼 가난한 나라에도 대학의 학비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제가 대학에 보냅니다. 학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래도 못 가는 아이들은 그 아이가 벌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에 진학을 못 해서 그렇지, 학비 때문에 못 가는 건 아닙니다. 우리로 치면 학비가 1년에 20만 원도 안 드니까요. 그러니까 반값등록금 실현은 제도의 문제이지, 정부가 가진 돈이 없어서 실현 못 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 거냐는 문제, 즉 재정정책의 문제입니다. 이런 걸 법으로 정할 수도 있고, 행정으로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대통령을 뽑거나 그렇게 할 국회의원을 뽑아야 가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평만 하고 투표를 안 하면 문제는 개선될 nbsp수 없어요. 그래서 투표를 해야 하는 겁니다.nbsp nbsp 그래서 첫 번째는 투표하시라는 겁니다. 그래도 안 할 거예요?”nbsp nbsp “할 거예요.”nbsp nbsp nbsp “두 번째는 ‘누구를 찍어요?’ 하는데 어느 쪽이 나은지를 잘 알 수가 없으면 어느 쪽이 더 나쁠지를 봐서 그 사람을 빼고 찍으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투표하는 데 흥이 안 나는 건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에 손해가 좀 덜 나고, 덜 어지러워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 nbsp 이제 앞으로는 우리가 차선책이라도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합니다. ‘참정권’은 대한민국의 국채와도 관계되기 때문에 우리가 참정권 행사를 안 하면 사회는 점점 전제국가로 가게 됩니다. 헌법에 우리의 이런 권리가 보장되어 있는데 우리가 이 권리를 행사 안해서 나라가 잘못되었을 때 책임이 대통령이나 정치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겠지요. 우리한테 책임이 있습니다. 권리를 줬는데 권리행사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욕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권리행사를 해야 합니다.nbsp nbsp 그래서 투표를 해야 하는데 귀찮다고 기권하면 개선이 안 됩니다. 그러면 항상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 조직을 갖고 있는 사람, 돈을 갖고 있는 사람, 이 세 부류가 국정을 주무르는 겁니다. 민주의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독재 같은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민주화하려면, 재벌의 경제독점을 막아야 하는데 지금 국가권력이 재벌에게 포로로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럼 이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힘, 시민의 힘’입니다. 시민이 선거를 통해서 재벌의 하수인이 아닌 사람을 선출해야 합니다.nbsp nbsp nbsp 그럴 때 여러분들이 사표방지를 해야 합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혹시 정당과 개인을 따로 찍어도 된다는 거 아세요? 예를 들어 내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면 nbsp진보정당을 찍되, 진보정당 후보자를 찍으면 사표밖에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은 차악을 선택해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nbsp “예.” nbsp “사표를 막기 위해서는 정당은 내가 원하는 차선을 찍고, 개인은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투표를 안 하거나, 지지하는 정당대로 개인도 그냥 찍으면 표가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당 지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은 여당이 되는 겁니다.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의 반대가 많았는데도 지금까지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원이 더 많이 당선되었지요. 그러면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자기들이 지지받았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변경하지 않을 겁니다.nbsp nbsp 첫째는 제도의 모순인데, 우리가 그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이 제도를 유지하면 유리한 사람이 안 바꾸려고 하는 겁니다. 이 제도 하에서라도 다수가 참여해서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해서 과반을 막아내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에 표가 왜곡되는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자체를 바꿀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번에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헌법에 불일치하는 선거법이었기 때문에 선거법을 강제로 변경해야 했는데, 여·야 이해관계 때문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구역 몇 개만 조정하는 걸로 끝내버렸지요.nbsp nbsp 여러분 개인의 삶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사회라고 하는 그릇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개인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속에서 개인적인 몸부림, 우리끼리 경쟁하고만 있습니다. 이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갈수록 의식이 부족해지고 있어요. 옛날에는 좋은 의미의 사회변화의 동력은 다 젊은이로부터 나왔는데 지금은 젊은이로부터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nbsp nbsp 현재 젊은이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안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의식이 부족하고 둘째, 투표에 참여를 안 해 버리니까요.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를 살펴보았을 때, 혁명을 일으킬 때인가? 불만이 많지만 혁명을 일으킬 때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이 시스템에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거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투표를 안 하면 변화의 기회가 없어집니다.nbsp nbsp 그런 면에서 대학생 여러분들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연인과 같이 손잡고 투표소에 가서 투표한 뒤에 데이트해도 되잖아요. 안 그러면 투표하는 사람한테 5만 원씩 주고 투표 안 하는 사람들은 5만 원씩 벌금을 내라고 하든지요. 그렇게 투표를 하라고 강제하거나 유혹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자발적으로 하는 게 의미가 있지요.nbsp nbsp nbsp 그러면, 하긴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최선이 있으면 좋고 차선이 있어도 좋은 데, 차선도 없을 땐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하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당과 개인을 나눌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당은 비례대표이니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찍고, 개인은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지혜를 성경에서는 뱀 같은 지혜라 하고, 우리 말로는 영리하다고 합니다. 착하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영리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nbsp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강연을 마치면서 늘 지금의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 nbsp nbsp “공부하는 건 힘든 일이에요? 재미있는 일이에요?” nbsp “힘들어요.”nbsp nbsp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힘들었지요? 그런데 요즘 중8228고등학생 보면 어떤가요? 그래도 nbsp중8228고등학생 때가 좋다, 이런 생각이 들지요. 지금은 대학생이 힘들지만 나중에 취직하고 결혼해서 애 키우며 살 때, 여대생들을 보면 ‘그때가 좋은 때다’ 하는 생각이 들까요?”nbsp nbsp “예.”nbsp nbsp nbsp “왜 그럴까요? 항상 그 당시에는 괴로워 죽겠다고 그래 놓고 지나서는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이유가 뭐예요? 남자들이 군대 다닐 때는 죽겠다고 했으면서 제대하면 ‘내가 군대 있을 때 말이야’하면서 무용담을 얘기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러니까 지금이 좋은 줄을 알아야 합니다.nbsp nbsp 여러분들, 지금 밥만 먹고 공부만 하는 데도 여러분한테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 있어요? 없지요. 이런 시기는 인생에 다시없습니다. 그러니까 공부도 마음껏 하고, 연애도 너무 상대에게 집착을 하지 말고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보세요. 경험입니다. 연습게임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마음을 가지면 젊음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난잡하게 지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집착하지 말고 가볍게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첫사랑이니 뭐니 하면서 너무 목숨 걸지 말라는 거예요. 그럼 정신병 걸리거든요. 그리고 공부가 재미없더라도 자꾸 재미있어 하세요. 이게 맞느니 저게 맞느니 너무 따지지 말고요. 적성은 사회로 나가서 직접 부딪치면서 이것저것 해봐야 찾아지지 학교 안에서 아무리 시간을 끌어봐야 자기한테 맞는 게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걸 해 보면 이게 좋아 보이고, 저것을 해 보면 저게 좋아 보이는 시절이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재수할 필요 없이 빨리빨리 거쳐서 졸업하는 게 좋아요. 더 공부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졸업하고 다시 하면 됩니다. 휴학 1년 하고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여봤자 시간만 낭비됩니다. 대학도 안 가본 스님이 어떻게 아느냐고요?nbsp nbsp nbsp 그렇게 해서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삶을, 직장 다닐 때는 직장 다니는 삶을, 결혼해서는 결혼에 충실한 삶을, 혼자 살 때는 처녀총각의 싱글 생활을 즐기세요. 이렇게 늘 자기 삶을 즐기면 복이 저절로 굴러옵니다. 그래서 화장을 안 해도 얼굴이 환하도록 그렇게 살아야 해요. 감사합니다.” nbsp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대학생들은 큰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nbsp nbspnbsp nbsp 강연을 마치고 나서 몇몇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대학 입학 전 고3 때부터 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보았다는 1학년 여학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문에 대해 마치 당신의 고민인 것처럼 집중해서 대답을 해주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따뜻함과 자상함을 느꼈다”며 스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고, 정토회에 다니는 엄마의 소개로 강연장을 찾았다는 2학년 남학생은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해야 집중이 되고 창조력이 생긴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라고 했고, 같이 온 친구는 “요즘 이런저런 상황에 많이 휘둘리고 살았는데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주체적으로 살아라는 스님의 말씀이 큰 용기를 주었다” 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 nbspnbsp 강연장 입구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한 후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학생정토회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요즘 곳곳에서 피어나는 봄꽃들 만큼이나 대학생들의 모습은 풋풋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습니다.nbsp nbsp ▲ 대학생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nbsp 그리고 오늘 강연은 홍익대학교 제50대 총학생회에서 공동주최를 해주었습니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찾아와 “스님, 강연 잘 들었습니다” 라며 감사 인사를 하자 스님도 악수를 건네며 격려를 해준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 nbsp ▲ 홍익대 총학생회와 함께 기념사진 nbsp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중국 출장을 다녀올 예정이고, 모레는 용성진종조사의 열반일 기념법회에 참석해 기념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02. 53,944 읽음 댓글 33개

2016.3.29 (저녁) 대구 즉문즉설 강연(2) 개인고민편

nbsp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을 이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은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이 있으면 종류와 관계없이 무엇이든 물어보고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살아가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의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물어보시면 됩니다.nbspnbspnbsp여러분의 질문에 제가 정답을 말해야 한다면 이 강연은 ‘즉문즉답’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정답을 말할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할 겁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의문은 저절로 풀리고, 괴로움도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래서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문즉설’입니다.nbspnbsp지식으로 정답 맞추기를 하면 그것은 ‘즉문즉답’이 되고, 번뇌가 사라지도록 하는 대화를 하면 그것은 ‘즉문즉설’ 입니다. 지식적인 것은 제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문즉답’은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알지 못하는 질문을 하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고요.nbspnbsp그런데 ‘설법’은 대화하는 중에 질문자 스스로가 자신의 의문이나 괴로움을 해결하는 거예요. 제가 해결해 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질문만 하고 그냥 앉아버리면 안 됩니다. 질문자와 제가 대화를 해야 하니까 질문자는 마이크를 계속 쥔 상태에서 제가 묻는 것에 대답도 하고, 의문이 안 풀리면 더 묻고, 괴로움이 안 풀리거나 제 얘기에 동의가 안 되면 자기 얘기를 더 해야 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문제가 해결됐을 때 마이크를 놓는 겁니다. 그럼 ‘혼자서 2시간 동안 계속 해도 됩니까?’라고 물으신다면 ‘예, 그래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총 줄까봐 걱정되세요? 자기들 눈만 아프지요 뭐, 상관없어요.” nbspnbsp즉문즉설과 즉문즉답의 차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청중석에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앞서 공천 파동에 대한 대구 시민들의 실망감과 국민 주권에 대해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 외에도 대구 강연에서는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들도 많았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40대 여성분은 얼마 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스님은 질문자의 심리와 여러 가지 주변 조건을 헤아리며 어떻게 하면 질문자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결혼 20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고3, 중2, 초4 아이들이 있고요. 2년 전에 남편의 직장 동료를 통해서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충격에 집을 일주일 정도 나갔습니다. 결국 남편이 저를 찾으러 왔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반성도 없었고, 그냥 친하게 어울리는 동료 사이라고만 그랬어요. 저도 신랑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근무 시간이 이상해서 자꾸 의심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뒷조사를 해보니 내연녀가 있더라고요. 시부모님이랑 같이 사는데 시부모님도 이를 알고 남편을 많이 나무랐고요. 그래서 정리를 하라고 제가 요구했지만, 남편은 가정을 지키겠다든지 이혼을 하고 내연녀에게 가겠다든지 어떤 결정도 안 하고 집에는 계속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nbspnbsp남편은 젊었을 때도 모아놓은 돈이 한푼도 없었고, 아이들과 놀러를 갈 때도 빚을 내어서라도 놀러가자는 타입입니다. 사업을 벌였다 하면 맨날 말아먹고 문제해결능력이 없었어요. 반면 저는 알뜰해서 돈을 한푼 두푼 모으고 나서 놀러가자는 타입이거든요. 내연녀는 가요방 도우미입니다. 저는 알뜰하니까 남편에게 자꾸 아등바등 거렸다면, 내연녀는 남편에게 아주 잘해주니까, 남편은 정리도 안 하고 그냥 지내는 것 같아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입만 꾸욱 쳐닫고 있어요. 아무런 대답을 안 하니까 제가 내연녀를 만나봐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마음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할지, 이혼을 해야 할지 마음이 왔다갔다 합니다. 저는 책임이 없고, 나쁜 짓은 남편이 다 했는데, 막상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서럽습니다.”nbsp“연애 결혼을 했어요? 중매 결혼을 했어요? 강제 결혼을 했어요?”nbsp“연애해서 결혼했습니다.”nbsp“그런데 왜 자기 책임이 하나도 없어요? 허우대 멀쩡한 것만 보고 결혼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지식이 많은 것에 반해서 결혼을 했거나...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 중에 좀 안 맞는 게 있어요. 남편이 사업을 해서 말아먹기를 몇 번이나 했다고 하는데 돈이 없으면서 어떻게 몇 번이나 말아먹을 수가 있어요?”nbspnbsp“재정 지원은 제가 다 해주었죠. 말아먹으면 또 대어주고, 말아먹으면 또 대어주고 그랬죠.”nbsp“그러면 여자도 헤어지면 또 붙여주고, 헤어지면 또 붙여주고 그렇게 하면 되죠, 뭐. 왜 돈은 자꾸 대주면서 여자는 안 대줘요? 여자를 대주는 것은 돈도 안 들잖아요. 그런데 알아서 구했으니 사업 망했을 때보다는 낫네요. 도대체 스님이 무슨 소리를 하나 어기가 다 막히죠?nbspnbspnbsp질문자는 이 일이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들어보니까 ‘별 일 아니네’ 싶거든요. 저는 남편의 심리가 금방 이해가 돼요. 부모로부터 늘 칭찬 못 받고 맨날 구박 받고, 부인한테도 기죽고, 돈도 부인이 벌지, 뒤도 부인이 봐주지, 살림도 악착같이 살아주지, 그러니 남편은 허수아비처럼 옆에 붙어서 살 뿐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단란주점이나 가요방 같은 곳에 가면 거기 여성들은 돈을 벌어야 되니까 아주 친절하게 대해줄 것 아닙니까. 왕으로 모셔준다 말입니다. 남편은 지금껏 하인으로 살았는데 거기에 가면 왕으로 살 수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자꾸 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정이 들었던 겁니다. 그 여성은 남편을 멀리서 보니까 연애하듯이 멋있게 바라봐주는 반면 같이 사는 질문자는 남편을 속속들이 알아서 늘 멸시하고 구박하니까 남편 입장에서는 그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마누라가 뭐라 뭐라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너는 싫고 이 여자가 좋다’ 하면서 이혼을 하자는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그러다보니까 지금 양다리가 걸쳐져 있는 거에요. 이쪽을 그만두려니 가정이 문제고, 저쪽을 그만두려니 인생이 재미가 없고, 그러니 ‘재미도 좀 보고, 가정도 지키자’ 이렇게 나오는 게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되거든요.”nbsp“얼마 전에 간통죄도 없어졌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가정을 지킬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제 앞에서는 그 여자 만나고 온 티는 안 내야죠.”nbsp“그런데 질문자가 이 문제를 저한테 물었을 때는 아무리 남편과 물고 차고 싸워도 해결이 안 되니까 지금 저한테 묻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현실이란 말이에요. 여기서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겠어요?nbspnbsp첫째, 이혼하는 길이 있습니다.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좋으면 그 여자하고 살아라. 나는 양다리 걸치는 것은 싫다’ 이렇게 말하고 이혼을 하면 됩니다. 그럼 이혼을 했을 때는 어떻게 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선 시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하고 집을 나와야겠죠.“nbsp“그런데 저희 동네가 재개발이 되기 때문에 어차피 따로 나가서 살기로 했거든요. 시어른들도 남편이 저러는 것을 보기 싫어 하시거든요. 그런데 재개발 될 때까지 아직 1년이나 더 기다려야 해서 너무 길게 느껴져요.”nbsp“어쨌든 집을 나와서 방을 하나 얻어 살게 되면 남편이 주는 돈은 못 받잖아요. 남편이 한 달에 얼마 벌어 줬어요?”nbsp“한 200은 벌어서 줬죠”nbsp“그러니 첫째, 200이 없어져요. 둘째, 아이들은 아빠가 필요하다고 해요?”nbsp“필요하다고 하죠.”nbsp“만약 이혼을 한다면 아이들을 다 아빠에게 주고 올 거예요? 질문자가 다 데리고 올 거예요?”nbsp“제가 데리고 살 겁니다.”nbsp“그래도 아빠이니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권리는 줘야겠죠. 그 다음에 질문자는 남자 없이 앞으로 계속 살 수 있어요? 그래도 남자가 좀 필요하긴 해요?”nbsp“아직 남자가 필요하긴 하죠.”nbspnbsp“그런데 아이들 셋이 있는 여자가 지금 재혼을 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기가 좀 힘들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재혼을 못 하니까 대신에 남자친구를 하나 둬야 하잖아요. 아이들 셋을 키우면서 남자친구를 사귀려고 할 때, 아이도 없고 부인도 없고 경제 형편도 어느 정도 되는 남자친구를 쉽게 구할 수 있을까요?”nbsp“그런 남자는 드물죠.”nbsp“그러면 질문자가 남자친구를 하나 사귀려면 경제적 형편도 되면서 혼자 사는 남자를 사귀기는 어려워요. 결국 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귀기가 쉽단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결국은 자기가 문제 삼았던 그 여자분과 같은 위치가 될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보는 데서 그런 생활을 하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또 그 남자의 부인이 쳐들어와서 멱살잡히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 또한 창피한 일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젊은 나이에 수녀도 아니고 비구니도 아닌데 독수공방 하고 지내기도 좀 어렵잖아요. 초등학교 아이가 스무 살 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하잖아요? 앞으로 10년을 혼자서 살아야 한다고 한 번 생각해 봐요. 이혼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날 권리는 있는데, 아이들 셋이나 있는 조건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주위 환경적으로 쉽지 않다는 겁니다.nbspnbsp그렇다면 그렇게 이혼을 하고 혼자서 살게 되었을 때, 남자친구를 가끔 만나도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가 안 되고, 아이들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주위에서도 전혀 문제가 안 되고, 거기다가 돈까지 한달에 200만원씩 주는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면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그게 누구일까요?” nbspnbspnbsp“그런데 지금도 벌써 각방을 쓰고 있거든요.”nbsp“이혼을 안 했다고 생각하면 바람을 피운 남자가 되는데,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자기의 애인이 되잖아요. 어차피 이혼을 하게 되면 남자친구가 필요한데, 그 남자친구가 부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주 못 만나고 가끔 만날 수만 있잖아요. 그게 나아요? 나하고 늘 살다가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자친구가 나아요?”nbsp“......” nbspnbsp“제 말이 이해가 잘 안 되죠? 만약 이혼하고 혼자 산다고 할 때 나이로 봐서 아직 남자친구가 가끔 필요해서 사귄다면 아이들 때문에 재혼을 할 수는 없으니 그럼 그 남자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여자와 29일을 살고 하루 정도만 나하고 지낼 수 있는 남자일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남편은 나하고 대부분 같이 살고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잖아요. 다른 여자와 대부분 같이 살면서 나하고 가끔 만나는 남자가 나아요? 주로 나하고 같이 살고 가끔 다른 여자와 사는 남자가 나아요? 저는 지금 윤리 도덕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리를 취할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이 남자친구는 만나도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아이들도 그 남자친구에 대해서 ‘아빠’라고 부르면서 다들 좋아하고 특별히 문제도 안 삼아요. 거기다가 제비를 한 마리 키우려면 돈이 좀 드는데 이 남자친구는 돈도 한달에 200만 원씩 준단 말입니다. 이혼했다고 치고 남편을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남자친구에 속한다는 겁니다. 이혼을 해놓고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남자친구가 되는데,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나쁜 놈이 된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해결책은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남자친구로 삼는 겁니다. 그러면 분이 좀 풀릴 거예요. 이제 내 사람이 아니니까. 지금 질문자가 남편을 설득했지만 남편이 말을 안 듣잖아요. 더 이상 말을 안 들으면 이제 마지막 길은 이혼하는 한 가지 길 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혼을 했다고 치자 이 말입니다. 이혼을 했다고 치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만한 남자 친구가 없지 않느냐 이 얘기입니다. 어떤 남자친구를 구해도 다 문제가 있는데 이 남자친구는 아이들 한테도 별 문제가 없고, 그동안 관계 맺어 온 시어머니와도 별 문제가 안 되잖아요. 만약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은 나중에 크면 시댁으로 갈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질문자는 늙어서 갈 곳이 없어져요. 그런데 이 남자친구는 그런 문제도 해결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질문자가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nbspnbsp저 같으면 ‘남자 없이 살아도 좋고 죽을 끓여 먹고 살아도 좋으니 양다리 걸치는 인간 하고는 못 산다’ 이렇게 말하고 단호하게 끝을 냈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그럴 정도의 각오는 없는 것 같은데요. 또 그렇게 이혼을 해놓고 보면 실리적으로도 굉장히 손실이 있단 말입니다. 질문자는 알뜰 주부라고 그랬는데, 알뜰하다면 실리에 밝을 것 아니에요? 저는 손해가 나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호하게 끝을 내는 타입인데, 질문자는 굉장히 실리를 따지는 타입이라고 하면서도 왜 이 문제에서만은 감정적으로 접근해요?”nbsp“저는 지금 실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법적인 이혼을 안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만약 법적으로 이혼을 하게 되면 아파트 분양권 가점이 사라지거든요.”nbspnbspnbsp“그러니 이혼을 하면 실익도 잃어버리게 되고, 또 어차피 남자친구도 하나 사귀어야 하는데, 법적으로 이혼을 해서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는 게 낫겠어요? 지금 남편을 그냥 남자친구로 놓아두면, 실익도 있고 가끔 성질이 나면 이 문제로 들고 일어나서 남편을 혼줄 낼 수 있잖아요. 왜냐하면 질문자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새로 남자친구를 사귀면 큰소리 치지도 못 하고 자기가 싹싹 빌어야 할지 몰라요.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는 지금 남편의 약점을 딱 잡고 있기 때문에 이걸 갖고 계속 우려 먹으면서 사는 게 나을 것 같거든요. 남편이 잘했다는 뜻이 아니라 실익을 추구한다면 그냥 놓아두는 것이 제일 나을 것 같다는 겁니다. 기분이 좀 안 좋긴 하겠지만요.”nbsp“그런데 남편이 문제해결능력이 없거든요. 제가 그 여자한테 찾아가서 한바탕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nbspnbsp“얼마 전에 간통죄 폐지된 거 몰라요? 이제 그건 죄가 안 돼요.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뭐라고 하려고요? 오히려 질문자가 그 여자한테 사정을 해야 할걸요. ‘당신 사정은 알겠는데 내 사정도 생각해서 우리 남편 좀 돌려줘’ 이렇게요. 간통죄가 있을 때는 자기가 갑이었는데, 지금 법으로는 형사적으로 그 여자를 처벌할 수가 없어요. 대신 이혼의 사유가 되거나 이혼할 때 남편이 불이익을 받을 사유는 되겠지만요. 그러니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될지언정 법률적으로 처벌하지는 못하는 인간의 행위인 겁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이혼은 할 수 있지만 그 여자한테 찾아가서 따질 수 있는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nbsp“그 여자는 남편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잖아요. 그걸 알려주려고요.”nbsp“그 여자가 남편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니까 내가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하려면 덤태기를 쓰도록 그냥 놓아두어아지 그걸 미리 알려주면 어떡해요? 그 귀한 정보를 왜 얄미운 여자한테 알려주려고 해요?”nbspnbspnbsp“그런데 남편은 애인으로 삼기에는 좋은 남자이긴 해요.”nbsp“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계속 질문자가 이혼을 해서 애인으로 삼으라고 하잖아요.”nbsp“저도 아파트 분양받을 때 가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니까요. 또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남편과 같이 살아야 하고요.” nbspnbsp“그래서 제가 말하잖아요. 애인으로만 삼으면 좋은 남자이니까 이혼을 하고 애인으로 삼아라. 그런데 법적으로 이혼하고 애인으로 삼으면 실리를 잃으니까 실리도 생각한다면 그냥 놓아두는 것이 제일 낫지 않느냐. 질문자는 이혼을 하면 후회를 할 것 같거든요. 어차피 이혼을 하더라도 다시 이 남자와 애인을 맺어야 하잖아요. 이혼을 하고 이 남자와 애인을 맺으면 이 남자는 괜찮은 남자잖아요. 그런데 이혼을 하면 아파트 분양 가산점이며 아이들 문제며 손실이 많잖아요.nbspnbsp그러니 방법은 오늘 이 자리에서 속으로는 이혼을 해버려요. 이혼을 해버리고 다시 이 남자를 애인으로 받아들이세요. 법적으로는 그대로 놓아두고 마음에서는 딱 정리를 해버리고 애인으로만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애인으로서는 이 남자가 괜찮잖아요. 또 법적인 이혼을 안 하면 실리도 그대로 챙길 수 있잖아요. 이렇게 하는 것을 ‘영리하다’고 말하는 거예요.”nbspnbsp“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요?”nbsp“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없어요. 화가 나는데 억지로 참는 것은 고행에 속해요. 지혜라는 것은 뭐냐. 이 남자와는 오늘부로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남자가 하나 필요하니까 애인을 찾아보는 겁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별 문제가 없는지 여러 가지 고려해보니까 이 남자가 무난한 겁니다. 그래서 다시 이 남자를 애인으로 선택하는 겁니다.nbsp물론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집착을 놓기가 어려운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집착을 놓으라는 말까지는 하고 싶지가 않아요. 대신 실리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이런 인간하고는 살고 싶지 않다면 이혼을 하라는 겁니다. 계속 이혼을 안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자, 지금부터 이혼을 했어요?nbspnbsp오늘 이혼을 했으니까 이제 남편은 남입니다. 그렇지만 실리적으로 살아야 하니까 서류상으로는 결혼한 걸로 꾸며 놓아야 해요. 아파트 분양 받을 때 가산점을 얻으려면요. 또 아이들에게는 아빠 역할을 하게 해주고요. 그렇지만 남편은 아니고 애인이니까 매일 만날 수는 없고 가끔 만나면 되고요. 가끔 집에 와주면 되는데 자주 와주니까 고마운 일이고요. 애인은 내 돈 들여서 같이 지내야 하는데 이 애인은 돈까지 매월 가져다 주니까 더 고마운 일이고요. 이렇게 고맙다고 생각을 하세요. ‘남편이다’ 생각하면 나쁜 놈이 맞아요. 그런데 ‘애인이다’ 생각하면 괜찮은 사람이에요.nbspnbsp그리고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그때 이혼해 버리면 됩니다. 남편이 퇴직하면 퇴직금도 내가 받아서 챙겨놓은 다음에 나 빼고는 어떤 여자도 챙겨주려고 하지 않을 때 사정없이 발로 차버려요. 그러면 남편이 오도갈데도 없어져요. 복수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죠. 지금 차버리면 주워갈 여자가 나타난다니까요. 지금 상대편 여자는 질문자가 제발 차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몰라요.nbspnbsp저 같으면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좀 싫더라도 그냥 놓아 둘 것 같아요. 그래야 가끔 그 문제를 약점 삼아서 찌르기도 하면서 살죠.”nbsp“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300배 하면서 다리가 아파야 제 이야기를 들을려고 그래요?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질문자는 이혼을 안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남편을 위해서 이혼을 안 하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안 하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이혼을 안 하고 남편을 데리고 사는데 남편을 밉다고 생각하면 누가 괴로워요? 내가 괴로워요. 어차피 같이 살 바에야 남편을 밉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손해이니까 남편을 좋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나한테 좋다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현실에서는 남편이 밉죠. 밉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하지는 못할 형편이니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한다면 ‘아이고, 여보. 제가 당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얼마나 나한테 위로를 못 받았으면 그 여자한테 가서 그러겠습니까.’ 이렇게 참회 기도를 해보라는 겁니다. 그러나 꼬라지만 보면 또 성질이 나겠죠. 그러니 자꾸 참회 기도를 하다보면 남편에 대해서 이해하는 마음을 내게 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게 되면 내가 편안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되니까 하루 300배씩 절을 하라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굳이 300배를 하지 않더라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방법이 있어요. 실리도 챙겨야 하고 명분도 챙겨야 하니 오늘부터 속으로 이혼을 해버리고 ‘남이다’ 생각하고 애인으로 삼으면 괜찮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을 좀 바꿔보세요. 정 생각이 안 바꿔지면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오늘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 절을 하면서 ‘너는 남이다’ 이렇게 기도하세요.nbspnbsp‘너는 남이다’, ‘너는 남이다’, ‘너는 남이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남이 매달 200만원씩 가져다 주니까 좋지요? 남이 아이들을 위해서 아빠 역할을 해주니 얼마나 좋아요? 남이 가끔 와서 잠자리도 같이 해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에 대해서 남이라고 생각하고 정을 탁 끊어야 해요.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내 것을 빼앗겼다’ 라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는 건데 ‘너는 남이다’라고 생각하면 점점 분이 없어질 거예요.”nbsp“네, 그렇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nbsp긴 시간 문답이 이뤄졌습니다. 질문자는 마침내 스님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스님 말씀대로 기도를 해보기로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지만 처음 질문할 때 보다는 많이 편안해진 얼굴이었습니다. 질문하신 여성분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졌기를, 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총 6명이 질문을 했는데,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고 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앞서 질문한 분의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덧붙였습니다.nbspnbsp“오늘 질문한 분과의 대화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첫째, 이 부부 간의 집착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죠. 딱 부부만 있으면 집착을 끊을 수 있을텐데, 자식도 생각해야 되고, 이런저런 고려를 하다보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런 처지에 놓인 분에게 제가 ‘그렇다면 이혼해라.’ 이렇게 말해준다고 이 분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안 돼요. 왜냐하면 이분은 지금 이혼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질문자는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너는 남이다’ 이렇게요. 계속 독송을 하세요. ‘너는 남이다, 너는 남이다, ‘너는 남이다...’nbspnbsp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진짜 딱 남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분노가 다 녹아나게 돼요. 내 남편이면 죽일 놈이지만 남이라고 보면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겁니다. 지금 남이라고 여겨지지가 않아서 계속 힘든 겁니다.nbsp오늘 질문자 중에는 부부갈등 때문에 괴로운 분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는 분들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그게 괴로울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꼭 괴로워할 일이냐?’ 하는 생각도 들지요?”nbsp“예.”nbsp“그런데 우리는 그 괴로운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웃었지요? 남 괴로운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었을까요? 인생을 뒤집어보면 꼭 그게 괴로울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화된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면 여러분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nbspnbspnbsp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홍익대학교 홍문관 가람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01. 268,110 읽음 댓글 61개

2016.3.29 (저녁) 대구 즉문즉설 강연(1) 사회문제편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있었던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수성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nbspnbsp수성대학교 교정은 벌써부터 벚꽃이 활짝 피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개나리꽃이 봄소식을 전해주더니 대구에서는 벚꽃이 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강연을 하러 전국을 다니다보면 자연의 변화를 가장 빨리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nbspnbsp▲ 대구 수성대 교정에 핀 벚꽃nbsp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강연장을 찾은 800여 명의 대구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성대학교 대강당은 발디딜 틈 없이 붐볐습니다.nbspnbsp▲ 수성대 성요셉관 대강당nbsp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식으로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사라지도록 하는 대화를 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후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자nbsp청중석에서는 번쩍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총 5명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중년의 여성 분은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이혼이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고, 젊은 여성 분은 결혼 4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안 생겨서 시어머니는 시험관 아이라도 가지라고 해서 억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물었고, 젊은 청년은 회사에 불이 나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계속 불안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직장인 여성 분은 회사에서 자기 이익만 챙겨먹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희생 당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데 이것이 피해의식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개인들의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때론 아주 재미있게 때론 아주 날카롭게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최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공천 갈등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투표를 해야할지조차 고민이 된다는 한 시민의 걱정스런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대구 시민들의 민심이 어떠한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며 모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현실을 진단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보름 후면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투표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천과정을 보니까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 ‘투표를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일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어요.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무슨 신하를 뽑듯이 공천심사를 하는 걸 보니까 제가 정치에 대해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아닌데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투표권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스님께서 시기적절하게 대구에 오셨으니 답답한 마음을 꺼냅니다.nbsp제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정치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또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nbsp“질문자는 지금 우리 정치권이 ‘해도해도 너무 한다’ 라고 했는데,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아요? 아무리 이렇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살래? 북한으로 갈래?’ 그러면 질문자는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nbspnbspnbsp“대한민국에서 삽니다.”nbspnbsp“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대한민국이 나아요. 서로 욕하면서 닮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세요.nbsp대한민국에는 진보적인 사람도 살고, 보수적인 사람도 살고, 경상도 사람도 살고, 전라도 사람도 삽니다. 또 기독교인도 살고, 불교인도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도 살고, 친일파 후손도 살고, 민족주의자도 살고, 친미주의자도 삽니다. 이렇게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는 덜 복잡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한 나라 안에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이 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나라는 더 복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종과 민족은 같잖아요.nbspnbsp물론 앞으로 30년 혹은 4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현재 결혼이나 노동을 이유로 우리 나라에 이주해 온 외국인 중에서 귀화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는 100만 명이 넘는데, 30년 안에 그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 그러니까 5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최소치가 그렇습니다.nbspnbsp그저께 제가 외국인노동자들과 법주사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한국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3만 명이래요. 태국 사람은 6만 명, 베트남 사람은 10만 명이 산답니다. 어느 나라 외국인이 제일 많이 사느냐고 물어봤더니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30만 명 정도 산다고 해요. 지금 한국에는 19개국의 노동자가 사는데, 스리랑카는 그 중 작은 그룹에 속한다고 해요.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시민권 받듯이 외국인 노동자도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요.nbspnbspnbsp그러면 이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여러 가지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바로 헌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 앞에서 평등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부정하면 우리 사회는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제와 공화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왕이 주인인 나라가 있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있는데, 왕이 주인인 나라가 군주제,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바로 공화제입니다.nbspnbsp예를 들어 현재 태국은 국가의 주권자가 왕입니다. 우리 조선시대가 그랬지요. 이런 나라를 제국이라고 합니다. ‘대한제국’, ‘일본제국’ 이라고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왕이 주인일 때 백성은 신민, 즉 왕의 신하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국민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는 ‘전제국가’라고 하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대리인을 자유롭게 선발하는 국가는 ‘민주국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nbspnbspnbsp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이건 우리가 다 동의한 바예요. 그런데 지난 5000년 동안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던 오랜 역사가 있다보니까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법적으로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데, 관습적으로는 우리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라고 뽑아놓은 일꾼인 대통령을 우리는 자꾸 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모순입니다.nbspnbsp회사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주주예요. 모든 주주가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 주주총회를 열고 우리는 그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경영실적 같은 걸 보고 CEO나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겁니다. 그게 선거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도 뽑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도 뽑아서 구성하는 겁니다. 지방 정부를 구성하는 지방선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에요.nbspnbsp그런데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잡음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더 시끄러웠던 것 같아요. 이러한 공천 파동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게 북한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북한에서도 선거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 하듯 북한도 선거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딱 한 명만 당에서 추천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성구 갑 아무개’, ‘수성구 을 아무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그 한 명에 대한 찬반투표만 하는 식인데 보통 찬성이 99퍼센트 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말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실상 모든 권력은 당에 있습니다. 당에서 지명을 하면 형식적으로 투표의 절차만 거치는 것일 뿐 이미 당에서 지명된 사람이 당선되리라는 건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대구의 경우도 보세요. 모든 권력이 대구시민, 즉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당에 있잖아요. 대구시민 여러분은 최근 20년 동안 당에서 정한 후보를 바꿔본 적 있습니까?”nbspnbsp“없습니다.”nbspnbsp“대구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이 아닌 사람이 당선된 적 있습니까?”nbspnbsp“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제가 볼 땐 북한하고 비슷하다는 거예요. 99 찬성이냐, 80 혹은 70 찬성이냐 하는 차이는 좀 있겠지만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당선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당에서 지명된 사람들은 당선이 떼놓은 당상이니까 국민들을 보면서 ‘선출해 주십시오’ 하지 않고, 당을 보면서 ‘지명해 주십시오’ 하겠지요. 후보들은 형식적으로만 국민에게 굽실거리지 국민들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운동다운 선거운동을 해 본 적도 없어요. 그냥 요란하게 다닐 뿐입니다.nbsp그런데 그 사람을 지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당에서 그런 무리한 지명을 할까요? 그러니 공천 파동은 당에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반성할 일이지, 자꾸 대통령이나 당만 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이 빚어진 겁니다.nbspnbsp그런데 경상도만 그런 건 아니고, 전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라도도 민주당 깃발만 꽂아놓으면 당선됐잖습니까. 거기도 형식적 투표를 했어요.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후보로 나가면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던 것처럼 경상도에서도 민주당이나 노동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인물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었어요. 그런데 재작년 보궐선거 당시 전라도에서 먼저 ‘이건 아니다’ 해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주었잖아요. 벌써 몇 년 전부터 전라도 사람들은 변화했습니다. 민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바로 새누리당으로는 바꾸지 못 하겠으니 무소속을 많이 뽑아줬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는 자치단체장의 3분의 1이 무소속이에요.nbspnbsp지금 경상도는 전라도보다 대략 4년 정도 늦었지만 이번에 여러분도 투표권을 조금 회복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잘하면 이번에는 여러분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즉 당의 지명을 못 받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당이 지명한 사람이 괜찮으면 그 사람을 찍으세요.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지요. 그런데 지명한다고 무조건 찍어주는 것도 안 됩니다. 그건 참정권을 포기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결국 여러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nbsp전라도는 몇 년 전부터 무소속에게도 표를 줬는데, 이번엔 아예 새로운 정당 하나가 생겼어요. 신당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은 없지만 전라도 안에서는 기존 정당과 비교해보면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총 28석 중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걸 부정적으로 말하면 분열이라고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드디어 결정권이 국민한테 돌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nbspnbsp그래서 지금의 대구 상황을 나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는 사람이니까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참 잘 됐다 싶습니다. 결정권이 우리 손, 국민의 손에 들어왔으니까 드디어 우리가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래서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예전보다 훨씬 절을 잘 할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이번 공천파동은 어쩌면 좋은 현상입니다. 만약 이번에 당에서 지명한 사람 중에 몇 사람이라도 당선이 안 된다면 다음부터는 공천에 더 신중을 기하겠지요. 그러니 공천파동이 기분 나쁘다고 투표를 안 하면 거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기분 나빠서 투표 안 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만 말뚝 보고 찍으러 투표장에 가면 결국 누군가의 의도대로 되겠지요.nbspnbsp지역주의가 활개를 칠 땐 우리가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 참정권을 잃어버렸지만, 이제 몇 십 년 만에 우리가 직접 대표를 선출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아서 표를 줘야겠지요.nbspnbsp투표 할 때는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최선입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조금 낫더라’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차선이지요. ‘둘 다 꼴 보기 싫다. 뽑아줄 사람이 없다’ 싶으면 주로 기권을 하겠지요. 그런데 ‘둘 다 문제지만 어느 게 더 문제냐’ 하는 걸 찾아야 해요.nbspnbsp그래서 가장 문제인 사람이 최악, 그래도 좀 덜 문제인 사람이 차악입니다. 즉 후보자들 중에서는 최선, 차선, 차악, 최악, 이렇게 네 종류가 있을 수 있는데, 질문자가 봤을 때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겠지요.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찍지 말라고 해도 본인은 가서 찍을 거예요. 그리고 차선만 있어도 어지간하면 찍으러 갑니다. 그런데 차악과 최악밖에 없을 때는 주로 기권을 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때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이 조건에서는 최선입니다.nbspnbsp이걸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손절매’ 라고 합니다. 내가 10,000원 주고 주식을 샀는데, 20,000원 됐다면 배를 버니까 이때 팔면 최선입니다. 그런데 겨우 2,000원 밖에 안 올랐다면 섭섭하지만 손해 본 건 아니니까 이때 팔면 차선이에요. 그런데 10,000원 주고 샀는데 8,000원으로 떨어지면 손해지요. 그런데 조금 더 놔두면 5,000원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8,000원에라도 파는 게 이익입니다. 이걸 손절매라고 합니다. 이렇게 손해를 보고도 팔 줄 알아야 주식투자를 잘할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 포기하면 안 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차악을 선택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 형편이 안 되는 중에라도 좀 덜 안 됩니다. 많이 안 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조금 덜 손해 본다는 겁니다. nbspnbsp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는 무조건 깃발만 보고 찍었는데, ‘깃발은 안 보겠다’ 하는데 동의가 되면 이제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경상도 사람은 의리를 좋아하잖아요. 저도 의리 좋아합니다. 그런데 같은 ‘의리’라 하더라도 정의로운 의리가 있고, 깡패 의리가 있습니다. 깡패 의리는 세상을 더 어지럽게 합니다. 의리라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정치적인 의리를 지킨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위한 의리인가? 국민을 위한 의리인가? 당을 위한 의리인가? 당파, 계파를 위한 의리인가? 개인을 위한 의리인가?’ 이런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저의 바람은 우리 경상도도 이제는 ’몰빵‘하지 말고, 좀 다양한 사람들이 당선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어요.”nbsp“차악을 한번 잘 찾아보겠습니다.”nbspnbsp“물론 가슴이 아프죠. 이번에 저는 국회의원의 목숨이 저렇게 파리목숨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라는 건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는 줄 알았더니 2선, 3선까지 해서 제법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아침에 공천에서 떨어져 있어요.nbspnbsp그래서 권력은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권력이야말로 무상한 거예요.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가 되면 그분들도 후회를 할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루도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데 2년이 남았다면 굉장히 길다고도 볼 수 있겠죠. 또 여러분들도 만약 권력을 잡으면 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미워한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nbspnbspnbsp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공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투표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개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대구는 국민 투표권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된 것 같아요. 국민들이 좀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nbsp“네.”nbspnbsp차악을 찾아보겠다는 우렁찬 대답에 스님도 활짝 웃고, 청중들도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은 대구 시민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서 약속한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끝내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여성 분의 하소연이 계속 이어져서 강연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청중들은 모든 질문과 답변이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시 한번 대구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전투구에 급급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대구 시민 여러분, 오늘 즐거웠어요?”nbsp“예.”nbspnbsp“오늘 질문자 중에는 부부갈등 때문에 괴로운 분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그게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꼭 괴로워할 일이냐’ 하는 생각도 들지요?”nbsp“예.”nbspnbspnbsp“우리는 그 괴로운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웃었지요? 남이 괴로운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었을까요. 인생을 뒤집어보면 그게 꼭 울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지난 두 달 동안 공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남북 갈등이 깊어지면서 전쟁 위기도 맞았는데, 보통 여야가 서로 정쟁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통합을 하잖습니까. 통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한테 법안 같은 걸 좀 양보해야 통합이 가능하잖아요. 또 여당이 공천할 때도 친박이 비박의 요구를 조금 받아주면 통합이 되겠지요. 정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통합을 해야죠. 말은 위기라고 하면서 양보도 안 하고 고집만 부리면서 왜 분열을 더 가중시키는 것일까요?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은 남북 간 갈등, 여야 간 갈등, 여당 안의 갈등, 야당 안의 갈등으로 사분오열됐습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책임이 있습니다.nbspnbsp대통령께서 후보시절 선거공약 중에 ‘국민 대통합’이라는 공약이 있었던 거 아세요? 그래서 당선되신 후에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들어서 위원장도 임명했잖아요.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국민통합이 아니라 국민 분열이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대통령께서 진실 되게 오직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셨지만, 국민통합을 위한 각계각층과의 소통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nbspnbsp그러면 잘못만 했다는 거냐고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민들에게는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잖아요. 이게 전화위복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나쁨 속에 새로움이 있으니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기회, 국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에는 아무리 야당을 찍어봐야 당선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당선될 수도 있겠지요. 또 비박도 찍어볼 수 있겠지요. 또 사람이 괜찮으면 친박도 찍을 수 있고요. 이런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게 좋은 거예요.nbsp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좋은 점을 찾아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면 여러분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청중들은 환한 웃음과 박수로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을 알고, 정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도록 행동하는 시민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nbspnbsp강연장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오랜 시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대구 시민들은 스님의 사인을 받고선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구정토회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희망 강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는 힘찬 기운과 활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대구 정토법당에 잠시 들렀다가 밤 11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리면 새벽 3시 쯤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합니다.nbspnbsp스님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눈을 붙인 후 내일 아침 7시부터 하루종일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미팅을 연이어 갖고, 저녁 7시에는 홍익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lt스님의 하루gt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31. 75,369 읽음 댓글 62개

2016.3.29 (오전)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서초구 구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고, 차를 타고 이동해 저녁에는 대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있었던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6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쉴 겨를도 없이 원고 교정을 보다가 9시 30분이 되어 강연이 열리는 양재동 더케이아트홀로 향했습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사롭더니 우면산과 양재천에는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어 봄날씨를 듬뿍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양재천에 핀 개나리꽃nbsp강연이 열리는 더케이아트홀 앞에도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강연장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듯 했습니다.nbspnbsp▲ 강연장 앞에 핀 산수유꽃nbsp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라서자 자리를 가득 메운 900여 명의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으로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 양재 더케이아트홀nbsp스님은 봄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봄에는 땅의 기운을 좀 받으며 지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따뜻한 봄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어제 경주 남산에 갔었는데 진달래가 활짝 피었더라고요. 예전보다 1주일 내지 10일은 빨리 봄이 온 것 같아요 여러분은 봄이 빨리 온 것이 느껴집니까?nbspnbspnbsp매일 건물 속에 사니까. 요즘 같은 봄철에는 가능한 밖에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생명체가 대지를 뚫고 새싹이 돋을 때 그때 기가 아주 많이 솟아납니다. 이런 봄날에 새로 솟아오르는 나물은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해요. 그런 기운을 받으시면 여러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도 아주 좋습니다. 이런 봄날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심는 것은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 일이라고 고달프게 여기면 괴로움이 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좋은 기운이라 생각하면 큰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니 건물이나 집에만 있지 마시고 우면산이라도 산책을 하세요. 스님같이 그렇게 한가해야 그런 시간을 갖지 우리는 바쁜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바빠요 저도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자꾸 내서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겁니다.”nbspnbsp이어서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부터 처음 도입된 제비뽑기 방식으로 강연이 이뤄졌습니다. 청중들은 미리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지를 적어 내었고, 스님이 질문지를 뽑으면 해당 질문자가 일어나서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개인 고민은 녹색 종이에, 사회 문제는 보라색 종이에 적도록 되어 있었는데 보라색 종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직 일반 청중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 고민이 더 다급한 것 같습니다.nbspnbsp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젊은 여성 한 분은 친구들이 나만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고, 폭력을 자주 행사하는 남편 때문에 딸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서 산다고 하는 여성 분은 딸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아빠를 만나게 해줘야 하는지 질문했고, 혈우병과 또 한 가지 희귀병을 같이 앓고 있는 남성 분은 아내가 병간호를 힘들어 하며 이혼하기를 원하는데 이혼을 해야할지 말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한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이 자꾸 비싼 사교육을 시켜달라고 해서 고민이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한 청년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상처 때문에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도 집착이 생겨 걱정된다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질문했고, 한 여성분은 싱글맘일 때는 열심히 직장을 다녔는데 재혼을 하고 나서 집에 있으니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고, 마지막으로는 마흔살 여성분은 사귀고 있는 남자가 이혼남인데 거짓말을 자꾸하고 전 부인을 못 잊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소심한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을 한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결혼한 지 11년 되었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많이 여리고 소심하고, 제가 무슨 질문을 하거나 걱정하는 말만 해도 순간적으로 짜증내고 잘 삐집니다. 제 말투가 부드럽지 않고 비꼬는 말투라고 하면서 화를 내거나 쓸데없는 소리라며 제가 하는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해요. 자기는 완벽하게 잘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걱정을 하고 지적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대화의 시도인데 남편은 이해를 못하고 화를 내니까 제가 아예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화내는 건 남편의 사정이고 묻고 싶은 건 내 사정이니까 화를 내든지 말든지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자꾸 하세요. 어려울 게 없어요. 결국은 질문자도 삐지는 거 아니에요? 결국 질문자도 소심한 겁니다. 남편이 화를 내니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걸 소심하다고 그래요. 화 내는 건 너의 사정이고 나는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버리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남자가 돼서 소심하게 자꾸 화를 내니까 그렇죠.”nbsp“여기에 ‘남자’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건 남녀차별입니다. 남자도 소심할 권리가 있는데, 남자는 소심하면 안 되고 여자는 소심해도 됩니까? 왜 좋은 것만 다 여자가 누리려고 그래요. 무거운 짐 들 때는 ‘남자가 그것도 못 드냐’ 그러고,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남자가 무슨 먹는 것을 밝히냐’ 그러는데, 가만히 보면 심보가 못됐어요. 남자도 소심할 수 있어요. 왜 여자만 소심해야 돼요? 여자도 대범할 수 있고, 남자도 소심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소심한 것은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격이 좀 소심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남편이 짜증내는 것을 보면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nbsp“남편이 짜증을 낸다고 해서 질문자도 왜 짜증을 내는데요?”nbsp“궁금한데 답변은 안 해주고 짜증을 내니까요.”nbsp“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지 왜 짜증을 내요?”nbspnbsp“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주고 짜증을 내니까요.”nbsp“대답을 안 하면 또 물어보면 되잖아요. 짜증을 내도 다시 물어보면 되지 왜 짜증을 내요? 그냥 또 물어보면 되잖아요.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나 남편이나 피장파장이다 이 말이에요. ‘나는 물어볼 뿐인데 너는 왜 짜증을 내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상대 입장에서는 ‘내가 짜증을 낸다고 너도 왜 짜증을 내느냐?’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겁니다.”nbsp“네. 맞아요. 남편이 항상 그렇게 말해요.”nbspnbsp“그러니 ‘내가 물어볼 때 상대는 짜증을 내면 안 된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상대가 짜증을 낸다고 나도 짜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도 생각을 해줘야 해요. 나는 ‘물어볼 뿐인데 왜 짜증을 내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상대도 ‘내가 짜증을 낸다고 너도 왜 짜증을 덩달아서 내니?’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에요. ‘저 사람이 짜증을 내니 나도 짜증이 나는 것처럼 내가 물을 때 상대도 짜증을 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상대가 짜증을 내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묻거나 대답하기 싫은 걸 물으니 짜증이 나는 겁니다.nbsp그러니 ‘남편은 짜증을 낼 수 있겠다’ 하고 이해를 해주면서 ‘짜증내는 건 너 사정이고 나는 또 물어봐야 되겠다’ 하고 또 물어보면 되는 거예요. nbspnbspnbspnbsp고집은 하지 않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에요. 나는 그냥 편안하게 물어보는데 남편은 막 짜증을 내면 누가 더 괴롭겠어요?”nbsp“남편이요.”nbsp“남편도 정 괴로우면 대답을 하든지 답답해서 죽든지 무슨 수가 생기겠죠. 그러면 질문자는 시집 한 번 더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그 때는 좀 더 대범한 남자를 구해서 결혼하면 되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대범한 사람을 구해서 결혼하면 질문자는 또 숨막혀서 못 살아요. 지금 남편은 물으면 짜증을 내는데 대범한 사람은 아예 독재를 해요. 그렇게 되면 구관이 명관이라고 숫제 짜증을 내는 게 낫지 이건 진짜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입니다. 칼은 날카로워서 좋지만 손을 베이는 것처럼, 솜은 부드러워서 좋지만 줏대가 없는 것처럼 사물에는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성격이 좀 강해요?”nbspnbsp“네.”nbsp“아버님의 강한 성격이 싫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유약한 남자를 좋아했을 거예요. 유약한 남자는 친구하기가 참 좋잖아요. 그런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소심하고 줏대가 없죠. 자업자득에요.nbspnbspnbsp그러니 남편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대범하길 원하고, 어떤 때는 소심하길 원하고, 어떤 때는 부드러운 걸 원하잖아요. 그런데 친구처럼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남자를 구해서 살아보면 줏대가 없어 답답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자를 구해서 살아보면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줏대가 있어야 할 때 줏대가 있고, 사근사근해야 할 때 사근사근한 것인데 그것을 ‘욕심’이라고 그래요. 사람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nbspnbsp스님이 이렇게 자상하게 대답해주니까 너무너무 좋아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만나면 냉정해요. 찬바람이 쌩 하게 난단 말입니다. 강연장 안에서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강연장 밖에 나가서 ‘스님, 사진 같이 찍어요’ 부탁해 보세요. 눈도 하나 깜짝 안 해요. 사인할 때도 ‘내 이름 써주세요’ 라고 부탁해 보세요. 안 써줘요. ‘내 이름은 내가 쓸테니 니 이름은 니가 써라’ 이럽니다. nbspnbspnbspnbsp그래서 꽃도 멀리서 보면 예쁜 꽃이 있고 가까이서 보면 예쁜 꽃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고 좋아서 덥석 물었다가 매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가 좋아서 한 행동인데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받아들여야 해요. 남편의 성격이 그런 거에요. 남편도 안 그러고 싶은데 안 고쳐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자란 환경과 카르마로 인해서, 즉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소심하다’, ‘나쁘다’ 이러지 말고 ‘남편은 저런 성격이 있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맞춰줄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 성질내도 물어볼 것 있으면 또 물어보면 됩니다. ‘그걸 왜 물어봐’ 하고 화를 내면 ‘몰라서 물어보지’ 라고 대답하고, ‘그만 물어’ 하면 ‘또 물어보고 싶은데’ 이러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이 ‘그만 물어’ 이러면 ‘알았다. 다시는 안 물을거야’ 이런 성질이기 때문에 서로 성질이 똑같은 겁니다. 남편은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생글생글 웃으며 또 물어보면 됩니다. 서로 다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남편을 고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죽을 때까지 못 고쳐요. 천성은 못 고친다는 말 들어봤죠? 천성을 고치려면 죽어야 해요.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이 변하는 것을 보니 죽을 때가 다 됐구나’ 이런 말도 있어요. 고치면 죽어요. 명 대로 살게 그냥 놓아 두세요. 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죽일려고 그래요?nbspnbsp성질내면 ‘알았다’ 하면서 또 묻고, 지풀에 지가 죽는 건 내가 상관할 바가 없어요. 그렇게 좀 대범해야 합니다. 아이고, 쫀쫀한 사람 둘이 만나서 참 고생이네요.nbspnbspnbsp남편이 쫀쫀하면 질문자가 좀 대범해야 합니다. 나사 못도 암나사가 있고 숫나사가 있잖아요. 하나가 들어가면 하나가 받아줘야 하듯이 하나가 소심하고 하나가 대범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소심한 두 사람이 같이 붙어 싸우니까 문제가 되지요. ‘남편이 소심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벌써 질문자가 소심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질문자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저도 진짜 소심하거든요.”nbspnbsp“만약 남편이 저한테 질문을 한다면 이럴 거에요. ‘우리 마누라는요 진짜 소심해요. 여자가 왜 그렇게 소심해요? 엄마처럼 좀 푸근해야 하는데...’.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nbspnbsp그런 것처럼 남편이 소심하다고 얘기하는 건 질문자도 소심하다는 걸 반증하는 거예요. ‘아이고, 우리 남편은 너무 고집이 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아내도 고집이 세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 남편이 대범해지면 좋겠다 싶으면 질문자부터 먼저 대범해지세요. 남편의 짜증에 대해서 크게 시비하지 말고 좀 받아주라는 겁니다.”nbspnbsp“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nbspnbsp“막상 집에 가면 또 안 될 거에요. 안 되지만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알았죠?”nbspnbsp“네.”nbspnbsp스님의 답변에 청중들은 자지러지듯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습니다. 청중들은 ‘코메디보다 더 웃기다’ 며 손뼉을 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질문한 여성 분도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8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울고 웃고 하다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이 “강연이 어땠어요?” 라고 물으니 청중석에서는 “좋았어요”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온갖 일을 겪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서 기쁠 때도 있고, 꼭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믿는 사람에게 발등 찍히는 일도 있고, 이렇게 온갖 일을 겪게 됩니다. 나만 그렇게 겪는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겪게 됩니다. 우리는 그걸 갖고 좋았다 나빴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하면서 파도타기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사실은 별 거 아닙니다.nbspnbspnbsp제가 중고등학교 때를 돌아보면 월말고사 성적이 그때는 굉장히 중요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성적이 더 올라갔다고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이런 파도타기를 이제는 그만 해야 돼요. 인생이란 건 늘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원래 사람들의 성질이 그래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무 빠지면 나중에 더 큰 낭패가 되고, 싫어하는 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면 그게 고통이 돼요. ‘저런 사람도 있네’, ‘이런 사람도 있네’ 하고, 내 뜻대로 되었다고 흥분해서 즐거움에 빠지지 말고,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괴로워서 너무 침잠하지 말고 그냥 담담하게 ‘인생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런 경우도 있네’, ‘저런 경우도 있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지금보다 훨씬 인생살이가 가벼워져요.nbspnbsp여러분들은 인물이 예쁘니 못생겼니 하는데 늙어보면 다 마찬가지예요. 예쁜 사람이 늙는 게 견디기 힘들까요? 못 생긴 사람이 늙는 게 견디기 힘들까요? 누가 더 힘들 것 같아요?”nbsp“예쁜 사람이요.”nbspnbspnbsp“잘생긴 사람이 힘들겠죠. 그러니 잘생긴 사람이 잘난 척 하거든 ‘아이고, 늙으면 너가 더 고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집착을 내려놓고 죽기가 힘들까요? 없는 사람이 집착을 내려놓고 죽기가 힘들까요?”nbsp“재산이 많은 사람이요.”nbsp“재산이 많은 사람이 힘들겠죠. 그러니 ‘저 사람은 죽을 때 힘들겠구나. 가져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그게 특별히 부러운 일이 아니에요.nbspnbspnbsp그러니 피부가 검든 희든, 인물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재물이 많든 적든, 인기가 있든 없든, 이런 것에 너무 매달려서 흥분하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요. 조금만 길게 보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요.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nbsp잘생긴 사람은 늙으면 더 괴로워진다는 비유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참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연만으로도 이렇게 울고 웃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질문한 모든 분들이 스님 말씀처럼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주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많은 분들에게 웃음을 건넸습니다. 특히 질문한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힘내세요”라고 격려의 말씀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서울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희망 강연 파이팅” 이라고 외치는 얼굴에는 봄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 서울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 촬영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 대구 강연을 하기 위해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대구에서는 수성대학교 성요셉관 대강당에서 저녁 7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대구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30. 113,525 읽음 댓글 7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