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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 워싱턴법당에 가면 밝고 차분한 모습으로 도반들을 맞아주는 이화영 님과 법당을 놀이터 삼아 자유로이 다니며 방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이화영 님의 아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화영 님의 남편 이학수 님은 워싱턴법당의 텃밭을 가꾸어 제철의 싱싱한 채소를 공양 시간에 맛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도반들 손에 이것저것 묵직하게 들려줍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화영 님의 수행담 전합니다.
3년 전 우연히 정토회 광고를 보고 워싱턴정토회관을 찾았을 때만 해도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무엇인가 굉장히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 수행담을 쓰려하니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서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더 깊은 사연을 지니고 더 치열히 수행한 많은 도반들이 있을 텐데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주저되었지만 ‘정토행자는 가볍게 '예’하고 합니다.’를 떠올리며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덕분에 지난 3년의 수행을 찬찬히 돌아보고 다가오는 9차 천일결사 3년의 각오도 새롭게 다져보는 기회가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처음 정토회를 알게 된 것은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낳은 아이가 세 살 되던 해입니다. 임신과 육아의 과정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머리로는 괜찮다 했지만 가슴과 목에 무엇인가 걸린 듯 답답하게 느껴질 즈음이었습니다.
원하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아이를 임신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임신 당뇨가 왔습니다. 아이의 심장에 이상이 올 수 있다 하여 정해진 소량의 음식과 식후 운동 등 규칙적인 생활을 했음에도 혈당 수치를 맞추기 힘들었고 후반으로 갈수록 감기 기운만 있어도 혈당이 많이 올라 한밤중에도 아파트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임신으로 인해 생애 처음으로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경험을 했는데, 더해서 소금기 없는 음식과 배고픈 걸 참으며 하루 6시간 이상씩 걸어야 하니 고행이 따로 없었습니다. 뛰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뛰고, 자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울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울고… 참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아이 심장에 이상이 보인다, 혈당 조절이 안 될수록 더 위험해진다’고 하니 정신이 바짝 나서 힘든 것쯤은 다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병원 예상과 달리 아이는 예정일보다 조금 빨리, 조금 적은 몸무게로 태어나 신생아 중환자실에 잠시 있었지만 다행히 우려하던 심장 기형 없이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감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남편과 단 둘이 처음 육아를 하다 보니 서로 지치고 예민해져서 감사함은 어느새 잊어 버리고 자주 싸웠고, 그렇게 귀하고 이쁜 아이에게 자주 화풀이를 하고는 자책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2년쯤 뒤에 내 목에 자가면역질환으로 크게 흰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더 어두워지고 힘들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버지니아의 어느 식당가에서 우연히 법륜스님과 정토회 관련 기사를 보았고, 무작정 전화해서 워싱턴법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님이 계시는 한국의 산사를 기대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좀 쉬다 갈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께서 직접 오셔서 법문도 해주고 악수도 해주셔서 스님이 계시기는 하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끼리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낯선 사람들과의 소통이 별로 편하지 않았고, 조용히 혼자 수련하는 산사가 아니라 다니기 싫었는데 의외로 남편과 아이는 주말마다 법당에 가고 싶어했고 제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날에는 어김없이 남편과 싸움이 났습니다.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수행법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모든 게 귀찮고 부정적으로 보여서 권해주는 것마다 싫다고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옆에서 흔들림 없이 간간히 여러 가지 수행 프로그램을 권해준 총무님 덕분에 8-1차 천일결사에 입재하게 되었고, 연말 삼천 배 정진을 하며 실컷 울기도 했습니다. 봉사활동도 제가 거절하면 기다렸다가 또 잊을 만하면 권해서 조금씩 마음을 내다 보니 어느새 저는 이 일 저 일을 하며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법당에 다니며 부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혼자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고, 불명을 받고 싶은 마음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처님이 이상형일 만큼 그냥 부처님이 좋았는데 긴 시간을 돌아서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제대로 불법을 배울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불교대학 수업은 그저 어렵기만 했는데 어느 날 '일심법계'라는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과 아이는 제가 불교대학에 다니고 수행법회에서 스님 법문을 들으며 불법을 배우는 동안 항상 함께 해주었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정토회관 앞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각종 채소를 가꾸어 공양 올리고, 가을에는 풍성한 수확으로 농사를 마무리하고 낙엽도 쓸고, 겨울에 눈이 오면 뛰어놀고 치우기도 하면서 그렇게 둘이서 법당 마당을 놀이터 삼아 항상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불교대학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날 밤, 법당 마당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키는데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크고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수놓은 것은 처음 보았고 경이로웠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못 가게 해서 세 번이나 미뤘던 깨달음의장에도 불교대학 수업 과정을 마치고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4년 만에 처음 떨어져 보았습니다. 순순히 ‘갔다 오라’는 말에 마음 편히 다녀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열이 펄펄 나서 누워있고 남편은 퀭한 눈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저를 보더니 울지도 않고 "엄마 눈 속에 우주가 있네." 하며 웃어주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가 이유에 ‘불교대학 졸업을 위해서’라고 적었는데, 깨달음의장 이후 혼란의 시간을 거치며 제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작년 가을 명상수련에 참가하고 수계를 받고는 조금 더 선명하게 중심을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던 것이 깨지고 저를 좀더 알아가게 된, 정말 감사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여러 도반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열리게 된 경전반에 입학하고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금강경과 반야심경, 육조단경, 법성게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금강경 첫 수업을 하던 날부터 마지막 육조단경을 배운 일 년 동안 눈물이 참 많이 났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배우는 순간이 꿈만 같았고 그런 인연에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

지난 삼 년 동안 저의 가장 소중한 도반인 남편과 아이의 묵묵한 기다림과 격려 속에 올해 가을 저는 경전반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번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달 깨달음의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지난 시간을 죽 떠올리며 쓰다 보니 감사한 순간과 감사한 분들이 끊임 없이 떠오릅니다. 정말 저에게 부처님 같았던 남편과 아이, 그리고 주위 도반들, 스승님들께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의 외조와 아이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렇게 맘 편하게 실컷 공부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수행하고 봉사할 수 있게 끌어주고 거울이 되어준 도반들이 있었기에 정토회 활동을 포기 하지 않고 해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상태를 바로 직시하고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이 계셨기에 흔들림 없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도반입니다." 되뇔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지고 울컥해집니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지금 제 마음에 남은 세 단어는 '감사, 사랑, 겸손' 입니다. 이 세 단어를 마음 깊이 새기며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는 진실한 행을 실천해 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이화영 (워싱턴정토회)
담당_윤신정 희망리포터 (북미동남부)
편집_김지은 (해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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