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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리포터 1주년 특집]
전국 희망리포터 한마당 (1부)
‘정토행자의 하루’는 2014년 10월 14일에 첫 기사를 낸 이후로 국내외 100여 명의 희망리포터들이 정토행자들의 활동소식을 전하며 현재까지 총 400여 건의 기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에는 처음으로 전국의 희망리포터들이 모이는 <전국 희망리포터 한마당>이 대전정토법당에서 열렸습니다. 40여 명의 희망리포터가 참석한 가운데 한 해를 돌아보고 수고한 희망리포터들을 격려하며 다음 1년을 내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의 풍경과 묘수법사님의 법문을 전합니다.
전국에서 온 희망리포터들과 눈인사를 나누면서 법당으로 들어서니, ‘우리는 희망을 전하는 정토행자, 희망리포터입니다’라는 현수막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글귀가 오늘 이 자리가 왜 필요한지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참석한 희망리포터 중에는 10개월 된 아이를 안고 온 분도 있고, 회사에서 가는 중국여행도 포기하고 오신 분, 기사를 쓰면서 빠져들고 감동을 하여 온 분, 새로운 후임자와 함께 참석한 분, 최근 희망리포터 소임을 받고 희망리포터가 뭔지 알고 싶어 온 분 등 다양한 이유로 참석했지만, 함께 길을 가는 도반들이라 더 반갑고 설레었습니다.

사회자 데뷔를 하게 되어 가문의 영광이라는 행정처 시스템부 김도영 님의 오프닝 인사로 다함께 웃으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획홍보국장 길문옥 님이 정토행자의 하루를 보며 법당 구석구석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받고 있으며, 음지에 있지만 양지를 지향하자며 더 힘 받아서 쓰임 있는 희망리포터가 되자고 여는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 경남지부 희망리포터들의 인사

▲ 서울제주지부 희망리포터들의 인사
이어 지부별로 나가서 자기소개 및 인사를 했습니다. 희망리포터를 하면서 법당 일에 관심을 두게 되어 좋다는 분, 개인적인 일로 정체되어 있었는데 한마당 참가를 계기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온 분, 희망리포터를 통해 자신의 게으른 업식을 보면서 세상에 관한 관심의 폭이 넓어진 게 감사하다는 분 등이 있었습니다. 지부별 인사에 이어 오늘 행사준비와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 발행이 잘 되도록 수고하고 있는 기획홍보팀장 배재휘 님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리포터들을 글로만 만나다가 실제로 만나게 되어 반갑고,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도 감동적이지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겨 실제로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며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 강원경기동부지부 희망리포터들

▲ 광주전라지부 대표로 참석한 천승현 희망리포터 꼭지장님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묘수법사님을 모시고 법문을 청해들었습니다. 법사님은 리포터들이 자기소개를 하면서 소임에 대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표했던 점들에 대해 조언해주셨습니다.
“엉겁결에 오셨다는 분들, 굉장히 뿌듯하고 감동이라는 분들, 모두 다 공감되는 이야기입니다. 뿌듯할 때도 있고, 부담될 때도 있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도 있고, 분별심 날 때도 있고, 그게 정상인 것 같아요. 우린 다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부족한 줄 알면 더 자유롭습니다. 내가 부족한 줄 알기 때문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더 감사하구요. 부족한 줄 아니까 누군가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문제제기는 일부러 찾아가서 들어야 될 내용이에요. 내가 아직 부족하니까 앞으로 하고자 하는 걸 더 잘하려면 문제제기하는 걸 들어야 될 것 아니에요? 좋다 소리만 들어가지고는 내가 더 발전 할 수가 없는데, 이렇게 딱 집어서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 좋은 일입니다.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할 판인데, 여기저기서 얘기해준다 그러면 아주 기쁜 일이어야 됩니다. 문제제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그 때문에 위축된다는 건, 내가 잘나야 한다는 자기 상이 있고 늘 칭찬받아야 되고 평가 받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까 습관이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의 활동이 음지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잘 몰라주면 음지라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아까 누가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여기가 음지가 아니지 않느냐, 여기야말로 희망이 넘치는, 남들 모르는 희망을 일궈 나아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자리 자체가 밝은 자리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이곳에 동참할 수 있는 태양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느냐, 그래야 희망리포터 아닌가 싶어요. 그런 것들이 우리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애이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주가 있어서 된 분들도 있고요, 하다보니까 재주가 생긴 분들도 있고요, 할 때는 내 재주로 했는데 하다보니까 사람들의 요구가 자기하고 딱 안 맞아서 자기식대로 쓰게 되어 그 재주가 오히려 장애가 되는 분도 있어서, 그게 또 부담이 되고 또 하나의 과제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희망리포터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하는 건 아니에요. 내 얘기를 멋지게 해서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려고 리포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감동이 사람들에게도 전달이 되면 되거든요. 그런데 그 감동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감동이 안 돼요. 사실에 근거하되 나에게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만한 글들, 그런 것들이라면 글이 좀 어눌하더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감동을 해요. 각종 수련을 하고 나서 소감문을 발표하면 하나 같이 글을 잘 쓰시잖아요. 그런데 하나같이 글을 잘 쓰는 이유가, 잘 써서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는 본인이 감동이 있기 때문에 글은 어눌하고 기승전결 없이 우왕좌왕해도, ‘그래서 나의 이러한 것이 나의 삶의 변화가 되고 앞으로는 이런 삶을 살고자 한다.’라는 과제와 희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 감동이 있고, 글을 잘 쓰는 것 같이 돼요. 리포터들은 이런 것들을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도 전달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월간정토> 모니터요원이나, 기자단이라는 이름으로도 몇 개 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어찌 보면 스님 법문 듣고 기도해서 실제로 변화가 있었던 사람이 그렇게 광범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수행담 발표할 사람들이 소수였던 거죠. 남이 봐도 ‘야, 대단하다’ 하는 특별한 어려움을 한고비 넘어가서 ‘와, 저 사람 많이 바뀌었다’ 하는 삶의 변화가 실제로 있는 사람들이 손꼽는 거예요. 그러니까 찾아다녀야 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리포터들이 더 많아도 될 정도로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님 법문을 듣고 기도해서 삶이 바뀌었어요. 그렇지 않던가요? 물론 여기 질문 나온 중에, 어디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되는지, 좋은 글만 해야 되는 거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좋은 글만 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수행을 잘 하고 있고 성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해야 된다’라는 것은 아닌데,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 무궁히 많다고 한다면 그 얘기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걸 일부러 짜내야 하는 수준이라면 기사를 줄여야 돼요. 그런데 지금은 과거보다는 그런 사례가 많아요. 많은 데 비해서 오히려 우리가 다 발굴하지 못하고 다 담아내지를 못하는 상황이어서 리포터 일이 사실은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다만 내 욕심에 ‘어떻게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 사람들이 다시 신심을 내서 수행할 수 있게끔 이끄는 계기가 되게 할까’ 하는 자기 과제로서의 어려움이지, 어려워서 괴로운 건 아니라는 거죠. 과제가 되고, 자기 발전의 기회가 되는 그런 어려움이 아닌가 해요. 그래서 지금은 희망리포터들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어요. 돌아가면서도 다 할 수 있고, 모든 정토행자들이 다 한 번씩은 써볼 수 있어요. 아까 어떤 분이 밴드에다 열심히 나누기를 올렸더니 딱 적임자라고 찍혔다고 하셨는데요, 홈페이지에 있는 ‘정토행자의 하루’라는 란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소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그런 것이 다 리포터들의 역할인 것 같아요.”
부족한 줄 알면 더 자유롭다는 말씀, 글이 좀 어눌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감동이 있고 과제와 희망이 있으면 좋은 글이라는 말씀, 일부러 미담을 만들어 내야할 수준이라면 기사를 줄이는 게 낫지만 실제로 수행을 해서 삶이 변화한 사례가 무궁히 많고 다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희망리포터는 더 늘어나도 된다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법사님은 이어서 부처님이 야사의 깨우침을 보고 전법 선언을 하신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몇 년을 수행 정진해야 되는 게 아니라, 지금 괴로움에 빠져 있고, 욕심에 빠져 있는 이 순간에 한 생각 돌이키고 눈을 뜨면 누구나 다 깨우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나 그 깨우침의 체험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이 (부처님이) 드신 게 야사의 깨우침이에요. 야사의 친구들이 다 한량들이거든요, 이 60여명이 ‘야, 야사가 출가를 하다니 이상한 일이다’ 하면서 야사 데리러 왔다가 오히려 부처님 법문을 듣고 다 같이 출가해서 깨우침의 길로 간 그것이 부처님에게는 희망이고, ‘특별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인류의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는 희망이다.’라는 확신을 가지시게 된 것이죠. 그래서 하신 일이 뭐에요? 전도 선언이었어요.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요? 둘이 갈 필요도 없어요. 둘이 가서 의논하면서 의지해가면서 전파 할 것도 아니고 다 각자 혼자 가도 된다고 그러셨어요. 왜 그럴까요. 각각 자기가 체험하고 깨달은 게 다 있기 때문이에요. 본인이 깨달은 만큼 전파할 수 있어요. 공부의 시작이거든요, 깨달음은. 이 방향으로 나도 계속 공부해나가면서 사람들을 만나 나아가는 가운데에 우리의 깨달음의 수행은 더 커질 것이고, 더 자유로워질 것이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이 확신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혼자 가도 된다,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 이렇게 전법을 선언하셨어요. 부처님의 전법 선언이 우리 희망리포터의 출발점이 아닌가 해요. 그 당시는 소수의 사람들이 깨우친 다음에 퍼졌다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서 스님 법문을 듣고 깨우침을 얻고 그것을 자기 생활에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누구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내 경험을 전해 남을 깨우치게 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전법 선언이 희망리포터의 출발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법사님은 어떤 이야기가 이야기거리가 되는지, 리포터는 어떤 사람이 해야하는지를 수행자라는 관점에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전에 나간 기사와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고 해도, 삶의 변화가 담겨진 감동이 있는 이야기라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쉽게 말해, 여러분들이 어떤 글을 써야 될까요? 내가 봐서 내가 감동된 얘기면 돼요. 그런데 내가 감동이 안 되면 그 이야기가 지어지게 됩니다. 인터뷰하면서 최소한 내가 감동이 되는 고만큼 전하거나, 그 사람의 과제가 나에게도 과제가 되어야 해요. 해결이 된 감동도 좋고요, 지금도 해결이 안 되는 어려움이지만 ‘야, 이거 진짜 어렵겠다’라고 공감된 과제도 기사가 될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 공감된 과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돼요. 그런데 하다보면 그 과제를 해결한 사람들 사례들이 또 나와요. 그래서 내가 다 해결된 과제만 올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건 있어야 되요, 이건 수행자들의 얘기잖아요.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정토행자의 하루잖아요. 수행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다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이 과제를 자기 과제로 삼고 해 보려는 입장은 있어야 돼요. 해 보려는 입장.
‘아이구, 이건 안돼, 관두겠어.’ 이런 사람의 이야기는 조금 지켜보고 난 다음에 하는 게 좋아요. 아직도 해결이 안 돼서 늘 화가 나고 늘 슬프고, 늘 짜증이 나고 그런데 그 사람이 ‘이게 내 과제다, 요러요러한 부분이 내가 아직 안 되고 있다.’ 이게 명확하면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한 여러분이 ‘아, 그거 진짜 과제겠다. 나도 그런 부분에서는 잘 안되는데 나도 한 번 더 열심히 해봐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그거는 기사거리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모두 해결이 돼서 ‘야, 그래, 저런 수행을 해가지고 저렇게 바뀌었네’ 이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니라, ‘이건 바뀌었는데 이건 여전히 안 돼서 에잇 모르겠다'하는 거는 조금 보류해야 되고, 그치만 ‘이건 안 되지만 내가 다시 한 번 해보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함께해주세요.’ 이런 이야기들은 다 공감할 수 있고 함께 풀어가야 될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희망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리포터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정토행자면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수행을 하려고 마음을 낸 사람은 누구나 리포터가 될 수 있어요. 자기 수행이야기든 수행하고 있는 도반의 이야기든 자기 과제로써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누구나 리포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든 정토행자가 사실은, 희망을 세상에 알리는 리포터가 될 수 있어요.”
“다들 어쨌든 엉겁결에 ‘예’ 했는데 어때요? 엉겁결에 하는 거 참 좋은 거 같아요. 엉겁결에 ‘예’ 하지 않으면 늘 ‘나’라는 것이 세워지니까 고민도 많고 복잡해요. 그런데 엉겁결에 하다 보면, 못할 것 같은 건데 하다보니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의 자아를 확장시켜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엉겁결에 ‘예’ 해놓고 보니깐 여러 어려움도 있지만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또 새로 알아지는 것들이 있고, 내가 좀 힘들만 하면 또 사람들이 생겨요, 같이 할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다시 마음을 내고, 내가 계속해도 좋고 다른 사람이 하더라도 그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여는 법문을 통해 희망리포터의 역할과 수행자로서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질의 응답시간에는 사전 질문지를 읽고 답해 주셨습니다.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은 없지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되고 주제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글을 올리고 난 후에 부끄러운 마음도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짧은 정토회 경력으로 글을 쓰는 소임을 맡아도 되는 건지 궁금하다는 분, 정토회에서 올해의 가장 주요 활동 중 하나가 정토행자의 하루가 신설되고 희망리포터들이 조직되어 활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희망리포터의 소속이나 자리매김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건의도 있었고, 인터뷰 대상 범위에 대한 질문, 좋은 소식도 좋지만 인터뷰하다 보면 도반들의 속마음과 고민에 대한 얘깃거리에 관심이 가는데 정토회 취지에 벗어나는지 등에 관한 질문 등이 있었습니다. 묘수법사님은 정성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그 중 두 가지 정도 올려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은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은 없지만 혼자서 쓰던 버릇이 있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묘수법사님 법문을 영상으로 보고 편안하고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담되고 어렵습니다. 주제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글을 올리고 난 후에는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이 이유는 두 번의 희망리포터 교육에 참석하고 나서 실망되는 점도 있고 법사님 법문과 현실이 다른 것 같다고 느낀 후부터입니다. 지금은 글 잘 쓰는 도반에게 넘겨줘야겠다고 생각 중인데 이 도반이 불교대생이고 경전반까지는 마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마음에 대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뭣 모르고 그냥 엉겁결에 하고 있다가, 조금 하기 시작하면 본인의 능력에도 분별이 나고, 사람들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생기고, 발전적 관점에서 부족한 점들이 보여요. 보이는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분별로 가서 내 수행을 저해하고 기운이 빠지는 쪽으로 가냐, 그것이 하나의 과제가 돼서 내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단계에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냐 이 차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행자잖아요. 수행자니까 ‘아, 분별이 나는구나’ 하는 것은 내 과제가 되고 그것 때문에 내가 답답해서 ‘아이구, 그냥 이거 하기 싫다’ 요런 마음이 드는 것도 내 과제예요. 그런데 ‘이런 점들이 우리가 얘기한 원칙하고는 조금 다르지 않나, 정토회가 지향하는 거하곤 조금 맞지 않으니 이런 부분은 좀 개선되어야 되겠다.’ 이런 것들이 있다면 그건 우리 과제예요. 그런데 그걸 오늘날 ‘과제’라고 얘기한다고 금방 해결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생각이 다 옳은 건 아니기도 하고, 나의 기대가 있어서 일어나는 분별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문제의식을 느끼는데 한 세 번쯤 건의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그렇긴 하지만 이래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아, 문제는 좀 있지만 도반들도 다 괜찮다고 하니까 한 번 믿고 같이 해보자’ 요렇게 마음을 내는 것이 좋아요. 정토회에서 어떤 의사를 결정할 때 ‘삼의제(三議制)'라는 것을 하는 것도 그런 원리거든요. 나의 의견을 충분히 내기는 하되 그러나 함께 이 의견을 모으는 사람들의 판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존중해야 돼요. ‘아, 도반들이 내가 두 번, 세 번 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오히려 한 번 조금 더 맞춰봐야 되겠구나’ 요렇게 마음을 내서, 분별 냈던 것이 하나의 과제이지 괴로움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일도 일이지만 내가 수행자니까.
분별은 오래 하면 더 나게 돼 있어요. 그리고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 더 분별 내게 돼 있어요. 정토회에 대해서 초기부터 원칙에 대해서 많이 아는 분이 더 분별 내게 돼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어떤 법당이 이제 막 만들어져서 활기 있게 하는 데에 오래된 분이 걸림돌이 되기도 해요. 나빠서 걸림돌이 아니라 기대가 커서 그래요. ‘초기 정신이 이런데 왜 이게 안 되느냐’는 거예요. 예전엔 법당별로 굉장히 환경실천이 철저했었는데 실천 안 되는 걸 보면 오래된 분들은 안타까운 거예요. 아주 안 하겠다는 건 아닌데 원칙을 너무 내세우면 초심자들이 정착하는데 장애가 되고 벽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원칙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는 과제로 하되, 이게 틀렸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일단 괴로워요. 괴롭고 못마땅해서 문제제기하거나 가르치면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려요. 싫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이게 좋아서 하는데 지금 오는 사람들은 이 원칙이나 취지를 잘 몰라서 모를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컵을 가지고 오니까 좋더라, 종이컵보다 이게 좋더라’ 이렇게 안내를 해줄 수는 있어요. ‘왜 종이컵 안 갖고 오기로 했는데 갖고 왔느냐?’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그냥 백 번을 얘기하더라도 안내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과제에요. 그런데 고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뭐가 잘못되는 거 같은 거예요. 애정이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앞서나가서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욕심이 앞서서 그래요. 좋은 일도 욕심이 앞서면 내가 괴롭고, 내가 괴로우면 일이 어긋나게 돼요, 원래 취지하고는 다르게. 그래서 오래된 분들은 분별이 나는 것들에 대해서 제안은 하되, 다른 사람들도 그런 문제는 있지만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면 공감하고 뒷받침을 하는 쪽으로 해주는 것이 정토회에 더 도움이 돼요.”
법사님은 정토회 초창기에 자리 잡는 데 큰 힘이 되었던 노보살님들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젊은이들 나가서 활동할 수 있도록, 묵묵히 법당 지켜주시고, 시장에서 야채 씨레기를 주워다 반찬을 해주시고, 방석 만들고, 출퇴근 시간에는 본인들도 서명 운동이며 모금함 들고 다니며 뒷바라지 해주셨던 노보살님들이 있었기에 단체가 꾸준히 퍼져나갈 수 있었다며, 이러한 활동의 기본은 수행력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들의 힘은 기본 수행력입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수행력만큼 우리의 뜻을 세상에 알려나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러이러한 것들이 좀 되면 되는데 좀 안 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바른 말을 먼저 하기보다는 조금 지켜봐주고 믿고 뒷받침을 해주는 여유를 가지면,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문제점에 대해서, 그게 정말 문제라면, 그 사람들도 제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믿고 뒷받침을 해주시면서, 손 탁 놓지 마시고요, 인수인계를 한 일 년 쯤 뒷받침을 해주세요. 옆에서 지지해주고, 녹취가 필요하면 녹취도 의뢰하면서, 인수인계 받은 분이 할 수 있게끔 지원해주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정토행자의 하루 읽으시면서 기사가 잘 쓰여지고 있다고 느끼는지와 정토행자의 하루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입니다.
“언제 한번은 정토행자의 하루를 보니까 제가 우려했던 것들인데, 개인이 수행해서 확 변했던 이야기, 신심이 충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해야 될 것 같은 그런 압박감이 리포터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인터뷰 대상이 되는 분이 지금은 신심이 나는데, 이게 기복이 있거든요. 오자마자 신심이 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물러나서 법당에 안 나와 버리는 경우들도 꽤 있습니다. 하다못해 입재식에서 사례담 발표한 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있는 걸로 압니다. 나쁜 일이 아니라 사람이 신심이 나서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이 물러나거나 활동에서 상처를 받아요. 자기 기대치가 있으면 언제든지 상처를 받게 되어있어요. 우리 도반들이 잘 챙겨야 되지만 다 챙겨지지 않고 놓쳐질 수 있거든요. 이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정토행자의 하루를 너무 개인을 띄우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약간 했었어요. 그런데 어제 보니까 그런 개인의 이야기도 있고 법당 활동 얘기도 있고 같이 섞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큰 문제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의 하루에도 스님의 법문만 있다 하면 그렇게 까진 안 퍼지는데 스님의 법문이 있고, 그 법문을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짧게라도 다 들어가 있거든요. 스님과 어떤 사람들이 만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이 이런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가 이런 게 보여지는 것이 확산에 큰 힘이 된다고 봐요. 정토행자의 하루도, 어떤 특정인 한 사람이 크게 변한 것도 중요한 이야기가 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 못 할 거 같던 일을 해내는 얘기, 현재 해나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얘기가 굉장히 소중한 것 같아요. 정토행자의 하루는 오늘 하루를 담았지만, 내일도 그 하루고, 하루하루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를 맞는 정토행자의 삶의 모습이 보여진다는 거죠.
우리의 활동이라는 게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지가 않아요. 정토회는 일이 끝나지 않아요. 끊임없이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있습니다. 기사화했을 때 '그래서 끝났다' 이런 거는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고, 어떻게 활동을 하려고 하고, 나는 어떤 과제를 갖고 살아가려고 한다는 그런 얘기가 담기는 게 정상이에요. ‘아, 이게 나도 해볼만 하네, 나도 되는 거네, 스님 법문이 그냥 방송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체험하는 거구나, 나도 할 수 있겠네’ 하는 희망을 갖게 하는 내용이 정토행자의 하루에 담겨진다면 그 취지는 살려집니다. 천의 한 명, 만의 한 명이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그런 계기가 된다면 정토행자의 하루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는 답을 들려주셨습니다.
“일 년 동안 계속 해 오신 분도 계시고, 오늘이 인수인계자리가 되신 분도 있겠는데요, 어떤 경우에도 정토행자의 기본은 본인의 수행입니다. 본인의 수행이란, 자기의 행복은 자기가 책임지는 겁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한 생각 사로잡혀서 그런 거고, 내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이 명확해야 수행자입니다. 정토행자로서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희망리포터의 기본입니다. 그 기본이 충실하면 다른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배워가면서 하면 되거든요. 옛날보다 훨씬 물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게 쉬워졌어요. 온라인 세상이잖아요.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 오프라인에서 만나도 정보를 충분히 교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있습니다. 물어서 하고 나누고 하다 보면, 내 경험이 요만큼밖에 안 되는데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희망의 나비가 되고, 희망의 홀씨가 되려면 우선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니까 (자격이) 안 된다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 과제일 뿐입니다. 따로 행복이 있는 게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 그게 열반이고 행복입니다. 희망리포터의 과제는 우리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나가면서 더 멋진 정토행자의 삶을 세상에 알려나가는 그런 시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1년 동안 수고 많았고 내년에는 활동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질 겁니다. 글을 잘 쓰려고 하지 않아도 글 읽는 사람이 알아서 읽어주세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어차피 제일 먼저 읽을 사람이 정토행자일 거란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읽는 건 부수적인 거예요. 외부 기사는 우리가 앞으로 좀 더 연습을 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우선은 우리 정토행자들이 읽는 거예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우리 도반들하고 나누기하듯이 하다보면 그 안에 감동이 있고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라는 마무리 법문으로 다시 한 번 희망리포터로서의 관점을 잡아주었습니다.
이렇게 오전 행사가 끝이 나고 맛있게 점심공양을 하며 오후 행사를 기다려 봅니다.

▲ 부산울산지부 맛난 점심 공양

▲ 강원경기동부지부~

▲ 인천경기서부와 광주전라지부

▲ 대구경북지부
글_정은영 진주법당 희망리포터
사진_고재영, 전선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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