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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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 관련 회의, 행정처 회의등

스님께서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전에는 회관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는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 행사 준비팀과 1시간 동안 회의를 하셨습니다.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은 오는 6월 5일, 장수 죽림정사에서 불심도문 큰 스님을 모시고 진행될 예정입니다. 참석자 규모는 약 5,000여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용성진종조사님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나라를 되찾기 위한 힘을 모으셨고, 또 3.1독립운동을 기획하셨던 분입니다. 그 후에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또한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숭유억불정책으로 왜곡되고 비천해진 불교계에 혁신의 새 바람을 일으키시기도 했습니다. 부처님 정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시고, 현재 불교 의식의 기틀을 잡으시는 등 사실상 한국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를 선도하셨던 분입니다. 이런 사실이 일반 대중들은 물론 불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행사준비팀이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부디 이 기회에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을 본으로 삼고, 우리 후손들이 계승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nbspnbspnbsp오후 3시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오후 4시에는 정토회 중앙행정처 책임자급 활동가들과의 논의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8차년도를 맞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는데, 어떻게 자리를 잡아갈 것인지, 세세하게 짚어보고 보완하는 자리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여러 조언들을 해주셨는데, 그중에서도 불교대를 운영하는데 보다 심혈을 기울여주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분들이 불교대에 오기 마련인데, 이 분들이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1년 동안 자연스럽게 일과 수행을 공부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교대를 담당하시는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니, 불교대 담당자들에 대한 수행도 특별히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그 외 정토회에서 제일 작은 법당, 즉 현장에서 제일 일하기 편한 구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직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조직구조표를 짤 때, 주로 중앙에서 먼저 그림을 그리고 하부 단위의 조직에 그저 내려보내는 수직적 구조에 익숙해있는데, 스님께서는 도리어 현장에서부터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셔서 회의 참석자들이 매우 명쾌해졌다는 반응이었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 늘 현실인정은 하고, 그 상태에서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법문에서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일을 하는 현장에서 풀어주시니 오늘 회의는 회의의 내용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신 자각하게 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 저녁에는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청년리더십아카데미가 시작하는 첫 날이라 조민 교육원장님이 오셔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고 난 후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에 잠시 참석해서 입학을 축하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이후에는 내일부터 진행되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강연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nbsp내일은 서울 서초법당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주제로 오전, 오후 강연이 있습니다.

2014.04.02. 12,612 읽음 댓글 2개

2014.3.31. 목표, 광주 강연

오늘은 목포와 광주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6시 문경수련원을 출발하여 해남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목포 강연이라서 시간이 넉넉지 않아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우동으로 아침을 먹고 11시가 조금 넘어 해남의 수련장 부지에 도착하였습니다.nbspnbsp주변을 둘러보고 수련장이나 농사 짓기에 적당한지를 점검하고 바로 이동하였습니다. 수련장 부지 바로 옆이 해남 미황사여서 잠시 들러 참배를 하고 바로 목포로 이동하였습니다.날씨는 화창하고 동시에 피어난 봄꽃들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봄꽃들의 과속스캔들이란 어느 분 표현이 실감나는 모습입니다.nbspnbsp 목포 강연에 앞서 전라남도 지사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도지사님은 삼선이라 이번 선거에는 나가지 않기 때문에 선거에 구애받지 않고 스님과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스님과 도지사님께서는 친환경적 농업, 특히 전남지역에 많은 축산농가들의 현실과 가축들의 행복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나누셨습니다. 오늘 목포 강연은 목포법당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준비했는데, 오늘 아침 9시부터 나와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오후 2시 강연인데 10시부터 접수대 앞에서 대기했다는 관객도 있었고, 오늘은 특별히 시각장애인 안마사 협회에서 25명이 강연회에 오셔서 스님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이상고온으로 전국의 봄꽃들이 동시에 피었더라는 날씨 인사를 건네시고“이런 따듯한 봄날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바깥 날씨는 이렇게 따뜻한데, 여러분들 마음의 날씨는 지금 어떻습니까? 바깥 날씨처럼 따뜻한 봄을 맞고 있어요? 아직 봄을 제대로 못 맞는 분도 있는 것 같아서 오늘은 우리가 이 마음의 봄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얘기를 갖고 대화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nbspnbsp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라고 하는 정답은 없습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됩니다. 자신의 선택이에요.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지 결혼을 안 하면 더 좋다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혼자 살려면 혼자 사는데 따른 책임 의식이 있어야 되고, 결혼해서 살면 결혼에 대한 책임 의식이 있어야 되는데, 결혼을 해놓고는 결혼에 대한 책임을 안지고 혼자 사는 그런 태도로 일관하고, 혼자 살기로 선택해놓고 또 밤마다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고, 이러면 이게 괴로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 인생살이에서 이렇게 괴로운 게 왜 일어나는지, 한번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다 이런 생각이 많습니다. 근데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다 자기 살기 바쁜데 나 괴롭히려고 그렇게 마음먹고 계획적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별로 없어요. 다 자긴 자기대로 살아요. 그런데 내가 상처를 입으니까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자꾸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이 엄마가 아이 때문에 힘들다, 괴롭다’ 할 때 왜 힘이 드냐고 하면,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요. 그럼 어떻게 하면 해결이 돼요? 애 공부 잘 하면 해결이 되겠죠. 그런데 엄마 괴롭히려고 애가 공부를 안 해요? 그건 아니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기 사정이 있어 공부를 안 할 뿐인데, 엄마는 그걸 가지고 애가 나를 괴롭힌다 이렇게 생각해요.nbspnbspnbsp 남편이 술을 먹어 괴롭다 하는 사람들도 그래요. 남편이 나를 괴롭힌 건 아니잖아요? 자기가 그냥 술을 먹을 뿐이지요. 그런데 내가 남편이 술 안 먹었으면 좋겠다 하는 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가 괴로운 거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 괴로운 걸 다 남 탓이라고 하는데, 남 탓이라면 남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을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 인생이 늘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내 문제다, 나를 고치면 된다, 이렇게 알면 쉽습니다. ”nbspnbsp 이렇게 시작된 법문은 7분의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습니다.nbspnbsp 첫번째 질문은 나이가 50인 엄마가 남편도 성실하고 딸이 셋인데, 4살짜리 늦동이를 낳고부터는 늘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며, 그때마다 스님 책을 읽으며 가라앉히곤 하는데 이런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물었고, 두번째는 이 세상에 종교가 여러가지 있는데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고 왜 그리 싸우는지 물었습니다. 안철수의 멘토라고 알려진 법륜스님께서는 시대적인 대전환기에 안철수를 겪어보니 어떤지, 안철수 의원이 앞으로 잘 할 수 있을지 묻는 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골이 깊어진 엄마와 언니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질문, 완벽주의자인데 담대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분, 건강상 일을 쉬다가 재취업 준비 중인데 자신감이 없어서 고민인 분의 질문과 답변을 듣다보니 정해진 강연 시간은 금새 지나갔습니다.책사인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신 스님께서는 광주강연장으로 떠나셨습니다.nbspnbsp 조금 일찍 광주 남구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서 행사장 접견실에서 김밥으로 저녁을 먹은 후 광주지역 시민단체 대표 인사와 만난을 가진 후 강연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 광주강연장은 유난히 많은 봉사자들이 밝게 맞아주셨습니다. 작년까지는 봉사자 수가 적어서 행사 치루기가 버거웠는데, 올해는 신규 봉사자가 늘어나면서 기존 봉사자들은 뒤로 물러나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유난히 불교인이 적은 광주에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402석 좌석에 600명이 넘는 관객들 입장으로 차가운 계단에 앉아서 경청하는 시민들에게 죄송했습니다.nbspnbspnbsp 이상고온현상으로 100년만에 서울에 핀 3월의 벚꽃 이야기와, 전남도지사님과 나눈 가축들의 반환경적 반생명적 사육과 그로 인한 폐해에 대해서, 가축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생명답게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권리가 있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인간의 오만으로 조류독감, 돼지인플루엔자, 광우병 같은 가축들에게 일어나는 질병들은 가축들을 너무 반환경적으로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염된 독성이 있는 고기를 먹으면 사람 또한 더 거칠어지고 사나워집니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닭 인플루엔자인 AI가 개한테 감염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 사람에게까지 감염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nbspnbsp앞으로 인류가 큰 위기에 처하는 것은 사실 핵전쟁도 아니고 가장 작은 존재인 바이러스에 의해서 인류문명이 멸망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배고파서 먹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엄청난 생명을 살상하고. 함부로 버려서 오염을 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욕망이 단기적으로는 인간문명의 발전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인간을 스스로 파멸로 이끌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 소비에 너무 끌려 다니는 것보다는 친환경적으로 자연 속으로 돌아가서 조금 느리게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것이 인류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고, 우리가 사는 삶을 조금 더 오래도록 지속가능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nbspnbsp 밖에서 따뜻한 봄이 오듯이 마음도 따뜻한 봄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을 써야 마음의 봄을 맞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제가 62세인데 살아보니까 젊었을 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게 꼭 맞는 것 같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정할 수는 없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늘 선택을 하고 선택을 했을 때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선택은 쉽사리 하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하니까 괴로움이 생깁니다. 이것을 불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인연과보라고 하는데, 인연을 지었으면 지은 인연대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좋은 인연을 지었으면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고, 나쁜 인연을 지었으면 나쁜 과보를 받을 것인데, 좋은 인연은 안지어놓고 좋은 과보는 받고 싶고, 나쁜 인연은 지어 놓고 나쁜 과보는 받기 싫어하기 때문에, 즉 삶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워지고 복잡해지게 되는 것입니다.”아무 부족함이 없는 환경임에도 13년째 커피중독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우울증, 불안, 대인기피증까지 겪고 있는데, 알콜중독의 아버지와 화가 많았던 엄마 영향인 것 같다. 커피는 탁 끊으면 되고, 부모님에게 참회기도하라고 할 스님의 답변을 예상하면서도 질문드린다는 첫질문으로 즉문즉설은 유쾌하게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두번째 청년은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에 화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려고 노력중인데,nbspnbsp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화가 난다고 학교에서 배우고 나니 화가 올라올 때 머리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묻는 분,nbspnbspnbspnbspnbspnbsp영어학원을 운영한다는 20대 후반의 여자 선생님은 불안정한 심리상태의 학생들에게 영어공부보다 심리안정을 위해 노력하는데, 학생들은 소통도 잘되고 좋아하지만 학부모님들과는 관계가 불편해진다며, 학부모와도 잘 지내는 방법을 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고3 아들이 스트레스로 짜증이 심해서 시골학교로 전학을 하거나 학교를 쉬게하고 싶은데 그말도 듣지 않아서 힘들다는 엄마의 질문이직을 할 때nbspnbsp임금보다는 사람을 중요시하여 선택해왔는데, 맞는 것인지 묻는 30대 젊은이,nbspnbspnbspnbspnbsp불행한 결혼을 많이 보아와서인지 결혼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여자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인 청년,nbspnbspnbspnbspnbsp노인복지와 관련된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려고 하는데, 지금의 첫 마음을 변질되지 않게 조언을 바라는 청년대학생의 질문,nbspnbspnbspnbspnbsp2년 연애 끝에 결혼한 지 2달이 되었는데, 결혼 예단에서부터 부딪쳤던 직설적인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으로 결혼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새댁까지 총 10명의 질문자에게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통쾌하게 궁금증을 풀어주시는 스님 법문을 들으며 많이 웃고 많이 끄덕거렸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 중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하며 직장을 나가더라도 어린아이를 업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스님 말씀을 듣고 너무 반가워서 스님의 강연장에 아이를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유아는 입장할 수 없다고 하여 서운했다는 아이엄마의 질문의 답변내용을 간추려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 문제로 내부 토론이 된 적이 있습니다. 스님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게 아기 엄마들에 대한 강의인데, 아기가 울거나 뛰어다니거나 했을 때 전체적인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으니, 아기 엄마들을 위한 다른 방이 있어서nbspnbsp아기를 보면서 영상으로라도 강연을 들으면 좋은데 우리나라 강연장 중에 그렇게 갖춰진 적당한 곳이 없습니다. 이전에 마포구에서는 아예 아기 엄마들만 초청을 해서 아기를 업고 안고 질문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좀 소란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 법문을 아기가 듣는 것도 아닌데, 아기가 왜 왔는지 불만을 얘기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날은 강연이 아기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거니까, 들러리로 오신 분들은 불만을 얘기하면 안된다고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는 아기들이 오면 답답해서 울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강연의 집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질문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되물으니 질문자는 “스님 말씀 듣고 회사 세미나에도 애들 데리고 갔는데 스님강연에도 애를 데려 오도록 하면 안 됩니까?”고 답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아이들이 좀 떠들더라도 아이 데리고 와서 듣는 게 좋겠는지, 아니면 강연에 집중이 안되니 그래도 아이들은 못들어오게 하는게 좋겠는지 손을 들게 하셨습니다. 600여명의 관객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이 강연장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손을 든 것을 질문자에게 확인시켜 주시면서, 소수이긴 하지만 아이 엄마들도 강연을 들을 수 있고, 대중의 뜻도 존중할 수 있게, 강의장을 마련할 때 다른 방에 모니터 장치를 놓는 등 시설을 최대한 갖추도록 검토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질문자는 합장인사로 답변에 수긍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새로운 100년을 읽었다는 한 청년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선언과 독일 방문 후 통일독일이 우리의 모델이라고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봄처럼 통일이 금방 올 것 같은데, 한반도 주변의 군사훈련 등 남북한과 주변국들의 현실과는 맞지 않아서 헷갈린다며 현 정부의 통일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통일이 빨리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통일이 되면 경제적 이익과 평화, 그리고 민족의 자주를 확보하는 등 여러 이익이 있으니 통일은 대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대박이 되려면 평화통일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릅니다. 힘이나 전쟁을 통해서 통일을 이룰려고 하면 엄청난 희생과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통일이 대박은커녕 쪽박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남북관계를 보면 평화적 이행 경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평화적 이행경로가 안주어진 상태에서 대박이 나는 통일은 될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한의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보다 먼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신뢰를 쌓자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원수들 사이에 신뢰를 쌓으려면, 한꺼번에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풀어가야 합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지원하겠다고 하면, 상대가 비핵화를 안 하겠다고 나왔을 때 아무 문제도 풀 수 없게 됩니다. 천안함도 마찬가집니다. 북한이 사과를 먼저 해야 우리도 대화를 하겠다 이러는데 북한이 사과를 못하겠다고 하면 아무런 대화도 진전될 수가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아무런 전제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 조건 없는 만남 속에서 사과를 받아내든 비핵화든 요구할 수 있는데, 우리가 괜히 전제를 먼저 내거는 바람에 북한한테 결정권을 줘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북관계에 있어서 통일을 주도해 가려면 우리 정책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든 저렇게 나오든 우리가 그것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전제를 붙여버리면 거꾸로 우리가 북한에 메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독일 방문을 통해서 독일이 어떻게 통일대박을 이뤄냈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첫째 동서독 간의 평화를 유지했고, 둘째 유리한 서독 쪽이 동독을 포용하고 지원해줬습니다. 그 결과 동독 사람들이 교류 후 20년을 지나놓고 보니 동독이 이만큼이라도 잘살게 된 것이 서독의 덕임을 알게 되었고, 동서독이 통합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가 있겠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주도권을 잡으려면 포용을 해야 합니다. 포용이라는 것은 북한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쪽의 이익을 우리가 담보해줌으로써 저쪽 민심을 사로잡고, 그 결과 북한 민심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이 지금처럼 계속 대치하고 싸운다면, 전쟁을 하거나 영구 분단으로 가거나 두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평화적이어야 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포용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저도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통일대박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인도적 지원을 확대해나가고, 평화적 교류협력을 확대해서 국내 정치적으로는 설령 진보보수 대립이 되더라도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 통일에 대박을 가져 오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런데서 너무 비판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조금 더 지켜보고, 안 되면 그렇게 되도록 우리가 노력해서 힘을 합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마무리 말씀에서 “바깥에 온 봄만 누리지 말고 자기 인생의 봄을 누려야 합니다. 어제 부도가 났든 암선고가 났든 자꾸 따져서 나를 불행하게 만들면 나만 손해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안된다고 이유를 붙이지 말고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 밥 안 굶어서 행복하다. 몸과 마음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내보내서 인간관계도 사업도 잘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청중들을 격려하며 광주 강연을 마쳤습니다. 예정시간인 9시가 지나도록 자리를 지킨 광주 시민들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를 힘차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장 로비 한 가득 줄을 선 분들에게 일일이 서명해주시고는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촬영까지 마쳤습니다. 강연장을 나서자 건너편 벚나무에선 하얀 꽃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밤의 벚꽃 운치를 만끽하며 서울로 향했습니다.

2014.04.01. 14,722 읽음 댓글 4개

2014.3.30. 정토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자 직무교육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5시 두북에서 출발하여 7시 30분 경에 문경수련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해서 바로 아침공양을 드신 후 8시부터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직무교육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 어제부터 대수련장에서 1박2일로 진행되고 있는 2014년 정토 불교대학·경전반 담당자 직무교육에는 전국에서 모인 불교대·경전반 담당자와 활동가들 237명이 운동장만큼 넒은 대수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출석률을 높여라하는 주제로 모둠토론 후 발표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조용히 맨 뒷자리에 앉아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들의 출석률 높이기와 재미난 봉사활동 등 재치있는 아이디어와 끼가 넘치는 노래와 율동 발표를 함께 보셨습니다.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정리 말씀을 하기 위해 맨 앞자리로 나오시자 집중해서 발표를 듣고 있던 참가자들은 스님을 보며 깜짝 놀래며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정토불교대학에서 봉사의 핵심은 내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남이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내가 가진 능력이나 기술을 남이 필요할 때 돈을 받고 팝니다. 그러나 내가 필요한 것을 할때는 돈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nbspnbspnbsp 자원봉사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 봉사를 하는 가르침의 요지는 지금까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어진 것을 내 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nbspnbsp 나와 너가 별개일 때는 나는 나고, 너는 너였는데, 나와 너는 서로 연관되어져 있어 근본 뿌리는 하나라는 것이 연기법입니다.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무지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봉사를 하고 나선 인사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아직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진정한 봉사는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보시가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지의 상태에서 개별 존재관에 너무나 습관화 되어있기 때문에 불교공부, 깨달음의 장을 통해 연기법의 이치를 알고, 봉사를 통해 몸과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실천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에서 하는 봉사는 부차적으로 붙은 활동이 아니라 실천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적인 교육입니다.nbsp새롭게 담당자를 맡아 봉사를 하는 사람부터 정토회의 오랜 활동가들에게까지 주인이 되어 봉사하는 자원봉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시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잠시 휴식시간에는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문경수련원을 여기저기 둘러보셨습니다. 요사체 뒤편으로 해서 대웅전으로, 다시 감나무 길로 쭉 돌아보시면서 예전에 비해 많이 정비되어 있다고 하시면서도 아직 몇가지 정비가 덜 된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스님의 법문에서nbspnbsp우리가 부처님 말씀인 경전을 읽으면 2600년 전에 한 말씀인데도 옛날 얘기라서 쓸데없다 이렇게 얘기 안하지 않습니까? 다만 오래되어서 경전만으로는 불법 전달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나 여러분들 또한 저를 대신해서 불교대학생들에게 보완을 해줘야 합니다.nbspnbspnbsp 지금까지는 불교대학 담당자가 학사관리도 하고 조직관리도 했다면, 앞으로는 불교대 담당자는 학사 관리를 주로 하고,nbsp학생들에 대한nbsp관리는 모둠장이 합니다. 라고 불교대학 담당자의 위상을 세워주었습니다. 새롭게 정리한 역할 분담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쉽게 설명해 주셨고 담당자들에게 앞으로 좀 더 불교대학이 발전하기 위해 수업 모니터링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nbspnbsp “모둠장을 세운 것은 중간에 떨어지는 사람을 줄여 불법 인연된 사람을 함께 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불교인이니까 불교의 의식이 있지만 그렇다고 불교라는 종교를 너무 강조하거나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지도 않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던지 마음공부를 같이 하고 사회적 실천을 같이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불교라는 종교와 조계종이라는 종파를 뛰어넘어야 하겠습니다.”nbspnbsp “정토회 안에는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정토회는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어있는 재단법인이며, 정토법당은 조계종의 포교원으로 등록되어있고, 평화재단과 좋은벗들은 통일부에, 한국JTS는 복지부에, 에코붓다는 환경부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해외지부는 내용적으로는 한국 정토회의 지부이지만 각 나라의 정토회는 독립된 정토회로 그 나라 정부에 각각 등록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정토회는 특정 종교단체라고도 할 수 없고, 특정한 종단소속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포괄적입니다. 성당에 가면 성당의식을 따르고 교회 가면 교회의식을 따르듯, 어떤 종교를 믿든 자유지만, 정토불교대학에 온 학생은 불교 문화, 불교 의식을 따라야 합니다.”불교의 전통은 스님은 법보시를 하고 재가자들은 재보시를 합니다.재보시는 전통입니다. 불교대학 입학금을 내었는데 또 왜 강의 끝나고 정근 보시 시간을 넣느냐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돈을 내고 안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법회에 참석을 하게 되면 법을 들은 기쁨의 표시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담당자가 보시 시간을 없애자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자기 마음이 잘 안내키면 마음에 내키는 만큼 백원이든 천원이든 기쁜 마음을 표시하는 보시를 가르쳐야 합니다.라며 불교 문화, 불교 의식에 대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셔서 담당자들이 불교문화에 대해 불편해하는 학생들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짚어주셨습니다.nbspnbsp 우리 정토회가 그동안에는 바깥에 별로 큰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에 기대를 거는 사람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정토회가 밖에 너무 좋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토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 이럴 때일수록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북한돕기도 남에게 하라는 것 보다는 우리부터 모금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고 해외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3월초에 인도사업장에 일주일 동안 다시 가서 살펴보면서 문제가 뭔지 점검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소문을 듣고 굉장하다 싶어 직접 가보면 별거 아닌 단체가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되도록 수행자답게 내실을 기해가면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착실하게 해가면 좋은데 그런 일을 책임지고 일선에서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정토회에 들어온 지 일 년 밖에 안 된 신출내기들도 많지만, 정토회에 처음 온 불교대학생이 볼 때는 정토회의 얼굴이고 정토회를 알려주는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정토회가 하는 일이 됩니다. 게으른 사람도 좀 부지런해야 되고 자기 식대로 가르치려는 사람은 자제를 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 여기 있는 우리가 최일선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최전방에 배치된 사람들이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고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잘 극복해주시기 바랍니다.스님 법문이 끝난 후 사회자는 어제는 봄비를 촉촉이 맞았는데, 오늘은 스님의 법의 비를 촉촉이 맞았습니다.라며 멘트를 했습니다. 담당자들 모두 함께 흐뭇한 얼굴이었습니다.nbspnbsp 법문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각자 집에서 싸온 반찬과 수련원에서 준비해준 밥과 국, 과일을 내어놓고 점심 공양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대수련장 대청소와 솔숲 솔잎 쓸기, 대웅전 옆 막힌 수로를 뚫는 작업을 했습니다. 봉사에 대한 스님 말씀을 들은 후 하는 작업이라 그런지 다른 어떤 때보다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 일처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점심 공양을 한 후 다시 참가자들과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한 젊은 법우의 질문입니다. 반야심경을 한글로 할 수도 있습니까?스님께서는 용성스님께서도 그 당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고 법당에 찬불가를 가르쳤습니다. 이름도 불교라고 안하고 한글로 해석해 대각교라고 불렀습니다. 불교 탄압 500년 동안 스님이란 말도 너무 천해져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기성불교로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의지는 좋았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2,30년 전에 반야심경과 예불문을 한글로 바꿨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꿔버리니까 조계사, 해인사의 아침 조석 예불도 따라할 수 없어 불교의 문화적 공통점이 없어져버려 다시 예불문과 반야심경은 한문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회원이 점점 더 많아져서 문화적으로 기존의 불교와 공통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그때는 다 한글로 바꾸고 재 지내는 것도 현대식으로 바꾸어봐도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식으로 하되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 또 다른 담당자 질문이었습니다.호칭에 관해서 정토회에서는 결혼한 여자는 보살, 결혼한 남자는 거사라 부르고 결혼 안한 사람들은 법우라고 부릅니다.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 중에도 독신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살이라 부르기는 그렇고 어떻게 불러야할까요?스님께서는 보살이라는 말은 법우보다 백배 높은 말입니다. 스님보다도 보살이 지위가 높습니다. 중국에서 원효대사는 원효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nbspnbsp법우를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도 실례가 안됩니다. 그러니까 청년에 속한 사람들은 법우라 부르고 일반은 보살, 거사라고 부르면 됩니다. 그러니 청년 대학생회 소속이면 법우라 하고, 일반법회 소속이면 젊어도 보살, 거사라 칭하면 됩니다. 결혼 유무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보살과 거사는 굉장한 존칭어고 법우는 도반이란 뜻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nbsp궁금한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대구경북 지부 사무국 전법팀 소속으로, 울진지역 불교대를 개척하기 위해nbsp다니는데 야간이다 보니 시간에 쫓겨 과속할 때가 많아 심적으로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환불기간 이후에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된다고 하면 정토회를 비난하기도 해서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경전반 다니면서 불대 담당하다보니 많이 부족한데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재밌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학생들이 모듬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분, 청년정토회와 청년포럼이 청년불대의 주축인데 청년포럼의 경우 나누기가 잘 안되고 불대모임보다 청년포럼 행사 등이 우선시 되는데 청년포럼 소속 불대생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카톡방이 너무 많아서 조금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분, 소통의 과정에서 시간 여유없이 행정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개선을 건의하시는 분 등도 있었습니다.스님께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오늘 참가한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5주째 불교대 강의 전에 나갈 격려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불교대 운영에 대해 말씀을 나눈 후 저녁 공양을 드시고 저녁 6시부터는 법사단 회의를 가졌습니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법사단 회의를 마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내일은 목포, 광주 강연이 있습니다.

2014.04.01. 14,203 읽음 댓글 3개

2014.3.29. 경주남산 답사

스님께서는 어제 남양주 강연을 마친 후 울산 두북으로 출발해서 오늘 새벽 1시 30분이 되어서 도착했습니다.nbspnbsp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지난주에 심었던 열무, 상추, 쑥갓이 이제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어제, 그제 계속 날이 따뜻하다 보니 예상보다 빨리 싹을 틔우는 것 같습니다.잠시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서 스님께서는 남산 답사 일정을 잠시 뒤로 미루고 오전에는 원고교정등의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점심공양을 하신 후에도 계속 비가 내려서 남산 답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시다가 오늘이 아니면 남산순례때까지 답사할 시간이 없다고 하시며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산으로 올랐습니다.nbspnbsp 다른 곳은 이미 답사가 다 이루어진 상태인데, 칠불암과 천룡사 코스로 와서 이영재를 넘어 통일전쪽으로 오는 길중에, 천룡사에서 백운재로 넘어와서 이영재로 갈 때 용장계곡 아래까지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이영재로 넘어가는 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스님께서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대중들이 갈 수 있는 길인지 확인겸 해서 답사에 나섰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용장골에서 올라가면서 멀리서 용장사 삼층석탑을 보며 참배를 하였습니다.용장계지곡삼층석탑까지 가는 길도 다시 답사하면서 대중들이 갈 수 있는 길인지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원래 산정호수에서 석탑까지는 대중들이 갈 수 있는 길인데, 백운재에서 석탑까지 바로 질러 가는 길이 있는지 점검하면서 올랐는데, 그 길은 소수 사람은 갈 수 있어도 대규모 사람은 가기 어려울 것 같아 다시 내려와서 석탑에 참배하고 다시nbspnbsp많은 대중들이 갈 수 있는 길을 확인하며 다시 올랐습니다.nbspnbspnbsp 이영재로 질러 가는 길을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중간에 무덤이 있고 길이 막혀 있어 다시 되돌아가면서 걸었습니다. 좀 더 가다보니 지름길이 있어 그 길로 이영재까지 올랐습니다.이길은 스님도 처음 가는 길로 가는 중간중간에 진달래가 만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중에 진달래가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입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꽃들이 2주나 빨리 피었습니다. 아마도 다다음주 진행될 경주남산순례때는 진달래도 지고 모든 꽃들이 지고, 잎들만 무성할 것 같아 봄을 맞이 한nbsp화사한 봄꽃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 이영재를 올라 다시 통일전으로 내려오면서 오늘의 답사를 끝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비와 땀에 옷이 흠뻑 젖었습니다. 감기들지 않도록 젖은 옷을 벗고 겨울스웨터를 차안에서 갈아입고 급히 돌아와 샤워를 하였습니다.nbspnbsp 늦은 저녁 공양을 하시고 남산순례 코스를 최종확정 지으시고 남산교재 만드는 원고를 교정하시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불교대 담당자 직무교육이 있습니다.

2014.03.30. 13,418 읽음 댓글 5개

2014.3.28. 희망강연 - 원주, 남양주

오늘은 2014년 첫 희망강연이 원주와 남양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원주강연에 앞서 오전 7시부터 외부인사와 조찬모임을 가진 후 원주 상지대로 출발하셨습니다.지난 원주법회 정초기도법회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보살님께서 스님 앞으로 나와서까지 질문을 하셨는데, 그 법회 후 노보살님께서는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직접 찾아오셔서 보시를 하고 가셨습니다. 노보살님께서는 스님을 직접 뵙지 못하여 많이 아쉬워하셨는데, 오늘 원주 강연전에 잠시 스님과 만나서 인사를 하셨습니다.원주 상지대 민주관에서 진행된 강연에는 약 350석의 강당에 450여명이 참석하여서 좌석이 모자라 바닥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들어야 했습니다. 강연장소가 학교라서 그런지 오전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의 참여가 높았습니다.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를 같이 합창하며 나의 부정적 사고방식을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바꿔야 함을 되새기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첫 번째로 대학교 일학년 남학생이 양성애자인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일반적 상식이 때로는 편견이 되어버려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세상이 정해 놓은 정체성에 맞춰 자신을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며 성적취향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적인 편견에 대해서도 우려하시고 이제는 세계시민의식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명의 아이를 키우는 30대 주부와, 고등학생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의 질문으로 교육문제에 대한 이야기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모두 8분의 질문이 이어졌고 스님께서 답해주셨습니다. 그 중 사촌 오빠에게 여러번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40대 여성분은 “기본적으로 남자에 대한 기피나 거부감 같은 것도 심하고 사춘기 때도 특별한 이유 없이 아빠를 미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집착으로 오년반 만에 결혼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칠년 정도 지나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결혼이라는 것을 다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어서, 그냥 함께 살고 있고 저희들만의 간단한 결혼식은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일 때문인지 요즘도 악몽을 꾸고, 꾸고 나면 옛날로 돌아 갈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나랑 별로 상관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수시로 일어나고, 우리가 결혼했다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스님께서 괜찮타고 위로의 말씀을 해 주시면 괜찮아 질 거 같습니다.” 라며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nbsp“현재의 조건은 문제가 없지만, 과거의 상처들이 다시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현재도 괴롭게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어떠한 경험이 있었든, 지금 나는 행복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 때문에 새로운 불행을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nbspnbsp‘모든 것은 내 문제다.’ 라는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나를 위해 살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종업원으로 채용한 것도 그 사람이 좋아서 한 것이고, 내가 그 회사에 취직한 것도 내가 좋아서 한 것이고, 내가 누구하고 결혼한 것도, 내가 좋아서 한 것입니다. 질문자는 자꾸 다른 사람이 나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계속 자신과 만나는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입니다.사촌오빠의 행위는 굉장히 나쁜 행위지만, 그 오빠가 중학생 나이에서 자신의 성적인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가지고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지, 꼭 나를 괴롭히려고 그런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주는 사람도 나를 좋게 해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좋자고 그런 것입니다. 나에게 해를 주는 사람들도 자기 좋자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모든 세상 사람을 다 가해자로 보고, 나한테 잘해주면 좋아하고, 또 조금만 내 마음에 안들면 원수가 되어버립니다.nbsp자기 치유를 하지 않는 이상은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남을 탓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됩니다. 자기의 이런 경험이 계속되면 갈수록 증오심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하고도 관계가 틀어지고, 또 새로운 사람 만나면 관계가 또 틀어지고, 이제 나이 들면 들수록 원수만 자꾸 늘어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지금 질문자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이런저런 과정을 겪었던 안겪었던nbspnbsp‘살아있으니까 행복하다.’ 이걸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건강하니까 행복하다. 과거에 그런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가 있다.’고 항상 생각하며 지금을 중시해야 합니다. 과거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려면 ‘나쁜 짓 했지만 봐준다.’ 라는 용서가 아니라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고 이해를 할 때, 그게 내 상처가 치유되는 거고, 그게 용서입니다. 그래서 참회라는 것은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당신을 이해를 못해서 미워하게 되었는데 이해를 하게 되면 미워할 일이 없구나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를 해야되고 그래서 자기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야 됩니다. 혼자서 힘들면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사람 처지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라는 이해를 하는 마음을 내게 되면, 내 상처가 치유가 됩니다. 내 상처가 치유가 되면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피부가 검어서 나는 안된다, 신체장애라서 나는 안된다, 과거에 성추행 경험이 있어서 나는 안된다, 중학교 밖에 못나와 나는 안된다.’는 것은 자기의 괴로움을 합리화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돌이키고 그런 것들이nbspnbsp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 과정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걸 위로 받으려고 그러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금 같이 사시는 분도 시간이 지나면 지치게 됩니다. 늘 비위맞추고 보살펴야 되면 언젠가는 지치게 되고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스스로 자기를 치유하고 내가 스스로 행복해져야 함을 다시 말씀해주셨습니다.그리고 서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성분이 대화의 기술에 대하여 질문하셨는데 이런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고 하시면서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대화의 기술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첫째,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그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화가 안 일어납니다. 이럴 때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 나면 저걸 어떻게 반박할까만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사람 얘기는 그 다음 부터는 하나도 안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대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은 서로 주고 받지만 대화는 안됩니다. 항상 자기 얘기를 상대에게 강요하게 되지요. 여러분들은 음식 차려놓고 ‘식사하세요.’ 이러는데, 이거는 사실 명령어입니다. 그래도 안오면, ‘안드실꺼예요? 치워요?’ 이렇게 나가잖아요. 그래서 항상 경전에는 ‘부처님 식사때가 다 되었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 그니까 먹고 안먹고는 당신의 자유인데, ‘우리는 준비가 끝났으니 당신이 드실려면 드십시오.’ 하고 그 사람한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다 ‘내가 널 사랑하니 너도 날 사랑해. 내가 널nbspnbsp사랑하는데 니가 감히 날 사랑 안해...’ 그래서 사랑해서 다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널 사랑하는 건 내 자유지만, 그 사람이 날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여러분들의 욕망대로 하려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눈치보고 속박 받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다. 내 이야기하고, 들어보고, 그래서 공통점이 있으면 공통점을 확인하면 되고, 공통점이 없으면 서로 다름을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걸 일치 시켜야 된다 하고,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 다른 가운데 공존할 수 있는 합의점이 나온다는 것입니다.문제는 자기식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합의점을 못찾는 거예요. 똑같아야 하거나 타협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타협중에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깐 두 가지만 가지고 대화를 하면 됩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이해하는 것입니다.”상대와 함께 대화를 하게 될 때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대화가 된다고 조언해주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 하면서 ‘첫번째 화살은 맞을지언정 두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주시며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를 모두 합창하며 두시간이 조금 넘는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강연 후 사인회를 한 후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밥을 드시고 오후 2시30분부터 행정처 국장단, 부장단, 8개 지부사무국장님들과 함께 정토회 조직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셨습니다. 제8차 천일결사 기간 동안 지역별 모둠활동과 정토불교대학생들의 자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예정인데, 이에 발맞추어 조직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의견도 수렴하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갈래도 잡아주시면서 전체적인 점검을 해주셨습니다. 오랜만에 8개 지부에서 사무국장님들이 모두 올라와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 더 의미 있는 회의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안건은 다음에 다시 회의를 잡아서 계속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스님께서는 다음 모임을 위해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남양주로 출발하셨습니다. 만남이 조금 늦어져서 남양주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공양을 드셨습니다. 오늘은 점심 저녁 모두 차안에서 먹는 날인가 봅니다.nbspnbsp남양주시청 다산홀에서 진행된 2014년 두 번째 강연은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강연장을 찾아주시는 발걸음들이 이어져 350여 석의 강연장에 약 450여명이 참석하여 꽉 찬 채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에 이어 두 번째로 남양주시청을 방문해주신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올해 강연에는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서 좌석에 앉지 못하고 통로 계단에 앉거나 서서 강연을 듣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을 받기에 앞서 우리의 삶과 행복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좋아하고 괴로워하고 이렇게 살다보면 인생살이에서 늘 ‘고’와 ‘락’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윤회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해탈과 열반의 경지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현실에서의 우리 인생살이의 과제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 없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나를 늘 고민하며 돈과 명예, 권력, 인기를 추구하지만 그 길에서는 만족에 이를 수 없어 힘들어 합니다. 그러면 정말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가 문제일까 이런 걸 우리가 한번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오늘 남양주 강연에서는 총 여덟 분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경제력과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하루의 대부분을 게임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남편으로 힘들어하는 결혼 10년차 주부의 고민, 남편의 주사로 괴로워하던 고등학생 딸이 방황 및 가출을 하더니 스무 살이 넘어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도 가출을 하여 한참 동안 소식이 없어 걱정하는 어머니의 고민,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착하고 돈 많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였으나 나이부터 경제력, 집안 등을 모두 속인 남편에 대한 불신감과 친정 식구들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임산부의 고민, 네 번째로 태어난 아이의 심각한 장애로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양육의 문제로 떨어져 지내는 것 또한 괴로운 어머니의 고민, 여러 차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떨어져 그 역량을 키우고 민심을 얻는 방법에 대한 지혜로운 조언을 구하는 선거후보자의 고민, 교만심에 계속하여 좌절을 겪는 젊은이로서 자비심 있고 사랑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구하는 고민, 절을 지날 때마다 절을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절 대신에 집에서 절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여성분의 고민, 현재 희귀암에 걸렸으나 자신의 남은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밝게 살고 있지만 주변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냉정하게 굳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젊은 여성분의 고민 등 다양한 고민들을 스님께 여쭈었고, 그에 대한 자상하고 명쾌한 스님의 말씀을 참석한 분들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인지력도 거의 없고 식물인간처럼 살고 있는 다섯 살 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힘들고 가슴 아파하는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넷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재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심신이 황폐해지고, 물심양면으로 아이를 위해 도와주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뵈면 너무 죄송스럽고, 부부는 아이의 치료비를 위해 아이와 떨어져 서울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이를 생각하기만 해도 너무 가슴이 아파 다른 가족들에게 어두운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들이 괴로운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라며 스님께 여쭙는 사연이었습니다.nbsp이에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이기에 내가 괴롭다 하는 것은 자기의 문제입니다. 내가 정상적으로 건강한 아이와 비교하고 그 아이의 상태가 좋게 나아지기를 바라니까 마음이 힘든 것입니다.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더 이상 그 아이의 상태를 고친다 생각하며 욕심 부리지 말고 그 아이에 맞게 돌보는 게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아이를 맡게 되면 혼자서 또는 한 가정이 돌보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nbsp또한 어머니로서 내가 돌보는 것보다 전문가가 돌보는 게 그 아이를 위해 더 낫다면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내가 힘들어서 그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어떤 것이 더 좋으냐를 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 안전망으로서 사회가 공동으로 아이를 책임지고 치료하고 돌본다는 의식이 필요하고,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문제가 있어 안쓰럽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아이에게는 오래 사는 것보다 사는 동안만큼은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사는 동안만큼은 내가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은 최대한 뒷받침해주겠다는 이런 생각으로 아이를 대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아이가 불행해집니다. 이런 상태라도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하고 사회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가 도움을 받고, 치료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다만 너로 인해 행복했다 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가기 바랍니다.”nbspnbsp그 어머니의 가슴 아픈 심정을 함께 나누며 스님의 말씀 듣고 힘내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 모두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강연 후 스님의 책 사인을 받고자 길게 줄을 선 많은 분들과 스님을 가까이 뵙고자 몰려든 분들과 함께 책 사인회를 하셨습니다. 시원하고 명쾌한 강연에 감탄하며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모습들 속에서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남양주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은 스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은 후 성공적으로 마친 강연장의 뒷정리를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남양주 강연을 마치고 울산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내일은 4월에 있을 경주남산순례 코스 중 천룡사 코스에서 길을 돌아가지 않고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는데, 정확하지 않아서 다시 답사할 예정입니다.오늘 원주강연은 백승희님이, 남양주강연은 남양주법당 이선민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4.03.29. 13,893 읽음 댓글 4개

2014.3.27. 서암대종사 열반 11주기 추모법회 참석

서암대종사의 열반 11주기 추모법회가 문경 봉암사에서 있었습니다.아침 7시에 서울에서 문경으로 출발하여 9시경 봉암사에 도착해서 먼저 서암 큰스님의 부도탑에 참배하였습니다. 서암 큰스님은 정토회가 스승님으로 모시는 분으로 서암 큰스님께서는 세수 90세로 열반에 드셨고, 올해가 열반 11주기가 되며 탄생 101주기입니다.nbspnbsp 기념법회를 마치고 봉암사에서 준비한 비빔밥을 먹고 난 후 스님께서는 오랜만에 만난 스님들과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오후 3시에 봉암사를 떠나서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오후 6시부터 오늘 평화리더십아카데미 강사인 최상용 교수님과 저녁식사 일정이 있었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오신 최상용교수님과 스님께서는 함께 공양을 드시고 교수님은 강의장으로 향하셨고, 스님께서는 기획위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기획위 모임에서는 곧 다가 올 지자체 선거로 인해 양대 진영으로 국론이 분열된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이 된다 해도 통일의 흐름을 만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통일로 가는데 도움이 될지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 내일은 2014년 첫 희망강연으로 원주 상지대와 남양주에서 있습니다.

2014.03.28. 12,259 읽음 댓글 5개

2014.3.26. 원불교 평양교구 20주년 기념 세미나, 포스코 청암상 시상식 참석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1시가 넘어 도착하셔서 잠시 쉬셨다가 아침 7시 30분부터 북한이해와 현실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모임은 최근의 북한 동향을 파악하거나 국내외 주변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밀도 있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입니다.nbspnbsp 오늘은 참여한 전문가분들은 안보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과 민간차원에서는 북한 민심을 사로잡고, 내부적으로 자활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을 개발해서, 꼭 성공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요즘처럼 정세변화가 안팎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실정에,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한 정보와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연구위원들의 활약을 독려하며 다음 모임을 기약했습니다. 10시부터는 JTS 활동가들과 3월 월례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북한개발에 대한 논의와 인도, 필리핀 등 해외 개발구호 사업장들에 대한 현안 점검들이 있었습니다. 사무국 안정과 원활한 행정업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구호, 필리핀 하이옌 태풍피해 복구사업 진행상황을 현장과 한국JTS의 좀 더 긴말한 업무공유 등이 주요 논의내용이었습니다.nbspnbspnbsp 12시에는 오찬을 겸한 외부인사와의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 2시부터는 원불교 평양교구 2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원불교 100년,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이라는 주제로 스님께서는 기념강연을 하셨습니다.“내년이면 분단 70주년인데,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강대국의 패권경쟁의 완충지대도 남아 아예 분단 고착화로 가던지, 그렇지 않고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통일을 이루게 된다면 강대국의 주변국가로 전락을 하게 됩니다.nbspnbspnbsp 지금 세계는 패권 세력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점점 쇠락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 큰 세력이지만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세력교체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세력변화기에 놓여있습니다.nbspnbsp 과거역사를 보십시오.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될 때 고려의 귀족들은 친원파로 있다가 결국은 명나라의 부상을 못 봤잖아요. 그래서 소위 국내에 있는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역성혁명이 일어나서 결국 조선왕조로 바뀌었잖아요.nbspnbspnbsp 또 조선의 관료들이 우리가 오랑캐라고 무시한 여진족의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에 명나라가 질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그 청의 부상을 아무도 자각을 못하고 청나라를 무시했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우리가 청의 속국이 된 것입니다. 왜 그 수모를 겪었냐면 그 당시에 세계를 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 강대한 청이 우리가 더 무시한 일본에 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습니까? 결국은 수구파들이 끝까지 청에 의지해서 개혁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게 된 겁니다. 그리고 또 일본이 패망하고 미국과 소비에트가 부상할거라고 우리가 잘 몰랐기 때문에 또 분단이 된 것입니다.nbspnbspnbsp 종교가 인간의 지혜를 깨우친다는데 종교인들이 이런 지혜의 눈이 없다면 도대체 종교를 통해서 깨닫는다는 지혜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지혜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분단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입니다.nbspnbspnbsp 지금 우리사회의 정치라는 것이 한쪽에서는 산업화, 이미 지나버린 이야기를 가지고 울궈먹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화를 울궈먹는 두세력이 계속 지금 쟁패를 하잖습니까? 이 쟁패속에서 다음시대의 과제를 놓쳐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만 본다면 다음시대의 과제는 민주주의의 더욱 심화된, 즉 주민자치가 강화되는 분권으로 가야 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생산은 어느 정도 되어있지만 분배문제가 남아있습니다. 경제민주화라는 공정성 보장과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도의 생존권보장이라는 소위 복지사회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서 이제 남한만의 과제로 산업화, 민주화, 복지사회로 간다고 하면 만약 외부 변화가 없다면 이게 맞습니다. 근데 외부환경이 변해버렸습니다. 우리사회가 20년전에 중국과 한중수교를 하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는 양을 합해도 중국에 수출하는 양의 70 밖에 안됩니다. 이제는 경제는 중국에 의지해 있고,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그동안은 미중이 협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혜택을 입었지만, 이제는 미중이 경쟁관계에 이르면서 한쪽발을 떼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 미국이 서부개척의 시대를 만들었듯이 우리는 북한개발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넓히지 않고는 이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과거 분단되었기 때문에 통일하자고 하는 과거 상처를 치유하는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어떤 희망을 가지려면 통일이외의 다른 대안을 지금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미중이 경쟁하는 시대에 남북이 대립을 하게 되면 우리는 북한 때문에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한미일 군사동맹체제에 참여 안할 수 가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과 대결할 때 자기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까지의 주체나 자주를 다 다버리고 중국에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전락할 수 밖에 없고 미중이 경쟁하게 되면 우리는 투쟁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분단이 고착화될 위험도 있고, 안보도 결국은 위협 받게 되고 국가발전 전망도 어려운 국면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이 미중의 세력변화기에 우리가 오히려 통일의 기회를 잡아서 통일된 대한민국이 미중의 세력변화에 훨씬 더 캐스팅보드를 쥐고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단지 한반도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가 일본을nbspnbsp견인하고 중국을 견인하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출발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는 동아시아 평화의 시금석이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 사람들이 말하듯이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할때 한국이 통일되지 않고는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변화의 기회에 놓여있기 때문에 우리의 평화, 그리고 우리의 민족의 통일인 통일코리아라고 하는 것은 이제 특정이념이나 종교의 문제가 아닌 전민족적 구성원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면에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것이 통일입니다. 이런면에서 원불교가 좀 앞장 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며 원불교 100년을 맞이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앞장서 달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하셨습니다.스님께서는 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업무를 보시다가 5시 30분부터 포스코 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5회 청암상 수상자로서 이번에 행사에 참석하셔서 이번에 수상하게 되시는 분들을 축하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행사를 마치고 다시 평화재단으로 오셔서 한번의 미팅을 더 가진 후 11시가 넘어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봉암사에서 서암대종사 열반 11주기 기념법회가 있습니다.

2014.03.27. 12,715 읽음 댓글 7개

2014.3.25. 화쟁순례 23일째 - 경주

화쟁 코리아 순례단의 23일째 순례길, 오늘 화쟁 순례는 ‘원효의 땅에서 화쟁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경주일대를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nbspnbsp 순례에 앞서 한겨레신문의 요청에 의해 법륜스님과 도법스님께서 화쟁에 대한 차담이 불국사에서 있었습니다. 두분 스님께서는 경주 일대에 대한 이야기, 불국사, 석가탑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경주 황룡사가 국찰이고 불국사가 귀족사찰이라면 경주 남산은 서민들의 신앙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번 순례가 화쟁 순례인 만큼 원효스님에 대한 일화나 사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불국사에서도 1년 정도 거하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순례길은 불국사 역에서 출발해 오전에는 통일전까지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안내자가 되셔서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순례단을 이끌었습니다.nbspnbspnbsp 어제 비 예보와 달리 마침 날씨도 걷기에 알맞은 햇빛, 바람, 적당한 구름으로 하루종일 순례객을 맞이 했습니다. 오늘의 순례객들은 순천사랑 어린학교를 이끄시는 김민해 목사님과 학생들, 도법스님이 이끄시는 인드라망 대학의 학생들과 우리 정토회 참여자 40여명, 불국사 스님 8분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어울려 함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순례를 시작했습니다.불국사 역 앞에서 출발해서 통일전까지 오전 일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걷는 동안은 묵언으로 자기와의 시간을 가지고 걸음이 느린 분께 맞춰 시작 되었습니다.nbspnbsp 아기새의 부리마냥 아직 작은 벚꽃 꽃망울들이 가득한 벚나무 아랫길을 스님께서 앞서 걸으시고 뒤로길게 순례객들의 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의 앞선 걸음이 뒤사람에게 길이 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부처님 일행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선사람의 걸음에 나의 걸음을 맞추고 앞선 사람의 빠르기에 나의 빠르기를 맞춰 늦지도 않게 빠르지도 않게 조화를 이루며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화쟁’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 30분쯤 걸어서 통일전에 도착하였습니다. 통일전은 3국 통일의 성웅 문무대왕, 무열왕, 김유신 장군 3분을 모신 곳입니다. 넓은 주차장에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생명평화를 기원하며 도법스님의 음성에 맞춰 100배의 절을 했습니다. 절 명상 후 간단한 점심과 휴식을 가지고 오후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후에는 통일전에서 출발해 사천왕사지를 거쳐 선덕여왕릉, 능지탑, 황룡사지터, 분황사까지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남산 기슭에 있는 통일 전 앞에서 스님의 남산에 대한 자세한 안내로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경주 남산은 크고 작은 골짜기가 44개가 있는데, 민중불교의 대표적인 장소로 일반민중들의 신앙지였기 때문에 온 산, 온 골짜기 마다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불상, 탑, 절이 있습니다. 크게 칠불암 코스, 옥룡암 코스, 포석정 코스, 삼릉골 코스, 용장골 코스 , 천룡사 코스, 국사골 코스로 나눌 수 있는데 어느 코스든 자연상태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더불어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합의통일을 통해 신라는 국력이 급격히 신장될 수 있었습니다.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는 개방정책, 율령을 선포하는 개혁정책을 통해 가야와의 합의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영토만 넓힌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재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유신도 그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강한자가 약한자를 포용의 자세로 안을 때 화합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우리역사안에 이렇게 훌륭한 통일사례가 있음을 말씀해 주시고 다음 장소로 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 길섶에nbspnbsp아름드리 소나무와 그아래로 어린 진달래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풍경을 이루듯 순례단도 어린 학생부터 노보살님들까지 화합을 이루며 걸었습니다.nbspnbspnbsp 낭산 기슭에 있는 사천왕사는 호국사찰로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 해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나라에서 백제와 고구려 땅에 도독부를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신라에서 반발이 일어나 신라군과 당나라 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화가 난 당나라 황제는 신라공격명령을 내렸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침공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신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낭산에 사천왕사를 세워 명랑법사를 중심으로 12명의 법사들이 문두루비법을 행해서 당나라 군대를 막고자 했습니다. 스님께서 신라역사에 대해 아주 재밌게 말씀해주시니 순례객들은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집중해 들었습니다. 어린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 듯 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바람을 맞으며 올라 선덕여왕릉에 도착해 당시의 정치상황과 여성의 지위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원래 우리 전통 문화는 남녀차별이 조금 있었지만 여성의 권리가 많은 문화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선덕여왕릉에서 고개를 조금 내려가니 낭산 서편에 능지탑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시신을 화장 한 화장터입니다. 그리고 그 유골은 동해 용이 되어 적을 막겠다고 하신 문무대왕의 뜻을 기려 감포 앞바다에 뿌리고 감은사도 세웠다고 합니다. 지도자로써 나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굳은 의지였으며, 김구 선생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수위라도 하겠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최고의 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헌신성이 있어야 국력신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새겨주셨습니다.nbspnbspnbsp “강한자가 약한자를 받아들이는 게 포용입니다. 포용을 해야 화해가 됩니다. 우리가 남북한 통일을 할 때도 포용하지 않고 힘으로 하게 되면 북한주민들이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이후 국민 화합을 위해서는 통합할 때 힘이 있는 쪽에서 먼저 양보하면서 포용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다시 순례길은 이어져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빈 들과 논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매화, 진달래, 개나리가 한창이였습니다. 겨우내 묵었던 빈 논을 뒤집어 갈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마치 우리의 굳은 마음도 저렇게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 정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습니다.신라의 최고 사찰이였던 황룡사 터에 도착해서 다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신라에는 5악이 있는데 동쪽은 명월산, 서쪽은nbspnbsp선도산, 북쪽은 소금강산, 남쪽은 남산, 중악으로 낭산 이렇게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서라벌인데 황룡사는 왕궁사찰로써 처음에는 왕궁을 지으려고 터를 닦는데 아주 굵은 누런 용이 나와서 사람이 살 집이 못된다고 해서 절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황룡사입니다. 아홉 나라의 적을 막기 위해 구층탑을 세웠지만, 몽고란때 소실되었습니다. 황룡사는 남문을 거쳐 중문 구층 목탑을 지나 금당, 뒤로 강당이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이런 형태가 절의 정형입니다.nbspnbsp 옛날에는 부처님이 계시는 금당에서는 참배만 하고 법회는 강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솔거의 노송도가 바로 황룡사 금당벽화입니다. 절터만 가로 800미터 세로 800미터로 약16만평입니다. 진흥왕때 짓기 시작해 선덕여왕에 와서 완성되었습니다. 백제 아비지가 200여명의 기술자를 데려와 지은 절이기 때문에 백제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순례객들은 설명을 들으며 그 자리에 서보기도 하고 한발한발 몸으로 느끼며 분황사를 향해 걸었습니다. 분황사에서는 자장 율사께서 당나라에서 계율을 가지고 들어오셔서 주석 하신곳이기도 하고, 원효스님께서 오랬동안 주석하시며 저술활동을 하셨던 절입니다. 분황사는 여러번 큰 어려움의 고비가 있었음에도 법등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절입니다. 몽고란, 임란때 소실되었지만 오늘날까지 그 법등이 이어져 온 사찰입니다.nbspnbsp 원효스님께서 입적하신 후에는 설총이 원효스님의 초상을 모시고 평생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분황사는 남쪽으로 세 개의 금당이 있는 큰절이었고 모전석탑도 9층탑이었지만, 지금은 3층만 남아있었습니다.nbspnbspnbsp 우리가 화쟁 코리아의 뜻 깊은 행사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부처님의 자비가 충만하고 항상 평화로운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는 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의 순례일정은 끝이 났습니다. 오늘 하루 걸음걸음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상대를 받아들이며 함께 어울려 가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말없음 가운데 법을 전하시는 부처님처럼 스님께서도 묵언의 순례길에서 묵묵히 앞서 걸으시며 대중들에게 길을 이끌어 주셨습니다.오늘의 화쟁순례를 모두 마치고 분황사에서 준비해주신 저녁공양을 먹고 난 후 저녁 7시부터는 신라문화원 교육관에서 화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원효의 땅에서 화쟁의 길을 묻다’는 주제로 스님과 도법스님께서 간단히 화쟁에 대해 언급해 주시면서 즉문즉설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화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3.1정신이라고 하면 첫째 핵심이 민족의 자주독립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의 민족적 과제, 우리 모두의 최고의 과제는 마땅히 독립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독립한 국가가 어떤 국가가 될 것인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이 일순위지만, 단순히 과거의 복위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왕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 그래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상해의 임시정부 이름도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nbspnbsp 지금 우리가 분단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분단시대의 화두는 통일입니다. 통일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지방분권이 심화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정의 다시 말해서 분배의 공정성이 보장이 되는, 취약계층에게는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는 복지사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순히 영역의 확장을 통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일 한국은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들이 극복된 새로운 나라이어야 합니다. 3.1정신에서의 독립이 새로운 나라, 민국을 건설하는 거라면 지금 우리의 과제는 통일인데, 그 통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기 때문에 개인의 목표와 공동체의 목표가 같은 방향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일이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은 방향에 있거나 또는 다르지 않아야 개인의 성공과 공동체의 성공이 일치하면서 개인의 성공ㅇ이 어느날 실패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nbspnbspnbsp 우리가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진정한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작더라도 공동체를 위해 기여를 하는 것이 미래의 자신의 행복을 위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농부든, 주부든, 학생이든. 나야 농사꾼인데 나라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개인이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작은 기여라도 할 때 세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 화쟁이라는 것이 단순히 두 개를 적당하게 섞어서 타협하자는 게 아니라, 이 주장이 정말nbspnbsp바른길인지 하는 진실을 기초로 하면서도 다른이의 주장에 대해 그럴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있는 화해여야 합니다.nbspnbsp 순례에 참가했던 분들은 다시 법륜스님과 도법스님께 여러 가지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하고 답을 구했습니다.nbspnbsp 9시가 넘어 끝난 화쟁콘서트를 끝으로 오늘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단에게 경주의 특산물인 황남빵을 선물로 드리면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내일은 아침 7시 30분 조찬모임을 비롯하여 원불교 평양교구 20주년 기념식과 포스코 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2014.03.26. 13,365 읽음 댓글 4개

2014.3.24. 용성조사 열반일 기념법회

오늘 새벽 스님께서는 대전법당에서 새벽기도 나오시는 대전법당 신도님들과 법사님들, 문수, 관음팀 행자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제8차 천일결사 의 첫날이라 그런지 평소와 같은 기도임에도 좀 더 경건해지는 것 같습니다.기도 후 대전법당에서 간단히 아침 공양을 한 후 죽림정사로 이동하였습니다.nbsp오늘은 스님의 3대 스승님이신 용성진종조사 74주기 열반일이면서 정토회 가을불교대학생들의 사찰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석가여래계대법 제75세 조선불교중흥률 제6조이신 용성진종조사님은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민족앞에 우뚝 선 등대와 같은 분으로 3.1운동을 주도하여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를 대표해서 서명한 분으로 옥고를 치른 후에도 독립을 위해 독립자금을 마련하고 윤봉길의사를 임시정부로 보내는 등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입니다.nbsp또한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할대로 쇠퇴한 불교가 개항이후 일본의 영향으로 왜색화 되어가자 불교의 기풍을nbspnbsp바로 잡고자 총독부에 건백서를 제출하고 대각교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화과원을 만들어 스님들도 일하면서 참선하고 참선하면서 일을 하는 선농불교를 일으켰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불교가 쉬운 불교, 생활 불교로 자리 잡도록 어려운 한문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고 찬불가를 작곡하여 보급하고 어린이 포교활동을 하는 등 산중을 벗어나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도심 포교에 힘을 기울이셨습니다.nbsp이러한 용성진종조사님의 탄생지에 세워진 죽림정사는 법륜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신 곳으로 3.1절 행사와 열반일, 오도일, 탄생일 기념식이 매년 열립니다. 특히 올해는 용성조사님 탄생 150주년으로 탄생일인 6월 5일에 죽림정사에서는 기념식이 죽림정사옆의 물빛공원에서는 기념음악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매년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정토회의 뿌리인 용성조사님에 대해 알기 위해 사찰순례로 죽림정사를 방문합니다.아침 9시, 매화나무의 꽃이 은은한 향을 풍기는 바깥의 봄기운과는 달리 아직은 바닥이 차가운 교육관에서 도문 큰스님이 진행하시는 다례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다례제가 열리는 교육관으로 가는 길에 법륜 스님을 만나 환영받고는 뜻밖의 행운에 즐거운 모습들이었습니다. 불대생들은 처음 참석하는 다례제를 낯설어하면서도 엄숙하고도 장엄한 분위기에 경건한 모습들이었습니다. 2부 기념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애국가 제창을 한 후에 법륜 스님의 참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씀이 다음과 같이 있었습니다. “용성조사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기상과 백제의 온유함과 신라의 그 세세하고 예리함이 합해져서 800년 대운이 전개될 것이다.’라고 예견하셨는데 우리가 실행하고 실천해서 완성시켜 부강한 대한민국,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면 우리는 지난 100년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 100년 안에 도래할 아시아 시대의 중심국가로서 세계문명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통일은 과거 100년을 치유하고 미래 100년의 희망입니다. 조사님께서 그 암울한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을 가질 수 있도록 한겨울에 씨앗을 심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봄날을 맞아서 꽃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용성조사님의 열반74주기를 맞아서 부처님으로부터 조사님이 있기까지 모든 인연에 감사드리고 다시 미래를 이어갈 일들을 생각하며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평생을 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해 오신 불심도문 스승님의 은혜에 함께 감사를 드리며 다시 한 번 오늘 용성조사 열반일에 참석하신 큰 스님 이하 대중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리겠습니다.”이어진 도문 큰 스님의 기념법문에서는 팔순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쩌렁쩌렁 목소리로 용성조사님의 열반송을 한 구절씩 하시고 대중이 따라하면 열반송의 내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용성스님의 열반송을 직접 따라하다보니 용성스님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용성조사님의 열반송입니다.‘諸行之無常萬法之俱寂匏花穿籬出閑臥麻田上’유수 스님과 법륜 스님의 노고를 치하하신 도문 스님의 법문에 이어 모두 함께 부른 온겨레의 노래는 용성조사님이 직접 작사하신 찬불가로 진한 감동의 울림이 교육관을 가득채웠습니다.nbsp“백두산이 아빠되어 단군 겨레 이루었고, 한라산이 엄마되어 단군 기백 이루었네. 북녘 송화 남녁 낙동 젖줄되어 흐르르니 우리겨레 억만세라”용성스님 기념사업회 회장이신 수승행보살님의 진심어린 추모사와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이신 신봉수 거사님의 환영사가 이어지고 사홍서원을 끝으로 기념식을 마쳤습니다.nbsp다례제와 기념식에 참석한 내외빈이 모두 자리를 뜬 후에 불대생을 대상으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어제 입재식에 참석하고 오늘도 참석하느라고 수고하셨다면서 참석한 불대생들의 지역을 확인하시고 눈을 맞추시며 이렇게 법문해 주셨습니다. “여기 지금 처음 오신 분 손들어보세요. 처음 오신 분들은 반드시 와야 할 곳입니다. 정토회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와야 하는 곳으로 정토회의 설립 취지가 불교중흥이고 민족중흥인데 불교중흥이라는 것은 전국 읍면동에 수행 법회를 적어도 한군데씩 만들어 국민들이 누구나 다 수행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가까이서 수행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민족중흥이라는 것은 분단된 나라의 현실에 대한 것으로 나라를 제대로 지켰으면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빼앗긴 뒤에도 제대로 독립운동을 했으면 분단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독립운동을 제힘으로 못해서 해방후 외세에 의해 나라가 분단되었습니다. 그래서 70년동안 분단된 나라를 통일시켜 독립을 완성시켜 민족중흥을 이루자는 것입니다.nbspnbsp그렇기 때문에 정토회 회원이 되려면 반드시 민족문제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이곳이 성지입니다. 불교를 새롭게 하고 민족을 중흥시키는 것을 주창하신 분이 용성진종조사이기 때문에 그분의 탄생지인 이곳에서 단순히 탄생일·오도일·열반일을 기념하려는 게 아니라 그걸 계기로 해서 정토회 회원의 수련과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정토회의 설립취지와 용성진종조사님과의 관계를 상세히 설명해주시면서, 또한 석가여래 부처님으로부터 도문 큰 스님까지의 법맥을 그린 교육관 내부의 탱화와 용성진종조사님의 일생을 그린 교육관 외부의 탱화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이어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다례제와 기념식의 감동, 정토회의nbsp뿌리인 용성스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온nbsp역사성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대중들은 질문에 머뭇대기도 했습니다.nbsp밥벌이로 바쁘고 일상을 돌아볼 기회가 적은 30대가 어떻게 통일을 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지 여쭈어보고 싶다는 질문에 스님은 “인간은 아주 원시적으로 사는 경우 제외하고는 이미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지금 어느 하나도 도움을 받지 않은 게 없어요. 옷, 신발, 화장품, 음식, 전기밥통... 내가 아침마다 밥을nbsp짓는nbspnbsp밥통은 누가 만들었어요? 사용한 전기는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걸 우리가 모르면 밥통을 만든 사람, 옷을 만들어 준 사람을 미워하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지상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내가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을 확연히 알면 일체중생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과 동식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지요. 우리 민족의 문제도 공동체에 대한 문제로 서로 돕고 살아야 된다는 거시적 입장에서 보면 됩니다. 20대 30대가 이 변화의 국면에 어떻게 통일에 기여할거냐 그게 구체적으로 뭐냐 이제 찾아야 됩니다. 일제시대에 학교선생이 돼서 가르치는 것도, 농사지어서 독립운동가에게 주는 것도, 총들고 싸우는 것도 독립운동인 것 처럼 하나만 통일운동이 아닙니다.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모든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니 찾아내고 앞으로 해야 합니다.nbsp수행을 해야 합니다. 용성스님은 나라의 독립과 불교를 바로 세우는 길을 함께 하셨습니다. 자기 직분에 맞는 일을 해 나가는 것에는 주부로서의 길도 있고, 아이 엄마로서의 길도 있고, 아내로서의 길이 있듯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도 있습니다. 아내, 엄마 역할만 하면 다냐? 아녜요. 한 노인의 아들딸 역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수행정진을 해야 하고,nbsp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nbsp세상의 이익에 대한 책임을 안지면 안되고, 대한민국에 살면 대한민국이 잘 사는 길에 조금은 기여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입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이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길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봉사를 많이 하고 싶은데 몸이 아프다는 질문에는 “아픈 몸을 다 챙겨서 건강해지고 난 다음에nbsp봉사를 할 수도 있고, 아파도 봉사하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면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것이 옳고 잘못된 것이 아닌 본인의 선택입니다. 욕심을 내어 일을 벌려가지고 뒷감당 못해서 괴로워하면서 성을 낼 수 있습니다. 성을 내서라도 좋은 일 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하면 안됩니다. 탐진치가 모든 고통의 근원임을 알아 부처님의 삶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지혜로워지는 쪽으로 가야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는 겁니다. 뭘 얼마나 했다는 것이 기준이 아니예요. 불교의 이상은 괴로움이 없는 열반 해탈로 나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몸이 기준이 되면 안됩니다. 몸은 살다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항상 수행을 통해 사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힘을 키워 나가서 세상의 이치도 알고 시대적인 인식도 해야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점심공양 후에는 현장학습으로 법사님의 사찰순례 교육에 참가하라는 말씀으로 자리를 마무리하시고 어느새 따뜻해진 봄 기운의 죽림정사 대웅전 앞에서 불교대 학생들과 단체사진을 촬영하셨습니다.이후에nbspnbsp2시30분부터는 백용성조사 유훈 실현회 이사회가 있었습니다. 이사회를 마치고 내일 화쟁 코리아 경주 순례에 참석하기 위해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2014.03.26. 15,012 읽음 댓글 2개